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12/12

1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2/12/30
    반값 등록금 - 2011. 5. 28
    구르는돌
  2. 2012/12/30
    원준이 돌잔치 - 2011.6.5
    구르는돌
  3. 2012/12/30
    (발췌독) 도법스님, [사람의 길] 중에서 - 2011.8.23
    구르는돌
  4. 2012/12/30
    서울역 도가니? - 2011.9.30
    구르는돌
  5. 2012/12/30
    도가니 단상 - 2011.10.1
    구르는돌
  6. 2012/12/30
    특수교육과 학생들 집회 후기 - 2011.11.6
    구르는돌
  7. 2012/12/30
    (발췌독) 송기호, [한미FTA핸드북], 녹색평론사 - 2011.12. 1
    구르는돌
  8. 2012/12/30
    한미fta와 대한민국 헌법 - 2011.12.4
    구르는돌
  9. 2012/12/30
    한미fta와 장애인 - 2011.12.8
    구르는돌
  10. 2012/12/30
    교육학 세미나 후기 - 2011. 12. 12
    구르는돌

반값 등록금 - 2011. 5. 28

페이스북에 썼던 글.

 

 

한나라당이 반값 등록금을 한댄다. 시민사회진영은 미심쩍지만 일단 환영을 한댄다. 오, 그러나 이게 솜씨 좋은 낚시꾼의 밑밥이면 어쩌려구!? 신문을 봐라. 보수 언론에서 맨날 때려대는 얘기가 뭐냐? 국민세금으로 부실대학에 돈 퍼준다고 난리다. 사실 따지고 보면 맞는말 아닌가?

며칠전에 지하철 타고 가는데 옆 사람이 보고 있던 중앙일보를 힐끗 봤다. "이대 757억, 홍대 752억" 대학들이 적립금을 이렇게 남겨먹는데, 세금으로 등록금 대주는게 옳은거냐고 핏대를 올린다. 이거 내가 알기로는 적어도 한 3년 전쯤에는 등록금투쟁하는 학생운동단체 자료집에나 나올법한 내용이다. 근데 이런 내용이 보수언론에 실린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반값 등록금을 말하기 전에 부실대학 구조조정부터 해야 된다"는 거다. 국가가 학벌경쟁을 부추겨서 우후죽순처럼 생긴 부실대학을 반값등록금 때문에 청소해야 한댄다. 이말은 즉슨, 쉽게말하면 일류대학 중심으로 재정지원 해야 된다는 얘기 아닌가? 이런 공격에 대한 진보진영의 대응은 얼마나 옹색한가? 프레시안 기사인가를 보니까 한다는 소리가 "대학 구조조정의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으로 시작한다. 이건 완전 놀아나도 제대로, 아주 댄스를 추고 계신다.

반값 등록금, (아니지... 한나라당 표현대로라면 장학금!!!) 하자면 못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런 정책이 지금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4년제 산업대나 전문대 등에서는 산업체랑 계약 맺어서 등록금 50%로 퉁치는 곳은 많이 있다. 그런데 이게 완전 노예 계약이라는 거다. 이런 계약학과 다니는 중에 회사에서 짤리거나 사표내면 학교에서도 바로 짤리는 거다. 이런 식으로 하자면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 무상 교육도 얼마든지 하고 남는다.

반값 등록금, 이게 민생정책이면 히틀러도 휴머니스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원준이 돌잔치 - 2011.6.5

페이스북에 썼던 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누나한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난 우리 조카 돌잔치를 하는 걸 보고 정말 이런거 할게 못되는구나 싶었다. 시간에 맞춰 들어오자마자 10분 쯤 지났을까, 행사진행요원이 마이크를 잡더니 일사천리로 돌잡이와 기념품 추첨 등을 진행하고 대략 20분쯤 지나서 돌잔치를 끝내버렸다. 그 자리에 왔던 손님들은 박수몇번 치다가 2만5천원짜리 뷔페음식을 본전때우겠다고 열심히 먹고 돌아갔다.
좀 늦게 도착한 이종사촌 동생들은 물어봤다. "원준이 뭐 잡았어?" "돈" 사촌 동생 대답한다. "잘했네~" 명주실을 잡길 원했던 매형은 아쉬워했지만 주위에 몰려있던 사람들이 말한다. "요즘엔 과학이 발달해서 아무나 다 오래살아, 돈이 최고야~"
오 이런... 난 이 말이 왜 이제 세상과 만난지 1년된 우리 조카에게 마몬의 저주를 퍼붓는 말로 들릴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발췌독) 도법스님, [사람의 길] 중에서 - 2011.8.23

페이스북에 썼던 글.

 

 

________________________

 

 

길을 가로질러 가는 것은 동물들에게는 삶이고 죽음이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그들에게는 순간이고 운이었다. 주검 위로 사람을 태운 바퀴들은 무수히 굴러갈 뿐이었다. 생명붙이들은 생명의 영원한 고향인 흙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스팔트나 시멘트 위에서 가루가 되고, 끝내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그러면 저들의 영혼은 어찌될 것인가. 사람들은 그많은 생명들을 죽이면서도 달려간다. 빨리 가려 아우성이다. 도대체 그리 달려가 사람들은 무엇을 하려 하는가. 도법은 합장을 했다.
'인간들은 저 무서운 속도로 무엇을 삼기켜 하는가. 결국 그 속도에 인간들이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 도법스님의 생명평화 순례, '사람의 길'중에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서울역 도가니? - 2011.9.30

페이스북에 썼던 글. MBC 뉴스데스크 "지적장애 여성 성폭행 - 서울역 도가니" 관련.

 

 

________________

 

 

 

MBC 뉴스에서 '서울역 도가니'라는 단독 보도를 냈다. 한 노숙인이 서울역 앞을 배회하던 지적 장애 여성을 보름 동안 감금해서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런 보도를 하는 걸 뭐라 할 순 없지만...

근데 분명히 처음엔 노숙인이라고 소개했는데, 그 여성을 감금한 곳은 자기 집이란다. 게다가 그 집도 노숙인들이 주로 기거하는 쪽방촌도 아니고 멀쩡한 빌라 주택가였다. 그런데 왜 그는 노숙인이라고 소개되었어야 했던 걸까?

이것이 바로 지금 언론이 도가니 열풍으로 나타난 사람들의 분노를 어디로 돌리려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면이다. 인화학교 사건은 분명 부패한 사회복지 재벌의 문제이거늘, 이 분노를 노숙인과 같은 또 다른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증오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보도는 그 '노숙자'가 전과 50범이었다고 대중에게 일러바친다. 댓글들은 노숙인 인권 어쩌구 하던 놈들도 다 죽여버려야 한다고 거품을 문다.
...
정제되지 않은 무차별적 관심이 오히려 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근데 MBC는 정말 왜 집이 있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도가니 단상 - 2011.10.1

페이스북에 썼던 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는 오히려 이 끔찍한 장면들보다 영화의 말미에서 공유가 죽은 민수의 영정 사진을 들고 경찰의 물대포를 맞으며 하는 마지막 대사, "이 아이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민수라고 합니다."가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결핍의 상태인 이 아이를 위해 대신 싸워주기를 호소하는 이 정의의 외침은 그러나, 민수를 여전히 정의의 '수혜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른들이 물대포 맞아가며 싸우는 동안, 연두와 유리는 그저 울며 물대포 세례를 힘없이 지켜만 보고 있다.

끔찍한 장면의 자극을 통해 만들어지는 분노가 아니고서는 우리가 이런 문제를 함께 공유하고 해결해 나갈 노력을 만들어갈 길은 없는 것일까? 장애인의 신체적 '결핍'을 대신해 싸워주겠다는 '가상의 정의감'을 공유하지 않고, 차분하게 그들이 몸으로 내는 목소리에 귀기울여가며 그들의 싸움에 '동참'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공지영의 말처럼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심지어 게으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영화를 통해 느낀 폭발하는 감정들이 이 진실의 '게으름'을 앞서 나가려다 보면 분명 진실에 상처를 주고 말 것이다. 진실만큼 느리게 가자. 진실보다 뒤쳐져선 안되겠지만, 단 두시간 동안 느낀 감정으로 진실을 인도하려 하지 말자. 우리는 아직 모르는게 너무 많다.

 

 

나는 오히려 이 끔찍한 장면들보다 영화의 말미에서 공유가 죽은 민수의 영정 사진을 들고 경찰의 물대포를 맞으며 하는 마지막 대사, "이 아이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민수라고 합니다."가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결핍의 상태인 이 아이를 위해 대신 싸워주기를 호소하는 이 정의의 외침은 그러나, 민수를 여전히 정의의 '수혜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른들이 물대포 맞아가며 싸우는 동안, 연두와 유리는 그저 울며 물대포 세례를 힘없이 지켜만 보고 있다.

끔찍한 장면의 자극을 통해 만들어지는 분노가 아니고서는 우리가 이런 문제를 함께 공유하고 해결해 나갈 노력을 만들어갈 길은 없는 것일까? 장애인의 신체적 '결핍'을 대신해 싸워주겠다는 '가상의 정의감'을 공유하지 않고, 차분하게 그들이 몸으로 내는 목소리에 귀기울여가며 그들의 싸움에 '동참'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공지영의 말처럼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심지어 게으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영화를 통해 느낀 폭발하는 감정들이 이 진실의 '게으름'을 앞서 나가려다 보면 분명 진실에 상처를 주고 말 것이다. 진실만큼 느리게 가자. 진실보다 뒤쳐져선 안되겠지만, 단 두시간 동안 느낀 감정으로 진실을 인도하려 하지 말자. 우리는 아직 모르는게 너무 많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특수교육과 학생들 집회 후기 - 2011.11.6

페이스북에 썼던 글.

 

__________________________

 

어제 특수교육과 학생들 집회에 갔다와서 느낀 점들.

인원수가 이틀 전 있었던 한미FTA집회의 2배는 넘어보였다. 근데 좀 속터지는게, 종횡으로 줄을 딱 맞춰 앉아서 연단에서 시키는대로만 하는 집회라는 거. 심지어 사회자는 질서유지를 위해 화장실에 갈 때는 '질서유지인'의 인도하에 5명씩 짝을 맞춰 가라고 했다.ㅠ.ㅠ 난 정말 집회 대오가 사회자의 말을 이렇게 잘 듣는 집회는 처음 봤다.

그리고 꼭 민중가요에 맞춰서 문선 같은거 해야 하나? 과장 하나도 안 보태고 아마 그 집회에 나온 학생들 99%는 운동권이 아닐테고, '파도앞에서' 같은 노래는 거기서 처음 들어봤을 텐데... 자기 문화가 아닌 걸 그저 집회라는 형식에 맞추기 위해서 꼭 반복해야 하나... 그 공연 보면서 즐거워하는 건 솔직히 무대 옆에 모여 앉아있던 장애인단체 활동가들 뿐이었다. ㅠ.ㅠ

요즘엔 나조차도 그런 문화가 어색하고 조금은(아니, 솔직히 많이) 불편하다. 내가 이러면 변절한거야? 그런건 아니죠? ㅋㅋㅋㅋ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발췌독) 송기호, [한미FTA핸드북], 녹색평론사 - 2011.12. 1

페이스북에 썼던 글.

 

 

___________

 

 

 

송기호 변호사의 [한미FTA핸드북](녹색평론사 2011)에 실린 글 중, 정말 대박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옮김. 여기서 말하는 비전2030이란 노무현 정부 당시 발표된 사회정책 종합적 플랜. 일각에서는 이것이 우리나라 정부가 발표한 최초의 종합적 사회정책 플랜이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 하는데, 송기호는 이 글에서 한미FTA라는 조건 속에서 이것이 얼마나 황당한 인식인지를 평가한다. 다들 이 핸드북을 일독하시길 바랍니다. 녹색평론사 홈페이지에 가면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비전 2030>이 한미FTA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전 2030>은 국가 규제로부터의 해방과‘적극적 개방’,‘능동적 세계화’를 갈구합니다. 이‘갈증’이 한미FTA를 원했습니다. 미국은 한국에게 ...억지로 이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비전 2030>이 내민 뜨거운 손을 잡았을 뿐입니다. 문제는 <비전 2030>입니다. 한미FTA는 외부의 그 누구가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비전 2030>은 이미 퇴보한 국가로 하여금 완전히 뒤로 물러나 앉으라고 합니다. IMF사태 후 10년 동안 형성된 국제금융자본의 기득권과 경제구조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 국가는 그 구조의 담 너머에서, 인력에 투자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구조에서 탈락한 자와 희생된 자를 위한 구제사업에 전념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비전 2030>의 ‘사회투자’이며, ‘선진적 사회복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당연히 돈이 듭니다. 세금을 더 걷어야 합니다. <비전 2030>은 2010년까지는 세금 증가 없이 한번 추진하겠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는? ‘증세를 위한’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비전 2030>은 패퇴하는 국가의 자화상입니다. 국가는 국민경제를 유지하는 1차 보호선입니다. <비전 2030>은 국가에게 퇴각을 명령합니다. 국가는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탈영합니다. 그리고 시장 주변에서 보초를 서다가, 자신이 버린 1차 보호선이 무너져 생긴 희생자들과 마주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빈곤층의 기나긴 대열에, 국가는 다가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들을 선진국 수준으로 돌보아 주는 것이 나의 새로운 비전이오!” “그러니 세금을 좀더 내주셔야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미fta와 대한민국 헌법 - 2011.12.4

페이스북에 썼던 글 퍼옴.

 

_________________________

 

 

김하늘 판사가 추천한 동영상 "을사늑약이 쪽팔려서"에 보면 한홍구 교수가 다음과 같이 한미fta를 정리한다. 바로 이것이 체결되었을 때 바뀔 법 체계이다. 상위법부터 나열하면,

1. 미국 헌법
2. 미국 한미fta 이행 법안
3. 한미fta 조약 전문 (영문본)
4. 한미fta 조약 전문 (한글본)
5. 한국 헌법
6. 한국 법률

전두환 노태우 때에는 민주화 진영이 '호헌철폐'를 외쳤다는데, 우리는 마치 보수주의자들처럼 '헌법수호'를 외쳐야 할 판이다. 우리 집 문짝에다 "사랑해요, 대한민국 헌법"이라고 써 놔야 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미fta와 장애인 - 2011.12.8

페이스 북에서 옮겨 온 글. 이건 고려대 학생이 과제로 하는 영상물 촬영에 인터뷰 하면서 대답한 원고.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한미FTA와 관련해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투자자국가제소권이잖아요. 이것은 투자자가 기대하는 미래이익이 국가의 개입으로 침해되었다고 판단될 때 국가를 국제중재재판소에 제소하는 것이죠. 이 문제를 굳이 장애인과 관련해서 비교하자면, UN에서 제정하는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이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협약은 강제력이 없어요. 그래서 이 협약에 강제력을 부여하기 위해서 선택의정서라는 것을 두는데, 이것을 통해 비로소 국내에서 장애인권리침...해가 일어났을 때, UN의 직권조사를 요구할 수 있죠. 그런데 선택의정서의 작동도 국내법의 절차를 다 거쳤음에도 해결이 안났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죠. 물론 한국은 이런 선택의정서도 비준하지 않았지만요.
반면 ISD는 투자자가 직접적인 손해도 아니고, 미래에 예상하는 기대수익이 침해되었을 때에도 언제든지 국가나 지자체를 국제심판에 제소할 수 있습니다. 투자의 권리가 무슨 역사적으로 인정된 천부인권이라도 됩니까?
사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권리 침해와 차별에 대해서 제대로 하소연할 데도 없습니다. 그나마 최근에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정부가 의지가 없으니 이런 법들을 무력화시키기 일쑤죠. 지금도 정부가 복지예산 줄인다고 거동이 힘든 장애인들의 등급을 임의로 낮춰서 하루아침에 활동보조서비스를 못 받게 만드는, 사실상 정부에 의한 인권 유린이 자행되고 있는 마당인데, 국가 내에서는 이를 구제해주는 체계가 전무해요. 그런데 엄청난 재력을 가진 투자자들은 수 틀리면 바로 국제심판에 국가를 제소할 수 있다는 것, 이것보다 더 심한 차별이 어디있습니까?
사실 ‘투자자’라는 것은 비인격적 실체입니다. 한미FTA는 이것에게 인간의 권리를 넘어선 특권, 인간의 권리가 파괴되어야만 보장될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현재 장애인, 그 중에서도 중증장애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복지제도는 아무래도 활동보조서비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힘든 장애인들의 가사, 신변처리, 이동지원 등을 돕는 가장 필수적인 제도인데, 이게 기본적으로 국가책임이에요. 파견되는 활동보조인의 급여도 국가에서 주고요. 그런데 이 서비스를 중계해주는 기관은 다양한 민간기관들이 난립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정부는 이런 민간화, 시장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구요. 그러면 분명 장애인의 생존권적 요구와는 별개로 오로지 수익만을 노리고 이 서비스에 진출하려는 이들이 생기게 됩니다. 현재에도 중계 수수료만을 노리고... 이 서비스를 하려는 이들이 많은데, 한미FTA가 체결되면 외국 투자자들까지 개입하겠죠.
사실 이건 그냥하는 소리가 아니라, 한미FTA의 목적과도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한미FTA를 추진하면서 그 이유로 든 것이 바로 ‘서비스 산업의 활성화’였습니다. 대한민국이 제조업으로는 앞서간 일본과 추격하는 중국에게 쫓겨 안되겠으니까 서비스 산업으로 돌파구를 찾자는 것이었죠. 문제는 서비스 산업의 활성화라는 것이 다른 말로 ‘서비스 산업의 시장화’라는 것입니다. 의료 서비스, 교육 서비스가 대표적인 것이고, 활동보조, 주간보호 서비스 등도 이 시장화의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영역에 진출한 해외 투자자들은 이 서비스가 공적으로 제공되는 것이 투자 수익을 올리는 것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문제삼을 것이고, 그것이 국제제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장애인의 생존의 문제가 국제중재심판소의 3명의 심판관의 손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공적 서비스 체계가 무너지면, 유료화된 서비스를 부담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 장애인만 살아남는, 장애인 복지에 있어서는 가장 야만적인 체제가 도입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이상하게도 정치권에서 복지국가 얘기가 부쩍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이 논의 속에 한미FTA가 별로 쟁점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정치권의 복지논쟁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교육학 세미나 후기 - 2011. 12. 12

페이스북에서 옮겨온 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오늘 오랜만에 간 교육학 세미나에서 본 글 중에 이런게 있었다. 우리나라 교육은 일명 '손님 만나 달리기'라는 것이다. 어느 시골 초등학교에서 운동회때 '손님 만나 달리기'라는 것을 하는데, 달리기 전에 제비뽑기로 종이를 뽑아 나오는 나오는 사람과 손을 잡고 같이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재수없게 백발의 할아버지가 걸린 학생은 아무리 육상 기대주라도 꼴찌를 하는거고, 운이 좋아 젊은 군인 아저씨가 걸린 학생은 군인 아저씨가 업고 달려서라도 1등을 한다는 것이다. 즉 이 사람은 부모 잘만나면 장땡인게 한국 교육이다, 뭐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난 이 손님 만나 달리기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어차피 우리 인생이 다 손님 만나 달리기 아닌가?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인생을 완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교육을 개혁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런 '손님'들을 레이스에서 없애버리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인생에서 손님은 필연적인 존재임을 인식하고, 교육을 통해 함께 달리는 법을 배우고, 또 할아버지와 달리는 것이 군인 아저씨와 달리는 것에 비해 뒤쳐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아니, 굳이 알게 하지 않아도 되게끔 최종 결승점을 둔 100미터 레이스 코스를 원형으로 만들어 앞서간 사람이 뒤쳐진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이 그를 결정적으로 패배시킨 순간이 아니라 다시 시작되는 출발점에서의 동행의 순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