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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대하지 말아요

안산/안양 쪽에는 공장이 많고 그곳에서 고된 일을 하는 이주 노동자들도 많다. 

그래서인지 가끔 4호선을 타면  이주 노동자들을 심심찮게 본다.

일요일 저녁, 나는 지하철 4호선을 탔고 내 앞에는 이주 노동자 청년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렇지만 졸고 있는 청년의 몸이 빈자리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어 앉기가 어려웠다. [많이 피곤한가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떤 아저씨가 그 자리에 앉으려고 하면서 그 청년을 '굳이' 깨운다. [어이 자네 머리 좀 치워봐!] 청년이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자 그는 또 청년의 머리를 '굳이' 손가락으로 밀며 코끼리 같은 자기의 몸을 빈 공간에 쑤셔 박는다. 도톰한 겨울 코트로 감싼 아저씨의 두꺼운 어깨는 쿠션 같다. 청년의 고개는 또다시 갸웃 기울어 아저씨의 어깨에 닿는다.

 

아저씨는 매우 언짢은 표정으로 자기 손가락 하나를 꼿꼿이 세워 청년의 머리를 받쳐보더니 [자네, 어디까지 가나?] 하고는 더 열심히 청년의 머리를 반대편으로  민다. 단지 난감해서도 아니고, 자기 몸에 청년의 머리가 닿는 자체가 기분 나쁜 듯한 태도이다. 그러고는 동행하는 자기 친구와 함께 지하철에서 신나게 떠든다.

 

지켜보던 내 미간에 자꾸 주름이 잡힌다. 청년 옆에 차라리 내가 앉을걸, 하는 생각도 든다.

굳이 저럴 필요 있을까, 아가씨가 앉아서 청년처럼 졸았으면 가만히 있었을까, 또는 그 청년이 선진국형 인간(백인?)이었다면?

 

[함부로 대하지 말아요!!!]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주먹만 불끈할 뿐. 결국 한 번 노려보고 돌아서버렸다.

처음에 내 머릿속엔 아저씨에 대한 분노뿐이었는데, 조금 있으니 다른 생각이 밀려왔다.

[루냐 너도 잘한 거 별로 없어]라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몇달 전에 알게 된 방글라데시 친구에게 잘해주지 못한 일이 생각난 것이다. 마음이 저렸다.

나를 좋아해주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그 친구를 나는 좀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그가 자주 문자를 보내오고 전화할 때도 시큰둥하지 않았던가. 처음에 내가 그에게 보였던 친절함은 결국 가식이 아니었을까. 나는 '의식'이 있으니 그들에게 '이렇게 대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내게 진실한 마음을 갖기도 전에 과장된 친절이나 행동을 하게 하고, 그가 나에 대해 괜한 기대를 갖게 한 건 아닌지. 그래서 결국 그 친구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닌지.

휴. 생각이 번질수록 생각도 글도 마무리가 안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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