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문재인 정부는 사드철회의 길로 당당히 나아가라”

“문재인 정부는 사드철회의 길로 당당히 나아가라”
 
 
 
편집국
기사입력: 2017/06/08 [22:1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사드배치반대 단체들이 문재인 정부가 사드배치 철회의 가능성까지 열어놓고 성역없는 조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 : 사드저지전국행동)     © 편집국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 관련 범정부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서 그 동안 지적된 사안들에 대한 추가 조사 문제와 환경영향평가 실시 문제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그동안 사드배치 반대를 주도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이 8일 오후 230분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가 사드 철회의 길로 당당히 나아갈 것을 촉구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우선적으로 기왕의 진행된 사항은 그대로 두고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사드 배치를 위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며 반입된 장비의 철거를 요구했다.

.

또한 참가자들은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미국 MD 참여 문제를 포함한 사드 배치가 한반도 안보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한미 합의의 적법성비용 부담 문제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원점 재검토를 통해 사드 배치 철회의 길을 열어나갈 것을 촉구했다.

 

이들 단체들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미국을 방문해 사드배치를 철회할 뜻이 없을 것이라고 통보하는 등 새 정부는 벌써부터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는 발언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라며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이 수그러들 리 없고예측할 수 없는 피해를 당하는 주민들의 투쟁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들은 정부가 기왕에 사드 배치에 관한 범정부 TF를 구성했다면 그 업무의 범위에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며 그 결과에 따라 사드 철회의 가능성까지 열어놓아야 TF 구성과 운용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요구했다.

 

--------------------------------------------------------

[사드 관련 범정부 TF 구성 및 1차 회의에 즈음한 공동기자회견문]

 

사드 가동과 공사 중단!, 배치 장비 철거!, 사드 배치 철회!

 

― 사드 배치 관련 모든 행위를 중단하고사드 배치 전반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원점 재검토를 통해 사드 배치 철회의 길을 열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 관련 범정부 TF’를 구성해서 그 동안 지적된 사안들에 대한 추가 조사 문제와 절차적 정당성을 얻기 위한 환경영향평가 실시 문제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사드 부지 지역인 소성리에는 경찰병력만 뒤로 물러나 있을 뿐사드 배치(공사)는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헬기를 이용한 사드 관련 장비유류병력의 반입은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이뤄지고 있으며환경영향평가도 없이 불법으로 들여온 사드 레이더가 주민들에 대한 아무런 안전 조치도 없이 가동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먼저 문재인 정부에게 지금 당장 사드 레이더 가동 중단을 포함하여 사드 배치 관련 모든 행위를 중단하고 반입된 장비를 철거하여 이미 저지른 불법성을 시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그렇지 않고 기왕의 진행된 사항은 그대로 두고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사드 배치를 위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미국 MD 참여 문제를 포함한 사드 배치가 한반도 안보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한미 합의의 적법성비용 부담 문제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원점 재검토를 통해 사드 배치 철회의 길을 열어나갈 것을 촉구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하여 추가 반입된 사드 발사대 4기에 대한 국방부의 보고 누락정상적 환경영향평가 회피기형적인 사드 부지 공여 등의 문제점이 밝혀졌다이는 사드 배치가 얼마나 불법적이고 기만적으로 이뤄져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이 짧은 기간에 이처럼 심각한 문제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과정 전반에 대한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조사와 재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새 정부는 벌써부터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는 발언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은 사드와 관련한 나의 (진상조사지시는 전적으로 국내적 조치이며기존의 결정을 바꾸려거나 미국에 다른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5/31)고 밝혔고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미국을 방문하여 새 정부가 사드 체계 배치를 철회하는 일은 절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통보했다.”고 한다.(중앙일보, 6/6)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미 배치된 (사드는환경영향평가를 한다고 해서 굳이 철회하거나 그럴 이유가 없다.”(6/7)고 밝혔다우리는 환경영향평가 등 일정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여 사드를 배치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 대해 매우 큰 실망과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사드 배치 문제를 검토하려면 사드가 과연 한국 방어에 필요한 무기인지부터 따져보는 것이 첫째 순서다군사적 효용성이 없다면 굳이 환경영향평가 등의 절차도 필요 없이 사드 배치를 철회하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사드를 포함한 MD가 한반도 지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미 의회보고서 등이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듯이 사드로 북핵 미사일을 남한에서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그럼에도 한미당국은 사드가 북핵 미사일을 막는 만능의 무기인 것처럼 국민들에게 거짓 선동을 해왔다따라서 이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전문가의 검토와 함께 국민적인 공론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함께 한미당국의 사드 배치 합의가 적법한 것인지도 따져봐야 한다사드 배치는 우리의 영토주권과 공역주권을 제약하고중국과 러시아가 유사시 사드 기지를 1차적 공격대상으로 삼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데서 보듯이 우리의 평화와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우리 국가와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과 경제적 타격을 입히며 성주와 김천 주민의 생존을 해치는 중차대한 문제이다따라서 이런 문제는 당연히 한미간 법적 권리와 의무를 창설하는 조약 체결로 규율되어야 한다그러나 한미당국 사이에는 법적 구속력을 갖는 조약이 체결된 바 없다는 것이 국방부의 공식 답변이다.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에 대한 이 같은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환경영향평가 등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명분으로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사드 배치가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반발이 수그러들 리 없고 그로 인해 한반도의 안보가 위태로워지며한국의 미일MD 및 삼각군사동맹 편입으로 나라의 주권 확보와 민족의 통일에 중대한 걸림돌이 놓이게 된다더욱이 주민들이 벌써부터 소음 피해를 호소하는 데서 보듯이 사드배치로 예측할 수 없는 피해를 당하는 주민들의 투쟁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환경영향평가 문제도 철저히 조사해야 마땅하지만 이것은 이전 정부가 저지른 온갖 불법과 전횡의 한 사례일 뿐이다.

 

따라서 정부가 기왕에 사드 배치에 관한 범정부 TF를 구성했다면 그 업무의 범위에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당연히 사드 배치 관련 근본적 문제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그 결과에 따라 사드 철회의 가능성까지 열어놓아야 TF 구성과 운용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에 우리는 문재인 정부가 오직 우리나라의 주권과 평화이익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의 기준으로 놓고 사드 철회의 길로 당당히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

 

2017. 6. 8.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회원불교 성주성지수호비상대책위원회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사드배치반대대구경북대책위원회사드배치저지부산울산경남대책위()

 

 

 
트위터 페이스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英 총선, 집권 보수당 과반상실 패닉...노동당 약진

 
'영국판 박근혜' 메이 총리 입지 흔들
2017.06.09 08:51:46
 

 

 

 

8일(현지시간) 치러진 영국 조기총선에서 '압승'을 자신했던 집권 보수당이 과반의석을 상실할 것이라는 출구조사로 충격에 빠졌다.


BBC 등 방송 3사가 이날 투표 마감 직후 발표한 공동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수당은 제1당은 유지하지만, 과반의석(326석)을 간신히 넘긴 330석에서 오히려 16석을 잃은 314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또한 제1야당인 노동당은 37석이 늘어난 266석,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34석, 자유민주당은 14석 등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됐다. 영국 언론들은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 단독으로 과반의석을 얻지 못해, 어느 당도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는 '헝 의회(Hung Paliament)'가 출현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 근소한 과반에서 더 많은 표를 얻어 '하드 브렉시트 협상'에 나서겠다며 조기 총선을 요구한 메이 총리. 8일 출구조사 결과 집권 보수당이 오히려 과반을 상실할 것으로 예상됐다. ⓒAP=연합


"메이 총리에 큰 타격, 재선거 상황 올 수도"

 

 

<뉴욕타임스>는 "출구조사가 개표로 확인되면, 3년이나 앞당긴 조기총선을 요구한 테레사 메이 총리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아가 조기총선의 취지대로라면, 조만간 재선거를 치러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메이 총리가 2년만에 조기총선을 요구한 것은 '브랙시트 협상'을 위해서는 과반수를 조금 넘긴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의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노동당에 대한 지지율이 바닥인 여론의 동향을 볼 때 조기총선으로 의석수를 대폭 늘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협상의 적임자'로서의 단호한 의지의 '철혈여인'이라는 이미지를 얻으며 당내에서 '선거의 여왕'으로 추앙받았으나 '불통의 여인'으로 추락했다. 

재가요양 서비스 비용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던 복지정책을 노인이 보유한 주택의 가치까지도 소득 기준에 포함해 집을 가졌지만 소득은 없는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갑자기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공약이 대표적인 실책으로 꼽혔다. 이 공약은 보수당의 주지지층인 노인층의 분노뿐 아니라 노인을 둔 가정의 많은 유권자들을 돌아서게 했다. 당내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 공약을 관철시켰던 메이는 비난이 거세자 곧바로 이 공약을 철회하겠다고 입장을 바꾸면서 '오락가락 정치인'으로 전락했다. 

지난 4월 메이가 조기총선을 발표했을 때 보수당과 노동당 지지율 격차는 20%포인트가 넘었지만 이 공약이 발표된 직후에 8%포인트까지 좁혀졌다.

<뉴욕타임스>는 "영국 정부가 어떻게 구성될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2주내에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이 시작된다"고 지적하며, 이번 영국 총선 결과는 영국 국민이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선택하며 전세계에 파장을 던진 것처럼, 또다시 전세계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반영하듯 출구조사 직후 영국의 파운드화는 달러 대비 2%가 넘게 급락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살처분 이외에는 아직도 별다른 대책이 없는 조류독감

 
취임 후 처음으로 청와대 보좌관을 혼낸 문재인 대통령, 왜?
 
살처분 이외에는 아직도 별다른 대책이 없는 조류독감
 
임병도 | 2017-06-09 09:06:2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보고 내용을 질책했습니다. 질책은 꾸짖거나 나무라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혼을 냈다고 봐야 합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다섯 차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했는데 보고 내용을 질책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유는 AI(조류인플루엔자) 때문입니다.

6월 8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회의에서 조류인플루엔자 방역대책 추진 상황을 보고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AI(조류인플루엔자) 대책이 의례적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한 후 “바이러스 변종이 토착화 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고 있는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기존의 관성적인 문제해결 방식에서 벗어나 근원적 해결방식을 수립하라” 고 지시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보고를 받았더니 대책이라고 내놓은 내용들이 기존과 별다를게 없으니 다시 대책을 세우라는 뜻입니다.


‘살처분 이외에는 아직도 별다른 대책이 없는 조류독감’

 

▲지난 2014년 전북 정읍시의 한 오리농장에서 공무원들이 조류독감 확산 방지를 위한 오리 살처분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 이날 처분된 오리는 2만5천여마리였다 ⓒ매일노동뉴스 윤성희 기자

 

2003년 12월 충북에서 처음 조류인플루엔자가 발견됐습니다. 거의 매년 같은 패턴으로 조류독감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은 ‘살처분’이 유일합니다.

AI가 발생하면 해당 농가를 중심으로 반경 3km까지 위험 지역으로 규정합니다. 이후 가금류 이동을 금지하거나 방역 조치를 합니다. 그러나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중점적으로 하는 대책은 감염농가 반경 500m 이내 가금류를 모두 의무적으로 살처분 후 땅에 묻는 방식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독 AI(조류인플루엔자) 대책을 보고 받고 혼낸 이유는 ‘살처분’ 이외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위기 상황에서도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공무원들의 한계를 질타한 셈입니다.


‘2006년에 비해 10배가 넘는 살처분이 이루어진 2016년’

 

▲2011년 이후 조류독감 살처분 및 보상금 지급현황 자료출처:농림축산식품부, 기획재정부 ⓒ포커스뉴스 이희정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살처분 이외에 대책이 없다고 무조건 혼을 낸 것은 아닙니다. 조류독감의 전파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살처분되는 가금류와 피해 보상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때문입니다.

2006년 11월부터 2007년 3월까지 AI가 104일 동안 진행되면서 280만 마리가 살처분됐습니다. 2016년 발생한 AI로 인해 3000만 마리가 넘게 살처분이 되는데, 불과 50일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AI확산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수천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 되고 있습니다. 사상 최악의 피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취임 후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천천히 합시다’라고 말할 사건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입니다.


‘조류독감,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AI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살처분 숫자 [카드뉴스] 사상 최악의 AI, 한국과 일본 정부의 대응 ⓒ뉴스타파

 

 

지난해부터 발생한 AI는 두 가지 혈청형(H5N6, H5N8)이 동시에 발견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적한 것처럼 ‘바이러스 변종’ 등이 의심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국내에서 발견한 AI 바이러스가 야생조류 때문인지 여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2016년 11월 16일부터 12월 16일까지 한국이 1600만 마리를 살처분 하는 비슷한 시기에 일본은 56만 마리를 살처분했습니다. 같은 병원체에 의한 감염병인데 한국이 압도적으로 살처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위기 대책이나 방역 등이 부실했다고 봐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무총리를 컨트롤타워로 하여 완전 종료 시까지 비상 체제를 유지하면서 근본적인 해결 대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아직도 부족하다며 질책한 것입니다.

대통령이라면 위기 상황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을 질책한 것은 재난상황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국민이 고통 받는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매년 발생하는 조류독감을 근절하거나 초기에 막아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길 바랍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33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맞아 죽거나 굶어 죽거나 살해당했지요"

 

[6월 민주항쟁 30주년] 1987년 3월 이야기

17.06.08 21:11l최종 업데이트 17.06.08 21:11l

 

올해로 1987년 6월 항쟁 30주년을 맞았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오마이뉴스>가 공동기획으로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 1987 우리들의 이야기' 특별 온라인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전시회 내용 가운데, 가상 시민 인터뷰와 시대적 풍경이 기록된 사진 등을 갈무리해 독자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 편집자 말

사리암의 50대 비구니 스님
 

 1987년 3월 3일 고 박종철 영가 49재 천도식
▲  1987년 3월 3일 고 박종철 영가 49재 천도식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관련사진보기

 

 1987년 3월 3일 고 박종철 군의 49재를 맞아 서울 시내에서 진행된 '3. 3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
▲  1987년 3월 3일 고 박종철 군의 49재를 맞아 서울 시내에서 진행된 '3. 3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관련사진보기

 

 1987년 3월 3일 어깨동무를 하고 청계천을 지나고 있는 시민들
▲  1987년 3월 3일 어깨동무를 하고 청계천을 지나고 있는 시민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관련사진보기


오늘은 1987년 3월 3일입니다. 경찰 고문에 희생된 박종철 군의 49재 날이에요. 그런데 거리엔 최루탄만 날리네요.

 

조계사에서 범종단적으로 올리기로 했던 박종철 군의 49재가 결국 취소됐다는 소식이에요. 보이지 않는 압력에 밀려 조계사 대신 부산 괴정동의 작은 절로 바뀐 거지요. 경찰은 쫓고 시민은 쫓기는 험한 모습이 하루 종일 전국에서 펼쳐졌어요. 전투경찰이 도시를 봉쇄하고 거리를 장악해 버렸거든요. 온 세상이 깊은 슬픔과 매운 최루탄으로 뒤덮인 하루였어요.

지난 2월 7일 거행된 박종철 군 추모식 때에도 정말 서럽고 죄송했어요. 경찰이 절 입구에 진을 치고 있어 박종철 군 친척들도 못 들어왔대요. 스님들도 모두 자리를 슬며시 피했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박군의 어머니와 누나가 추모 타종만 겨우 울렸대요. 젊은 생명을 그렇게 보낸 것도 서럽고 억울한데 사람들이 모여서 추모도 하지말라는 건 어느 나라 법도란 말인가요.

부끄러워서 부처님 뵐 낯도 없네요. 사람이 사는 세상에선 사람이 해야할 예의와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나마 젊은 승려들과 시민들이 전국에서 최루탄을 뚫고 49재를 올렸다고 하니 고마움의 작은 빛이 비치는 것만 같아요. 나무 아미타불.

박종철 군의 마지막 길에 부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매운 최루탄 대신 온누리에 평화가 가득 차길... 두 손 모아 염원드려요.

형제복지원 사건의 20대 피해자
 

 1987년 조회를 끝내고 청소를 하고 있는 형제복지원 원생들
▲  1987년 조회를 끝내고 청소를 하고 있는 형제복지원 원생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관련사진보기

 

 1987년 3월 14일 명동 입구에서 총을 들고 시민을 검문 중인 경찰들
▲  1987년 3월 14일 명동 입구에서 총을 들고 시민을 검문 중인 경찰들
ⓒ 박용수·경향신문·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관련사진보기


형제복지원은 대한민국의 아우슈비츠였어요. 여기에 잡혀 온 다음부터 내가 본 것은 딱 하나예요. 아수라가 지배하는 아비규환의 생지옥.

여기가 처음 생긴 건 1975년이래요. 그러다 19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정부가 대대적으로 부랑아 단속을 하면서 수용인원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무자비하게 잡혀 왔대요. 밤늦게 귀가하던 회사원에서부터 바람 쐬러 나왔던 여성까지. 심지어 국가보안법 위반자도 잡아 왔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짐승 취급을 받았어요. 가격이 매겨진 동물처럼, 강제노역에 동원되는 가축처럼 말이에요. 여기서 우리가 먹을 수 있었던 것은 꽁보리밥에 소금 뿌린 깍두기와 썩은 전어 젓이 전부였어요. 우리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새벽부터 군가를 부르며 구보까지 해야 했어요. 그리고 나선 강제 노역에 동원되어야 했죠. 차라리 죄수들이 수용된 교도소가 여기보단 나을 거예요.

왜 우리가 매일 맞아야 했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많은 원생들이 맞아 죽거나 굶어 죽거나 살해당했지요. 12년 동안 5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죽은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게 암매장당하거나 해부용으로 팔려 나갔대요. 내가 살아남은 건 정말 천운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아직도 매일 밤 두려움에 떨고 있어요. 다시는 그런 데로 끌려가고 싶지 않아요. 전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니까요.
 

 1987년 3월 3일 '3. 3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 가두시위에 참가한 학생을 강제로 연행하는 경찰
▲  1987년 3월 3일 '3. 3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 가두시위에 참가한 학생을 강제로 연행하는 경찰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관련사진보기


* 사진 출처 : 박용수, 경향신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감옥에 있는 사람 내 놓아야 그게 적폐청산”

양심수 석방 추진위 발족, 37명 양심수 즉각 석방 촉구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7.06.08  14:24:42
페이스북 트위터
   
▲ 양심수 석방 추진위원회가 7일 프레스센터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제공 - 양심수석방추진위]

“감옥에 있는 사람 내 놓아야 그게 민주화다 적폐청산이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양심수 석방 추진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말 좀 전해달라”며 이같이 말했다.

촛불민심으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지만 여전히 37명의 양심수가 감옥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 6월 5일 현재 통합진보당 사건 관계자를 포함해 국가보안법 관련 25명, 노동운동 관련 12명 등이다.

추진위에 따르면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가 지금까지는 잘하고 있지만 사회적 한계 또한 존재한다”며 “문 대통령이 한계를 넘어서서 양심수 석방을 통해 해방과 인권의 정치를 펼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양심수를 감옥에 두고 있는 것은 문명사회에 있을 수 없는 야만”이라며 “양심수 석방과 더불어 사면복권, 수배해제 나아가 국가보안법이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민가협의 보랏빛 수건을 매고 함세웅 신부가 '국민에게 드리는 제안 말씀'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양심수석방추진위]

권영길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촛불의 힘이 문재인 대통령 시대를 열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적폐 청산의 첫 번째 발걸음은 양심수 석방”이라고 조속한 석방을 촉구했다.

조영건 구속노동자후원회장은 “양심수 석방은 대통령의 헌법적 권리”라며 “대통령이 결심하면 오늘이라도 당장 할 수 있으니만큼 국민의 제언에 귀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빈곤의 세계화』 저자인 미셸 초서도브스키 캐나다 오타와대 명예교수는 연대사를 통해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에 대하여 박근혜 정권이 어떤 행위를 하였는가를 잊어선 안 된다”며 “문재인 정부의 광범위한 개혁의 일환으로서 양심수 석방이 단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6.15여성본부 상임대표인 권오희 수녀와 민변 사무총장인 강문대 변호사가 낭독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적폐청산의 첫 번째 과제인 ‘양심수 석방’이 가장 용기 있는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 방한 중인 『빈곤의 세계화』 저자인 미셸 초서도브스키 캐나다 오타와대 명예교수가 연대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 양심수석방추진위]

특히 “지금 감옥에 갇힌 양심수는 노동자 생존권을 위해 앞장 선 사람들, 국가보안법으로 희생된 사람들, 공작정치의 올가미에 걸린 사람들, 시민사회운동 등으로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라며 30년전 6월항쟁으로 감옥문이 열린 역사적 사례를 들어 “30년 전 바로 그 때처럼 감옥 문을 열고 양심수는 석방 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우리는 각계의 뜻을 모아 ‘양심수 석방 추진위원회’의 결성을 뜨겁게 선언한다”며 “대한민국의 모든 양심수들이 석방되는 그날까지, 감옥 문을 활짝 여는 그 날까지 함께 할 것을 우리는 결의한다”고 밝혔다.

추진위는 적폐 청산, 양심수 석방을 위한 국민청원 ‘보라색 엽서’ 캠페인을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주말인 7월 8일 저녁 7시 광화문광장에서 다시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양심수 석방 문화제(가제)’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한편, 추진위는 지난 5월 22일 제안자 모임을 갖고 제안자 21인 명의로 ‘양심수 석방 추진위원회 제안문’을 발송했고, 이후 98명의 공동추진위원장이 참여해 이날 발족에 이르렀다.

   
▲ 6.15여성본부 상임대표인 권오희 수녀와 민변 사무총장인 강문대 변호사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제공 - 양심수석방추진위]

제안자로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함세웅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도법 조계종화쟁위원회 위원장, 김상근 경기도 교육연구원 이사장,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최병모 전 민변 회장, 권영길 민주노총 지도위원,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등이 참여했다.

정진우 NCCK 인권센터 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가 TED ‘양심수를 말한다’를 강연했고, 박래군인권재단 사람 소장이 발족 경과보고 및 사업계획을 발표했으며, 국민청원 캠페인 ‘보라색 엽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기자회견문(전문)>
6월항쟁이 감옥 문을 열었던 것처럼 촛불혁명도 감옥 문을 열어야 합니다

천만 촛불시민혁명은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이루었습니다. 주권자인 시민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촛불시민혁명으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지금 적폐청산의 첫 번째 과제는 ‘양심수 석방’이어야 합니다. 참된 민주주의와 인권을 더욱 활짝 꽃피울 때까지 촛불시민혁명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반민주적, 반인권적 행위로 인하여 고통을 겪은 피해자는 적지 않습니다. 박근혜는 감옥으로 갔지만 양심수는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이 감옥에 있습니다. 지금 감옥에 갇힌 양심수는 노동자 생존권을 위해 앞장 선 사람들, 국가보안법으로 희생된 사람들, 공작정치의 올가미에 걸린 사람들, 시민사회운동 등으로 감옥에 갇힌 사람들입니다.

과거 6월항쟁 당시 국민들은 '직선제 쟁취'와 함께 '양심수 석방'을 외쳤습니다.

군사독재정권은 무릎을 꿇었고 감옥 문은 열렸습니다. 그 이듬해까지 감옥 문을 열고 나온 양심수는 모두 1천여 명에 달합니다. 심지어 미결수도 석방되었습니다. 30년 전 바로 그 때처럼 감옥 문을 열고 양심수는 석방 되어야합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 동안 한국의 인권은 심각하게 후퇴하였습니다. 자유로이 말하지 못하고, 안전하게 생존하지 못하고, 노동자로서 단결하지 못하도록 억압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인간다움'을 빼앗겼습니다. 감옥 안에 양심수를 그대로 두고는 인권을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제 ‘양심수 석방'을 통해 한국이 다시 인권국가로 나아가겠다고 국내외에 당당히 선언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을 많은 국민들이 응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인권이 어떻게 바로 설지 세계 각국에서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촛불혁명을 이어받아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정의가 바로서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적폐청산의 첫 번째 과제인 ‘양심수 석방’이 가장 용기 있는 개혁입니다.

이에 우리는 각계의 뜻을 모아 '양심수 석방 추진위원회'의 결성을 뜨겁게 선언합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양심수들이 석방되는 그날까지, 감옥 문을 활짝 여는 그 날까지 함께 할 것을 우리는 결의합니다.

 

공동추진위원장 명단(총 98명)

함세웅(안중근기념사업회 이사장),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오종렬(5.18민족통일학교이사장), 권오헌(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조순덕(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상임의장), 조영건(구속노동자 후원회 회장), 이창복(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상임대표의장), 김상근(한국기독교 교회 협의회 비상시국 대책위원회 위원장), 최병모(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전회장), 이해동(전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배은심(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전 회장), 정동익(사월혁명회 상임의장), 박순경(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전상임고문), 박중기(추모연대 상임고문), 김정숙(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감사), 문정현(신부), 권영길(민주노총 지도위원), 김중배(전 문화방송 사장), 문규현(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대표), 윤한탁(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 명예의장), 이정이(615남측위부산본부상임대표), 임기란(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명예회장),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장남수(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정혜열(사월혁명회 공동의장), 조헌정(전태일재단 이사장), 안학섭(통일광장 회원), 권낙기(통일광장 대표), 한상렬(한국진보연대 상임 고문), 법 안(조계종 전 중앙종회 부회장), 청 화(조계종 전 중앙종회 부회장), 도 법(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 지 선(조계종 백양사 고불총림 방장), 시 공(실천불교승가회 상임대표), 효 진(실천불교승가회 집행위원장), 퇴 휴(전 조계종 교육부장), 일 문(실천불교승가회 공동대표), 혜 조(청련사 주지), 재 범(인월사 주지), 정진우(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소장), 김성복(NCCK인권센터 이사), 황필규(NCCK인권센터 서기 이사), 이 적(민통선 평화교회), 박철(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의장), 강은숙(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총무), 유시경(성공회교무원장), 최재철(천주교 수원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한만삼(천주교 수원교구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나승구(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이영선(천주교 광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권오준(천주교 춘천교구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나핵집(한국기독교장로회 열림교회), 남재영(기독교대한감리교 빈들교회), 박승렬(한국기독교장로회 한우리교회), 강해윤(원불교 봉도수위단원), 김선명(원불교 성주성지수호비대위집행위장), 김성근(원불교 상계교당), 오광선(원불교 궁동교당), 정상덕(전 원불교 개벽교무단 회장), 임진택(연출가), 신경림(시인), 윤민석(음악가), 박래군(인권재단 ‘사람’ 소장), 심재환(통일의 길 공동대표), 김주영(한국노총 위원장), 김동만(한국노총 상임지도위원), 이호윤(전국민주동문회 상임대표), 장 건(한반도 통일을 위한 평화행동 상임대표), 정연순(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한상권(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대표), 황인성(수원 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 김희선(여성독립운동단체기념사업회 회장), 이강실(전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 손미희(전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 권오희(615남측위여성본부상임대표), 김성은(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이사장), 김영순(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안김정애(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상임대표), 최진미(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 김한성(615남측위학술본부장/연세대교수), 장임원(민교협초대의장/중앙대명예교수), 김세균(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김민웅(성공회대 교수), 김애영(한신대 교수), 송주명(한신대 교수), 홍성학(교수노동조합위원장/충북과학대교수), 이규재(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의장), 정현찬(한국가톨릭농민회 회장), 문경식(한국진보연대 공동상임대표), 노수희(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부의장), 송무호(공안탄압저지시민사회대책위 대표), 박석운(한국진보연대 공동상임대표), 한충목(한국진보연대 공동상임대표), 강병기(민중의 꿈 상임대표), 김영호(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김순애(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윤기진(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 의장), 윤택근(민주노동자 전국회의 의장), 정종성(한국청년연대 상임대표), 김 식(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 (이상 무순)

(자료제공 - 양심수 석방 추진위원회)


(수정, 19:4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황조롱이 부부의 도심 속 육아 분투기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06/08 10:07
  • 수정일
    2017/06/08 10:0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윤순영 2017. 06. 08
조회수 11 추천수 0
 
버린 까치 집, 화분 등에 둥지, 빌딩과 유리창 충돌 위험 감수해야

육아 분업…수컷은 작은 새나 쥐 잡아 암컷에 전달, 암컷이 새끼에 먹여

 

크기변환_DSC_6052.jpg» 새끼에게 먹일 어린 들쥐를 물고 둥지로 향하는 황조롱이 암컷.

 

경기도 김포시 에코센터 건물엔 나무로 만든 탑이 세워져 있다. 이 탑에는 까치 둥지가 있는데, 지난 3월 13일 이곳에 황조롱이가 산란 터를 마련했다

 

황조롱이는 둥지를 틀지 못하기 때문에 맹금류나 까치, 어치 등이 버린 묵은 둥지를 대강 고쳐서 쓴다번식지와 먹이 터가 훼손돼 둥지 구하기 힘들어진 요즘 왕조롱이는 도심 속 빌딩이나 아파트 베란다의 흙을 담아 놓은 화분을 대체 둥지로 쓰는 일이 많다.

 

 

크기변~4.JPG»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 놓인 화분을 둥지로 활용해 황조롱이 새끼를 부화했다.

 

그러나 도심에서 먹이를 찾아야 하는데다 복잡한 빌딩의 방해, 투명 유리창에 자칫 부딪힐 가능성 등 위험요소가 즐비하다. 도시환경에 적응했더라도 도심 속 황조롱이는 생명을 담보로 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더욱이 새끼를 키우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크기변환_DSC_1457.jpg» 에코센터 탑의 둥지 주변에서 황조롱이 부부가 짝짓기를 한다.

 

크기변환_DSC_1539.jpg» 황조롱이 부부는 정해진 장소에서 수시로 짝짓기를 한다. 산란이 임박했다.

 

이곳 에코센터의 황조롱이 부부는 운이 좋다안전한 둥지와 더불어 한강과 농경지 그리고 야생조류공원이 한눈에 훤히 내려다보이고 사냥감도 아주 풍부한 곳이기 때문이다.

 

3월 26일, 자주 눈에 띄던 황조롱이 부부가 보이지 않는다알 품기가 시작되었다. 4월 23일부터는 암컷과 수컷이 번갈아서 가끔 보이고 둥지를 자주 들락거린다새끼가 태어난 것이다.

 

크기변환_DSC_4833.jpg» 둥지 밖을 물끄럼이 내다보는 황조롱이 수컷.

 

수컷은 사냥에 열중하고 새끼들에게 먹이를 뜯어 먹이는 몫은 암컷 황조롱이다. 수컷은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는 방법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암컷이 잘못되면 새끼들은 굶어 죽는다너무 높고 깊숙한 곳에 둥지를 틀어 새끼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크기변환_YSJ_0586.jpg» 가끔 까치가 텃세를 부려 공격해 오지만 개의치 않는다.

 

크기변환_DSC_4808.jpg» 황조롱이는 정지비행의 달인이다.

 

5월 15일, 황조롱이 부부가 바쁘게 움직인다. 황조롱이 새끼들이 제법 자랐나 보다. 20여 일이 지나면 새끼들은 스스로 먹이를 뜯어먹는다

 

수컷 황조롱이가 사냥에 성공해 먹이 전달 장소에 앉아 당당한 소리로 울어대면 암컷 황조롱이가 재빠르게 나타나 먹이를 가지고 가 새끼에게 건네준다. 

 

들쥐와 작은 새가 주된 사냥감이다황조롱이는 둥지를 중심으로 이동 동선이 정해져 있어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황조롱이 먹이 전달식 연속 동작

 

크변환_DSC_8028.jpg» 사냥감을 가지고 전달 장소로 날아가는 수컷 황조롱이.



크변환_DSC_8029.jpg» 날아가는 모습이 급해 보인다. 사냥에 시간이 걸렸나 보다.

 

크기변환_DSC_4665.jpg» 수컷은 먹이 전달 장소인 전봇대에 도착해 암컷 황조롱이를 부른다. 앉아있을 때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사냥감을 꽉 움켜쥐고 있다.

 

크기변환_DSC_4666.jpg»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사냥감이 되었다. 암컷 황조롱이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사냥감을 건네줄 준비를 한다.

 

크기변환_DSC_4679.jpg» 수컷 황조롱이는 암컷이 먹잇감을 잘 물고 갈 수 있게 사냥감의 목덜미를 부리로 물고 기다린다.

 

크기변환_DSC_4680.jpg» 쏜살같이 나타난 암컷 황조롱이.

 

크기변환_DSC_4682.jpg» 수컷 황조롱이가 신중하게 암컷 황조롱이가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자세를 잡는다.

크기변환_DSC_4683.jpg» 먹이 전달을 위해 수컷 황조롱이는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크기변환_DSC_4685.jpg» 암컷 황조롱이가 수컷 황조롱이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선다.

 

크기변환_DSC_4687.jpg» 먹이 전달은 의식을 행하듯 매우 신중하게 이뤄진다.

 

크기변환_DSC_4688.jpg» 암컷 황조롱이가 부리를 마치 입맞춤을 하듯 수컷황조롱이 부리 가까이 댔다.

 

크기변환_DSC_4689.jpg» 눈깜박할 새 암컷 황조롱이 부리로 먹이가 전달되었다. 사냥감은 항상 목덜미를 부리로 물고 나른다.

 

변환_DSC_4690.jpg» 먹이 전달이 끝나고 자세를 흐트러뜨리는 수컷 황조롱이.

 

크기변환_DSC_4691.jpg» 암컷 황조롱이가 먹이를 물고 힘차게 둥지로 향한다.

 

크기변환_DSC_4692.jpg» 수컷 황조롱이는 다시 사냥에 나선다.

 

5월 22일, 새끼가 둥지에서 나와 불안스런 몸짓으로 돌아다닌다어미는 새끼한테 먹이를 주지 않고 줄 듯 말 듯하며 둥지 밖으로 유인한다. 

 

새끼 황조롱이와 계속해서 신경전을 벌인다. 좀처럼 어미 뜻대로 안 되지만 결국 새끼는 먹이의 유혹에 둥지를 나선다. 

 

5월 25일, 첫 비행이 두려워 둥지에만 머물던 두 마리의 황조롱이 새끼가 용기를 내어 힘차게 하늘을 날았다. 어미가 유인하는데 이기는 새끼는 없다. 황조롱이 부부는 누구에게도 둥지를 내어주지 않고 내년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킬 것이다.

 

크기변환_DSC_4716.jpg» 어미 황조롱이(왼쪽)가 큼직한 쥐를 물고 새끼를 둥지 밖으로 유인하고 있다.

 

크기변환_DSC_5984.jpg» 용기를 내어 둥지 밖으로 치고 나가는 황조롱이 새끼.

 

황조롱이는 끝이 구부러진 윗부리와 날카로운 발톱, 예리한 눈을 갖고 있다. 땅 위의 목표물을 찾아 낮게 날거나 정지비행을 하다가 급강하하여 날카로운 발톱으로 사냥을 한다. 앉아 있는 새를 덮치기보다는 새가 날아오르는 순간에 사냥을 한다날개 길이는 68~76이며 암컷의 몸길이는 수컷보다 다소 큰 38, 수컷은 33로 날렵한 몸매를 자랑한다. 농경지나 도심에서도 관찰되는 텃새다.

 

윤순영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한겨레 환경생태 전문 웹진 <물바람숲필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미의 폭탄 증언...트럼프 '탄핵 열차' 시동

 
청문회 하루 앞두고 증언 "수사 손 떼고 내게 충성하라"...트럼프 탄핵 여론 힘 받나?
 
2017.06.08 08:06:00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 중단 압력이 사실이라고 서면 증언을 통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정부 내통 의혹을 수사하던 중 지난달 10일 전격 해임된 그는 8일 미 의회 상원 정보위에 출석, 이같은 내용의 증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코미 전 국장의 증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의 '몸통'인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코미 전 국장에게 "이 문제(러시아 내통 의혹 수사)에서 손을 뗐으면(let go) 한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언론 등을 통해 제기됐던 트럼프 대통령의 수사 중단 요구 외압설에 대해 핵심 당사자가 사실상 이를 인정하는 증언을 한 셈이다. 코미 전 국장의 발언이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사법 방해'로 탄핵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스스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사법 방해'로 인해 탄핵 직전까지 몰렸었다. 
 
러시아 내통 의혹 수사 중단 압력에 대해 '마녀 사냥(witch hunt), '가짜 뉴스(fake news)'라고 부인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코미 전 국장은 또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저녁 만찬 중 자신에게 "나는 (당신의) 충성심이 필요하다. 충성심을 기대한다"는 말을 했다고도 폭로했다. 그간 언론에서 등장했던 '만찬 메모'가 실재한다고도 밝혔다. 코미 전 국장은 지난 4월 11일까지 넉 달간 트럼프 대통령을 세 차례 만나고, 여섯 차례 사적인 통화를 했다고 주장했다. 
 
코미 전 국장은 당시 만찬에서 나눈 대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일종의 '비호 관계(patronage relationship)'를 조성하고자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자신을 매수하려는 듯한 행위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간 모든 의혹을 부인해 왔던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난다면 미국에서도 탄핵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기사를 끝까지 읽으셨다면…

인터넷 뉴스를 소비하는 많은 이용자들 상당수가 뉴스를 생산한 매체 브랜드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온라인 뉴스 유통 방식의 탓도 있겠지만, 대동소이한 뉴스를 남발하는 매체도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관점이 있는 뉴스 프레시안은 독립·대안언론의 저널리즘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저널리즘에 부합하는 기사에 한해 제안 드립니다. 이 기사에 자발적 구독료를 내주신다면, 프레시안의 언론 노동자, 콘텐츠에 기여하는 각계 전문가의 노고에 정당한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쓰겠습니다. 프레시안이 한국 사회에 필요한 언론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친일경찰의 반민특위 습격, ‘6.6사건’을 아십니까?

지난 역사 속에서 6월 6일은 치욕적인 사건의 날로 기록돼 있다
 
정운현 | 2017-06-07 12:33:4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흔히 6월 6일은 사람들에게 현충일로 각인돼 있다. 그러나 지난 역사 속에서 6월 6일은 치욕적인 사건의 날로 기록돼 있다. 1949년 6월 6일, 이 날은 친일경찰들이 주도해 '반민족행위자 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습격한 날이다. 이 사건으로 친일파 청산을 위해 구성된 반민특위는 두 달여 뒤인 1949년 8월 31일 자로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반민특위는 1949년 1월 8일 친일기업인 박흥식(전 화신 사장)을 시작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 검거에 나섰다. 이에 맞서 이승만 정부와 친일세력들의 방해공작도 날로 심화되어 갔다. 친일기업인들이나 경찰들은 광범위한 정보조직을 동원하여 방해공작을 전개하였는데 그들은 특위 요원들에 대한 중상모략은 물론 관제데모 조장이나 테러, 암살모의도 서슴지 않았다.

그해 5월 하순, 이승만 정부는 이문원, 최태규, 이구수, 황윤호 의원 등 4명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전격 구속하였다. 정부는 이들이 남로당 프락치라고 발표했다. 6월에는 다시 김약수 국회부의장을 비롯해 노일환, 서용길 의원 등 13명을 구속했다. 소위 ‘제2차 국회프락치사건’이다. 이들 소장파 의원들은 외국군 철수 등을 주장한 진보 성향이었는데, 노일환, 서용길 의원은 반민특위 위원이기도 했다. 구속 의원들에 대한 석방결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국회는 크게 위축되기 시작했다.

▲반민특위가 활동하던 1949년 당시 남대문로 2가(현 롯데백화점 맞은편 명동 쪽)에 있던 반민특위 청사. 특위 해산 후 국민은행 건물로 사용되었다.

이런 가운데 친일세력들의 기세는 날로 높아갔다. 6월 2일 친일세력들의 사주를 받은 관제 시위대가 국회 앞에서 특위 요원들을 비방하고 체포된 반민자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튿날 6월 3일, 이들은 특위 습격을 시도하였으나 특경대 요원들이 공포탄을 쏘며 해산시켰다. 시위 주동자는 친일경찰 출신의 서울시경 사찰과장 최운하로 밝혀졌다. 최운하가 구속되자 서울시내 각 경찰서의 사찰경찰 150여 명은 특경대 해산을 요구하며 집단사표를 제출하였다. 이들은 반민특위와 일전불사를 밝혔다.

사태는 날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6월 5일, 서울 중부서장 윤기병, 종로서장 윤명윤 등은 “실력으로 반민특위 특경대를 해산시키자”고 뜻을 모은 후 시경국장 김태선을 통해 내무차관 장경근의 허락을 얻어냈다. 장경근은 이승만 대통령의 사전양해를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이승만은 AP 기자에게 특경대 해산은 자신이 지시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경향신문, 1949.6.8.) 이날 밤, 반민특위 습격사건을 사전 모의한 이들은 이튿날(6.6) 새벽 중부서에서 선발한 50여명을 두 대의 쓰리쿼터에 태워 남대문로에 있던 특위 본부로 출동시켰다. 이것이 소위 ‘6.6사건’, 즉 반민특위 습격사건의 시작이다.

▲반민특위 습격 다음날인 6월 7일자 동아일보 2면에 실린 관련 기사. 제목에서 특위 ‘습격’ 대신 ‘돌연수색’이라고 쓴 것이 이채롭다.

이 사건을 지휘한 행동책임자는 중부서장 윤기병이었다. 그는 장탄한 권총을 꺼내들고는 경찰들을 지휘하며 출근하는 특위 요원 35명을 쓰리쿼터에 강제로 태워 사라졌다. 이들은 모두 중부서에 감금돼 심한 가혹행위를 받았다. 경찰의 반민특위 습격사건은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자행됐다. 반민특위 각 도 지부 사무실의 전화선이 모두 절단되었는데 경기도지부 사무실은 경찰에 의해 봉쇄되었다. 이날 권승렬 특별검찰부장은 경찰들에 의해 차고 있던 권총을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당시 합동통신사의 반민특위 출입기자였던 오소백은 그때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사건 직후 내가 권승렬 특검부장(검찰총장 겸임)을 만난 것이 특위 청사 2층에서였다. 온건한 인상을 풍기는 권 총장의 이날 모습은 상기되어 있었다. 권 총장이 차고 있던 권총도 경찰에 빼앗겼다는 정보를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확인할 길이 없었다. 입을 꽉 다문 권 총장은 침통한 표정이었다. 생각 끝에 인터뷰를 걸었다.
- 총장께서 권총을 차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까?
“틀림없다.”
- 그럼 총장께서 차고 있던 권총을 자진해서 누구에게 건네 준 일은 없습니까? 
“그런 일은 없다.”
- 그렇다면 총장의 권총이 지금 경찰 손에 들어가 있는 게 사실입니까?
“그렇다. 그건 사실이다.”
- 그렇다면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닙니까?
“상상에 맡기겠다.”
인터뷰는 끝났다. 어쩔 수 없이 통신(합동통신)에도 이렇게 문답식으로 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

▲권승렬 특검부장

그때의 일을 두고 오 선생은 생전에 필자와의 인터뷰(1999년 봄)에서 권 총장이 권총을 ‘빼앗겼다’는 식으로 쓴 것을 두고 “‘빼앗겼다’는 말은 없지만 읽어보면 결국 그런 얘기죠. 그때 통신에도 그렇게 보도했는데 왜냐하면 빼앗는 걸 보지도 않고 빼앗겼다고 하면 만일 ‘너 빼앗는 거 봤느냐?’고 하면 제가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그래서 당시 상황을 문답 형식으로 쓴 거죠. 그때 살벌한 분위기여서 내가 그건 생각해서 쓴 거죠”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사건은 곧 국회로 비화되었다. 국회에 불려나온 장경근 내무차관은 뻔뻔하게도 “특경대 해산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국회는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내각 총사퇴를 결의했으나 이미 국회는 힘을 잃은 상태였다. 결국 협상 결과 특위가 구속한 최운하, 조응선(종로서 사찰주임) 등 친일경찰과 연행된 특경대원들을 교환, 석방하는 것으로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그 와중에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이 안두희의 흉탄에 서거하면서 반민특위는 극도로 위축되었고 국회 내에서 특위 운영에 회의론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이승만 대통령이 AP 기자에게 특경대 해산은 자신이 명령한 것이라고 말한 내용을 다룬 6월 8일 자 경향신문 기사.

이런 틈을 타서 친여 세력들은 반민법 개정을 들고 나왔다. 때마침 법무장관을 마치고 국회도 돌아온 이인을 비롯하여 곽상훈 등은 1950년 6월 20일까지로 규정된 공소시효를 1949년 8월 31일까지로 단축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반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어수선한 틈을 타 개정안은 7월 6일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개정안이 통과되자 김상덕 위원장 등 반민특위 위원 전원은 항의 차원에서 그 다음날로 일괄 사퇴하였다. 반민특위 2기 위원장에 선임된 이인은 반민법 제정을 반대했던 장본인이었다. 결국 2기 특위는 잔무처리를 한 후 그해 8월 31일로 문을 닫았다.

반민특위는 반민법 공포(1948.9.22.)로부터 채 1년도 안 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특위 업무는 형식적으로는 대법원과 대검찰청에 이관되었으나 대부분이 무죄 또는 가벼운 자격정지형으로 끝나 결과적으로 친일파 척결은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출범 당시 특위는 7천여 명의 반민족행위자를 파악해 놓고 있었으나 실지로 특위가 취급한 건수는 682건(여자 60명 포함)에 불과했다. 채 1할도 다루지 못한 셈이다. 그나마 검찰에 송치한 건수는 559건, 석방 84건, 영장취소 30건, 기소 221건, 그리고 재판을 종결한 건수는 고작 38건에 불과했다.

(* 참고자료 : <증언 반민특위- 잃어버린 기억의 보고서), 정운현, 삼인, 1999)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170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6월항쟁의 두 젊은이를 기억하시나요

 

등록 :2017-06-07 14:06수정 :2017-06-07 22:01

 

30돌 앞둔 6·10항쟁 
 
전두환 사진 불태우던 이 청년 
1987년 6월10일 저녁 경남 마산에서 시위에 참여한 한 청년이 양덕파출소에 걸려 있던 전두환 사진을 떼어내 불태우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1987년 6월10일 저녁 경남 마산에서 시위에 참여한 한 청년이 양덕파출소에 걸려 있던 전두환 사진을 떼어내 불태우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마산 양덕파출소에 걸려 있던 전두환 사진을 떼어내 불태운 청년을 찾습니다.”

 

‘6월항쟁 정신계승 경남사업회’는 7일 “6월항쟁 30돌을 맞아 10일 저녁 6시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사거리에서 기념식을 열고, 창동사거리 바닥에 지름 1m 둥근 동판으로 만든 표석을 설치한다”고 밝혔다. 표석은 항쟁 당시 시위대가 마산 양덕파출소를 불태우고 이 과정에서 파출소에 걸려 있던 전두환씨 사진을 떼어내 불태운 한 청년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표석엔 또 3·15의거,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밑거름 삼아 6월항쟁이 일어났다는 뜻으로 ‘3월의 의기, 4월의 선혈, 5월의 희생이 6월 민주항쟁으로 꽃피다’라는 글이 새겨졌다. 디자이너인 김의곤 경남사업회 운영위원이 도안했다.

 

‘독재 타도, 호헌 철폐’의 열기로 뜨겁던 1987년 6월10일 저녁 6시 마산에서도 전국 동시다발 집회인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하지만 경찰이 행사장인 3·15기념탑 일대를 원천봉쇄하자, 참가자들은 거리행진에 나섰다. 시위대는 마산어시장, 불종거리를 거쳐 마산종합운동장 쪽으로 향했다. 마침 이날 마산종합운동장에선 대통령배 축구대회 한국과 이집트 대표팀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저녁 6시50분께 시위대가 마산종합운동장 앞을 지나가려 하자, 경찰은 최루탄을 마구 쏘며 이들을 막았다. 최루탄은 운동장 안으로도 날아갔다. 이집트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나뒹굴기 시작했다. 결국 이집트 선수들은 경기를 포기한 채 퇴장했고, 뒤이어 한국 선수들도 퇴장했다. 주심은 전반 34분 경기 중단을 선언했다. 관중들은 거세게 항의했고, 경찰은 이들을 해산시키려고 운동장 밖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흥분한 관중들까지 시위에 참여하면서, 시위대 규모는 3만여명으로 불어났다.

 

그날 마산 축구경기장에 최루탄 
시민 3만여명 거리시위 물결 
대통령사진 떼어내 불붙인 장면 
“6월항쟁 민심 상징” 표석으로

 

시위대는 운동장에서 500m가량 떨어진 양덕파출소로 몰려가 파출소를 불태우고, 이어 민정당 지구당 사무실까지 불태웠다. 양덕파출소를 불태우는 과정에서 한 청년은 파출소에 걸린 전두환씨 사진액자를 떼어내 불태웠다. 이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면, 20대 청년이 불타는 전두환 사진을 높이 치켜들고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이 청년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이날 마산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연행된 사람은 200여명에 이르렀다.

 

조명제 ‘6월항쟁 정신계승 경남사업회’ 사무처장은 “마산에선 6월항쟁 이후 노동자대투쟁까지 1987년 내내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전두환 사진을 떼어내 불태운 장면이 당시 상황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다고 판단해, 이 장면을 6월항쟁 30돌 기념 표석에 새기게 됐다. 이와 함께 전두환 사진을 불태운 주인공도 찾고자 한다”고 밝혔다.

 

경남사업회는 10일 창동사거리에서 표석 제막식에 앞서 이날 오후 4시 ‘제1회 대한민국 패러디·코스프레 축제’를 열고, 제막식 직후엔 기념공연 ‘6월에 서서’를 연다. 또 11일 오전 9시엔 창원시 마산합포구 만날재에서 ‘6.10㎞ 걷기대회’도 연다.

 

창원/최상원 기자 csw@hani.co.kr, 사진 ‘6월항쟁 정신계승 경남사업회’ 제공

 


 

6월항쟁 뜻 새겨 빈민 품은 약사

 

 

“우리 모두가 그처럼 살 수는 없지만 그가 남긴 뜻을 기리려 합니다.”

 

90년대 도시빈민과 노동자와 함께 하다 예상못한 일로 숨진 고미애(당시 28살)씨가 6월항쟁 30돌을 앞 두고 ‘고미애 약사상’으로 부활했다. 경기 부천시약사회는 지난 3일 부천시약사회 50 년사 출판기념회에서 ‘이웃사랑 고미애 약사상’을 시 상했다. 첫 수상자는 희망재단 아동학대 피해 예방기 금이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부천지부가 기금 200만원을 전달했다.

 

고씨는 부산 출신으로 1984년 숙명여대 약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1987년 5월 약대 학생회장으로 선출 되면서 6월항쟁에 본격 참여했다.

 

당시 같은 대학 음대 학생회장이었던 친구 최도은 (53)씨는 “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이후 고문없 는 세상과 군부독재 종식을 위한 6·10시위를 준비하 던 중 6월9일 연세대생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자 연세대에서 미애와 함께 시위를 이어갔다. 6월10일에 는 전체 숙대생 6천명 중 4천명과 함께 서울역 시위에 참여했다. 미애는 88년 졸업과 함께 지역 현장으로 갔 다”고 말했다.

 

숙대 약대 학생회장 고미애씨
그날 4천명 모인 서울역 시위 동참 
부천에 약국 열고 빈민운동 온힘 
후배 약사들 ‘이웃사랑 상’ 제정

 

고씨가 동료와 함께 문을 연 아람약국은 당시엔 드문 공영약국으로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었다. 도시빈 민이 많은 이곳에서 그는 낮에는 약국일을, 밤에는 부천 지역민주운동협의회 상임위원과 주거권실현을 위한 부 천연합의 상담실장으로 일했다. 매주 1차례씩 도시 빈민 자녀를 위한 새롬공부방 자원교사로도 일했다. 고씨는 1992년 겨울 구정날 당번 약국을 지키던 중 외국인 노동 자의 폭력에 의해 숨졌다. 당시 부천주거연합 의장이던 지성수 목사(오스트레일리아 거주)는 “사회적 약자에 대 한 인간애가 가득한 그를 나는 ‘까칠한 성녀’라고 했다. 그가 비명에 갔을 때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있을까’에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고씨의 대학 후배인 부천시 약사회 부회장인 윤선 희(50)씨는 “6월항쟁을 통해 겪은 것을 실천하고 약자 들과 소통하려던 선배의 뜻을 항쟁 30년 만에, 그리고 돌아가신 지 25년을 계기로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부천/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6월항쟁 30년, 이젠 한반도 평화다"

 1987년 6월항쟁 학생운동 주역 우상호 의원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7.06.07  17:25:15
페이스북 트위터
   
▲ 1987년 6월항쟁 당시 학생운동 주역이었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우 의원은 "이제는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남았다"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30년전 6월항쟁은 큰 정치변동을 수반하는 대중투쟁이었다. 그리고 촛불집회로 정권이 교체됐다. 이제는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남았다."

1987년 6월 10일. 60~70년대 박정희 군사독재를 이어받은 전두환 독재정권이 몰락을 자초하던 때, 국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거셌다. 그러나, 6월항쟁은 정치세력의 분열로 민주주의를 뿌리내리지 못했다. 30년이 흐른 2017년 촛불혁명은 6월항쟁이 뿌린 민주주의 씨앗으로 정권교체라는 꽃을 피워냈다.

민주주의 역사 30년. 그 한복판에 우상호가 있었다. 1987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이던 그는 대학생 본연의 모습으로 6월항쟁에 뛰어들었다. 30년 뒤 2017년 3선 국회의원으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맡아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교체하는 데 앞장섰다. 

"민주주의라는게 절차적으로 잘 진전되더라도 싸워서 지키지 않으면 언제든 무너지는 것"이라던 우상호의 눈빛은 30년 동안 민주주의의 제단 앞에 살아남은 청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30년전 평범한 22살 대학 2학년생 이한열 열사의 희생이 지금의 우상호를 만들었다.

"광주학살로 정권잡은 전두환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은 시대과제이고 시대정신이었다. 나 혼자 할 수 없었지만 나라도 같이 바꾸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이번에 원내대표가 되니까 피할 수 없었다. '최순실 게이트'를 앞에 두고 이런 정권을 유지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시대상황은 평범한 22살 청년이 언제든 생명을 잃을 수 있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느 때든 힘들 수 있는 것을 웅변으로 보여준 것이다. 본인의 희생을 통해서. 내가 쓰러져야할 자리에 나 대신 쓰러진 후배라는 의미가 강하다. 부채의식으로 30년 동안 이한열 기념사업을 해왔다."

어쩌면 시대가 우상호를 민주주의의 길을 걷도록 운명지었을지 모른다. "30년전 그때 나는 광장지도부였는데, 이번에는 원내지도부가 돼서 다시 탄핵을 추진하다보니까 '야 내 운명이 뭐 이런 일을 앞장서게 하는가'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상호는 그토록 몰아내고 싶던 민주주의의 적, '전두환.노태우'가 거주하는 서대문구 지역구 국회의원이다. "속이 상할 때도 있다"는 그는 "인적청산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아니고 그 사람이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에서 밀어내는 게 민주주의 정착 과정 아니냐"고 말한다.

   
▲ 1987년 7월 9일 이한열 열사 장례식. 당시 우상호 총학생회장이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들었다. 왼쪽 태극기를 든 이는 총학생회 사회부장 우현. 지금은 배우다. [사진제공-우상호 국회의원실]

그의 평화적 민주주의 정착의 꿈은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 시절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우상호는 '다가가는 총학생회, 모여드는 총학생회'라는 모토를 직접 지었고,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평가는 엇갈리지만 1986년 5.3인천투쟁, 건대투쟁에서 나온 폭력을 거둬들이고 비폭력으로 민주사회를 건설하려던 의미였다.

"엄혹한 현실에서 독재정권과 싸우려면 선도적 투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학생운동은 문제제기집단이다. 이런 의식들이 강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문제해결집단이 되려면 대중노선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폭력에서 비폭력으로, 운동권 조직 중심에서 학생회 중심으로, 대중노선이 6월항쟁을 가능케한 중대한 노선변화였다. 그리고 그 노선이 성공했다."

'다가가는 총학생회, 모여드는 총학생회'는 지금의 정치에도 유효해 보인다. 지난해부터 있던 비폭력 촛불집회가 국민을 광장에 모으는 계기가 됐고, 결국 정권교체라는 결실을 맺었기 때문. 

하지만 우상호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희망한다. 그는 민주주의는 소통과 참여라고 정의했다. "민주주의 핵심 요체는 소통과 참여이다. 이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관건이 있다. 감시받는 권력은 절대 부패해지지 않는다. 소통과 참여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또다른 감시체계가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6월항쟁 30년 그리고 촛불혁명으로 이뤄낸 평화적인 정권교체의 현실 앞에서, 우상호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시대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80년대 학생운동을 하면서 자주민주통일을 외쳤던 우리 세대의 소명이다. 민족적 최대 과제인 한반도 평화통일에 기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노력해야 한다. 지금 핵위기로 조성된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정착하는 길에 앞장서려고 한다."

   
▲ 지난 5일 국회의원실에서 우상호 국회의원과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남북관계 문제를 보수가 이념시대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같은 진보진영도 이념의 잣대로 볼 문제가 아니다. 무엇이 우리 국익인가"라며 "정경분리원칙을 남북관계의 기본원칙으로 재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굉장히 많은 복잡한 방정식이 필요한 것 같지만, 꽉 막혀있을 때는 단순한 문제부터 하는 것이 좋다"며 "문재인 정부가 정경분리원칙으로 남북관계 문제를 푸는 걸음을 떼도록 정치권 차원에서 뒷받침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에서 정경분리원칙이 고독한 외침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럼에도 우 의원은 "북한이 어떤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가를 잘 쳐다보면서 그런 북한이 갖는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게 해주고 북한이 국제적인 질서에 순응하면서 대화의 현장에 나오고 그 속에서 실용적인 협상을 통해서 단계적인 핵 폐기정책으로 가도록 국제사회가 공조해야 한다"면서 민간차원의 교류, 인도적 차원의 접촉이 하나의 방법이 된다고 제시했다.

그렇지만 며칠 남지않은 6.15공동선언 17주년을 남북관계 개선의 첫발로 보지는 않았다. 북한이 새로운 정부에 관심을 기울일만한 시점에 조금더 신뢰회복조치를 취한 뒤,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는 시점은 8.15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때 문학도로 시집 한 권을 내는 평범한 여고 국어교사이고 싶었지만, 광장에서 제도권 정치인으로 민주주의 30년을 살아온 '촌놈'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난 5일 여의도 국회의원실에서 <통일뉴스>가 만났다.

다음은 우상호 의원과의 인터뷰 전문.

   
▲ 우상호 국회의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통일뉴스 : 6월항쟁 30년이다. 당시 상황과 역할 그리고 그에 대한 느낌은 어떠했는가. 

■ 우상호 의원 : 30년 전 6월항쟁도 큰 정치변동을 수반하는 대중투쟁이었다. 그때는 제가 광장지도부였는데. 이번에 원내지도부가 되서 다시 탄핵을 추진하다보니까 개인적 소회는 '야 내 운명이 뭐 이런 일을 앞장서게 하는가' 싶었다. 두 번째는 민주주의라는게 절차적으로 잘 진전되더라도 싸워서 지키지않으면 어제든 무너지는 것이구나라는 교훈을 느꼈다. 그때 당시 우리는 후배세대에 만큼은 이런 나라 물려주지 말자고 결의를 했는데, 이번에 고등학생들이 거리에 나오는 것을 보고 착잡했다. 이제 나는 기성세대가 됐으니까 면목도 없고, 정권 교체가 잘 돼서 보람은 있었지만, 촛불집회에 있는 동안 심란했다. 엄청난 항쟁이 일어나서 기쁘다는 느낌은 젊은 세대들이고, 저같은 사람은 정치하면서 이런 걸 막지못한 것은 우리의 책임이라는 죄책감도 있다.

□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지만 왜 투쟁에 뛰어들어야 했는지, 어떤 고민이 있었나.

■ 광주학살로 정권잡은 전두환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은 시대과제이고 시대정신이었다. 시대정신은 부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그 일을 하느냐 아니냐를 보면 1,2학년 내내 문학전공이고 시인되려고 해서 내 일이 아니다 운동권이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군대를 다녀와서 이건 내일이다. 나혼자 할 수없지만 나라도 같이 바꾸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는 게 당연했다. 개인문제를 넘어서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원내대표가 되니까 피할 수 없었다. '최순실 게이트'를 앞에 두고 이런 정권을 유지할 수없는 일이었다. 저같은 경우는 당위로 스스로 규정하고 움직이는 버릇이 있어서 30년이 이어졌다.

□ 당시 학생회장으로 이한열 열사 부검에 학생대표로 참관했다. 이한열 열사는 어떤 의미이며, 현재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인가.

■ 이한열 군은 잘 아시지만 그 시대의 잣대로 보면 평범한 22살의 대학 2학년 학생이었다. 운동권 핵심도 아니고. 좋은 취지에서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면서 후배들을 잘 보살피는 청년이었다. 역으로 말하면 당시 시대상황은 평범한 22살 청년이 언제든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한열의 의미는 저는 거기에 주안점이 있다. 평범한 22살 대학생이 언제든 어느 때든 힘들 수 있는 것을 웅변으로 보여준것 이다. 본인의 희생을 통해서. 그런게 시대의 비극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쓰러져야할 자리에 나 대신 쓰러진 후배라는 의미가 강하다. 부채의식으로 30년 동안 이한열 기념사업을 해왔다. 그런 시대를 끝내야 하는 당위감이 당시에 평범한 대학생들 사이에 퍼진 것이다. 만약 총학생회장이나 투쟁위원장이 쓰러지면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을텐데, 그런게 30년전 이한열이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라고 해석한다.

□ 6월항쟁 30년이지만, 아직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잔재가 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보는가.

■ 우리가 왜 정권교체에 집착했느냐는 과거 반민특위이나 5공청산도 있지만, 결국 주도권 문제라고 본다. 낡고 부패한 세력에게 이 나라 주도권을 주면 언제든 후퇴할 수 있다. 잔재청산이라는 것은 제도적 측면, 인적 측면도 있는데 저는 문화와 관습으로 정착시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주도세력 교체가 정권교체였다. 문 대통령이 정권 초기에 개혁드라이브를 걸고 있는데 대통령이 시대정신을 잘 읽고 있다고 본다. 

내란죄로 처벌했어도 여전히 제 지역구인 연희동에서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이 떵떵거리고 살고있고 그걸 보면 솔직히 속이 상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인적청산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아니고 그사람이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에서 밀어내는게 민주주의 정착 과정 아닌가.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지금은 오히려 빈부격차 해소라는 소위 경제권력 독점자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 분단으로 인해서 기득권 층이 강화되는 측면이 여전히 있어서 그런 측면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정치세력 안에서 적극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잔재 청산이라는 개념보다는 새로운 나라 건설에 매진하는게 필요하다. 새로운 나라 건설의 과제가 무엇이냐는 데에 여당과 대통령 주변 권부있는 사람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경제민주화와 한반도 평화 두 개의 과제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 1987년 당시 총학생회장을 하면서 '다가가는 총학생회, 모여드는 총학생회'가 모토였다. 그러한 생각이 6월항쟁에 얼마나 기여했다고 보는가.

■ 그 모토가 상징하는 것은 대중노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그 전해에 있던 5.3인천투쟁, 건대투쟁으로 상징되는 것은 조직화된 운동권의 선도투쟁이 주요노선이었다. 엄혹한 현실에서 독재정권과 싸우려면 선도적 투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학생운동은 문제제기집단이다. 이런 의식들이 강했다.
 
저는 우리가 문제해결집단이 되려면 대중노선으로 가야한다. 그래서 운동권 조직만의 은밀한 투쟁보다는 공개적으로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대중노선으로, 실질적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려야한다는 노선이었다. 그렇게 일관되게 움직이고 학생회 중심으로 투쟁위원회나 별도의 비합조직 중심이 아니라 대중적인 노선으로 전환하는 것이 주효했다. 그래서 화염병 시위, 각목시위도 없앴다.

당시 골수운동권 조직은 반발해서 저에게 반성하라고 공개대자보를 붙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폭력에서 비폭력으로, 운동권 조직 중심에서 학생회 중심으로, 대중노선이 6월항쟁을 가능케한 중대한 노선변화였다. 그리고 그 노선이 성공한 것이다.

이번 촛불집회도 평화적인 집회로 계속 유지한 것이 굉장히 많은 국민들과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않았는가. 여전히 대중노선은 유효하다. 지금 학생회나 여러 사회, 노동운동 그룹을 보면 자신들의 노선을 반성하기 보다 대중이 보수화됐다고 오히려 대중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더 많은 사람의 참여를 이끌내지 못하고 있다면, 운동진영의 내부 노선과 형식 방법상 문제를 드러낸 것 아닌가. 대중이 보수화됐다는 관점이 옳다면 어떻게 천 몇백만명이 몇 개월간 촛불집회를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 점에서 문제의 본질을 자꾸 대중탓으로 넘기는 것은 좋지 않다. 

우리 당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보수화됐다고 생각하고 정당을 운영해왔으면, 우리가 어떻게 50%의 지지율을 얻을 수 있었겠는가. 결국 문제의 근본은 자기 내부에서 찾는게 가장 바람직하다.
 
제가 학생회장때 뿐만 아니라 원내대표가 되어서도 우리 당의 운영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꾼 것이 내분을 줄이고 시대적 과제에 집중하게 만드는 요인이 됐던 것처럼 항상 반성과 성찰은 내부로부터, 내부를 향해 집중하는게 좋다.

□ 6월항쟁과 촛불혁명으로 만들어가야 할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소통과 참여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불통, 소수집단의 전횡으로 귀결되서 민주주의를 훼손했다. 핵심은 소통이다. 결국 위임받은 권력자는 항상 주인인 국민의 뜻을 살피기 위해서 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권력의 운용도 끌고가는 방식보다 국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전환해야한다. 

유럽의 민주정치를 보면 소통과 참여에 둔감한 정당이 선거에 패배한다. 유럽의 각 나라 특성은 있지만 소위 좌파정당을 보면 이런 문제에 등한할 때 항상 선거에 지는 것을 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민주주의 핵심 요체는 소통과 참여다. 이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관건이 있다. 권력자가 되면 경청보다 지시를 선호하고 그런 관행이 생긴다. 그러니까 감시를 해야한다. 감시받는 권력은 절대 부패해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소통과 참여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또다른 감시체계가 중요하다고 본다.

□ 38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아직까지 좋다고 할 수 없다.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가.

■ 원내대표에 출마할 때 가진 목적의식이 세 가지였다. 그 중 하나가 우리같은 운동권 세대에게 씌워진 나쁜 이미지, 배타적이다, 무능하다 이런 이미지를 극복해야겠다고 고민했다. 그 이전에 우리가 국민의 기대를 받고 정치권에 진출한 이후로 제대로 성과를 못냈다. 기존 정치 이분법 극복도 성공하지 못했고, 계파 정치 극복에도 기여하지 못하고, 개혁과 진보의 길에 견결히 투쟁하지 못했다. 그래서 실망하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다행히 원내대표를 하면서 그런 이미지를 일부 극복할 수 있어서 보람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칠 수 없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이재명, 안희정 두 사람이 나와서 바람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그분들 다 동세대 정치인들이다. 끊임없는 도전, 성찰, 안주하면 안된다. 우리가 기득권의 틀에 안주하면 바로 국민이 우리를 버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1년간 활동에 대한 국민의 긍정적 평가를 토대로 또다른 시대과제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들이 다시 옛날 잃어버린 기대를 해주시리라 확신한다.

   
▲ 우상호 의원은 6.15 공동선언일 대신 8.15 광복절을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시점으로 잡았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한반도 평화통일을 만들어가는데 있어 6월항쟁이 주는 현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 시대적 과제가 양극화, 결국 경제정의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왜곡된 부의 독점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사실 재벌 및 대기업의 전횡, 불공정을 해결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또 한편으로 한반도 평화에 기여해야 한다. 그것은 시대적 과제이다. 

특히, 80년대 학생운동을 하면서 자주민주통일을 외쳤던 우리 세대의 소명이다. 사실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일은 지역구에 도움은 안된다. 갈등요소가 있고 남남갈등요소가 있고 사상적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어려운 일을 감내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정치하는 이유가, 목적이 과연 존재하는가. 민족적 최대 과제인 한반도 평화통일에 기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노력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우리세대가 앞장서야 한반도 평화가 더 빨리 정착하지 않는가 소명의식을 갖고 있다. 지금 핵 위기로 조성된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정착하는 길에 앞장서려고 한다.

□ 분단의 세월이 이어지고 있다.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민족의 활로와 통일에 대한 비전이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실현시켜 나갈 것인가.

■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일을 하면서도 계속 주장했다. 정경분리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개성공단 철수할 때 엄청난 미래가치 손실을 봤다. 제가 항상 예를 드는게 중국이라는 나라가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이고 한국전쟁에 참여한 나라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정경분리원칙으로 중국과 수교하고 경제협력하고 이끌어온 결과, 한반도 평화정착에도 도움이 되고, 경제적 부의 창출에도 상당히 도움된거 아닌가. 그게 국익이다. 

남북관계 문제를 보수가 이념시대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같은 진보진영도 이념의 잣대로 볼 문제가 아니다. 무엇이 우리 국익인가. 무엇이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에 기여하는 일인가. 여기서 지켜야 할 원칙이 정경분리원칙이라고 본다.

왜냐면 북한 체제가 빠르게 변화할 가능성은 낮고 북한의 핵을 반드시 포기시켜야 하지만, 포기까지 가는 과정이 지난하다. 그 과정에서 이념적인 틀을 갖고서는 문제 해결도 어렵고 한반도의 전쟁위기가 더 고조된다는 점에서 정경분리원칙을 남북관계의 기본원칙으로 재설정해야 한다. 

민간교류와 다양한 형태의 남북교류를 활성화시켜서 남북간 불신을 불식하고, 특히 남남갈등요인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국회의장과 원내대표가 모여서 8.15 계기 이산가족상봉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정치권이 각 당을 떠나 인도적 문제부터 하자는 포석에서 잘 된거라고 본다.

굉장히 많은 복잡한 방정식이 필요한 것같지만, 꽉 막혀있을 때는 단순한 문제부터 하는 것이 좋다. 저는 문재인 정부가 정경분리원칙으로, 남북관계 문제를 푸는 걸음을 떼도록 정치권 차원에서 뒷받침할 계획을 갖고 있다.

□ 정경분리원칙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국면에서 그것이 가능할까.

■ 가능하다. 결국 그동안 미국과 일본, 한국이 추진해 왔던 정책은 기본적으로 북한을 고립시켜서 압박 속에서 북핵을 해결하거나 체제를 무너뜨리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것 아닌가. 지금도 미국은 체제를 무너뜨리는데 성공 못하고 핵을 포기시키는데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러면 단계적으로 먼저 북한을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선제적 정책을 펴야한다.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끌어내는데 성공한다면 긴장이 더 완화된다. 그 다음에 국제적인 제재가 완화될 것이고 이런 것들은 서로 얽혀있는 문제이다. 무엇이 먼저냐 무엇이 나중이냐를 따지면 문제가 안풀린다. 상대방이 변해야 나도 변한다는 방식으로 어떻게 원하는 외교적, 경제적 성과를 얻어내는가. 

그런 점에서 본다면 북한이 어떤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가를 잘 쳐다보면서 그런 북한이 갖는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게 해주고 북한이 국제적인 질서에 순응하면서 대화의 현장에 나오고 그 속에서 실용적인 협상을 통해서 단계적인 핵 폐기정책으로 가도록 국제사회가 공조해야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지금 민간차원의 교류, 인도적 차원의 접촉 등을 시작하지만, 그런 것이 북한의 위기의식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 연유에 압박과 병행해서 궁극적인 대화의 장에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야한다. 가능하다고 본다.

□ 남북민간교류를 말씀하셨다. 북한은 6.15민족공동행사를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시금석으로 삼는 듯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 사회각계 각층이 10년간 막혀있던 여러가지 개혁정책이나 자신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여러 목표를 향해 뛰는 것은 당연하지만 너무 서두르면 안된다. 보수정권 10년 간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것도 요인이지만 실제로 그사이 북한이 끊임없이 핵과 미사일을 진전시켜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없던 걸로 생각하며 접근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남북간 가시적 성과는 8.15를 목표로 하는 것이 맞다. 며칠 안남았는데, 6.15를 가지고 어떻게 지금 첫 시금석으로 삼겠는가. 오히려 국정원에 새로운 대북전문가도 포진됐고 또 남한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서 북한도 조금 관심을 기울일만한 시점에 조금더 신뢰회복조치를 취하고, 가시적인 성과는 물론 6.15남측위는 조급하겠지만, 적어도 8.15를 가시적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는 목표시점으로 정하고 접근하는게 현명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박근혜와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무엇이 달랐나?

 
박근혜 주변에는 권력자가 문재인 대통령 옆에는 국가유공자가 앉았다
 
임병도 | 2017-06-07 09:07:2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어제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첫 번째 현충일 추념식이 열렸습니다. 생방송으로 현충일 추념식을 시청한 시민들은 ‘작년 박근혜 정부와는 너무나 달라졌다’라는 소감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2016년 박근혜 정부의 현충일 추념식과 2017년 문재인 정부의 현충일 추념식,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지 정리해봤습니다.


‘박근혜 주변에는 권력자가 문재인 대통령 옆에는 국가유공자가 앉았다’

작년 제61회 현충일 추념식과 2017년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대통령 주변에 누가 앉았느냐입니다.

작년 박근혜 주변에는 통상 4부 요인이라 불리는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박승춘 국가보훈처장과 안철수 전 대표 등 정당 대표들이 앉았습니다.

그러나 올해 문재인 대통령 내외 주변에는 지뢰 사고로 오른쪽 발목을 잃은 김경렬 씨와 2년 전 비무장지대 지뢰도발 때 부상을 입은 김정원·하재헌 중사 등 국가유공자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대통령 주변은 항상 권력자와 힘이 있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 곁에 앉아 있는 사람을 권력 실세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번 현충일 추념식만 보면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힘 있는 사람들은 국가유공자들인 셈입니다.


‘박근혜는 서 있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유공자에게 걸어갔다’

매년 현충일 추념식에는 대통령이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작년과 올해 국가유공자 증서 수여식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국가유공자에게 다가갔다는 점입니다.

작년에는 박근혜는 서 있고, 국가유공자들이 직접 박근혜씨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국가유공자들은 서 있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걸어가 국가유공자들에게 증서를 전달했습니다.

다른 행사라면 대통령 표창을 받기 위해 수상자들이 걸어가는 것이 의전에 맞습니다. 그러나 현충일 추념식에서의 국가유공자 증서는 대통령이 상장을 주는 주체가 아닙니다. 대통령은 그저 대한민국을 대표해 국가유공자 증서를 전달하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예의와 존경을 받을 사람은 대통령이 아닌 국가유공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유공자들을 향해 걸어가서 증서를 전달하는 행위는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유공자에 대한 증서조차 대통령이 내리는 상처럼 여겨왔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의전으로 돌아갔다고 봐야 합니다.


‘외교 행사가 아닌 진정한 현충일의 의미를 보여준 ‘추념사’

바른정당 오신환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 한미동맹 무시하고 북한 도발에는 눈 감아”라는 논평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를 비난했습니다.

작년 박근혜의 현충일 추념사에는 처음부터 ‘UN군 참전용사와 주한미군 장병의 헌신에도 깊이 감사드린다’라며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애국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다’라며 국민들의 애국심을 수차례 치켜세웠습니다.

박근혜씨는 작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실 개발을 비난하며 한미동맹과 국가안보를 중요한 의제로 다뤘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뒤집힌 현실은 여전하다’라며 독립운동가와 파독광부, 파독간호사, 여공 등 국민들의 자발적인 애국심을 알렸습니다.

현충일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희생한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날입니다. 추념사에 북한 핵 개발과 한미동맹이 없다고 비난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국민 개개인의 애국심을 치하하고, 애국의 길이 정정당당한 나라를 강조함으로 기초가 튼튼한 국가 안보를 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근혜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에서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아이엠피터는 그럴 때마다 저들이 말하는 ‘애국으로 희생된 보상을 누가 해줬는지 저들은 알고 있을까?’라며 안타까워합니다.

월남전 전우회와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고엽제 전우회가 있습니다. 월남전에 살포된 고엽제 피해자들을 보상하는 법은 1993년에 제정됐지만, 국내 비무장 지대에서 벌어진 피해자 보상은 2000년 2월부터입니다. 제대로 된 고엽제 피해보상은 국민의 정부였던 김대중 대통령 시기에 완성됐다고 봐야 합니다.

가스통을 들고 집회를 벌여 물의를 빚었던 북파공작원들을 가리켜 ‘특수임무수행자’라고 말합니다. 특수임무수행자들을 보상하는 법은 참여정부 시절 제정됐고, 이들은 2004년부터 보상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해상보안청 경비정과 항공기에 맞서 자발적으로 독도를 지켰던 ‘독도의용수비대’가 있었습니다. 이들의 공로를 인정하고 지원하는 법안은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제정됐습니다.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종북으로 나라가 망할 것 같지만, 국가유공자를 가장 극진하게 예우한 정권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였습니다.

말로만 국가안보를 강조하며 나라를 위해 희생한 애국자를 버리는 정권과 제대로 된 보상과 예우로 국가유공자를 대접하는 정권을 구별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자를 극진하게 예우하는 정권이 진짜 국가안보를 생각하는 정권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336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러 상원의원, 북미전쟁은 필연적 남은 것은 '언제냐'

러 상원의원, 북미전쟁은 필연적 남은 것은 '언제냐'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06/07 [05:42]  최종편집: ⓒ 자주시보
 
 

 

 

6일 러시아 관영언론 스푸트니크 보도에 따르면 조선(북한)과 미국간 신경전은 어느 순간 핵미사일을 포함해 실제 전쟁으로 불시에 번질 수 있다며 문제는 누가 먼저 '터트리느냐'에 있다고 러시아 국제문제 전문가 글례브 이바셴초프 상원 의원이 주장했다.

 

그는 "극동 핵전쟁, '만일'이 아니라, '언제'가 관건이다."며 지금 이대로 가면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세계 정세는 지금 풀지 못하는 매듭과 같다. 경제 관계가 너무 꼬여 있어 특히 북한 같은 소국 한 나라를 상대로 '수술학적으로 얇은' 군사작전을 실행하기란 그냥  불가능한 일이다"라며 "(터지면) 순간 도미노 효과가 작동할 것"이라고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즉, 한반도 전쟁은 필연적으로 도미노효과를 일으켜 극동 전체가 핵전쟁에 휘말려들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사실, 북은 이제 북미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면 미 본토에서 전쟁을 치를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미국 본토까지도 필히 핵전쟁으로 초토화를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소폭탄을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만 있으면 영토의 크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국이건 대국이건 지상은 모조리 파괴되고 말 것이다. 살아남을 사람이 얼마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은 전 주민이 일년 이상 생활할 수 있는 지하도시를 건설해놓았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미국이 핵공격을 가하면 북은 주저 없이 핵으로 미국을 소멸하겠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상원 국회의원의 진단에 따르면 이런 전쟁이 점점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언제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심각한 정세 속에서 우리가 숨쉬며 살고 있는가.

 
트위터 페이스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문재인 '통합'에 '노선 대결'로 답한 조선일보

 

조선일보 "드디어 대미 자주파 등장"… 사드 논란 본질은 '불투명성'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7.06.07 08:31
 

문재인 대통령은 그 어느 대통령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임기를 시작했고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6일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보여준 국민통합 의지가 높은 평가를 받은 일도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은 보수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던 ‘애국’이란 단어를 반복 언급하면서 한편으로 국가주의와 독재의 희생양이란 관점으로 해석되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 봉제공장 여성 노동자 등도 함께 언급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진보와 보수의 역사를 이 추념사 안에서 ‘통합’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국론의 ‘통합’은 어느 정치인이나 말하는 것이지만 이루기가 거의 불가능한 과제이다. 그런 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통합의 적임자이다. 전임 정권이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아니 오로지 상상 속에서나 있는 일로 믿었던 방식으로 편 가르기와 배제를 감행한 끝에 자멸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언제나 장담하는 ‘적폐청산’은 나라의 이념 지형을 더 왼쪽으로 기울이라는 요구가 아니다. ‘정상화’를 하라는 것이다. ‘정상화’가 함축하는 중도적 가치는 좌측으로도 우측으로도 쏠리지 말아야 한다는 기계적 균형감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러한 국민의 요구 덕에 문재인 대통령의 ‘통합’ 메시지는 다른 정치인들의 그것과는 다른 설득력을 가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과연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대로 향후 정국이 운용될 것인가는 의문스럽다. 당장 외교안보 쟁점을 둘러싼 노선갈등 문제가 수면 아래에 잠복해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일부 차관급 공직자 인사를 단행했다. 이 중 노선 갈등을 예고한 것은 서주석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이 국방부 차관으로 임명된 대목이다. 서주석 차관은 김대중 정권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전문위원을, 노무현 정권에서 NSC 전략기획실장과 통일외교안보수석을 역임했다. 전문성이 보장된 인사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지만 문제는 과거의 이력이다.

서주석 차관은 국방연구원으로 복귀한 해인 2007년 북방한계선(NLL)을 영해선으로 보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놔 논란에 휘말린 일이 있다. NLL의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이라는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평화의 바다’로서 이 수역을 활용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게 요지라는 점에서 주장 자체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보수세력은 이 주장을 북한을 이롭게 하는, 사실상 “NLL을 포기하자”는 것으로 보았고 논란은 확대됐다.

이러한 인물을 국방부 차관으로 임명했으니 보수언론도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조선일보의 이날 인터넷판 기사 제목은 <마침내 ‘對美 자주파’ 등장… 국방차관에 서주석>이었다. 여기서는 ‘마침내’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자신들이 외교안보노선이라는 측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바로 그 증거가 등장했다는 판단이 존재하는 걸로 추론된다.

조선일보는 7일치 사설에서 사드 보고 누락 문제로 국방부 정책실장이 좌천된 사건을 거론하면서 “이른바 ‘자주파’ 서주석 신임 국방차관은 군을 정치화하고 뒤집는 개혁이 아니라 우리 군사력과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한 국방 개혁을 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청와대가 사드 보고 누락 사건을 정치적 의도를 갖고 키워서 숙군(肅軍)을 진행할 것이라는 심증이 있지 않으면 나오기 어려운 논리 구조다.

조선일보 6일자 사이트 화면 캡쳐

그러나 사드 보고 누락 논란 문제는 애초에 사드가 한반도 내에 배치된 과정의 불투명성과 전임 정권 관계자들의 인수인계 비협조로 불거졌다는 점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5일 청와대는 애초 국방부가 미군에 공여하려고 한 부지 면적이 70만㎡에 달하며 이 중 32만8779㎡만을 1단계로 사업부지로 지정해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만을 받도록 하는 ‘꼼수’를 쓴 걸로 밝혀졌다는 요지의 주장을 내놨다. 이를 바로잡아야 하므로 제대로 된 적절한 환경영향평가를 받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점도 언급됐다.

국방부가 2단계에 걸쳐 미군에 사드 배치를 위한 부지 공여 절차를 진행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려진 사실이다. 청와대의 발표가 일종의 ‘조사 결과’를 공지한 것이라는 점에서 국방부의 이러한 계획은 그간 업무 보고나 인수인계 과정에서도 새로운 정부와 공유되지 않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문제는 사드 배치와 부지 공여를 위해 필요한 여러 실무적 사안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가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한미 양국이 이에 관한 내용을 ‘합의건의문’의 형태로 작성했다고 그간 설명해온 바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관련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들, 사드 배치 반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 등은 그러한 문서가 없는 걸로 판단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드는 미군 소유이고 배치와 관련해서도 결국 미군의 판단이 전제되는 것이기에 관련 내용을 일반에 공개하지 못했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내용을 국방부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정식 결재라인을 거쳐서 보고했는지, 아니라면 도대체 왜 그랬는지는 여전히 의문의 영역에 놓여있다. 조선일보는 청와대가 ‘사업면적’과 ‘공여면적’을 헛갈린 것 아니냐며 ‘배치’와 ‘반입’도 구분 못 한다는 식으로 반응하고 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는 오히려 인수인계와 보고가 정확히 되지 않은 상황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만일 새로운 국방부 장관이 임명되면 이 문제가 새롭게 쟁점이 될 가능성이 여전하다. 이때도 보수언론은 일을 키우지 말라며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들먹일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가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라도 사드 배치와 관련한 한미 양국의 협상 및 합의 내용은 정확하게 인수인계가 돼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외교안보정책은 ‘정상화’된 범주 내에서 움직여야 하고 이를 둘러싼 노선 갈등은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물론 보수세력 일반은 이런 점에는 눈을 감고 고전적 방식의 ‘노선 대결’의 구도를 만들어 문재인 정권을 사실상 ‘종북’으로 몰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그런 판단과 행동의 결과가 지난 정권의 비극을 만들었다는 점을 깨닫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영원히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보수세력도 문재인 정권을 통해 국민이 무엇을 이루려 하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군, 아직 한반도에서 전쟁 중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06/07 08:42
  • 수정일
    2017/06/07 08:4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기획연재] 한미관계 이대로 좋은가?(5) - 한미합동군사훈련

대통령에 당선되면 가장 먼저 방문하는 나라, 미국은 한국에게 어떤 존재인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터뜨려 우리민족을 일제로부터 해방시켜 준 나라. 6.25전쟁에 참전해 이남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준 나라. 무상원조로 한국경제를 일으켜 준 나라. 군사작전권을 넘겨 받아 우리의 안보를 지켜주는 나라’일까? 기획연재, ‘한미관계 이대로 좋은가?’에서는 미국 그 이면에 숨은 적폐를 역사적 사건들을 소재로 재조명해본다.[편집자]

▲ 한미합동군사훈련 키 리졸브를 전개하고 있는 미군. [사진 뉴시스]

1953년 미국은 북한과 정전협정을 체결했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주한미군을 영구주둔 시키고,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함으로써 전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은 1976년 팀 스피리트(Team Spirit)를 시작으로 94년 한미연합 전시증원연습(RSOI), 2009년부터 키 리졸브(Key Resolve)로 이름을 바꿔가며 2017년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연습’이 아니라 ‘전쟁’으로 보는 이유는 한반도가 현재 전쟁이 잠시 중단된 상태, 즉 정전체제이기 때문이다.

운전에 비유하면 P(ark) 주차된 게 아니라 N(eutral)에 잠시 멈춰 있는 상태다.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오면 언제든 D(rive) 주행으로 전환해 전쟁이 시작된다는 뜻. 때문에 정전협정 아래서 군사훈련은 그 자체가 전쟁 상태를 의미한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정전협정 위반

정전협정 제2조 13항은 “한국 국경 외부로부터 증원하는 군사인원과 작전비행기, 장갑차량, 무기 및 탄약을 들여오는 것을 중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훈련을 위해 미군을 대규모로 증원하고, 핵항공모함 등 전략무기를 배치하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정전협정을 명백히 어긴 것이다.

정전협정을 무시한 것은 다시 전쟁을 시작하자는 것임으로, 한미합동군사훈련 개시는 선전포고를 의미한다.

지난 40년간 북한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시작되는 즉시 모든 일상을 접고 준전시상태로 들어가야 했던 이유다.

▲ 핵 항모 칼 빈슨 호. [사진 US NAVY]

한미합동군사훈련이 계속되는 한 평화는 없다

평화란 최소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때, 한반도에는 지금 평화가 없다.

키 리졸브와 독수리 연습(Foal Eagle)이 동시에 전개되는 2~5월, 을지 프리덤 가디언(UFG)이 실시되는 8월은 말할 것도 없고, 작전계획 5027, OPLAN 5030을 비롯해 한미연합사가 수시로 전개하는 군사작전은 한반도를 끊임없이 긴장상태로 몰아넣는다.

“나는 전쟁위협을 느끼지 않는데?”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평화가 없는 곳에서 너무 오래 살다보니 평화를 잊어버린 때문인지 모른다.

반경 500km 안에서 미사일이 발사되고, 전투기가 폭격을 하고, 핵항모가 진격하는 장면이 거의 매일 TV뉴스에서 방송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남북관계 파탄의 주범, 한미합동군사훈련

평화통일의 원칙을 합의한 7.4남북공동성명이 76년 팀 스피리트 훈련의 개시로 파탄 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93년 팀스피리트 훈련의 중단으로 한껏 높아진 평화통일의 열기를 94년 시작된 한미연합 전시증원연습이 찬물을 끼얹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4선언은 이듬해 시작된 세계최대 규모 군사훈련인 키 리졸브 실시로 꽃을 피우지 못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북의 최고위급 3인방이 방문해 성사 가능성이 높아진 이산가족 상봉 등 분단 70년 맞이 민족통일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된 것도 키 리졸브 때문이었다.

이처럼 한미합동군사훈련이 계속되는 한 남북관계의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설사 화해국면이 열려도 훈련이 전개되면 모두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 지난 1월 후보시절 평창 올림픽 경기장을 둘러 본 문재인 대통령. [사진 뉴시스]

평창 동계올림픽이 ‘키 리졸브’를 막을 수 있을까?

참여정부를 경험한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이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의 향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핵심 요인’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해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 등 분단적폐를 청산하고 남북화해와 교류의 시대를 열것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2018년 키 리졸브다. 훈련이 강행돼 다시금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된다면 문재인 정부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공교롭게도 키 리졸브가 실시되는 2월엔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기회가 되기를…” 민족의 염원을 모아본다.

[기획연재] 한미관계 이대로 좋은가?

(1) 5.18광주 학살과 5.16쿠데타의 공통점 – 미국의 국내정치 개입

(2) 맥아더 포고령, ‘일장기 대신 성조기’ – 분단과 청산하지 못한 친일

(3) 정전협정문에 대통령 이승만은 왜 이름 빠졌나? – 군작전지휘권

(4) 사드, 문재인 대통령 뜻대로 안되는 이유? – 한미상호방위조약과 SOFA협정

(5) 미군, 아직 한반도에서 전쟁 중 – 한미합동군사훈련

(6) 6.13 미선·효순이 주한미군 장갑차에 깔리다 – 주한미군 범죄와 SOFA협정

(7) 한미FTA 재협상과 광우병 촛불 – 대미의존 경제

(8) 탄핵반대 집회에 등장한 성조기 – 숭미문화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김이수는 '한국당 해산'에도 반대할 것이다

 

[게릴라칼럼] '김이수 불가론', 그 한심한 무지에 대해

17.06.06 17:43l최종 업데이트 17.06.06 17:43l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된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된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통진당 해산 반대' 헌재 소장,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나"

<조선일보>의 사설 제목이다. 그냥 자기들이 못 받아들이겠다고 하면 될 것을, 애먼 '국민'을 끌어들인다. 어쨌든 '받아들일 수 있냐'고 물었으니 답변부터 하자.

'그래, 받아들일 수 있다.'

 

김이수 지명 이후 집계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80%를 훌쩍 넘어섰다. 리얼미터가 집계한 국정 수행 지지도가 84.1%였고, 한국갤럽이 발표한 결과도 84%였다. 당연히 이 평가에는 대통령의 개혁적 인선에 대한 국민의 호응이 담겨 있다.

이 사실은 갤럽이 조사한 '긍정 평가 이유' 항목에서 잘 드러난다. 응답자들은 대통령을 호평한 첫 번째 이유로 '소통'(18%)을 들었고, 두 번째로 '인사'(10%)를 꼽았다. <조선>은 '국민'의 이름으로 문제 삼고 있지만, 국민들은 현 정부의 인사를 문제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비록 5주차에 들어 리얼미터 집계 지지도가 78.1%로 조정 국면에 있으나, 여전히 압도적인 지지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 사실은 갤럽이 조사한 역대 대통령 첫 직무 수행평가를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일례로 이명박은 52%였고, 박근혜는 44%였다.

<조선일보>는 제 코가 석 자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듯하다.  이 신문이 지지해 온 정당의 후신에 '국민'이 보이는 지지도는 고작 8~13%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끔은 이런 자문도 해보면 좋겠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싸고돌던 신문,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나."

갤럽은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를 전하면서 '전 (박근혜) 대통령의 단점이 현 (문재인) 대통령의 장점으로 반전되었다'고 덧붙였다. 과거 박근혜가 '소통'과 '인사'에서 파국을 달릴 때, <조선일보>와 <티비조선>은 어떤 비판을 가했던가? 날 선 채찍질은커녕, '패션 외교'니, '대통령이 8개국어를 한다'라느니 하며 칭송하기 바쁘지 않았던가?

<조선>을 비롯한 보수언론은 분노의 대상으로 전락한 두 권력을 앞장서서 밀고 후원했을 뿐 아니라, 4대강 사업이나 국정교과서 같은 몰상식한 정책마저 찬성하며 여론몰이를 했다. 제대로 된 언론은 권력이 바른 일을 할 때 칭찬하고 그른 일을 할 때 비판한다. 언론의 판단 기준은 당연히 시민, 특히 사회적 약자들의 눈높이에 두어야 한다. 핀리 피터 던의 말대로, 언론의 사명은 '편안한 자를 불편하게 하고, 불편한 자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 이익이 될 때 칭찬하고 손해가 되면 비판해 온 언론은 '국민'을 말할 자격이 없다. 그러니 그냥 자기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야기하라. 하지만 그에 앞서, 한국사회를 이 꼴로 만드는 데 일조한 과오부터 반성할 일이다.

<조선일보>와 한국당의 무지와 모순

<조선일보>는 "'통진당 해산 반대'라는 말로 독자를 호도하지만, 김이수 재판관은 '통진당 해산에 반대'한 게 아니다. 단지 특정 개인의 책임을 조직 전체에 전가하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는 해석을 제시했을 뿐이다. 이 차이가 이해가 안 되는가?

김이수 재판관이 내놓은 해석은 매우 온건하고 합리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개인의 잘못을 핑계 삼아, 조직 전체를 해산시키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테니 말이다. 예컨대 자유한국당이 한나라당 시절 벌였던 '차떼기' 뇌물수수 사건이나, 새누리당 시절 대통령이 벌인 국정농단사건을 이유로 '정당 해산'을 결정한다면 어떻겠는가?  

<조선일보>도 마찬가지다. 이 신문사의 송희영 전 주필은 기업으로부터 호화접대를 받고 호의적인 기사를 써 준 혐의를 받다가 스스로 물러났다. 만일 그의 행위를 조직 전체의 책임으로 몰고 간다면 수긍할 수 있겠는가? 

김이수 재판관은 이석기 개인의 처벌에 반대하지 않았다. 범죄를 저지른 개인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개인의 행위를 조직으로 귀속시켜 처벌하는 것은 비례의 원칙에 어긋나며, 궁극적으로 민주적 질서를 훼손할 위험성이 크다. 이처럼 타당한 의견을 제시한 것이 왜 문제가 된단 말인가?

통합진보당은 5명의 의원과 10만 명의 당원이 활동하던 합법적 정당이었다. 이 정당은 대통령 후보까지 냈고, 그는 박근혜와 나란히 앉아 대선 토론까지 벌였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정당 자체를 해산시킨 탓에, 이정희를 포함해 아무 혐의가 없던 의원들까지 의원직을 잃었고, 수만 명의 당원들까지 권리를 박탈당해야 했다.

해산심판의 청구인 법률상 대표는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으며, 정부가 나서서 정당 해산을 밀어붙이던 배경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 원한이 크게 작용했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 해산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 적용해야 한다는 재판관이 한 명이라도 나왔다는 점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완전히 몰락하지는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북한 싫다면서 북한 닮아가는 보수세력

무지와 모순으로 말하면 자유한국당도 만만찮다. 지난달 23일 정태옥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김이수 후보자에 대해 "자진 사퇴와 지명철회"를 요구했다. 그 이유는 진보당 해산 결정 당시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으며, 교원노조법 위헌 심판 때도 유일하게 위헌 의견을 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북한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소수의견'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보수세력이 북한을 증오하는 이유가 이런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보수파는 김이수가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왜들 그렇게 북한을 싫어하면서 북한을 닮아가는지 모르겠다.

만일 통진당 해산이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이 문제라면, 그건 헌재소장뿐 아니라 재판관 자격부터 문제가 돼야 했다. 김이수 지명에 반대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 그의 소수의견 전문을 읽어본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헌재 결정문과 비교해서 읽어보라. 거의 유일하게 논리적 일관성을 지닌 견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비록 서슬 퍼런 공안정국의 속에서 다수의 재판관이 통진당 해산에 합헌 의견을 내놓았지만, 헌법 학자들 사이에서는 위헌이라는 입장이 '다수 의견'이었다. 당시 JTBC가 헌법 학자들을 대상으로 견해를 물었을 때, '합헌' 의견을 낸 학자들은 16명 가운데 6명에 지나지 않았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자격에 대한 의견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신임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했을 때, 헌재는 물론 헌법학자 대다수가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언론이든, 정당이든 '국민' 이야기를 꺼내려면 시민들이 대체로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지 따져 볼 일이다. 국민은 그들의 욕구를 대신 충족시켜주는 대리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 개입설' 주장하던 자유한국당, 5.18로 김이수 비판?

가장 기막힌 일은, 자유한국당이 5.18로 김이수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당의 곽상도 의원은 "김 후보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판사 자격으로 시민군 7명을 버스에 태워 운전했던 운전사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가 군부에 협조했기 때문에 헌재소장 자격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어떤 곳인가? 광주 5·18 민중항쟁 추모제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해 왔을 뿐 아니라, 최근까지도 허위로 드러난 "북한군 개입 의혹"을 제기해 온 정당이다. 무엇보다 곽상도 의원 자신이 강기필 유서 대필 사건의 담당 검사로서, 한 사람의 인생과 한 사회의 민주주의를 암흑 속에 몰아넣은 장본인이었다.

최소한 김이수는 자신의 판결에 대해 뉘우치기라도 했다. 곽상도 의원은 강기훈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에도 어떤 사과나 반성도 표하지 않았다.

김이수가 용서받지 못할 자인지는 가해자보다는 피해자 측에 묻는 것이 옳을 터이다. 5.18 단체들은 기꺼이 그를 이해하고 용서했다. 계엄 시절 군법회의에서 중위였던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넓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동안의 소신 있는 판결을 볼 때, 헌재소장으로서의 활동이 기대된다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그러니 김이수가 부끄러움을 깨닫고 '광주 정신'으로 한국 사회에 봉사할 기회를 주자.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은 '봉사'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그저 부끄러움이나 깨닫기 바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