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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설이든 추석이든 나에게 명절은 '빨간날'이라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륜의 표현을 빌리면, 오늘 아침의 하늘은 하느님을 믿고 싶을 만큼 밝고 평화로웠다. 교회에 갔다가 예술의 전당에서 그림 구경을 하고 볕에 등을 말리고 콧구멍에 바람을 넣고 엄마가 사는 곳에 왔다. 가방을 내려놓다가 아빠가 할아버지댁에 가서 아빠네 집이 비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강아지 재복이와 애틋한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아빠가 사는 곳으로 갔다. 아빠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안 계신 틈을 타 그 집으로 간다. 내가 예전에 살던 곳. 열쇠도 첨단 시스템으로 바뀌어 버벅대다가 간신히 들어갔다. 휑한 집. 나와 다른 가족의 흔적들이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내 방은 다행스럽게도 작년 봄 이전의 모습대로 머물러 있다. 그러나 언젠가 내가 소중히 모아놓은 것들과 손때묻은 책들과 노트가 없어지면 어쩌나 두렵기도 하다. 없어져도 그만이라고 억지로 다독이면서도 당장 필요한 것들을 주섬주섬 챙긴다. 다리가 떨린다. 엄마의 부탁을 받고 몇 가지 더 챙긴다. 원래 내가 쓰던 물건을 챙기는 것일 뿐인데도 남의 집에 와 도둑질하는 것마냥 마음이 불안하다. 다시 엄마네 집으로 왔다. 떡국을 주신다. 쌀떡을 꼭꼭 씹으며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다. 엄마의 한숨과 걱정이 가슴에 차곡차곡 쌓인다. 나는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엄마는 내가 동생을 잘 설득해보길 바란다고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머릿속 한켠에 입력. 다시 떡국을 먹는다, 꼭꼭 씹는다. 씹히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살아온 기억 중에 지우고 싶은 것들은 편집해버리고 싶다. 그것이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고 움츠러들게 하고, 무기력하게 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상처받고 그것을 응시하고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다른 것에 의존하고 위로받고 어서 망각의 시간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내 힘으로 이겨내라고, 의지를 갖고 상처와 문제를 넘어서라고 너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너무 무기력하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나는 어느새 피곤을 느끼고 만다. 어떤 행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헛된 기억, 헛된 상처, 헛된 고민-

고등학생의 일기처럼 지친 하루를 늘어놓는다.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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