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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10/06

홍기빈,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 발췌독

마취술은 수술의 기술에 종속되는 하위 기술이므로 그 목적과 수단의 모든 구체적인 면에서 상위의 기술인 수술의 기술에 따라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획득의 기술이 가정생활에 종속되는 하위 기술이라면 물자를 조달하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가족 성원들의 행복한 삶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한도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마취사가 안전하고 성공적인 수술이라는 상위의 목적을 망각한 채 제 흥에 겨워 "마취술의 한계에 도전한다"면서 극단을 달리면 그야말로 큰일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획득의 기술도 가정의 행복이라는 상위의 목적을 무시한 채 "돈벌이의 한계에 도전한다"고 굴어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두 기술을 동일한 것으로 보고 "더 많은 부의 획득"을 목적으로 가정생활을 관리한다면, 가정의 행복은 사라지고 가정인지 공장인지 알수 없을 정도로 가족 모두가 혹사당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경제 행위에서의 목적 합리성이 독립되어 따로 노는 것을 피하고 철저하게 가치 합리성의 차원에 복무하도록 묶어두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95쪽)

 

 

 

앞에서 우리는 인간의 활동에서 목적의 추구는 무한하지만 수단의 양은 그 목적에 의해 제한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를 보았다. 또한 정말 제대로 사는 법을 아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폴리스의 운영기술 politikon 과 가정관리 기술을 상위의 기술로 삼고, 거기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획득의 기술은 그 하위의 기술로 종속시킨다고 하는 그의 주장도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솔론에 반대하여 인간이 필요로 하는 물자의 양에는 어떤 자연적인 한계가 있음이 명백하다고 할 수 있다. 수술을 위해 마취를 하는 경우 마취약이 무한정 필요하지는 않다. 무한정 마취약을 가지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목적은 분명 수술이 아니라 자살이거나 환각 상태일 것이다. 행복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물품, 예를 들어 무기의 양은 결코 무한정이 아니다. 만약 무한정의 무기를 가지려는 자가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삶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목적으로 삼는 무기 장사꾼이거나 다른 무엇일 것이다.

<대학大學>에 나오는 말처럼 "모든 사물에는 본말本末이 있고 매사에는 시종始終이 있다." 재화를 조달하기 전에 자기가 그것을 무슨 용도로 쓰려고 하는지, 그것을 쓰는 것이 자신의 행복한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만 무엇이 얼마만큼 필요한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은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돈부터 벌고 보자는 식으로 시작하면 그야말로 본말과 시종이 바뀌고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삶 자체가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97-8쪽)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찬가지로 위와 같은 분석을 상품에 적용하고 있다. 어떤 상품이든 생긴 모습인 형성을 보자. 예외 없이 모두 그 물건이 목표로 하는 이런저런 용도에 부응하도록 생겨 있다. 구두의 생김새에는 신기 편하도록 한다는 것 외의 다른 어떤 목적도 드러나 있지 않다. 따라서 이 상품의 일차적인 용도는 그것을 사용하여 발에 신는 것, 즉 사용가치에 있다. 그런데 똑같은 구두를 사용하더라도 목적이 전혀 다른 방법이 있다. 그것을 팔아 다른 물건을 얻거나 돈을 버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도 분명히 그 구두를 쓰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 목적은 신발의 구체적인 형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에서 보기 좋으라고 만들어놓은 고려 청자를 요강 따위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 행위가 된다. 따라서 상품을 교환하여 돈이나 다른 물건을 얻는다는 용법인 교환가치는 사물의 일차적인 용도라고는 할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품 교환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불만과 염려가 녹아 있다. 교역의 목적이 단지 필요한 물건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교환행위도 각각의 물건들이 자기들을 '생긴 대로'사용해줄 바른 임자를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니 자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이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교환에 들어가는 상품은 원래의 생김과는 전혀 다른 목적에 복무하게 된다. 그렇게 부자연스럽게 덧씌워진 '돈벌이'라는 목적은 궁극적을 상품의 형상에 영향을 미친다. 쉽게 말해서 팔리기만 한다면 품질이든 뭐든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109쪽)

 

 

 

알렉산더 대왕은 언젠가 당대 최고의 요리사들을 거느릴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은 이미 스승 아리스토텔레스가 평생 동안 이용할수 있는 요리사를 갖춰주었다고 말하며 거절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달리기와 다른 운동으로 땀을 낸 후 몸을 씻어 입맛을 돋운다. 그러면 이 세상 어떤 음식도 산해진미가 된다." 이렇게 수면, 운동, 건강의 조화 속에서 '잘 먹는다는 것'을 추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자들은 맛잇는 임식을 찾아 오늘은 바닷가재, 내일은 캐비어, 함 돈을 펑펑 쓰면서 살게 마련이다. 비록 자기들은 훌륭한 삶을 산다고 만족스렁누 표정을 짓겠지만 따지고 보면 못 배운 게 지인 불쌍한 자들인 셈이다. 반면 알렉산더 대왕처럼 '행복한 삶'에 대해 지혜를 가진 자들이라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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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7,11장 정리

7장. 말하기의 의무



말하기와 권력의 결합 속에서 매우 명료한 동시에 매우 심오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국가를 형성한 사회에서는 말하기가 권력이 지닌 권리인 데 반해 국가 없는 사회에서는 거꾸로 말하기는 권력의 의무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인디언 사회는 추장에게 그가 추장이기 때문에 말하기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추장이 되고자 하는 자에게 말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요구한다. 추장에게 말하기는 강제적 의무이고 부족은 추장의 말을 듣고 싶어한다. 침묵하는 추장은 더 이상 추장이 아니다.

(192쪽)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잃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추장은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지만 전혀 아무런 것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의 요점은 이미 몇 번이고 반복된 전통적인 생활 규범에 대한 칭송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분들다운 생활 방식으로 행복하게 잘살았지. 그분들의 전례를 따르면 우리도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거야.” 추장의 이야기의 요지는 결국 이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가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추장의 말하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추장이 진정 어떤 것도 말하지 않기 위해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권력의 소재지로 보이는 추장에게서 발화되는 공허한 이야기는 원시사회의 어떠한 필요 때문에 나타나게 된 것일까? 추장의 이야기가 공허한 것은 그것이 진정으로 권력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추장은 권력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말하기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은 권력의 말, 권위의 말, 명령의 말이 될 수 없다. 명령은 정말로 추장이 내릴 수 없는 것이고 추장의 말은 그처럼 충만한 말이 될 수 없다. 자기 의무를 망각하고 명령을 시도한 추장은 복종의 거부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머지않아 추장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니고 있지 못한 권력을 남용한 추장만이 아니라 고작 권력의 남용이나 꿈꿀 정도로 미친 추장, 즉 추장답게 행동해보려 하는 추장도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는다. 원시사회는 추장이 아니라 사회 그 자체가 권력의 진정한 소재지이기 때문에 분리된 권력을 거부하는 장이다.

(194쪽)

 

 

 

 

 

 


11장.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① 원시사회는 국가없는 사회 : 이것이 보통 원시사회가 완전한 사회가 갖추어야 할 요소를 갖추지 못했다는 ‘결여’의 증거로 이해됨. ⇒ 역사는 단선적으로 진보하며 모든 사회는 야만 상태로부터 문명 상태로 나아간다는 자민족 중심주의. (ex: "정치적으로 통합돼 있는 모든 사회는 과거에는 야만 상태였다.“(레이날)) 그러나 국가의 문명을 모든 사회의 필연적인 도착 지점으로 상정하는 것은 정당한가? 그렇다면 아직도 원시인들을 야만 상태에 놓여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② 국가 없는 사회, 무문자 사회, 시장 없는 사회, 역사 없는 사회는 진화의 前단계다? : 원시사회가 잉여를 생산하지 않는 것은 겨우 생존할 수 있을 정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급급하여 잉여를 생산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가정.

⇒⇒ 원시사회도 공업사회와 비슷한 정도로 인간의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 보유. 즉, 모든 인간 집단은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환경에 대해 필요한 최소한의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음. 한 사회가 얼마나 기술을 잘 갖추고 있는가는 그 사회가 주어진 환경에서 사회의 필요를 어느 정도 만족시키는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함.


③ 원시사회가 생계경제라고 할 때, 그것이 오직 그 사회의 존속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과 그 사회는 그 사회의 구성원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제공하기 위해 항상 생산력의 총체를 동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 (+“야만인은 게으르다”)

⇒⇒ but, 실제로 인디언들은 거의 일을 하지 않았지만, 굶어죽지 않았음. 여러 인디언 부족들의 생계경제는 모든 시간을 식량을 얻는 데 투여하는 고통스러운 것과는 다름. 남아메리카 농경민 투피-과라니족의 경우 인구의 절반인 남자들은 사실상 4년마다 2달만 일할 정도. 생계경제는 비참함과 거리가 멀다.


④ 원시사회에서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더 많이 일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이 자기의 필요 이상으로 노동하는 것은 언제나 강제에 의해서이다. 그런데 그러한 강제가 원시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시사회가 생계경제라는 것은 그 사회의 결함이 아니라, 불필요한 과잉에 대한 거부이자 필요의 충족과 조화시켜 생산 활동을 전개하고자 하는 의지를 의미함.


⑤ 원시사회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활동의 주인이자 그 활동에 의한 생산물의 유통의 주인.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생산하던 원시인이 교환도 호혜성도 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생산할 때 모든 것이 혼란에 빠짐. 생산 활동이 다른 이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루어지고 교환의 질서가 부채의 공포로 무너질 때 우리는 노동에 대해 말할 수 있음.


⑥ 역사는 상호 절대로 환원될 수 없는 두 가지 유형의 사회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하나는 원시사회 또는 국가 없는 사회 다른 하나는 국가를 가진 사회. 각 사회들 사이에 환원 불가능한 불연속적인 선을 긋는 것은 바로 국가기구가 존재하는가의 여부.


⑦ 신석기 시대의 단절이 사회 체계의 기능 변화를 가져왔는가? 그렇지 않다. 신석기 혁명이 가져온 것 중에서 이동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의 이행은 안정적인 인구 집중화를 통해 도시와 국가 형성을 가능케 했다는 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평가 됨. 그러나 수렵, 어로, 채집이 반드시 이동 생활 방식을 가져오는 것은 아님. 농경생활을 하지 않으면서도 정주 생활을 하는 사례가 다수 존재. 즉, 생태학적으로 농업에 적합하지만 농경 생활을 하지 않는 사회가 있다면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게 그들이 농경 생활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

⇒⇒ 콜럼버스 이후 기술혁명(馬과 화기의 획득)의 결과 농업을 버리고 전적으로 사냥에 종사하는 것을 택한 정착 농경민의 사례 발견. 이들의 농업 포기는 인구 분산이나 이전의 사회조직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음.

⇒⇒ 원시사회들에 관한 한, 맑스가 말한 경제적 하부구조의 변화가 정치적 상부구조에 반영되는 상황은 나타나지 않음. 인디언 원시사회는 오히려 상이한 하부구조에 동일한 상부구조를 지니고 있음.


⑧ 국가가 지배-피지배관계의 반영, 지배계급이 폭력적 권력 독점의 결과라면 국가는 대체 왜 필요한가? 그것은 이미 다른 장에서 충족된 기능을 수행하는 쓸모없는 기관일 뿐인가? 국가가 사회구조의 반영일 뿐이라는 관점에 기초한 이런 질문은 국가 출현의 문제를 지체시킬 뿐이다. 원시사회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왜 나타나는지를 자문해야 함. 모든 문명인들도 원래는 원시인들이었다고 한다면 무엇이 국가를 탄생시켰나?

⇒⇒ 이 기원의 문제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겠지만, 반대로 그것이 출현하지 않는 조건을 해명하는 것은 가능. 부족사회에는 왕이 없고 단지 국가의 추장이 아닌 추장이 있음. 추장은 명령을 내리는 자가 아니며 부족민들은 복종해야 할 어떤 의무도 갖고 있지 않음. 추장의 임무는 말을 독점하여 개인, 가족, 동족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분쟁을 해결하는 것. 그러나 추장의 말은 법적 효력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설득이 통하지 않으면 분쟁은 폭력을 통해 해결되고, 그러면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어 위신을 지닐 수 없음.


⑨ 군사행동의 준비, 지휘는 추장이 최소한의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 그러나 일단 행동이 끝나면 전투의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전쟁의 추장은 권력을 지니지 못한 추장으로 되돌아가고 어떤 경우에도 승리함으로써 생긴 위신이 권위로 전화되지 않는다. 부족에게 있어서 추장이란 부족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적절한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추장이 과거에 거둔 승리는 쉽게 잊혀짐. 추장이 영속적으로 획득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잊혀지기 전에 자신의 명성과 위신을 사람들에게 다시 상기시키기 위해서는 새로 전쟁을 치를 기회를 만들어야 함.

 ⇒⇒ 그러나 권력의 진정한 장소로서의 사회는 권력을 특정인에게 넘기는 것을 거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전쟁을 하도록 부추기는 추장은 부족으로부터 버림받음.


⑩ 사회의 통제를 벗어난 유동적인 영역으로서 ‘인구동태’ : 어떤 사회가 원시사회이기 위해서는 그 인구가 적어야 함. 부족 세계의 원자화는 지역 집단을 통합하는 사회-정치적 집합체가 구성되는 것을 막는 효과적 수단. 그러나 투피-과라니족은 상대적으로 인구밀도 높음. 여기서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추장의 권력 획득 추구 경향이 드러남. 이는 추장이 국왕으로 격상되는 상황에 까지 이르는데, 유럽인들의 도래로 이것이 돌연 중단. 하지만 국가의 출현을 저지한 것은 유럽의 도래가 아니라 카라이를 중심으로 한 원시사회 내부의 자각.


⑪ 카라이들은 수천 명의 인디언을 이끌고 신들의 고향을 찾아 광적인 여행을 함. 이들은 권력의 생성이 국가 없는 사회인 투피-과라니를 불행과 사악함으로 내몰고 있다고 판단. 한편에는 추장들이 다른 한편에는 그들에게 대항하는 예언자들이 있는 것이 15세기 말 투피-과라니 사회의 본질적인 모습.

 ⇒⇒ 말하기를 유일한 무기로 지닌 예언자들이 인디언들을 동원하여 종교적 이동에 참가시켰다는 것은 그들이 추장의 프로그램을 일거에 실현했다는 것. 예언자들의 이야기 속에 아마도 권력의 이야기가 배태되어 있고, 사람들의 욕구를 대변하는 선도자의 고양된 모습 속에 전제군주의 모습이 은밀히 숨겨져 있는 것일 수도. (폭력의 반대편에 말하기가 있다는 생각을 수정해야 함.)

 ⇒⇒ 그럼에도 투피-과라니족의 시도는 통일화의 거부와 하나인 국가를 떨쳐버리려는 노력을 보여줌. 역사를 가진 사람들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 역사 없는 사람들의 역사는 국가에 대항하여 싸우는 투쟁의 역사라고 정리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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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1,2장 정리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피에르 클라스트르 저(이학사), 요약 정리




1장. 코페르니쿠스와 야만인


사실상 권력은 (아메리카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원시 문화에서도) 폭력과 완전히 분리되어 위계질서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따라서 모든 사회는 고대적 사회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정치적이다. 비록 그 정치적이라는 것이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고, 그 의미는 곧바로 해독되지 않으며, “무력한impuissant" 권력이라는 수수께끼를 풀어야만 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1) 여러 사회들을 권력이 있는 사회와 권력이 없는 사회라는 두 범주로 분류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민족지 자료를 충실하게 인정했을 때) 정치권력은 보편적이고 사회적인 것(이것이 혈연에 의해 규정되든 사회 계급에 의해 규정되든 간에)에 내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은 강제적 권력과 비강제적 권력이라는 두 가지 기본적인 양식으로 나누어져 있다.

2) 강제로서의 정치권력(즉 명령-복종 관계)은 진정한 권력의 유일한 모델이 아니며 단지 하나의 특수한 사례, 예컨대 서구 문화(물론 이것만이 유일한 사례는 아니지만)의 정치권력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권력 양식만이 준거 틀로서 여타의 다른 성격을 지닌 양식을 설명하는 원리가 되어야 할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3) 심지어 정치제도가 없는 사회(예를 들어 추장이 없는 사회)에서도, 그런 사회에서조차도 정치적인 것은 존재하며 권력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 문제는 불가능한 권력 부재의 이유를 설명하고 싶어하도록 유도하는 기만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반대로, 아마도 은밀하게 그 부재 속에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제기되는 것이다. 정치권력은 인간 본성, 즉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이 점에서 니체의 생각은 틀렸다) 인간의 사회생활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것이다. 폭력 없는 정치는 상정할 수 있지만 정치 없는 사회는 생각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권력 없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권위는 사회적 유대를 창출해냄으로써 나타난다”는 드 주브넬의 명제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를 비판하는 라피에르의 견해에 찬성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유치하게(이것이 진정 유치함의 문제일까?) 자민족 중심주의자가 될 수 없다.

이상의 지적은 라피에르가 자신의 책 제4부에서 제시한 “정치권력은 사회 혁신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정치권력은 사회 혁신의 규모가 클수록, 속도가 빠를수록, 그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넓을수록 더 발달한다”는 주장에 잘 나타나 있다. 수많은 예시들로 뒷받침되는 이 논증은 엄밀하고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서 그의 분석들과 결과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한 가지 단서를 달아야한다. 그가 거론하고 있는 정치권력, 즉 사회 혁신을 통해 만들어지는 정치권력은 우리가 강제적이라고 부르는 권력일 따름이다. 결국 라피에르의 이론은 명령-복종 관계가 발견되는 사회들에만 적용되고 그렇지 않은 사회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디언 사회에서는 정치권력이 사회 혁신으로부터 생겨난다고 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회 혁신은 강제적 정치권력의 기초일지는 몰라도 비강제적 권력의 기초는 분명히 아니다. 오직 강제적인 권력만이 있을 뿐이라고(이것은 불가능하다) 단정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라피에르의 이론은 사회 혁신이 없는 곳에는 정치권력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의 이론은 특정한 사회 유형, 특수한 정치권력의 양식에만 적용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은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준다. 즉 강제 혹은 폭력으로서의 정치권력은 사회 내부에 혁신, 변화 그리고 역사성의 동인을 갖추고 있는 역사적인 사회들의 표지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비강제적 정치권력을 지닌 사회는 역사 없는 사회이고 강제적 정치권력을 지닌 사회는 역사적인 사회라는 새로운 기준에 따라 다양한 사회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배열할 수 있다. 이러한 배열은 역사 없는 사회들을 권력 없는 사회로 취급하는 권력에 대한 현재의 사고와는 매우 다르다.

(29-32쪽)




라피에르는 “맑스주의의 진리는 사회적 힘들 사이의 투쟁 없이 정치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고 본 점에 있다.”고 적고 있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옳지만 사회적 힘들이 투쟁하고 있는 사회들에만 적용될 수 있다. 사회 투쟁 없이는 폭력으로서의 권력(그리고 그 궁극적 형태인 중앙집권적인 국가)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투쟁 없는 “원시공산제”가 지배하는 사회들에서는 어떠한가? 맑스주의는 비非역사에서 역사로의 이행, 비非강제서 폭력으로의 이행을 설명할 수 있는가? 만일 그럴 수 있다면 맑스주의는 실제로 사회와 역사에 대한 보편 이론, 즉 인류학이 될 것이다.

(33쪽)





2장. 교환과 권력: 인디언 추장제의 철학



①민족학 이론에서 원시사회의 정치권력에 대한 관점

- 대부분의 원시사회가 어떤 정치조직도 지니지 못한 아나키적 단계라는 관점.

- 아나키 상태를 벗어나 인간 집단에게 유일한 존재 양태로서 정치제도를 만들어 냈는데, 이 경우 정치제도의 ‘과잉’으로서 절대권력의 길로 접었다는 관점.

⇒ 비서구 사회가 운명적으로 정치적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보는 서구적 관점의 한계. (남아메리카 대다수 인디언 사회들이 갖는 아나키적인 분리 경향은 잉카의 전체주의적 제국과 대비된다고 하는 관점 등)


②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을 지니지 못한 권력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추장이 권위를 지니고 있지 않다면 추장은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는가? ⇒ 이러한 “실체”없는 제도를 존속시키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물어야만 함.

- 명목상의 추장이 가진 세 가지 특징 : 추장은 평화의 중재자 / 추장은 자기 재화에 대해 집착 안 함 / 추장은 말을 잘 해야 함.

- 대부분의 부족들이 전시 외에는 추장을 두지 않았음. 즉 추장의 책무는 집단 내부의 평화와 조화를 유지하는 것.

- 추장은 물건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이는 추장에게 의무 이상의 것.

- 인디언들은 추장의 말에 높은 가치를 부여함. 말솜씨는 정치권력의 조건이자 수단.


③ 남아메리카에서의 보조적 특징 : 거의 모든 사회가 일부다처제를 인정하나, 그것을 추장의 배타적 특권으로 인정. 실제 자연 성비에 따라 모든 남성이 한 사람 이상의 여성과 결혼해서 일부다처제가 보편화되는 것은 불가능. 그것이 가능한 경우는 카스트, 노예제 관행, 전쟁과 같은 요소가 개입했을 때.


④ 위의 총 네 가지 특징 중 첫 번째 것과 나머지 세 가지는 명확히 구별됨. 후자들은 사회구조와 정치제제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증여와 대증 증여의 집합을 규정. (추장이 예외적인 수의 아내를 거느릴 수 있는 권리를 지니는 대신 집단은 추장에게 재산에 대해 연연하지 말 것과 말솜씨를 요구) 추장의 중재적 기능은 반대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정치적 행위와는 다른 영역에서 발휘됨. 추장의 역할은 여론에 의해 영향 받음.


⑤ 추장은 경제적 재화와 언어기호를 대가로 집단으로부터 여성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추장의 권위는 대부분 그의 관대함으로부터 생기는데, 인디언들의 요구는 종종 추장의 직접적인 능력을 넘어서게 된다. 그 때 추장은 대부분의 자기 부족원들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 전력을 다해야만 한다. 추장의 권위는 약한 만큼 그의 사회적 지위는 부러움을 사지 않는다. 엄청난 특권을 지닌 추장권이 집행에는 무력한 이유는 무엇인가?


⑥ 정치적 영역의 중심에 있는 소통의 세 가지 차원의 위상

- 여성(집단→추장) : 추장은 집단에 대해 자기가 받은 것과 똑같은 수의 여성을 돌려줄 능력이 없다. (추장은 부계제로 상속) 이것은 교환이 아니라 집단이 지도자에게 주는 순수하고 대가 없는 증여.

- 재화(추장→집단) : 남아메리카의 인디언 사회들 중 지도자에게 경제적 증여를 하는 사회는 드물고, 추장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카사바를 경작하고 사냥을 함.

- 언어 : 언어에 대한 지배권은 추장이 가짐. 트루마이족 추장의 최측근 두 사람은 몇몇 특권을 누림에도 불구하고 추장처럼 말할 수 없음. why? 그들 자신이 말하는 행위가 추장과 그 말 모두를 더럽힌다고 느끼기 때문.

⇒⇒ 집단의 여성은 추장의 재화 및 메시지와 교환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고유한 회로를 따라 움직임. 각각의 과정은 교환가치를 가지지 않으며, 호혜적 움직임을 통해 사회의 구조 그 자체를 세우는 여러 요소들에 대하여 권력은 특권적 관계를 지닌다.


⑦ 추장은 왜 무력한가? : 정치적 기능이 효과적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집단 안에 내재되어 있어야만 하지만, 인디언 사회에서는 그것이 집단으로부터 배제되고 심지어 집단을 배제하기까지 한다. 사회의 외부로 정치적 기능을 추방하는 것은 그것을 무력한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수단.


⑧ 권력의 무기력함은 권력이 전체 체계의 “주변적” 위치에 놓여 있다는 사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됨. 그리고 이 위치 자체는 여성, 재화 그리고 말의 교환이라는 결정적 순환에 권력이 도입하는 단절로부터 생김. 그러나 이 단절의 우연성을 부각시켜 해석하는 방식은 남아메리카 대륙 지역의 대부분의 부족이 절대 진정한 정치적 권위를 지닐 수 없었다는 견해(모종의 오리엔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다.

└→ 세 가지(여성, 재화, 말)의 순환과 권력의 단절이 우연적이라는 관점의 부정, 즉 그것에 필연성을 가정하는 것은 새로운 사회학적 지향성을 형성. 인디언 문화의 이 “결정”은 환상으로부터 생긴 비합리적 성과가 아니라 하나의 내재적 합리성이 존재하고 있음.


⑨ 권력은 본질적으로 강제력이고, 정치 기능의 통일을 향한 활동은 사회구조라는 기초 위에서 그리고 사회구조에 합치하도록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고 사회에 적대적인 피안으로부터 사회에 대항하여 행사됨. 따라서 이들 사회는 권력의 초월성이 집단에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외재적이고 스스로 정당성을 창출하는 권위라는 원리가 문화 자체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낸, 정치적으로 매우 유능한 사회였던 것. 그들은 스스로 정치적 권위의 설립자가 되었고, 권력이 출현하면 그 즉시 억제하는 부정성을 견지.


⑩ 자연재해등의 상황에서 주민들은 추장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듯 하지만, 여기에는 추장에 대한 집단의 협박이 숨겨져 있음. 즉 추장에게 기대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을이나 무리의 사람들은 쉽게 추장을 버리고 추장의 의무에 보다 충실한 지도자를 택하겠다는 것.


⑪ 인디언 문화는 자신들을 현혹시키는 권력을 거부하기 위해 고뇌하는 문화이다. 거기에서는 풍족한 추장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역설적인 성격을 띤 권력이 그 무력함으로 인해 숭배된다는 것은 문화의 스스로에 대한 고뇌와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꿈을 표현하는 것이다. 신화의 이마고imago이자 부족에 대한 은유, 이것이 인디언 추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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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과 정종권

이 둘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 아니고, 오늘 본 이 두 사람의 글에 대한 짧은 평을 적어보려는 거다.

 

 

 

1/ 김규항의 글 : "오류와 희망" (한겨레 칼럼, 06.16)

 

말은 다 맞는 말인데 좀 진부하다. 그냥 논리가 너무 도식적이고 뻔하다는 느낌? 게다가 노회찬이 토론을 통해 오세훈을 조롱하기만 했을 뿐, 한명숙과 차이점을 만들지 못했다고 말하는 건, 그 마음이 이해되면서도 좀 오바한다는 생각이 든다. 현직 시장이 출마한 상황에서 서울시의 현재를 분석하고 시민들에게 대안을 내놓는 과정에서 당연히 현직 시장 비판이 우선시 될 수 밖에 없다. 그러지 않고 '한명숙 때리기'에 집중하는건 후보로 출마하지 않고 신문 칼럼이나 써서 논평하는 것보다 나을게 없다.

 

진중권에 대한 비판은, 적절하다고 본다. 사실 예전에 민주당쪽에서 비지론 내걸고 나와 민노당 후보 사퇴하라고 말할때 진중권은 거의 육두문자에 가까운 비난을 날렸다(고 한다. 사이트 돌다보니 누가 그러더라. 나는 그런 기사 본적이 없어서 그냥 인용투로... ㅋㅋㅋ) 그런데 이번엔 잠잠하다. 게다가 선거 끝나고는 심상정 징계하라고 요구하는 당원들에 맞서 그녀를 감싸고 돌았다. 이쯤되면 진중권이 유시민, 심상정등과 친분(서울대 학벌?)이 있어서 인정상 그렇게 비판 못하는 거라는, 전혀 검증할 수 없는 주장들에도 귀가 솔깃해지기도 한다.

 

노무현-심상정의 한미FTA 논쟁이 진보신당 역사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유일한 사건이었다는 지적에도 왕 동감한다. 그랬던 심상정이 지금 이렇게 나오니 뒷골이 땡기는건 당연한 일 아닌가?

 

 

 

2/ 정종권의 글 : "선거의 교훈과 반성" (진보신당 당게, 06.17)

 

"노무현 시대의 정치를 누군가 일컬어서 ‘정치의 사법화’라고 규정하였다. 정치가 기본적으로 대중의 지지와 신뢰를 얻는 행위라고 할 때, 정치적 쟁점과 의제는 국민과 대중을 주인으로 하여 논쟁하고 갈등하고 국민과 대중이 결정하게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것을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의 사법적 판단에 맡기는 것은 정치의 퇴행이고 타락이라고 비판한 것을 본 기억이 뚜렷하다. 심상정 등의 문제제기는 사법적 징계대상이 아니라 당원과 진보적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논쟁과 격론의 과정을 거쳐 해결해야 하는 정치적 의제이다."

 

이 말이 엄청 그럴싸해 보이지만, 매우 비겁하게 자신의 논리적 궁지를 해결하려는 태도다. 내가 진보신당 당원도 아니고 그래서 그 당의 규약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에서 징계받으면 무슨 재산 가압류라도 하나? 선출되지 않은 국가의 사법권력이 정치적 행위에 처벌을 하는 것과, 정당이 당원의 어떤 행위에 대해 판단하여 징계를 내리는 것은 전혀 다른 맥락에 위치해 있다. 후자의 것은 전자의 것처럼 기술관료적 행위가 아니라, 그것 자체로 정치적 행위이다.

 

또한 당기위는 해당행위에 대해 처벌할 권리가 있을 것이다. 정치적 행위도 해당행위가 될 수 있다. 만약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만) 심상정이 정치적 판단에 의해 한나라당 지지선언을 하면 당기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당기위의 '판결'과 사법부의 '판결' 방식은 달라야 할 것이다. 후자가 밀실에서 관료적으로 결정해 버리지만, 전자는 당원과의 열린 토론 과정에서 하면 된다. 더군다가 진보신당의 당 규약은 애매모호한 것이 많다던데, 그렇다면 더욱 당원들의 '당 강령'에 기반한 토론을 바탕으로 판단하면 될 문제다.

 

물론 징계보다는 정치적 행위에 대한 토론이 우선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징계'를 원천적으로 배제한 채 논의하는 것도 당사자들에게 미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는 것 아닌가? 이런식의 논리라면 지난번 노동관련법 처리에서 추미애 의원의 직권상정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한 민주당의 처사도, 개인적인 결단에 대한 것이었으니 괜찮은건가? 그러나 최소한 사건직후 민주당 내에서는 추미애를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 개인적 결단이니 정치적 토론으로 해결하자는 얘기는 적었다.

 

사실 이러저러한 분란을 잠재우고 제대로된 당 내 토론을 하고 싶으면, 심상정이 다른 건 접어 두고라도 당내 민주주의의 문제를 훼손한 부분에 대해서 만큼은 사과하고, 이용길 전 부대표가 그런 것 처럼 스스로 당기위에 회부되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그렇게 지저분한 것을 먼저 털고 나야 심상정 스스로가 토론에 임하는데도 더 수월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일단 심상정은 언론 인터뷰부터 좀 자제하고... 물론 당기위 논의 사항에서 정치적 토론의 여지가 있는 부분(즉, 연합정치냐 진보대연합이냐)은 논외로 치는 게 맞겠다.

 

누구 말대로 "책임은 묻되 감정적 격앙으로는 해결책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대원칙이고, 여기서 무게중심을 책임을 묻는 것에 약간 더 둬야 하지 않을까 한다.

 

 

단순화시킨다면 민주노동당과의 관계가 문제가 될 경우에는 분당한 때가 언제인데, 민주노동당이 전혀 변화하지 않았는데 등등의 논거로 단일화와 협력 자체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 또는 민주노총의 역할과 주장이 쟁점이 될 경우에는 민주노총에 대한 감정적인 거부감과 편향된 태도를 문제 삼는 경우가 많았고, 5+4협상과 같은 국면에서는 민주당과 어떻게 연합이나 공조를 논할 수 있느냐는 근본주의적 태도가 당 한켠에서 강하게 제기되었던 경우가 많았다. 이것을 독자성의 옹호라고 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고립주의적 편향이라고 보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다.

 

이 부분은 앞에 인용한 것보다는 일리있는 말이지만, 왠지 부대표로서 어울리지 않게 책임 떠넘기기란 생각이 든다. 이런 타 조직에 대한 감정적 거부를 비판할 수 있으려면, 얼마 전까지 극단적으로 갈등했던 민주노동당, 민주노총과 어떻게 다시 융합할 수 있을지 근거와 목표 등이 명확해야 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진보신당이 내걸고 있는 '진보의 재구성'이란 과제와도 관련 있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 이들과 다시 연합하겠다는 것은 '도로 민노당'하는 것보다 못한 거 아닌가?

 

오늘 어쩌다 은평을 재보선에 출마한다는 사회당 금민 후보의 정책을 봤는데, 진보진영 내부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을 수 있는 기본소득 슬로건만 빼면 참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는 기본소득 주장이 약간의 이론적 갈등소지만 정치적으로 봉합한다면, 보편적복지에 무게중심을 두고 이를 주장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투기 불로소득 중과세와 탄소세 도입 등을 통해 기본소득을 전면적으로 확대해 나갑니다" 라던지, "모든 파생금융상품의 시세 차익에 대해 연 30% 과세: 금융 투기 근절" 또는 "탄소세 도입으로 지하철과 버스를 무료화합니다" 같은 것들... 최소한 진보신당이 연합정치 비슷한 것이라도 다른 세력과 함께 논의할 생각이 있으면 이 정도의 구체성과 이념적 명확성은 가지고 압박해야 맞는 거 아닐까? 지방선거라는 특수성이 있긴 했지만, 이번에 진보신당에겐 이런 거 비슷한 면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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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메모.

 

 

어제 ITQ 엑셀과 액세스 시험을 봤다. 시험 보러 온 인파의 절반이 초딩들이다. 물론 초딩들은 주로 파워포인트 시험을 봤지만... 여튼 초딩들 사이에 끼여서 시험을 보고 나오면서, 이런 시험 보려고 한달동안 하기 싫은 공부를 꾸역꾸역 했던 내 모습이 처량하기도 하고, 이런 일로 소일 하는거 외에는 시간 때울 방법이 없는 내 처지가 우습기도 하고... 뭐 그랬다.

 

시험 끝나고 전날 밤 부터 징징대는 석돌이에게 갔다왔다. 집에 돌아가면 또 멍때리고 있다가 시간을 다 보낼 것 같아 밥도 안 먹고 바로 기차를 탔다. 편안하게 집에서 있는 것보다는 덜컹거리는 기차 안이 살짝 긴장감을 주기도 하고, 책도 잘 읽힌다.

 

 

요즘 읽는 책

 

기차 안에서 일주일 내내 끼고 있었던 서영표 교수의 <런던코뮌>을 대충 다 읽었다. 지역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 줄 만한 좋은 책이다. 물론 런던광역시의회의 급진적 실천이 있기까지의 역사적, 이론적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은 좀 어렵기도 하고 또 서술과정의 굴곡도 좀 있는 것 같아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만큼 가치는 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작년 말에 손호철-조희연 사이에 있었던 논쟁들이 생각났다. 사실 그때 서영표는 조희연의 편에 서서 손호철의 경직성(?)을 비판했는데, 그 논쟁 이후에 서영표가 줄곧 냈던 입장들이나 이 책을 보면, 왠지 그가 논쟁 과정에서 포지션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손호철-조희연의 차이는 08년체제를 인정할 거냐 말거냐의 대립이었는데, 서영표는 조희연의 편에 서면서 사실상 딴 얘기를 했다. 이를테면 그가 <런던코뮌>에서 줄곧 강조했던 (E.P Thomson식의) 대중/민중문화와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던지, 생활정치가 중요하다던지 하는 그런 얘기들... 나는 서영표의 그런 강조점이 중요하고 또 옳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조희연이 주장하는 역동적 연합정치 같은 것과는 사실 별 상관이 없는 듯 하다.

 

그래서 작년 서강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도 내가 서영표에게 "사람들의 일상과 삶의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08년 촛불집회라는 우연적 계기를 통해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로 다가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우연적인' 방식으로 제기되는 문제라면 대체 08년이 체제로 규정될 이유는 뭔가? 체제라는 것이 그렇게 예측할 수 없는 우연에 의해 규정될 수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그는 내가 자신의 주장을 오해했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뭐가 오해냐?"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오해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오해를 생산했던 것은 서영표 스스로가 자신의 입장과는 무관한 포지션에 서 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방선거

 

지난 며칠간 나온 지방선거 분석 글 중에 가장 눈에 띄는 분석은 프레시안에 기고한 엄기호의 글이다. (<20대는 왜 민주당을 찍었나?>) 경기도에 살고 유시민을 지지한다는 우리 매형과 얘기를 해 보면서 느낀 건데, 확실히 안보논리는 더 이상 젊은 층에게 안 먹힌다. 좀 더 넓게 잡아보자면 40대 초반 정도 유권자의 상식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건 구청 공무원 나으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느낀 거다. 거기다가 엄기호의 말대로, MB님은 항상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드시니 꼴깝스러워 보일밖에...

 

물론 나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서 딱히 요즘 세대가 냉전 세대보다 합리적이거나 상식적인 부류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21세기의 상식의 패러다임을 한나라당이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MB가 한나라당 쇄신파의 입장을 수용해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자멸의 길일 것이다. 그런 류의 상식을 수용할 수 있는 세대는, 정말 생물학적으로 소멸중이다. 문제는 MB가 자신이 당선되면서 그런 상식까지도 인정받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인데, 엄청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유권자들은 그를 경제살리라고 뽑아줬지, 북한 혼내주라고 뽑아주지 않았다.

 

요즘 연합정치에 대한 이야기들이 참 많은데, 여기서 한나라당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연합정치든 독자노선이든 선택하는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 같다. 만약 한나라당이 계속 이딴식으로 노인네 정서만 붙들고 있는다면? 민주당은 2012년 총선/대선도 손 하나 까닥 않고 대박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도 그 옆에서 바람잡이 역할 하면서 10년 소수정당의 설움을 떨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네들도 짱구가 있는 이상 그렇게 할까? 지난 정권들에서의 양상을 보면 정권 레임덕이 오면 항상 여당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을 왕따시키는 경향이 있었는데, 현 정권에서 아무리 큰 집 영향력이 세다고 해도 이런 경향성에 따른 힘을 억제하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다. 이번 천안함 사태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정성으로 주가가 떨어지자, 펀드로 먹고사는 수도권 3-40대들이 대거 야당에게 표를 던졌다는 항간의 분석들이 실증성있게 받아들여진다면 한나라당의 쇄신은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자신들도 그 '경제적/동물적 감각'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 결론은 이거다. 빨갱이사냥으로 나타나는 대북문제 등 한나라당이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정치쟁점들은 인구학적으로 소멸될 수밖에 없는 쟁점이고, 그러니 보수니 개혁이니 하는 구분이 대북문제를 기준으로 형성되는 것은 늦어도 2012년 대선이 마지막일 것이다. 북한 문제야 통일이 되지 않는 이상 언제나 따라오겠지만, 지금 같은 색깔론으로 재생산되는 상황이 종결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동일성은 더욱 가시화 될 것이다. 이런 경향성을 인정한다면 특수한 상황에 따른, 또는 정세에 따른 민주당과의 연합정치를 넘어선 전략적인 반MB연대라는 것은 죽음의 전략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너무 두서 없이 써서 매끄럽지 못한데, 나중에 다시 제대로 정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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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패인에 대한 수치적 분석 (부제: 노회찬 까지 마라!)

한명숙 지지자들이, 노회찬 때문에 진 거라고 하도 입으로 똥을 싸길래, 득표수를 가지고 한번 분석해 봤다. 아래는 서울 25개 구에서 각각 구청장 선거와 시장선거, 민주당 득표수와 한나라당 득표수의 차이다.

 

서울시장 선거 전체 투표인 수 : 4,426,182

자치구명

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 득표수 격차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명숙과 오세훈의 득표수 격차

강동구

40379

-11097

강북구

25977

6884

강서구

21217

5607

관악구

45407

35260

광진구

12476

3671

구로구

20375

8820

금천구

15145

7749

노원구

19250

5036

도봉구

11478

195

동대문구

20048

1496

동작구

27503

8945

마포구

15477

10615

서대문구

21813

8019

성동구

8324 

518

성북구

5331 

7409

양천구

8181 

-1078

영등포구

3091 

-1017

용산구

3427 

-8579

은평구

24685

9929

종로구

4190 

1434

중구

1956 

-238

중랑구

-513

940

서초구

-37577

-43820

강남구

-33984

-59296

송파구

-10435

-23814

합계

273,221

-26,412

 

 

 

위 자료를 근거로 하여, 만약에 구청장 득표수로 시장 선거를 결정하게 된다면

민주당은 2,223,786표 득표로 50% 득표율

한나라당은 1,950,565표 득표로 44% 득표율을

기록하게 된다.

 

그러니까 서울에서 평균적인 민주당 지지세로 보자면 6%차이로

서울시장 선거는 민주당이 가볍게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민주당 지지세가 한명숙의 서울시장 선거로 넘어오면서

무려 299,633표를 까먹어 버린다.

이 정도면 전체 투표자 수의 6.7% 정도를 까먹어 버린 것이다.

 

한명숙이 선거운동을 통해서 민주당을 지지할 투표층만 잘 챙겼어도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충분히 이기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한명숙이 이렇게 날려먹은 표에 비하면 노회찬의 143,459표(3.26%)는 절반 밖에 안된다.

노회찬을 탓하기에는 한명숙의 실력이, 정말 중간도 못가는 정도의... 최악의 후보였다는 결론밖에 안나온다.

 

민주당이라는 거대 기획사가 뒤에서 아무리 빵빵하게 지원해 줘도 후보가 서울시 내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 몇 명인지도 모르고, 서울시가 쓰는 한 해 복지예산이 얼마인지도 모르니 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지...

 

 

_____________ 

 

뱀발) 그런데 유시민의 경기도 패배로 패닉에 빠진 국참당 내부에선 7월 은평을 재보선에 유시민을 출마시켜서 재기를 노려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온다지? 대구, 경기, 은평 까지... 패배의 망신살 전국투어를 하려고 그러나? 선거 중독자도 아니고 정말... 이런식으로 노빠당의 속살이 드러나는건 쳐다보는 사람도 다 민망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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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전태일 평전> 중에서

나와 마주보고 삽질을 하던 그 배가 사장배 이상으로 앞으로 쳐지고 키는 1.7m나 될 사람이 어디서 얻어쓴 건지 기름에 쩔은 운전수 모자를 쓰고 바지는 군복바지에 흰 고무신을 신었네. 런닝샤쓰는 구멍이 벌집처럼 뚫린 것을 입고 오른손엔 목장갑을 끼었는데 손가락은 다섯 개가 다 나오고 손바닥 부분만 장갑구실을 하는 것일세.

얼굴은 일을 할 때나 쉴 때나 꼭 마도로스가 지평선을 바라보는 그런 표정일세. 그저 무의미하게 사물을 판단하지 않고 사는 사람 같았네. 삽질을 하나 점심을 먹으나 시종 무표정일세. 만약에 그 기름에 쩔은 운전수 모자를 벗겨버린다면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바보가 되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 같네. 그만큼 그 모자는 그 사람을, 그 돌부처 같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잇는 그 사람 전체를 육체의 맨 꼭대기인 머리 위에 서서 감독하면서 그를 속세의 사람과 같이 만들어버리고 있었네. 지금 현재 삽질을 하고 있으니 말일세

사실 그 사람이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세.

그 때에 절은 모자가 하고 있는 걸세.

얼마나 위로해야 할 나의 전체의 일부냐!

얼마나 불쌍한 현실의 패자(敗者)냐!

얼마나 몸서리치는 사회의 한 색깔이냐!

그렇다! 저주받아야 할 불합리한 현실이 쓰다 버린 쪽박이다! 쪽박을 쓰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부서지지 않게 잘 쓰든지 아니면 아예 쓰지를 말든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저 무자비하게 사회는 자기 하나를 위해 이 어질고 착한 반항하지 못하는, 마도로스 모자를 쓴 한 인간을, 아니 저희들의 전체의 일부를 메마른 길바닥 위에다 아무렇게나 내던져버렸다. (18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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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동, <식민지 근대의 패러독스> 발췌독

민족 '말살'은 물질적 폭력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야만적 폭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자원의 수탈을 1차적 목적으로 삼는 원시적 폭력이 폭력적 지배를 당하는 이들에게는 마음 편한 일인지도 모른다. 일차적이고 물리적인폭력에 대해서는 폭력을 수용하는 방법 이외에 달리 선택할 수단이 별로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때리는 자에 비해 밪는 자가 오히려 편하기 때문이다. 물리적 폭력보다 더욱 가공할 폭력은 동일화라는 폭력이다. 타자를 자신과 동일화화련느 것은 물리적으로 절멸시키는 행위보다 타자에 게 더욱 근원적인 고통을 줄 수 있다. 자신의 정체성이 외부의 강제로 변해야 하는 상황을 사람들은 더욱 참기 어려워하는 법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동일화정책은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단계에 이르면, 일정한 수준에서 '국민주의'적 지배 형식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징병, 곧 혈세를 강요하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권리를 식민지 피지배민에게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에게 의무교육의 조속한 실시를 약속하고, 참정권을 부여하겠다는 의지를표명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일본인과 조서닌이 동일하다는 점을 두드러지게 강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인의 내면은 분열하게 된다 .도일화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식민지 동화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의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처럼 식민지 동원 체제는 식민지 주민에게 피지배자의 역할과 타자에 대한 침략을 동시에 요구했다. 식민지 조선인들은 그야말로 '한 몸으로 몇 겹의 삶을 사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렇듯 식민지 동원 체제는 식민지 지배자로부터 인간적 모멸을 어떤 방식으로든 견딘 식민지 조선인에게 자신이 겪은 모멸감을 또 다른 그 누군가에게 강요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근대의 야만'이었다.  (27-9쪽)

 

 

 

서구에서 생산한 근대관을 일방적으로 수용한 방식에 대한 반성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 바로 '식민지 근대'라는 발상이다. 서구는 항상 식민지를 대상화하고 이를 자신들의 근대관 속에 편입시켜 사고해왔다. 식민지를 제외한 채 서구 근대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식민지는 언제나 서구 근대를 대상화하지 못하고 자신의 외부로서 추종해 따라잡아야할 목표로 간주해왔다. 이런 방식의 서구 근대 이해에서 서구 근대란 식민지 자신 속에 내재화되어야 할 외부이며, 이에 따라 언제나 외부화될 수 없는 내부이다. 그러나 식민지 근대는 식민지에서 서구 근대를 대상화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서구 근대는 식민지에 언제나 내부화되어 있지만 항상 외부화될 수밖에 없는 내부로서 사유하고자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전유하고자 하는 발상을 식민지 근대라고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식민지 근대'의 발상은 언제나 서구 근대를 사유의 틀 속에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내부화된 서구 근대를 언제나 대상화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비판적으로 서구 근대에 접근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구 근대는 식민지 근대라는 문제의식에 의해서만 그 본질이 드러날 것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식민지 근대'를 사유할 때 식민지와 근대를 분리하거나 더욱이 이를 대립적인 어떤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문명-야만의 이항대립적 근대 설정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식민지 근대란 '식민지성'과 '근대성'이 결합한 것일 수는 없다. 언제나 근대는 위계적인 사회적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즉 식민지 근대를 포함하여 어떤 맥락 에서의 근대든 모더니티(근대성)의 존재 여부로 근대의 존재나 성격이 결정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구 근대적 기준이 아닌 새로운 근대의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원적인 근대사을 제시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서구적 근대성으 억압성에 저항하기 위한 시도로서 곧 서구 근대를 비판하기 위해 근대의 다양성을 상정하는 것, 다시 말하면 '비유럽적 근대' 또는 '다원적 근대'를 설정하는 방식으로는 순환 논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식민지 근대가 근대 비판으로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지적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타당한 것이다. 근대 비판으로서의 식민지 근대 설정은 '새로운 근대'를 설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아니다. 그리고 식민지 근대를 서구 근대(제국주의 근대)의 '대항 개념'으로 설정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모더니티의 배치 문제로서 '식민지 그대'는 성립할 수 있고, 서구 근대와 맞물려서 돌아가는 근대의 한 양상으로서만 '식민지 근대'라는 문제 설정이 가능한 것이다. '식민지 근대'란 '이식된 근대'의 합리화된 체계를 적대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서구 근대의 합리화 과정의 도구성에 맹목적이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69-71쪽)

 

 

 

그렇다면 다시 '식민지 근대'란 무엇인가? '근대'란 한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근대란 일종의 제도이기도 하고 동시대와 연관된 생활양식, 태도, 자세 등 일종의 에토스(ethos)이다. 또한 근대의 에토스란 도구적 합리성에 기초하는 것으로, 월러스틴의 분류에 의하면 양면적 근대의 한쪽 측면을 구성하는 것이다. '기술의 근대'와 '해방의 근대' 중 '기술의 긘대'가 바로 그것이다. '기술의 근대'는 외부 강제에 의한 산물이지만, 식민지민의 열망에 기초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식민지 근대성'은 '잡종성'으로 표현되며, '식민지 근대'가 잡종화할 운명은 '제국주의 근대'의 잡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식민지 근대'와 '제국주의 근대'의 잡종성은 근대의 역사적 특성을 구성한다.

이런 상호작용의 관계는 식민지민의 존재가 문화의 교류를 전제로 한 것이라면 당연히 문화변용(acculturation)의 방식을 문제 삼게 한다. '기술적 근대'의 '도구적 합리성'은 일종의 모듈로서 외부로부터 강제되었으나 스스로 학습하고 변용하여 내면화함으로써 식민지 근대의 특성을 이루는 것이다. 비록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지만 이것은 정당한 문화 융합의 한 모습을 이룬다. 이런 측면에서라면 해방운동의 저항성이라는 것도 제국주의적 근대의 모방이나 그 변용과 다르지 않다.

또한 기술의 근대는 해방의 근대의 토대를 이루기도 한다. 식민지하의 전통(비근대)이란 대개의 경우 근대의 입장에서 재단된 변하지 못한 잔여 부분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지만 간직해야 할 어떤 가치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기술의 근대에 의해 재단된 전통은 해방의 근대로 귀속되어야할 그 무엇으로 전용되기도 하지만, 해방의 근대에 귀속된 전통은 역으로 해방의 근대 그 자체의 성격을 왜곡시키기도 한다. (79-80쪽)

 

 

 

일제의 조선 병합 이후 이런 문명화의 열망, 즉 서구 선망=모방의 경향은 일본의 지배에 대한 저항이 강하면 강할 수록 더욱 정당화될 수 있었다. 문명-개화와 국민화의 논리적 기초는 식민지하에서 문화주의와 '민족'의 논리로 연장, 발전되고 있었고, 이런 기반 위에서 서구 선망=모방은 관념적으로 강화되고 있었다. 1920년대 문화주의-문화운동은 이방적인 서구 수용의 열망 위에 기초한 것이었으며, 이런 경향은 좌파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부정된 서구 문명으로서의 사회주의 구소련은 대안적 서구 문명으로서의 좌파들의 '대안적 근대'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켜주기에 좋은 관념적 대상물일 뿐이었다.  즉 반일 민족주의와 내면화된 '식민주의'(서구 선망)는 상호 순기능적으로 결합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식민적 분열 증상을 강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식민적 분열 증상은 서구 문명(문화)이나 도구적 합리성의 수용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었고, 한국인들의 독특한 근대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해방 이후 미국에 대한 선망은 이런 분열 증상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82쪽)

 

 

 

1920년대 이후 식민지 조선에서는 적어도 다음의 여섯 가지의 사회적인 것, 하위 사회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었다. 행정 관료적 영역, 경제적 영역, 종교적 영역, 문화적 영역, 집합적 운동의 영역, 하위 지역적 영역이 그것이다. 앞의 두 개의 영역은 국가로부터의 분리가 아직은 의심스러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서서히 분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나머지 네 개의 영역은 1920년대 이후 명확히 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어느 영역이나 이념형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사회적인 영역의 분리는 명확히 진행되고 있었다. 이처럼 식민지하 대중의 형성은 근대적 사회의 '형성'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한편 여기에서 거론된 사회적인 영역은 일상적으로는 정치적인 성격을 상실한 영역이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인해 사적인 특성이 공적인 것으로 부상하는 순간 항상 '정치적인 것' 과 부딪치게 된다. 이런 정치적인 것이 부상하게 될 때 공공연한 저항의 영역과 협력의 영역이 분리되게 마련이다. 저항과 협력은 동전의 양면을 형성하는 것이며, 이런 정치적인 행위가 부상하는 과정은 사회적인 영역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성격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대중화현상은 두 가지의 재주술화를 계기로 역진하게 된다. 개인적 주체를 대중적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현상을 재주술화라고 한다면, 탈주솨의 결과를 매개해서만 재주술화는 진행된다. 이러한 재주술화는 식민지 '계몽'과 연관된 것이기도 했다. 식민지기 계몽은 대중으로 하여금 '합리화된 체계'를 구성하도록 유도했다. 대중의 합리화는 식민지 의제국가에 의해 위로부터 창출, 확대되는 사회적 합리성과 이를 통해 분리된 사회 속에서 식민지 지식인 엘리트가 수행하는 사회적 계몽의 분리 속에서 진행되었다. 둘 다 위로부터의 계몽의 기획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사회적 합리성의 확대라는 점은 일치하지만, 서구 근대의 초기 국면에서 양자가 협조한 것과 같은 관련을 맺니는 안핬다. 물론 기본적으로 공존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지만 양자는 오히려 적대적인 측면을 더욱 강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식민지기 계몽의 역설 위에서 구축된 것이 바로 대중의 재주술화 과정이다. 합리화는 권력의 한 양상을 구서아지만 다른 한편으로 계몽을 둘러싸고 권력과 저항운동은 대립한다. 이처럼 식민 권력의 합리화 과정과 식민지 지식인의 사회적 계몽은 동일한 '합리화된 체계'를 구성하고자 함으로써 가장 강력하게 대중의 재주술화를 위한 연합군을 구성하는 이데올로기 체계라고 할 수 있다. (89-90쪽)

 

 

 

유신 체제는 일정한 수준의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수준에서 국민적 동의를 얻고 있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준전시적 동원 체제하에서 국민적 동의를 얻고 있다는 점이 유신정권에 의해 지속적으로 강변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런 국민적 동의가 주권독재, 즉 국가와 민족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국민주권 이념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유신 체제의 가장 중요한 이념적 지지 기반 중 하나로 주장되고 있었다.

박정희에게 민주주의는 동태적 개념으로서 하나의 이념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고, 이것은 현실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 것이었다. 민족국가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어야 했던 민주주의가 국민적 동의를 획득하는 메커니즘으로서의 주권독재를 옹호하고, 준전시적 동원 체제를 기반으로 대중독재를 지지하는 매개자이로 활용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현실성을 강조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제약하고자 했던 '한국적 민주주의'가 이념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필연적이다.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에 저항하던 시민사회의 민주주의가 자유주의를 넘어 이념적 성향이 강한 민주주의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규정하는 거시 바로 박정희의 유신 체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약한 자유주의와 강한 민주주의로 특징지어진다는 최장집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에서 시민사회는 재산권 최우선의 원리나 시장과 경제적/사적 이익을 옹호하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중앙집중화된 정치권력에 반하여 민주주의와 민주적 공적 영역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을그 핵심 내용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약한 자유주의적 내용을 갖지만, 강한 민주주의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요컨대 한국적 조건에서 시민사회의 형성에는 운동의 맥락과 전통이 매우 중요했으며, 운동으로 표출되는 공적 정신 내지는 공공선의 가치가 압도적인 내용을 갖는 것이었다.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18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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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스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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