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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내 친구 빈센트


내 친구 빈센트
박홍규 지음 / 소나무

 

 

* 불안정노동철폐연대 기관지 <질라라비> 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다소 거칠긴 하죠.

 

 

광기 혹은 예술? 빈센트 반 고흐.


보통은 중고등 학교 교과서에서 몇 번 그림을 보았거나 유명하다고 알려져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귀를 절단한 미친 화가로 기억된다. 그러나 여튼, 많이 알려져있고 그의 그림을 어떤 식으로든 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의 그림을 찬찬히 보기 시작하면, 영혼의 상처들, 작열하는 태양과 대지,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하는 사람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그곳, 노동하는 사람이 가지는 어떤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노동자들의 시선은 어느 지점에서 고흐의 눈빛과 만날 수 있게 된다. 비록 저임금과 고용불안의 고통 속에 있더라도,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행위로서의 “노동”이라는 것에서 말이다.

그래서 어떤 점에서 빈센트 반 고흐는 역사상 위대한 “노동하는 사람의 화가”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광기로 소개되었던 어떻든, 그의 진실에는 노동자의 눈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빈센트의 삶

 

이 책의 제목에 “고흐”라는 그의 성이 아니라, “빈센트”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은 그가 일관되게 자신의 그림에 빈센트라는 이름만으로 서명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권위적인 이름이 아니라 익명의 감상자들에게조차 친근한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한 것은 어떤 계기였을까?
바로 벨기에 탄광촌에서 선교를 하면서 비참한 탄광노동자들의 삶을 접하고부터였다. 그는 종교적 열정에 이끌려 선교를 목적으로 탄광에 갔지만, 이내 비참하게 착취당하는 탄광노동자의 삶을 접하고 충격을 받는다. 탄광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났을 때 지원하기도 하고, 탄광노동자와 똑같이 입고 굶주리고 지낸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당시에 쓴 편지는 마치 프랑스의 사실주의 걸작, 탄광노동자들의 삶과 파업투쟁을 그린 에밀졸라의 <제르미날>의 한 구절을 보는 것같다.


그 초기 시기에 가장 돋보이는 그림은 잘 알려진 <감자를 먹는 사람들>(1885)이다.

<감자를 먹는 사람들>(1885)

 

노동하며 거칠어진 사람들의 손, 그 손으로 캐낸 감자를 먹고 있는 가난한 농민 가족의 모습이다. 이 속에 바로 삶과 노동이 있다. 빈센트는 바로 노동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고자했다.
그의 그림이 가장 생명력을 잃은 것은 역설적으로 가장 그림그리기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 파리 거주 시기였다. 당시 유행하던 인상파 화가들의 기법을 흉내내기도 했지만, 그것은 지금 보기에도 “아, 이건 고흐의 그림이야”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가 그림을 그려야할 곳은 다른 장소였다.

 

아를, 태양의 고장에서

 

프랑스 남부의 아를은 지금도 온통 하얗게 햇빛이 가루처럼 부서지는 곳이다. 끝없이 밀밭이 펼쳐진 아를로 내려간 빈센트는 그 곳에서 풍경과 함께 농민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빈센트의 그림은 다시 태양으로 가득차고, 가난한 농민들의 삶이 등장한다. 그러나 단지 고달픈 고통으로서 노동만은 아니다. 오히려 생명이 가득한 곳에서 생명을 키우고 거두는 존재가 바로 노동하는 농민들이다.

그림의 양식 속에도 그런 점은 반영되어 있는데, 고흐의 단순한 양식은 어떤 “추상화”의 일환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순화라고 할 수 있다. 고상한 귀족들의 생활을 묘사하는 데 거친 붓터치와 강렬한 원색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거친 손과 팔뚝, 작열하는 태양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농민을 그리기 위해서는 바로 그것이 필요하다.


고흐는 자신도 바로 그런 존재로 그렸다. 그의 잘 알려진 많은 초상화들이 그렇다. 자화상에서 그의 눈빛은 19세기 후반 부르조아 사회의 가식을 견딜 수 없었던 영혼의 고통, 그리고 강렬한 태양을 함께 담고 있다.

 

자화상(1889)

 

보통사람 빈센트

 

글쓴이 박홍규 교수는, 이 책을 통해서 보통사람으로서의 빈센트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광기”라고 평가되는 그의 강렬한 작품은 오히려 그의 노동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이해하지 못한 부르조아 미술계의 오해일 뿐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서 빈센트의 삶의 여정과 그의 작품이 분리될 수 없다는, 어쩌면 아주 당연하지만 대부분 잊혀지고 마는 사실을 꼼꼼히 보여준다. 그런 오해들을 벗겨내면 빈센트의 작품을 그의 삶과 함께 마주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비참하게 착취당하고, 예술이 부르조아적 가식의 장식이 되었던 시기에 고통스러웠던 예술가의 작품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이라도 그것이 크게 다른 상황일까?

그래서 마치 우리에게는 먼 어떤 다른 세계의 예술인 것처럼 생각되었던 위대한 한 예술가를, 노동자들이 자신의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우리 문명의 가장 위대한 예술적 성과 중 하나를, 그 주인인 노동자들이 다가가고 이해하고 감동할 수 있는 권리를 찾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씨 뿌리는 사람, 1888>

 

반 고흐의 그림에는 유령도 없고, 환영도 없고, 환각도 없다.
그것은 오후 두 시에 내리비치는 태양의 작열하는 진실이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작가 앙토넹 아르토가 <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작년말과 올해초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된 “반고흐展”의 한쪽 벽면에 있던 문구이기도 하다.) 그가 본 ‘태양의 작열하는 진실’을 그림과 함께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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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


진보적인 노동법 학자이면서 인문학의 고전인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번역하기도 했던 박홍규 선생이 쓴 책이다. 예술가에 대한 독특한 사회과학적 분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은, 그러면서도 오히려 예술적 감상을 더욱 진실하게 만들어준다. 이 꼭지의 주제가 “내게 가장 좋은 책”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이 책은 그런 이름에 걸맞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가장 좋은 (예술에 관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같다.


이 책 외에도 본문에 언급한 앙토넹 아르토의 <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 빈센트의 서한집인 <반 고흐 영혼의 편지>와 같은 책도 매우 감동적일 뿐 아니라 그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기회가 될 때, 그의 작품을 직접 보는 것이 좋은 데 안타깝게 최근의 전시회는 올해 2월말까지 진행되었다. 당분간은 국내에서는 화보와 화면을 통해서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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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에 대한 까질한 그러나 흥미로운 인용

촛불집회에 대해서 아래 남긴 글의 맥락에서, 촛불집회의 긍정성과 함께 다른 면, 양면성을 보아야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사고와 정치적 행동이 전진할 수 있지요.

그런 점에서 흥미로운 글이 떠올라서 일부를 인용해봅니다.
문화연구 시월의 신병현 교수님이 쓴 <“새로운 자본주의” 담론구성체>라는 글의 일부입니다. 자율주의자들을 비판하는 글입니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촛불에 대한 자율주의자들의 시각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해당 논문은 문화연구 시월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www.siwall.net/main/openDB_1.htm   게시판의 28번 글입니다.)

특히 신자유주의로 전향한 NGO들에 대한 언급은 2기 범국민 대책회의를 "주도"하고 있는 일부 NGO들을 상기하도록 합니다. 아울러 Netwar에 대한 부분은 현재의 촛불집회를 직접 지칭하는 듯하지요.

인용을 읽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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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담론들에서 NGO들은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조응하면서 ‘유능한 통치’(good governance)의 수단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Netwar에 대한 미군 협력 연구소인 Rand Arroyo 센터의 관심이 매우 흥미롭다. ‘정보화 시대’에 동조된 “네트워크적 조직형태, 신조, 전략, 기술에 의거한 범죄 및 갈등”으로서 Netwar는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통신기술을 사용한다는 점뿐 아니라, NGO와 같은 수평적 네트워크를 동원하는 것에 의해 특징지어지며, 이런 운동들에서 NGO는 “변혁운동의 낡은 위계구조를 대체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아로요 센터의 보고서에서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운동체들의 초국적 운동들은 그렇게 위협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사회 및 정치적 개혁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는 긍정적인 결과도 갖고 있으며”, “미국은 심지어 Netwar를 조장하거나 그로부터 이득을 취할 수도 있고” NGO와의 관계 조율을 통해 Netwar의 경로와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조언한다.((Morris-Suzuki, 2000, 63-4)

 이 예는 “정보화 시대‘에 변화의 핵심적인 행위자들이 유연하고 네트워크화 되고 초국적인 사회운동체들이라는 이미지가 광범하게 수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NGO나 네트워크화된 사회운동체들이 더 이상 전 세계적 자본운동의 힘에 저항하는 해방적 잠재력을 가진 진보세력으로 보는데 의구심을 갖도록 한다. 그 뿐 아니라, 기금공여자들에 의한 감사 기준이나 성과 표준을 충족시킴으로서 지속적인 기금수혜자로 남기 위해 더욱 공식화되고 소수 엘리트의 역량에 의존해 가야하는 NGO 활동에 대한 실천가들의 많은 고민이 표출되고 있기도 하다.(Wallace, 2004; Hawkesworth,2002)

 이러한 담론들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기 전 세계적 범위에서 통치 기법에 대한 탐색과 적용이 일반화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원격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통제를 위한 기법을 찾으려는 공명하는 담론 계열들에 관한 푸코주의적 논의를 생각하게 한다.(Barry et al,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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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war는 위키에서는 이렇게 설명하네요.

Netwar
is a term developed by RAND researchers John Arquilla and David Ronfeldt to describe an emergent form of low intensity conflict, crime, and activism waged by networked actors. Typical netwar actors might include transnational terrorists, criminal organizations, activist groups and social movements that employ decentralized, flexible network structures.

테러리즘만이 아니라 최근의 사회운동에 대해서도 이러한 방식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특히 탈중회되고 유연화 네트워크 구조라는 언급은 이번 촛불과도 닮았습니다. 문제는 본문의 지적처럼, 이것이 권력에 의해서 통제될 수도 있다는 것, 그 매개는 신자유주의적인 NGO들이라는 점입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netwar에 개입할 수도 있죠. 그리고 그것이 사회운동의 방식으로는 위협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관련해서는 <네트워크 전쟁>이라는 책이 여기서 지적하는 랜드 연구소의 보고서인 것같군요, 주문했는데 오면 읽어볼 생각)


네트워크 전쟁 - 테러범죄 사회적 갈등의 미래
존 아퀼라 (지은이), 한세희 (옮긴이)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5년 11월

여튼, 이런 점에서 현재의 촛불집회에 의미있게 결합하면서도 그 양면성을 사고할 수 있어야 우리가 과연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폭발하는 대중운동 속에서 지성에게도 모종의 역할이 있다면 그런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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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김원]아직도 진보정당 실험할 게 남아있나 + 덧붙여

김원 선생의 인터뷰가 오마이뉴스에 실렸군요.
 
 
문제의식에 많이 공감합니다. 마침 지난 주말에 김원 선생 등이 신병현 선생 등과 작업해서 발간했던 <사라진 정치의 장소들>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상황에서 반갑기도 합니다.(오랜만이 리뷰라도 써야할 것같다는;;)
 
 
 
글을 읽고 나서 찾아보니, <지행네트워크>라는 곳에 관련된 글을 이미 쓰신 적이 있군요.
 
http://jihaeng.net/blog/111 (촛불은 계속 타오를 것인가)
 
 
 
한달 넘은 글이긴 하지만, "긴박한" 정세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사점이 생생한 글입니다.
 
 
한편, 아래 제가 쓴 참세상 기고와 관련해서 사회진보연대 게시판에 이런 글을 썼었습니다. 또 보니, 김원 선생의 글을 보면서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군요.
 
 
다만 저는 여전히 활동가입장인지라, 현재 정세에 사회운동이 어떻게 "전술적으로" 개입해야하는지가 더 고민이긴 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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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자연스럽게 참세상에 올라온 다른 기고문들과 모종의 쟁점을 형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원영수(노힘)씨의 글
그리고
 
김강기명 씨의 글
과 그렇습니다.
 
후자는 자율주의에 가까운 입장이라면 전자는 (원영수씨의 원래 포지션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신좌파적 입장일텐데,  둘다 촛불의 승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촛불 안에 있는 모순적 요소를 봐야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운동이 자신의 역할을 가진다는 입장입니다. 역설적으로 좌파들이 완전히 무관심하거나 혹은 이런 방식으로 열광하거나하는 사이에 가장 영리한 대응을 하는 것은 여연 등의 NGO들입니다. 자신들이 어느 지점에 개입해야하는지 알고 있지요.
 
그래서, 이번 촛불국면에서 충분히 배워야하고 싸움에 최선을 다해야하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이어선 안될 것이고, 무엇보다 사태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열광보다는 과학적 분석과 이해)
 
이런 식으로 말하면 뻔하게 "좌파 먹물들 운운"하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겠군요. ㅋㅋ
하지만, 참여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참여"가 더 중요하게되는 시점이니, 좀 봐주시면 좋겠습니다.ㅎ
 
여튼간에 자율주의자들의 반응은 뻔하다고 치고, 다소 놀라운 것은 (이미 리보위츠의 글[21세기 사회주의]을 번역할 때부터 그랬던 것같기는 하지만) 원영수씨의 이런 입장은 좀 놀랍기도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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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좀 긴 사설.
 
 
 
아래는 퍼온 글입니다.
 
 


  아직도 진보정당 실험할 게 남아있나
  [촛불논쟁-거리정치인가 정당정치인가?⑥] <여공 1970…>의 저자 김원 박사
    
촛불에 상찬을 늘어놓은 다른 지식인들에 비해 그는 차분했다.
 
<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2006년)>란 책으로 주목받았던 김원 박사(정치학)는 6월 중순께 발표한 글에서 "아이들의 촛불을 보며 지나치게 부끄러워하거나 환호해서는 안된다"며 침착하고 냉정한 시선을 주문했다.
 
"우리는 이미 2002년 촛불이 어떻게 잦아들었으며, 당시 촛불을 든 아이들이 88만원세대가 되어 고용불안 속에서 '경제를 살려준다'는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김 박사는 '촛불이 일상으로 들어왔을 때'를 언급하며 비판적 시각을 이어갔다.
 
"한달 전 뉴타운 건설에 열광했던 집단이 갑자기 촛불 속에 자신을 불태울 수 있을까? 한국정치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거리의 정치가 순간 잦아들면서 일상으로 대중들이 돌아갈 때, 시민사회의 '풀뿌리 보수주의'는 다시 강력한 흡인력을 보이며 대중을 빨아들였다. 이 점에서 촛불로 한국 시민사회의 풀뿌리 보수주의가 변화했다고 판단한 것은 경솔한 판단이다."
 
심지어 김 박사는 "(2002년 촛불에 이어) 2008년 촛불에도 '민족주의'는 지속적으로 존재하며 힘을 발휘하고 있다"며 이를 "민족적 자존심에 기초한 멘탈리티의 재생"이라고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촛불 독자성은 강화되고, 사회운동 영향력은 약해져"
 
그동안 미시사의 관점에서 사회운동을 연구해온 김원 박사는 11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만나서도 "촛불시위를 주도한 중고생들을 '촛불세대'로 규정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촛불시위의 양상·분위기·아우라가 과거 거리정치와는 분별되는 측면이 있다. 가족단위로 촛불시위에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았나? 전선을 쳐놓고 미느냐 밀리느냐는 문제로 치환되지 않고 잔치 혹은 페스티벌 성격이 상당부분 더해졌다.
 
중고생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초기에 주도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은 더 두고 봐야 한다. 세대라기보다는 광우병 문제와 자신의 교육현실이 겹치고, 문자세대와는 다른 인터넷세대의 감수성이 결합돼 초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 박사는 중고생들의 촛불시위 참여 양상이 기성세대에게 충격을 주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신자유주의적·시장주의적 교육에 복종하는 애들로만 알았는데 스스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기성세대에게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사유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성찰한 것이다."
 
이어 김 박사는 민족주의의 재현이라는 '촛불의 낡음'에 대비되는 '촛불의 새로움'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운동의 영향력이 더욱 더 약해졌다. 2002년 촛불시위 때는 사회운동이 한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2008년 촛불시위 현장에는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깃발을 만들어 나왔다. 거리정치에 대한 사회운동의 영향력이 퇴조한 것이다. 2002년과 대비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점이다."
 
즉 "촛불의 독자성은 한층 더 강화되고 사회운동의 무능력함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김 박사는 "이는 2002년 촛불을 경험하면서 운동진영이 학습효과를 가진 결과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더 이상 깃발을 내세워 일방통행적인 주장을 관철하는 것이 대중운동으로 전화하는 데 근본적 한계가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오히려 대중의 바다에 뛰어 들어가 거기서 토론하고 결정하는 것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 정치적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정당 실험할 게 더 남아있나"
  
또한 김 박사는 "사회운동과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이 촛불시위로 분출됐다"며 촛불시위가 한국사회에 '두 가지 성찰'을 가져다 주었다고 말했다.
 
 "하나는 더 이상 한국사회의 변화는 기존의 제도화된 정당이나 정당정치를 통해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촛불은 촛불이고 제도정치가 시민사회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앞으로 한국사회의 변화는 촛불시위든 거리정치든 대중지성이든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더 이상 기존의 사회운동 패러다임을 고집했을 때 사회운동이 대중과 소통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대중의 호민관'이라는 패러다임으로는 대중을 이해할 수도 없고, 대중이 복무할 수 있는 언어공간도 확보할 수 없고, 그들을 사회적·정치적 변화의 장으로 끌어올 수도 없을 것이다. 이제 사회운동은 대중의 호민관으로서 역할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다. 사회운동 활동가들도 이번 촛불시위에서 그런 점을 학습했다고 본다." 
 
이런 분석의 연장선상에서 김 박사는 최근 촛불논쟁의 단초를 제공한 최장집 전 고려대 교수의 '대의제 민주주의론'과 관련 "현상 유지적인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최장집 선생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최대치는 친노동자정당의 집권인 것 같다. 국가권력이나 정부행태의 변화·집권 등을 통해서만 좀더 풍부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친노동자정당의 집권을 돕는 시간에 상상력을 발휘해 다른 다양한 가능성을 사회 각 부분에서 추진하는 게 (새로운)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중의 판단과도 부딪친다. 대중들이 투표와 선거에 참여해 자신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느냐?"
 
이 대목에서 김 박사는 "정당정치는 대안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라며 '진보정당 무용론' 혹은 '정당정치 무용론'으로 비칠 수 있는 도전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이미 "촛불집회에 대한 많은 해석들을 보면,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이 필요없는 이론들"(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작년이 87년이 20년 되는 해였다. 좋은 정당, 진보정당의 실험을 더 할 게 남았나? 더 이상 거기에 목을 매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파산 선고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나? 대중들이 자신들의 일상적 문제를 자기문제로 표출하기에는 정당은 너무 낡았다. 그런 것들이 명백한데 계속 (진보)정당에 목을 매야 하느냐? (진보) 전당이 대안이라고 얘기해야 하느냐?"
 
이어 김 박사는 "대중의 우발성과 예측불가능성이 한국정치를 관통하는 특징이 아닌가 싶다"며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아래로부터 대중투쟁에 근거했을 때 형식적 민주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계기가 마련된다"고 주장했다.
 
김 박사는 "대중의 우발성과 예측불가능성을 제도정치로 통제할 때 민주주의가 공고화된다는 주장은 현상유지적이고 보수적"이라며 거듭 '최장집 사단'의 견해를 비판했다. 
 
"대공장 남성 정규직 중심의 진보정당 노선을 재검토해야"
 
김 박사의 도전적인 주장은 '진보정당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핵심사업장인 대공장 노조  조합원들은 이랜드 투쟁은 물론이고 촛불시위에도 관심이 없다. 현재 노동운동의 상태가 이러하기 때문에 민주노조운동이 얼마나 생명력을 갖고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공장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은 비정규직·여성·실업 등의 문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진보정당은 대공장 남성 생산직 노동자를 주요한 조직대상으로 하는 현재의 정당운동의 패러다임을 재검토해야 한다. 노조운동이 지역·산업·계층을 달리하는 소수자와의 연대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꾀해야 한다."
 
김 박사는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생산직 노동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들의 지지가 취약하기 그지없다"며 '지지층 외연의 확장'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진보정당 원내 진입) 초기에는 '거대한 소수'를 운운했지만 지금은 지지기반이 얇아졌고 노동자층의 적극 지지도 사라졌다. 그래서 기존 기지층의 외연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촛불에서 제기된 이슈들을 중심으로 지구당 차원이든 지역투쟁 사례를 통해 촛불시위에 참여한 다양한 층들을 지지층으로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밑으로부터 지지층을 확산하고, 정당의 일상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채널과 소통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 작업이 사회운동과 진보정당 양쪽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김 박사는 "지역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풀뿌리 보수주의를 깨지 않으면 진보정치를 할 수 없다"며 "수도권이든 비수도권이든 아래로부터 풀뿌리 보수주의를 일상에서 깨는 노력과 실험을 하지 않는다면 보수가 주도하는 한국적 정당체제 속에서 진보정당이 장기적인 생존력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박사는 "촛불이 잦아들고 다시 일상이 조성됐을 때 촛불을 지지한 사람들은 자기 일상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와 관련, 그는 새로운 대안으로 검토할 만한 사례로 '이랜드 투쟁'을 언급했다.
 
"이랜드 파업이라는 비정규직 파업이 지역을 중심으로 소비자·노조·정당·사회운동과 동시에 결합됐다. 그래서 이랜드 투쟁은 지역화·집중화·전국화될 수 있었다. 이랜드 투쟁을 거치면서 '시민·비정규직·소수자 등의 일상적 정치활동을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깨달은 것 같다. 촛불도 그런 활동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 박사는 "촛불만 따라다닐 것이 아니라 촛불이 던진 변화를 읽으면서 대중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정치활동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런 게 없는 상태에서 매주 촛불시위 하러 나가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촛불은 대중투쟁의 정형화된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이명박 정권이 악수를 두면 촛불시위는 5년 내내 계속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자기 생각을 사회운동과 결합하고 의식을 끌어올릴 때 (촛불시위처럼) 사회운동을 강화시키는 대중투쟁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다. 기존의 사고를 바꾸고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실험을 이명박 정권 내내 계속 한다면 '진지를 갖는 사회운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원 박사는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편집위원, 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한국 대학생의 하위문화와 대중정치>, <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김진균학술상 수상작) 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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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기고] 촛불집회, 벌써 횟수를 줄일지를 고민할 때?


촛불집회, 벌써 횟수를 줄일지를 고민할 때?

[기고] 7월5일 ‘국민승리’ 선언했지만, 승리한 항목은 없다



지난 7일,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촛불 집회 주최 횟수를 줄인다"라고 발표했다. 대책회의가 주최하지 않는 날은 다른 단체들이 할 수 있도록 하고, 불매운동이나 국민투표 요구와 같이 다양한 운동방식을 병행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런 결정은 대책회의 내부 논의 과정에서 촛불집회의 방향과 관련된 진통이 있은 후 발표되었다. 촛불집회를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장기화하고 완강하게 진행하는 방식은 아니라는 입장이 있었다. 통합민주당을 참여시키고 국민투표를 제안하는 등 제도정치권 안에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또한 집회와 행진이라는 집단적인 정치행위와는 다른 방식의 운동으로 전환해야한다는 일부 시민단체들의 입장이 반영된 결과다.

7월 5일 집회를 통해 촛불 운동의 승리를 선언했으니 이제는 좀 여유 있게 가도 된다는 뜻이었을까? 하지만 정작 상황은 더 녹록지 않다. 시청 앞 집회는 폭력적으로 원천봉쇄되고 있으며, 대책회의 실무진들은 수배자가 되어 조계사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집회 전단을 붙이던 시민이 연행되어 구속영장 청구를 받고, 조중동 불매운동에 동참한 네티즌들은 출국금지를 당하는 황당한 상황이다. 때마침 통합민주당은 국회 등원을 선언했다. 이런 국면을 지칭할 때에는 "승리했다"라는 말보다는 "역공당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해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이 과연 촛불집회 횟수를 줄이고 운동방식을 전환할 것을 고민할 때일까.

모든 개혁언론들과 대책회의조차도 "촛불분열"로 비추어질까 우려해서 부각하지 않고 있지만, 사실 촛불은 심각하게 "논쟁 중"이다. 진행 중인 논쟁을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말할 때, 오히려 진정한 쟁점에 대해서는 일방적인 입장으로 결정되기 쉽다. 촛불집회의 방향에 대한 대중적인 토론이 지난 6월10일 대회 이후 이루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훨씬 더 심각한 방향전환이 이루어지는 이 순간에 논의는 오히려 대중적인 공간이 아니라 대책회의 운영위에서만 논의되고 있다. "대표성"도 불분명한 공간에서 말이다.


▲  7월 5일 촛불 집회/ 참세상 자료사진

시민들의 지지

모 인터넷 신문에 실린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의 최근 인터뷰를 보자. “촛불집회의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집회를 지속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도 많은 만큼, 운동의 방식을 다양하게 만들어갈 필요가 있었다”는 언급이 있다. 개인의 입장이라기보다는 대책회의 안에서 진행된 논의의 결론을 소개하는 발언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지금의 상황을 보자. 다른 운동방식이 나오기도 전에 촛불집회는 경찰의 원천봉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집회를 지속하려는 조직된 노력이 사라지는 사이에, 자발적으로 모이는 소수의 시민들은 고립되고 있는 상황이다. 시청광장에서 이루어지는 시민들의 고립이 그 "다양한 운동방식"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촛불 운동이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왔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그리고 이 운동이 완강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생각할 때다. 그것은 "촛불집회"라는 집회의 독특한 양식 --아마도 "평화로울" 것이라고 기대되는--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요구 사항에 시민들이 공감했기 때문임을 기억하자. 오히려 집회의 양식은 "촛불"이라는 상징만 일관되게 유지되었을 뿐, 시기에 따라 꾸준하게 변화해왔다.

특히 그 요구라는 것은 비록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촉발되었지만, 공기업, 의료 등 공공서비스 민영화 반대, 대운하 반대, 정권의 교육정책 반대 등으로 확장되어 온 것이 이제까지 과정이다. 이 촛불 공간 속에서 시민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불만을 자신의 언어로 발견하고 발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집회는 매순간 문화제에서 침묵시위로, 가두행진으로, 전경차 끌어내기로, 그 양식의 다양한 변화를 겪으면서도 요구를 꾸준히 확대해왔다. 대책회의가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정권퇴진"을 외치는 상황에 이르렀다.

대책회의 내 일부단체들이 촛불집회 축소의 대안으로 제시한 쇠고기 재협상을 의제로 한 국민투표라든가, 미국산 쇠고기 불매운동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요구가 이미 시민들의 목소리로 분출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부 시민단체들이 신자유주의 반대로 촛불을 확장해가는 시민들을 오히려 뒤에서 발목을 잡고 후진하려는 상황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시민들의 대표를 자임할 근거가 있을지, 아니면 대책회의 기존 집행위가 구속, 수배된 이후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이들이 적어도 지금까지 진행된 촛불집회에 어떤 발언권을 요구할 수 있는지까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 요구를 더 확대하고, 밀고갈 때

여전히 문제는 시민들이 외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를 더 확장하고 구체화하고, 일관되게 전선으로 모아내는 일이다. 공기업, 의료 등 공공서비스 민영화 반대, 대운하 반대, 정권의 교육정책 반대와 같은 것들이 단지 이명박 대통령이 "미친" 놈이기 때문에 하는 정책이 아니라, 모두 하나의 일관성을 가진 사회, 경제 정책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고 싸워가도록 투쟁을 지속하는 일이다. 비록 대책회의는 "국민승리"를 선언했지만 정작 승리한 항목은 어느 것도 없기 때문이다.

공기업 민영화는 이름만 "선진화"라고 바꾸어 추진되고 있다. 정부가 7월2일 발표한 "경제안정 종합대책"(2008년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에서는 여전히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공기업 선진화 방안" 항목 안에서 제시하고 있다. 정책발표 시기만 두어달 늦추어서, (아마도 정세가 반전되리라 기대되는) 8~9월에 할 뿐이다. 대운하만 하더라도, 촛불집회가 사그라든다고 판단할 때 언제든지 다른 이름으로 부활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일 대운하와 관련해서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그룹의 검토가 있었으면 좋겠고, 이것을 국민들이 한 번 더 들어보고 판단하는 게 어떻겠냐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다시 추진할 의사도 있음을 밝히고 있다.

운동의 방식을 다양하게 확장하는 것도 의미 있다.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핑계로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정권반대 투쟁을 고립시키는 것은 정권이 원하는 것일 뿐이다. 이미 청와대는 7월5일 대책회의의 청와대 면담과 관련하여 "촛불집회 중단"이 조건이었다고 밝히지 않았는가? 그것은 현재 국면을 정리하려면 우선 시청광장의 촛불집회라는 상징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들이 먼저 알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히려 더 완강하고 끈질긴 싸움과 요구의 확장이다.

노동운동의 계속된 무능

한편, 이러한 과정에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의 대응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노조운동은 이 국면에서 거의 중요한 쟁점들에 대해서 "거저먹은" 셈이다. 특히 공공부문이 그런데, 촛불집회의 과정에서 여론악화를 우려한 정부가 가스, 전기 등 기간산업과 건강보험의 민영화 포기 등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물론, 공기업 민영화가 아니라 "선진화"라든가 건강보험 민영화 포기라는 것은 영리병원 허용과 같은 의료민영화 정책이 계속 추진되는 한 말장난일 뿐이다. 그러나 적어도 애초에 이명박 정권의 주요관료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올해 안에 끝내는" 상황은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만큼, 노동운동은 자신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고유한 요구를 제대로 촛불집회에 결합시켜오지 못했다. 예컨대, 의료, 교육, 공기업사유화 등 다양한 곳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가 결합하는 와중에도 왜 신자유주의 문제의 결정판인 "비정규직 문제"는 거의 언급하지도 못했을까? 불안정노동철폐연대와 같은 일부 단체들이나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고, 이주노조 캠페인도 벌어졌으며 이랜드, 뉴코아,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촛불집회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결합하긴 했다. 그러나 너무 미약한 시도였다. 정작 광우병 대책위 안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라면 가장 "정통할" 민주노총이 제기하지 않는 마당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저임금 노동자의 생존권이라고 할 최저임금 현실화와 같은 쟁점을 광장에서 결합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노조운동은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에 노조가 관련된 주요한 과제 중 하나(공공부문 사유화 저지)에 대해서는 단지 무임승차했으며, 또 다른 하나(비정규직 철폐)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한 셈이다. 비록 운수노조를 중심으로 한 미국산 쇠고기 반출 저지 투쟁, 총파업이 있기는 했지만 노동자들의 요구가 시민들의 다른 요구와 다르지 않음을 시민들에게 말하고 함께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 거대한 싸움이 진행된 과정에서도 노동운동은 여전히 광장의 시민들에게는 "손님"에 불과한 상황이다.



촛불의 양면성 속에서 우리는 어디로 더 전진할까

굳이 노동운동 이야기를 꺼낸 것은, 촛불 행진이 어디로 더 확장되어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서다. 지금의 촛불집회는 여전히 양면적 혹은 복합적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대중이 모인 것을 기억한다. 그 기억 속에서 미선이, 효순이 살인미군 규탄 촛불도 있지만 노무현 탄핵반대 촛불, 월드컵의 붉은 악마라든가, 군 가산점 논쟁, 황우석 논쟁, 영화 디 워 논쟁과 같은 것도 있다. 정치적 불만이 표현되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인터넷과 미디어 문화 속에서 형성되고 강화된 맹목(그것이 불과 직전에는 민족주의적이거나 발전주의 같은 것이기도 했다)이 확산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2008년 촛불은 어딘가에서 돌출한 사건이 아니라 이런 맥락에서 형성되어온 현상이라는 점에서, 이 유례없이 완강한 촛불집회도 여전히 복합적인 성격을 그 안에 갖고 있다.

이 속에 있는 어떤 경향은 많은 사람이 기대하는 것처럼 신자유주의 반대를 위한 운동으로, 일상의 민주화와 문화혁명으로 발전해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또 어떤 경향은 운동의 부정적 수렴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도록 한다. 따라서 촛불집회의 요구를 쇠고기 수입문제에 가두지 말고 더 열어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촛불 안에서도 사회운동들의 역할이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여러 주체가 이 운동 속에서 만나고 결합하면서 하나의 방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여성도 시민이라는 것을 촛불 광장에서 확인하는 일도 그래서 중요하다. 촛불집회에서 "시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노동자=시민", "이주노동자=시민", "여성=시민"들이기도 하다. 그것을 광장에서 "국민"으로 불리는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대화하고 논쟁하면서 주체와 쟁점을 열어가야 한다. (그럴 때, 사회운동도 광장의 시민들로부터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운동을 결산할 때 인터넷 카페나 다음 '아고라'만은 아닌 다른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운동의 조직화"를 사고할 수 있다.)

대책회의가 말한 것처럼 촛불집회가 가야 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임은 분명하다. 이 운동이 퇴행하지 않고 더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촛불집회와 행진에 참여했던 모든 시민들이 함께 고민해야할 시점인 것이다. 더구나 대책회의를 통해 시민들의 대표를 자임하고 있는 사회운동들이라면 이 논의에 참가하는 책임은 더 엄중하다는 점을 명심해야한다.(그 대표성을 비록 아무도 인정해준 적은 없지만 그 현실적 영향력이란 것이 어쨌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렇다.)

이미 해왔던 것처럼 이명박 정권은 자신들의 경제정책으로 인한 물가폭등, 민생파탄의 책임을 촛불집회에 물으면서 정세를 역전시키려할 것이다. 정권도 이제 쇠고기 협상 문제없었다는 말만 되뇌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쟁점이 이미 그것만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록 전술적으로만 생각하더라도, 이때 필요한 일은 광장에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광장을 지키고 넓혀가는 것이다. 정세의 쟁점은 정권 스스로에 의해서도 이미 광우병 쇠고기 수입만이 문제가 아닌 것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고, 시민들이 먼저 모든 방면에서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자신의 요구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쟁점들에 대해서 시민들과 사회운동이, 다시 광장에서 촛불의 방향을 토론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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