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1일은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가 발생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모든 언론은 이날도 화재참사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하지만 이번에는 여수가 아니라 남대문이었다. 신기하게도 지난해 여수화재참사가 있었던 거의 같은 시간에 남대문화재가 발생하였다. 가뜩이나 이주문제가 여론의 관심을 받기 힘든 상황에서 여수참사 1주기는 이주운동단체들 사이에서 특별한 날이자 여론을 환기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남대문화재로 인해 이런 우리의 소박한 기대마져 함께 사라져버렸으니...남대문화재를 바라보는 눈길이 나도 모르게 삐딱해진다.

어찌되었든, 남대문화재를 보도하는 뉴스를 보면서 한가지 신기한 점을 발견하였는데, 뉴스의 순서나 내용들이 어쩜 그렇게 작년 여수화재참사때와 똑같은 지 신기할 정도라는 것이었다. 초기대응의 문제점, 부실한 화재예방대책, 현장에서 발견된 라이터, 외국의 비슷한 사례들 등등을 지적하는 것이 마치 여수때 보도된 내용에다 '남대문'이라는 말만 덧씌운 것 같았다. 화재참사라는 유사성 때문이라는 건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고약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앵무새처럼 떠들고는 얼마지나지 않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새로운 뉴스거리만 찾아다니는 언론에 대한 밉쌀스러움 때문이다.

작년 여수화재참사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외국인보호소의 문제점,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서 온갖 다양한 보도가 넘쳐났었다. 그러나 그 후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사태추적을 해 온 언론이 있었나? 한겨레나 경향 정도가 부족하나마 관심을 보였을 뿐 나머지 언론들은 법무부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껴 보도하는 정도였다.
여수화재참사 1년을 앞두고 기획기사가 몇 군데 언론에서 나왔으나 대부분의 관심사는 보호소 시설에만 가 있었다. 그래서 천장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고 바닥이 불연소재 바닥재로 교체되는 것 등만 이야기하다보니 아주 올바른 방향으로 잘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독자들을 호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수화재참사의 진정한 교훈은 단속과 구금, 추방 위주의 미등록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한 비극적인 경고였다. 보호소에서 화재가 일어나지 않는다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 사회의 후미진 구석에서 단속반과 이주노동자간의 쫓고 쫓기는 인간사냥이 벌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죽거나 다치는 희생자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얼마전 단속반을 피해 도망치다 추락사한 중국교포도 그러한 희생자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법무부는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말하는 것을 '감상적 온정주의'라고 비판하며 지금의 정책을 전혀 바꾸려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을 데려왔을진대 '온정'을 품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 아닌가? 법무부는 앞으로도 이주노동자들을 일회용 부품이나 기계처럼 맘대로 썼다가 버리는데 앞장 설 참인가?
'기업프렌들리' 같은 용어를 아무런 마음의 동요없이 자연스럽게 입에 달고 다니는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법무부 역시 '온정주의' 대신 '냉혈주의'를 자연스레 입 밖으로 내뱉는가보다. 하긴 새정부의 출범을 일찌감치 예견하고 줄서기에 앞장 섰던 것이 법무부였지 않은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2/14 00:19 2008/02/14 0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