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우린 2011년을 어떻게 기억할까?
총선, 대선만을 바라보고 모두 '판짜기'에 몰입했던 한 해?
그렇게 기억한다면, 한진투쟁도 현대차 비정규직투쟁도 기억나지 않겠지.
오늘 우연히 컴퓨터에서 발견한 파일들이다.
2007년 울산 노동자대투쟁 20주년 기념사업에 함께했을 때 작업해 만든 전시물이다.
용량이 작은 파일이지만, 웹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없다.
이같은 전시물을 20개쯤 만들어 현장순회 전시와 지역집회 전시를 했었다.
그중 오늘 나를 사로잡았던 건 2001년 울산총력투쟁, 또는 화섬3사투쟁이라 불리었던 2001년 관련 전시물이다.
내가 오늘 이걸 들여다보게 된 건,
첫째, 얼마 전 돌아가신 박현정 위원장 때문이다.
울산총력투쟁이 있은지 10년이 지났는데, 위원장은 가셨다...
둘째, 울산총력투쟁이라는 명칭 때문이다. 그때도 명칭을 뭐라고 하는지에 대해 실무자들끼리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받기는 했었다. 어쨌든 87년 20주년 기념행사를 울산지역본부가 주축이 돼 행사를 여는 점을 감안해, 울산지역본부가 불렀던 '울산총력투쟁'이라 하자, 뭐 그랬던 것 같다.
사실 서울에서는 '화섬3사투쟁' 이런 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화섬3사만이 아니라 화섬4사가 정확하다. 그리고 당시 투쟁이 확대되면서 울산의 금속노조 소속 노조가 대거 참여하게 됐다. 또 공권력투입 이후 투쟁이 전국적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 형집행 정지와 민주노총 주요 간부들의 구속, 수배가 잇따랐다. 그래서 김대중 정권 퇴진을 걸고 싸우게 된 걸 생각하면 '화섬3사투쟁'은 좀 격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셋째, 글 내용에, 이 투쟁이 접히게 된 계기로 태광노조 송교선 위원장의 직권조인을 적시하고 있는데, 이는 9월에 선언한 것이었다. 사실은 7월 5일 전국총파업이 현대자동차노조(위원장 이상욱)가 파업을 철회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250여 명의 활동가가 조합원들에게 파업을 호소하고 뒤이어 지역 집회에 참여한 현대중공업과 파업을 철회한 현대자동차는 대조적이었다. 이 사실이 이 전시물에 적시되지 않은 게, 지금 시점에서 다시 보니 무척 아쉽다.
아무튼, 이제 이 전시물은 울산노동역사자료실 한 구석에 그저 놓여 있다.
아쉬운 마음에 몇 개만 올려본다.
그중, 2003년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결성 투쟁도 함께 올려둔다.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이 꼭 승리로 돌아가, 불법파견 끝장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2001년 울산총력투쟁은 타이핑해서 함께 텍스트로 올려둔다.
노동자대투쟁 20주년
울산노동자, 투쟁으로 달려온 20년사
2001
울산노동자, 다시 공장의 담을 넘어 거리에서 만나다
2001 울산 총력투쟁
2001년 효성자본은 교섭을 철저히 거부한 채 노동조합 간부들을 대상으로 징계해고, 고소, 고발을 남발한다. 공안당국은 파업도 들어가기 전, 박현정 위원장을 회사 안에 난입해 강제 연행 구속했다. 그뒤 효성자본은 식칼과 전기봉으로 무장한 용역깡패를 공장에 상주시켰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기나긴 10년의 무쟁의를 깨고 총파업에 떨쳐 일어선다. 초우량기업인 태광, 대한화섬과 고합에서도 정리해고와 해외매각을 예고하며 짜여진 각본처럼 노조 무력화 공작이 전개되었다.
6월 5일 새벽, 정권은 효성공장에 공권력을 전격적으로 투입한다. 그후 침탈 전날 고공농성에 들어간 2차 지도부들을 전원 구속했지만 다시 3차 지도부를 구성한 효성조합원들은 복산 성당을 거점으로 장외투쟁을 전개해 나간다.
민주노총 울산본부 역시 공권력 투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한편, 6월 20일에는 태화강 둔치에서 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남노동자대회를 개최한다. 그리고 민주버스와 금속노조 사업장의 연대파업이 줄을 이었다.
기나긴 총력투쟁은 7월 5일 전국총파업을 기점으로, 태광, 대한화섬 송교선 위원장의 직권조인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효성은 300명의 파업참가 조합원 전원징계, 해고 40명, 가압류, 태광 역시 천문학적인 액수의 가압류와 정리해고, 징계해고가 줄을 이었다. 2001년 울산 노동자 총력투쟁은 많은 해고자를 낳은 채 막을 내렸지만 6년이 지난 현재까지 출근투쟁을 이어가는 등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