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 한 글자 매직으로 꾸욱꾸욱 눌러 쓴 대자보는 그 자체로 민중언론이었다.
학생회관에서 4년간 대자보만 써온 장인들이, 한 자, 한 자 손수 공들여 새긴 그런 대자보.
노동조합 농성장에 투입된 공권력의 폭력, 대학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대학 당국, 노동자 다 내쫓는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국회, 경제 위기설을 흘리며 노동조합을 공격하던 사용자 단체 등 우리가 규탄하고 경고하고 투쟁하고 분쇄해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았다. 대자보는 그 모든 걸 넉넉하게 담아냈다. 전지 한 장, 매직, 청테이프가 있으면 민중언론은 완성되었다.
십수년 전, 그렇게 완성된 대자보를 들고 교정 구석 구석마다 붙이러 다니던 날이 있었다. 바람은 차고 날카로웠다. 뚜벅뚜벅 걸어 대자보를 다 붙이고 돌아오던 길, 하늘은 흐렸고 간혹 빗방울도 날렸는데, 세찬 바람에 몇 시간 전 붙였던 대자보는 바람에 날려 깃발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학우들은 이미 집에 다 돌아가 캠퍼스는 텅 비어 있었고 가을 바람은 매서웠다. 그래서 더 그 풍광이 황량하고 쓸쓸했다.
아무도 읽지 않는 민중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