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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안 먹어

지난주는 내내 헤롱거렸다. 감기인지 빈혈인지 식체인지 꾀병인지 알지 못한 채 그냥 헤롱거렸는데, 그중에서도 수요일은 한 주의 중간답게 아픈 것도 절정이었다. 결국 조퇴하고 파주에서 서울로 들어갔다.

합정에 내렸는데 어째 병원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촌에는 뭐든 많으니까 신촌에 가보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려 골목 안을 들여다보니 한 건물에 '8+1 ... 내과 한의원' 등등 뭔가 많이 써 있었다. "그래 저거야"하고 들어갔다. 감기인지 식체인지 꾀병인지 알 수 없는 나로서는 '내과'면 된 거였다. 덤으로 한방적으로도 봐주지 않을까 하면서(욕심도 많다-_-).

 

의사 아저씨는 내 얼굴을 보고 맥도 짚고 청진기를 대보고 하시더니 경상도 억양으로 "아버지는 무얼 하세요?" 하고 물었다. 그러더니 아빠와 엄마의 체형과 잠버릇, 성격 등을 물었다. 머리가 안 돌아가 대답하기 귀찮을 만큼이었으나 참고 대답했더니, 결론적으로 해주시는 말씀이 "평소에 고기는 좀 드세요?"였다. "아니요, 2년 동안 거의 생선하고 채소만 먹었어요"라고 했더니, "허허, 아무리 좋은 음식도 사람마다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해요. 사람은 8가지 체질로 나뉠 수 있거든요. 사람도 동물에 비유하면, 소 같은 사람이 있고 호랑이 같은 사람이 있어요. 호랑이 같은 사람이 풀만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병이 나겠어요, 안 나겠어요? 소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사람은 고기 먹으면 탈 나요......"

식은땀 흘리며 참고 들은 결과 "(소)고기 좀 먹어라" 였다.

허무하고 황당해서 "그럼 채소는요!" 했더니 "뿌리채소 위주로 먹어라"는 것.

"웅. 2년 전에도 잘 체했는데.." 했더니 "아마 그때보다 지금이 더 약해졌을 것"이라는 식이었다.

'췟췟췟, 뭐야, 믿을 수 없어!' 하고 외치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내 말이 안 믿겨요? 안 믿으면 할 수 없는데, 내가 이 자리에서 수년간 그렇게 환자들 고쳐왔어요. 우리집 가족들은 4년 동안 감기 한 번 안 걸렸어요"라고 하셨다.

"(끄응......) 네, 그래서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포기하고 그렇게 물었더니 미소를 가득 담고 "집에 가시기 전에 곰탕이나 설렁탕 한 그릇 드세요"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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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다가 결국 다른 병원에 들러서 처방을 받았지만, 손오공 머리 조이는 이 고통에서 속히 벗어나고픈 마음에 '그래 혹시나......' 하고 갈비탕을 한 그릇 먹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어쭈어쭈 머리가 안 아프구랴' 해서 좋았지만 '그래 그날은 약해진 마음에 한 번 먹었다 치자,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할래?' 하는 고민 시작.

 .

'한 달에 한 번만?', '뭘 그런 걸 믿구 그래, 신념을 믿어'...... 마음의 소리들끼리 논쟁이 붙었다.

 .

'에잇, 대략 포기. 다음에 혹시 아플 때까지 버틴다'로 결정.

 .

그러다 며칠 후 친구랑 명동을 지나는데, <이천시의 아기 돼지 거열형>을 규탄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원래 고기를 안 먹게 된 것은 태어나자마자 한 번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사육'당해야 하는 대량축산에 대한 반감과 사료로 들어가는 많은 곡물로 인한 환경문제와 식량분배문제(..... 이렇게 쓰니 너무 거창하잖아!!! -_-) 때문이었는데, 괴로워하는 돼지의 표정을 보니 채식을 하는 데는 단지 그 이유만 있는 건 아닌 듯했다. '거열형 당하는 돼지만 저런 표정일까, 도살장의 돼지도 마찬가지일 텐데......'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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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잡아먹지 않겠어. 마음 흔들려서, 미안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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