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2006_09_05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은 중동지역에서 3차례 전쟁을 일으켰다. 2001년의 아프간전쟁, 2003년의 이라크전쟁, 그리고 최근의 레바논전쟁이 그것이다. 레바논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간의 공방이었으나 (이란 공격을 염두에 둔) 부시행정부의 강력한 부추김과 후원에 의해 치러진 전쟁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미국이 일으킨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지역에서 5년간 무려 3차례나 전쟁을 일으킨 부시행정부의 목표는 물론 세계경제의 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중동 에너지자원의 독점적 통제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시행정부의 야심은 아직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이란 의 이슬람정권이 중동지역 반미자주세력의 최후의 보루로 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최근 레바논전쟁에서 드러나듯, 미국이 벌인 일련의 전쟁으로 중동지역에서 이란의 위상은 한껏 높아졌다. 중동지역의 맹주를 자처하던 이라크 후세인정권과 반미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아프간 탈레반정권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중동의 자주세력이 기댈 곳은 이란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시행정부 네오콘의 '새로운 중동(New Middle East)' 야망이 현실화되려면 '반드시' 이란의 이슬람정권을 타도하고 친미정권을 세워야만 한다. 문제는 점령 3년이 지나도록 '식은 죽 먹기'라던 이라크 안정화 계획이 실현되기는커녕 내전 상황으로 치닫고 있고 아프간 상황마저 불안정해지는 지금, 과연 현재의 미 군사력으로 이란을 평정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미국이 중동지역의 군사력을 철수시킨다면 결과적으로 이란에게만 좋을 일을 시켜준 꼴(이란의 숙적들을 모두 제거한 다음 물러나므로)이 되고 말 것이라는 점에서 손을 뗄 수도 없는 형국이다. 한마디로 기호지세(騎虎之勢), 호랑이 등에서 내리자니 호랑이에게 잡혀먹을 것이 두려워 내릴 수도 없는 형국이다. 이 때문에 일부 분석가들은 부시행정부의 네오콘들이 올 10월 이전에 이란 공격을 단행할지도 모른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가 유력해지고 있는 만큼, 그 이전에 확전을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같은 미 부시행정부의 딜레마를 분석한 압바스 바크티야르 박사의 글, '미국 대 이란 : 공격은 피할 수 없는가?(US vs. Iran: Is an attack inevitable?)'의 주요 부분을 번역한 글이다.바크티야르 박사는 노르웨이 노르트란트대학 조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노르웨이에 거주하면서 여러 인터넷미디어에 기고하는 중동전문가다. 원문은 미국의 진보적 웹사이트 ZNet(http://www.zmag.org/content/showarticle.cfm?SectionID=67&ItemID=10842)에 실려 있다. <편집자>

 

네오콘의 계획
  
  1997년, 딕 체니, 젭 부시, 도날드 럼즈펠드, 폴 월포위츠, 엘리옷 아브람스, 루이스 리비, 엘리옷 코헨 등 일단의 네오콘들이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라는 이름의 싱크탱크를 결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자신들의 비전을 담은 '강령선언'에서 자신들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매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리는 미국의 세계적 리더십을 옹호하며 이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 20세기가 끝나가는 지금,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우뚝 서 있다. 서방의 냉전 승리를 이끈 미국은 이제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맞고 있다. 미국은 지난 수십년간의 성취를 바탕으로 세계를 이끌어 나갈 새로운 비전을 갖고 있는가? 미국은 새로운 세기를 미국의 원칙과 국익에 유리하게 만들어 나갈 각오가 돼 있는가?"
  
  사실 이들은 세계 각국의 국가지도자들에게도 명확했던 사실, 즉 미국의 쇠퇴를 분명히 알고 있었으며, 그러한 쇠퇴를 저지하고자 했다. 2차대전 기간동안의 엄청난 군비 지출과 이후 소련과의 군비경쟁으로 미국경제의 체질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2000년이 다가오면서 미국이 중국, 인도 등 떠오르는 강대국들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계획경제의 비효율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소련과 달리 중국은 공산경제체제의 근원적 결함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중국은 10억이 넘는 국민들이 중앙의 강력한 통제 아래 근면하게 일함으로써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또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나라의 군사력을 지탱하는 것은 그 나라의 경제력이다. 중국의 경제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으며, 이에 따라 군사력과 국가 위상도 현격하게 높아졌다. 이러한 중국을 인도를 비롯한 일단의 국가들이 바짝 뒤쫓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도 과거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중이다. 이들 국가들은 국력을 키워가면서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실력에 걸맞는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더 이상 초강대국의 그늘 밑에 있으려 하지 않는다. 나아가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고분고분 순응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대가를 요구한다. 심지어 어떤 때는 미국과의 거래에서도 자신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 하기도 한다.
  
  미국은 스러져가는 제국이며 더 이상 국제사회의 룰에 맞게 행동할 여유도 없다. 하긴 지금까지 미국이 그래 왔는지도 의문이다. 미국이 '선제공격' 운운하는 것은 오래지 않아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려는 나라들의 성장과 야망을 꺾어놓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나 선제공격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막아보려는 마지막 절망적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선제공격에 의해 국제체제에서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하는 점은 일찍이 역사학자 폴 케네디가 명쾌하게 설파한 바 있다.
  
  "국제체제에서의 부와 힘, 즉 경제력과 군사력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며 그러한 측면에서 관찰돼야 한다. 상대적이기 때문에, 나아가 모든 사회는 변화의 운명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국제체제에서 힘의 균형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현재의 세력균형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은 어리석은 것이다."
  
  어리석든 아니든, 현재 미국 행정부는 바로 이러한 헛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의 쇠퇴를 막을 수 있는 모든 방안을 연구한 끝에 한 가지 해결책을 도출해 냈다. 그것은 '유전(油田)을 장악하라'는 것이었다. 전 세계 에너지의 원천들을 미국이 장악한다면, 미국은 세계경제의 성장을 좌지우지 할 수 있으며 이에 저항하는 세력은 미국의 군사력으로 제압하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물론 미국은 이란과 이라크 등 중동의 두 강국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이와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대이스라엘 전략을 재고해야만 한다. 이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따라서 네오콘은 앞의 거대 전략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부시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 점령했다. 이라크가 첫 번째 공격 대상이 된 것은 이 나라가 지극히 허약했기 때문이라는 점이 지적돼야만 한다. 8년에 걸친 이란과의 전쟁, 쿠웨이트 침공 이후 미국 및 그 동맹국들과의 궤멸적 전쟁, 그리고 10년 가까운 금수조치에 의해 이라크는 손가락 하나 들어올릴 만큼의 힘도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미국은 유엔 이라크무기사찰팀에 심어둔 첩보원들을 통해 이라크의 군사시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으며, 심지어 바그다드 방위를 책임진 이라크 장군을 매수해 놓을 정도였다.
  
  당시 미국의 속셈은 이라크를 신속히 평정한 다음, 이라크와 인접한 이란 남부의 유전지대인 후제스탄(Khuzestan)을 장악한다는 것이었다. 이 지역은 비교적 평탄한 지형으로 탱크 등을 이용한 기동전에 이상적인 곳이다. 유전지역만 장악한다면 테헤란의 이슬람정권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그리하여 이란에 친미괴뢰정권을 세우는 것도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었다.
  
  이 계획이 성공했다면 미국은 지금쯤 이라크와 이란,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등에 미군 기지를 확보하고 세계 천연가스 생산량의 30%, (지금까지 확인된) 세계 석유자원의 61%를 제 맘대로 주무를 수 있을 터였다. 그리하여 중국, 인도, 유럽연합, 그리고 대부분의 나라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생존을 위해 미국에 머리를 조아려야 했을 것이다. 미국은 이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아, 과거 서방국가들이 제3세계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어 경제적 착취를 했던 것처럼, 이라크와 이란에 자신만의 세력권을 형성했을지도 모른다.
  
  상당수 독자들은 이같은 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오늘날에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그러나 실제로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또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라크에서 미국이 하고자 했던 일들을 보여주겠다.
  
  이라크 임시행정처(CPA)
  
  이라크를 점령하자마자 미국은 이라크 임시행정처(CPA)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CPA는 이라크인들이 총선을 통해 자체 정부를 구성할 때까지 활동하는 임시정부였다. (부시행정부에 의해) 임시행정처의 책임자로 임명된 폴 브레너라는 미국인은 다음과 같은 조항에 의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됐다.
  
  "CPA는 안보리 결의 1483호(2003년) 등 유엔 안보리의 관련 결의들에 의해, 또 이 결의들이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라크의) 모든 행정, 입법, 사법에 관한 권리를 갖는다. 이 권리 행사의 담당자는 CPA 행정관이다."
  
  브레너는 이라크의 임시대통령, 의원, 대법원 판사 등을 임명했으며 발표 즉시 법률의 효력을 갖는 행정명령을 내놓기 시작했다. 모두 100개의 행정명령이 발표됐는데 이 자리에서는 일부만 소개하기로 한다.
  
  행정명령 39호는, (1) 200개 이라크 국유기업의 민영화 (2) 이라크 기업의 100% 외국인 소유 허용 (3)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내국인 대우', 즉 이라크 기업인에 대한 특혜 금지 (4) (외국인 투자에 의한) 모든 이윤 및 기타 자금의 무제한 송금 허용 및 과세 금지 (5) 40년간 소유 허용 등을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라크의 재건과정에서 이라크인들에 대한 특혜는 금지되는 반면 핼리버튼, 벡텔과 간은 외국기업들은 이라크 기업들을 마음대로 사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며, 이윤을 모두 본국에 보낼 수 있다. 이들 외국기업들에게 이라크인을 고용하라거나 이라크에서 번 돈을 이라크경제에 투자하라고 요구해서도 안 된다. 외국기업들은 그들이 원하는 때, 원하는 액수만큼의 돈을 외국으로 빼돌릴 수 있다.
  
  행정명령 57호와 77호는 미국이 지명하는 회계관과 감사관을 이라크 정부의 모든 부처에 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들의 임기는 5년이며 각 부처의 계약, 프로그램, 소속 직원, 그리고 규제 등에 관해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행정명령 17호는 민간보안회사(돈을 받고 전투행위를 하는 외국 민간인 용병: 역자)를 비롯한 모든 외국 계약업체들에 대해 이라크 법으로부터의 완벽한 면책특권을 보장한다. 예를 들어 이들이 사람을 죽이거나 환경재앙을 일으켰다 하더라도 피해자는 이들을 이라크 법정에 세울 수 없다. 이들에 대한 처벌은 미국 법정에서 이루어지게 돼 있다.
  
  행정명령 40호는 외국 은행이 이라크 은행의 주식을 최대 50%까지 취득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행정명령 49호는 기업에 대한 법인세율을 종전 최대 40%에서 15% 단일세율로 인하했다. 소득세율 상한선도 15%로 인하됐다.
  
  행정명령 12호(2월 24일 개정됨)는 이라크로 수입되거나 이라크에서 수출되는 모든 상품에 대한 모든 형태의 관세를 철폐했다. 이에 따라 이라크에는 외국의 값싼 소비재들이 물밀듯이 밀어닥쳤고, 세계적 거대기업의 도전에 대처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던 이라크 현지의 생산자 및 유통업체들은 파멸적 결과를 맞았다.
  
  내가 중동지역의 신식민지화를 말할 때 염두에 둔 것은 바로 이런 행정명령들이었다. 미국은 자국의 안보를 이유로 외국 기업이나 외국인이 미국의 주요기업을 통제하는 것을 한사코 막아 왔다. 얼마 전, 아랍에미리트(UAE) 기업이 미국 몇몇 항구의 부두운영권을 사들이자 미 의회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이 거래에 대한 승인을 거부했다. 만일 외국인이 TV나 신문 등 특정 분야 미국 기업의 주식을 일정 비율 이상 소유하려면 먼저 미국 시민권을 획득해야 한다. 하지만 이라크의 경우는 미국과는 사정이 전혀 딴판이다. 서방기업이 들어와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놓은 형국이다.
  
  수렁
  
  지금 미국과 영국 정부는 수렁 속에 빠져 있다. 당초 이들은 이라크 침공에 드는 비용을 1000억 달러 정도로 계산했다. "2002년 9월, 백악관 경제수석 보좌관인 로렌스 린지가 이라크 전쟁 비용이 최대 2000억 달러까지 될 수 있다고 말하자 다른 고위 보좌관들은 그를 반박했으며, 3개월 후 부시는 그를 해임시켜 버리고 말았다." 현재 이라크 전쟁비용은 최대 2조 달러까지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당초 미국의 계산은 이라크를 신속하게 점령한 다음, 원유 생산을 정상화시켜 국제 원유가를 낮춘다는 것이었지만 이 계획은 보기 좋게 어긋나 버렸다. 유전, 송유관, 그리고 석유관련 시설들이 반군들의 공격에 의해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이다. 이라크 점령 후 3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이라크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미국과 영국이 당초 기대했던 500만~600만 배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제 원유가는 배럴당 60~78달러선을 맴돌고 있으며 하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 미국은 앞으로 수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현재 미국의 경제로는 현 유가 수준이나 해외 군사활동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고유가가 GDP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냐 하는 점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콜린 캠벨과 진 라헤레레라는 학자는 <응용경제학저널(Journal of Applied Economics)>에 다음과 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유가가 100% 인상될 경우 미국의 경제 산출량은 3.5~5% 감소된다. 다른 석유수입국들의 경우, 유럽연합 전체로는 1~2%, 캐나다는 1% 미만의 생산 위축이 예상된다."
  
  3.5~5%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경제의 규모를 감안하면 이는 대단히 큰 손실이다. 2005년 미국의 GDP 규모가 12조4700억 달러이므로 3.5% 감소라면 4364.5억 달러, 5% 감소라면 6235억 달러의 경제위축을 의미한다.
  
  고유가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악영향을 미국 정부도 잘 알고 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최근 고유가가 계속될 경우 미국 GDP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수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선택
  
  미국 역사상 이처럼 단기간에 미국의 국익에 그토록 엄청난 타격을 입힌 행정부는 부시행정부를 빼놓고는 없다. 부시행정부는 전세계 10억 무슬림들을 미국의 반대파로 만들었고, 유럽ㆍ아프리카ㆍ아시아 사람들과의 관계도 악화시켰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걸핏하면 무력행사를 들먹였으며, 온 세계에 걸쳐 친구를 만들기보다는 적만을 만들어 왔다. 러시아, 중국, 이란, 베네수엘라 등이 바로 그런 나라들이며, 이들 국가는 미국이 더 이상 강력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제 미국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몇 안 된다. (이라크 침공 등으로) 중동지역의 세력균형을 무너뜨린 이제, 미국은 새로운 세력균형을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세계경제에 미증유의 혼란을 초래할 모험을 강행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에게는 3가지 선택지가 있다. (1) 이라크로부터의 철수 (2) 이란과의 대타협 (3) 이란에 대한 공격.
  
  1. 첫 번째 선택은 미국에게는 엄청난 전략적 패배다. 중동지역의 모든 국가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철수는 패배나 다름없다. 중동지역의 민심을 거슬러 미국을 지원해 왔던 이 지역의 친미정권들은 이제까지의 정책방향을 180도 바꿔 이란과의 안보협상을 추진해야 할 터인데, 이 경우 이란의 전략적 우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2. 미국은 이란과 타협할 수도 없고, 타협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라크 전쟁 등으로) 수천 명의 미군 병사가 목숨을 잃고 부상한 외에 수천억 달러의 전비를 퍼부은 미국으로서는 이에 대한 경제적, 전략적 반대급부를 원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미국의 헤게모니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란은 미국이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전보장을 요구하겠지만 미국도 이에 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스라엘이라는 변수가 있다. 이제 이란은 이슬람 및 아랍세계의 중심이 됐다. 무슬림들은 팔레스타인의 이익을 보호해줄 세력은 이란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과의 대타협이란 결국 이스라엘이 지난 67년 6일전쟁을 통해 불법 점령한 영토(서안, 가자, 골란고원 등)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미국의 유대인 로비세력이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3. 결국 미국에게는 한 가지 선택밖에 없다. 우선 이란을 고립, 약화시킨(가능하다면) 다음, 이란을 공격하는 것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과 우라늄 농축에 대한 그동안의 야단법석은 모두 이 목표를 위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부시행정부는 스스로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어 왔다. 한마디로 지금 상황은 이렇게 해도 지고, 저렇게 해도 지는 상황이다(lose-lose situation).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미국이 이란 공격을 강행할 경우 더 많은 나라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으리라는 점이다. 이란 공격의 전략과 전술, 그 결과 등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다룰 수가 없다. 따라서 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한 가지만 지적하기로 하겠다.
  
  만일 미국이 이란 공격에 나선다면, 우리 모두는 앞으로 자전거타기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우리의 미래는 밝지가 않다. 아무리 보아도 부시행정부는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은 모두 파괴해 버리기로 작정한 것 같다. 그리하여 모든 것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기로.

   
 
  압바스 바크티야르/노르웨이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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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6 17:04 2006/09/06 17:04
자이툰의 은폐된 폭탄

2005년 로켓포 공격 때 영내로 2발 떨어졌다는 장교와 사병들의 증언…국방부가 감춘 사건·사고들…에르빌에 갇힌 청년들을 방치해야 하는가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김민경 인턴기자 yukishiro9@naver.com
▣ 이혜민 인턴기자 taormina@hanmail.net

국방부는 지난 7월 초 <한겨레21>을 포함해 주·월간지 편집장들을 불러모았다. 국방정책 설명회 자리였다. 2006년 국방여건과 정책목표, 국방개혁 2020 추진 상황, 주요 현안을 브리핑했다. 주요 현안에는 △한-미 군사동맹 발전 노력 △주한 미군기지 이전 사업 추진 △남북 간 군사적 신뢰구축 추진 △F-15K 전투기 추락사고 등이 포함됐다. 자이툰은 없었다. 이라크 에르빌에서 땀 흘리고 있는 장교·사병 3천여 명에 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었다.

합참 “부대 주변에 4발 떨어져”

명분 없는 전쟁임을 알면서도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파병했던 여러 나라들이 이미 철군(표 참조)했거나 철군 계획을 속속 밝히고 있음에도, 이와 관한 내용도 전혀 없었다. 국방부는 자이툰이 국민들의 관심사 바깥에 머물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그래야 2004년과 2005년에 이어 다시 한 번 파병 연장을 시도하기가 수월할 테니까.

국회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에 손을 들어주고 추가 대규모 파병과 두 차례의 파병연장 동의안을 처리했던 국회가 자이툰에 얼마나 관심을 쏟고 있는지 살펴봤다. 본회의와 관련 상임위인 국방위원회와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회의록을 뒤졌다. 지난해 12월30일 파병연장 동의안을 처리할 당시엔 찬반 논란이 있었으나, 해를 넘기면서 자이툰에 대한 고민과 관심이 싹 사라졌다. 2006년 1월부터 최근까지 국회의 공식적인 회의석상에서 의원들은 자·이·툰이라는 세 글자를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겨레21>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다른 매체에 비해 이라크와 중동 정세를 꾸준히 보도해왔고 특히 철군을 위한 시민사회와 영국 등 파병국들의 철군 움직임 등을 전했지만, △2003년 제2차 이라크 전쟁 발발 당시 ‘미국은 진다’(452호, 2003년 4월), △파병 논란이 불거진 뒤에는 ‘파병은 미친 짓이다’(476호, 2003년 9월), △‘파병은 역시 미친 짓이었다’(515호, 2004년 7월)는 표지 이야기를 통해 이라크 전쟁과 파병 문제에 관해 비판적으로 보도해왔던 데에 비하면 부족함이 많았다.

이번 자이툰 취재는 자성 위에서 시작했다. 이라크 파병은 국익에 부합했는지, 구체적으로 파병 찬성론자들의 주장처럼 한-미 동맹은 더 공고해졌고 이라크에 평화와 재건을 안겨줬는지, 3년 동안 5천억원 가까운 비용을 들이면서 어떤 실익을 거뒀는지 두루 살펴봤다. 특히 ‘자이툰 사람들’에 초점을 맞췄다. 2004년 8월 출발한 1진부터 올 초에 돌아온 3진까지 자이툰 근무 경험이 있는 장교와 사병 30여 명을 취재했다. 대부분은 사회에 복귀했지만 민감한 사안인 탓인지 모두 익명을 요구했다. 행정·통신·수송대 출신들은 ‘카더라’ 수준이 아닌, 장교 못지않은 고급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 입에서는 정부의 공식 발표에서는 사라진 생생한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왔다.

2005년 5월29일 밤 11시, 자이툰에 비상이 걸렸다. 사이렌이 울리고 컨테이너 숙소에서 잠들어 있던 사병들은 모두 일어나 방탄조끼를 입고 엎드렸다. 로켓포 공격이 5분가량 이어졌다. 사단 주둔지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처음이었다. 공격은 곧 그쳤지만, 사병들은 동이 틀 때까지 충격과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사병은 “부대 내에서 작업을 할 때도 무거운 방탄조끼를 입으라고 해 귀찮았는데 이날 처음 전쟁터에 왔구나,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사는 다음날 아침 이뤄졌다. 사고 이틀 뒤인 31일 합동참모본부는 “자이툰 부대에 발사된 포탄은 107mm 다연장로켓 4발인 것으로 밝혀졌다”며 “자이툰 부대 주위에 떨어진 포탄에 대해 자이툰 부대, 미군 정보팀, 이라크 민병대인 제르바니가 합동 조사를 벌였다. 이라크 저항세력은 부대 남쪽 4∼5km 지점에서 급조식 발사관을 이용해 도로 주변 또는 차량에서 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4발 가운데 3발은 폭발했고 1발은 불발됐다”고 발표했다.


△ 자이툰부대는 에르빌시에서 수km 떨어진 황무지에 주둔하고 있다. 당시 근무한 부대원 다수는 2005년 5월 피격 사건에 대해 여단 식당과 수송대 사이 공터에서 포탄 자국을 확인했다고 증언했다.

청와대에도 이같이 보고됐다.

2004년 10월 폭발도 ‘공격’이라 증언

그런데 자이툰 출신들을 인터뷰하면서 합참의 공식 발표와는 다른 증언들이 나왔다. 발사된 로켓은 모두 6발이었으며, 이 가운데 2발이 부대 영내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한 병사는 “자이툰 부대 안 식당 부근과 다른 한 곳 등 모두 2발이 떨어졌다”고 증언했고, 다른 병사는 “한 발은 폭발했고, 다른 한 발은 불발이었다”고 구체적인 증언을 보탰다. 당시 자이툰에 근무했던 다른 사병 다수도 “로켓 공격이 있던 다음날 아침 식당 주변에서 움푹 패인 폭탄 자국을 봤다”고 말했다. 이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날 발사된 포탄은 주둔지 외곽 4발(3발 폭발, 1발 불발), 영내 2발(1발 폭발, 1발 불발)로 모두 6발이었던 셈이다.

8월23일 합참에 다시 확인을 의뢰했다. 합참 공보실 쪽은 “미군과 이라크 민병대가 함께 한 합동 조사 결과다. 그게 숨길 일은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어느 쪽 말이 진실에 가까운지 가늠하기는 어렵지 않다. 전역한 병사들이 실제보다 위험을 과장해 얻을 실익이 있을까, 합참이 6발을 4발로 주둔지 바깥에만 떨어졌다고 위험을 축소 발표해 얻을 실익이 클까. 자이툰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인명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내 여론이 악화하면 파병 연장에 걸림돌이 될 뿐 아니라 자칫 철군 요구로 번질 우려가 있는 만큼 합참 쪽에 더 강력한 동기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합참은 여론 악화를 우려해 각종 사건·사고를 숨기려 했던 ‘전과’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이툰을 방문하기 전날인 2004년 12월7일 총기 오발 사고가 발생했다. 자이툰 부대는 삼중 경계를 선다. 외곽은 쿠르드 민병대인 제르바니 대원이, 가장 안쪽은 자이툰이, 중간은 공동으로 경계근무를 하는데 중간에서 사고가 터졌다. 한국 욕설을 배운 제르바니 대원과 자이툰 부대원이 장난을 하다 제르바니 대원이 자이툰 부대원이 쏜 총에 맞고 엿새 뒤 사망했다. 합참은 이 사건을 감추고 있다가 2005년 4월에야 발표했다. 언론이 취재에 나선 뒤였다.

2004년 10월27일 자이툰 부대 정문 왼쪽 외곽경계선 800m에서 폭발 사고(인명사고는 없었고 방목 중인 양 24마리가 죽었다)가 있었다. 국방부는 폭발 때 형성된 구멍의 각도와 모양으로 볼 때 땅에 묻혀 있던 불발탄이나 지뢰일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 발표했으나, 당시 근무했던 자이툰 출신들은 박격포 공격이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1진으로 파병돼 자이툰에서 사병으로 근무했던 이는 “미군이 처음 조사했을 때는 공격받았다고 했는데 나중에 지뢰로 바뀌었다”며 “날마다 양들이 지나던 자리여서 발표 결과를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의문의 폭발 사고는, 한국인들을 상대로 폭탄 테러가 있을 것이라는 첩보가 입수돼 교민들의 바깥 출입이 전면 통제된 지 6시간 만에 일어났다.

부대내 독극물 테러 흔적도

자이툰 출신들의 또 다른 증언도 충격적이다. 다수의 증언을 종합하면, 에르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라크 저항세력의 핵심 조직원이 자이툰 부대에서 통역요원으로 활동했고 부대원들의 음식물에 독극물을 넣으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부대에 비상이 걸렸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2005년 5월4일 에르빌 시내의 경찰모집소 자살폭탄 공격(쿠르드인 54명 사망, 부상 101명) 직후 사라졌고, 공격 단체의 지도자인 세이크 자나의 동생이었던 것으로 신원이 밝혀졌다. 부대 내에서는 독극물 테러와 관련한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독극물 테러 기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이들도 “에르빌 수박이 맛이 좋아 사병들에게 인기가 좋은데 어느 날 갑자기 모두 폐기 처분하라는 명령이 내려왔고 독극물 테러와 관련이 있다고 어렴풋이 들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합참 쪽은 “테러 하루 전인 5월3일 체포된 세이크 자나가 6월 중순께 그런 진술을 했고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2004년 12월부터 근무하다 5월1일 이후 ‘무단결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독극물 테러 시도의 증거가 발견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자이툰에 대한 로켓 공격과 독극물 테러 시도가 자이툰 주둔에 반대하는 저항세력들의 공격에 의한 위협이었던 반면, 자이툰 부대 내에서도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총기사고가 최소 세 차례 이상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이툰 대원들은 부대 내에서 이동하거나 근무할 때도 총과 실탄을 휴대하고 방탄조끼를 착용했다.

2진과 3진(한 진에 파병 시기에 따라 여러 차가 있는데 근무시기가 겹치기도 함) 출신 인사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특전사 소속 한 부사관이 체력의 한계로 고된 훈련을 쫓아가지 못하자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이 사람이 기관총을 잡고 근무를 서고 있다가 멀리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다른 부사관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는 것이다.

3진 수송대에 근무했다는 이는 “호송차에 고정시키는 K-3 기관총이 발사돼 경호를 받던 차 위로 총알이 날아간 사건도 있었다”며 “위험해서 실제로 장전은 하지 않는데 실수로 쐈을 수도 있고, 한번 당겨보고 싶었을 수도 있고…”라고 말했다. 총기 검사 중에 일어난 오발 사고까지 치면 그 수는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도 합참이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2년간 자이툰 부대 내 군기 관련 사건 현황’에 총기 오발은 단 한 건밖에 없다. 앞에서 언급한 제르바니 경계병 사망 사건 밖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이툰에 파병됐다가 중도에 귀국한 이들은 모두 26명(장교 4, 부사관 11, 사병 11)인데 군기사고와 안전사고를 이유로 귀환한 19명 가운데 숨겨진 ‘오발자’들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꾸 물어라, 자이툰은 무엇인가

<한겨레21>은 자이툰이 주둔하고 있는 에르빌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정부의 발표만큼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 ‘이번 한 번뿐’이라던 파병연장 동의안은 올겨울에도 어김없이 국회 정기회의에 상정된다. 경기도 광주 특전교육단 연병장에서의 환송 장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할 뻔한 위기의 순간들이 적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위험은 상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감추고 줄이는 데에 급급한 것 같다.

국방부는 8월23일 자이툰과 관련해 “올 연말까지 1천명 감군해 2300명선을 유지한다는 것 외에 결정된 바가 없다”며 “파병 연장 여부에 대해 이라크의 상황, 자이툰 활동의 필요성 등 제반 여건을 감안해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청와대를 포함해 정부 어느 곳에서도 철군과 관련한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올 연말 국회 통과를 목표로 정기국회(9~12월)에 파병연장동의안을 제출할 가능성이 크다. 젊은이들을 위험한 땅에 보내놓고 잊는다면 그것은 죄악이다. 자꾸 물어야 한다. 이라크 파병이 국익에 부합했는지, 100만 평의 감옥에 갇힌 우리 병사들에게 자이툰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을 언제 데려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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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6 16:14 2006/09/06 16:14

이라크 파견 간부·병사 7명의 육성고백…홍보영상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 부대 안에 갇혀 고립감과 답답함, 이유 없는 증오에 사로잡힌 젊은이들

▣ 김민경 인턴기자 yukishiro9@naver.com
▣ 이혜민 인턴기자 taormina@hanmail.net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1진(2004.8~2005.2)·사단 직할대 행정병 출신 ㄱ(23)씨

“그곳에 가면 대가를 치르리라”

어릴 적 <머나먼 정글>이나 <패트리어트> 같은 영화를 보면서 군인들의 희생정신과 의리,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동경한 때가 있었다. 선생님이 장래희망을 물으면 나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군인’이라고 대답했다.


△ 침략전쟁에서부터 평화 유지 및 재건복구까지. 자이툰은 그 사이 어디쯤에 위치할까? 자이툰 부대원들이 내무반 앞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

주변 사람들을 꼭 지켜주리라는 허황된 약속을 하기도 했다. 사실 조국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을 할 수 없었던 나로선 그저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 애국조회 시간의 묵념,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 따위가 ‘주어진’ 조국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대학에 오게 됐고 나름의 세계를 만들어 가던 무렵, 통과의례처럼 군대라는 곳에 가게 됐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꿈’이 실현된 것이다. 우습게도 군대 생활에는 잘 적응했다. 규칙적인 생활과 강요된 규율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비판적 사고를 빼앗아갔다. 국가가 부여해준 국토 방위의 신성한 의무는 계급사회의 권위를 통해 복종만을 강요했다. 그 내용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러던 차에 2003년 제2차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다. 논란 끝에 파병이 결정됐다. 기회는 누구에게도 열려 있었다. 난 숨 막히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다. 알량한 반전의식을 뒤로한 채 그곳의 현실을 보기 위해 지원을 했다. 2004년 뜨거운 여름, 많은 시민·학생들이 파병을 반대하며 기지 입구를 막았지만 여명도 트지 않은 이른 새벽 헬기를 타고 우리는 공중으로 유유히 그곳을 통과했다.

이라크 쿠르드족이 거주하는 아르빌은 저항세력이 존재하는 한 전쟁터였지만 한국군은 우리 안의 ‘영토’에서 평온했다. 이따금 총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우리는 우리가 고용한 쿠르드 용병의 보호 속에서, 화분을 키우고 전갈 채집을 하면서 조금씩 이곳 갈등의 땅 이라크에 오게 된 이유를 망각하기 시작했다.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누구를 위해 총을 들고 이 먼 곳까지 왔든 간에 명예를 얻을 수 있었고 한 달에 1809달러의 생명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용병’이라 불렀다. 그 고용주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아니면 건설업체나 석유기업인지 불분명했지만 말이다.

가끔씩 사고가 나기도 했다. 무리한 기지 건설 작업 중에 발목이 잘리는 병사, 전류가 흐르는 샤워실 손잡이를 잡고 감전으로 쓰러진 병사, 도색 작업 중에 기계 폭발로 온몸이 페인트와 섞여버린 채 숨진 하청 노동자….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는 여럿이었다. TV에서만 볼 수 있었던 대통령이나 장관, 국회의원들이 조금의 돈과 음식을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포옹하고 악수도 했다.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를 상기시켰다.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군.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전우들을 믿었을 뿐이다.

몇 명의 정신장애를 보이는 녀석들이 있다는 소문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소문일 뿐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누구도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는 점이다. 이라크 저항세력은 어느새 동맹국 미국의 적이 아닌 우리의 적이 되어 있었다. 쿠웨이트 버지니아 캠프를 출발해 바그다드를 거쳐 아르빌로 이동하는 파발마 작전(지상 이동 작전)을 수행한 내무실 동료는 처음으로 살인에 대한 충동을 가졌노라 고백한 적이 있다. 운전병인 이 녀석은 차량 앞에 나타나는 어떤 것도 밀어버리라는 상부의 명령에 의구심을 갖고 재차 확인을 해야 했다.


△ 자이툰 사단장은 이라크 파병이 또 다른 ‘한류’라고 말한다. 이라크인들에게도 과연 한류로 받아들여질까? 2004년 10원 자이툰부대 교대병력 300여명이 환영을 받으면서 대한항공 전세기에 몸을 싣고 있다.

바그다드를 경유하는 순간부터 총알이 옆으로 튀고 로켓포가 날아와 폭발할 때 묘한 흥분을 느꼈다고 했다. “앞을 가로막는 것이라면 뭐든 밀어버려도 됩니까?”라고 물었다. 옆에 탑승한 그 간부는 힘주어 말했다. “그래, 다 밀어버렷!”

우리는 누군지도 모르는 이 땅의 주인을 향해 증오를 품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증오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김선일씨가 죽었을 때도 그랬다. 우리는 그의 죽음이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의 죽음으로 와 닿지 않았다. 다들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연기된 파병이 아쉬웠으니까. 하지만 누구도 우리를 쉽게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또한 피해자라는 것은 일말의 변명 이전에 나의 진심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라크에서는 한국군이 우리만의 기지 안에 갇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쿠웨이트에서 여러 동맹국 병사들을 만나보았지만 이번 전쟁이 옳다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떠나기 시작했다. 한국군은 철군 계획도 없다.

자이툰에 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경험자로서 말하고 싶다. 한국에서 군생활이 힘들어서 또는 무료해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면 당신은 훗날 더 힘들고 더 무료해질 것이라고.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면 그 돈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공병대대 간부 ㅈ씨, ㅅ씨(2진)

“놀고 있는 인원이 너무 많다”

“파병, 왜 하냐”라고들 말한다. 직접 갔다온 사람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들 자기 열정으로 간 거다. 나도 ‘가서 죽어도 좋다. 잘 다녀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다녀온 지금도 자이툰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은 없다. 사실 자이툰보다 한국 부대가 더 힘들다. 우리는 “죽고 싶은 거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낫다”라고 얘기하곤 했다.

물론 자이툰에서도 스트레스가 있다. 외롭고, 힘들고, 고생도 한다. 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훨씬 낫다. 먼저 간 선배들도 “이라크 와라, 돈도 많이 벌고 좋다”고 얘기해줬다. 나중엔 돌아오기 싫을 정도였다.

하지만 거기서 놀고 있는 인원이 너무 많다. 거기 가서 돈 받은 사람으로서는 좋았지만, 세금 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는 세금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한 명이 갈 때마다 월급이며 항공 비용, 장비, 필수품 등 비용이 상당하다. 안전한 곳인데 경계 인원이 너무 많다.

공병도 너무 많다. 일반인들의 인식과 달리 공병이 무슨 큰 건물을 지어주는 게 아니다. 우리 군이 하는 건 공사 발주와 감독뿐이다. 민사협조본부에서 현지 감독관을 고용하고, 감독관이 현지 일꾼을 고용해서 일을 하면 공병 간부가 한 달에 한 번 나가서 현장을 확인하고 공사 일지를 체크한다. 그것도 소대장 1명이 가서 한다. 병사들은 그런 일과는 관계가 없다. 병사들이 현지인을 위해 하는 일은 도색, 전기 수리 등 작은 일이다.


나도 간부지만 6개월 주둔 기간에 예닐곱 번 나가봤다. 대부분의 공병이 주둔지 안에 머물며 우리 군이 주둔하는 데 필요한 시설을 만든다. 밖에 한 번도 못 나가본 애들이 많으니 “니네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나가봐야지” 하고 배려 차원에서 일부러 내보내주기도 한다.

파병의 당초 목적이 재건사업인데, 가서 우리 주둔지를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안으로만 계속 움츠러든 것도 문제다. 높은 분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안전’이라서,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사고 없이 복귀하는 걸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파병이 국익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말 그들에게 쓸모 있는 걸 제공했다기보다는, 국가 이미지를 위해서 한 거 아닐까. 미군이 옛날에 우리나라에 껌과 초콜릿을 나눠줬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미국의 이미지가 좋은 것처럼, 그런 효과가 있을 거라고. 개인적으론 쿠르드 사람들에게 건물을 지어주고 대민사업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전투병을 보낸다면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이익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통신대대 행정병 ㅈ씨(1진)

“어려운 집안 출신이 대부분”

인사과에 있었기 때문에 부대원들의 출신이나 배경을 볼 수 있었다. 절반쯤은 부모 중 한 분이 없거나 두 분 다 없는 사람들이었다. 반수는 집이 어려워서 빚 갚으러 왔다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집도 내가 이라크에 간다고 할 때 반대가 많았다. 사실 어지간한 집에선 잘 안 보내려 하고 좀 어려운 집에서 오는 편이다. 지역별로도 지방 출신이 많고 서울 출신은 별로 없었다. 인구 비율로 따지면 서울 출신이 많아야 하는데, 80% 정도가 지방 출신이었던 것 같다. 우리 대대에서도 서울 4년제 대학을 다니는 사람은 6명뿐이었다.

의무대대 의무병 ㄱ씨(2진)

“편하게 해주지 않았다면 미쳤을 것”

거기 있는 동안 위에서 스트레스 관리를 많이 해줬다. 음악회가 열리고 농구시합·배구시합을 하며 회식도 한다. 병사들을 교육할 때 계속 강조한다. “너희는 대한민국에서 뽑아온 최고의 요원”이라며 자부심을 심어주고 치켜세워준다. 그러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위와 향수병만 빼면 자이툰이 한국보다 편했다. 편하게 해주지 않았다면 거기선 미쳐버릴 거다. 자이툰에선 점심 시간이나 쉬는 시간도 확실히 보장해준다. 자기 할 일만 하면 간섭하지 않는다. 내무반 시설은 한국보다 좋다. 개인 침대와 수납장, 에어컨, TV… 플레이스테이션도 많이 하고, 디지털 카메라와 MP3가 허용되니까 음악 듣고 KBS월드도 본다. 다른 부대에서는 농악, 태권도 시범, 제빵 기술 교육도 했다.

특공대 ㅇ씨(2진)

“오늘 하루 참으면 7만원!”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다. 이라크에 다녀오면 남을 게 많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녀온 지금 생각해보니, 남은 건 돈뿐이었다. 다른 건 별로 남는 게 없었다.

영내에 머무르는 동안은 공격받을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초소 근처에 떨어진 폭탄 파편이 튀어서 장비가 망가진 일은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안에 있으니까 안전한 편이었다. 처음엔 전쟁터라서 좀 긴장도 하고 무섭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테러첩보가 들어와도 별일이 없고, 방탄조끼를 안 입어도 별일이 없으니까 점점 무뎌진다.

거기 있는 건 정말 답답했다. 그런 느낌은 다들 받았을 것 같다. 6개월 동안 밖에도 못 나가고 계속 같은 사람들이랑 지내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그곳 생활은 정말 지루하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다. 그때는 동기들과 “오늘 하루 참으면 7만원!”(웃음), 그러면서 버텼다. 처음 이라크 갈 땐 “돈 안 줘도 가겠다”는 생각으로 갔다. 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고 새로운 경험을 원한 건데, 계속 있다 보니 결국 의미가 없더라. 그나마 돈이라도 받아서 좋은 거다. 그래도 한국에선 훈련이 있고, 준비하고 나가고 정비하고 교육하지만, 자이툰의 하루 일과는 오전에 근무 나가고, 밥 먹고, 작업하고, 밥 먹고, 근무 선다. 쉬는 시간에도 작업 준비를 한다. 피곤하고 지루했다. 거기선 병사 개개인이 전부 총과 실탄을 가지고 다니까, 딴 생각 못하게 하려고 위에서 계속 일을 시키는 거 아니냐는 생각도 했다.

수송대대 운전병 ㅅ씨(3진)

“나라를 위한 삽질이었나”

자이툰 홍보 동영상을 봤다. 어려운 점은 다 빼놓고 좋은 거만 찍어서 만들었더라. 이라크 아이들과 같이 놀고 웃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린 계속 힘들게 삽질만 했다. 이제는 언론에서도 자이툰은 잊혀진 것 같다. 예전엔 교대병력 갈 때 신문에 조그맣게라도 나왔는데 이젠 다들 관심이 없다. 나도 잊고 있었다. 지금은 기억도 잘 안 난다. 자이툰에 대해 누가 물어봐도 “그냥… 별로 안 위험하고, 뭐 괜찮았어” 정도밖에 할 말이 없더라.

가기 전에는 기대가 컸다. 돈도 무시할 수 없었고 25일 동안의 휴가도 정말 큰 유인이었다. 하지만 거기 있는 동안 ‘자이툰, 이거 다 헛수고 아니야’ ‘우리가 아무리 이렇게 해봤자 한국에 도움 되는 건 없는 게 아니냐’ 하고 허무할 때가 많았다. 나라를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좋은 경험을 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우린 거기 돈 벌러 간 것뿐이지.

본부 행정병 ㄱ씨(2진)

“세탁기 때문에 싸움 터지기도 했다”

‘내가 어떤 것까지 해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자이툰에 지원했다. 일종의 도전인 셈이다. 막상 가보니 생각했던 거랑 많이 달랐다. 위험하진 않았지만, 신문에서 ‘이라크를 도와주러 간다’ ‘평화를 위해 간다’고 해서 그럴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가면 6개월 동안 똑같은 곳에서 반복되는 일만 한다. 하루 일과가 이렇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8시에 사무실 가서 일하고, 11시쯤에 점심 먹고,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낮잠을 잔다. 너무 덥기 때문에. 그리고 오후 3~4시에 일을 더 한다. 원래는 4시에 일과가 끝나고 자유시간을 가진다.

그런데 도착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박격포 사건’이 터졌다. 그 일이 터진 뒤부터 4시에 일과가 끝나면 컨테이너 주변에 둘러쌀 모래주머니를 만들었다. 컨테이너가 몇백 개 있으니까 일이 엄청 많았다. 게다가 그렇게 만든 모래주머니가 햇빛을 오래 받으면 잘 터진다. 그래서 무너지면 다시 만들고, 다시 쌓는 작업이 끝없이 계속됐다. 한국에서도 안 한 삽질을 원없이 했다.

스트레스가 많은데 밖에는 나갈 수 없다. 납치 같은 거 생기면 한국에서 철군하라고 할 테니까 못 나가게 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 다들 예민해져서 싸움도 많이 난다. 세탁기 때문에 싸운 경우도 있다. 남의 빨래 빼내고 자기 빨래를 돌리다가 싸움이 났다. 한쪽이 코뼈가 부러져서 때린 쪽이 결국 ‘원복’(귀국 조처)됐다. 대책으로 체육대회 같은 걸 열어주는데 더 스트레스 받는다. 설문조사도 하는데 맨 위에 군번이랑 이름 다 쓰는 설문조사다. 거기다 누가 사실대로 쓰겠나. 한때 내가 쓴 설문지가 바로 높은 사람한테 가서 그 사람이 이거 읽고 고쳐주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이름까지 밝히고 솔직하게 썼다. 누가 스트레스를 주냐는 문항에 부대장 이름을 써냈다. 나중에 부대장이 다 읽고 날 불러다 엄청 욕을 하더라.

쿠르드족을 돕긴 도운 것 같은데 그게 국익에 도움이 되는진 모르겠다. 그리고 정말 돕고 싶었다면 군대에 들일 예산을 다른 쪽에 썼다면 훨씬 더 많이 도와줬을 것이다.

국방부 홍보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애들이랑 놀고 민사작전(재건·복구)을 한 사람은 소수다. 우리가 거기에 간 목표는 뭔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무사히 돌아오는 거다. 대외적으론 평화 재건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진짜 이유는 미국이 요청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간 거 아닌가. 군인이 2년 동안 3천 명씩 서너 번 다녀갔는데 아무도 안 죽었다는 건 오히려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그건 달리 말하면 그만큼 외부 활동을 안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냐면, 바그다드 주둔 미군한테 폭탄 테러가 났다 하면 우리도 문 다 걸어잠그고 조용히 지낸다. 한 15일 지나면 그제야 나가서 (쿠르드인들에게) 사탕을 나눠준다. 또 어디서 일이 났다 하면 다 들어와서 죽은 듯이 지낸다. 명분 없이 간 파병 아닌가. 거기서 우리끼리 하는 말로 “이라크에 가는 이유는 군 간부들을 진급시켜주기 위해서다. 병사들은 ‘뒤치다꺼리’ 하러 온 거다”고 할 정도였다.


“파병 이유는 한-미 동맹 강화”

자이툰 출신 100명 설문조사… 절반 이상이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큰 스트레스 받아

벌써 1만여 명이 다녀왔다. 2004년, 파병에 대한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자이툰은 도망치듯 이라크로 떠났다. 파병 반대 시위대가 경기 광주 특전교육단 입구를 막으며 자이툰의 출국을 저지하려 했고, 군은 이를 피해 부대원을 하루 일찍 빼돌리거나 새벽에 헬기로 ‘야반도주’시켰다.


△ 자이툰 부대의 외곽 경계는 쿠르드 민병대의 몫이다. 그래서 농담처럼 쿠르드인들이 자이툰부대를 지켜주고 있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촌극을 벌여야 할 만큼 한국군의 파병을 둘러싼 논란은 뜨거웠다. 하지만 떠나는 그들에게 집중됐던 세간의 이목은, 막상 이라크에 다녀온 1만여 명의 장병들이 사회에 복귀해 있는 지금은 흔적도 없이 흩어져 있다. 병사 개개인이 그곳에서 실제로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느끼고 돌아왔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한겨레21>은 자이툰 출신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조사는 지난 8월1~21일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진행됐다. 대상자는 귀국한 1진부터 3진까지의 전 자이툰 부대원 중 현재 전역한 이들이다.

‘자이툰이 주둔하는 실제 이유가 뭐냐’는 물음엔 다수가 ‘미국의 요청과 한-미 동맹의 강화를 위해서’(41명)라고 답했다. ‘이라크 재건 복구’(27명)와 ‘평화 유지’(7명)라고 답한 전역자는 그리 많지 않다. 미국의 요청과 동맹관계 때문에 한국군이 끌려가듯이 이라크로 파병됐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자이툰의 주둔 이유가 ‘국내 기업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본 응답자도 17명이나 됐으나, 인터뷰 과정에서 만난 이들 가운데 국내 기업들이 성공적으로 이라크에 진출하고 있다고 보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자이툰 생활에 대한 장병 개인의 전반적인 만족도는 높은 편이었다. 자이툰부대에 지원하며 기대했던 것들을 실제로 얻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63명이 ‘기대 이상 얻었다’고 답했다. 이어 ‘그저 그렇다’(22명) →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10명) → ‘잘 모르겠다’(5명) 순으로 나타났다. 파병을 지원한 이들이 기대한 것은 ‘새로운 경험’(71명)이 압도적이었다. 인터뷰에서 만난 자이툰 부대원들은 “외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비행기도 타보고 외국 사람도 만나봐서 시야가 넓어졌다” “남들은 할 수 없는 특이한 경험을 원했다” 등의 의견을 붙였다. 그 외에 ‘파병 수당을 얻기 위해서’(11명) → ‘한국에서의 군생활 중 답답함을 느껴서’(8명) → ‘취직이나 진급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4명) → ‘이라크인을 도와주러 간다는 자부심을 느껴서’(1명) → ‘기타’(5명) 등의 순이었다.

병사들이 느끼는 자이툰 생활에 따른 스트레스는 한국에 있을 때와 비슷하거나 컸다는 응답이 예상외로 많았다. 한국과 ‘비슷했다’(24명), ‘훨씬 컸다’(13명), ‘다소 컸다’(18명)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한국에서보다 스트레스가 ‘적었다’(31명), ‘훨씬 적었다’(13명)고 답한 사람은 모두 44명이었다.


△ 이들은 외부의 위협보다 지루한 일상과 싸우고 있다. 자이툰 부대원들이 내무반에서 전투식량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자이툰에서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답한 응답자만을 따로 떼내 그 이유를 물었더니, ‘선후임이나 간부들과의 관계’(10명) → ‘답답한 환경’(5명) → ‘위험 노출’(2명) → ‘파병에 대한 회의감’(1명)이란 응답이 순서대로 나왔다. 향수병과 과도한 업무량 등 ‘기타’ 의견은 11명이었다. 자이툰이 내전 중인 이라크의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 주둔했지만, 병사들의 절반은 외부의 공격에 대한 위협을 어느 정도 체감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평소 안전의 위협을 어느 정도 느꼈냐’는 물음에 ‘매우 크게 느꼈다’(3명)와 ‘어느 정도 느꼈다’(44명)가 ‘별로 느끼지 못했다’(43명)과 ‘전혀 느끼지 못했다’(9명)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로켓포 피격 사건, 독극물 테러 미수 사건 등 간헐적인 외부의 위협이 전쟁터에 와 있다는 인식의 형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자이툰 출신들이 거의 하나같이 첫 번째로 꼽는 불만인 울타리 안의 답답한 생활도 조사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67명이 6개월 동안 0~6, 7회 바깥출입을 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는 응답자만 23명에 달했다.

병사들 개인의 차원에서 당초 이라크 파병의 명분이던 이라크 평화 유지와 재건 사업의 성공 여부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가 절대 다수였다. ‘다소 성공적이었다’(50명)와 ‘매우 성공적이었다’(28명)는 응답은 절반을 훨씬 넘었다. ‘거의 성공적이지 못했다’(5명)와 ‘전혀 성공적이지 않았다’(3명)는 응답은 소수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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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6 15:40 2006/09/06 15:40

레바논에서 휴전이 합의된 이후 매일 같이 들려오던 중동에서의 전쟁 소식이 언론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하는 전쟁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왠일인지 마음 한쪽이 여전히 불편하기만 하다. 더 큰 먹구름이 밀려오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일주일만에 승리를 장담했지만 결국 헤즈볼라를 분쇄하지 못하였다. 창설 이후 무적을 자랑하던 이스라엘군의 신화는 무참히 깨져버렸다. 최신예 전투기와 탱크로 무장한 이스라엘이 로켓포와 소총으로 저항한 헤즈볼라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골리앗이 패배한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에서는 이번 전쟁의 패배 책임을 놓고 정치권이 분열하고 있다.

개전초기부터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미국의 체면도 여지없이 구겨지고 말았다. 이라크에서 수렁에 빠져있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통해 중동의 반제국주의세력(이란-시리아-헤즈볼라-하마스)들을 제압하고자 했으나 결과는 거꾸로가 되고 말았다.

반면 친미-친이스라엘 정권 밑에서 억압받고 있는 중동의 민중들은 헤즈볼라의 승리에 환호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 편을 든 자국 정부에 대한 투쟁도 시작하고 있다. 특히 이집트에서 투쟁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대로 물러서려 하지 않고 있다. 휴전합의 후 5일만에 이스라엘은 특수부대와 전투기를 동원해 군사작전을 펼쳤다. 유엔휴전합의안은 이스라엘의 '방어적'군사작전은 허용하고 있다. 반면 헤즈볼라에 대해서는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한편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의 국가들이 유엔임시군 구성에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들은 예전에 잃어버린 중동의 자기세력권을 다시 되찾고 싶어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유엔임시군이 레바논 남부에서 헤즈볼라를 약화시키는 동안 시간을 벌려 하고 있다. 무장해제에 저항하는 헤즈볼라의 투쟁을 빌미로 이스라엘은 언제든 다시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미국 역시 이라크 전황의 개선을 위해서도 이란과 시리아를 침공하려고 벼르고 있다. 호주 최대의 일간지는 레바논 전쟁이 시작되자 "제3차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고 헤드라인을 뽑았다고 한다. 지금 중동의 상황은 일촉즉발의 위기를 앞둔 폭풍전야인 것이다.

 

이런 중동에 노무현정부가 또다시 파병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부대의 파병기간 연장 뿐만 아니라 레바논남부에 주둔할 유엔임시군 파병도 검토하고 있다. 중동의 평범한 사람들은 오로지 외세의 침략없이 평화롭게 살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바램이 이루어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군대를 보내는 것이 아니다. 의약품과 식량 그리고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가 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목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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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6 15:24 2006/09/06 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