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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가방에게

안녕, 내가 너를 처음 본 건 작년 여름이었지. 넌 그때 시네큐브에서 그의 등에 폴싹 업혀 있었어. 그리고 어느 가을 날부터 우린 참 자주 만났어. 가끔 너의 뱃속에서 우산이나 책을 꺼내기도 하고, 입이 벌어져 있으면 다물어 주기도 했지. 내가 그와 눈싸움을 하면서 너에게 던진 눈을 미안한 마음으로 털어주기도 했던 거, 너도 기억날 거야.

너는 EASTPAK이라는 이름표를 붙인 남색 얼굴. 나이는 다섯 살, 아니 여섯 살?

작년 겨울인가, 올해 봄인가. 나는 사진 속에서 우연히 널 봤어. 2001년 말, 너는 인사동 어느 주점에 앉아 있었지. 잠깐, 잠깐 네가 부러웠단다.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졸랑졸랑 붙어다녔을 테니까. 너는 그가 어둠 속에서 울었던 날도, 새벽길에 행복했던 날도, 다 모두 다 알고 있을 테니까. 나도 너처럼 그때도 그와 함께 있어서, 그의 어깨를 가만 토닥여 주고 싶고 그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 혼자서 외롭게 터널을 달릴 때면 너처럼 등 뒤에서 함께 달리고 싶고.

너의 영혼을 깨워 이야기 나누고 싶다. 그는 이제 잊은 듯이 살아가지만, 그가 통과했던 터널들을, 그때의 그 감정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어딘가에 너를 깨울 수 있는 마법의 가루가 있을 것만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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