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사람들을 만나고 들어오는 길입니다.
제게는 <참세상 사람들>이라는 카테고리로 엮이는 사람들이지요.
1995년, 우린 참세상에서 만났죠.
01410으로 접속하면, "삐리리리리리~~~~" 소리와 더불어서 "찍, 찍찍" 소리가 나고서는 접속하던
PC통신. 참세상만 그렇게 접속했던 건 아니지요.
나우누리, 천리안, 하이텔, 다 그렇게 접속했지만,
전, PC통신을 시작하면서부터 "참세상"이란 곳에 "배타적으로" 접속을 했던 몇 안 되던 사람입니다.
1. 우린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는
자본의 공간, 혹은 '쟤네'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공간 정도로요.
뭐, 그랬던 사례를 들 수도 있겠지만 지금 와서 그런 얘긴 불필요하고.
아무튼, 그런 정도 생각을 가졌던 게 외려 PC통신 참세상에 애정을 가지게 된 계기였죠.
참세상 이사 가면, 이용자들이 와서 이사도 도와주고.
개발자들과도 맨날 술 마시고, 사무실 가서 이야기 나누고.
1995년에는 제가 나이가 몇 안 돼서 꽤 천둥벌거숭이처럼 놀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당시 이용자, 혹은 개발자 형, 누님, 언니, 오빠들이 이쁘게 좀 봐주셨죠.
2. 그땐 다른 통신사에서 서비스되던 채팅 '초대'조차 안 됐었죠.
그러면 우린 memo id "채팅방으로 와라"라는 식으로 해서 채팅을 했었죠.
수시로 memo에 뭐 새로 들어온 게 있나 확인을 해야 했었죠.
go memo를 눌러가면서 말이죠.
그래도 두세 달 만에 "to"라는 기능이 생기기도 했고
PC통신 중에 처음으로 "새"라는 기능도 생겼죠.
(to를 한글자판으로 쳐보면 "새"입니다. "새 아이디"를 쳐도 명령어가 먹는 건
그때로서는 개발자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죠.
그처럼 참세상에서 획기적인 것들이 많이 시도가 되었답니다.)
그리고서 몇 달 더 지나자 참세상은
PC통신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과
기술적인 서비스면에서 거의 다름이 없게 되었습니다.
3, 문제가 된 건 사용자 숫자죠.
기능적인 면에서 별 다른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PC통신이 이른바 "대세"가 되어갔음에도
참세상의 이용자 숫자가 늘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당시 참세상 이용자들 체감지수로는
비약적으로 늘었죠. 정말 맨날맨날 새로운 사람들로 넘쳐났습니다.
진보블로그에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의
거의 다섯 곱절 이상 말이지요.)
참세상은 그때부터 유료화 되었습니다.
단, 동의와 토론의 절차를 좀 밟았습니다.
사람들은 최소한의 유료화에 대부분 동의를 했습니다.
당시, 한 달에 3,300원을 내는데에 동의를 했죠.
아마도 1996년부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동의의 절차를 밟아서인지
돈 내기 시작했다고 안 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하이텔 9,900원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4. 1992년 대통령선거 당시 활약했던 '백기완 선거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한 '학생문예단'이
발전적으로 해체하면서 두 가지 모임으로 발전했지요.
하나는 <문화예술동호회(문예동)>였고 다른 하나는 <오늘 예감>이었습니다.
둘이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되 조금 달랐는데,
제 기억으로는 학생문예단이 (대선 이후에도) 활동을 하다가 마침 생겨난
PC통신 참세상에 둥지를 틀었고,
학생문예단과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이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면서 <오늘 예감>을 만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문예동이 먼저고 오늘예감이 나중이란 건 아니고,
제가 참세상에 들어왔을 때는 그냥 딱! 그 둘 정도만 의미 있는 동호회(오늘 예감은 동호회는 아니었지만) 같은 것이었지요.
문예동은 참세상 최대 회원 가입 동호회였지요.
참세상 내 게시판 중에서 가장 처음으로 게시글 '10,000'을 찍은 것도
문예동 자유게시판이었던 '쓰레기통'이었지요.
이처럼 문예동은 참세상의 최대 동호회로서
참세상의 확장과 더불어 성장해 갔었습니다.
그리고서 민중가요동호회 새벽길이 만들어졌고,
그 외 무수한 동호회, 띠별모임, 오프라인에 있던 모임들이 들어오면서
PC통신 참세상은 진짜 사람들로 바글바글했지요.
5. 오늘, 그 1995~년 시절을 함께했던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새삼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그러나 흘러간 강물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그건 단지 지나간 어떤 것에 불과하다는 것도 잘 압니다.
다만,
(이 생각도 일면적이긴 하겠지만서도요.)
'공동체성', '운동성', '선도성' 이런 게 없다, 뭐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참... 얼리 어댑터? 그런 말도 없던 시절이지만,
그랬던 사람들 중 (저를 포함해서) 어떤 사람들은
"리트윗"이나 "멘션" 같은 말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합니다.
그런 건 몰라도 됩니다. 제 생각에는요.
자본에 팔로윙하고 자본에게 팔로윙 당하고 싶어하거나
이미 시스템의 하부단위로서 리트윗하는 식으로 사는 건
이 IT 세월에도 자본의 톱니바퀴에 불과한 생활이니까요.
그렇게 일상을 착취당할 생각은 없습니다.
6. 제가 기억하는 재밌는 일 중 하나는
1995년 11월, 민주노총이 여의도광장에서 출범할 때였습니다.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의 여러 '진보 동호회' 사람들도 여의도에 있었지만,
참세상 이용자들은 '깃발'을 내걸었지요.
(그게 '문예동'이었는지, '오늘예감'이었는지, '참세상'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그 깃발을 결국 민주노총 출범식 깃발 행진할 때 끼워넣었지요.
(제가 '노동역사' 정리하는 쪽에 있어서 아는데
그날 사진이 매우 귀합니다. 그래서 그 깃발이 찍힌 사진은 못봤습니다만...)
아무튼, PC통신 참세상은 지금과는 매우 달랐던 시절이죠.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겠지만,
기술적 변화가 진보를 담보하는 것도 아니지만,
기술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근본(적 배치)은/는 다르지 않다,
뭐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트위터가 그 자체로 진보적이지 않지만
트위터가 이 세계의 진보를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부정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지요.
1999년이었던가요?
에릭 리의 <노동운동과 인터넷>(한울)이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에 의해 번역이 된 일이 있었지요.
그 책에 나와 있는 내용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운동적 기제로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거겠죠.
뭐, 지금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도 그런 맥락이 아니겠습니까.
7. 암튼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만...
그냥 저 같은 PC통신 참세상 시절의 '유저'들은
그 시절의 그런 친구 맺음 같은 게 없어서
조금은 답답하다, 그런 생각도 듭니다.
PC통신-->인터넷-->(아아이러브스쿨/싸이월드)-->블로그-->트위터
로 발전하는 맥락이
공동체와는 관계없이,
다시 말해, 기술적 발전이 어떤 공동체성을 발전시키고
인민의 조직적 능력을 발전시키는 방향이라기 보다는
(그야말로 사회적인 능력이지요.)
(그 사회적 능력 중의 일부를 취하는 방식으로의) SNS로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답답함이 있습니다.
이 SNS에서 말하는 Social이 정말 사회적인 것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기존의 인적 관계를 재생산하는 사회성이란
기존 사회적 관계를 공고하는 데 기여하는 사회성이 아닌가 하는 의심,
한국의 미니홈피나 블로그에서 재생산된 그 오프라인 중심의 사회적 관계가
결국 이 사회의 공고한 체계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면서
더욱 더 개인주의적 가부장제적 경제 단위를 공고히 시켜줬던 게 아닌가 하는 뭐 그런...
트위터는 그런 가부장적인 것도 깨버리면서,
일종의 동원체계로 귀착될 가능성도 한편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에서 '전투(행동) 유발 기제'로 작동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 밤입니다.
8. 뭐, 모르겠고.
오늘은 옛 1995년 참세상 사람들을 만나 반가운 밤입니다.
빤짝빤짝하던 사람들이 늙었다는 걸 발견했다기보다는
늙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빤짝빤짝하길래 좋았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별이 되는 한, 길을 잃을 리야 있겠습니까.
오래오래 가야 별자리도 그리니까,
오래오래 가야 별자리가 더 선명해지고 구체화되니까,
나이 먹는 일이 이리도 좋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