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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독재 2인자 JP, 전두환 "안 되겠어" 한마디 하자…

 

 
[김종필에게 묻는다 ⓹] 만년 2인자 JP의 권력욕… 내각제 카드 불발, 퇴장해야 할 때 외면하다 결국 퇴출
 
입력 : 2015-12-30  09:53:39   노출 : 2016.01.03  10:03:27
장슬기 기자 | wit@mediatoday.co.kr    

지 난 3월2일부터 중앙일보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증언록 ‘소이부답(笑而不答)’을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증언록은 중앙일보 기자들과 작가까지 동원돼 114회까지 이어졌고, 웹툰으로 재구성됐으며 책으로도 만들어질 중요한 역사적 자료입니다. 하지만 증언록 곳곳에는 역사왜곡과 미화의 흔적이 보입니다. 미디어오늘은 이를 검증하는 차원에서 증언록의 이면을 살펴보고 중앙일보가 하지 않은 김종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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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전 국무총리(JP)는 중앙일보 증언록에서 “군부의 중심은 나”였다며 “박정희는 권력의지가 약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절대권력을 넘보지 않았고 대의를 먼저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JP는 자신을 겸손한 2인자로 표현하지만 1인자를 향한 욕망은 여기저기서 새어 나온다. JP의 권력욕은 이미 1960년대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고다마 불충사건’

고다마 요시오(1911~1984)라는 일본인이 있다. 미국 CIA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석방된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다. 폭력조직에서 활동하며 ‘우익의 거괴’, ‘정재계의 흑막’ 등의 별칭으로 불린 극우인사다. 하루는 고다마가 김형욱 중정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내가 숙소인 반도호텔에서 석정선, 김용태, 김종락 세 분을 만났죠. 그분들 말씀이 이 나라에는 JP가 있으니 박정희 대통령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 한국과 뭘 하려고하면 실권자인 JP와 손잡지 않으면 말짱 헛것이라며 협력을 요청하더라고요.” 

고다마는 김형욱에게 그 세 명이 자신에게 이런 말도 했다고 전했다. “사실 혁명(5·16)을 주도한 것도, 그 후 모든 정책 결정도 JP 머리에서 나온 것이며 박정희는 상징적 존재일 뿐이라는 거죠. 쉽게 말하면 허수아비라는 겁니다.” JP가 중앙일보 증언록에서 자신이 박정희를 설득하며 혁명을 이끌어 갔다고 했던 말과 비슷한 맥락이다. 

황당한 사실은 일제 식민지배가 끝난 지 20여년이 지난 시점에 여전히 국내 실력자들이 고다마와 같은 일본 실력자에게 한국 차기 대통령에 대해 상의했다는 것이다. 

고다마는 박정희와 만주시절 친분을 쌓았고, 우익 폭력단체 ‘동성회’를 조직한 재일교포 정건영, 아베 신조 현 일본 총리를 외손자로 두고 있는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특별고문을 역임한 세지마 류조(일본군 장교, 이토추 상사 회장) 등과 막후에서 한일 국교 정상화를 이끈 인물 중 하나다. 

1971년 2월 고다마는 한일친선에 공이 있다는 이유로 2등급 수교훈장인 광화장을 한국 정부로부터 받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당시 집권당인 민주공화당(공화당) 인사들은 고다마와 친분을 쌓았다. JP는 정건영을 통해 고다마와 친분을 쌓았다. 김형욱, 박종규, 김용태, 석정선 등 실세들도 고다마를 자주 만났다. 

석정선(JP 육사동기), 김용태, 김종락(JP의 셋째형)은 박정희 정권 2인자였던 JP와 친한 사람들이었다. 박정희는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 박종규를 통해 JP 주변인들이 JP 대통령 만들기와 관련해 고다마의 협조를 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중정부장 김형욱은 고다마와 JP계 3인의 대화를 도청한 테이프를 박정희에게 보고했고 3인은 중정에 연행됐다. 이를 ‘고다마 불충사건’이라고 한다. (김형욱 회고록, 김종필과 이후락의 떡고물 참고)

2인자는 1인자를 꿈꾼다

JP는 증언록에서 “1인자는 2인자를 소외하거나 무력화하고 싶어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며 “조금도 의심받을 만한 일은 하지 말고, 때가 올 때까지 1인자를 잘 보좌해야 한다”고 ‘2인자 철학’에 대해 말했다. 고다마 불충사건은 1인자에게 의심받을 만한 일을 하다 걸린 일이다.  

1인자는 영구집권을 꿈꿨다. 3선 개헌 얘기는 1967년 6월 7대 국회의원 선거 전부터 나왔다. 당시 야당은 “공화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하면 3선을 위한 개헌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화당은 7대 총선에서 개헌 선인 의석 3분의 2를 넘기자 1969년 1월 윤치영 공화당 의장서리가 3선 개헌 논의를 본격적으로 꺼냈다.  

JP는 69년 2월 “이 나라의 민주 정치와 박 대통령을 위해 3선 개헌을 반대한다”고 말했다고 증언록에서 주장했다. 박정희는 이미 두 번(1963년, 1967년 대선)이나 대통령을 했고, 1967년 대선은 부정선거 논란에도 휩싸였다. 이런 상황에서 초법적 국가기구인 중정의 창립자이자 쿠데타 정부 2인자 JP의 입에서 나온 “민주 정치”라는 단어는 사뭇 어색하다. 

   
▲ 김종필 국무총리(1971~1975)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오른쪽) 사진=국가기록원
 

JP가 3선 개헌에 반대했던 이유는 따로 있다. 1인자의 장기 집권은 2인자로서 애가 타는 일이다. ‘현대 정치사와 김종필’에 따르면 박정희의 후계자 문제는 심각한 정치쟁점이었다. 1967년 선거 후 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지지하는 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인사들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 책에 따르면 1968년 5월 공화당은 ‘당내 사조직을 만들어 해당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김용태, 최영두, 송상남을 전격 제명했다. ‘박정희 3선 개헌을 저지하고 당의장 JP를 1971년 대통령으로 추대하려다 들킨 것’이 실제 원인이었다.  

JP 증언록에 따르면 박정희가 JP를 따로 불러 3선 개헌 동참을 요청했다. 박정희는 JP의 손을 꼭 잡았고, 눈에 눈물이 고인 채 이렇게 말했다. “이봐. 같이 죽자고 혁명 해놓고, 혼자 살려고 그래? 60년대엔 빈곤을 겨우 퇴치했는데, 70년대엔 중화학 공업을 일으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할 것 아니야. 이 길을 같이 가자.” 

JP는 경제발전을 위해 1인자의 눈물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현대 정치사와 김종필’ 저자 이달순은 JP가 개헌 찬성으로 돌아선 이유를 “만일 JP가 동지들과 끝까지 (3선개헌을) 막았더라면 숙청을 당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JP의 2인자 철학에 따르면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는 소리와 같다. 

3선 개헌안은 결국 통과됐다. 1971년 3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박정희는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됐고, JP는 새로 신설한 당 부총재로 선출됐다. 같은 해 6월 박정희의 제7대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면서 박정희는 JP를 국무총리에 임명했다. JP의 첫 번째 국무총리 임기는 1975년 12월까지 이어졌다.  

절대로 1인자를 넘겨다보지 말라

JP가 강조한 2인자 철학 첫 번째는 “절대로 1인자를 넘겨다보지 말라”다. 유신정권시절 국무총리였던 JP가 2인자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얻게 된 교훈은 아닐까? 1976년 코리아게이트 사건 이후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산하 국제기구소위원회(프레이저 위원회)가 미 의회에 보고했던 ‘프레이저 보고서’에는 JP가 국무총리에서 경질되기 직전 상황이 나온다.  

1973년 초 박정희는 슐 아이젠버그가 진행하는 상업 프로젝트의 편의를 봐주도록 정부에 지시했다. 박정희는 한국정부가 캐나다산 CANDU 핵 반응로(핵개발용)를 구매하도록 했고, 아이젠버그는 대리인 역할을 했다. 아이젠버그는 1960년대 초 미국이 경제개발 계획들이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경시했을 때 필요한 자금을 지급해 박정희에게 우호적인 인물이다.

프레이저 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아이젠버그는 핵 반응로 판매 수수료 등으로 200만 달러를 받았는데 이 중 일부를 민충식과 JP가 뒷돈으로 받았다. 이 사실을 청와대에서 알게 돼 JP는 국무총리, 민충식은 한국전력 사장에서 해임됐다. 민충식은 친 JP 인물로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참여해 대통령 정무비서관을 역임했고 73년부터 한전 사장으로 일했다.  

JP는 증언록에서 “건강상의 이유”로 사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JP는 “정치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특유의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분할 통치)’ 통치술로 나를 힘들게 했다”고 덧붙였는데 이게 사퇴한 진짜 이유에 가까워 보인다. 여기서 ‘분할통치’는 2인자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실력자를 통해 견제하게 했던 박정희의 통치술을 가리킨다. 

JP의 국무총리 사퇴의 이유에 대해 프레이저 보고서는 “박정희 돈에 손 댄 후 쫓겨났다”고 했다. 더 정확하게는 “편의를 봐주라”는 1인자의 지시를 온전히 따르지 않은 것을 말한다. 

   
▲ 김종필 전 국무총리.
@연합뉴스
 

1인자의 사망, 결정적 기회 

JP는 증언록에서 “내가 아는 한 박 대통령은 돌아가실 때까지 누구에게든 권력을 넘겨줄 분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가 죽자 JP는 공화당 총재가 됐다. JP는 공화당 요직을 개편해 ‘JP 체제’를 만들며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부상했다. 

10·26 후 전두환과 JP의 메신저 역할을 한 박재홍(박정희의 장조카) 전 민자당 의원도 전두환이 12·12사태 이전까지 JP를 대세 인물로 봤다고 전했다. 박 전 의원에 따르면 전두환이 JP에게 요구한 사항은 5·16세력만 끼고돌지 말라, 육사 8기생만 편애하지 말라(전두환은 육사 11기), JP 비서실 잡음을 정리해달라, JP가 일본 측인 건 알지만 앞으로 미국과도 친하게 지내달라 등 네 가지였다.  

18년을 집권한 독재자가 죽고 민주화 바람이 불며 재야인사들이 복권되자 프라하의 봄에 빗댄 ‘서울의 봄’이라는 말이 퍼졌다. 재야인사 뿐 아니라 1인자의 그림자만 밟았던 JP에게도 봄이 오는 듯했다. 하지만 권력은 온전히 JP에게 넘어오지 않았다. JP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어도 봄 같지 않구나)’이라고 당시 정국을 표현해야 했다. 

1980년 1월17일 전두환은 언론사 간부들과 술자리에서 “JP는 안 되겠어”라고 했다. 봄은 꽃피지 못하고 다시 겨울로 되돌아갔다. 10.26 이후 만발했던 개헌논의가 얼어붙고 1980년 5월17일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내린 신군부는 모든 정치활동을 중단시켰다. 당시 국군보안사령관 전두환 육군소장은 중정부장,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까지 겸임하고 있었다.

JP는 신군부에게 부정축재로 쌓은 216억4648만원을 몰수당했다. 1980년 6월 공화당 총재직에서도 물러났다. 그리고 전두환 집권기 7년 동안 잊혀졌다. 1987년 구 민주공화당 정치인들을 모아 만든 신민주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JP는 13대 대선에서 8%(4위)의 지지밖에 얻지 못했다. 당시 노태우 36.6%(당선), 김영삼(YS) 28%, 김대중(DJ) 27%를 각각 얻었다. 

물 건너간 대통령 “내각제 하자”

JP는 원래 내각책임제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10·26 직후인 1980년 1월 ‘주간한국’과 인터뷰에서 “정부조직은 대통령 중심제가 좋다”고 밝혔고, 같은 해 3월 기자간담회에서도 “대통령은 언제라도 총리를 경질할 수 있어야 하며, 이원집정부제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5·16쿠데타로 내각제(2공화국 장면내각)를 붕괴한 뒤 강력한 대통령의 2인자 특혜를 누려온 상황에서 차기 대통령이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자연스런 발언이다. 

하지만 13대 대선이 끝나고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JP는 1988년 1월 기자간담회에서 내각제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JP를 중심으로 한 신민주공화당은 3당 합당(노태우+YS+JP) 결과 민주자유당으로 흡수됐다. 3당 합당 후 JP는 YS에게 내각제를 하자고 요구했다.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대통령의 권력을 이어받는다. JP 증언록에 따르면 YS는 ‘자신이 민자당 총재-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명예총재-JP는 최고위원’을 각각 맡는 수직적 지도체제를 제안했다. 다음 대통령이 자신이라고 믿었던 YS는 내각제에 부정적이었다. JP는 계속 1인자의 그림자만 좇아야 했다. 

JP가 말하지 않은 2인자 철학

JP는 YS를 지지했고, DJ와는 DJP연합까지 했지만 결국 내각제를 거절당했다. 박정희가 3선개헌이나 유신을 밀어붙일 때 반대하는 JP에게 “임자 한번만 도와줘, 이번만 내가 하고 다음은 임자 차례”라고 하며 설득했을 때도, YS가 민자당 대선후보 시절 JP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나 다음은 당신’이라고 했을 때도, 3당이 합의한 ‘내각제 합의서’를 YS가 뒤엎었을 때도 JP는 절대 자신의 입을 통해 상대를 비난하지 않았다. 

   
▲ 김대중 대통령 취임 축하리셉션에서 김 대통령과 김종필 국무총리 지명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절대권력에 저항하지 않는 것이 2인자의 덕목이다. 그래서 자신의 입을 대신할 JP계보를 만드는 것도 경계했다. 친 JP계로 불리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DJ의 동교동계, YS의 상도동계에 버금가는 계보는 없었다. 절대권력에 대항하기 위한 DJ, YS의 계보가 곧 집권의 발판이 됐다는 점에서 JP 계보가 취약했던 것은 그를 영원히 2인자로 머물게 한 원인이기도 했다. 

2인자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YS정부 시절 JP는 ‘5·18특별법’을 반대했다. 이 법은 자신을 부정축재자로 몰아 재산을 빼앗고 정치권에서 쫓아낸 전두환·노태우를 처벌하는 법이었다. 훗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JP가 총재로 있던 자유민주연합(자민련) 당론으로 탄핵을 찬성하면서도 JP 본인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JP는 증언록에서 2인자는 “참을 수 없는 것도 참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JP는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자 1990년 9월 성균관대에서 “민주화 전환기에 노 대통령을 선택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노 대통령 말고 누가 현 시국을 조화롭게 이끌 수 있겠는가”라고 찬양했다. 

YS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인 1993년 1월 당무회의를 주재하며 “차기 대통령의 윤허를 받아 회의를 주재하게 됐다”며 다시 바뀐 1인자를 깍듯하게 모셨다. YS에게 레임덕이 찾아온 1997년 JP는 “이제 눈을 감기 전에 가야 할 길이 남았다”며 대선 출마를 시사했다. 

   
▲ 1998년 김대중 제15대 대통령 취임식 행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왼쪽)와 김영삼 전 대통령 부부(오른쪽) 사진=국가기록원
 

97년 대선 역시 DJ에게 밀렸고, JP는 공동정부를 약속받으며 국무총리에 올랐지만 총리가 실권을 갖는 내각제까지 얻어내진 못했다. JP는 증언록에서 DJ가 당시 외환위기 수습을 위해 내각제를 못할 것 같다고 말하자 자신은 “정상의 고뇌를 이해한다”며 내각제 포기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대의를 위해 권력을 포기한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퇴장해야 할 때를 외면한 JP는 퇴출됐다. 자민련은 창당 첫 총선 1996년에 50석을 얻었지만 2000년 총선에서 17석으로 쇠락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정당지지율을 2.8% 밖에 얻지 못해 비례대표 1번에 이름을 올렸던 JP마저 낙선했다(지역구만 4석). 당시 13%의 지지를 얻은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에게도 밀린 참패였다.  

JP는 이 상황을 증언록에 이렇게 표현했다. “세상에 타다 남은 나무토막처럼 추한 게 없다. 아낌없이 타야 한다. 활활 타서 하얀 재가 돼야 한다. 어떤 인생도 자기를 다 태울 자격이 있다. 정치적으로 나는 완전 연소됐고 재만 남았다.” 어렸을 때 ‘일야일권(一夜一卷) 독파주의(讀破主義)’라며 밤마다 책 한 권씩 읽은 사람답게 JP의 수사는 화려했다. 

JP는 “좀 더 장엄하게 정치와 이별하고 싶었다”며 “내일 또다시 떠오를 태양을 기약하며 서해의 붉은 낙조로 빨려 들어가는 햇덩어리가 되길 나는 욕망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JP눈 내년 총선에서 공주지역 출마예정인 정진석 전 새누리당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해당 지역 공주고(JP 19회 졸업생)에는 JP 흉상 건립이 추진 중이다. 그의 욕망은 식지 않은 것인가? 

* <김종필에게 묻는다> 연재목차

1. 증언록 다시보는 이유와 5·16

2. 한일회담

3. 4대의혹사건과 공화당 창당

4. 황태성 사건, 첫번째 간첩조작

5. 1인자를 꿈꿨던 영원한 2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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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대연합론자’ 김근태와 야권의 분열

‘민주대연합론자’ 김근태와 야권의 분열

등록 :2016-01-02 11:03수정 :2016-01-02 16:08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오른쪽)와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30일 오전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고 김근태 전 의장 4주기 추도미사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오른쪽)와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30일 오전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고 김근태 전 의장 4주기 추도미사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성한용의 정치막전막후 54]

2016년으로 넘어오기 이틀전인 2015년 12월30일 김근태 전 의원 4주기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창동성당에서 열린 추모미사에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참석했습니다. 두 사람은 미사 전에 잠시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언론에 이미 보도된 내용 그대로입니다. “신당 작업은 잘 돼갑니까?”(문재인) “예, 지금 시간은 촉박하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연말연시 다 없을 것 같습니다.”(안철수) “총선 시기에 맞추려면 시간이 별로 없죠?”(문재인) “네네, 다들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선거구제 획정도 끝나지 않아서. 지금 어떻게 진행돼가고 있습니까?”(안철수)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면서 잠시 말이 얽혔다가 대화가 다시 이어졌습니다. “종교가 가톨릭이신가요?”(문재인) “저희 아내와 딸도 견진까지 다 받았습니다.”(안철수) “우리 안 대표는요?”(문재인) “하하하. 저는 가톨릭학생회 출신입니다.”(안철수) 그리고 두 사람은 미사를 드리러 성당으로 올라갔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가톨릭학생회 출신이지만 종교가 없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추모미사에 이어 진행된 추도식에서 문재인 대표는 매우 인상적인 추도사를 했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배님. 우리는 선배님이 없는 네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 오는 내내 선배님과의 추억들, 특히 고문 후유증 때문에 힘들어하시던 모습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통째로 무너져 내리고 있는 지금, 선배님의 부재가 우리를 더욱 춥게 만듭니다.” “김근태 선배님은 온 평생을 민주주의를 위해 살았습니다. 스스로 투쟁으로 쟁취하고 지켜온 민주주의 안에서 자유와 정의가 넘치는 나라를 꿈꾸셨습니다. 선배님이 없는 네 번째 겨울,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국민의 희망은 절망으로, 꿈은 포기로 바뀌었습니다. 남은 것은 오직 무능과 무책임으로 점철된 정부, 고통 받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불통의 정부만 있을 뿐입니다.” “선배님의 마지막 호소를 아프게 기억합니다. 2012년을 점령하라. 선배님은 병상에 계시는 동안에도 호소하셨습니다. 그 간절했던 호소는 선배님의 당부를 받들지 못했다는 뼈아픈 반성과 함께 여전히 우리들 가슴에 뜨겁게 살아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김근태가 되어야 합니다.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미완의 희망을 우리가 함께 해내야 합니다.” “하나가 되지 않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선배님이 우리에게 남긴 말씀입니다. 선배님은 이미 이기는 방법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 더 혁신하고 더 단합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 큰 통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더 강한 야당, 더 단단한 야당이 되어 박근혜 정권에 맞서 이겨야 합니다. 그것이 선배님의 간절한 희망을 이루어드리는 길일 것입니다.” “선배님.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내년 추도식 때는 총선 승리의 소식을 자랑스럽게 보고드리고 2017년의 희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선배님의 유언 집행을 더 지체하지 않겠습니다. 김근태 선배님. 편히 쉬십시오.” 추도식 사회를 맡은 최상명 우석대 교수가 안철수 의원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에게 추도사를 부탁했지만 안철수 의원은 사양했습니다. 박용만 회장은 고인과의 특별한 관계를 회고하는 내용으로 짤막한 추도사를 했습니다. 추모미사가 끝나고 성당 밖으로 나가는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에게 기자들이 따라붙었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안 의원과의 만남이 어색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어색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앞으로 좋은 경쟁을 해 나가야 하고 언젠가 또 합치기도 해야 하고 길게 보면 같이 가야 할 사이니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30일 오전 서울 도봉구 창동 성당에서 열린 고 김근태 4주기 추모미사에서 맞은편 자리에 착석해 있다. 뉴시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30일 오전 서울 도봉구 창동 성당에서 열린 고 김근태 4주기 추모미사에서 맞은편 자리에 착석해 있다. 뉴시스

안철수 의원은 기자들과 이런 문답을 주고 받았습니다. -문재인 대표가 추도사에서 야당 통합을 말했다. “제 원칙은 이미 얘기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까 추도사는 부탁을 받았습니다만 제가 말씀드리기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사양했습니다.” -사양하신 이유는? “저보다 더 많은 노력들을 한 분들이 거기 많이 계신데 저는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인영 의원이 앞으로 오라고 했는데 거절한 이유는? “이인영 의원이 제 앞에 앉으시는게 맞다고 봤습니다.” -어떤 의미인가? “고 김근태 고문께선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그 정신을 기리고 그리고 계승할 책무가 있습니다. 또 인재근 의원님 사실 처음 선거에 나서실 때 제가 도와드렸습니다. 당시 유일하게 제가 두 분을 도와드렸습니다. 제가 노원 선거 때 당이 다른데도 제가 무소속이었는데도 직접 오셔서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지금 현재는 같은 복지위 소속입니다. 그런 깊은 인연들이 있습니다.” -오늘 성찬을 안했는데. “예 저는 영세는 받지 않았습니다. 가톨릭학생회 출신으로 거기서 제 아내도 만나고 했습니다.” -미사에서 김근태 정신 얘기가 많이 나왔다. 신당 추진과 맞닿아 있을까? “아까 신부님을 포함해 여러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 김근태 전 고문님, 그 생각과 정신을 기리고 꼭 후배들이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표가 김근태 정신을 얘기하며 통합을 강조했다. “통합에 대해서는 제가 벌써 세번에 걸쳐 말씀드렸습니다.” -문재인 대표에게 선거구 협상을 물었는데? “사실 지금이 소선거구제를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몇달전부터 간절하게 바랐지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루 남았습니다. 밤새워서라도 여야가 협의해서 소선거구제를 조금이라도 바꾸길 바랍니다. 지금 바꾸지 못하면 20대 국회에서 현재 의원 300명 전원이 바뀌더라도 똑같은 모습이 됩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습니다. 밤을 새워서라도 정의화 국회의장님과 여야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주길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김근태 4주기에 만난 문재인과 안철수
어색한 짧은 대화 뒤 미사집전 함께해 “여기 올 자격없다”는 싸늘한 눈길엔
김근태 민주대연합론과 반대된 행보 때문
그건 바로 연합의 기본이 양보에 있는데
문재인·안철수는 서로를 불신하고 있고
두 지지자들 ‘안빠’ ‘문빠’ 부르며 증오 김근태가 말한 민주대연합론의 참뜻을
두 의원은 뭐라고 응답할까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은 각자 차를 타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추도식 참석을 추모객들이 꼭 반긴 것만은 아닙니다. 추모미사에 참석했던 한 국회의원은 “당을 분열시킨 문재인 대표나 안철수 의원 모두 김근태 정신을 말할 자격이 없다. 오늘 여기에 올 자격도 없다”고 싸늘하게 말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김근태 정신이 무엇일까요? 최상명 교수가 최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정치인 김근태는 ‘민주대연합론자’이다. 대연합은 힘을 합쳐 보다 큰 적을 이기는 정치전략이다. 그래서 대연합은 약한 소수자의 희망이 될 수 있다. 또 대연합은 참여하는 사람들의 양보와 희생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대연합이 필요한 국면, 대연합을 말하는 정치인들은, 늘 그 전제에서 ‘나는 예외다’였다. 김근태만이 예외를 스스로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결국 김근태만이 양보하고 희생했다. 많은 사람들은 ‘나’를 주장하면서 싸운다. 그러나 김근태는 ‘나’를 희생하면서 싸웠다. 정권을 내어주는 일이 그동안 우리 국민의 피와 땀, 열사들의 숭고한 죽음과 희생으로 일구어 온 민주주의를 일순간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김근태는 양보하고 희생했다. 그리고 대연합을 이루는 다수의 뜻에 복종하고 헌신했다. 민주주의자의 길이었다.” 김근태 전 의원의 정치 노선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김근태 전 의원은 1985년 고문기술자 이근안에 의해 전기고문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재야의 지도자였던 김근태 전 의원은 1992년 ‘민주대연합을 통한 민주정부 수립’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대연합 후보(김대중)는 패배했습니다. 김근태 전 의원은 그 뒤에도 민주대연합을 통해 냉전적 수구세력과 싸워야 한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민주대연합론은 김영삼 정권에 면죄부를 주고 3당합당을 사후적으로 합리화시켜준다는 등의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3당합당을 거부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민주대연합론을 비판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태도를 바꿨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근태 전 의원을 통해 정치란 교조의 원칙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기반을 잃지 않으면서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켜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다고 고백한 일이 있습니다. 김근태 전 의원은 2007년 재집권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스스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대선주자 연석회의와 대통합신당 창당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최상명 교수의 글에 나온대로 민주대연합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하는 사람들의 양보와 희생’입니다. 연합을 하려면 서로 양보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은 같은 정당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서로를 불신했습니다. 물론 따져보면 둘 중에 더 잘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했고 야권은 지금 분열하고 있습니다. 추모미사에 참석했던 국회의원이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을 강하게 비판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민주화의 대부’로 불렸던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상임고문의 4주기 추모행사가 30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 묘역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민주화의 대부’로 불렸던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상임고문의 4주기 추모행사가 30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 묘역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은 돌아갔지만 김근태 전 의원 4주기 추모행사는 이어졌습니다. 오후 1시30분 마석 모란공원 김근태 묘역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기동민 전 서울시 부시장이 사회를 봤고 유인태 의원이 제례를 집전했습니다. 홍익표 의원이 축문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우원식 의원과 이동진 도봉구청장이 추도사를 했습니다. 우원식 의원이 김근태 전 의원에게 보내는 편지가 추모객들의 가슴을 때렸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근태 형님. 올해도 어김없이 형님의 벗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계절이 바뀌듯 남은 벗들의 삶도 조금씩 변해가지만, 형님을 향한 애끓는 심정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형님.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형님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한데, 나지막하지만 또렷한 그 목소리가 귓전을 맴도는데,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그러나 요즘 제게는 형님의 선한 눈빛이 매서운 서릿발처럼 느껴집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는 꾸짖음이 되어 돌아옵니다. 박근혜 정부의 광폭한 노동개악에 맞서 흔들림 없이 버티고 있는데도, 국민이 을로 전락한 세상을 바꾸고자 중소기업, 노동자, 영세자영업자를 비롯한 이 땅의 서민과 점점 더 굳건히 손잡고 가려 하는데도, 어쩐지 형님이 바라던 국민들의 편안한 삶은 험난해져 가기만 하고, 민주주의는 후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왜곡도 도를 넘어 친일이라는 굴종의 역사를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형님이 살아생전 그토록 강조하신 민주대연합,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말씀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습니다.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져 내리는 암울하고 참담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 대해 형님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계실겁니다. ‘이 땅의 민주세력이 하나되지 못하고 어찌 국민의 고통받는 삶을 지킬 수 있느냐.’ ‘혁신을 내부를 갈라놓는 도구로 악용하면서 어찌 세상을 진전시킬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국민들의 삶은 도탄에 빠져만 가고 있는데 힘을 모두 합쳐도 부족할 판에 그 알량한 대권욕 때문에 우리는 부서져만 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것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못난 후배들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바라보고 계실 형님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다시한번 다짐합니다. 형님은 희망은 힘이 세다고 하셨죠. 저희는 형님이 말씀하신 힘이 센 그것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근태 형을 기억하는 우리들부터 오직 국민의 삶을 위한 길만 가겠습니다.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한 형님의 민주대연합의 긴 여정에 함께 했던 우리들입니다.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길을 걷는 심정이지만 반짝이는 별처럼 김근태의 유지를 이정표 삼아 뚜벅뚜벅 걷겠습니다. 더불어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어머니, 문익환 목사님, 그리고 수많은 열사와 동지들까지 이 곳에 잠들어 있는 이 땅의 노동의 권리와 민주주의, 통일을 바라던 모든 이들의 염원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근태 형님 앞에서 잡았던 손, 결코 놓지 않고 우리는 여기에 다시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간직하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수백 수천의 김근태가 되어 돌아오겠다는 약속, 꼭 지키겠습니다. 김근태의 이름,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형님. 보고싶습니다. 형님. 또 다시 만날 날까지 편히 쉬십시요. 우원식 의원은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입니다. 또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주도한 당 혁신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했던 사람입니다. 우원식 의원이 말한 ‘혁신을 내부를 갈라놓는 도구로 악용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힘을 모두 합쳐도 부족할 판에 그 알량한 대권욕 때문에 부서져만 가고 있는 우리’는 또 누구일까요? 우원식 의원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은 혁신을 명분으로 갈등했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혁신전당대회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탈당했습니다. 문병호 황주홍 유성엽 김동철 임내현 권은희 등 탈당한 의원들은 이른바 ‘친노패권주의’를 청산해야 당을 혁신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모두가 상대에게 혁신을 외치며 갈라서고 있는 것이 지금 야권의 모습입니다. 부서져 가고 있는 것은 야권 전체입니다. 정당과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지지자들도 부서져 가고 있습니다. 안철수 의원 탈당 이후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 지지자들은 서로를 ‘안빠’ ‘문빠’라고 부르며 헐뜯고 증오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관계망과 언론을 자세히 살펴보면 야권 분열을 위한 공작도 확실히 작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슷한 장면이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1987년 12월 김영삼-김대중 후보 단일화 실패 이후 두 사람의 지지자들은 상대 후보를 ‘색광’ ‘빨갱이’로 부르며 증오했습니다. 정치공작 세력의 이간책이 틈을 더 벌렸습니다. 대통령 선거 결과는 노태우 민정당 후보의 승리였습니다. 분열의 상처는 그 이후 우리나라 정치와 역사를 뒤틀었습니다. 야권의 갈등과 분열이 시작된 이후 김근태 전 의원이 살아 있다면 뭐라고 했을까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습니다. 우원식 의원의 추도사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무조건 다시 합치라는 것은 해법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김근태 전 의원이 말했듯이 주먹을 쥐고 악수를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김근태 전 의원 4주기가 야권의 갈등과 분열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관련 영상] ‘2017 대선’, 절박한 쪽이 이긴다/ 김보협의 ‘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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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일본 특대형 전쟁 반인륜 범죄 사죄 배상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대답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6/01/03 [11:1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이정섭 기자

 

조선은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합의한 일본의 성노예 보상행위를 연일 규탄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특대형 반인륜 범죄에 대한 국가적, 법적책임을 인정하고 모든 피해자들이 납득할수 있게 철저한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해 나섰다.

국내 주요 언론들은 지난 2일 조선중앙통신을 인용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이 일본이 남조선과의 일본군성노예문제협상 ‘타결’에 대해 떠들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1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일본당국자들이 최근 남조선과 일본군성노예문제를 ‘타결’하기로 합의한 것을 놓고 ‘위안부문제가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주장을 늘어 놓고 있다고 밝혔다.

 

조선외무성 대답은 “빈껍데기뿐인 ‘사죄’와 눅거리(값싼) 자금지출로 일본의 극악한 성노예범죄행위를 덮어버리기로 한 이번 합의는 철두철미 국제적 정의와 피해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한 정치적 흥정의 산물로서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주장했다.

 

외무성 대답은 “주목되는 것은 이번 합의를 놓고 미국이 서둘러 ‘축하’와 ‘전면적이행지지’를 운운한 것”라면서 “미국은 일본과 남조선을 저들이 추진하는 침략적인 3각군사동맹에 묶어놓기 위하여 ‘일본군위안부’문제의 ‘타결’을 부추겨왔다.”고 설명했다.

 

대변인 대답은 “일본군성노예범죄는 특정한 나라의 조종이나 중재에 의해 어물쩍하게 타협하여 해결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며 몇 푼의 돈으로 어수룩한 상대나 얼려(속여) 넘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더욱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대답은 “일본국가가 20만명의 조선여성들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 여성들을 상대로 감행한 성노예범죄는 국제적인 특대형 반인륜범죄로서 그 피해자들은 조선반도의 남쪽에만 아니라 북에도 있고 다른 아시아나라들과 유럽에도 있다.”며 일본의 2차 대전 당시의 반인륜적 성노예 범죄를 폭로했다.

 

그러면서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은 가해자인 일본정부가 국가의 법적, 도덕적 책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하고 배상하며 짓밟힌 명예에 대한 회복과 재발방지조치를 하루빨리 취할 것을 일관하게 요구하여왔으며 이러한 피해자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고 일본을 압박했다.

 

특히 “일본은 일본군성노예범죄를 포함하여 전쟁범죄와 특대형 반인륜범죄에 대한 국가적, 법적책임을 인정하고 모든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게 철저한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한다.”며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법적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거듭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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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철거? 피 토하고 죽을 것"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1/03 11:50
  • 수정일
    2016/01/03 11:5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정대협, 오는 6일 수요시위 세계연대행동의 날로 선정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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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02  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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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2일 오후 4시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토요시위에서 "소녀상에 손을 대면 피 토하고 죽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한.일 정부가 속닥속닥 하더니 타결했다고 한다. 무엇을 타결했는가. 우리가 재단이 뭣이 필요하냐. 소녀상 손대면 그 자리에서 피 토하고 죽을 것이다."

지난달 28일 한국과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타결을 선언한 이후, 합의 무효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평화의 소녀상'(소녀상)을 철거할 경우, "피 토하고 죽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일본군'위안부' 한.일협정 폐기 대학생 대책위원회'는 2일 오후 4시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한.일 협의 무효와 폐기를 촉구하는 토요시위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는 "우리는 협상을 못 한다. 그러나 한.일 정부 간에 어떤 일을 했는지, 이 일이 시작되기 전에 상의해야 하지 않느냐"며 "이렇다 말 한마디 없이 속닥속닥하더니 타결했단다. 무엇을 갖고 타결했느냐. 자기들끼리 타결한 게 말이 되느냐"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일본 아베 총리가 마음에 우러날 정도로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 우리의 명예를 회복해야 해결되는 것"이라며 "우리 정부가 나쁘다고 생각한다. 우리 할머니를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것으로 타결하느냐"고 꼬집었다.

일본 정부의 10억 엔(약 97억 원) 출연으로 한국 정부가 재단을 설립하는 데 대해서는 "과거 박정희 대통령 때는 징용, 징병 끌려가서 피눈물 나는 몸값을 받아서 새마을사업을 하더니, 지금 와서 그 돈을 받아서 재단을 만든다? 재단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냐"고 반발했다.

소녀상 철거에 대해서는 "왜 소녀상을 들먹이느냐. 정부가 돈을 냈는가. 국민이 한 푼 두 푼 모아서 앞으로 후손들이 자랄 때, 이런 비극이 있었다는 표식으로 세웠다"며 "소녀상을 만약 철거한다면, 손을 대면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을 것이다. 손 못 댄다"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지금부터 시작이다. 굳세게 힘차게 끝까지 싸우자"라고 강조했다.

   
▲ 청소년들이 '굴욕적인 한일합의, 소녀상 이전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들고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번 한.일 협의와 관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긴급 논의를 통해, 오는 6일 열리는 수요시위를 세계연대 행동의 날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이번 협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흐름을 막고, 협의의 부당성을 알리겠다는 취지다. 현재 미국 워싱턴, 뉴욕, LA 글렌데일, 뉴저지, 샌프란시스코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동참을 알려왔고, 독일 베를린, 오스트리아 빈 등에서도 연대 행동이 열릴 예정이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피해자의 의사가 외면당한 채, 가해자의 인식과 가해자를 고려한 이번 협상은 무효다, 폐기하라고 할 것"이라며 "국제사회가 못다 한, 은폐하고 침묵한 범죄 처벌 문제를 지금에라도 올바르게 해결하도록, 책임을 이행하도록 국제사회를 추동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정대협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번 합의에 환영 입장을 밝힌 데 맞서, '위안부'관련해 보고서를 제출한 유엔 인권이사회 특별보고관들과 접촉해, 이번 합의의 문제점을 알릴 계획이다.

   
▲ 토요시위에 앞서 문화예술인들이 '위안부' 협상 무효 예술행동을 벌였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날 토요시위에 앞서 문화예술인들이 주축된 '위안부' 협상 무효 예술행동이 낮 1시부터 이어졌다.

예술행동에는 더맑음, 이유정, SV, 백정미, 장민준, 이씬, 김지영, 김숙인, 류성국 등 음악인, 미술인, 배우 등이 참가해 협의 무효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한편, 지난달 31일 주한일본대사관 기습시위를 벌이다 연행된 뒤 이날 오전 풀려난 대학생 30여 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은 남,북,해외의 민족과 함께 굴욕적 한일협상 폐기를 위해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한때, 이들은 토요시위에 앞서 무대설치를 가로막은 경찰과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이날 예술행동과 토요시위에는 5백여 명이 참가했다.

   
▲ 김지영 씨가 한.일 협의 무효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홍승희 씨가 '위안부' 피해자의 모습을 한반도 그림으로 형상화하고, 끌려갔을 때 나이와 현재까지의 나이를 숫자로 적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지난달 31일 주한일본대사관에서 기습시위를 벌인 뒤 연행됐다 2일 풀려난 대학생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토요시위에 앞서 무대를 설치하려는데 경찰이 막아서자 대학생들과 충돌이 일어났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경찰에 연행됐던 김샘 '평화나비 네트워크' 전국대표를 위로하는 김복동 할머니.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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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 맞는 2016년, 유혹을 이겨내길 바라며

소줏값도 오른다는데... 이젠 '쏘지' 않겠어요

[반가워! 2016 ③] 불혹 맞는 2016년, 유혹을 이겨내길 바라며
16.01.02 10:54l최종 업데이트 16.01.02 10:54l 글: 임동현(lovewi19) 편집: 김지현(diediedie)

2016 년 새해가 다가왔습니다. 각종 매체에서 새해를 맞아 '한국사회, 이것만은 바꾸자' 류의 기사를 생산하곤 합니다. <오마이뉴스>는 그 시선을 당신에게 맞추고자 합니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새해, '당신의 새해 바람'은 무엇인가요.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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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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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不惑).

2016 년 제 한국 나이입니다. 불혹은 '미혹되지 않는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라는 뜻이라고 하죠. 40대가 되면 인생의 여러 맛을 알게 되는 시기이고, 그렇기에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20대나 30대처럼 유혹에 넘어가거나 충동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지금의 40대에 '불혹'은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시점에서 이제 막 40대를 맞은 이들은 여전히 유혹에 넘어가며 살아갑니다. 가장 기본적인 사례라면 역시 담배와 술이죠. '금연·금주'를 외치지만 불혹이 돼도 여전히 담배와 술의 유혹에 굴복하는 '작심삼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곧 다가올 새해, 여러분들은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신가요? 금연, 금주, 가족의 행복, 승진 등 개인적인 일부터 '총선 승리' '경제 발전' '세월호 진상 규명' 등 국가적(?) 희망을 거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도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보곤 합니다. 그런데 이것저것 모아보니 이 한마디로 정리가 되더군요.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그렇습니다. 2016년 제 소원은 말 그대로 '불혹'을 실천하는 겁니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옵시고 미혹되지 않게 하옵소서. 아, 정말 그렇네요.

유혹을 이겨야 하는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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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엔 지갑 여는 일부터 줄여야겠어요.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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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단 지갑을 여는 일을 줄여야겠습니다. 제가 사실 기분파다 보니 기분이 좋으면 씀씀이가 커지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적자 인생'이 거듭됩니다. 특히 월말이 되면 '보릿고개'를 반드시 겪어야 했습니다. 쓸 돈은 써야겠지만, 낭비를 줄여야겠습니다.

낭 비를 줄이려면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 네, 술을 줄여야겠습니다.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올해 초 담뱃값 인상 소식에 대해선 무덤덤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술값이 인상된다는 소식을 접하자 기가 막혔습니다. 아. 왜 이 정부는 서민의 낙을 증세의 도구로 이용하는 걸까요?

줄여야겠습니다. 술 마시는 횟수도 줄이고, 술 먹고 기분 낸다고 여기저기 마구 '지르는' 습관도 고쳐야겠어요. 그러다 보면 건강은 저절로 따라 좋아지겠죠.

귀도 얇고 기분대로 생각하는 사람, 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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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하이트진로의 소줏값 인상에 이어 지방 주류업체들도 잇따라 소줏값 인상에 나섰다.사진은 지는 12월 20일 서울시내 한 대형 마트 주류코너에 다양한 소주가 진열돼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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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러나 이렇게 장한(!) 결심을 해도 그 결심을 흔들리게 하는 여러 유혹들을 물리치는 것이 핵심이겠지요.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마음이 맞는다고 생각하면 '한잔 합시다'라고 말하는 것도 저고, 호감이 있는 사람에게 좋은 걸 사준다며 앞뒤 생각하지 않고 지갑을 여는 사람도 접니다.

'더 좋은 자리 있어, 거기로 한 번 옮겨봐'라는 말을 들으면 귀가 팔랑거리는 사람도 저고, 집에 일찍 들어가야 함에도 누군가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오면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도 접니다. 온갖 유혹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생기고 그를 뿌리쳐야 하는 게 제 일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다른 목표는 세우지 않으려 합니다. 그저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를 외칠 뿐입니다. 불혹의 나이에 말 그대로 '불혹'을 실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을 다잡고 한 번 더 생각하고 결단하는 40대를 맞아야겠습니다. 같이 한 번 외쳐 주시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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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 토끼, 인민생활 향상과 남북관계 개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6/01/02 13:30
  • 수정일
    2016/01/02 13:3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해설> 김정은, 2016년 신년사에 무얼 담았나?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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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01  17: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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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1일 ‘2016년 신년사’를 통해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가 열리는 올해에 강성국가건설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자!”와 “내외반통일세력의 도전을 짓부시고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열어나가자!”는 구호를 내놓았다.

오는 5월 소집이 예고돼 있는 노동당 제7차 대회에 총력 집중해 강성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며, 이는 곧 ‘경제강국 건설’에 주력하겠다는 뜻이다. 또한 최근년의 신년사에 비해 통일분야에 많은 비중을 두고 ‘북남관계 개선’을 강조한 점도 주목된다.

김 1위원장은 자신의 애민정치를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의 정치’로 정식화하는가 하면, 청년들에게 ‘기적의 창조자, 청년영웅’이 되자고 고무하기도 했고, 특히 ‘자강력제일주의’를 주창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올해 신년사는 지난 4년간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노동당 제7차대회에서 총화해 ‘휘황한 설계도’를 제시하겠다는 자신감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강국 건설과 대외관계 개선이라는 서로 연관된 양대 숙제는 아직 충분한 해법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어려운 국제정세의 현실을 반영한 듯 신년사에서도 낙관적 전망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병진노선이나 핵 관련 언급이 없는 점도 눈에 띈다.

7차당대회 성패 여부는 ‘경제강국’과 ‘인민생활’

   
▲ 김정일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일 낮 12시(서울시간 12시 30분) <조선중앙TV>를 통해 2016년 신년사를 발표했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네 번째인 2016년 육성 신년사를 통해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가 열리는 올해에 강성국가건설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자!”는 구호를 제시했다.

먼저, 지난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돌 기념행사에 대해 “우리는 당의 두리에 천만군민이 철통같이 뭉친 일심단결의 위력과 주체조선의 양양한 전도를 만천하에 과시하였다”며 “10월의 경축광장에 펼쳐진 격동적인 화폭들은 핵폭탄을 터뜨리고 인공지구위성을 쏴올린것보다 더 큰 위력으로 누리를 진감하였”다고 평가했다.

인공위성 발사나 핵실험을 하지 않았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자체 평가로써, 이같은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올해 5월 7차당대회를 전후해서도 굳이 이같은 무력시위를 하지 않더라도 ‘강성대국 건설’을 과시할 수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김 1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 당이 혁명과 건설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긍지높이 총화하고 우리 혁명의 최후승리를 앞당겨나가기 위한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놓게 될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기간을 ‘총화’하고 이후 나아갈 ‘휘황한 설계도’를 제시하는 당대회가 될 것임을 예고한 것.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지난달 21일 북한연구학회 특별학술회의에서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 주목할 점은 지도부 선거를 통한 권력구도 개편과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를 통한 정책 제시라고 짚은 바 있다. 정책 제시는 통상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같은 장기 경제개발계획을 핵심으로 한다.

김 1위원장은 강성국가 건설의 구체적 방도로 “경제강국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여 나라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켜야 하겠다”고 제시해 경제발전이 당면 최대 현안임을 분명히 하고 “경제강국건설에서 전환의 돌파구를 열자면 전력, 석탄, 금속공업과 철도운수부문이 총진격의 앞장에서 힘차게 내달려야 한다”고 4대 선행부문을 강조했다.

이어 “우리 당은 인민생활문제를 천만가지 국사가운데서 제일국사로 내세우고있다”며 △농산, 축산, 수산부문 혁신, △경공업부문,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명제품, 명상품 생산, △건설부문, 중요생산시설들과 교육문화시설, 살림집들 건설을 제시했다.

결국 7차당대회의 성패는 ‘경제강국 건설’ 여부에 달려있고, 그 핵심은 4대 선행부문 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으로 요약된다.

   
▲ 지난해 11월 완공된 희천9호발전소 준공식 모습.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경제강국 건설을 위해 전력 등 4대 선행부문을 강조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 1위원장은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첫 공개연설을 통해 “강성국가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총적 목표”로 제시하고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밝힌 바 있고, 이같은 기조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김 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당조직들과 국가기관들은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의 정치를 구현하여 인민의 요구와 리익을 절대시하며 인민들의 정치적생명과 물질문화생활을 책임지고 끝까지 돌봐주어야 한다”면서 “당조직들은 민심을 틀어쥐고 광범한 대중을 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며 일군들속에서 일심단결을 좀먹고 파괴하는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행위를 반대하는 투쟁을 강도높게 벌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미시연구소 연구위원은 “인민생활 문제를 국사 가운데서 제일국사라고 언급하고 인민에 대한 강조가 더욱 두드러진 점”을 지적하고 “엘리트들이 다른 주머니를 찬다든가 나쁜 짓 할 생각을 말라는 말”이라고 해석했다.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행위’에 대한 사정이 강도높게 계속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같은 구상을 실현시킬 여건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선행부문만 보더라도 고질적인 전력난이나 낡은 철도 수송망 등은 외부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해결하는데 뚜렷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북한이 러시아와 전력과 철도분야 협력사업에 합의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중국이나 한국의 대규모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유의미한 진전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인민생활 부문에서는 가장 중요한 식량난은 해결의 가닥을 잡아나가고 있고, 축산, 수산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이번에 김 1위원장이 제시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명제품, 명상품 생산’까지는 아직 갈길이 먼 상황이다. 따라서 강성대국과 마찬가지로 ‘세계적 명제품, 명상품’도 이후의 목표로 계속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당창건 70돌과 올해 7차당대회를 계기로 대규모 건축물이 들어서는 등 가시적 성과들도 있지만, 결국 한정된 재원으로 어떻게 인민들이 체감하는 인민생활 향상을 달성할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일 것이다.

애민정치와 청년영웅, 그리고 자강력제일주의

   
▲ 김정일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의 정치'로 ‘김정은식 애민정치’를 정식화했다. 애민정치의 뒷면은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행위'와의 투쟁이다. 사진은 김정일 제1위원장이 지난해 1월 1일  새해 첫 행보로 평양육아원.애육원을 방문한 모습. [자료사진-통일뉴스]

북한 정치의 특징 중의 하나는 김일성 주석 시기부터 정치적 노선을 반영한 구호화, 개념화가 잘 돼 있다는 점이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 등의 구호는 물론 ‘4대 군사노선’,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 ‘우리민족제일주의’ 등의 개념화도 뛰어나다.

김 1위원장의 올해 신년사에도 현재 북한 정권이 지향하는 바들이 개념화된 형태로 제시돼 있어 눈여겨 볼만하다.

지난해 10월 10일 당창건 70돌 열병식 연설에서 김 1위원장은 무려 90여회나 ‘인민’을 언급, ‘인민제일주의’를 고창하면서 ‘인민중시, 군대중시, 청년중시’라는 3대 전략을 제시했고, 올해 신년사에서는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의 정치”를 구현하여야 한다며 ‘김정은식 애민정치’를 정식화했다.

또한 지난해를 평가하면서 “우리의 청년전위들이 당에 대한 충정과 영웅적투쟁으로 세상에 둘도 없는 청년강국의 위용을 떨친것”을 치켜세우고 “강성국가건설의 전투장마다에서 기적의 창조자, 청년영웅이 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들어 부쩍 강조한 청년중시를 ‘청년강국’과 ‘청년영웅’이라는 개념으로 제출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 신년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개념은 ‘자강력제일주의’로 평가된다. 김 1위원장은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에서 자강력제일주의를 높이 들고나가야 한다”면서 “사대와 외세의존은 망국의 길이며 자강의 길만이 우리 조국, 우리 민족의 존엄을 살리고 혁명과 건설의 활로를 열어나가는 길”이라고 단언하고 “우리는 자기의것에 대한 믿음과 애착, 자기의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강성국가건설대업과 인민의 아름다운 꿈과 리상을 반드시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원으로 이룩하여야 한다”고 명제화했다.

지난해 신년사에서는 “모든 공장, 기업소들이 수입병을 없애고 원료, 자재, 설비의 국산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자고 호소해 ‘수입병’을 적시했지만 올해는 이를 ‘자강력제일주의’로 보다 폭넓게 새로이 정식화한 것.

더구나 지난해 신년사에서는 언급된 경제개발구(특구) 사업은 올해 신년사에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그만큼 국제적 경제제재가 강화되고 대외적 여건이 나빠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북미관계와 북중관계의 개선, 그리고 남북관계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조건에서 대규모 해외자본 유치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북한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통일문제를 외부에 들고다니며 청탁하는 놀음”

   
▲ 지난해 10월 9일,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행사 참가차 방북한 류윈산 중국공산당 상무위원을 접견하고 있는 김정일 제1위원장. 북중관계 개선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지만 12월 모란봉악단이 중국 공연을 취소하고 귀국해 논란을 빚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올해 신년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역시 상대적으로 많은 양을 차지한 통일분야 언급이다. 김 1위원장은 “내외반통일세력의 도전을 짓부시고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열어나가자!”는 구호를 제기했다.

먼저 지난해가 광복 70돌이었지만 오히려 남북관계가 “교전직전의 위험천만한 사태까지”가게 된데 대해 “남조선당국은 북남대화와 관계개선의 흐름에 역행하여 우리의 ‘체제변화’와 일방적인 ‘제도통일’을 로골적으로 추구하면서 북남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격화시켰다”고 남측 정부를 비난했다.

김 1위원장은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북남관계와 조국통일문제를 민족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자주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면서“우리 민족을 분렬시킨것도 외세이며 우리 조국의 통일을 가로막고있는것도 다름아닌 미국과 그 추종세력”이라고 ‘외세 배격’을 강조했다.

지난 8월 군사적 긴장상태 속에 열린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8.25합의가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열린 지난 12월 차관급 당국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데는, 남북 당국회담 직전에 북한의 개인과 기관 10곳을 추가 제재대상으로 지정한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김 1위원장은 특히 “남조선당국자들은 외세와 야합하여 동족을 반대하는 모략소동에 매여달리면서 우리 민족내부문제, 통일문제를 외부에 들고다니며 청탁하는 놀음을 벌려대고있다”며 “이것은 외세에 민족의 운명을 내맡기고 민족의 리익을 팔아먹는 매국배족행위”라고 강력 비난했다.

한국 정부가 유엔과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 등 국제무대와 미국은 물론 중국에게까지 북한 인권문제나 핵문제, 나아가 통일문제에 대한 공조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에 대한 반응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통일문제를 중국과의 외교적 의제로까지 삼고나선 점을 꼬집는 것으로도 보인다.

냉랭했던 북중관계는 지난해 10월 당창건 70돌 기념행사에 류윈산 중국공산당 상무위원이 참석한 것을 계기로 개선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지만, 지난 12월 모란봉악단이 중국 공연 당일날 급거 귀국하는 등 아직도 삐걱이고 있는 실정이다.

김 1위원장은 “온 겨레는 반통일세력의 사대매국적인 외세와의 공조책동을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하여야 한다”면서 특히 “남조선당국은 민족내부문제를 외부에 들고다니며 ‘공조’를 구걸하는 수치스러운 행위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꼭집어 말했다.

8.25합의 정신 강조 "대화분위기 해치는 행위 말아야"

   
▲ 지난 8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남북 고위급 접촉이 판문점에서 열려 '8.25합의'가 도출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 1위원장은 “남조선당국이 진정으로 북남관계개선과 평화통일을 바란다면 부질없는 체제대결을 추구할것이 아니라 민족의 총의가 집대성되여있고 실천을 통해 그 정당성이 확증된 조국통일3대원칙과 6.15공동선언,10.4선언을 존중하고 성실히 리행해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남조선당국은 지난해 북남고위급긴급접촉의 합의정신을 소중히 여기고 그에 역행하거나 대화분위기를 해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북측 최고지도자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방향과 기준을 제시한 셈이다. 7.4공동성명이 표방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원칙과 6.15, 10.4공동선언의 존중과 이행의지를 보여달라는 것이며, 8.25합의를 해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북측은 남측 박근혜 정부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지 않고 이행의지가 박약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실제로 남측이 8.25합의에 따른 후속 당국회담을 요청했을 때도 “대북전단 살포, 북한인권법 제정 논의, 북한 도발설 확산 등과 관련해서 통일부 당국자들이 남북대결을 선동하는데 앞장서고 있다”면서 “통일부는 공동보도문의 이행에 역행하는 불미스런 행위를 하지 말고 책임적으로 행동해야한다”고 반박하고 즉각 응하지 않은 바 있다.

앞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장을 맡았던 강지영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은 지난해 11월 금강산 남북종교인모임에서 “반통일세력의 책동이 머리를 쳐들고 있으며 대결과 전쟁의 위험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면서 “정세관리를 잘해야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8.25합의는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내에서는 최근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양건 통전부장의 유지로 돼 더욱 강조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따라 당국회담이 당분간 어려운 상황에서 8.25합의 6항에 명기된 '다양한 분야에서의 민간교류 활성화'를 먼저 추진하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 1위원장은 “우리는 북남대화와 관계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것이며 진실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마주앉아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론의할것”이라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남북 당국간 대화에 연연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며 “과거 김일성 주석처럼 남한의 주요 인사들과 민간단체 등을 대상으로 통일전선전략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김 1위원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회담도 못할 리유가 없다”고 사실상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올해 신년사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아울러 지난해 신년사에서 언급한 ‘핵억제력’은 올해 신년사에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국제부문에 대해서는 간략한 원칙적 언급 외에는 없었다. 외부에서 보다는 5월 당대회에 집중하고 남북관계 개선에서 실마리를 찾겠다는 메시지로 읽히는 대목이다.

김 1위원장은 “미국과 남조선호전광들은 해마다 공화국을 반대하는 대규모의 핵전쟁연습을 련이어 벌려놓으면서 조선반도정세를 극도로 격화시키고 북남관계에 엄중한 장애를 조성하고있다”며 “미국과 남조선당국은 위험천만한 침략전쟁연습을 걷어치워야 하며 조선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키는 군사적도발을 중지하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아가 “침략자,도발자들이 조금이라도 우리를 건드린다면 추호도 용납하지 않고 무자비한 정의의 성전, 조국통일대전으로 단호히 대답해나설것”이라고 밝혔다. 여전히 팽팽한 군사적 대치라는 한반도의 현실이 주는 중압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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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충격이었던 사건 : 세월호

[부들부들 청년](1) 가장 충격이었던 사건 : 세월호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ㆍ진보·보수 할 것 없이 꼽아

청년들은 ‘세월호 참사’를 가장 충격이 컸던 사건으로 꼽았다. 성장만능주의에 스며든 각종 부정과 부패의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한국 사회를 보는 부정적·회의적 인식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 질문은 경향신문이 2015년 12월 진행한 ‘청년 미래인식 조사’에서 서울 1차 참가자(26명)를 제외한 77명에게 던져졌다. 주관식으로 ‘가장 충격이 컸던 사건’을 묻자 42.0%가 세월호 참사를 적었다. 진보 37.9%, 보수 40%, 중도 46.7%가 선택해 정치 성향에 따른 차이도 크지 않았다. ‘사회 인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에 대한 질문에서도 가장 많은 23.9%가 ‘세월호 참사’를 꼽았다. 이 질문에는 정치 성향별로 진보 34.5%, 중도 21.9%, 보수 0%로 답이 갈렸다. 대학생 ㄱ씨(24·경주)는 “비리·부정부패 등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가 집약돼 드러난 사건”이라며 “무능한 정부는 희생자들을 구조하지 못했고 오히려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몰아세웠다”고 말했다. “인재가 분명한데도 제대로 책임진 사람이 없다”는 답이 많고, “(유가족의 단식을 조롱한) 일베의 폭식 투쟁”도 충격의 잔상으로 강하게 남아 있었다.

세월호 다음으로 청년들의 11.3%는 사회 인식에 큰 영향을 준 사건으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선택했다.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20~30대가 공유하는 대표적 집단체험이었다. 다만 각인된 생각은 3색으로 꽤 벌어져 있었다. 진보 성향이라는 대학생 ㄴ씨(27·전주)는 “이명박 정부가 시민들의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명박산성’을 쌓았다”고 기억했다. 보수 성향인 직장인 ㄷ씨(31·서울)는 “원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했으나 광우병 촛불시위가 길어지며 순수성을 잃었다. 이때 정치적 성향이 형성됐다”고 했다. 중학생 때 광우병 집회에 참석했다는 중도 성향의 대학생 ㄹ씨(22·여·전주)는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하면 나아질 줄 알았지만 달라지는 게 없어서 많이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 외 사회 인식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청년들이 4명씩 선택한 사건에는 IMF 외환위기, 역사교과서 국정화, 민주화운동,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이 있었다.

‘선 호하는 미래가 실현되도록 다양한 의견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답은 ‘있다’ 57.1%, ‘없다’ 42.9%였다. ‘있다’는 청년들은 친구(65.9%)를 가장 많이 꼽고 교사·교수(43.2%), 사회 지인(40.9%) 순이었다. 상대적으로 가족(25%)·온라인 지인(15.9%)·종교인(4.5%)은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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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제1위원장 <신년사 전문>

김정은 제1위원장 <신년사 전문>
 
로동당 7차대회 휘황한 설계도 펼쳐질 것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6/01/01 [19:1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이정섭 기자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년사가 1일 정오 조선중앙텔레비젼 방송을 통해 발표 됐다. 탈북자가 운영하는 서평방송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년사를 송출했다.

 

본지에서는 서평방송 을 녹취하여 전문을 게개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 신년사 전문

 

친애하는 동지들!

 

우리는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과 조국력사에 빛나는 리정표를 아로새긴 승리자의 긍지와 자부심에 넘쳐 새해 2016년을 맞이합니다.

 

나는 전체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의 열화같은 충정의 마음을 담아 사회주의조선의 영상이시며 주체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가장 숭고한 경의와 새해인사를 삼가 드립니다.

 

나는 영원히 당과 주체의 한길을 걸어갈 억척의 신념을 안고 사회주의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고있는 전체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새해의 인사를 드리며 모든 가정들에 화목과 정이 넘쳐나고 사랑하는 우리 어린이들의 행복의 웃음소리가 더 높이 울려퍼지기를 축원합니다.

 

새해를 맞으며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위하여 투쟁하고있는 남녘의 겨레들과 해외동포들,자주와 정의,평화를 지향하는 세계 진보적인민들과 외국의 벗들에게 인사를 보냅니다.
2015년은 뜻깊은 사변들과 경이적인 성과들로 수놓아진 장엄한 투쟁의 해,사회주의조선의 존엄과 위용을 높이 떨친 승리와 영광의 해였습니다.

 

지난해에 우리는 조선로동당창건 일흔돐을 백두산대국의 자랑스럽고 의의깊은 혁명적경사로 빛내였습니다.

 

당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노도처럼 떨쳐나선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은 백두의 혁명정신과 과감한 군민협동작전으로 영웅적인 투쟁을 벌려 어머니당에 드리는 자랑찬 로력적선물들을 마련하였습니다.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와 청천강계단식발전소,과학기술전당과 미래과학자거리,장천남새전문협동농장을 비롯하여 당의 사상과 정책이 구현된 만년대계의 창조물들과 사회주의선경마을들이 수없이 일떠서 1년을 10년 맞잡이로 비약하며 전진하는 조국의 기상을 과시하였습니다.

 

우리의 로동계급과 과학자,기술자들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을 받들어 금속공업의 주체화에서 큰걸음을 내짚었으며 이르는 곳마다에 지식경제시대의 본보기공장,표준공장들을 일떠세우고 생산공정의 현대화,정보화를 적극 실현하여 전반적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투쟁에서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놓았습니다.

 

당의 사상관철전,당정책옹위전의 불길속에 하늘에서는 우리가 만든 비행기가 날고 땅속에서는 우리가 만든 지하전동차가 달리는 자랑찬 현실이 펼쳐졌으며 사회주의바다향기,과일향기가 넘쳐나 인민들에게 기쁨을 안겨주었습니다. 미더운 녀자축구선수들을 비롯한 우리의 체육인들은 국제경기들에서 승리하여 금메달로 조국의 영예를 떨치고 우리 군대와 인민들의 전투적사기를 더욱 북돋아주었습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성대하게 진행된 당창건 일흔돐 경축행사를 통하여 우리는 당의 두리에 천만군민이 철통같이 뭉친 일심단결의 위력과 주체조선의 양양한 전도를 만천하에 과시하였습니다.

 

10월의 경축광장에 펼쳐진 격동적인 화폭들은 핵폭탄을 터뜨리고 인공지구위성을 쏴올린것보다 더 큰 위력으로 누리를 진감하였으며 일심단결과 총대를 필승의 무기로 틀어쥐고 투쟁하는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힘찬 진군은 그 무엇으로써도 가로막을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습니다.

 

지난해에 우리 군대와 인민은 조국과 민족앞에 닥쳐온 전쟁의 위험을 막고 공화국의 존엄과 세계평화를 영예롭게 수호하였습니다.

 

적대세력의 엄중한 정치군사적도발책동으로 하여 무력충돌로 치닫던 일촉즉발의 위기를 평정하고 전쟁이라는 재앙의 난파도속에서 조국의 존엄과 안전을 지켜낸것은 군민대단결의 거대한 힘,백두산혁명강군의 무진막강한 위력이 안아온 빛나는 승리입니다.

 

지난해를 우리가 더욱 기쁜 마음으로 돌이켜보게 되는것은 주체혁명의 혈통,신념의 대를 굳건히 이어가는 우리의 청년전위들이 당에 대한 충정과 영웅적투쟁으로 세상에 둘도 없는 청년강국의 위용을 떨친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들과 당의 품속에서 교양육성된 우리 청년들은 당이 정해준 조선혁명의 침로따라 폭풍쳐 내달리며 선군시대의 청년돌격정신과 청년문화를 창조하였으며 만사람을 감동시키는 훌륭한 미풍들을 발휘하였습니다. 수백만 청년들이 위대한 수령님들의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당의 두리에 천겹만겹으로 뭉친 사상과 신념의 강자,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들로 억세게 자라난것은 우리의 더없는 긍지이고 자랑이며 커다란 승리입니다.

 

지난해의 모든 승리와 성과들은 백두의 넋과 기상을 안고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총공격전에 떨쳐나선 우리 인민들의 영웅적투쟁에 의하여 마련된 결실이며 그것은 조국과 혁명에 바친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의 고귀한 피와 땀의 결정체입니다.

 

창조로 들끓고 기적으로 충만된 지난 한해를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속에서 보내며 우리 당은 애국충정으로 심장을 불태우는 그들의 아름다운 정신세계와 견인불발의 투쟁모습을 가슴뜨겁게 목격하였으며 인민들과 병사들의 믿음에 찬 시선과 진정어린 목소리에서 더 큰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당의 현명한 령도가 있고 당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며 결사옹위하는 무적의 군대와 위대한 인민이 있기에 우리는 천만산악도 두렵지 않고 그 어떤 대업도 반드시 이룩할수 있다는것,이것이 지난해 투쟁의 자랑스러운 총화입니다.

 

나는 당에 대한 불타는 충정과 필승의 신념을 안고 조선로동당의 위업을 헌신적으로 받들어 지난해를 영웅적투쟁과 위훈으로 빛내인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인민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삼가 드립니다.

 

동지들!

올해는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가 열리는 뜻깊은 해입니다.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 당이 혁명과 건설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긍지높이 총화하고 우리 혁명의 최후승리를 앞당겨나가기 위한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놓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주체혁명위업수행에서 력사적인 분수령으로 될 당 제7차대회를 승리자의 대회,영광의 대회로 빛내여야 합니다.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가 열리는 올해에 강성국가건설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자!》,이것이 우리 당과 인민이 들고나가야 할 전투적구호입니다.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은 당에 대한 불타는 충정과 비상한 애국열의를 안고 총궐기하여 세기를 주름잡으며 최후승리를 향해 내달리는 조선의 기상과 본때를 힘있게 과시하여야 합니다.

 

경제강국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여 나라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경제강국건설에서 전환의 돌파구를 열자면 전력,석탄,금속공업과 철도운수부문이 총진격의 앞장에서 힘차게 내달려야 합니다.

 

전력문제를 해결하는데 전당적,전국가적힘을 넣어야 합니다. 지금 있는 발전소들을 정비보강하고 만부하로 돌려 전력생산을 최대한 늘이며 단천발전소건설을 비롯하여 발전능력을 새로 더 조성하기 위한 투쟁과 자연에네르기를 적극 리용하여 긴장한 전력문제를 풀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야 합니다. 모든 부문,모든 단위에서 생산된 전기를 절약하고 효과있게 쓰기 위한 된바람을 일으켜야 합니다.

 

석탄공업부문에서 생산적앙양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려 화력발전소들과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석탄을 충분히 대주어야 합니다.

 

금속공업부문에 대한 국가적인 보장대책을 강하게 세우고 김철과 황철을 비롯한 금속공장들에서 주체화,현대화의 성과를 확대하여 철강재생산을 늘여야 합니다. 철도운수부문에서 규률을 강화하고 수송조직과 지휘를 개선하여 렬차의 정상운행을 보장하며 철도의 현대화를 힘있게 다그쳐나가야 합니다.

 

우리 당은 인민생활문제를 천만가지 국사가운데서 제일국사로 내세우고있습니다.

농산,축산,수산부문에서 혁신을 일으켜 인민생활을 개선하는데서 전환을 가져와야 합니다. 농업부문에서 우량품종과 과학농법을 적극 받아들이고 농촌경리의 종합적기계화를 다그치며 영농공정별보장대책을 철저히 세워 알곡생산계획을 반드시 수행하여야 합니다. 당의 부름따라 일떠서고있는 축산과 수산부문에서 생산을 빨리 장성시키고 전국도처에 건설한 양어장과 남새온실,버섯생산기지들이 은을 내게 하여 인민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여야 합니다.

 

경공업부문에서 공장,기업소들의 현대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고 원료,자재보장대책을 세워 생산을 활기있게 내밀며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명제품,명상품들을 더 많이 내놓아야 합니다.

 

건설은 국력과 문명의 높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척도이며 우리 당의 인민적시책을 구현하기 위한 보람차고도 중요한 사업입니다. 건설부문에서 당의 건설방침과 대건설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총공격전을 벌려 중요생산시설들과 교육문화시설,살림집들을 시대의 본보기,표준이 되게 최상의 수준에서 최대의 속도로 일떠세우며 건설의 대번영기가 끊임없이 이어지게 하여야 합니다.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투쟁목표를 통이 크게 세우고 내부예비와 잠재력을 남김없이 동원하여 생산정상화의 동음을 높이 울리며 제품의 질제고와 설비,원료자재의 국산화를 중요한 정책적문제로 틀어쥐고 힘있게 내밀어야 합니다.

전당,전군,전민이 떨쳐나 산림복구전투를 본격적으로 벌려야 합니다.

 

도시와 농촌,일터와 마을들을 알뜰하게 꾸리며 나라의 자원을 보호하고 대기와 강하천,바다오염을 막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과학기술로 강성국가의 기초를 굳건히 다지고 과학기술의 기관차로 부강조국건설을 다그쳐나가려는 우리 당의 결심과 의지는 확고합니다. 과학연구부문에서는 주체공업,사회주의자립경제의 위력을 강화하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키는데서 나서는 과학기술적문제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하며 최첨단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심화시켜야 합니다. 공장,기업소,협동농장들에서 과학기술보급실을 잘 꾸리고 운영을 정상화하여 근로자들이 누구나 현대과학기술을 배우도록 하며 현실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과학기술의 힘으로 풀어나가는 사회적기풍을 확립하여야 합니다.

 

내각과 국가경제기관들에서 경제작전과 지휘를 결정적으로 개선하여야 합니다. 경제지도일군들은 당정책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근로자들의 무궁무진한 창조력과 현대과학기술에 의거하여 모든 부문을 빠른 속도로 발전시켜나가는 원칙에서 경제사업을 혁신적으로 작전하고 완강하게 밀고나가야 합니다. 조건이 불리하고 애로가 많을수록 경제발전의 중심고리를 정확히 찾고 거기에 력량을 집중하면서 경제전반을 활성화해나가야 합니다.

 

주체사상을 구현한 우리 식 경제관리방법을 전면적으로 확립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 조직전개하여 그 우월성과 생활력이 높이 발휘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 공화국의 정치군사적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하여야 하겠습니다.

사회주의정치사상진지를 억척같이 다져나가야 합니다.

 

사상을 혁명의 원동력으로 삼고 5대교양에 화력을 집중하여 전체 군인들과 인민들을 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을 뼈속깊이 새긴 사상의 강자들로 튼튼히 준비시키며 그들이 수령의 유훈관철전,당정책옹위전에서 불굴의 정신력을 총폭발시키도록 하여야 합니다. 당 제7차대회를 맞으며 온 나라가 앙양된 정치적분위기로 세차게 끓어번지도록 정치사업,화선식선전선동사업을 힘있게 벌려야 하겠습니다.

 

일심단결은 주체혁명의 천하지대본이며 필승의 무기입니다.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피끓는 심장을 당중앙위원회의 뜨락에 이어놓고 당과 사상도 숨결도 발걸음도 같이하며 당을 따라 영원히 한길을 가야 합니다. 당조직들과 국가기관들은 인민중시,인민존중,인민사랑의 정치를 구현하여 인민의 요구와 리익을 절대시하며 인민들의 정치적생명과 물질문화생활을 책임지고 끝까지 돌봐주어야 합니다.

 

당조직들은 민심을 틀어쥐고 광범한 대중을 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며 일군들속에서 일심단결을 좀먹고 파괴하는 세도와 관료주의,부정부패행위를 반대하는 투쟁을 강도높게 벌려야 합니다.

 

나라의 방위력을 철벽으로 다져나가야 합니다.

인민군대에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오중흡7련대칭호쟁취운동을 발기하신 스무돐이 되는 올해에 전군을 당의 유일적령군체계가 확고히 선 혁명적당군,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않는 견결한 당의 군대로 더욱 강화발전시키며 당이 제시한 4대강군화로선관철에서 전환을 일으켜나가야 합니다. 훈련의 실전화,과학화,현대화를 종자로 틀어쥐고 훈련열풍을 세차게 일으켜 모든 군인들을 김일성-김정일군사전략전술과 영웅적전투정신,완벽한 실전능력을 소유한 현대전의 능수,진짜배기싸움군들로 준비시켜야 합니다. 인민군대는 시대의 기수,돌격대가 되여 당이 부르는 강성국가건설의 주요전구들마다에서 돌파구를 열어제끼며 인민을 위한 좋은 일을 적극 찾아하여야 합니다.

 

조선인민내무군 장병들은 혁명의 수뇌부와 사회주의제도,인민의 생명재산을 노리는 계급적원쑤들과 적대분자들의 준동을 맹아단계에서 짓뭉개버리며 로농적위군과 붉은청년근위대 대원들은 전투정치훈련을 강화하고 향토방위를 위한 만단의 전투동원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군수공업부문에서 국방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국방공업의 주체화,현대화,과학화수준을 더욱 높이며 군자리혁명정신을 발휘하여 적들을 완전히 제압할수 있는 우리 식의 다양한 군사적타격수단들을 더 많이 개발생산하여야 합니다.

 

인민들이 최상의 문명을 최고의 수준에서 누리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새 세기 교육혁명의 불길높이 교육조건과 환경을 일신하고 교육의 질을 결정적으로 높여 지덕체를 겸비한 인재들을 키워내며 사회주의보건제도의 요구에 맞게 치료예방사업을 개선하여 인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적극 보호증진시켜야 합니다.

 

체육을 대중화,생활화하여 온 나라가 체육열기로 들끓게 하고 전문체육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국제경기들에서 영웅조선의 새로운 체육신화들을 창조해나가야 합니다. 문학예술부문이 들고일어나 천만군민의 심장을 혁명열,투쟁열로 불타게 하는 시대의 명작들을 더 많이 창작하여야 합니다.

 

도덕기강을 세우기 위한 된바람을 일으켜 온 사회에 건전하고 문명한 생활기풍이 차넘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모든 일군들과 근로자들이 당 제7차대회가 열리는 올해에 강성국가건설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합니다.

 

당의 부름이라면 한마음한뜻으로 떨쳐일어나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는 기적을 끊임없이 창조해나가는것은 우리 인민의 투쟁전통이며 기질입니다.

영웅적인 김일성-김정일로동계급은 주체혁명의 핵심부대,나라의 맏아들답게 당의 사상과 위업을 맨 앞장에서 받들며 경제강국건설에서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봉화를 추켜들고나가야 합니다. 농업근로자들은 사회주의수호전의 제1제대 제1선참호에 서있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분발하여 농업생산에서 전변을 일으켜야 합니다. 지식인들은 지식경제시대의 요구에 맞게 눈부신 과학기술성과로 강성국가건설을 떠밀어나가며 로동당시대의 문명개화기를 열어나가는데서 선각자가 되고 기수가 되여야 합니다.

 

우리 당은 오늘의 총진군에서 청년들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있습니다. 청년들은 청년강국의 주인으로 내세워준 당의 믿음을 깊이 간직하고 조국을 떠받드는 억센 기둥으로 더욱 튼튼히 준비하며 강성국가건설의 전투장마다에서 기적의 창조자,청년영웅이 되여야 합니다.

일군들은 현실속에 깊이 들어가 대중의 심장에 불을 달고 모든 사업을 혁명적으로,과학적으로 전개해나가며 인민을 위한 길에 한몸이 그대로 모래알이 되여 뿌려진대도 더 바랄것이 없다는 고결한 인생관을 지니고 인민을 위하여 멸사복무하는 인민의 참된 충복,혁명의 유능한 지휘성원이 되여야 합니다.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서로 돕고 이끌며 단합된 힘으로 전진하는 우리 사회의 본태와 대풍모를 적극 살려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표대는 주체의 사회주의강국이며 사회주의의 위력은 곧 집단주의위력입니다. 모든 부문,모든 단위에서 국가적리익,당과 혁명의 리익을 우선시하고 앞선 단위의 성과와 경험을 널리 일반화하며 집단주의적경쟁열풍속에 더 높이,더 빨리 비약하여야 합니다.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에서 자강력제일주의를 높이 들고나가야 합니다. 사대와 외세의존은 망국의 길이며 자강의 길만이 우리 조국,우리 민족의 존엄을 살리고 혁명과 건설의 활로를 열어나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자기의것에 대한 믿음과 애착,자기의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강성국가건설대업과 인민의 아름다운 꿈과 리상을 반드시 우리의 힘,우리의 기술,우리의 자원으로 이룩하여야 합니다.

 

조국통일은 가장 절박하고 사활적인 민족최대의 과업입니다.

조국해방 일흔돐이 되는 지난해에 우리는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갈것을 호소하고 그 실현을 위하여 적극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조국통일과 북남관계개선을 바라지 않는 반통일세력들은 전쟁책동에 광분하면서 교전직전의 위험천만한 사태까지 몰아와 내외의 커다란 우려를 자아냈습니다. 남조선당국은 북남대화와 관계개선의 흐름에 역행하여 우리의 《체제변화》와 일방적인 《제도통일》을 로골적으로 추구하면서 북남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격화시켰습니다.

 

우리는 올해에 《내외반통일세력의 도전을 짓부시고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열어나가자!》,이 구호를 높이 들고 조국통일운동을 더욱 힘차게 벌려나가야 합니다.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북남관계와 조국통일문제를 민족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자주적으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우리 민족을 분렬시킨것도 외세이며 우리 조국의 통일을 가로막고있는것도 다름아닌 미국과 그 추종세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조선당국자들은 외세와 야합하여 동족을 반대하는 모략소동에 매여달리면서 우리 민족내부문제,통일문제를 외부에 들고다니며 청탁하는 놀음을 벌려대고있습니다. 이것은 외세에 민족의 운명을 내맡기고 민족의 리익을 팔아먹는 매국배족행위입니다.

 

북남관계와 조국통일문제는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에 따라 민족의 자주적의사와 요구에 맞게 민족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그 누구도 우리 민족에게 통일을 가져다주지 않으며 또 가져다줄수도 없습니다.

 

온 겨레는 반통일세력의 사대매국적인 외세와의 공조책동을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하여야 합니다. 남조선당국은 민족내부문제를 외부에 들고다니며 《공조》를 구걸하는 수치스러운 행위를 그만두어야 합니다.

 

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을 막고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는것은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근본조건입니다.

 

오늘 미국의 침략적인 대아시아지배전략과 무분별한 반공화국전쟁책동으로 말미암아 조선반도는 세계최대의 열점지역,핵전쟁발원지로 되고있습니다. 미국과 남조선호전광들은 해마다 공화국을 반대하는 대규모의 핵전쟁연습을 련이어 벌려놓으면서 조선반도정세를 극도로 격화시키고 북남관계에 엄중한 장애를 조성하고있습니다. 지난해 8월사태는 북남사이의 사소한 우발적인 사건도 전쟁의 불씨로 되고 그것이 전면전으로 번져질수 있다는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미국과 남조선당국은 위험천만한 침략전쟁연습을 걷어치워야 하며 조선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키는 군사적도발을 중지하여야 합니다.

 

조선반도의 평화와 지역의 안정을 위해 인내성있게 노력하는것은 우리의 일관한 립장입니다. 그러나 침략자,도발자들이 조금이라도 우리를 건드린다면 추호도 용납하지 않고 무자비한 정의의 성전,조국통일대전으로 단호히 대답해나설것입니다.

 

조국통일3대원칙과 북남선언들을 비롯한 민족공동의 합의들을 귀중히 여기고 그에 토대하여 북남관계개선의 길을 열어나가야 합니다.

 

조국통일3대원칙과 북남선언들은 민족공동의 통일대강이며 온 겨레는 그것이 하루빨리 리행되여 통일의 전환적국면이 열리기를 바라고있습니다.

 

남조선당국이 진정으로 북남관계개선과 평화통일을 바란다면 부질없는 체제대결을 추구할것이 아니라 민족의 총의가 집대성되여있고 실천을 통해 그 정당성이 확증된 조국통일3대원칙과 6.15공동선언,10.4선언을 존중하고 성실히 리행해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남조선당국은 지난해 북남고위급긴급접촉의 합의정신을 소중히 여기고 그에 역행하거나 대화분위기를 해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북남대화와 관계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것이며 진실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마주앉아 민족문제,통일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론의할것입니다.

 

북과 남,해외의 전체 조선민족은 내외반통일세력의 도전과 방해책동을 물리치고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이 땅우에 존엄높고 부강번영하는 통일강국을 기어이 일떠세우고야말것입니다.

 

미국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 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적환경을 마련할데 대한 우리의 공명정대한 요구를 한사코 외면하고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에 계속 매여달리면서 정세를 긴장격화에로 몰아갔으며 추종세력들을 내세워 반공화국《인권》모략소동에 미쳐날뛰였습니다. 그러나 적들의 그 어떤 모략과 책동도 삶의 터전이고 행복의 보금자리인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굳건히 수호하고 빛내이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불굴의 의지를 꺾을수 없었습니다.

 

적대세력의 도전은 계속되고 정세는 의연히 긴장하지만 우리는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들고 자주,선군,사회주의의 한길을 따라 변함없이 나아갈것이며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기 위하여 책임적인 노력을 다할것입니다.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는 침략과 전쟁,지배와 예속을 반대하는 세계인민들과의 련대성을 더욱 강화하며 우리 나라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모든 나라들과의 친선협조관계를 확대발전시켜나갈것입니다.

 

주체의 사회주의위업은 필승불패이며 조선로동당의 령도따라 나아가는 우리의 앞길에는 승리와 영광만이 있을것입니다.

 

모두다 필승의 신심과 락관에 넘쳐 혁명의 최후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싸워나아갑시다.
희망찬 새해를 맞으며 온 나라 전체 인민들의 건강과 행복을 축원합니다.(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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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혼란, 박 대통령은 갈등 해소 진력해야"

[인터뷰] 탄허 스님 시봉했던 현오 스님 "불교 쇠락 추세, 재가자가 희망"

16.01.01 17:26l최종 업데이트 16.01.01 21:1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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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오 스님 현오 스님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하나 나쁠 것이 없다. 사람이 무엇은 좋고, 무엇은 싫다고 분별하고 호불호를 가리는 것"이라고 했다
ⓒ 불교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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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계속해서 쇠락할 수밖에 없다. 대중을 리드할 자산과 이념을 상실했다. 불멸 후 500년이 지난 대승불교가 일어났듯 새 대승운동이 필요하다. 기성 종단은 사망한 것과 다름없다. 희망은 재가자에 있다. 비구보다 덜 때 묻은 비구니가 희망이다." 

근현대 한국불교 최고 학승이었던 탄허 스님(탄허 스님(1913~1983)은 예언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탄허 스님에게 사사 받은 현오 스님(전 영월 보덕사 주지)은 29일 용인 정원사에서 병신년 새해와 한국불교를 이렇게 전망했다.

돈, 향락에 빠져 힘 잃은 출가자들

스님은 "기득권을 가진 스님들이 놓지 않으려 해서 불교가 암담해졌다. 종교인의 범죄율이 일반인보다 높다. 출가자가 돈과 향락에 빠지면서 대중을 이끌 힘을 잃었다. 출가자는 재가불자들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재가자가 한국불교의 희망인 까닭"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은 여성의 시대이다. 비구니스님들이 기운을 받는 시기이다. 비구스님들이 시내에 포교당을 차렸다가 많이 실패한 것도 한 본보기이다"고 했다.

스님은 지난 1977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희찬 스님 상좌로 출가해 탄허 스님에게 사교과정 사사 받았다. 1980년부터 제방 선원에서 수행했다. 1986년 대지포교원을 세워 포교에 힘썼다. 1990년 토굴에서 수행 후 1993년 미얀마 수도원을 찾아 위빠사나 수행을 했다. 1994년 영월 보덕사 주지를 지냈다. 1998년부터는 꿈과 최면술을 연구했다. <대지법요집>(1988년). <미얀마 72일>(1994년). <예언의 허와 실>(1999). <불교에서 본 마음과 최면 전생>(2001). <꿈! 미래의 열쇠>(2006) 등을 펴냈다.

큰 공부하려면 스님 되라는 말에 출가

스님은 탄허 스님을 3년 동안 시봉했다. "출가 후 바로 시봉을 시작했다. 수행비서처럼 잘 모시고 다녔을 뿐이다. 법회에 모시고 다니면서 불교를 배웠다"고 했다. 

탄허 스님은 주로 새벽에 공부를 가르쳤다. 새벽예불 후 상좌를 불러 전날 외운 경전을 점검했다. 현오 스님은 <초발심자경문> 등 내전을 비롯해 외전인 <대학> <맹자> <중용> 등을 탄허 스님에게서 직접 지도 받았다.

스님은 "발심출가가 아니고 나는 역학을 공부하고 싶어 출가했다"고 말했다.

대전에 역학의 대가이던 이동원 선생이 있었다. 스님은 출가 전 이 선생에게 역학을 배우러 다녔다. 탄허 스님과 이 선생의 왕래가 잦았다. 이 선생의 "큰 공부하려면 스님 따라가 출가하라"는 말에 출가를 결심했다. 

처신은 도교, 이상은 유교, 생노병사는 불교


스님은 "역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해결 못하는 인간사를 풀기 위함이었다. 죽음과 알 수 없는 미래가 바로 그것이다. 탄허 스님을 모셔보니 불교에 해답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겸양 지혜 등 살아가는 처신은 도교를 통해 배울 수 있다. 정치와 이상구현은 유교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생노병사 해결은 불교에 답이 있었다. 아는 것을 실행하는 방법이 참선이다.

스님은 탄허 스님에게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판자때기 이빨에서 털이 난다)' 화두를 받아 선방에 갔다. 방부를 몇 번 들이고 선방과 토굴을 번갈아가며 정진 했다. 스님은 탄허 스님에게 "앞니에 터럭 나는 것은 아무리 고민해 봐도 없다"고 말했다. 몽둥이가 날라왔다. 스님은 무주구천동에 토굴을 마련해 공부했다. 화두를 바꿨다. 

스님은 무주구천동 토굴에서 혼자 공부하던 2년을 이렇게 회고 했다. "처음에는 고독으로 몇 달을 지냈다. 이어 산돼지 등 산짐승의 위협을 받으며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더니 수마가 나를 괴롭혔다. 하루 종일 잠만 잔적도 많다."

스님은 경허 스님의 '여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 나귀의 일이 가니 말의 일이 오는 이치)' 화두를 타파하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늘이 찢어지는 느낌이 났다. 그러기 전에 내 손목부터 내 몸이 없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신도와는 불가근불가원 해야

공부에 어느 정도 성취를 맛 본 스님은 서울에 포교당을 차렸다. 대지포교당이다. 3년 쯤 지나 문을 닫았다. 

스님은 "원력이 웬만하지 않으면 포교할 수 없다. 정진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주구천동 토굴로 돌아갔다. 찾아오는 신도들 때문에 공부가 되지 않았다.

스님은 "포교원에서 만난 인연으로 신도들이 찾아왔다. 공부에 걸림이 됐다. 신도들이 다녀가면 정신이 사나워 공부가 안됐다. 신도들이 안 다녀가면 먹을 것이 없었다"고 했다.

스님은 홍천 토굴로 옮겼다. 4년 동안 간화선을 중심으로 다시 정진했다. 그러면서 신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스님은 "신도들은 마음공부보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지, 성공할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한다. 우연치 않게 꿈을 꾸게 됐다. 그 계기로 유식과 연결시켜 꿈을 연구했다. 불교는 마음을 강조한다. 꿈은 마음의 작용이다. 마음공부가 꿈 연구와 다르지 않은 이유"라고 했다.

스님은 미얀마 마하시 선원 등을 찾아 위빠사나 수행을 했다. 다녀오니 문도에서 공찰 주지를 맡겼다. 영월 보덕사였다.

주지? 수행자가 할 짓 못 돼 

스님은 보덕사 주지를 3년 지냈다. 방학 동안 비는 보덕사 부설 유치원을 이용해 위빠사나 수련원을 운영했다. 조계종 최초의 위빠사나 수행시설이었다. 이곳을 거친 대표적인 사람이 임승택 교수(경북대)와 붓다락키따 스님(보리수선원)이다. 

스님은 "주지 소임을 살다보니 수행자가 할 짓이 못됐다. 스스로 나를 돌이켜봐도 공부를 더 해야 할 사람이었다. 다시 토굴로 돌아와 수행과 함께 최면, 꿈, 사주, 관상 등을 공부했다"고 말했다. 스님은 공부한 것을 대중에게 회향코자 서울에 대지심리연구소를 설립했다.

스님은 "(꿈 사주 관상 등을) 출가자들이 공부해 대중을 더 이롭게 하기를 바랐다. 정작 스님들은 관심이 없었다. 연구소 운영을 3년 하다 보니 싫증이 났다. 다시 토굴로 들어갔다"고 했다.

스님은 "지금 시대를 보면 불교가 신도들을 계속 뺏기고 있다. 신도들은 출가자가 훌륭한 수행자가 되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출가자를 만나) 자신들의 삶이 윤택해지기를 더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스님들이 의사‧상담사 역할을 했다. 중생이 아프면 약왕보살처럼 치료를 했다. 상담을 통해 고민을 풀어주고 희망과 용기를 줬다. 이런 역할을 스님들이 할 수 없다보니 신도를 철학관에 뺏기고 의사, 교수들에게 뺏기고 말았다. 스님들이 기도해 주는 역할로 전락했다"고 했다.

귀신은 없다, 현혹되지 말아야

스님은 "출가자들이 중생의 고통을 해소시키고 희망을 주고 미신에게 탈피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나 천도재 등을 통해 귀신장사를 하고 있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없는 귀신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했다. 

스님은 "귀신은 없다. 모두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다. 내가 최면 꿈 등을 연구한 결과이다. 이는 확실하다. 귀신이 내 마음 밖에 있다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내는 것)'에서 어긋난다"고 했다. 

스님은 "불교에서는 부처님도 때려잡으라고 한다. 간화선의 특징은 번뇌가 일어났다면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제거는커녕 불교가 중생의 번뇌를 조장하고 있다. 49재 등 천도재도 수익창출의 수단이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출가자는 신도들을 살펴 그들의 운이 좋을 때는 희망을 주고 운이 나쁠 때는 인내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돕고자 나는 역학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스님을 만난 곳은 경기도 J사찰이다. 스님은 이곳에서 매주 4일씩 비구니스님들에게 역학을 지도하고 있다. 

"비구스님들은 종단에 줄서서 절 하나 맡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비구니스님들은 신도들과 유대를 이끌기 쉽다. 포교에 강점이 많다. 비구니스님들에게 내가 재능기부를 하는 이유"라고 했다.

번뇌가 곧 미신, 미신이 곧 번뇌

스님은 "바르게 받아들인다면 사주를 보는 것은 미신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종교든지 운명론이 다 있다. 표현만 다르다. 도교에서는 자연 그대로 살라는 것이 운명론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가 그렇다. 불교는 업보가 운명론이다"고 했다.

스님은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가 곧 미신이다. 운명론도 번뇌다. 세상에 번뇌 아닌 것이 어딨느냐. 내가 (역학 등을 통해) 중생을 구제한다는 것도 번뇌일 수 있다. 불교교리가 들어가지 않으면 모두 미신이 된다"고 했다.

이어 "간화선은 무엇이라고 하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뭐라고 해도 미신(번뇌)이 될 수 밖에 없다. 각자 최선을 다하고 살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매일 판단을 하고 산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판단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신에 사로잡힌 것이다"고 했다.

스님은 "일반인에게 '모든 게 번뇌망상이다. 다 부질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통하겠느냐. 한 본보기로 나쁜 꿈꿔서 불안한 사람을 감내하게끔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나쁜 것(운, 꿈 등)이라도 내가 어떤 생각을 가졌느냐가 중요하다. 원수라도 '~ 때문에'라고 생각해서는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스님은 죽고 싶은 사람에게 참고 살 수 있는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누구라도 괴로운 것은 똑같다

스님은 "고뇌는 수행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주를 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어떤 악운도 견뎌서 견딜 힘을 주는 것이다. 추워질 것을 알고 미리 옷을 두껍게 입는 것과 같다"고 했다.  

스님은 "운 좋은 사람은 30%에 불과하다. 운 나쁜 70% 사람들과 모두 어울려 산다. 분명한 것은 운이 좋던 나쁘던 괴로운 것은 똑같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고민이 있고 괴로움이 있다"고 했다. 

스님은 "공부하고 수행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 내가 살아봐도 무주구천동 토굴에서 공부에 매진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미얀마에서 수행할 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제일 괴로울 때가 언제인 줄 아느냐? 포교원 운영하고 보덕사 주지 소임 살 때였다. 끊임없이 신도들이 돈 내게 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너무 괴로웠다"고 했다.

스님은 "깨달음은 누구나 얻을 수 있다. 괴로움은 누구나 똑같다"면서 "수행자는 수행을 해야한다. 수행자가 수행하지 않고 좋은 절 주지를 살면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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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 정원사에서 현오 스님이 역학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매주 월 화 수 목 4일씩 스님은 정원사에서 강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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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좋은날'인데 분별할 뿐

스님은 "사람은 봄을 가장 좋아한다. 만물이 생동하기 때문이다. 여름은 여름대로 활동할 수 있어 좋다. 가을은 추수를 할 수 있어 좋다. 겨울은 내년을 계획할 수 있어 좋다. 사시사철 나쁜 때는 없다. 사람이 분별해서 구할 뿐"이라고 했다.

이어 "한국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상승세였다. 운이 좋았다. 운이 좋을 때는 어떤 사람이 대통령을 하더라도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민생고를 해결했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전환기를 만들어 큰 충돌을 막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군부독재를 정리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역감정을 해소해 전라민국이 생길 뻔 한 것을 막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좌익과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항일투사의 한을 풀었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없었다.)

스님은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후광을 업고 대통령에 당선돼 지금까지 그것을 기리는데 힘썼다면 남은 임기라도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스님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허물을 해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 안 되면 한국은 다시 혼란을 맞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스님은 "내년은 한국에게는 가을이다. 새 시기를 준비하는 정리 기간이다. 상당히 정치권이 혼란스럽다. 빅뱅 수준이다. 야당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당도 마찬가지다. 가을은 내년이 좋을 수 있는 준비기간이다. 결과는 좋겠지만 혼란스럽다"고 했다.

병신년 신수가 궁금해?

스님은 "새해를 맞아 병신년 신수가 궁금하거든 입춘일에 절을 찾아 부처님께 약속을 하자"고 했다. 동지는 태양이 잉태되는 날이고 입춘은 태양이 탄생하는 날이라고 설명했다.

스님은 "삼재팔란은 항상 따라다니는 것이다. 입춘에 절에 와서 새해에 이룰 한 가지를 서원하고 한해 동안 실천한다면 운명이 바뀐다"고 했다.

덧붙이는 글 | 불교닷컴 조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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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 나라에서 새해 건배하는 법을 모았다

18개 나라에서 새해 건배하는 법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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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새해다. 술 마시기에 이보다 좋은 핑계가 있을까?

연 말 연시에 여행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우리는 해외에서 지내다 온 친구들과 전세계 허핑턴 포스트 에디션들에게 새해 건배사와 전통을 물었다. 당신이 새해에 아래 나라 중 하나에 있다면, 그 나라 사람들처럼 축하하고 건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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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본에서는 새해가 되는 자정에 ‘아케마시테 오메데토 고자이마스!’(明あ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한다. 건배는 ‘간파이(かんぱい)!’다.

영국

허 핑턴 포스트 영국의 라이프스타일 에디터 브로건 드리스콜에 의하면 영국 사람들은 둥글게 둘러서서 왼손은 오른쪽, 오른손은 왼쪽으로 하고 손을 잡고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라고 말하고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을 부른다고 한다. 물론 ‘치어스(Cheers)!’도 한다.

캐나다/미국

캐나다와 미국의 전통은 상당히 비슷하다. 허핑턴 포스트 캐나다의 라이프스타일 에디터 레베카 자몬은 “10부터 카운트다운을 한 다음 ‘해피 뉴 이어!’를 외치고 가까이 있는 사람과 키스한다. 물론 상대방이 키스할 의사가 있을 경우에만.”

브라질

브라질에서는 “펠리즈 아노 노보”(Feliz Ano Novo, 해피 뉴 이어), ‘사우지’(Saúde, 건배)라고 한다.

브라질 편집장 지에고 이라에타에 의하면, 브라질인들은 해변에서 새해를 맞을 경우 바다로 가서 파도 속에서 7번 뛴다고 한다. 새해에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프랑스

허핑턴 포스트 편집장 폴 애커맨은 프랑스인들은 “본 아네(Bonne année)!”(해피 뉴 이어)라고 말하며 전통적인 ‘비쥬’(bise, 양 빰에 키스)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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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 국에서는 보통 새해를 두 번 축하한다. 서양식 설과 중국식 설이다. 우리의 중국 에디터 존 조우는 중국 설 전날에 가족들이 함께 식사(年夜饭, 니안 예 판)를 하는 게 전통이지만, 서양식 설 전날에는 밖으로 나가서 불꽃놀이나 쇼를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자정이 되면 사람들은 “신 니안 하오”(新年好, 좋은 신년)라고 말한다.

그리스

그리스어로 ‘해피 뉴 이어’는 “흐로냐 폴라(Χρόνια Πολλά)”다. 그리고 모두에게 키스(반드시 양쪽 뺨에 한다!)와 포옹을 한다.

허 핑턴 포스트 그리스의 라이프스타일 에디터 데스피나 트리볼리는 자정이 지나면 석류(행복과 번영의 상징)를 집 문에 내리쳐 으깨는 게 행운을 불러온다고 여겨진다고 말한다. 씨가 많이 튀고 더 지저분해질수록 다음 해는 더 운이 좋은 것이다.

데스피나는 ‘우리의 건강’이라는 뜻인 “야마 마스(γεια μας)”라는 건배사를 쓴다고 한다. 그들은 서로의 눈을 보거나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지 않는다. 잔만 부딪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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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 캐나다, 영국과 꽤 비슷하다. “해피 뉴 이어”라고 말한다. 오스트레일리아 편집장 토리 머과이어에 의하면 술을 지나치게 마신 사람은 “”너희들 모두 사랑해(I love you all).”라고 말한다고 한다.

콜롬비아

허 핑턴 포스트 라티노 보이시스의 에디터 카롤리나 모레노에 의하면 콜롬비아 사람들은 “펠리즈 아뇨 누에보(Feliz Año Nuevo)”라고 외치며 서로 포옹한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해의 12개월을 의미하는 포도 12알을 먹는다. 한 알을 먹을 때마다 새해 소원을 빈다(총 12개다). 짐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새해에 여행 운을 불러오기 위해서이다!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들여온다’는 의미로 큰 모형을 태우기도 한다.

“건배(Cheers)”는 “살루드(Salud)!”나 “친친(Chin Chin)”이다. (“친친”은 건배할 때 잔끼리 부딪히는 소리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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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이 탈리아에서는 “부온 안노!”(Buon anno, 좋은 해), “친친.”(Cin cin, 건배)라고 말한다. 이탈리아의 허핑턴 포스트 사회 에디터인 아델레 사르노는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들여온다’는 의미로 낡은 접시나 물건을 창밖으로 던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덴마크

덴마크어로 건배는 “스콜(skål)”이다. 건배 후에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다.

루마니아

루마니아에서는 보통 잔에 손을 대고 “노록(Noroc)!”이라고 말한다. “행운”이라는 뜻이다. “사나타테(Sănătate)”(당신의 건강을 위해)라고 하기도 한다.

“해피 뉴 이어”는 “운 안 노우 페리칫(Un An Nou Ferici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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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스 페인에서 건배할 때는 보통 “살루드”(salud, 건강)나 “친친(chin chin)”이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새해는 특별한 때라, 스페인인들은 잔을 부딪히며 “펠리즈 아뇨("Feliz Año)”, “펠리즈 아뇨 누에보”(Feliz Año Nuevo, 해피 뉴 이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술을 마시기 전에 보통 잔을 테이블에 놓는다.

허핑턴 포스트 스페인의 라이프스타일 에디터 마르가리타 라자로는 보통 물이나 플라스틱 잔으로 건배하면 재수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새해에 돈과 사랑을 끌어들이기 위해 금반지를 샴페인 잔에 넣거나 붉은 옷을 입기도 한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아리바, 아바호, 알 센트로 이 파덴트로.”(Arriba, abajo, al centro y pa’dentro, 올라갔다 내려갔다 가운데로 안으로)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정에 시계가 12번 울리면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포도 12알을 먹는다. 그리고 나서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두 번씩 키스한다.

체코

체 코에서 사람들은 맥주, 와인, 샷 등 무엇으로나 건배하며 “나 즈드라비(Na zdraví)!”(건강을 위해!)라고 말한다. 대부분은 건배할 때 눈을 맞춘다(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맥주를 마실 때는 잔을 움직여 처음에는 잔 윗부분, 그 다음엔 잔 아래를 부딪힌 다음 테이블에 얹었다가 마신다. 샷을 마시는 것은 보다 가까운 것으로 간주된다. 특히 처음으로 같이 술을 마실 때는 그렇다. 그런 경우는 “아호이!”(Ahoj, 안녕!)라고 말한다. 이것은 “나는 너를 내 좋은 친구로 간주한다” 정도의 의미다. 격식 갖춘 말을 쓰지 않고 더 편하게 말을 하기 시작하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누군가 자기 집에 초대해 집에서 만든 술을 한 샷 준다면 거부하지 말라. 그것은 상대의 우정을 거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해피 뉴 이어’는 “슈타슷니 노비 록(Šťastný nový rok)!”이다.

독일

독 일 편집장 세바스티안 마테스는 독일인들은 10부터 카운트다운 한 다음 “프로헤스 노이에스 야르”(Frohes neues Jahr, 해피 뉴 이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모두와 포옹을 나누고, 뜨거운 납을 찬 물에 넣어 그 모양에 따라 다음 해의 운을 점친다고도 한다.
건배할 때는 “프로스트!”(Prost, 건배!)라고 하거나, 더 격식을 차릴 때는 “줌 볼!”(Zum Wohl, 건강을 위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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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허핑턴 포스트 인도 라이프스타일 에디터 아쉬미타 나야르에 의하면 인도에서는 자정에 10부터 카운트다운을 하고(‘파이널 카운트다운’을 배경 음악으로 트는 곳도 있다) 키스와 포옹을 나눈다고 한다.

힌두어로 해피 뉴 이어는 “나야 사알 무바락(Naya Saal Mubarak”이지만, 영어로 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레바논

우리의 레바논 친구 라야 무살람은 자정이 되면 젊은이들은 친구와 친척들을 다 전화하고, 새해 인사를 먼저 건네는 사람이 상대에게서 돈을 받는다고 한다.

아랍어로 자정의 건배사는 “사헤탁(فى صحتك)”이다. “당신의 건강을 위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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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허핑턴포스트US How To Toast The New Year In 19 Different Countries
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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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차도에서 LA까지 ‘416 송구영신 행사’…“2016년에도 함께 합니다

 

서울 광화문, 안산 분향소, 진도 동거차도와 팽목항에 모인 시민들과 함께 한 해외동포들

뉴스프로 (TheNewsPro)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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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01  09:20:22
수정 2016.01.01  09:4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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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625일째이자 2015년이 저무는 12월 31일 자정(한국시각), ‘416가족 국내외 동시 2015송구영신 행사’가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안산의 합동분향소에서, 진도의 동거차도와 팽목항 분향소에서, 그리고 미국, 캐나다, 독일 등 해외에서 동시 진행됐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을 꾸준히 해 오고 있는 각 지역의 시민들과 세월호 가족들이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그동안의 활동 기억들과 새로운 해의 약속과 다짐을 말하는 시간이었으며, 이를 팩트TV가 생방송으로 전했다.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모인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 등 수백여명은 2015년 세월호 이슈 영상보기를 시작으로 행사를 연 후, 세월호 가족 및 4.16연대의 송년인사, 416합창단 등 문화공연, 새해맞이 퍼포먼스, 동거차도, 팽목항, 안산, 해외 동시 송구영신 카운트다운과 함께 2016년을 맞이했다.

   
 


해외동포들의 인사 순서에서는 미국의 인디애나폴리스, 로스앤젤레스(LA), 필라델피아, 애틀랜타, 캐나다 토론토, 독일 뮌헨의 동포들이 그동안의 세월호 활동을 요약하고, 송구영신의 메시지를 전했다. 또 행사 직후 이들 해외동포들은 새해 인사 사진이나 동영상을 모은 “우리 다함께 2016년 화이팅”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416global/?notif_t=page_fan )를 새해 선물로 전달했다.

   
 


로스앤젤레스의 린다리 씨는 세월호 참사 후의 미국 37개 도시를 비롯하여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있었던 동시 집회를 비롯, <뉴욕타임스> 등 해외언론 제보 및 광고활동, 영상 및 책자 번역활동 등 해외동포들이 세월호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해온 일들을 소개한 후 “2015년을 견디느라 모두 고생하셨다”며, “2016년에는 절망에서 벗어나 희망을 꿈꿀 수 있도록 힘을 모아나가자”고 말했다.

인디애나폴리스와 시카고 세사모에서 활동하는 린다모 씨와 정혜윤 씨는 “청문회를 통해 정부가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는 것과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을 확인했다”며 “ 온전한 인양과 실종자들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때까지 함께 하겠다. 1월 1일에도 세월호 피케팅을 한다”고 밝혔다.

캐나다의 켈리리 씨는 “참사 이후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처음처럼 해외에서도 함께 합니다”라고 전했고, 미국 필라델피아의 권오달 씨와 독일 뮌헨의 클레어 함 씨는 “저희가 잊지 않고 함께 함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약속과 다짐을 전했다.

끝으로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운영위원장은 “ 고맙습니다. 함께해주신 많은 분들 평생 잊지 않겠다.”고 답했다.

   
 


또, 송구영신 행사에 참여한 이들은 행사 이후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SNS상에 다음과 같은 후기를 남기며 소감을 전했다.

“한국에서는 이미 많이들 (세월호를) 잊고 있는데 이렇게 해외에서 계속 잊지 않고 함께 해 주셔서 놀랍고 고맙다는 말씀에 울컥..ㅠㅠ.. 우리는 세월호 유가족”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족” 이라는 말씀도.. 많은 것을 하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함께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린다리)”

“오늘을 위해 며칠간 노력해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김준영)”

“오늘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해외에서 애쓰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힘이 납니다^^! 동거차도와 팽목항 분들도 추운데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김혜진)”

“안산입니다. 모두 애쓰셨습니다. 세월호 보이는 연대 보이지 않는 연대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기억과 약속의 실천 그리고 다짐 꼭 지켜내겠습니다 (이효립)”

한편, 동거차도 세월호 인양 가족감시단 거점에서 감시활동을 해온 가족들과 시민들은 416가족 세월호 인양기원 동거차도 새해맞이 일출행사를 1월 1일 오전 6시부터 가질 예정이다.

안산과 팽목항 분향소에서도 오후 11시부터 자정까지 다원중계방송에 참여했고, 팽목항 등대 416가족 새해맞이 행사 및 오봉산 해맞이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 <사진제공=416연대>


한국 동거차도에서 일출행사를 준비 중에 있는 4.16연대 배서영 사무처장은 “해넘이 송구영신 해돋이..
여기 동거차도의 날씨가 정말 희한합니다. 어제 그리고 지금 그렇게 추웠던 날씨가 잦아들고 바람도 거의 불지가 않았습니다.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들이 주는 선물인가 하십니다. 이번 동거차도행에는 유가족분들, 희생교사 아버님, 생존학생, 생존화물기사님, 민간잠수사님이 함께하고 4.16연대를 비롯 시민분들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라고 전했다. 

※ 이 기사는 외신번역전문매체 뉴스프로 (www.thenewspro.org)에도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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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의 새해 맞이 “모든 아이들 찾는 게 소망이죠”

[현장] 참사 후 두 번째 새해 맞은 세월호 유가족들 “팽목항, 자주 오기에 너무 아픈 곳”
 
입력 : 2016-01-01  02:12:58   노출 : 2016.01.01  02:12:58
손가영 기자 | y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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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되고 인양 잘 되고, 올라오는 아이들 다 추모시설로 모으는 게 우리 내년의 소망이죠.” 단원고 2학년 8반 고 장준혁군의 아버지 장훈씨는 2015년 마지막 날을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 14명과 함께 팽목항 분향소에서 보냈다. 장씨는 “팽목항은 자주 오기에 아픈 곳, 기억하기 싫은 곳”이라 말하며 말을 삼켰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625일째인 2015년 12월31일 밤 ‘기억과 약속, 그리고 다짐. 416가족 국내외 동시 2015 송구영신 행사’가 지역 곳곳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 100여 명은 각각 동거차도, 팽목항, 광화문, 안산분향소 등으로 흩어져 새해맞이를 준비했다.

담요, 모자, 목도리 등으로 추위에 무장한 유가족과 시민 60여 명은 행사 내내 사회자 옆에 설치된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날 행사는 국내외 10여 곳의 다원중계로 이루어졌다. 국내 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캐나다 등에서 세월호에 연대하는 시민들도 화면에 등장했다.

   
▲ 팽목항 분향소에서 열린 '416 가족 국내외 동시 2015 송구영신 행사' 풍경. 행사 참여자들이 다원중계가 상영되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문화제는 팽목항 분향소 앞마당에서 열렸다. 트럭 두 대와 중형차 한 대의 헤드라이트가 가로등 역할을 했다. 사회를 맡은 김희옥 416연대 간사는 “한해를 정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가족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뚜벅뚜벅 팽목항에 온 6월14일”이라 말하며 문화제를 열었다.

광화문광장에서 한창 송구영신 행사가 열릴 동안 팽목항문향소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문화제가 열렸다. 진도국악고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고재성(55)씨의 ‘사철가’ 공연 덕분에 팽목항 분위기는 시작부터 달아올랐다. 고씨는 북장단에 맞춰 곡조를 뽑으며 “사람답게 놀아봅시다”라 외쳤고 시민들은 “좋다” “얼쑤” 등으로 추임새를 넣었다.

   
▲ 진도국악고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고재성씨가 문화제 시작에 맞춰 '사철가' 곡조를 부르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평화기행’을 하고 있다는 두 청년, 김원중씨와 양수환씨도 이날 팽목항을 찾았다. 김씨와 양씨는 대만, 일본의 오키나와, 요나구니, 제주 강정마을 및 4·3사건 현장 등을 지난 2개월 동안 자전거로 일주했다. 인도네시아의 한 이슬람공동체에서 평화교육 활동을 해온 김씨는 “아픔이 많이 있는 곳을 직접 들러 어떤 아픔인지 돌아보고 고민하고자 기행을 시작했다”며 “앞으로 탈핵 관련 현장인 밀양, 청도, 영덕을 들린 후 서울까지 갈 것”이라 말했다.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양씨는 “나의 무지함과 무관심함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여행에 함께 했다”고 말했다.

유가족을 응원하는 시민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의 박미자씨는 “팽목항에 별이 참 많더라. 아이들이 별이 돼서 어머니들 지켜보고 있을 테니 여린 마음 가지지 마시고 끈질기게 이겨내자”고 말했다. 박씨의 가족 5명은 이날 다같이 팽목항을 방문했다.

   
▲ 팽목항 분향소 앞에 모인 시민들이 2016년 1월1일이 되기 몇 초 전 카운트다운 소리에 핸드폰 불을 켜 호응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2016년 1월1일로 넘어가기 1분 전, 팽목항에 모인 시민들은 모두 텔레비전에 집중했다. 광화문광장에서는 시계에 맞춰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고 있었다. 팽목항의 시민들은 저마다 핸드폰 불을 켜서 호응했다. “팽목항 춥지 않냐”라는 광화문광장 행사의 사회자의 말에 “뒤에 분향소가 있어 따뜻하고 또 따뜻하다”고 답했다. 이들은 카운트다운이 지나자 옆 사람과 서로 포옹을 하며 새해인사를 했다.

   
▲ 2015년 12월31일 밤 전남 진도 팽목항 분향소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단원과 2학년 7반 고 이준우군의 아버지 이수하씨는 텔레비전을 통해 상영된 해외 각지의 응원 목소리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씨는 “팽목항은 굉장히 기억하기 싫은 곳이면서도 가족에겐 꼭 와야 될 성지 같은 곳이어서 오기가 쉽지 않다”면서 “가족들도 조금씩 지치고 있는 중에 해외 분들의 활동이 더 감사하다”고 말했다.

자정을 20분쯤 넘긴 후에야 행사는 끝이 났다. 유가족들은 분향소 옆 방파제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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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합의, 국제법상 조약이면 대통령 탄핵 사유"

 

[인터뷰] 송기호 변호사 "위안부 할머니들, 합의 뒤집을 권한 있어"
김윤나영 기자 2015.12.31 07:21:52

 
"한일 간 위안부 합의가 조약이라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되고, 법적 구속력이 없는 단순한 '정치적 언약'이라면 외교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국제통상위원장인 송기호 변호사는 30일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가 국제법상 효력이 있는 조약이라면 국회 동의를 거치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은 법을 위반한 셈이 된다. 반대로 조약이 아니라면, 일본은 위로금 10억 엔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소녀상 철거' 같은 징표를 요구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송 변호사는 "위안부 할머니는 국제 인권법이 보장하는 권리의 청구권자로서 이 협상을 뒤집을 수 있다.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합의는 국가가 체결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이게 또 하나의 외교 쟁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합의에 대해 송 변호사는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극단적으로 포기했다"고 평가하면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계약 내용은 변호사 생활 15년을 하면서 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야말로 '굴욕 외교'라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게다가 이번 합의는 독도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협상력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국제 인권법이 규정한 반인권적인 범죄 행위에 대해서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는데, 그보다 상대적으로 덜 심각한 독도 문제에 대해 일본의 '식민 지배 피해'를 얘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민변은 이날 외교부에 한일 양국이 체결한 '위안부 합의'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위안부 합의가 국제법상 '조약'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한일 양국이 교환한 문서를 공개하라는 것이다. 다음은 송 변호사와 진행한 인터뷰 전문이다.
 

▲ 송기호 변호사.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이번 합의가 '국제법상 조약'인지, '정치적 언약'인지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나?

송기호 : 조약이라면 국가적인 의무가 발생하고, 단순한 정치적 언약이라면 발표문을 따를 법적인 의무는 없다. 또 조약이면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고 조약의 체결과 공포 절차를 따라야 한다. 즉, 국회 동의와 법제처의 심사, 국무회의 심의, 법률상 공포 절차를 이행해야 한다. 단순한 정치적 언약이라면 그렇지 않다.

만약 한일 정부가 이번 합의를 조약 형식이라고 주장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심각한 헌법과 법률 위반 행위가 생긴다. 이제라도 국회의 동의를 받아서 조약으로서 유효한 '비준'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탄핵감이다.

반대로 한국 정부가 이번 합의를 정치적인 언약이라고 주장한다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한다는 내용과 모순된다. '최종적'이라는 것은 이 합의 외에 추가적인 다른 구제를 포기한다는 것이고, '불가역적'이라는 것은 이 합의를 취소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는 위안부 할머니가 가진 손해배상 청구권, 우리 정부가 가진 국제 인권법상 조치를 요구할 권리들을 다 포기한다는 것이다. 이런 중요한 주권 제약에 관한 것이라면 우리 헌법상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 조약이어야 한다.

프레시안 :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합의 형식으로 '공동 선언문'이나 '성명'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송기호 : 단순한 정치적 언약이라면 발표문 자체가 법적 효력이 없다. 다만, 새로운 외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쉽게 말해 양국이 합의를 이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적 언약으로 담기에는 대단히 극단적인 형태의 권리 포기이기 때문이다.

이 합의가 '정치적 언약'에 불과하다면, 일본은 뭘 믿고 10억 엔을 내놓겠나? 당장 내년 예산으로 (위안부 위로금) 10억 엔을 의결해야 하는 일본 국회로서는, 이 문제가 영원히 해결된다는 담보를 요구할 것이다. 10억 엔을 내는 전제로 소녀상 이전을 요구할 수 있다. (☞관련 기사 : 일본, 소녀상 철거해야 10억 엔 준다?

우리 정부 처지에서 보면, 일본이 "사죄와 반성"에 반하는 행위를 하면 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만약에 아베 총리나 일본 각료가 이를 부인하는 발언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 어떻게 되나? 일본은 국제법적 의무를 져야 하나? 이것도 또 다른 분쟁이 될 것이다.

결국 양국 사이에 극단적인 혼미 상태가 생길 것이다. 서로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일본은 도덕적인 죄의식을 떨쳐내고 더 뻔뻔하게 나올 수 있다. 오히려 자기들이 한국을 신의 없는 국가라고 얘기하며 공세를 펼 것이다. (☞관련 기사 : 아베, "한국, 약속 어기면 국제사회에서 끝난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8일 위안부 문제 관련 한일 협상이 타결된 직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을 청와대로 불러 접견하고 있다. ⓒ청와대


"위안부 문제 없는 독도 문제, 식민 지배 피해 말할 수 있겠나?"

프레시안 :
이번 합의로 일본 식민 지배에 대한 한국의 협상력이 떨어질 것으로 보나? 

송기호 : 한국의 과거사 문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위안부 문제, 둘째, 독도 문제, 셋째, 강제 노역 배상 문제다. 강제 노역 배상 문제는 법원에서 액수는 적었지만, 임금을 받는 등 약간의 진척이 있었다.

남은 것은 위안부와 독도 문제다. 한국 정부는 이 두 문제를 일본이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제국주의적이고 비인도적인 행동을 했다는 틀로 묶어야 한다. 그런데 위안부 문제를 극단적으로 포기했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계약 내용은 변호사 생활 15년을 하면서 본 적이 없다.

이제 독도 문제만 달랑 남았다. 두 문제 중에 위안부 문제가 없어지면, 독도 문제는 단순한 국가 간 영토 분쟁으로 격하될 가능성이 있다. 위안부 문제는 유엔 인권위원회가 '성 노예'라고 인정한, 가장 본질적이고 양도 불가능한 핵심적인 가치에 대한 문제다. 한국 정부가 국제 인권법이 규정한 반인권적인 범죄 행위에 대해 이런 식으로 처리했는데, 독도 문제는 국제 범죄도 아니다. 그런 독도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일본의 '식민 지배 피해'를 얘기할 수 있겠나? 과거사 문제로 접근할 수 있겠나? 이는 우리 정부의 독도 문제에 대한 협상력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 합의 뒤집을 권한 있다"

프레시안 : 이번 합의가 국제법상 조약이 아니라면,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인' 해결이라는 문구가 있어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이를 뒤집을 수 있나?

송기호 : 그렇다. 할머니들에게는 뒤집을 권한이 있다.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국가가 약속으로 체결할 대상이 아니다. 설사 국가가 다른 나라와 조약 형식으로 체결했더라도 하더라도, 할머니들이 가진 본질적인 인권을 소멸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할머니들이 청구권을 가진다는 점은 양국 간에 또 하나의 쟁점이 될 것이다.

프레시안 : 우리 정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송기호 : 일단 정직해야 한다. 합의문이 있다면 공개하고, 교환한 서한이나 각서도 공개해야 한다. 합의의 객관적인 실체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만약 이게 조약이라면 법을 위반한 정부에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부가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뉘우칠 수 있다면, (그런 행동을 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지만 파기해야 한다.

만약 이 합의가 '정치 언약' 체결이라면 말 그대로 혼미한 상태가 될 것이다.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합의에 굉장히 극단적인 형태 내용을 정치 언약으로 담았기 때문이다. 결국 앞으로 한일 관계는 더 악화할 것이다. 오히려 체결하지 않느니만 못한, 더 나쁜, 극단적인 불신이 발생할 것이고, 그러면 그런대로 정부는 정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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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팀에서 노동 분야를 담당하며 전자산업 직업병 문제 등을 다뤘다. 이후 환자 인권, 의료 영리화 등 보건의료 분야 기사를 주로 쓰다가 2015년 5월부터 정치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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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학술본부 “2016, 남북 공동학술 대회 개최” 공유

 
 
남북측 위원회 2016년 새해 인사에서 밝혀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6/01/01 [07:5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6.15학술본부 남북측 위원회는 2016년 차단 되었던 교류이ㅡ 문을 열어 학술대회를 공동으로 개최한다는데 공유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6.15공동선언실천 남.북측 위원회가 서신을 통해 새해인사를 나누면서 2016년 남북공동학술학술회의가 열리길 바란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 같은 사실은 6.2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가 북측위원회에 보내는 편지를 본사에 보내 와 알려지게 됐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가 북측 위원회에 보내는 편지 전문을 게재한다.

새해인사를 드립니다.

 

귀 단체가 보내주신 새해 인사 편지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희망에 찬 2016년을 맞이하여 귀 단체와 성원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우리단체는 귀 단체와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한 사업을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을 희망하오며 2016년에는 그러한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새해에는 공동학술대회가 성사되기를 열망합니다.

 

공동학술대회를 통하여 통일을 위한 노둣돌이 되어 우리 민족사에 길이 기억되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2016년 새해를 맞이하여 다시 한 번 귀 단체와 성원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학술본부
                              2016년 1월 1일

                                 서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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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불평등에 대하여

[사설]불평등에 대하여

오늘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망과 설렘으로 새해를 맞을까. 이 사회를 이끄는 정계, 종교계, 재계, 문화계 각 부문 지도자들은 신년사를 통해 행복한 세상이 열리기를 기원한다. 보통 시민들도 오늘만은 힘들고 지친 삶에서 벗어나는 새해를 꿈꾸고는 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들의 새해 소망은 배신당했다. 2015년 새해 첫날의 꿈이 바로 어제 12월31일 깨졌음을 확인했듯이 2016년 12월31일도 그런 날이 되리라는 불안한 예감을 감출 수 없다.

2016년은 고립된 시간도, 미지의 시간도 아니다. 올해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는 지난해, 그리고 지난 3년에 의해서 좌우될 것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 이래 8년간 반복된 것을 다시 목격하는 해가 될 수도 있다. 더 이상 새해 첫날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러기에는 우리의 희망이 너무 닳아 버렸다. 사회의 균형을 무너뜨린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시대도 오늘의 한국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더 멀리는, 민주화 이후 28년간 이 사회를 규율했던 질서도 2016년에 영향을 미친다.

새해에 계속될 고통들은 이렇게 켜켜이 쌓인 과거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새해란 저 깊은 지층 위에 얹혀진 작은 돌멩이와 같은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여러 번의 정권 교체에도 하나의 경로를 따라갔다. 돌멩이 하나 치운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놀랄 것 없다. 새해에 목격될 고통들은 1년 전, 3년 전, 8년 전, 38년 전부터 이중삼중으로 겹쳐지면서 단단히 굳어진 하나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그 모순이란 이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져버린 바로 그것, 불평등이다.

불평등은 어떤 지표로도 가릴 수 없는 한국의 실상이다. 최상위층 1%의 부는 전체 부의 18%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30대 그룹 상장사 임원 연봉은 직원 평균 연봉의 10.8배이다.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미국 다음으로 높은 25.1%이다. 남녀 임금차, 노인 빈곤율은 OECD 34개국 중 1위이다.

대로에서 남이 버린 박스를 가득 실은 채 위태롭게 리어카를 끌고 가는 노인을 본 일이 있는가. 그런 이들이 왜 점점 더 자주 눈에 띌까 하고 궁금해한 적이 있는가. 왜 내 주변의 젊은이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있는가. 그게 내 주변뿐 아니라 모든 이들의 주변 젊은이들이 대개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보고 듣는 일상 경험들이 사실은 지표보다 더 생생하게 불평등한 세상을 증언해 준다.

왜 거리에 가련한 청춘들이 저렇게 넘쳐나는지 더 이상 묻지 말자. 우리는 이미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는 청년 문제가 아니다. 노인이 가난에 허덕인다고 노인 문제가 아닌 것과 같다. 사회로 처음 진입하는 좁은 문 앞에 저들끼리 부대끼는 청춘들의 아우성이 노인 때문이 아니듯, 노인의 절반이 가난한 것 역시 청년 때문이 아니다. 부자는 부자를 낳고, 가난은 가난을 낳는 세습 사회에서 빈부 격차는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부모의 부를 대물림하지 못한 불운한 이들은 어느 세대에 속하든 사회 밑바닥에서 평생 힘겨운 삶을 살아갈 각오를 해야 한다. 흔히 세대갈등, 지역갈등, 이념갈등과 같은 여러 갈등이 혼재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 모두 빈부갈등, 즉 불평등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갈등들이 과잉 부각된 것은 많은 경우 불평등 문제를 가리기 위해 정치적으로 동원한 결과이다. 하지만 지금 그런 식으로도 은폐되지 않을 만큼 불평등은 심각해졌다.

불평등은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의 기회를 앗아간다. 불평등은 중소기업 종사자, 여성, 지방 출신, 비정규직에게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지만 더 적은 기회를 준다. 희망은 바닥나고 있다.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하고, 계층 유동성을 막고, 사회 갈등을 조장,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건강, 인간의 자존감도 해친다. 균형을 잃은 채 늙고 병들어 가는 한국 사회와 경제에 필요한 활력을 빼앗아 간다. 보수적 관점에서도 한국이 비효율적인 사회가 되었다면 그것 역시 불평등 때문이다.

민주화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그 자유의 뒤에 도사리던 불평등의 위험성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주기적인 선거, 정권 교체 가능성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국가가 후원하는 시장의 자유가 이 사회에 소득 격차, 사회 양극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불러낼 때도 우리는 방심했다. 그 대가로 우리는 불평등해졌고 이제 그 불평등이 자유까지 제약하고 있다. 이런 나라가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 곳일 수 없다. 이제 한국은 호모 사피엔스가 서식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이 되었다.

이런 절망감은 불평등이란 지층의 무게에 짓눌린 한국 사회를 하루아침에 구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더욱 깊어진다. 이게 한국 사회 앞에 가로 놓인 진짜 현실이다. 불평등의 정도가 너무 심하면 불평등에 대한 인내심도 커진다. 절망과 체념 때문이다. 불평등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야 불평등을 관용하는 정도 또한 낮아진다. 불평등의 역설이다. 한국은 어느 쪽인가. 요즘 시민들은 각자도생하고 있다. 불평등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서로 경쟁한다. 정부는 탈규제, 민영화, 감세, 재벌 중심 성장과 같은 불평등 확대 정책을 지속한다. 기우뚱한 이 사회를 바로잡을 분배 정책과 재분배 제도에 무관심하다. 정치는 거대 양당 체제,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에 안주한 채 소외된 서민의 목소리를 배제한다. 지속적인 투표율 하락이 말해주듯 시민들도 점차 정치로부터 떠나고 있다. 체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2015년은 헬조선이니 금수저 흙수저니 하는 우울한 언어가 횡행한 해였다. 지속 가능성을 잃어가는 사회 현실을 걱정한다는 뜻이다. 청년 실업, 복지 문제에 대한 관심도 높다. 시민들이 다 포기한 채 무조건 참고 견디기로 마음먹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체념과 거부의 경계선에 가까이 있는 것 같다. 정치가 다시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불평등은 정치의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정치냐에 따라 불평등 완화의 길이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 지금 한국 정치가 바로 그런 갈림길에 있다. 낙관적이지는 않다. 그동안 정치는 불평등 해소에 전력투구하지 않았다. 어떤 측면에서는 불평등 체제를 재생산했다. 이런 체제는 민주주의라기보다 소수가 지배하는 과두 체제라 해야 옳다.

민주주의는 1인 1표라는 평등의 원리에 기반을 둔다. 반면 시장은 1원 1표의 논리를 따른다. 가진 만큼 권리가 부가되는 것이다. 이는 시장을 우상화할 경우 민주주의가 파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걸 막는 게 정치의 과업이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시장이 초래하는 불균형을 바로잡는 능동적 역할을 해야 할 주체가 바로 정치이고, 정당이고 정부다.

4월 총선을 한다. 총선은 불평등을 바로잡고 모두 승리하는 길로 갈지 시험하는 무대다. 오랜 시간 축적된 불평등은 어느 한쪽의 역량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난적이다. 만일 이 싸움에서 진다면 패자는 우리 모두가 될 것이다. 총선이 정치의 실패를 확인하는 마당이 아니라, 정치의 비전을 펼치는 장이 되려면 여와 야, 보수와 진보 모두의 노력과 힘이 필요하다. 특히 집권세력의 역할이 중요하다. 집권세력은 광복 70년을 자랑스러운 승리의 역사로 인식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승리자의 관점을 반영하려고 한다. 집권세력이 70년의 역사를 이끈 주체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 70년이 남긴 그늘인 불평등 체제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 래리 바텔스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수는 1984년 로널드 레이건에게 투표한 보수주의자다. 그러나 그는 <불평등 민주주의>라는 저서를 통해 미국이 공화당 정권 때 더 불평등해진 사실을 규명, 보수의 각성을 촉구했다.

불 평등에서 탈출하고자 한다면 그 첫걸음은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그 다음 불평등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거부의 자세, 불평등이 초래한 문제와 맞서 싸우겠다는 열정, 의지가 필요하다. 한국이 불평등에 패배하는 위기의 순간은 불평등이 해소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퍼질 때이다. 불평등에 익숙해지고 그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일 때이다. 불평등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이 땅에 사는 이들의 삶을 억압하는 명백한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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