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툰의 은폐된 폭탄

2005년 로켓포 공격 때 영내로 2발 떨어졌다는 장교와 사병들의 증언…국방부가 감춘 사건·사고들…에르빌에 갇힌 청년들을 방치해야 하는가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김민경 인턴기자 yukishiro9@naver.com
▣ 이혜민 인턴기자 taormina@hanmail.net

국방부는 지난 7월 초 <한겨레21>을 포함해 주·월간지 편집장들을 불러모았다. 국방정책 설명회 자리였다. 2006년 국방여건과 정책목표, 국방개혁 2020 추진 상황, 주요 현안을 브리핑했다. 주요 현안에는 △한-미 군사동맹 발전 노력 △주한 미군기지 이전 사업 추진 △남북 간 군사적 신뢰구축 추진 △F-15K 전투기 추락사고 등이 포함됐다. 자이툰은 없었다. 이라크 에르빌에서 땀 흘리고 있는 장교·사병 3천여 명에 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었다.

합참 “부대 주변에 4발 떨어져”

명분 없는 전쟁임을 알면서도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파병했던 여러 나라들이 이미 철군(표 참조)했거나 철군 계획을 속속 밝히고 있음에도, 이와 관한 내용도 전혀 없었다. 국방부는 자이툰이 국민들의 관심사 바깥에 머물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그래야 2004년과 2005년에 이어 다시 한 번 파병 연장을 시도하기가 수월할 테니까.

국회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에 손을 들어주고 추가 대규모 파병과 두 차례의 파병연장 동의안을 처리했던 국회가 자이툰에 얼마나 관심을 쏟고 있는지 살펴봤다. 본회의와 관련 상임위인 국방위원회와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회의록을 뒤졌다. 지난해 12월30일 파병연장 동의안을 처리할 당시엔 찬반 논란이 있었으나, 해를 넘기면서 자이툰에 대한 고민과 관심이 싹 사라졌다. 2006년 1월부터 최근까지 국회의 공식적인 회의석상에서 의원들은 자·이·툰이라는 세 글자를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겨레21>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다른 매체에 비해 이라크와 중동 정세를 꾸준히 보도해왔고 특히 철군을 위한 시민사회와 영국 등 파병국들의 철군 움직임 등을 전했지만, △2003년 제2차 이라크 전쟁 발발 당시 ‘미국은 진다’(452호, 2003년 4월), △파병 논란이 불거진 뒤에는 ‘파병은 미친 짓이다’(476호, 2003년 9월), △‘파병은 역시 미친 짓이었다’(515호, 2004년 7월)는 표지 이야기를 통해 이라크 전쟁과 파병 문제에 관해 비판적으로 보도해왔던 데에 비하면 부족함이 많았다.

이번 자이툰 취재는 자성 위에서 시작했다. 이라크 파병은 국익에 부합했는지, 구체적으로 파병 찬성론자들의 주장처럼 한-미 동맹은 더 공고해졌고 이라크에 평화와 재건을 안겨줬는지, 3년 동안 5천억원 가까운 비용을 들이면서 어떤 실익을 거뒀는지 두루 살펴봤다. 특히 ‘자이툰 사람들’에 초점을 맞췄다. 2004년 8월 출발한 1진부터 올 초에 돌아온 3진까지 자이툰 근무 경험이 있는 장교와 사병 30여 명을 취재했다. 대부분은 사회에 복귀했지만 민감한 사안인 탓인지 모두 익명을 요구했다. 행정·통신·수송대 출신들은 ‘카더라’ 수준이 아닌, 장교 못지않은 고급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 입에서는 정부의 공식 발표에서는 사라진 생생한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왔다.

2005년 5월29일 밤 11시, 자이툰에 비상이 걸렸다. 사이렌이 울리고 컨테이너 숙소에서 잠들어 있던 사병들은 모두 일어나 방탄조끼를 입고 엎드렸다. 로켓포 공격이 5분가량 이어졌다. 사단 주둔지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처음이었다. 공격은 곧 그쳤지만, 사병들은 동이 틀 때까지 충격과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사병은 “부대 내에서 작업을 할 때도 무거운 방탄조끼를 입으라고 해 귀찮았는데 이날 처음 전쟁터에 왔구나,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사는 다음날 아침 이뤄졌다. 사고 이틀 뒤인 31일 합동참모본부는 “자이툰 부대에 발사된 포탄은 107mm 다연장로켓 4발인 것으로 밝혀졌다”며 “자이툰 부대 주위에 떨어진 포탄에 대해 자이툰 부대, 미군 정보팀, 이라크 민병대인 제르바니가 합동 조사를 벌였다. 이라크 저항세력은 부대 남쪽 4∼5km 지점에서 급조식 발사관을 이용해 도로 주변 또는 차량에서 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4발 가운데 3발은 폭발했고 1발은 불발됐다”고 발표했다.


△ 자이툰부대는 에르빌시에서 수km 떨어진 황무지에 주둔하고 있다. 당시 근무한 부대원 다수는 2005년 5월 피격 사건에 대해 여단 식당과 수송대 사이 공터에서 포탄 자국을 확인했다고 증언했다.

청와대에도 이같이 보고됐다.

2004년 10월 폭발도 ‘공격’이라 증언

그런데 자이툰 출신들을 인터뷰하면서 합참의 공식 발표와는 다른 증언들이 나왔다. 발사된 로켓은 모두 6발이었으며, 이 가운데 2발이 부대 영내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한 병사는 “자이툰 부대 안 식당 부근과 다른 한 곳 등 모두 2발이 떨어졌다”고 증언했고, 다른 병사는 “한 발은 폭발했고, 다른 한 발은 불발이었다”고 구체적인 증언을 보탰다. 당시 자이툰에 근무했던 다른 사병 다수도 “로켓 공격이 있던 다음날 아침 식당 주변에서 움푹 패인 폭탄 자국을 봤다”고 말했다. 이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날 발사된 포탄은 주둔지 외곽 4발(3발 폭발, 1발 불발), 영내 2발(1발 폭발, 1발 불발)로 모두 6발이었던 셈이다.

8월23일 합참에 다시 확인을 의뢰했다. 합참 공보실 쪽은 “미군과 이라크 민병대가 함께 한 합동 조사 결과다. 그게 숨길 일은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어느 쪽 말이 진실에 가까운지 가늠하기는 어렵지 않다. 전역한 병사들이 실제보다 위험을 과장해 얻을 실익이 있을까, 합참이 6발을 4발로 주둔지 바깥에만 떨어졌다고 위험을 축소 발표해 얻을 실익이 클까. 자이툰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인명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내 여론이 악화하면 파병 연장에 걸림돌이 될 뿐 아니라 자칫 철군 요구로 번질 우려가 있는 만큼 합참 쪽에 더 강력한 동기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합참은 여론 악화를 우려해 각종 사건·사고를 숨기려 했던 ‘전과’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이툰을 방문하기 전날인 2004년 12월7일 총기 오발 사고가 발생했다. 자이툰 부대는 삼중 경계를 선다. 외곽은 쿠르드 민병대인 제르바니 대원이, 가장 안쪽은 자이툰이, 중간은 공동으로 경계근무를 하는데 중간에서 사고가 터졌다. 한국 욕설을 배운 제르바니 대원과 자이툰 부대원이 장난을 하다 제르바니 대원이 자이툰 부대원이 쏜 총에 맞고 엿새 뒤 사망했다. 합참은 이 사건을 감추고 있다가 2005년 4월에야 발표했다. 언론이 취재에 나선 뒤였다.

2004년 10월27일 자이툰 부대 정문 왼쪽 외곽경계선 800m에서 폭발 사고(인명사고는 없었고 방목 중인 양 24마리가 죽었다)가 있었다. 국방부는 폭발 때 형성된 구멍의 각도와 모양으로 볼 때 땅에 묻혀 있던 불발탄이나 지뢰일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 발표했으나, 당시 근무했던 자이툰 출신들은 박격포 공격이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1진으로 파병돼 자이툰에서 사병으로 근무했던 이는 “미군이 처음 조사했을 때는 공격받았다고 했는데 나중에 지뢰로 바뀌었다”며 “날마다 양들이 지나던 자리여서 발표 결과를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의문의 폭발 사고는, 한국인들을 상대로 폭탄 테러가 있을 것이라는 첩보가 입수돼 교민들의 바깥 출입이 전면 통제된 지 6시간 만에 일어났다.

부대내 독극물 테러 흔적도

자이툰 출신들의 또 다른 증언도 충격적이다. 다수의 증언을 종합하면, 에르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라크 저항세력의 핵심 조직원이 자이툰 부대에서 통역요원으로 활동했고 부대원들의 음식물에 독극물을 넣으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부대에 비상이 걸렸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2005년 5월4일 에르빌 시내의 경찰모집소 자살폭탄 공격(쿠르드인 54명 사망, 부상 101명) 직후 사라졌고, 공격 단체의 지도자인 세이크 자나의 동생이었던 것으로 신원이 밝혀졌다. 부대 내에서는 독극물 테러와 관련한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독극물 테러 기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이들도 “에르빌 수박이 맛이 좋아 사병들에게 인기가 좋은데 어느 날 갑자기 모두 폐기 처분하라는 명령이 내려왔고 독극물 테러와 관련이 있다고 어렴풋이 들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합참 쪽은 “테러 하루 전인 5월3일 체포된 세이크 자나가 6월 중순께 그런 진술을 했고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2004년 12월부터 근무하다 5월1일 이후 ‘무단결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독극물 테러 시도의 증거가 발견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자이툰에 대한 로켓 공격과 독극물 테러 시도가 자이툰 주둔에 반대하는 저항세력들의 공격에 의한 위협이었던 반면, 자이툰 부대 내에서도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총기사고가 최소 세 차례 이상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이툰 대원들은 부대 내에서 이동하거나 근무할 때도 총과 실탄을 휴대하고 방탄조끼를 착용했다.

2진과 3진(한 진에 파병 시기에 따라 여러 차가 있는데 근무시기가 겹치기도 함) 출신 인사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특전사 소속 한 부사관이 체력의 한계로 고된 훈련을 쫓아가지 못하자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이 사람이 기관총을 잡고 근무를 서고 있다가 멀리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다른 부사관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는 것이다.

3진 수송대에 근무했다는 이는 “호송차에 고정시키는 K-3 기관총이 발사돼 경호를 받던 차 위로 총알이 날아간 사건도 있었다”며 “위험해서 실제로 장전은 하지 않는데 실수로 쐈을 수도 있고, 한번 당겨보고 싶었을 수도 있고…”라고 말했다. 총기 검사 중에 일어난 오발 사고까지 치면 그 수는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도 합참이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2년간 자이툰 부대 내 군기 관련 사건 현황’에 총기 오발은 단 한 건밖에 없다. 앞에서 언급한 제르바니 경계병 사망 사건 밖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이툰에 파병됐다가 중도에 귀국한 이들은 모두 26명(장교 4, 부사관 11, 사병 11)인데 군기사고와 안전사고를 이유로 귀환한 19명 가운데 숨겨진 ‘오발자’들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꾸 물어라, 자이툰은 무엇인가

<한겨레21>은 자이툰이 주둔하고 있는 에르빌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정부의 발표만큼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 ‘이번 한 번뿐’이라던 파병연장 동의안은 올겨울에도 어김없이 국회 정기회의에 상정된다. 경기도 광주 특전교육단 연병장에서의 환송 장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할 뻔한 위기의 순간들이 적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위험은 상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감추고 줄이는 데에 급급한 것 같다.

국방부는 8월23일 자이툰과 관련해 “올 연말까지 1천명 감군해 2300명선을 유지한다는 것 외에 결정된 바가 없다”며 “파병 연장 여부에 대해 이라크의 상황, 자이툰 활동의 필요성 등 제반 여건을 감안해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청와대를 포함해 정부 어느 곳에서도 철군과 관련한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올 연말 국회 통과를 목표로 정기국회(9~12월)에 파병연장동의안을 제출할 가능성이 크다. 젊은이들을 위험한 땅에 보내놓고 잊는다면 그것은 죄악이다. 자꾸 물어야 한다. 이라크 파병이 국익에 부합했는지, 100만 평의 감옥에 갇힌 우리 병사들에게 자이툰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을 언제 데려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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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6 16:14 2006/09/06 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