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4일(일요일, 1일차) : 서울에서 호치민시로 향함

 

- 베트남으로 떠난다. 몇 달 전부터 계획한 일이긴 했지만 한 달 동안 다른 일로 정신 없어서 미처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채 떠나는 길이다. 보다 꼼꼼하게 준비하고 떠날 수 있다면 마음이 한결 가벼웠을 텐데 안타깝다.


-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 합정역에서는 자이 건설 현장을 지나쳤다. 얼마 전 타워크레인이 붕괴해 1명이 죽고 2명이 다친 사고. 어제 읽은 한겨레21의 기사가 생각났다. 기자는 타워크레인 꼭대기가 오지라고 했다. 베트남보다 오지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 사실은 우리가 사는 곳은 모두 오지가 아닐까.


- 서울을 빠져나오자 황폐하기 그지없는 풍경들이 이어진다. 인천공항 가는 길에는 아라뱃길을 만들기 위해 파헤친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깊이와 폭이었다. 폭 80m, 19Km 구간의 아라뱃길은 새로 당선된 인근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이미 재검토를 요구한 바 있다. 한강물보다 깨끗한 서해물을 끌어들여 수질을 보존한다니. 소금물로 깨끗해지는 물에는 어떤 물고기가 살게 될까. 경제성도 없다는 얘기가 들린다. 누가 갑문 통과하느라고 번거로운 아라뱃길 통해 물건을 나르겠냐는 얘기다. 선진 8개국이 국내총생산에서 건설비 투자 비용이 12%인데 반해 무조건 짓고 보자는 토건국가 한국은 23.4%에 달한다.
 

- 게다가 인천공항 가는 좌우로 들어선 공항철도 역사의 거대한 규모도 놀라웠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항철도를 이용한다고 역사를 저렇게 크게 짓나? 아니면 역사부터 크게 지어놓고 앞으로 그 주변을 아파트 숲으로 채우려 하나? 그러고 보니 길 좌우로 타워크레인이 셀 수 없이 많이 서 있다. 김포신도시의 수많은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물류센터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상황인 듯했다.


- 인천공항으로 들어가자마자 왼쪽으로는 끝에 아시아나, 오른쪽 끝으로는 A구역부터 대한항공이 있었다. A는 주로 중국인들이 북적였는데, 일찍 도착해서인지 큰 비행기의 좋은 창가 좌석을 챙길 수 있었다. 좌석은 □□ □□□□ □□ 이런 구조였다. 대한항공은 대만 중화항공과 연계해 베트남 노선을 운영중이었고 그래서 대만에서 갈아타야 했다. 대만까지는 대한항공을 타고 가야했다. 대한항공 기내식도 괜찮았다. (고기덮밥 or Seafood 덮밥)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인천을 떠나 타이뻬이로 갈 때 내 대각선 방향에 앉은 한국 남자는 이렇게 문자메세지를 보내고 있었다. “오빠 이제 비행기 타고 간다. 아직 자냐? 연락도 안 하고. 잘 지내라.”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외로운 길이라는 느낌이었다. ‘공항-비행기’, 이런 게 ‘즐거움-설레임’ 같은 단어보다 ‘외로움-고독’ 같은 단어와 더 잘 어울리는 것이 이 시대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여행자의 풍경이 아닐는지.


- 대만 타이뻬이 타오위엔 국제공항에서 내리기 직전, 하늘에서 바라본 대만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저수지들이, 그리고 중소 공장들이 간간이 보이는 가운데 사방으로 펼쳐진 논밭들이 인상적이었다. 빈 공간, 버려진 공간이 전혀 없을 정도로 가꿔진 땅이라는 느낌, 한적한 길에는 드문드문 오가는 차들만이 보였다.


- 반면 인천공항에서 이륙할 때 본 인천공항 인근은 섬과 갯벌, 그리고 간척사업으로 황폐해진 땅과 일직선으로 그어진 해안선만 보였을 뿐이다. 인천공항 생김새와 영종대교 모습을 위에서 바라봤다는 정도만이 남을 정도로 볼 품 없는 풍경.


- 대만의 아름다운 해안선은 제주의 그것만큼이나 예뻤고 땅에 가까이 갈수록 눈에 띄는 해안선 가까이로 잇달아 물결치는 파도들이 쉼없이 밀려오고 부서지고 또 밀려오고 부서지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타오위엔 공항은 낡았지만 소박하고, 크지만 쇄락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공항을 메운 중국인들의 인파는 그것이 대만인지, 본토 대륙 중국인지 나로서는 분간할 수 없지만, 아시아에서 무언가 거대한 흐름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그리고 그 변화가 세계적 규모의 변화일 거라는 걸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 인천공항을 압도하는 중국인들의 물결에서도 가난이라든가 빈곤이라든가 하는 옛 시절의 느낌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 타오위엔 공항의 흡연실은 A9 탑승구 근처에 있었다. 내가 탈 비행기는 A3 탑승구였다. 한참을 걸어가보니 실외 흡연장소나 다름없었다. 거기를 채우고 있는 건 태반이 일본인들이었다.

 

- 타오위엔 공항에서 무슨 맛있는 전통 과자도 하나 시식해보았다. 먹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 타오위엔 공항은 리노베이션 중이었다. 큰 공사로 공항 내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공사가 완료된 후에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를 것 같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타오위엔 공항에서 다시 중화항공으로 갈아타고 호치민 행. 중화항공은 대만 항공사로서 계속 대만의 관광지를 화면에 비치고 또 비쳐줬다. 인상적인 지명은 대만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카오슝시(高雄市)에 있는 애하(愛河, The Love River)였다. 아름다운 이름, 로맨틱하다는 느낌이었다.


- 비행기 앞자리에는 일본인들이 우리 옆자리에는 중국여자가 앉았다.


- 우리가 탄 중화항공 스튜어디스들은 잘 웃지 않았다. 매화꽃이 핀 비행기에 싸늘한 스튜어디스라니.


- 하늘에서 내려다본 호치민시는 굽이치는 강줄기가 장관이었다. 강줄기는 범람한 듯 주변 마을도 온통 흙빛이었고 떤션넛 공항이 가까워올수록 덜해졌지만 그래도 강은 여전히 놀라운 곡률로 굽이치고 있었다. 도로에는 오토바이가 가득찬 채 질주하고 있어 이곳 호치민에 가까이 왔음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떤션넛 공항 보안 검색대의 직원들은 인사를 해도 대답이 없고 경직된 표정이었다. 주어진 일만 할 뿐이었다. 떤션넛 공항에서 출입국신고카드는 제출할 필요가 없었다. 아마도 그 제도가 폐지된 듯했다.


- 공항을 나서기 전, 30달러를 환전했다. (19500동(VND)=1달러(USD)) 수수료가 조금 있는 듯했다. 수수료를 합산하면 19400VND=1달러 정도였다.


- 떤션넛 공항은 1960년대 세계 3대 공항 중 하나로 꼽혔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활력이 없었다. 하지만 건물을 나서자 그 뜨거운 공기 만큼이나 뜨거운 인파가 ‘딱시’, ‘딱시’를 외치며, 혹은 ‘오도바이’, ‘오도바이’를 외치며 말을 걸어 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공항에서 나서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152번 시내버스를 타러 갔다. 국내선 공항 방향이다.


- 사이공 가는 길. 사이공을 지금은 호치민시라고 부르지만 사이공의 1구역(못꽝)은 지금도 사이공이라 불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시내버스에는 베트남 사람들과 서양 남녀가 탔다. 그 서양인들은 론리플래닛을 들고 기사에게 무언가 물어보고 있었다. 난 앞자리 소녀에게 데탐거리는 어디서 내려야 하느냐고 물었다. 소녀는 내 얘기를 알아듣지 못하고, 난 소녀의 얘기를 못 알아들었다. (나중에 호치민 지리에 좀 익숙해진 다음에 생각해보니 서양남녀는 벤탄시장에서 내린 듯하고, 우리는 그보다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린 듯했다.)


- 소녀가 내리라고 일러준 곳에는 잘 내렸지만, 처음 내린 낯선 도시는 벌써 캄캄했고, 길을 한참동안 헤맸다. 소녀가 일러준 곳이 맞긴 맞았지만 착오로 인해 한참을 돌아다녀야 했다. 베트남어를 모르는 나는 문맹자였다. 문맹자는 지도와 이정표를 보면서도 길을 찾을 수 없다.


- 한국음식점 간판, 간간이 지나다니는 서양인들을 보며 여행자거리에 가까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베트남 그리기’ 네이버카페에서 보기만 했던 ‘신카페’, ‘김카페’, ‘리멤버투어’ 등이 보여 반가웠다. 호텔을 찾기 위해 길을 헤매던 중 어떤 베트남 아줌마(호객꾼인 듯)가 12달러를 부르길래, 10달러를 불렀더니 어디론가로 데려갔다. 그래서 숙소를 정했다. 그 숙소는 안안호텔이 있는 골목으로 꺾어져 다시 한번 왼편 사잇길로 들어갔다.


- 호텔 룸 호수는 302호였지만 4층이었다. 1층은 리셉션 시설이고 2층에는 주인 가족들이 산다. 전체 층이 몇 층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조용했다.


- 룸에 짐을 놔두고 인근 음식점을 찾으러 나섰다. 안락사(安樂寺) 근처에 있는 ‘Pho Pizza’라고 쓰인 간판을 보고 찾아들어갔다. 나중에 현지에 적응해가면서 보니 이 집이 그리 싼 집은 아니었고 안락사가 그 옆에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처음이라 그런지, 혹은 오랜 비행 끝에 지쳐서 그랬는지 그저 맛있었고 ‘사이공 맥주’(2병×2명)를 마셨다. 거기서 한 젊은 여성 행상으로부터 담배를 구입했다. ‘caraven’이라는 영국 담배였는데 ‘베트남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담배’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0,000동이나 더 주고 산 것이었다. 베트남에서 첫 바가지를 쓰는 순간이었다.


-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설레어서 그런 것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12/15 13:31 2010/12/15 13:31
글쓴이 남십자성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blog.jinbo.net/redgadfly/trackback/60

댓글을 달아주세요

<< PREV : [1] : ... [83] : [84] : [85] : [86] : [87] : [88] : [89] : [90] : [91] : ... [142] : NEXT >>

BLOG main image
남십자성입니다. 트위터 : @redgadfly 페이스북 : redgadfly by 남십자성

카테고리

전체 (142)
잡기장 (36)
삶창연재글 (15)
무비無悲 (15)
我뜰리에 (3)
울산 Diary (7)
캡쳐 (4)
베트남 (33)
발밤발밤 (18)
TVist (10)
탈핵 에너지 독서기 (1)

글 보관함

달력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전체 방문자 : 469457
오늘 방문자 : 64
어제 방문자 :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