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샌프란시스코 시 ‘위안부 동상’ 공식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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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편집부 in Headline, Topics, 국제 2017/11/23 23:29 0 355 Views BBC,
샌프란시스코 시 ‘위안부 동상’ 공식 승인
-오사카 시, 샌프란시스코 시와 자매결연 끝낼 수 있다고 위협
-위안부 실상 세상에 처음 알린 김학선 할머니
BBC는 샌프란시스코 시가 시의회를 통과한 위안부 동상 설치를 공식적으로 승인했다고 보도하며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동상의 의미와 상징성을 상세히 설명했다.
BBC는 샌프란시스코에 설치된 위안부 동상은 한국, 중국 및 필리핀 출신의 서로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서 있는 세 명의 젊은 여성과 이 여성들을 바라보는 나이든 한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BBC는 세 명의 소녀상을 바라보는 나이든 할머니의 모습을 한 여성은 2차 세계대전 중 당시 일본 식민지였던 한국에서 성노예로서 강제로 일본 제국주의 군 위안소로 끌려가 경험한 것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김학선 씨를 나타낸다고 소개했다.
또한 BBC는 샌프란시스코에 설치된 위안부 동상 설치와 공식 승인 과정에서의 우여곡절을 소개했다. BBC는 일본 오사카 시가 위안부 동상의 설치를 막기 위해 자매결연까지 끊겠다고 위협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히로후미 요시무라 오사카 시장은 샌프란시스코 에드윈 리 시장에게 위안부 동상 설치와 공식 승인에 대해 항의하며 1957년부터 이어져 온 두 도시간의 자매결연을 끝낼 수 있다는 서한을 보냈다.
아울러 BBC는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동상의 측면에 새겨진 글귀를 소개했다.
“이 기념비는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아시아-태평양 13개국에 있는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의해 성노예가 되었던, 완곡한 표현으로 ‘위안부’로 불리는 수십만 명의 여성들과 소녀들의 고통을 증언하고 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BBC 보도 전문이다. 번역 감수 :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bbc.in/2zZjK0t
[저작권자: 뉴스프로, 기사 전문 혹은 부분을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십시오.] https://thenewspro.org/2017/11/23/san-francisco-accepts-comfort-women-statue/
San Francisco accepts ‘comfort women’ statue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동상 공식 승인 The controversial statue depicts three young women from Korea, China and the Philippines. Image copyright GETTY 논쟁이 되어온 이 동상은 한국, 중국 및 필리핀 출신 소녀 세 명을 보여준다. San Francisco has officially accepted a statue representing the “comfort women” forced to work as sex slaves for Japanese soldiers during World War Two. 샌프란시스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을 위한 성노예로 일하도록 강요받은 ‘위안부 여성들’을 상징하는 동상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 The work depicts three young women – from Korea, China and the Philippines – standing in a circle holding hands. 그 작품은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서 있는 한국, 중국 및 필리핀 출신 세 명의 소녀를 묘사하고 있다. Similar statues around the world have angered Japan. San Francisco’s Japanese sister city, Osaka, has already threatened to cut ties over the move. 전 세계의 비슷한 소녀상들이 일본을 분노케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일본 자매도시인 오사카는 이미 동상 승인 움직임에 대해 자매도시 협약을 끊겠다고 위협했다.
[저작권자: 뉴스프로, 기사 전문 혹은 부분을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십시오.] https://thenewspro.org/2017/11/23/san-francisco-accepts-comfort-women-statue/
It’s estimated that some 200,000 women were kept in these military brothels. 약 20만 명의 여성들이 군 위안소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Some of the women were willing, others were lured with the offer of paid work as cooks or cleaners and many were forced, a UN report said. 유엔의 보고서에 의하면 그 여성들 중 일부는 자원했고, 일부는 요리사나 청소원 등의 임금 노동의 제안에 넘어갔으며, 그리고 상당수는 강제였다. They are thought to have been mainly from Korea, but also from China, Indonesia, the Philippines, and Taiwan. 그 여성들은 대부분 주로 한국에서 온 것으로 여겨지지만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및 대만 출신도 있다. The statue in San Francisco was set up privately in late September, but on Wednesday mayor Edwin Lee signed confirmation that the city council officially accepted the monument.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소녀상은 9월 말 민간에 의해 세워졌지만 수요일 에드윈 리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시 의회가 공식적으로 그 기념비를 받아들였다고 확인 서명했다. Kim Hak-sun was the first woman to speak out about her experiences as a comfort woman. Image copyright GETTY IMAGES 김학선 씨는 위안부로서 자신의 겸험을 처음 이야기한 첫 번째 여성이었다. An inscription on the side of the statue reads: “This monument bears witness to the suffering of hundreds of thousands of women and girls euphemistically called ‘Comfort Women,’ who were sexually enslaved by the Japanese Imperial Armed Forces in thirteen Asian-Pacific countries from 1931 to 1945”. 동상 측면에는 “이 기념비는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아시아-태평양 13개국에 있는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의해 성노예가 되었던, 완곡한 표현으로 ‘위안부’로 불리는 수십만 명의 여성들과 소녀들의 고통을 증언하고 있다.” A fourth figure stands nearby, depicting an elderly woman meant to be Kim Hak-sun, the first woman to speak out about her experience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during the war. 전쟁 당시 일제 식민지하에서 자신의 경험에 대해 말한 첫 번째 여성인 김학선 씨를 나타내며 할머니모습을 그린 4번째 인물이 옆에 세워져 있다. Similar memorials have been placed elsewhere, most notably in South Korea. 유사한 기념물들이 세계 곳곳에, 특히 한국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다.
[저작권자: 뉴스프로, 기사 전문 혹은 부분을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십시오.] https://thenewspro.org/2017/11/23/san-francisco-accepts-comfort-women-statue/
In January, Japan temporarily withdrew its ambassador to South Korea over a new statue outside the Japanese consulate in South Korea’s port city Busan. A statue also stands outside Japan’s consulate in Seoul. 지난 1월 일본은 한국 항구 도시 부산의 일본 영사관 밖에 새로운 동상이 설치된 것으로 인해 한국 주재 일본 대사를 잠시 본국으로 철수시켰다. Japan says the statues in South Korea violate a 2015 deal, which agreed that Japan’s reparations would “finally and irreversibly” resolve the issue – but many Koreans view that settlement as inadequate and the issue continues to plague ties. 일본 정부는 한국의 소녀상들이 2015년 합의를 위반하는 것이라며, 당시 일본이 지불하는 배상금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임에 합의했다고 말하지만, 다수의 한국인들은 그 합의를 부적절하다고 여기며 이 문제는 계속해서 양국의 협력 관계를 어렵게 하고 있다. But there are other statues in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as well as in Australia, which saw its first “comfort woman” statue set up in 2016 – these have caused varying degrees of tension. 그러나 2016년 첫 번째 “위안부” 동상이 설치된 오스트레일리아뿐만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에 다른 소녀상들이 있으며, 이들 소녀상들은 각종 긴장 관계를 초래했다. In this case Osaka mayor Hirofumi Yoshimura wrote to his San Francisco counterpart to protest against the statue and said he might end the sisterhood between the two cities, which dates back to 1957. 이번 경우에 히로후미 요시무라 오사카 시장은 샌프란시스코 시장에게 위안부 동상에 대해 항의하는 서한을 보내며 1957년부터 이어져 온 두 도시간의 자매결연을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 [번역 저작권자 :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 주십시오.]
[저작권자: 뉴스프로, 기사 전문 혹은 부분을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십시오.] https://thenewspro.org/2017/11/23/san-francisco-accepts-comfort-women-statue/
'주사파 수괴'로 불린 노동자, 그와의 마지막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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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4년 11월 말 새벽, 잠결에 전화기의 진동을 느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설마?' 겨우 눈을 떠 전화기를 확인해 보니, 역시...
"여보세요."
"조사관님....아버지가 조금 전에 돌아가셨어요."
이런 순간이 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코 오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이었다. 부정하고 싶었고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불편한 순간이 다가왔다.
수화기 너머에 있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어떤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흐느낌을 한참 동안 듣고 있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흐느낌이 잦아들고 힘을 내라는 말과 어머님 잘 위로해 드리라는 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례식 장소를 물어본 뒤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 순간,
"혹시 장례대행업체 아시는 곳 있으신가요? 아버지 장례식장도 아직 정해지지 못했어요.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아, 그래요. 잠시만 기다려요. 금방 알아보고 전화 줄게요. 알겠죠?"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가족의 죽음을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자신을 추스르기도 벅찬 상황에서 망자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챙겨야 하는 것이 어디 쉬우랴. 곧바로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장례대행업체를 정했다. 다시 조금 전 걸려왔던 전화번호로 연락을 해 업체연락처를 알려준 뒤 연락이 오면 장례를 준비하라고 하였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연신 들려오는 고맙다는 말.
누가 누구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 시간에 나에게 부탁하는 상대방이 더 고맙고 미안할 뿐이다. 난 고작 전화 몇 통 돌렸을 뿐인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큰 슬픔과 상실감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전화를 끊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왜 하필 지금일까. 조금만 더 견뎠으면 그렇게 바라던 결과를 볼 수 있었을 텐데.
강철서신 그리고 정형근
1986년 12월 겨울.
그날은 구로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던 그가 노동운동을 하며 만난 아내와 함께 귀가하던 중이었다. 그가 작성한 '선진적노동자의임무'라는 문건을 친구가 말없이 가져가 소위 '강철서신'이라는 이름의 팸플릿에 끼워넣어 세상에 뿌렸고,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주사파의 수괴'가 되어 남산 안기부에 끌려가게 된 것이다.
40여일 가까운 무자비한 고문을 견뎌내던 그 앞에 나타난 것은 정형근이었다. 굴복하라는 말을 거부하자 그에게 이전보다 더 많은 폭력이 쏟아졌다. 그의 폭력이 멈춘 것은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하던 87년 1월이었다.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불안신경증, 만성두통, 근육신경통 등을 앓고 있다고 했다.
조사 결과 그의 주장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불법감금, 고문이 확인되었다. 그는 위원회의 결정문을 가지고 곧바로 법원에 재심을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에서 재판이 열리기까지는 4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그리고 재심일 결정되던 날 수화기 너머로 아이처럼 좋아하던 그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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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 심진구가 그린 고문 수사관들의 몽타쥐 그림 | |
| ⓒ 심진구 | |
그랬던 그가, 죽었다.
장례식장에 들어가자 국화꽃 사이로 환하게 웃는 그의 사진이 보였다.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아내와 딸들이 서 있었다. 간단히 목례 후 고인에게 예를 갖춘 후 유족에게 인사를 나눴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됐는지, 왜 갑작스럽게 죽었는지 묻지 못했다. 식탁에 앉아 있으려니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이 떡이며, 전이며, 밥과 국을 가져다 주셨다. 그가 없는 식탁을 마주하니 그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그날의 식당이 떠올랐다.
2011년 법원에서 재심결정이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산에서 그와 그의 아내를 만났다. 조사실에 만날 때와는 다르게 작업복 차림의 두 사람이 마중 나와 있었다.
"오느라고 힘드셨죠? 식사 때도 되었으니 어디 가서 같이 식사해요. 아직 식사 전이시죠?"
"네."
그곳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봉고차가 하나 서 있었다.
"차에 물건이 실려 있어서 좀 불편하실 거예요."
문을 열자 봉고차 뒤에는 견과류가 가득 실려 있었다.
"애들이 이제 대학생인데 먹고 살려니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 여기저기 차 끌고 다니면서 파는 거예요."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변명하듯 구구절절 풀어 놓는다. 가난은 왜 늘 변명이 되어야 하는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리고기 집에 도착했다. '느티나무'라는 간판의 식당 앞에 도착하자 뭘 좋아하는지 묻지도 않고 왔다며 미안해했다.
"시골 출신이라 가리는 음식이 별로 없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식당에 들어서며 걱정하는 부부에게 웃으며 말했다.
자리에 앉으며 오리백숙과 구이를 주문했다. 아내는 남편이 오리고기를 좋아해서 자주 들른다고 한다.
"원래는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요즘 들어 더욱 챙겨 먹고 있어요. 건강에 좋다고 하고 소화도 잘 된다고 하니까.."
"부부가 같은 음식을 좋아하니 보기 좋네요."
아내가 말없이 웃기만 했다.
동그랗고 커다란 밝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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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리고기 집에 도착했다. | |
| ⓒ pixabay | |
함께 식사하며 그동안의 어려웠던 이야기,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한 예상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안기부에서 고문 받고 재판에 넘겨져 집행유예를 받고 나올 때만 해도 함께 고생했던 동지들이 고생했다며 위로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나와 보니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진 거예요. 내가 집행유예로 나온 것이 안기부와 무언가 모종의 합의를 하거나 동지의 이름을 팔고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는 거였어요. 그때부터 박쥐같은 처지가 되어 아무 곳도 설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거죠."
그럴 때마다 자신의 결백과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여기 저기 뛰어다녔다. 안산에서 고문이나 통일 관련된 행사를 하는 곳이면 안 가본 것이 없었다.
"한양대 앞에서 고문 관련해서 강연하기 위해 갔었는데 경찰이 행사장을 원천봉쇄 했더라고요. 행사장으로 들어가려고 몸싸움을 하다가 결국 전투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엄청나게 맞았어요. 경찰들에게 맞다가 점점 의식을 잃어갔어요.
그런데 파란 하늘에 갑자기 커다란 보름달이 뜨는 거예요. 동그랗고 커다란 밝은 달. 왜 이런 대낮에 저렇게 큰 달이 떴지 하고 생각하며 자세히 쳐다보았더니 달덩이 같던 그게 제 딸아이 얼굴이더라구요. 아내가 그 자리에 와서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안고 경찰과 싸우고 있던 거예요. 그 환하고 밝았던 보름달 얼굴을 지금도 잊지 못해요."
그는 눈물을 흘렸다. 그것이 그와 마주한 마지막 식사였다.
"차라리 재심 결정이 나지 않았다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아내가 다가와 앉았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갑작스러워서 당황스럽기는 하네요.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가신 건지?"
"사실 주변에는 알리지 않았는데 남편이 몇 해 전부터 암을 앓고 있었어요. 병원치료와 민간요법을 병행했는데 아시다시피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도 않아서 변변한 치료는 엄두도 못 냈거든요. 미리 알려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왜 나에게 죄송해야 하는지 몰랐다. 미리 알렸던들 내가 무슨 도움이 되었겠는가. 오히려 아무 것도 하지 못한 내가 죄송할 뿐이었다.
"남편은 여기도 저기도 서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너무 큰 고통을 느꼈나 봐요. 자신을 고문했던 수사관들을 그림으로 그려서 하소연 해봤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더라구요. 그런데 재심결정이 나자 긴장이 풀렸을까요. 갑자기 몸이 더 안 좋아지더라구요. 초조했었나 봐요. 생전에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차라리 재심결정이 나지 않았다면 더 버틸 수 있었을까요?"
그랬다. 순리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이 누구에게는 조급함과 초조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누구에게는 간절히 원하던 시간이 삶을 지탱하고 의지하게 되는 시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 그때 오리고기 집에 자주 가셨던 것도...?"
"네, 암 환자들에게 좋은 음식이라고 하더라구요. 자주도 못 가고 한 달에 한두 번 갔는데 참 좋아하대요. 다른 건 못해줘도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오리고기 집에 가자고 할 때는 두 말 없이 따라갔어요."
"사모님도 좋아하시니 그래도 다행이었어요."
그러자 그녀는 나를 보며 웃어보였다.
"사실 저 같이 몸이 찬 사람들은 오리고기가 맞지 않는다네요. 오리고기 집에 다녀오면 꼭 배탈이 나더라구요.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려야 해요. 그래도 제가 음식을 피하기라도 하는 내색을 비추면 남편이 미안해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싫은 기색은 안 했어요. 먹으면 화장실을 들락거릴 걸 알면서도요."
그녀는 웃으며 오리고기를 집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날 장례식장을 다녀오며 왜 미안함은 늘 우리 같은 피해자여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사죄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남은 자의 몫인 것인가? 먼저 간 자는 남은 자가 감당해야 할 가난과 사회적 편견을 미안해하고, 남은 자는 왜 온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억울하게 먼저 간 자에 대한 미안함을 떠안고 있는 것일까.
“우리 모두가 국가보안법의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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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70년 적폐 청산’ 장경욱 변호사 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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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가 23일 올해로 69년 동안 한국사회의 발전을 가로막아온 ‘70년 적폐 국가보안법 청산’을 주제로 강연회를 마련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인 장경욱 변호사(민변 통일위원회, 미군문제연구위원회 회원, 북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의혹사건대응 TF팀장)를 강사로 초청해 진행된 이날 강연은 모처럼의 주제여서인지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
"우리 모두가 국가보안법 피해자다" 장 변호사가 청중에게 물었다. “여기서 국가보안법의 피해를 겪어본 사람 손들어 보세요.” 드문드문 손을 드는 사람들. 이어 강사가 말한다. "북을 주적으로 규정해야만 하는 것을 강요받는 사회가, 그리고 북의 인권을 비난하며 우리 인권이 더 낫다는 착각에 빠져있는 우리 모두가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입니다." "탈북자들을 데려다가 고문하고 때려서 간접을 조작하는 사회, 유우성씨 사건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며 허위자백을 받아내 조작간첩을 만들기 위해 국정원 등이 우리의 눈을 피해 아직도 고문과 구타 등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있는 현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법적, 그리고 사회적 배경이 바로 국가보안법"이란 강사의 설명에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청중의 질문도 나왔다. 북이 판문점을 통해 탈북한 청년 군인에게 총을 마구 쏘아대던 장면을 보며 북이 인권이 있는 사회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는 질문에 장 변호사는 “휴전 중이고 분단돼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비극으로 봐야 한다. 누군가 거꾸로 북으로 넘어가려고 하면 마찬가지로 남의 군인에게 총을 맞지 않겠느냐. 분단체제에서 발생하는 안타까운 문제이며 우리 모두가 사실 분단의 피해자인 것”이라며 답했다.
국가보안법은 노동운동의 발전도 가로막았다 이날 강연엔 노동사회과학연구소 회원들, 그리고 사회변혁노동자당 당원들을 비롯한 많은 노동자도 함께했다. 따라서 노동운동에 미친 국가보안법의 영향을 묻는 질문도 나왔는데 강사는 “활발한 운동이 있는 곳에 국가보안법의 탄압이 있었다”며 “사회를 바꾸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에게는 어김없이 국가보안법의 굴레를 씌워 탄압하려 했다”고 답했다. 새벽까지 이어진 뒤풀이, 영상 등 잘 준비된 강연 강연의 열기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적잖은 사람들이 새벽녘까지 뒤풀이를 이어가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또한 강사와 참가자들은 국가보안법 강연이 오랜만이었음에도 영상 등을 통해 내용을 효과적으로 알 수 있어 좋았다는 평을 하였다. 반송남 담쟁이기자 minplusnews@gmail.com 인기기사 |
북, ‘패배를 앞둔 미국’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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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는 잊어라, 이제 미국의 정치권력은 ‘실리콘 밸리’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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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린 박사는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인 뉴아메리카 재단(the New America Foundation)에서 지난 15년간 점점 커지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들의 ‘힘’을 연구해 왔다. 린 박사에게 그 15년 중 14년은 아주 괜찮은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금주에 해고됐다. 왜 그랬을까? 자신의 연구가 구글이나 페이스북, 아마존과 같은 IT 거인들의 독점을 규제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점점 나아가자, 뉴아메리카 재단의 최대 후원자 중 하나인 구글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라는 게 린 박사의 분석이다.
공개된 이메일을 보면, 뉴아메리카 재단은 린 박사의 비판이 모금을 어렵게 할까봐 걱정했던 것 같다. 뉴아메리카 재단의 앤머리 슬라터 대표는 “정말 중요한 핵심 분야 몇몇에서 구글과 더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려고 재단이 현재 노력 중입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지원금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라는 이메일을 린 박사에게 보냈다.
슬라터 대표는 린 박사가 구글에 대한 비판적 시각 때문에 해고됐다는 것을 부인한다. 하지만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과 에릭 슈미트 대표가 1999년 이후 뉴아메리카 재단에 무려 2천1백만 달러를 기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슬라터 대표의 말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슈미트 알파벳 대표가 수년간 뉴아메리카 재단의 이사장을 역임했고 뉴아메리카재단의 대회의장 이름이 “에릭 슈미트 아이디어 연구실(Eric Schmidt Ideas Lab)”이기도 하다. 슬라터 대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이유다.
대형 은행과 거대 제약회사, 그 뒤를 이은 실리콘 밸리
싱크탱크를 지원하는 것은 미국의 가장 강력한 기업들이 정책입안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 기업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백악관에서 불과 1마일 떨어진 정치적 권력의 ‘기지’에서 압력을 주로 행사한다. 로비업계의 심장부인 워싱턴 D.C.의 K-스트리트에서 말이다.
K-스트리트는 싱크탱크 뿐만 아니라 영악한 기업의 로비스트들과 그들의 끄나플들, 그리고 각종 이익단체들로 가득 차 있다. 로비스트들은 자신의 사적 이익이 법률과 규제에 반영되도록 국회의원들의 주위에 맴돌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대형 은행들과 거대 제약회사들이 재력을 바탕으로 수십 년간 워싱턴에서 큰 힘을 휘둘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를 뛰어넘은 후발 주자가 있다. 바로 실리콘 밸리다.
지난 10년간 미국의 5대 첨단기업들은 워싱턴에 어마어마하게 투자해 현재는 월가보다 무려 2배나 되는 로비자금을 쓴다. 구글과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그리고 아마존은 작년 한해에만 워싱턴에 4천9백만달러의 로비자금을 지출했고, 실리콘 밸리 임원과 정부 고위직을 오가는 회전문 인사는 일상화 됐다.
첨단기술회사들이 국회와 늘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전성기였던 1990년대에 엄청난 부와 시장점유율을 확보했다. 하지만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선구자였던 마이크로소프트는 1997년에 단지 2백만 달러의 로비자금만 썼다. 워싱턴으로부터 거리를 뒀던 것이다.
하지만 회사가 커지면서 썬마이크로시스템스, IBM, 노벨을 포함한 경쟁사들의 로비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린턴 정부의 반독점 기관으로부터 관심을 받게 됐다. 그리고 그 이듬해, 법무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운영체제의 독점을 이용해 자사의 익스플로러 브라우저를 강매해 경쟁사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혐의로 마이크로소프트를 고발했다.
수년간 이어진 법정 공방 끝에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사들의 소프트웨어가 좀더 쉽게 윈도우 운영체제에 통합될 수 있도록 강제받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이후 더 조심스럽고 덜 공격적으로 기업을 운영했다. 애플과 구글이 꽃을 피운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이 기념비적 소송으로 실리콘 밸리의 첨단기업들은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정계를 외면하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교훈 말이다.
이 소송은 썬마이크로시스템의 전 CEO이자 노벨의 CEO로 마이크로소프트의 공개적 거세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에릭 슈미트 알파벳 대표에게 특히 큰 영향을 미쳤다.
슈미트는 이 교훈을 가슴깊이 새긴 채 2001년 구글의 CEO로 발탁됐다. 슈미트의 주도로 구글은 국회에 친구를 만들고 정책입안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한 로비자금을 크게 늘렸다.
구글은 2003년에 로비자금으로 겨우 8만 달러만 썼다. 그러나 지금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은 다른 그 어떤 회사보다 많은 로비자금을 쓴다. 2016년에는 1천5백만 달러를, 2017년엔 상반기에만 9백5십만 달러를 썼다. 게다가 알파벳은 2013년에 국회에서 1마일도 채 안 되는 곳에 백악관만한 크기의 사무실을 장만했다.
워싱턴에 돈을 쏟아 붓는 것은 구글 혼자가 아니다. 페이스북과 아마존, 애플 그리고 큰 코 다쳤던 마이크로소프트도 마찬가지다.
일리노이 대학의 로버트 멕체스니 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이들은 돈과 로비스트들로 워싱턴의 양쪽을 뒤덮고 있다”며 “실리콘 밸리의 억만장자들과 CEO들은 공화당 관계자를 만날 때는 자유지상주의와 세금 인하, 탈규제를 지지하는 코크 형제의 친구로, 민주당 관계자를 만날 때는 대마초를 피우고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쿨한 활동가로 변신한다”고 꼬집었다.
이 거대 첨단기술 회사들이 워싱턴 최고의 파티들에 초대받기 위해 이러는 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과점(oligopolies)을 지키기 위해 거금을 쓴다. 이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독과점 등 반경쟁적 행위에 대한 규제나 소송 등으로 세금 인상, 인터넷 중립성 강화, 네티즌의 사생활 보호 강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오바마의 선거운동에 깊게 관여했던 슈미트 알파벳 대표는 올 1월에 대통령이 “악랄한 행동”을 할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이런 우려 때문에 결국 도널드 트럼프에게 무릎을 꿇었다. 지난 6월에 그는 그 동안의 어조를 바꿔 트럼프 정부 덕분에 “새로운 기회가 폭발적으로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발간된 ‘Move Fast Break Things:How Facebook, Google, and Amazon Cornered Culture and Undermined Democracy’의 저자 조나단 태플린은 “이런 사람들에게 정치는 거래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소프트 파워
실리콘 밸리의 로비자금 사용은 공개적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는 “소프트 파워”를 통해 불투명한 방식으로도 정책입안자와 대중에게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는 싱크탱크와 연구소, 무역협회 등 정부에게 로비를 하거나 시민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단체에 기부하는 것도 포함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페이스북을 포함한 여러 실리콘 밸리 회사에서 일했던 한 워싱턴 관계자는 “정말 혼탁한 세상”이라며 “기부를 받은 싱크탱크들은 하나같이 규제가 온라인 상권을 죽일 것이라는 백서를 발표한다”고 말했다.
최첨단 회사들이 워싱턴의 비위를 맞추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러 방법 중 또 하나는 수억 달러가 드는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다.
구글이 지난 8월초 시실리 서남쪽에서 3일간의 비밀 콘퍼런스를 연 것이 일례다. 주요 기업인들은 구글이 제공한 전용 헬기나 슈퍼 요트를 통해 모여들어 배우 엠마 왓슨과 숀 펜, 영국의 헨리 왕자와 엘튼 존과 어울렸다. 물론 이 콘퍼런스의 목적은 뛰어난 사람들을 모아 세계의 주요 문제와 정책, 인터넷의 미래를 논의하는 것이었다. 와인 테이스팅과 스파 방문 중간중간에 말이다.
실리콘 밸리의 임원들과 정부 고위직들 간의 회전문 인사도 만연하다. ‘Campaign for Accountability’에 따르면 구글 한 기업만에도 오바마 정부 출신이 무려 183명 영입됐고, 58명의 구글 출신이 워싱턴으로 이직했다.
모호하면서 훈훈한 브랜드 이미지
엄청난 권력과 영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첨단기업들은 가족처럼 따뜻하고 훈훈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사악해지지 말자 (Don’t Be Evil)”거나 “세계를 더 가깝게 만든다 (We’re Bringing the World Closer Together)” 등을 모토를 내건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말이다.
회전문 프로젝트의 최고 책임자인 제프 하우저는 “대중이 첨단기술을 월가와는 아주 다른 것으로 생각하게 하도록 PR(public relations)을 통해 노력한다”며 “이를 통해 최첨단 기술밖에 모르는 자신들이 전 인류를 위해 뼈빠지게 일하고 있다는 환상을 유지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 회사들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미국에서 가장 비정한 기업가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태플린은 “페이스북이 얼마나 훈훈한 기업인지 스냅채트 직원들에게 물어보라”며 무자비한 기술 모방으로 스냅체트를 부도위기로 내몬 페이스북의 행태를 꼬집었다. 그는 “첨단 대기업들이 회사 하나를 죽여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그것을 해내고 만다”고 단언했다.
태플린은 첨단 대기업들이 동성애자들의 권리나 인종차별, 이민 등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시각을 지니고는 있지만, 그 기업들의 총수나 투자자 대부분은 ‘자유지상주의자’로 국가와 정부의 개입에 반대한다고 했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걸림돌이며 규제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이념적 뿌리
인터넷 회사들은 인터넷 초창기 시절이었던 1990년대에 법망을 피해 빠르게 이동하는 방법으로 실리콘밸리에서 급성장했다. 인터넷 회사들의 테크노-자유지상주의의 바탕에는 국경 없는 사이버 공간이 물리적 세계와 별개로 존재하며, 물리적 세계의 규율이 가상적 사이버 공간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런 믿음은 전자프런티어재단(EFF)이 1996년 발표한 “사이버 공간 독립선언문(Declaration of the Independence of Cyberspace)”에 잘 나타나 있다.
“산업세계의 정권들, 너 살덩이와 쇳덩이의 노쇠한 거인들아. 나는 정신의 새 고향, 사이버 공간에서 왔노라. 미래의 이름으로 너희 과거의 망령에게 명하노니 우리를 건드리지 마라. 너희는 환영받지 못한다. 네게는 우리의 공간을 통치할 권한이 없다.”
EFF의 창단 멤버 존 페리 바틀로가 내놓은 선언이다. 어떠한 정부 개입도 반대한다는 입장이 선명하다.
첨단기업의 급속한 성장에는 빌 클린턴 정부의 자유시장주의 이데올로기도 일조했다. 클린턴 정부가 디지털 자유무역지대를 형성해 인터넷 회사의 세금 부담을 줄인 것이다.
정부의 개입이 없자,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이 지배하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자본주의가 탄생했다. 그리하여 하나의 기업이 디지털 경제의 대륙 하나씩을 완전히 지배하게 됐다. 구글이 검색을, 페이스북이 SNS를, 아마존이 온라인 쇼핑을 차지했다.
이들은 돈을 버는 족족 더 많은 재산가치가 있는 기반시설 - 이를테면 데이터센터, 고객데이터, 알고리즘, 경쟁기업의 인수 또는 모방 - 들에 투자했다. 이를 통해 그들은 더 규모가 있고 경쟁력이 있는, 그래서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위치에 올라섰다.
그럼에도 이들 첨단기술 회사들은 ‘고객은 언제든 다양한 서비스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며 자신들이 독점기업임을 부인한다.
“경쟁은 단지 한번의 클릭일 뿐(Competition is just a click away)”이라고 구글과 아마존,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대표하는 인터넷 협회의 마이클 베커만이 주장한다. “한 회사의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웹사이트나 앱을 사용하는 등 아주 쉽게 다른 회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베커만은 “마이스페이스(MySpace)가 독점적 지위를 잃는 날이 올까?”라는 제목의 2007년 가디언지 기사를 언급하며 거대 기술기업이 얼마나 빨리 무너질 수 있는지를 상기시켰다. 하지만 마이스페이스의 최대 사용자수는 1억 명에 불과했다. 지금 페이스북의 사용자수는 그 20배에 이른다.
맥체니는 “그건 완전 개소리”라며 “아인 랜드(Ayn Rand, 이기주의를 미덕으로 간주한 소설가)의 광팬인 자유지상주의자가 아니라면, 신뢰할 만한 모든 경제학자는 이들이 독점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역사적으로 기업 로비의 영향을 덜 받는 유럽의 기관들은 애플과 아마존의 탈세를 조사해 애플에게 145억 달러의 추징금을 부과하고 페이스북에게 왓츠앱과의 합병 과정에서 정보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벌금을 내게 했다. 일련의 법적 대응으로 첨단기술기업을 제재해 온 것이다. 이는 이들 첨단기술기업들이 (독점을 통해)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다.
유럽은 또 지난 6월의 기념비적 반독점 소송에서 구글에게 약 3조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구글이 검색 결과에서 자사의 서비스를 우대했다는 이유였다.
미국 연방무역위원회(FTC)도 유럽과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 160페이지에 이르는 FTC의 보고서에는 구글의 검색처리 방식이 “소비자, 온라인 검색의 혁신, 그리고 광고시장에 큰 피해를 초래했다”고 밝히며 정치인들에게 구글을 제소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구글의 독점방지법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도 만장일치로 이를 무혐의 처리했고, 구글이 심각한 제재 없이 자체적으로 검색처리 방식을 수정토록 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확실한 건 알 수 없다. 하지만 구글이 워싱턴에서 로비비용으로 2천5백만 달러를 쓴 것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제재냐 혁신이냐
태플린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유럽이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옥죄는 건 미국 기업에 대한 편견과 지나친 관료주의 탓이라는 주장이다. 그 때문에 유럽의 혁신 능력이 위축되고 유럽 자체의 정보기술 대기업 탄생이 가로막혔다는 주장도 이어진다.
일례로 베커만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눈부신 성장이 미국의 느슨한 규제 덕분에 가능했다며 “성공적인 인터넷 회사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탄생해 성장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믿는 사람이 너무 많다. 빌 게이츠조차 1998년에 PC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모든 것이 정부의 어떤 개입도 없이 이뤄졌다는 것이 매우 놀랍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건 실리콘 밸리의 리더들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업이 탄생하고 성장한 기반에는 탄탄한 정부의 개입과 공적 자금이 있었다. 국가의 개입이 없었다면 구글을 비롯한 첨단기술 기업은 절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 정부는 이미 1960년대부터 ARPA(오늘날의 DARPA)를 통해 5대 첨단기술 기업들이 의존하는 장기적인 연구나 최첨단 기술 개발을 지원했다. 스탠포드 리서치 연구소는 혁신과 지역 경제 개발의 주축으로 지원받았고 결국 최초의 컴퓨터와 마우스, 그리고 초기 인터넷을 개발했다.
GPS부터 이동통신, 인터넷, 반도체, 시리(Siri)와 터치스크린까지 아이폰이 사용하는 모든 핵심 기술이 미국 정부, 미군의 연구와 금전적 지원 덕분에 탄생했다. 구글의 검색엔진 알고리즘도 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의 지원으로 개발됐다.
“야심만만한 벤처사업가들이 인터넷을 발명했다는 것은 미신이다. 인터넷은 수십 년간 미국 중앙 정부가 독자적으로 발명하고 개발시켰다”고 맥체니는 지적했다.
미 정부는 3개의 역사적인 반독점 소송으로 독점을 해체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고 실리콘 밸리의 역사를 바꿨다.
이를테면 IBM이 메인프레인 컴퓨팅 분야를 장악하고 있었던 1970년대에 정부는 소송을 걸어 IBM의 하드웨어 부문과 소프트웨어 부분을 분리하려 했다. 결국 IBM은 다른 회사들도 IBM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도록 허용했고 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마이크로소프트도 반독점 소송을 당했고 이는 구글이 탄생할 공간을 만들어줬다.
이렇게 이야기는 다시 구글의 에릭 슈미트 대표로 돌아간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작은 정보기술회사의 로비스트는 “슈미트는 역으로 이 상황을 이용할 줄 안다. 그는 구글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커다란 규모의 반독점 소송임을 알고 있다”고 했다
티핑 포인트
미국 IT 거인들의 현 세대를 통제하려는 워싱턴의 노력은 지금까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곧 바뀔지도 모른다. 민주당이 ‘반독점’을 향후 4년간 추진할 핵심 정책 중 하나로 꼽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의 한 연설에서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은 “이제 테디 루즈벨트(Teddy Roosevelt)를 따라 할 때가 됐다. 지금은 반독점 회초리를 집어들 때”라고 선언했다.
워렌 상원의원은 이미 작년 6월, 뉴아메리카 재단의 베리 린이 주최한 행사에서 구글이나 아마존, 페이스북이 “경쟁을 없앨”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며 이런 생각을 밝힌 바 있었다.
공화당조차 페이스북이나 구글이 일상에서 꼭 필요한 서비스가 됐기 때문에 이를 물이나 전기같은 생필품처럼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토론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실리콘 밸리를 통제하려는 워싱턴의 의지는 커져간다. 하지만 그런 통제가 과연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유럽의 어마어마한 벌금에도 불구하고 업계내에서의 구글의 압도적 우위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에 대해 규제하려는 생각은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그게 구글을 느리게 만들수 있을까? 아마 (구글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이야 돈을 많이 벌겠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규제가 시장 상황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찌되었건 가짜 뉴스의 확산과 개인 정보의 약탈, 자동화가 취업이나 세금 탈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여론은 바뀌고 있다.
맥체니는 이 IT 기업들이 현재의 경제상황과 긴밀히 연계돼 있다며 “경기 침체와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이 IT 기업들이 가진 어마어마한 경제적, 정치적 힘을 정당화하기 어려워질 것”이라 내다봤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을 지켜보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의는 사그러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우저도 “언젠가는 대중이 곡괭이를 들고 이 회사들을 덮칠 것”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시위가 어디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한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있겠지만 말이다.”
기사출처:Forget Wall Street – Silicon Valley is the new political power in Washington
역사의 진실을 가릴 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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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오도로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 |
| 박찬운 | 등록:2017-11-24 13:58:40 | 최종:2017-11-24 14:03: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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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김관진 석방, 법원이 해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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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적부심사에 단호했던 법원... 김관진 석방 판사의 '인용-기각 비율' 등 공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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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속적부심' 석방되는 김관진 전 국방장관 구속적부심에서 석방이 결정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22일 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오고 있다. | |
| ⓒ 연합뉴스 | |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이 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에 개입한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구속되었다가 11일 만에 구속영장실질심사를 통해서 석방되었다. 대부분의 피의자들은 감히 구속적부심 청구를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구속적부심은 사실상 구속의 타당성 여부를 다시 한번 심사하는 것이어서 이를 받아들여 인용할 경우에는 영장발부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꼴이므로 사정변경이 없는 한 쉽사리 인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오랜 경험에 비춰보더라도 폭행사건이나 사기 사건 등 피해자가 있는 사건에서 구속 후 합의를 하는 등의 사정변경이 없는 한 적부심을 통하여 석방되었던 예를 보지 못하였다. 더욱이 무죄를 주장하면서 다툼의 여지가 있는 사건의 경우 방어권을 보장받을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적부심을 청구하였지만 여지없이 구속적부심이 기각되는 경우가 다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피의자나 그 가족이 구속된 후 적부심을 청구하자고 말하면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고개를 흔들면서 말린다. 오히려 재판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신청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이다.
구속적부심은 피의자의 구속이 과연 합당한지를 법원이 다시 판단하는 절차로, 국민 누구나 수사기관으로부터 구속을 당하였을 때 관할법원에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구속적부심을 청구하였을 때 거의 모든 법원과 판사들은 구속 후 피해자와의 합의 등 사정변경이 없는 한 적부심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대로 기각한다. 변호인이나 구속된 피고인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불구속 수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단골 메뉴로 들고 나온다. 그래도 대부분의 판사들은 그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력감을 느낄 정도로 단호하게 기각하는 것이 법원의 일반적인 태도다.
법원은 왜 방어권 보장 이유로 '김관진 적부심' 받아들였나?
그런데 김관진은 왜 쉽게, 그것도 일반인에게는 그토록 인색하던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적부심을 받아들였을까? 특히 국정농단 사건은 대한민국의 민주질서와 법치질서를 무너뜨린 중대 범죄다. 그것도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범죄다. 범죄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되면 결코 구속을 벗어날 수 없는 중한 범죄유형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구속적부심을 통해서 석방한다? 오랫동안 형사변론을 해왔고, 적부심도 수십 번 청구했던 필자로서는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이다.
신광렬 부장판사는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어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그렇다면 신광렬 부장판사는 다른 사건에서도 그러한 이유를 들어서 구속적부심을 쉽게 인용해 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일 다른 사건에서도 같은 논리로 구속적부심을 인용해 왔다면 형사사건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일관된 것이어서 납득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분명 해명이 있어야 한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 하지만 이례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답변이 필요하다.
일반 국민들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실질이 다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신광렬 부장판사가 경북 봉화 출신, 서울대 84학번, 연수원 19기로 우병우 수석과 같은 경력의 소유자여서 혹시 국정원 댓글 사건을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헌정질서 지키기 위해서라도 국민들 의구심 해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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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속적부심' 석방되는 김관진 전 국방장관 구속적부심에서 석방이 결정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22일 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오고 있다. | |
| ⓒ 연합뉴스 | |
이번 기회에 법원은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신광렬 부장판사가 그동안 구속적부심 재판을 담당했던 사건이 몇 건이고, 그중에서 인용과 기각 비율이 어떠한지 말이다. 그리고 인용의 경우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알려줄 의무가 있다. 또한 사법연감에 나온 구속적부심 인용례 중 사정 변경이 아니라 단지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적부심을 인용한 경우가 얼마나 있었는지 국민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야 한다.
일반국민들에게 그렇게 인색했던 구속적부심 재판이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사람이라고 해서 그 경계를 무너뜨린다면 법원 스스로 우리의 헌정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다. 법원의 재판은 나름 최고의 재량권이 인정되지만 그만큼 책임도 무거운 것이다. 누가 뭐래도 모든 국민들에 대한 기준은 동일해야 한다. 헌법에서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평등권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국방부장관은 군인이 아닌데도 군형법 제94조의 정치관여 금지조항을 적용한 것이 문제가 된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군형법이 군인과 군무원 등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맞다(군형법 제1조). 그러나 국방부장관은 국방에 관련된 군정 및 군령과 그 밖에 군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사람이다(정부조직법 제33조제1항). 따라서 군인으로 봐야 하며 당연히 군형법이 적용돼야 한다. 군형법 제1조의 취지는 군과 관련되는 일을 하는 경우 군형법의 적용대상이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변호인은 김관진에게 적용된 군형법 제94조가 위헌제청되어 있음을 이유로 불구속 재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법원이 위헌제청되었다는 사유를 들어서 구속적부심을 받아들였던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다른 국민들이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구속적부심 청구를 하였을 때, 신광렬 부장판사는, 그리고 법원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제103조)'고 하지만 그 양심은 주관적인 양심이 아니라 법조적 양심이다. 객관성과 합리성이 담보된 양심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양심은 일관되게 형평성 있는 적용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신뢰성을 상실한 판결이다. 더이상 국민들이 따라야 할 이유가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법관의 자리는 헌법에서 독립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며,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라는 것이다. 법관 한 사람이 주관적 감정에 따라서 판결을 하게 되면 판결의 신뢰와 사법부의 독립성은 송두리째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북, 마지막 7차 핵시험 은근히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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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 마지막 7차 핵시험 은근히 경고 | ||||||
| 기사입력: 2017/11/25 [03:5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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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핵개발 관련 북 고위 관계자가 향후 7차 핵실험을 실시할 것이며 7차핵실험이 핵무력 완성을 위한 마지막 핵실험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은 현재 6차 핵시험까지 실시한 상태이다.
평양사정에 정통한 중국의 한 대북 소식통은 최근 이 같은 소식을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전하며 “앞으로 있을 7차핵실험은 북조선이 지금까지 실시한 핵실험 중 가장 강력한 핵실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소식통은 “북조선의 7차핵실험 계획과 관련된 소식은 평소 친분이 있는 조선 인민군의 고위간부로 부터 직접 들었다”면서 “그 간부의 구체적인 신상을 밝힐 수는 없지만 상당히 고위 간부이며 그런 정보를 다룰만한 소식통”이라고 강조했다. 소식통은 이어서 “이 고위간부는 또 마지막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면 김정은 위원장이 농업발전을 위한 투자에 집중하게 될 것이는 얘기를 여러번 되풀이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소식통은 그러나 “이 간부는 7차핵실험의 정확한 시점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면서 “외부언론에도 보도되었지만 핵실험의 시기는 오로지 김정은 위원장의 결심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유아시아방송은 이와 관련 중국의 또 다른 한 대북 소식통이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외에 핵 보유국으로 묵인되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6번의 핵실험 끝에 핵개발을 완성한 점을 고려하면 북한이 앞으로 한차례의 핵실험만을 남겨놓고 있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고 진단했다고 전했다.
본지에서 보기에도 이번 자유아시아방송 소식통의 전언은 상당히 신뢰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사실 6차핵시험은 대륙간탄도미사일 장착용이기는 했지만 그 크기가 커서 다탄두로는 사용할 수는 없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밝혔듯이 미국과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핵무장력을 갖추려면 다탄두용 소형 핵무기를 공개하고 그 시험성공을 보여주어야 한다.
북의 언론은 이미 수소탄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를 완벽하게 이루어냈다고 여러차례 보도해왔다. 다만 그것을 공개하지 않았을 뿐이다. 북이 시험을 한다는 것은 이미 실전배치된 무기를 꺼내서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시험용 무기를 따로 만들어 시험하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핵무기 완성 관련 그 마지막 준비가 끝났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북의 실전용 핵무기는 이미 실전배치 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북은 90년대 초 미국의 영변폭격 전쟁위기 당시부터 미국이 콩알쪽만한 핵무기라도 북에 떨어뜨린다면 미국이란 나라를 지도상에서 지워버리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과 그 장착용 핵폭탄 시험인 6차핵시험을 하기 전에도 이런 경고를 어디 한두 번만 내놓은 것이 아니다.
의아한 점은 왜 실전용 미사일이나 핵무기를 꺼내서 시험하지 않고 시험용을 따로 만들어 시험하는가에 있다. 북의 실전 전략무기는 공개용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무기여서 공개할 경우 세계적으로 미치는 충격과 파장이 너무 크거나 미국이 혹시 모를 방어무기를 만들 것을 우려, 나아가 미국을 압박하고 북 주민들에게 신심을 불러일으키자는 정치적 의도 등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공개시험용 무기를 따로 만들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난해 화성-10, 올해 화성-12와 14형 등 엔진개발을 끝내자마자 바로 2달여만에 그것을 미사일에 장착하여 쏘아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보통 엔진개발 후에 그것을 미사일에 적용하여 첫 시험을 하려면 2년 이상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을 실전배치까지 하려면 한 5년 걸린다.
따라서 7차 핵시험은 이미 준비되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단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7차핵시험 이후 농업에 주력한다는 것은 그로 인해 미국의 제재와 압박이 가해질 경우를 대비하여 반드시 식량자급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북은 이미 고난의 행군시절 기아의 고통을 겪어본 바 있으며 식량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꼭 완전 자급을 이루어내야할 전략적 고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전반적인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보았을 때 이번 자유아시아방송 소식통의 전언은 신뢰성이 높다고 본다.
한편, 이는 아직 북이 핵무장력 완성을 선포한 단계는 아니라는 말이기에 미국이 북과 대화를 통해 근본적인 대북 적대관계를 청산한다면 미국과 힘의 균형을 이룰 정도의 강력한 새로운 핵보유국 등장만은 막을 수 있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 단계로 가기 전 북이 미국에게 최후통첩의 의미를 담아 은근히 정보를 흘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향후 미국의 행보에 따라 북의 차후 행동이 정해질 것이며 그 행동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두 달 넘게 조용하던 북이 다시 거대한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움직임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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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 대책위, 김현희 추모제 불참시 ‘법적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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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4 19:4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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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춘 만난 세월호 유족들 "어떻게 징계할 건가" 추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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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장관, '유해 은폐' 거듭 사과... "해수부 조사 미진하면 상부에 조사 요청"
| ▲ 유가족 만나 '세월호 유골 은폐' 사과하는 김영춘 장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수정안’ 통과를 촉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다가가 ‘세월호 유골 은폐’에 대한 사과를 했다. | |
| ⓒ 박소영 | |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세월호 유해 은폐와 관련해 세월호 유족들에게 "(미수습자 가족 분들의) 실망감과 배신감이 당연히 크실 것이다, 계속 노력하겠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김 장관은 24일 오전 농해수위 전체회의를 앞두고 국회를 찾았다가 본청 앞에서 농성 중인 유족들에게 다가가 "(지난) 밤에라도 미수습자 가족 분들에게 가려고 했더니 만나주시지 않겠다고 해서 못갔다"라며 이 같이 말했다.
김 장관은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세월호현장수습본부 이철조 본부장과 김현태 부본부장 등의 징계와 관련된 유족들의 질문에 "조사 후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릴 것"이라며 "저희 조사가 미진하다면 다른 제3의 상부기관에 (조사를) 요청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이어 유족들이 "정확히 어떻게 징계하겠다는 건가"라고 묻자 김 장관은 "해수부가 혼자서 징계수위를 결정하긴 힘들다, 정부 안에 공무원 징계절차가 있으니 그것에 따라 징계해 나가도록 하겠다"라고 설명했다.
김 장관은 자리를 떠나며 거듭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사과했다.
한편 이날 국회 본회의에선 사회적참사진상규명특별법 표결이 진행될 예정이다. 세월호 유족들은 "4.16세월호참사, 가습기살균제참사 가족이 요구하는 사회적참사진상규명특별법 수정한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요구하며 전날 오전 7시부터 국회 본청 앞 농성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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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춘 장관, 세월호참사 유가족에게 사과 24일 오전 김영춘 해수부장관이 여의도 국회의사당앞에서 밤샘농성을 벌인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을 방문해 ‘세월호참사 희생자 유골 은폐’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 |
| ⓒ 정교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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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유가족 찾은 김영춘 해수부장관 김영춘 해수부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밤샘농성을 벌인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을 방문해 ‘세월호참사 희생자 유골 은폐’와 관련해 사과한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 |
| ⓒ 유성호 | |
영국 외무부, 북 공적개발원조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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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외무부, 북 공적개발원조 중단 | ||||
| 기사입력: 2017/11/24 [10:2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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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영국 외무부가 북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영국 외무부 대변인은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이 북에서 벌이는 모든 원조 사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도록 당국자들에게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국은 여전히 북 정권의 인권 유린에 대한 규탄에 단호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계속되는 북의 핵무기 개발 시도는 용납될 수 없다며, 영국은 북 정권에 제재를 부과하는 국제적 노력의 최전선에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공적개발원조는 한 국가의 중앙정부 등 공공기관이나 원조집행기관이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과 복지향상을 위해 해당국가나 국제기구에 제공하는 자금이다.
실제로 영국 외무부는 최근 발표한 2016년 4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제공한 공적개발원조 지출현황 자료에서, 북에 5건의 사업에 약 24만 파운드, 미화로 32만 달러(3억 4,732만원)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항목 별로 보면, 영국문화원이 북한에서 진행한 영어교육 프로그램과 북한 당국자들에 대한 영국의 가치와 규범 교육에 각각 13만 달러, 평양 이외 지역 주민들의 재활 서비스 접근 개선에 1만 3천 달러, 강원도 안변 지역 주민들의 이동식 수도 접근 개선에 2만4천 달러, 재난 발생 후 비상상황에 대한 지원 제공에 1만 5천 달러가 지출됐습니다.
한편 영국 외무부는 북의 핵 개발과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비판하면서도 북과의 교류를 계속하는 이른바 ‘비판적 교류정책’의 일환으로 북에 공적개발원조를 제공해 왔다.
앞서 북 외무성은 22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 것과 관련해서 “존엄 높은 우리 국가(북)에 테러딱지를 붙이는 것으로 도발을 걸어오면서도 그 무슨 평화적 해결을 운운하는 미국의 가련한 몰골이야말로 우리가 선택한 병진의 길이 천만번 옳았고 우리의 손에 핵 보검을 계속 튼튼히 틀어 쥐고 있어야 한다는 철리를 더욱 깊이 새겨줄 뿐”이라며 “미국은 감히 우리를 건드린 저들의 행위가 초래할 후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는 미국이 대북적대시 정책을 철회하지 않는 한 북은 대화에 나서지 않을 것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한반도 문제는 북미 당사자 간의 문제임을 인식시키고 제재와 압박으로는 북을 대화 테이블로 나오게 할 수 없음을 명백히 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주변국을 포함 세계 모든 나라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북공조를 강화할 것이 아니라 북핵문제 평화적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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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김관진 장관때부터 전경련 돈받아 ‘야당=종북’ 정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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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김관진 장관때부터 전경련 돈받아 ‘야당=종북’ 정신교육
등록 :2017-11-24 05:02수정 :2017-11-24 08:56
2012년부터 정훈장교 집체교육
“대선앞 종북관련 대대적 교육”
이승만 도서 구입비 등도 받아
교육 참석자 “문재인 당선되면
종북세력이 국가 전복한다고 해”
국방정책기획관실 작성 자료엔
“4대강 등 국책사업 반대는 종북”
■ ‘종북’ 관련 교육, 전경련이 후원 23일 <한겨레>가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서 입수한 자료를 보면, 국방부는 2011년 6월 ‘경제마인드 함양’을 주제로 100명 규모의 정훈장교 워크숍을 시작했다. 이어 대선이 있던 2012년부터 전군 정훈장교 700여명을 한자리에 모아 집체교육을 실시했다. 당시 군 관계자는 “원래 군의 정신교육은 5년에 한 번씩 만들어지는 ‘정신교육 기본교재’를 바탕으로 시행돼야 하는데 교재에는 없던 ‘종북세력’에 관한 특별교육 지침이 국방부 교육정책관실 예하 정신전력과에서 하달됐다”며 “종북세력 관련 교육은 특히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벌어졌다”고 말했다. 강사료와 식비·숙박비 등으로 2012년에는 1억2천만원, 2013년에는 1억6천만원이 들었고, 비용의 80% 정도를 전경련이 부담했다.
전경련의 국방부 정훈교육 협찬은 집체교육 지원뿐만이 아니었다. 2011년 9월 국방부는 전경련에 ‘장병 교육용 참고도서’라며 이영훈 서울대 교수 등이 쓴 <해방전후사의 진실과 오해> 6000권(인쇄 실비 1권당 5천원)과 이승만 대통령 자료집인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 300권(1권당 5만8천원) 구입도 요청했다. 2012년 1월에는 <지표로 본 대한민국 현대사>라는 제목의 정신교육 소책자 18만2천부 인쇄비용(3200만원)도 요청했다.
■ “문재인 대통령 되면 종북세력이 국가 전복” 교육 2012년부터 정훈장교 집체교육에 참석했다는 한 예비역 정훈장교는 “교안에는 없었지만 당시 국정원에서 온 외부강사들이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면 종북세력이 국가를 전복할 것이다. 이해찬·정동영·한명숙·박원순 등 정치인은 물론 진중권·김제동씨도 종북세력’이라고 언급했던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당시 교육 내용은 2012년 3월 국방부 국방정책실이 정책홍보담당관에게 보낸 ‘북 대남전략과 종북세력의 위협’이라는 제목의 영상물(40분 분량) 제작 의뢰 공문에서 추정할 수 있다. 공문에는 영상물에 담을 자막으로 “종북세력이 언론·문화·예술 분야에서는 폭로·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해 허위사실을 유포한다”며 “나꼼수 등 비주류 언론매체를 통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붕괴시키고 있다”고 적었다. 또 “영화·드라마 등 대중예술에서도 반미·반체제 사상을 주입하고 있으며 심지어 연예인 팬클럽을 선동의 장으로 활용한다”고 주장했다. 2012년 3월 국방정책기획관실이 작성한 ‘장병 정신교육 참고자료’에서도 “4대강 및 7대 국책사업 반대활동을 주도하는 핵심 단체와 인물들이 종북세력”이라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올해 2~3월 실시된 정훈장교 교육은 전경련 협찬 없이 국방부 자체 사업으로 실시했고 교육효과를 고려해 교육 대상을 축소 조정해 시행했다고 밝혔다. 이철희 의원은 “2012년 대선 전후로 정치군인들이 정훈교육을 보수기득권의 집권수단으로 변질시켰다”며 “이는 군의 정치적 중립을 크게 훼손한 범죄행위다. 군 정훈교육에 대한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이국종 교수는 ‘김종대’가 아니라 기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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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구나














30주기 추모제에 김현희 초청한 신성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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