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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8/27
    가을 밤, 너에게(8)
    루냐
  2. 2007/08/20
    파일 오류의 공포(6)
    루냐
  3. 2007/08/20
    어른 아이의 정체성(2)
    루냐
  4. 2007/08/15
    롤플레잉(8)
    루냐

가을 밤, 너에게

스무 살에 서로 알게 된 우리는 이제 스물다섯이었다.


이십대의 정점, 스물다섯의 정점에 선 우리는, 우리의 삶은

피곤했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생각만큼 흥미진진하거나 열정적이지 않았다.

뭐든 닥치면 잘할 것 같았지만, 사실 닥쳐보니 깨지고 치이느라 잘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깨달은 건 자신의 나약함과 무력함이었고,

바뀐 것이라면 어느 정도는 포기할 줄 아는 자세였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타협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입은 너무 쓰고 텁텁했다.

오래간만에 만나서 환하게 웃어주고 싶었는데, 미안했다.


나도 지쳐있었다. 피곤했다.

열정을 끌어모으기엔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애착이 부족했다.

내가 정말 만들고 싶은 책을 낸다면, 그땐 열정이 솟아날까?

어쨌든 쉬고 싶었다. 너를 만나 어깨에 기대고, 한없이 온기를 느끼며 쉬고 싶었다.

너도 피곤했고, 나도 피곤했고,

우리는 젖은 날개를 바닥에 펼쳐놓고 입으로는 괴로움을 토해냈다.


배를 채우고,

길로 나왔다.


길은 이미 어두워진 지 오래고, 우리는 일찍 들어가 쉬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졌으면서도

그렇게 우리가 함께 걷는 그 길이 향기롭다고 느꼈다.

어디선가 향기처럼 트럼펫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컴컴한 고궁에서 올려다보이는 산도

그 고궁을 몇백 년을 지키고 살아왔을 나무도

노오란 나트륨등도

우리와 함께 트럼펫 소리를 즐기고 있었다.


골목 어두운 구석에 앉아 트럼펫을 부는 아저씨에 대한 호기심과

그 분이 만들어내는 따뜻하고 정감어린 소리가

우리를 벤치에 앉게 만들었다.


우리는 드디어 쉼을 얻었다.

치이고 차이고 쓰러지고 눈물나던

연약한 우리는.



이제 우리는 다시 흩어져, 각자 생활을 시작하겠고

점점 그 밤의 향기와 온기는 멀어지겠지만,

나는 너와 함께한 그 길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200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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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가 요즘 힘들다. 그러던 차에 내가 일 년 전에 미니홈피에 올려놓은 이 글을 다시 읽게 되었다고 했다. 끝이 없는 우리 사춘기 덕분에 녀석은 이 글을 다시 본 이 날도 눈물이 날 뻔했다고 했다. 나도 찾아서 다시 읽어보고, 일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나란히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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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오류의 공포

한 단계의 작업이 끝난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파일을 열려고 했을 때 파일에 오류가 생겨 열리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엔, '저장할 때 급히 해서 실수했겠거니(크릉;)' 하고 3일간 그 단계를 재작업. 그리고 오늘 '이제 드디어 진도를 나가볼까(랄랄라)' 하면서 파일을 여는 순간 설마했던 파일 오류가 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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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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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같은 작업을 세 번째 하고 있는데, '세 번째로 완성하고 다시 열었을 때 또 오류가 생기면 어쩌나 파일 안 열리면 정말 큰일인데...' 하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 교정한 것을 가지고 다시 파일을 고치면서도 '(또) 오류가 생겨 파일을 열 수 없습니다'라는 대화창이 뜰까 봐 조마조마하다. 파일 오류는 나의 상황 따위 봐주지도 않을 테니... '설마가 사람잡는 일'이 정말 일어나면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들 것 같아. OTL

.

엉엉.

누굴 탓하겠냐만은, 오늘은 이런 것까지 괴롭히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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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아이의 정체성

나는, 못난 나는, 자꾸 떼쓰고 짐짝같이 무겁게 매달려 힘들게 했던 나는,

앞으로 언제까지나 계속 이렇게 못난 상태로만 있지는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아래 인용구는 지금 편집 중인 책에서 마음에 들어 메모해둔 것.

그런데 나는 이걸 엉뚱한 데다 갖다붙여 쓰고 있구나.

 

 

정체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투명하거나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정체성을 새로운 문화적 실천이 재현되는 이미 수행된 사실로 생각하기보다는 결코 완성되지 않고 항상 진행 중이며 외부가 아닌 재현되는 순간에 구성되는 산물로서 생각해야만 한다(Hall, 1994: 392).

 

Hall, Stuart. 1994. “Cultural Identity and Diaspora.” in Patrick Williams and Laura Chrisman(eds.). Colonial Discourse and Post-colonial Theory: A Reader. London: Harvester Wheatshe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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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플레잉

벌써 1년 반이나 이 역할을 해왔지만 나는 뭔가 강요받고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롤플레잉,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러니까 루냐,가 아닌 다른 무언가의 모습을 나에게 강요하는 게 아닌 거다

일요일 밤마다 내일 아침에 쓰고 나갈 익명의 직장인의 탈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거다

그냥 루냐는 지금 편집자 역할을 맡았으며, 정성껏, 가끔은 지겨울 만큼 루냐를 쏟아부어서

가장 편집자다운 사람이 되면 그뿐이다

 

이 역할만 평생 할 가능성은 낮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거니

그냥 지금,에 나의 100%를 쏟아버리자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나의 살아 있음을 위해서

.

.

+) 이렇게 생각하는 것과 이대로 사는 것의 차이는 일단 접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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