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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관한 시각 교정

[책소개] <인간의 땅, 중동>(서정민 지음, 중앙북스 펴냄) ⓒ프레시안

'메카콜라' 마시며 포니 택시를 타고 달려보자 / 황준호, 프레시안 2009-07-26 20:44

 

"여성에게 운전을 금지하는 나라는 중동 국가 중 사우디뿐이다. 한 국가의 사례가 중동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집트의 여성 공무원 수는 200여 만 명에 이른다. 남성과 여성의 공무원 비율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중동에서 여성이 '억압'받는다는) 전통을 이슬람 종교와 결부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슬람 이전부터 내려오는 유목 사회의 강력한 가부장적 전통에 기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중동 유목민의 가부장적 여성 억압을 두드러지게 개선한 것이 이슬람 종교다."

 

중동 전문가인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신간의 제목을 <인간의 땅, 중동>이라고 달았다. '알라의 땅' 혹은 '열사(熱砂)의 땅' 등 지극히 단순하게 규정되는 중동에 관한 시각을 교정하겠다는 뜻이 엿보인다.

그러나 2001년 9.11 사태 이후 중동 문제를 다루는 기자의 눈에 중동은 무엇보다 분쟁의 땅이요, '미국의 세계 경략이 벌거숭이로 드러나는 정치의 땅'이다. 9.11 이후 더 심각해진 테러와 전쟁과 갈등을 관찰하다 보니, 과장법으로 말하자면 전차와 견착식 미사일과 이슬람 전사들만 사는 땅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예컨대 이란 대선 부정 시비로 강력한 시위가 발생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주제들이 고정돼 있다. 이란의 신정체제는 어떻게 될 것이고, 이란의 영향을 받는 레바논의 헤즈볼라에는 어떻게 될 것이며, 중동 정세에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따위의 것들이다.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거기에만 눈길을 빼앗겨 사회, 경제, 문화 등 그 밖의 중동 문제에는 관심을 갖기 힘들다.

 

요즘에는 <알자지라> 영문 인터넷판도 잘 돼있고 독립적인 시각에서 보도하는 언론인들도 늘었다. 그 때문에 중동에서 정치적인 갈등이 일어나면 서구중심적인 프레임을 벗어나서 기사를 쓰는 게 그리 어렵지만도 않다.

그러나 <인간의 땅 중동>(서정민 지음, 중앙북스 펴냄)을 읽은 결과, 서구적 시각에서 어느 정도라도 벗어났다고 생각되는 분야는 정치에만 국한됐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외의 많은 분야에서는 여전히 <로이터>와 , 의 관점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자는 한국인들이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중동을 보는 이유로 서구중심적인 시각 외에도 무지와 무관심을 꼽았다. 그런데 정치 말고 사회와 문화·여성·종교 등을 다룬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과연 기자의 시각은 서구중심적이었고 무지했으며 무관심했었다.

그 중에서 편견이 가장 심한 분야라고 예상해서 제일 먼저 눈이 갔고, 읽어 보니 역시 그러했던 문제는 중동의 여성에 관한 것이었다. 명예살인과 여성 할례 같이 '이슬람의 여성'하면 떠오르는 이슈들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았을 뿐더러, 최근 여성과 가족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새로운 풍속도는 생전 처음 듣는 얘기였다.

 

"이슬람에서는 이혼이 어렵고 또 여성에게 불리하다고 알려지고 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급증하는 이혼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주 사소한 문제로도 이혼이 발생하곤 한다. 위성방송에 나오는 섹시 스타가 아랍권 가정 파탄의 주범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여성의 사회 진출도 크게 늘고 있다. 알제리의 경우 변호사의 70%, 판사의 60%가 여성이다. 대학에서도 재학생의 60%가 여성이며 의료계에서도 여성의 진출이 두드러진다."

 

그렇다고 이슬람의 여성이 하루가 다르게 모든 면에서 변화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 이슬람의 여성들은 해방과 억압이 공존하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2006년 파키스탄에서만 명예살인으로 730명이 살해됐다. 또한 지금도 매년 300만 명의 여자 어린이가 할례로 고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명예살인의 경우 아프가니스탄, 이란, 사우디 등 주로 보수적인 나라에 남아 있는 악습일 뿐 이슬람의 교리에 따른 전통은 결코 아니다. 그걸 이슬람의 일반 특징이라고 보는 건 잘못된 일반화다. 또한 할례는 이슬람이 도래하기 훨씬 이전부터 내려온 아프리카의 가부장적 부족의 전통이다. 이걸 이슬람의 전통이라고 보면 틀린 것이다.

이 같은 중동에 관한 편견과 오해는 비단 여성 문제에서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사랑과 멸시를 동시에 받는 벨리 댄서 이야기, 아파트 종합 관리인이라고 할 수 있는 '바왑' 이야기, 담배가 유일한 낙이 돼버린 이라크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 걸 읽어가다 보면 중동은 별다른 곳이 아니라 그저 사람이 사는 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저자인 서정민 교수는 대학에서 아랍어를 전공하고, 이집트와 영국에서 중동 정치로 학위를 받았으며, 언론사 특파원으로 5년간 현지에서 발로 뛰었던 남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카이로를 누비는 포니 택시의 이야기를 그토록 자세하게 쓸 수 있는 것도, 잘 알려지지 않은 중동 사람들의 사생활까지 소개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중동의 시각으로 중동을 읽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는데, 실제로 책을 읽어 보니 중동 하면 석유 혹은 건설이나 떠올리는 이들도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중동을 더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모든 대상을 '기회'와 돈으로만 보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건 지식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탐구일 터인데, 이 책을 읽으면 "세상 사람들의 사는 모습은 다 다르지만, 잘 들여다 보면 다 똑같다"는 한 여행가의 말이 와 닿기 때문이다. (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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