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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음모론이 존재한다. 단순한 우연이나 재미로 치부하기에는 그 범위나 정도가 상당하다. 음모론은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과 거의 필연적으로 연루되어 있다. 예수가 결혼했다는 설이나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에 영국 왕실이 개입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비롯해 중요한 역사적 사건 뒤에 프리메이슨과 같은 그림자 정부가 있다는 소문 그리고 인종차별주의자들이 특정 지역의 인종을 말살시키기 위해서 에이즈를 개발했다는 풍문도 있다.
최근에 들었던 음모론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환경오염의 심각성이 상당히 과대평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과대평가된 이유는 환경 재생 관련 기술들을 가진 세력들이 그것들을 상품화하기 위해 환경과 관련된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음모론에는 대체에너지 산업은 물론 화장품, 제약, 자동차, 보험 산업 등의 영역들 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래도 수많은 음모론 중 가장 센세이셔널했던 것은 9.11테러가 미국과 알 카에다의 공모로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음모론은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그것이 영화나 소설의 수많은 소재가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기인할 것이다.
음모론은 확실히 가난하거나 무지한 자들의 이데올로기이다. 거기에는 추측과 상상이 넘쳐나며, 온갖 궤변과 억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음모론은 구체적인 증거나 증인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즉 상상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거짓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어떤 일말의 진실이 내포되어 있다. 때로 그것은 진실로 밝혀 지기도 하는데, 그 때문은 아니다. 음모론은 현실의 어떤 지점을 조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음모론은 어떤 ‘사건’의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거나 그 원인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차단당했을 경우 등장한다. 사건이란 씨줄과 날줄로 정교하게 짜여진 한 사회의 체계에 균열이 발생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민주, 복지, 자유 등의 이름으로 구축된 한 사회의 체계는 그 가치들과 정합적인 관계를 가지는 도덕적 규범, 윤리적 가치 뿐 아니라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법질서를 함께 가진다. 따라서 한 사회의 체계는 인위적으로 구성된 필연적 성격을 가지는데, 사건은 우발적으로 이런 체계의 균열을 드러낸다. 따라서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노쇠하고 고리타분한 언어가 아니라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음모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한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인식론적 공백을 능동적으로 매워주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인식론적 공백이 발생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사건의 원인들이 정교한 기술과 과학적 모델을 통해서 확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 오염이 좋은 사례일 것이다. 환경 훼손이 야기하는 위협들은 대개 정교한 기술을 통해서만 확인되며 복잡한 과학적 모델과 언어를 통해서만 인식 가능하다. 환경 훼손을 이야기 하는 언어들은 국가나 거대 기업이 지원하는 연구소, 혹은 극히 소수의 전문가들을 경유하여 생산된다. 민중들은 그 언어를 생산할 수 없고, 단지 소비할 수 있을 뿐이다. 음모론은 이와 같은 지식과 언어 위계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한다. 어떤 것의 원인이 확정될 수 없을 때, 가설, 가정 혹은 추측의 영역이 확대될 때, 거기에는 음모론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음모론이 가진 가장 중요한 특징이자 한계는 모든 사건을 특정한 권력의 의지로 환원한다는 점이다. 음모론은 끊임없이 사건의 뒤에 정치적 경제적 권력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쉽고 재미있는 설명이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일만한 근거나 힘은 별로 없다. 그런데 여기서 음모론의 귀결 지점으로 등장하는 권력이 어떤 권력인지는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특정 정치인이나 기업가를 지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좀 더 포괄적인 의미의 정치 경제적 권력을 지시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음모론에서 지시하는 권력은 대의제 정치나 자본주의와 같은 좀 더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담론적 실체이다. 음모론이 개입하는 사건은 이 담론적 실체의 정합성이 흔들리는 지점인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천안함을 둘러싸고 엄청난 양의 음모론이 넘쳐나고 있다. 음모론이 그냥 떠도는 정도가 아니라 주요 언론에서 보도할 정도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신문에서는 손수 음모론을 제작하기까지 했을 정도다. 천안함 사태는 말 그대로 의문 투성이이다. 관련된 핵심적 정보와 모든 설명언어들을 국가와 군에 의해 차단당했으며, 그 원인이 어떻게 밝혀지든 굉장한 정치적 파급력을 가질 사건이었다. 한마디로 음모론이 개입하기 위한 최고의 조건이었던 셈이다.
정부에서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에 의한 무력 기습이라고 규정지었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때로 사건을 정합적으로 기술하고 설명하는 공식적인(공인된 혹은 공적 권력에 의해 공표된) 논리보다 음모론이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것처럼 보인다. 음모론은 구체적인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지는 않지만, 그것이 가진 현실적 영향력이나 사회적 효과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논리보다 통찰력 있게 드러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천안함 사건의 원인을 북한이라고 지목한 것에 대해, 하필 선거를 앞두고, 선거 운동이 시작하는날, 북한이라는 카드를... 이라는 식의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구체적인 근거 없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거짓일 수 있지만, 충분한 개연성을 가질 수 있는 설명이다. 천안함의 진짜 침몰 이유와는 무관하게 그것이 선거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예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태는 사건 자체의 진상규명만큼이나 중요한 어떤 측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천안함 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여러 담론의 지형과 행위자들의 태도로부터 비롯된다. 여기에는 안보, 국익, 분단, 외교 문제부터 정보통제, 매체 보도형태, 국가 차원의 의례 기능 까지 여러 가지 층위의 문제가 복합적 내재되어 있으며, 정부, 군, 북한, 중국과 미국, 유가족, 언론, 자식을 군대 보낸 부모, 군대 다녀온 남성과 여성, 그리고 이 과정을 지켜보며 직간접적으로 담론에 참여하는 이들까지 다양한 행위자들이 연루되어 있다. 이런 복합적 문제의 구조를 포괄적으로 드러내 준 것은 언론도 학계도 정부도 아니었다. 그것은 음모론을 만들고 유포하고 읽어내는 민중들이었다. 음모론은 진실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도약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에 집착하는 이들이 보지 못하는 현실의 다른 측면을 조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때로는 사건의 실질적 사실보다는 이런 상상들이 더 중요해 보이기까지 한다. 음모론은 가난하거나 무지한 자들의 이데올로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에 접근할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언어이며, 현실의 정치나 경제가 가진 모순을 드러내는 사건을 매개로 그 모순을 해부하는 민중의 무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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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스 기고 글
추가 : 사건(event)은 정의에 따르자면, 정해진 과정이나 정해진 절차를 가로막으며 발생한다. 말하자면 어떠한 중요한 일도 전혀 일어나지 않는 세상에서만 미래학자들의 꿈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 기대하지 않은, 예측하지 않은,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우발 사건을 '무작위적인 사건'이나 '과거의 마지막 호흡'이라고 명명하면서, 무관한 일이거나 고명한 '역사의 쓰레기통'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정치 담합의 가장 오래된 속임수이다. 말하자면 이 속임수는 의심할 바 없이 이론을 명료화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그 대가로 현실로부터 더욱더 멀어진다. 그 위험성은 그런 이론들이 실질적으로 판별가능한 현재의 경향들로부터 증거물을 수집하기 때문에 그럴듯할 뿐만 아니라, 그 내재적인 정합성 때문에 최면 효과도 갖는다는 점에 있다. - 한나 아렌트, on vio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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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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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장황하게 설명하고 정리해 주셨는데 헷갈린다.이유는, 음모론을 펼지는 자들은 어떤 개별적인 것을 보란 듯이 내놓음으로써 사건전개, 정황 등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원인을 제시하는 것에 대응하는데, 막판에 가서 북한의 어뢰를 제시한 MB정부와 군부가 꼭 이런 음모론자들이 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MB정부와 군부의 논점은 북한의 어뢰는 진보진영의 “현실 모델”로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이다. 와라님의 분석은 뭔가 거꾸로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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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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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이라기보다는 느낌에 가꾸운 글입니다. 그 느낌들을 정리하면서 (증거는 부족해 보이지만 현실을 조명하는) 음모론과 (거짓이면서 사회적 사실을 왜곡하는) 정치적 기만의 차이를 좀 적으려다 뺏는데 그 때문에 약간 혼동이 있는듯 합니다. 아마도 ou-topia님께서 정치적 기만을 음모론으로 동일시 하면서 혼동이 빗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 생각에 정치적 논쟁은 언제나 서로의 반대자를 '증거불충분', '비과학적', '비합리적', '비논리적' 등의 언어로 억압하려는 경향을 가집니다. 그러나 정치적 논쟁은 본질적으로 그러하지요. 문제는 사실이나 진실을 근거(혹은 핑계)로 삼아 어떤 것을 주장하느냐 인데, 여기서 (최소한 정치에서는) 사실이나 진실이 어느 한 정파에 의해서 독점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두고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그럴 때에 정치적 논쟁의 적대선이 보다 명확히 보일테니까요. 음모론이 여기서 특정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한 가지 더... 과학의 언어를 누가 규정하느냐도 문제입니다. (단순한 정보이든, 전문적 견해나 해석이든)과학의 언어는 언제나 특정한 권력(그것은 정치적 경제적 권력일 수도 있고, 전문가 집단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소위 학삐리들도 빠질 수는 없겠지요. 그들은 특권을 가진 이들입니다)에 의해 독점되는데, 그 때 배제되는 이들이 있을테지요. 음모론의 언어는 바로 그곳에서 산출됩니다.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그렇다고 모든 음모론이 선한 것이고, 민중의 언어이기 때문에 옳은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특정 국면에서 그것이 상당한 정치적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 정도를 점쳐보고 싶은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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