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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요즘 대학생들, 멍청-호구 탈피책은? / 하재근

[칼럼] "스펙 쌓아봐야 헛일, 노동절 투쟁 동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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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생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불쌍하다’와 ‘멍청하다’ 정도가 될 것이다. 연상되는 단어는 ‘스펙 쌓기’, ‘학자금 대출’, ‘실업’ 등이다. 과거에 대학생하면 떠오르는 것은 ‘데모’, ‘운동권’이었다. 그땐 대학생이 불쌍하거나, 멍청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반대로 대단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기성세대도 절대로 대학생을 무시하지 못했다. 요즘의 ‘중고딩’은 불쌍하게 느껴진다. 그와 달리 대학생이 불쌍하기는 하되 ‘멍청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이 성인이기 때문이다. 다 큰 어른으로서, 그리고 고등교육을 받는 지성인으로서의 지성과 책임감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죽을 길로 가고 있다. 사상 최악의 멍청한 집단이다.

 

곧 있으면 다시 노동절이 닥친다. 김영삼 정부 이래 한국의 역사는 노동계급 파괴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고용유연화로 파괴되고, 성과급 경쟁체제로 파괴됐다. 반노조 정서는 집요하게 노동을 공격했고 이제 노조들의 위상은 땅바닥을 지나 지하를 향해 참호를 파고 있다. 대학생들은 미래의 노동자이면서도, 마치 하늘나라의 신선처럼 전혀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했다. 노동이 공격받는 것은 대학생의 미래가 공격받는 것과 같다. 노동이 위축되면 대학생의 미래도 위축된다. 하지만 그들은 반노조 정서에 동참하며, 현실 정치에 대한 열정을 잃었고, 심지어 상당수 학생들은 우경화하기까지 했다.

 

또 알량한 서열의식에 젖어, 본교 학생은 분교 학생을 능멸하고, 수도권 학생은 지방대 학생을 능멸하며 대학서열체제에 가담했다. 같은 지방대끼리도 학생들 사이에 차별이 있을 정도다. 또 전국의 대학생이 총단결해 고등교육 국립무상화를 요구하는 소요사태를 일으키지도 못했다. 그 결과 위축된 노동에 의해 대학생의 미래는 암울해졌고, 심화된 대학서열체제 때문에 절대 다수 대학생은 삼류대의 낙인을 피할 수 없으며, 등록금 지옥 속에서 부채 인생을 살아가는 처지가 됐다. 현재는 부채, 미래는 실업. 이것이 한국 대학생의 모습인데 이들은 스펙 쌓기로 이것을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상 최악의 미련함이다.

 

노동유연화 등으로 전체 노동몫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아무리 개인적으로 스펙을 쌓아봐야 헛일이다. 게다가 구조조정과 공기업 민영화 등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대학생들이 노조를 욕하면 욕할수록 안정된 노동을 지키는 힘이 줄어들어 결국 대학생의 미래를 치고 말 것이다. 대기업과 그들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을 후원하는 방식으로 미래를 보장받으려는 생각도 멍청하기는 마찬가지다. 1990년대 이후 대기업은 수익이 늘어나는 것과 상관없이 일자리를 줄여왔다. 일자리를 늘인 건 중소기업이다. 대기업의 광포한 포식성은 중소기업을 압박해 결국 한국의 일자리를 줄인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과 그 정치세력에게 희망을 걸었던 대학생들은 정말 멍청했다.

 

과거의 대학생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약자들에게 연대했으며, 문제를 국가 정치의 차원에서 풀려고 했다. 현재의 대학생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끊고, 약자에 무관심하며, 문제를 학내 복지나 스펙 쌓기로 풀려고 한다. 그렇게 대학생들이 민중과 정치로부터 멀어지자 한국사회가 우경화된 것은 물론, 대학생 자신들도 비참해졌다. 최근 엄청나게 치솟은 등록금은 대학생들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는지를 나타낸다. 학생들의 반발이 무서웠으면 절대로 그렇게 등록금을 올릴 수 없었을 것이며, 학자금 대출의 금리도 그렇게 높도록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스펙 쌓기에 열 올리며 정치적으로 우경화한 대학생들을 한국사회는 호구로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 대학생들은 자기 인생을 저당 잡히며 알바를 하고, 몸을 팔고, 자살까지 해가면서 번 돈을 상납하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빨대 꼽힌 인생이다. 이들이 사회로 진입해서도 여전히 빨대 꼽힌 인생을 살 것이다. 인턴 등의 명목으로 중노동 저임금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회사의 수익 극대화, 노동비용 극소화를 위해 ‘몸빵’해야 할 운명인 것이다. 집단적으로 권리를 주장하지 않은 세대의 필연이다. 만만하게 보이니 결국 먹힌 것이다. 이대로라면 아무런 희망도 없다. 

 

추세의 역전은 대학생이 다시 전국적으로 뭉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뭉쳐서 노동계급과 민중에 연대해야 한다. 개인별 스펙 쌓기는 모두가 죽을 길로 가는 것이고, 노동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모두의 미래에 고속도로를 까는 일이다. 또 대기업 세력이 아닌 노동과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에 가담해야 한다. 그래야 평생 동안의 삶의 질이 보장된다. 대학생이 집단적으로 무시 못할 힘을 행사하게 되면 등록금 따위의 소소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그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이제 곧 닥칠 노동절은 절대로 노동자, 노조 등 ‘그들만의 날’이 아니다. 한국은 산업국가다. 농업국가였을 땐 농부가 천하의 대본이었으나, 지금은 노동자가 천하의 대본이며 모든 학생의 미래다. 한국이 현재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것은 바로 이 ‘천하의 대본’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본이 흔들린 이유는 학생들을 비롯해 사회 전체가 노동에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노동절을 맞아 대학생들의 노동의식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이 부문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면, 설사 이명박 정부를 제지하는 데 성공해 노무현 정부식으로 민주적 제도들이 지켜지는 나라가 되더라도 청년의 등엔 여전히 빨대가 꼽혀 있을 것이다.

 

레디앙 2009년 04월 28일 (화) 10:18:01, 하재근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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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 자유주의 (김지석 서평)

기독교-개인주의-자유주의 / 과학-성장-낙관주의

 

"(...) 서구문명의 핵심은 무엇이며 그것은 얼마나 큰 잠재력을 갖는가 (...). 다른 문명과 구별되는 서구의 정체성은 기독교, 낙관주의, 과학, 성장, 자유주의, 개인주의 등 독특한 여섯 가지 사상의 공동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서구의 자멸>(아래 참조)은 말한다. 이 가운데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가장 중요하다. 모든 개인에게 개성과 깊은 내면, 확고한 자아가 있다는 생각은 서구 정체성을 이루는 기본 요소다. 개인주의의 상승은 기독교에서부터 르네상스, 종교개혁, 현대 경제·사회의 성장에 이르기까지 서구 역사를 관통하는 모티프다. 기독교는 개인의 헌신을 요구하고 개인 책임을 물은 첫 종교라고 한다. 기독교가 보편화시킨 영혼이라는 개념은 세속화해 자아 개념이 됐으며, 이는 노력·자기개발·자기책임 등 개인주의 핵심 요소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개인주의를 사회적 차원에서 실현하는 유력한 방법이 민주주의에 기초한 자유주의다. 이런 사회는 종교의 자유, 양심, 관용, 협동력,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려는 시민들의 의지 등을 특징으로 갖는다. 자유주의가 그냥 생겨난 건 아니다. 어느 정도 교육 수준과 독창력, 독립심을 갖춘 자유롭고 자치적인 시민은 자유주의 사회의 결과물이라기보다 전제조건이다. 또한 자유주의는 그에 걸맞은 경제·정치 체제를 요구한다. 과학·성장·낙관주의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찬란한 승리다. 처음에는 성장이 과학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을 줬으나 지난 3세기 동안은 과학이 성장의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18~19세기에는 서구의 과학적 주도권이 경제 주도권으로 이어졌고, 경제성장은 낙관주의자들의 힘을 키웠다. 계몽사상가들은 개인의 자율성과 진보를 옹호하면서 낙관주의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개인주의·자유주의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개인화한 사회는 공동체를 약화시키고 개인의 중압감을 증가시킨다. 한편으로는 사회의 분열, 사회자본과 공동체의식의 붕괴가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책임과 근심이 엄청나게 높아진다. 서구의 자유주의도 도덕적 기반으로부터 분리, 공동체에 대한 헌신 약화, 열정 부족 등의 문제에 부닥치고 있다. 서구 문명이 앞날은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고 개인주의·자유주의의 활력을 되살릴 수 있을지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가·종교 권력의 억압에 맞서는 해방의 이념으로 출발한 개인주의와 민주적 자유주의는 자신감과 신뢰, 평등과 솔선, 책임감을 기반으로 아래에서부터 솟아나는 문명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서구의 위기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이런 장점이 침식되고 보수적 성격이 강해졌음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 개인주의·자유주의의 진보적 성격(*)을 충분히 맛보지 못한 상태다. 문명 패권의 향방을 가름할 중요한 열쇠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 "보수화한 자유주의의 운명은"[일종의 서평], 기사등록 : 2009-03-20 오후 07:25:45 ⓒ 한겨레)

 

(*독자註) "개인주의·자유주의"를 아직 우리가 제대로 체험하지 못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어떻게 바로 "진보적 성격"이 되는지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우리가 못 가진 서구적인 것은 다 '진보적'일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 발상이 낳은 실언이 아닐런지... 물론 여기서 또 '진보'의 개념에 대한 왈가왈부가 필요한 시점인데, 거듭 말하지만 진보란 '진보=좌파이념'이지 '전진하는(개혁) 우파'의 그것까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좌파가 '개인'과 '자유'를 말살하고자 하는 이념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는 우파-자본주의에 충실히 복무해 온 가면 쓴(거짓으로-빈말로 위장한) '주의'일 뿐이고, 진짜 "개인주의·자유주의"는 좌파와 통하는 것이라는 이해에 기초한다면, 상기 발언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겠다. 부연하자면, 원래가 "개인주의·자유주의"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중세적 종교와 지배의 틀로 족쇄 채운 기존의 시스템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해방을 낳은 개인과 자유에 대한 존중의 이념이 다시 인간을 자본주의의 틀에 묶어버리는 과업에 복무했으니, 여기서 개인과 자유에 대한 왜곡이 있었다는 말이다. 고로, 다시 '해방'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개인과 자유에 대한 재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

 

서구의 자멸 | 원제 Suicide Of The West 
리처드 코치, 크리스 스미스 (지은이), 채은진 (옮긴이), 말글빛냄, 2009-01-02, 양장본 317쪽, 15000원
Richard Koch &, Suicide of the West (Paperback), Continuum Intl Pub Group, 2007-ix.

 

여섯 가지 키워드 [출판사 책소개 -약간 우습지만-]

 

1. 크리스트교 : 서구의 성공과 부절제, 실패에 있어서 크리스트교만큼 중요한 요인도 없다. 크리스트교는 고대 세계를 세우고 천상과 지상의 관계를 변화시켰으며 현재까지 서구인의 생활양식과 인격을 정의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크리스트교는 세계 최초의 개인화되고 행동주의적인 자기수양 운동이었다. 모든 서구인들이 크리스트교도나 불가지론자, 무신론자 심지어 다른 종교 신자들도 비서구인들과 다르게 세상을 보고 행동하는 주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또한 이는 서구가 지구상의 다른 40∼50개 문명보다 성공한 이유이기도 하다. 크리스트교는 몇 가지 행동효과를 남겼다. 1)개인의 책임, 2)그리스도의 힘을 통한 변화, 3)약자에 대한 원조, 4)저주받은 이들의 구원 또한 변화와 개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근세기 들어 “신은 죽었다”는 사상이 출현했으며 크리스트교 내의 분열은 오늘날 서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분열의 축도라고 볼 수 있다. 초기 크리스트교의 자유로운 정신, 내적 자아라는 개념의 도입, 개별화와 권력에 대한 거부와 개인 관계에서의 사랑을 강조하는 태도, 학대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과 평등 요구, 자기수양과 자기개선 장려 등은 서구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서구를 분열시키고 나아가 세계를 분열시켰다. 그리하여 내부에 더욱 강하게 존재하는 위협으로 남아 있다.

 

2,3,4: 낙관주의, 과학, 성장 [생략]

 

5. 자유주의 : 모든 서구사회는 자유주의 원칙과 제도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비서구사회에서는 이런 경우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서구사회가 자유주의적인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며, 자유주의는 서구의 고유 역사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자유주의 사회는 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자유정신과 공평함, 모든 시민에 대한 존중이 있는 사회다. 자유주의 문명은 다른 문명에 비해 인간 생명의 신성과 존엄, 모든 구성원의 교육, 기회의 균등, 개인의 자유, 과학과 예술 장려, 모든 인류동포의 본질적 평등을 훨씬 더 중요시한다. 이처럼 서구 자유주의 문명은 다른 문명에 비해 훨씬 큰 이익을 시민들에게 제공해준다. 20세기에 서구 자유주의는 서로 경쟁하는 세 가지 이데올로기(민족주의, 파시즘, 공산주의)의 도전으로 거의 사멸할 뻔했다. 현재 자유주의에 대한 외부의 위협들 -이슬람 혁명주의와 수많은 형태의 테러리즘- 은 서구에서 대중적인 호소력을 거의 지니고 있지 못하며 군사적으로도 약하다. 그러나 자유주의 문명은 그 성공과 외부의 적의 약세에도 불구하고 무시무시한 위협을 받고 있다. 가장 심각한 위험들은 모두 자유주의 문명이 자초한 것이다. 20세기 자유주의 어젠다가 서구 시민들의 안전과 복지, 자유를 놀랍도록 효과적으로 증가시켜주었지만 현재 자유주의는 과거에 비해 훨씬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지속적인 실천과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6. 개인주의 : 서구의 중심적 특징은 개인주의다. 개인주의는 크리스트교에서부터 르네상스, 종교개혁, 현대경제 및 현대사회의 성장에 이르기까지 서구 역사를 관통하는 모티프다. 서구의 개인주의와 비슷한 뿌리는 다른 어떤 문명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개인화된 사회의 문제는, 공동체를 약화시키고 개인의 중압감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전통적이고 중앙집권화된 사회는 제도와 권력 관계, 뚜렷한 역할,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 정체성을 통해 움직인다. 개인화된 사회는 전혀 다르다. 사회가 개인화되고 우리가 가족, 친구, 이웃, 클럽, 교회, 조합, 공동체집단 등과 단절될수록 ‘사회 자본’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보여준다. 정신적 건강과 경제적 성공의 중요한 요소인 신뢰는 우리가 서로에게 낯선 사람이 되어갈수록 붕괴된다. 개인화된 사회는 자유를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지시되거나 자동으로 결정되던 어려운 선택을 우리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개인주의는 서구의 성공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였고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그렇다. 개인주의는 서구의 도덕적 가치관과 낙관주의, 과학, 정치적 안정, 경제적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주의의 위험요소들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계급사회에서 개인화된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은 개인적인 상호관계와 지역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계급사회의 종말이 개인적 성공에 대한 피해의식과 냉소주의로 귀결된다면 서구는 더 이상 서구로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세계의 미국화 :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미국의 활발한 국제적 지휘와 개입이 더 필요한가? 전 세계의 맥도널드화가 더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때때로 세계의 미국화는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을 만한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보스니아 사람들을 집단학살로부터 구하기 위해 개입한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세계의 미국화는 인도주의적인 중재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세계은행, GATT, IMF 등 미국이 주도하는 수십 개의 국제기구들이 그리는 것은 대체로 미국의 양식을 따르는 경제적·정치적·인도주의적 세계 질서다. 미국은 세계의 미국화를 위한 기반과 힘을 가지고 있다. 세계의 완전한 미국화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제적·문화적 영향력이 계속해서 널리 퍼져나간다고 생각해보라. 필연적으로 강자에게 유리한 자유무역이 전 세계에 보편화된다고 생각해보라. 군사적·과학적·경제적 주도권을 바탕으로 미국은 새롭고 영속적인 문명을 이루게 될 것이다. 미국은 제국주의 로마만큼이나 무자비하게 세계의 대부분 혹은 전체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자멸은 불가피한가? : 지난 2세기 사이 서구문명은 다른 어떤 문명도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었다. 바로 풍요로운 사회와 문화다. 생활수준이 향상되어 모든 세대가 그 부모 세대보다 풍요로운 생활수준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중요한 자유의 풍요도 이루게 되었다. 서구문명은 많은 것을 소망했고 많은 것을 이룩했다. 그러나 서구문명은 막대한 성공을 가져다준 사상을 이제 단념해버린 것일까? 서구문명은 스스로 만든 한계에 부딪혀 실패하고 말 것인가? 서구문명은 훨씬 덜 매력적인 문명으로 변하기 시작하여 머지않아 훨씬 덜 성공적인 문명이 되고 말 것인가? 서구문명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걸어가기가 좀 더 쉬운 한쪽 길을 따라 내려가면 냉소주의와 지독한 이기주의, 무관심, 권력의 재집중, 공격성 등이 놓여 있다. 이 길은 무정부주의에서부터 신파시즘, 환경 파괴, 새로운 미제국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이러한 형태들은 모두 서구문명을 종말로 인도할 것이다. 다른 한쪽 길을 따라 내려가면 용기의 회복, 서구인들 스스로와 서구 문화에 대한 확신, 미국 내와 유럽 내, 유럽과 미국 간, 다른 유럽인 정착지들과의 감정적 단결, 책임감 있는 수많은 개인들이 권력이나 맹목적인 전통 신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노력, 낙관주의, 이성, 연민, 평등, 개인주의, 상호 동일성 등 스스로 발견하고 스스로 인정한 속성들을 통해 한데 뭉친 사회와 문명이 기다리고 있다. 이 길을 걷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여행을 위해서는 혁신적인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 서구의 숙명은 모든 서구인들의 소망과 잠재력과 도덕성을 발휘함으로써, 그리고 인류를 매혹시킬 만한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인도적이고 자유롭고 풍요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것이다.

 


리처드 코치 (Richard Koch) - 기업가이자 투자가, 경영컨설턴트. 컨설팅, 개인업묵관리, 호텔에서 레스토랑과 주류사업, 변화관리 교육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하고 있다. 베인&컴퍼니(Bain&Company)의 창립 멤버이자 파트너였으며, 엘이케이컨설팅(LEK Consulting)을 공동 창립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oston Consulting Group)의 컨설턴트로도 활동했다.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 등이 있으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80/20 법칙>의 저자다. 최근에는 영국의 전 문화부장관 크리스 스미스와 <서구의 자살(Suicide of the West)>을 공저했다. 필로팩스, 벨고, 플리머스 진, 캡스톤 등을 운영하며 기업가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 룩셈부르크와 영국의 상장 벤처 캐피탈 회사 등을 포함한 몇 개 기업의 사외 이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강의와 방송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크리스 스미스 - 최근까지 영국 하원의원이었고 문화언론체육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케임브리지대학교 펨브로크 칼리지의 명예연구원으로, 여러 개의 주요 미술 단체를 이끌고 있다.
채은진 - 서울여자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다 빈치의 유산> <권력과 광기> <천재 파티시에, 프랑스 요리의 왕; 앙토넹 카렘 평전> <아인슈타인, 신이 선택한 인간> <누가 달을 만들었는가> <인류의 조상을 찾아서>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등이 있다. 또한 <여성에게 물어라> <변호사처럼 설득하라> <그레이 매터스> <먹히는 말> 등을 공동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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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dividu contre l'Etat (Spencer,1885)[+Nozick,Bergson]

<국가에 대항하는 개인>*이라는 제목아래 스펜서의 1884년 아티클 네 개를 묶었다는데, 묶은 게 영어책이고 그것을 불어로 번역한 건지, 불어로 번역하면서 네 개를 묶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년 말에 이런 책이 나왔다고 한다. 제목에서 보듯이 스펜서는 국가나 제국주의 등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의 개척자로서 역사 속에 자리잡고, 나중에 하이예크와 노직을 거치며 작금의 신자유주의를 탄생시키는 데 일조를 했겠고, 그 신자유주의가 작금의 위기에 처한 환경이 다시 이런 책을 환기시킨 모양이다.

책방의 소갯글을 보자니 흥미로운 게, -어쩌면 다 아는 사실이라 안 흥미로울지도- 스펜서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오기 10여년 전(1850년)에 벌써 '적자 생존 이론' 을 최초로 발전시켰다 함. 그리고 1903년에 죽은 스펜서의 무덤을 런던 하이게이트 묘지의 맑스 무덤 바로 맞은 편에 후세인들이 앉힌 모양인데, 아마도 공산주의와 자유주의가 갖는 대결의 지난한 지속을 상징하기 위함이려나...  이런 책 밖의 요소들을 고려한다면, 이 포스트의 제목과 내용을 '스펜서-다윈-맑스'로 묶을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는 그러지 않고 '스펜서-하이예크-노직' 노선이 낳은 신자유주의의 맹아 관찰 정도로 키를 조정한다. 더불어 스펜서의 이론이 나중에는 베르크손의 이론과도 무슨 연관이 있는 모양인데, 이건 잘 모르는 만큼이나 궁금하고 흥미롭지만, 간단히 관련 논문이나 하나 훑어보는 정도로 만족해야겠다 (시간이 많지 않은니).

* '국가에 대항하는 개인'이라는 제목을 보니 당연히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라는 클라스트르(Pierre Clastres)의 아주 훌륭한 1974년 책이 연상된다. 물론 제목만 비슷하지 '근본적' 지향과 성향은 다르겠지만...

 

L'INDIVIDU CONTRE L'ETAT, Herbert Spencer                                                  La société contre l'État

L'individu contre l'Etat (1885) / Herbert Spencer (Auteur)

Editeur : MANUCIUS (26 novembre 2008), 126p., 16 euro (Collection : Le Philosophe)


[책소개1] Herbert Spencer (1820-1903), philosophe, économiste et sociologue anglais fut l'un des premiers théoriciens du libéralisme. Il est aujourd hui presque oublié bien qu'il connût de son vivant une renommée internationale. Après la révolution russe et la Première Guerre mondiale, sa doctrine qualifiée à tort de «darwinisme social», très critiquée par les partisans de l état-providence, tombe peu à peu dans l'indifférence générale. À la fin de la Seconde Guerre mondiale, ses théories sont redécouvertes par le prix Nobel d'économie, le néolibéral Friedrich Hayek. Aujourd hui Spencer est principalement connu pour ses essais politiques. Il est fréquemment cité par les penseurs libéraux comme Robert Nozick ou Milton Friedmann, et beaucoup de dirigeants politiques et économiques font référence à ses écrits pour légitimer les politiques de déréglementation ou de «réforme de l État».

Récupérée un peu rapidement par les tenants d un libéralisme débridé, la pensée d Herbert Spencer a été souvent caricaturée et mérite une lecture plus attentive. Le texte ici présenté rassemble quatre articles publiés initialement dans la «Contemporary Review» en 1884, aussitôt réunis par Spencer dans un recueil The Man versus the State [L individu contre l État] et complétés par une préface et un post-scriptum. Spencer y développe ses théories antiétatiques ébauchées dès 1842 dans ses lettres rassemblées dans The Proper Sphere of Government, et plaide pour un «État régalien» réduit aux fonctions de police, de justice, de diplomatie et à l armée. Dès sa publication, l'ouvrage fit scandale et provoqua une énorme polémique. À l heure où sont questionnés à nouveau et de manière aiguë, le rôle de l État et son intervention dans l'économie et la société, la pensée de Spencer trouve plus que jamais sa place dans le débat public.

Biographie de l'auteur / par Pierre Musso, professeur à l'université de Rennes 2, est l'auteur de nombreux ouvrages sur la communication, la politique et la philosophie saint-simonienne. Il dirige la collection Europe/Fondations aux éditions Manucius. (http://www.amazon.fr/Lindividu-contre-lEtat-Herbert-Spencer/dp/284578094X)

 

[책소개2] Herbert Spencer (1820-1903), philosophe, sociologue et économiste minarchiste anglais, extrêmement connu en son temps comme théoricien de l'évolutionnisme qu'il appliqua avant l'heure aux sociétés humaines. Il naît dans une famille de radicaux, dissidents de l'anglicanisme, et dont il hérita le refus de l'autorité sous toutes ses formes. Très jeune, il se passionne pour les questions politiques et fait campagne contre les lois protectionnistes sur les importations de céréales. A dix-sept ans, il s'oriente vers la profession d'ingénieur des chemins de fer, qu'il exerce entre 1837 et 1841. Il abandonne rapidement cette voie pour se tourner vers le journalisme alors qu'il a tout juste une vingtaine d'années. Collaborant à The Economist, il y rédige de nombreux articles entre 1848 et 1853 et commence à rédiger de nombreux ouvrages originaux, dont les Social Statics (1851), fortement inspirés par l'utilitarisme benthamien ou A Theory of Population (1852), où il conteste le catastrophisme de Thomas Malthus. Il rédige en 1855 ses Principles of Psychology dans lesquels il attaque les vues de John Stuart Mill. Son grand oeuvre consistera en l'élaboration des Principles of Sociology (dont la publication s'étalera de 1876 à 1897).

Toute sa vie, Spencer fut un ennemi de la guerre et de l'impérialisme, qui sont tous deux les expressions accomplies de l'étatisme. Il meurt en 1903. Son opposition au « monopole » de l'Église anglicane sur le « marché » de la religion lui vaut de ne pas être enterré dans la Cathédrale de Canterbury en raison de l'opposition de l'archevêque du lieu. Il est enterré dans le cimetière de Highgate, juste en face de la tombe de Karl Marx. Connu comme l'un des principaux défenseurs de la théorie de l'évolution au XIXe siècle, sa réputation à l'époque rivalisait avec celle de Charles Darwin (il est l'auteur de l'expression « sélection des plus aptes »). Il a été le premier à développer des positions évolutionnistes, dès 1850, soit une dizaine d'année avant la parution de L'Origine des espèces de Darwin. Spencer appliqua initialement ses théories évolutionnistes à des domaines comme la philosophie, la psychologie et la sociologie, dont il est reconnu comme l'un des fondateurs de la discipline. Sa théorie fut appelée postérieurement, et erronément, « darwinisme social ». Elle a été amplement commentée à l'époque par des auteurs comme John Stuart Mill, Nietzsche, Durkheim ou Bergson.

Herbert Spencer a été extrêmement populaire en son temps, aussi bien dans son pays que dans nombre d'autres pays du monde. Il conseilla l'empereur du Japon et ses livres étaient distribués dans les écoles françaises en récompense lors des cérémonies des prix. Georges Clémenceau se déplaça pour le voir en Grande Bretagne. Aujourd'hui il est surtout connu pour ses essais politiques, ceux-ci sont notamment cités par des penseurs libéraux comme Robert Nozick. L'individu contre l'état correspond à la publication de quatre articles, publiés d'abord dans la Contemporary Review des mois d'avril, mai, juin, juillet 1884, ajouté d'un post-scriptum pour, comme le précise son auteur : « répondre à certaines critiques et pour écarter certaines objections que, l'on ne manquera pas de faire ». Ces quatre articles ont pour titres respectifs : Le nouveau torysme, L'esclavage du futur, Les péchés des législateurs, La grande superstition politique. Spencer y développe ses théories antiétatiques. Selon lui : « l'accroissement de la liberté apparente sera suivi d'une diminution de la liberté réelle. (...). Des mesures dictatoriales, se multipliant rapidement, ont continuellement tendu à restreindre les libertés individuelles, et cela de deux manières : des réglementations ont été établies, chaque année en plus grand nombre, qui imposent une contrainte au citoyen là où ses actes étaient auparavant complètement libres, et le forcent à accomplir des actes qu'il pouvait auparavant accomplir ou ne pas accomplir, à volonté. En même temps des charges publiques, de plus en plus lourdes, surtout locales, ont restreint davantage sa liberté en diminuant cette portion de ses profits qu'il peut dépenser à sa guise, et en augmentant la portion qui lui est enlevée pour être dépensée selon le bon plaisir des agents publics. » Spencer est donc un défenseur de l'État minimal (réduit donc strictement au maintien de la sécurité intérieure et extérieure). Comme John Locke, il défend la contractualisation des relations entre individus et État. Pour lui, le gouvernement est un simple employé que chacun est libre de révoquer, sans que cela attente aux droits d'autrui. Spencer défend par ailleurs une philosophie de l'Histoire selon laquelle les sociétés industrielles (ouvertes, dynamiques, productives, reposant sur le contrat et la liberté individuelle) supplanteront progressivement les sociétés militaires (guerrières, hiérarchiques, figées, fermées sur elles-mêmes). Au final, l'État deviendra lui-même un élément archaïque et obsolète. On peut dire que Spencer est un minarchiste convaincu de la probabilité d'un avenir anarcho-capitaliste. L'individu contre l'état a été publié en France dès 1885 chez Félix Alcan, Éditeur. Les éditions Manucius se proposent de le rééditer aujourd'hui dans le cadre du programme au concours de l'agrégation de philosophie 2008 dont le thème général est celui de l'individu. (http://www.alapage.com/-/Fiche/Livres/9782845780941/l-individu-contre-l-etat-herbert-spencer.htm?donnee_appel=GOOGL)

 

 

[스펜서 개관 -wiki-] La philosophie, la psychologie et la sociologie
Herbert Spencer (Derby 27 avril 1820 - 8 décembre 1903) est un philosophe et sociologue anglais.

 

1/ Biographie
Issu d'une famille de radicaux, il fut très tôt intéressé par les questions politiques. C'est pourquoi il s'affilia à de nombreuses associations. Il devint ainsi membre de l'Anti-Corn Law League, fondée par Richard Cobden. S'il se fit connaître comme sociologue, il exerça cependant la profession d'ingénieur des chemins de fer. Collaborant à The Economist, il rédigea de nombreux ouvrages originaux, dont les Social Statics (1850), fort inspirés par l'utilitarisme benthamien, A Theory of Population (1852), où il contestait le catastrophisme de Thomas Malthus, ou encore ses Principles of Psychology (qu'il commença en 1855). Son grand œuvre consista en l'élaboration des Principles of Sociology (dont la publication s'étala de 1876 à 1897). Toute sa vie, Spencer fut un ennemi de la guerre et de l'impérialisme : c'est pourquoi il s'opposa à la guerre hispano-américaine de 1898 et qu'il tenta de fonder une Ligue contre l'agression.


2/ Darwinisme social
Connu comme l'un des principaux défenseurs de la théorie de l'évolution au XIXe siècle, sa réputation à l'époque rivalisait avec celle de Charles Darwin (il est l'auteur de l'expression "sélection des plus aptes"). Il a notamment étudié son extension à des domaines comme la philosophie, la psychologie et la sociologie, dont il est reconnu comme l'un des fondateurs de la discipline. Sa théorie fut appelée postérieurement, et erronément, "darwinisme social". Or Spencer est resté toute sa vie un disciple de Lamarck : il croyait en l'hérédité des caractères acquis. Appelée également "théorie organiciste" car Spencer considérait la société comme un organisme vivant ou une supra organisation, ses recherches visaient à découvrir les lois d'évolution de la société en se basant sur celles des espèces. Pour lui, la société passe en plusieurs étapes d'un stade primitif où tout est homogène et simple à un stade élaboré, caractérisé par la spécificité, la différenciation, l'hétérogénéité.


3/ Idées politiques
Aujourd'hui il est surtout connu pour ses essais politiques, ceux-ci sont notamment cités par des penseurs libéraux comme Robert Nozick. Son ouvrage le plus connu, Le Droit d'ignorer l'État, publié en 1850, formulation classique du droit de se passer des services de l'État et, donc, du droit de sécession individuelle qu'il légitime lorsque la puissance gouvernante abuse de son pouvoir. Spencer était alors un défenseur de l'État minimal (réduit donc strictement au maintien de la sécurité intérieure et extérieure, ainsi qu'il l'explique dès The Proper Sphere of Government en 1842). Comme John Locke, il défendait la contractualisation des relations entre individus et État. Pour lui, le gouvernement est un simple employé que chacun est libre de révoquer, sans que cela attente aux droits d'autrui. Il se tourna néanmoins petit à petit vers un libéralisme utilitariste de facture plus classique[1].

Spencer défend par ailleurs une philosophie de l'Histoire selon laquelle les sociétés industrielles (ouvertes, dynamiques, productives, reposant sur le contrat et la liberté individuelle) supplanteraient progressivement les sociétés de militaires (guerrières, hiérarchiques, holistes, figées, fermées sur elles-mêmes). Au final, l'État deviendrait lui-même un élément archaïque et obsolète. Selon l'opinion que développe Yvan Blot dans sa thèse de doctorat[2], Spencer est considéré comme un minarchiste convaincu de la probabilité d'un avenir anarcho-capitaliste. Gueorgui Plekhanov, dans son ouvrage Anarchisme et Socialisme, le considéra pour sa part comme un philosophe bourgeois et « anarchiste conservateur[3] »
[2↑ Herbert Spencer, un évolutionniste contre l'étatisme, Les Belles Lettres, 2007. 3↑ Anarchisme et Socialisme, Conclusion [archive*]

 

 

[스펜서 비판 / Plekhanov, 1895, <아나키즘과 사회주의>의 결론]

Anarchism and Socialism / G.V. Plekhanov

[Gueorgui Valentinovitch Plekhanov (en russe : Георгий Валентинович Плеханов) (11 décembre 1856 - 30 mai 1918, ou 29 novembre 1856 - 17 mai 1918 selon le calendrier julien)]

 

CHAPTER VII, Conclusion : The Bourgeoisie, Anarchism, and Socialism.
The “father of Anarchy”, the “immortal” Proudhon, bitterly mocked at those people for whom the revolution consisted of acts of violence, the exchange of blows, the shedding of blood. The descendants of the “father”, the modern Anarchists, understand by revolution only this brutally childish method. Everything that is not violence is a betrayal of the cause, a foul compromise with “authority”. The sacred bourgeoisie does not know what to do against them. In the domain of theory they are absolutely impotent with regard to the Anarchists, who are their own “enfants terribles”. The bourgeoisie was the first to propagate the theory of “laissez faire”, of dishevelled individualism. Their most eminent philosopher of today, Herbert Spencer, is nothing but a conservative Anarchist. The “companions” are active and zealous persons, who carry the bourgeois reasoning to its logical conclusion.

The magistrates of the French bourgeois Republic have condemned Grave to prison, and his book, Société Mourante et l’Anarchie, to destruction. The bourgeois men of letters declare this puerile book a profound work, and its author a man of rare intellect.

And not only has the bourgeoisie no theoretical weapons with which to combat the Anarchists; they see their young folk enamoured of the Anarchist doctrine. In this society, satiated and rotten to the marrow of its bones, where all faiths are long since dead, where all sincere opinions appear ridiculous, in this “monde ou l’on s’ennui”, where after having exhausted all forms of enjoyment they no longer know in what new fancy, in what fresh excess to seek novel sensations, there are people who lend a willing ear to the song of the Anarchist siren. Amongst the Paris “companions” there are already not a few men quite “comme il faut”, men about town who, as the French writer, Raoul Allier, says, wear nothing less than patent leather shoes, and put a green carnation in their button-holes before they go to meetings. Decadent writers and artists are converted to Anarchism and propagate its theories in reviews like the Mercure de France, La Plume, etc. And this is comprehensible enough. One might wonder indeed if Anarchism, an essentially bourgeois doctrine, had not found adepts among the French bourgeoisie, the most “blasée” of all bourgeoisies.

By taking possession of the Anarchist doctrine, the decadent, “fin-de-siecle” writers restore to it its true character of bourgeois individualism. If Kropotkine and Reclus speak in the name of the worker, oppressed by the capitalist, La Plume and the Mercure de France speak in the name of the individual who is seeking to shake off all the trammels of society in order that he may at last do freely what he “wants” to. Thus Anarchism comes back to its starting-point. Stirner said: “Nothing for me goes beyond myself.” Laurent Tailhade says: “What matters the death of vague human beings, if thereby the individual affirms himself.”

The bourgeoisie no longer knows where to turn. “I who have fought so much for Positivism,” moans Emile Zola, “well, yes! after thirty years of this struggle, I feel my convictions are shaken. Religious faith would have prevented such theories from being propagated;but has it not almost disappeared today? Who will give us a new ideal?”

Alas, gentlemen, there is no ideal for walking corpses such as you! You will try everything. You will become Buddhists, Druids, Sars Chaldeans, Occultists, Magi, Theosophists, or Anarchists, which- ever you prefer – and yet you will remain what you are now – beings without faith or principle, bags, emptied by history. The ideal of the bourgeois has lived.

For ourselves, Social-Democrats, we have nothing to fear from the Anarchist propaganda. The child of the bourgeoisie, Anarchism, will never have any serious influence upon the proletariat. If among the Anarchists there are workmen who sincerely desire the good of their class, and who sacrifice themselves to what they believe to be the good cause, it is only thanks to a misunderstanding that they find themselves in this camp. They only know the struggle for the emancipation of the proletariat under the form which the Anarchists are trying to give it. When more enlightened they will come to us.

Here is an example to prove this. During the trial of the Anarchists at Lyons in 1883, the working man Desgranges related how he had become an Anarchist, he who had formerly taken part in the political movement, and had even been elected a municipal councillor at Villefranche in November, 1879. “In 1881, in the month of September, when the dyers’ strike broke out at Villefranche, I was elected secretary of the strike committee, and it was during this memorable event ... that I became convinced of the necessity of suppressing authority, for authority spells despotism. During this strike, when the employers refused to discuss the matter with the workers, what did the prefectural and communal administrations do to settle the dispute? Fifty gendarmes, with sword in hand, were told off to settle the question. That is what is called the pacific means employed by Governments. It was then, at the end of this strike, that some working men, myself among the number, understood the necessity of seriously studying economic questions, and, in order to do so, we agreed to meet in the evening to study together. It is hardly necessary to add that this group became Anarchist.

That is how the trick is done. A working man, active and intelligent, supports the programme of one or the other bourgeois party. The bourgeois talk about the well-being of the people, the workers, but betray them on the first opportunity. The working man who has believed in the sincerity of these persons is indignant, wants to separate from them, and decides to study seriously “economic questions”. An Anarchist comes along, and reminding him of the treachery of the bourgeois, and the sabres of the gendarmes, assures him that the political struggle is nothing but bourgeois nonsense, and that in order to emancipate the workers political action must be given up, making the destruction of the State the final aim. The working man who was only beginning to study the situation thinks the “companion” is right, and so he becomes a convinced and devoted Anarchist! What would happen, if pursuing his studies of the social question further, he had understood that the “companion” was a pretentious Ignoramus, that he talked twaddle, that his “Ideal” is a delusion and a snare, that outside bourgeois politics there is, opposed to these, the political action of the proletariat, which will put an end to the very existence of capitalist society? He would have become a Social-Democrat.

Thus the more widely our ideas become known among the working classes, and they are thus becoming more and more widely known, the less will proletarians be inclined to follow the Anarchists. Anarchism, with the exception of its “learned” housebreakers, will more and more transform itself into a kind of bourgeois sport, for the purpose of providing sensations for “individuals” who have indulged too freely in the pleasures of the world, the flesh and the devil.

And when the proletariat are masters of the situation, they will only need to look at the “companions”, and even the “finest” of them will be silenced; they will only have to breathe to disperse all the Anarchist dust to the winds of heaven.

Last updated on 19.7.2004 (http://www.marxists.org/archive/plekhanov/1895/anarch/ch09.htm)

 


[베르크손과 스펜서의 관계] Sur la relation de Bergson à Spencer / Intervention de Patricia Verdeau
Bergson, La Pensée et le mouvant, chapitres I et II

 

Spencer: Derby, 1820- Brighton, 1903. Philosophe britannique, il caractérise l'évolution par le passage de l'homogène à l'hétérogène, appliquant à la psychologie et à la sociologie les mêmes principes d'évolution. A connu une gloire aussi éclatante qu'éphémère (environ une vingtaine d'années, entre 1860 et 1880), dans son pays l'Angleterre, et jusqu'à la fin du siècle en Europe, aux Etats-Unis et en Asie.

Premiers Principes, 1862, première oeuvre d'un cycle consacré à l'exposé des théories évolutionnistes, et qui comprend, outre ce livre, Principes de biologie (1864-67), Principes de psychologie (1870-72), Principes de sociologie (1877-96), Principes d'éthique (1884-93). 
 

 Ce qui a plus manqué à la philosophie, explique Bergson au début de La Pensée et le mouvant, c'est la précision, et c'est par ce truchement que s'établit une critique de l'idée de système ; en effet, le système, pour Bergson, n'est pas taillé à la mesure de la réalité, en d'autre termes, il ne pourrait appréhender la durée réelle, par les abstractions qu'il pose, au titre desquelles on peut compter par exemple la simultanéité ou le possible. L'explication satisfaisante est celle qui adhère à son objet ; c'est bien le cas de l'explication scientifique, qui " comporte la précision absolue et une évidence complète ou croissante " (PM, p. 1252). En dirait-on autant des théories philosophiques, s'interroge Bergson ? On reconnaît là un philosophe attaché depuis longtemps à la science, et très tôt au positivisme anglais. Il s'agirait en quelque sorte pour la philosophie d'atteindre la rigueur de la science, tout en respectant les faits et détails du réel. Placer sa philosophie au même plan que les sciences positives a toujours été une ambition pour Bergson.  Dans sa jeunesse, deux perspectives philosophiques s'offraient à Bergson: celle des kantiens spiritualistes et celle des positivistes (non des disciples d'Auguste Comte, mais de ceux d'Herbert Spencer et de son disciple français Taine). Trouvant chez les premiers un spiritualisme trop vague, il suit les seconds par respect des faits. Comme l'explique Bergson à la fin de L'Evolution créatrice, il faut renoncer à la méthode de construction, qui fut celle des successeurs de Kant, et faire appel à l'expérience, à une " expérience épurée, je veux dire dégagée (...) des cadres que notre intelligence a constitués au fur et à mesure des progrès de notre action sur les choses " (EC, p. 801). La véritable expérience cherche une durée concrète où " s'opère sans cesse une refonte radicale du tout " ; elle cherche aussi à éclaircir le détail du réel. Le contexte scientifique du XIXe siècle (le progrès de la psychologie, l'évolution de l'embryologie) avait suggéré l'idée d'une réalité qui dure. On comprend alors le succès et la réputation de Spencer, et précisément d'un penseur qui annonce une doctrine d'évolution: " Aussi, quand un penseur surgit qui annonça une doctrine d'évolution, où le progrès de la matière vers la perceptibilité serait retracé en même temps que la marche de l'esprit vers la rationalité, où serait suivie de degré en degré la complication des correspondances entre l'externe et l'interne, où le changement deviendrait enfin la substance même des choses, vers lui se tournèrent tous les regards. " (EC, p. 802). Il faut dire qu'à l'époque, le concept d'évolution était assez récent. L'importance consacrée en cette fin de siècle aux théories de l'évolution en fait un élément prépondérant du cadre idéologique. Dans les Premiers Principes, il écrit: " L'évolution est une intégration de  matière et une dissipation concomitante de mouvement, durant laquelle la matière passe d'une homogénéité indéfinie et incohérente à une hétérogénéité définie et cohérente durant laquelle le mouvement retenu subit une transformation" (trad. Guymiot, 6e édition, p. 469).

 La philosophie de H. Spencer trouvait grâce aux yeux de Bergson. Dans de nombreux passages de son oeuvre ou de ses cours,  les allusions se multiplient au même titre que les signes de reconnaissance: "Il y a quelque cinquante ans, écrivait-il en 1930, j'étais fort attaché à la philosophie de Spencer." (PM, p. 1333) Dans tous les cas où Bergson a eu l'occasion de montrer ses premières recherches, il montre combien la philosophie des Premiers Principes, et notamment l'évolutionnisme, se situe au point de départ de sa pensée. On comprend l'intérêt que Bergson a pu porter à la philosophie de Spencer: " Une doctrine nous avait paru jadis faire exception ": voilà donc une doctrine qui devait donc comporter une " précision absolue et une évidence complète ou croissante " (PM, p. 1253). C'est bien le rapport étroit à la réalité qui est visé là, et qui pourrait s'apparenter à la préfiguration de ce qui sera plus tard l'intuition bergsonienne, comme appréhension de la durée réelle: " La philosophie de Spencer visait à prendre l'empreinte des choses et à se modeler sur le détail des faits " (Ibidem). Nous voyons là l'attention portée à la réalité, au détail, à ce qui échappe ordinairement à la généralité, à ce qui appréhende la réalité au plus près, comme l'indiquent les expressions " prendre l'empreinte " et " se modeler ".  L'effort semblait louable pour l'esprit rigoureux d'un Bergson probablement en admiration devant ce passage des Premiers Principes: " Une philosophie idéalement complète doit formuler la série entière des changements subis par les êtres, isolément et dans leur ensemble, depuis leur passage de l'imperceptible au perceptible jusqu'à leur retour du perceptible à l'imperceptible. Si elle commence ses explications avec des êtres qui ont déjà des formes concrètes, il est manifeste que ces êtres avaient une histoire antérieure ou qu'ils auront une histoire postérieure dont la philosophie ne rend pas compte. D'où nous avons vu que la formule cherchée, également applicable aux êtres pris isolément et dans leur totalité, doit être applicable à l'histoire de chacun d'eux et à l'histoire entière de leur ensemble. Telle doit être la forme idéale de la philosophie, quelle que soit la distance à laquelle on en reste dans la réalité." (trad. Guymiot, 6e édition, p. 1468).

 Or, le problème d'une adhésion à Spencer surgit rapidement dans le texte, et l'on comprend l'inconvénient inhérent aux " généralités vagues ". Le point d'appui, et en d'autres termes, le fondement de cette philosophie restait problématique: " Nous sentions bien la faiblesse des Premiers Principes " (PM, p. 1254). Or, cette faiblesse venait, dit Bergson de ce que l'auteur n'ait pas approfondi les " idées dernières " de la mécanique. On peut conjecturer que pour Bergson, l'auteur des Premiers Principes avait bien tenté d'appréhender la réalité à travers une démarche novatrice et précise, mais qu'il n'était pas allé au bout de ses ambitions premières, tout comme si le système, chez Spencer avait résisté à la particularité et à la durée. Il faut reconnaître la reconnaissance de Bergson, qui aurait voulu reprendre une partie de cette oeuvre, la compléter, la consolider, comme si Spencer avait eu l'ambition de Bergson, mais s'était arrêté en chemin. La déception suit cependant la reconnaissance: " C'est ainsi que nous fûmes conduits devant l'idée de temps. Là, une surprise nous attendait. " (PM, p.1254). En effet, le temps réel échappe aux mathématiques, à la superposition de partie à partie. La ligne immobile qui représente le temps est une manière de représenter la mobilité par l'immobilité, ce qui pour Bergson est absurde, sauf si nous voulons évoquer le temps de la mathématique: " Que la science positive se fût désintéressée de cette durée, rien de plus naturel, pensions-nous: sa fonction est précisément peut-être de nous composer un monde où nous puissions, pour la commodité de l'action, escamoter les effets du temps. Mais, comment la philosophie de Spencer, doctrine d'évolution, faite pour suivre le réel dans sa mobilité, son progrès, sa maturation intérieure, avait-elle pu fermer les yeux à ce qui est le changement même ? " (PM, p.1256). En d'autres termes, Bergson se trouve confronté à un évolutionnisme qui n'évolue pas, qui n'est donc pas fidèle à son ambition première ou qui n'est pas allé au bout de cette ambition-là.

 Cette question engage plus tard chez Bergson l'interrogation sur l'évolution de la vie " en tenant compte du temps réel ", et une reprise radicale de l'évolutionnisme spencérien: " l'"évolutionnisme " spencérien était à peu près complètement à refaire " (PM, p.1256). A l'image des autres philosophies, la philosophie spencérienne ne s'est guère occupée de la vision de la durée, peut-être pour des raisons langagières, explique Bergson. Bergson ne cesse de revenir sur ce problème, qui apparaît comme le point de départ de la philosophie de l'Essai. La critique de Spencer est sévère:  " il ne s'était pas plutôt engagé, explique Bergson dans l'Evolution créatrice qu'il tournait court. Il avait promis de retracer une genèse, et voici qu'il faisait tout autre chose. Sa doctrine portait bien le nom d'évolutionnisme ; elle prétendait remonter et redescendre le cours de l'universel devenir. En réalité, il n'y était question ni de devenir ni d'évolution ". Le projet de Spencer n'a pas atteint le but qu'il visait: il ne peut y avoir, bien sûr, de critique pire de l'évolution que celle qui l'accuse de non-évolution ! La " surprise " devient " artifice ": " L'artifice ordinaire de la méthode de Spencer consiste à reconstituer l'évolution avec les fragments de l'évolué." (EC, p. 802) Tout se passe alors comme si l'illusion suprême consistait à montrer le geste et le devenir là où il n'y a que juxtaposition de positions. Autrement, ce que Bergson perd dans le temps, c'est le mouvement du devenir: l'acte de dessiner n'a aucun rapport avec celui d'assembler les fragments d'une image déjà dessinée. Dans un certain sens, Spencer a repris le chemin de Kant. A la fin de L'Evolution créatrice, Bergson montre l'ampleur de l'illusion spencérienne: il fragmente la réalité, puis intègre ces fragments. Les concepts d'intégration de la matière et de dissipation du mouvement sont relus par Bergson. A partir de la réalité, Spencer construit une mosaïque, et s'imagine " en avoir retracé le dessin et fait la genèse " (EC, p. 803). L'illusion spencérienne touche plusieurs domaines au rang desquels on peut trouver la matière, l'esprit, la correspondance entre l'esprit et la matière.

 En ce qui concerne la matière, voilà ce que dit Bergson: : " Ce n'est pas en divisant l'évolué qu'on atteindra le principe de ce qui évolue. Ce n'est pas en recomposant l'évolué avec lui-même qu'on reproduira l'évolution dont il est le terme " (EC, p. 803): " S'agit il de la matière ? Les éléments diffus qu'il intègre en corps visibles et tangibles ont tout l'air d'être les particules mêmes des corps simples, qu'il suppose d'abord disséminées à travers l'espace. Ce sont, en tout cas des " points matériels " et par conséquent des points invariables, de véritables petits solides: comme si la solidité, étant ce qu'il y a de plus près de nous et de plus manipulable par nous, pouvait être à l'origine même de la matérialité ! " (EC, p. 803). En réalité, Spencer est victime de la représentation, s'apparentant chez Bergson à un découpage au service de mon action. D'une part, Spencer évoque des étapes de l'évolution (ce qui déjà fait problème pour Bergson) (comment passe-t-on en effet de l'évolution à la dissolution ? ), et d'autre part, il transforme la réalité, en l'appréhendant sous formes de morceaux et d'agglomération progressive. Il y aurait donc une double schématisation inhérente à cette représentation faussée. Cela dit, pour Spencer, l'intelligence et l'expérience nous confrontent à l'inconnaissable. Est-ce qu'alors Spencer est aussi éloigné qu'on le penserait de Bergson ? En réalité, il manquait à Spencer l'appréhension de la durée et de l'intuition En ce qui concerne les illusions spencériennes liées à l'esprit, Bergson montre l'erreur de Spencer qui pense la composition du réflexe avec le réflexe permet d'engendrer tour à tour l'instinct et la volonté raisonnable: " S'agit-il de l'esprit ? Par la composition du réflexe avec le réflexe, Spencer croit engendrer tour à tour l'instinct et la volonté raisonnable. Il ne voit pas que le réflexe spécialisé, étant un point terminus de l'évolution au même titre que la volonté consolidée, ne saurait être supposé au départ. Que le premier des deux termes ait atteint plus vite que l'autre sa forme définitive, c'est fort probable ; mais l'un et l'autre sont des dépôts du mouvement évolutif, et le mouvement évolutif lui-même ne peut pas plus s'exprimer en fonction du premier tout seul que du second uniquement. (...) Mais sur tout cela Spencer ferme les yeux, parce qu'il est de l'essence de sa méthode de recomposer le consolidé avec du consolidé, au lieu de retrouver le travail graduel de consolidation, qui est l'évolution même. " (EC, p. 804). La critique de Bergson vise la méthode spencérienne elle-même: au lieu d'envisager une progression graduelle de l'évolution, où interviendraient donc des moments que nous ne connaissons pas forcément dans la réalité actuelle, mais qui l'annoncent, Spencer envisage la réalité actuelle, accomplie et effective, la déconstruit pour la reconstruire: ainsi ni la genèse ni l'évolution dans leur dynamique ne sont véritablement pensées.

 En ce qui concerne la correspondance entre l'esprit et la matière, même si Bergson reconnaît que Spencer a raison quand il définit l'intelligence comme le terme de l'évolution, celui-ci ne peut appréhender cette évolution, puisqu'il se place a posteriori: " (...) quand il vient à retracer cette évolution, il intègre encore de l'évolué avec de l'évolué sans s'apercevoir qu'il prend ainsi une peine inutile: en se donnant le moindre fragment de l'actuellement évolué, il pose le tout de l'évolué actuel, et c'est en vain qu'il prétendrait alors en faire la genèse " (EC, p. 804). Qu'en est-il des rapports entre l'esprit et la réalité extérieure ? Pour Spencer, les phénomènes qui se succèdent dans la nature projettent dans l'esprit humain des images qui les représentent. Les relations entre les phénomènes engagent, de manière symétrique des relations entre les représentations. En d'autres termes, l'évolution des phénomènes engage l'évolution de nos représentations:  " Et les lois les plus générales de la nature, en lesquelles se condensent les relations entre les phénomènes, se trouvent ainsi avoir engendré les principes directeurs de la pensée, en lesquels se sont intégrées les relations entre les représentations. La nature se reflète donc dans l'esprit. La structure intime de notre pensée correspond, pièce à pièce, à l'ossature même des choses. " (EC, p. 804). Que répond alors Bergson à Spencer ?  "  Je le veux bien; mais, pour que l'esprit humain puisse se représenter des relations entre les phénomènes, encore faut-il qu'il y ait des phénomènes, c'est-à-dire des faits distincts, découpés dans la continuité du devenir. Et dès qu'on se donne ce mode spécial de décomposition, tel que nous l'apercevons aujourd'hui, on se donne aussi l'intelligence, telle qu'elle est aujourd'hui, car c'est par rapport à elle, et à elle seulement, que le réel se décompose de cette manière. " (EC, p. 805). Spencer est victime, pour Bergson, d'une illusion inhérente au mouvement rétrograde du vrai. Pour que l'esprit distingue des phénomènes, il faut que que l'intelligence soit déjà présent. C'est parce que je découpe la réalité pour les besoins de mon action que les phénomènes apparaissent.

 C'est vraiment avec ce grand livre de 1907 que Bergson prend congé de Spencer. La question des rapports entre esprit et réalité est d'autant plus importante qu'elle engage la question fondamentale, tant pour Spencer que pour Bergson, de l'évolution: " Dès lors, au lieu de dire que les relations entre les faits ont engendré les lois de la pensée, je puis aussi bien prétendre que c'est la forme de la pensée qui a déterminé la configuration des faits perçus, et par suite leurs relations entre eux. Les deux manières de s'exprimer se valent. Elles disent, au fond, la même chose. Avec la seconde, il est vrai, on renonce à parler d'évolution. Mais, avec la première, on se borne à en parler, on n'y pense pas davantage. " (EC, p. 806). Le problème de l'évolution se pose dans un cas comme dans l'autre, puisque d'un point de vue comme de l'autre on pose respectivement la fragmentation de la réalité comme effective, et l'intelligence comme effective. La position de Bergson se profile à l'horizon de ces considérations. Le véritable évolutionnisme est celui qui va prendre en considération une progressive élaboration de l'intelligence, de la fragmentation, et de leurs rapports mutuels: " Car un évolutionnisme vrai se proposerait de rechercher par quel modus vivendi graduellement obtenu l'intelligence a adopté son plan de structure, et la matière son mode de subdivision. Cette structure et cette subdivision s'engrènent l'une dans l'autre. Elles sont complémentaires l'une de l'autre. Elles ont dû progresser l'une avec l'autre. (EC, p. 806). Par ailleurs, Bergson avance des arguments émanant  du domaine de la physique: " Déjà, dans le domaine de la physique elle-même, les savants qui poussent le plus loin l'approfondissement de leur science inclinent à croire qu'on ne peut pas raisonner sur les parties comme on raisonne sur le tout, que les mêmes principes ne sont pas applicables à l'origine et au terme d'un progrès, que ni la création ni l'annihilation, par exemple, ne sont inadmissibles quand il s'agit des corpuscules constitutifs de l'atome. (EC, p. 806). Nous voyons là une philosophie attachée à la démarche scientifique, et à sa tendance à considérer une évolution de durée. Le rapport à Spencer pose le problème des fins de la philosophie: " Le philosophe doit aller plus loin que le savant. Faisant table rase de ce qui n'est qu'un symbole imaginatif, il verra le monde matériel se résoudre en un simple flux, une continuité d'écoulement, un devenir. Et il se préparera ainsi à retrouver la durée réelle là où il est plus utile encore de la retrouver dans le domaine de la vie et de la conscience. Car, tant qu'il s'agit de la matière brute, on peut négliger l'écoulement sans commettre d'erreur grave: la matière, avons-nous dit, est lestée de géométrie, et elle ne dure, elle réalité qui descend, que par sa solidarité avec ce qui monte. Mais la vie et la conscience sont cette montée même. Quand une fois on les a saisies dans leur essence en adoptant leur mouvement, on comprend comment le reste de la réalité dérive d'elles. (EC, p. 807)

 Bergson substitue à un évolutionnisme qui n'évolue pas une évolution créatrice. Comprendre le mouvement de l'évolution créatrice, c'est s'y insérer. C'est à cette condition que la philosophie peut penser le mouvant. La durée devient alors un principe d'explicitation de la réalité, ainsi que des différents degrés de réalité. L'absolu bergsonien répond alors à l'inconnaissable spencérien: " Ainsi comprise, la philosophie n'est pas seulement le retour de l'esprit à lui-même, la coïncidence de la conscience humaine avec le principe vivant d'où elle émane, une prise de contact avec l'effort créateur. Elle est l'approfondissement du devenir en général, l'évolutionnisme vrai, et par conséquent le vrai prolongement de la science, - pourvu qu'on entende par ce dernier mot un ensemble de vérités constatées ou démontrées " (EC, p. 807). (http://pedagogie.ac-toulouse.fr/philosophie/forma/verdeaubergsonspencer.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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