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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근로기준법도 법인데... 법치를 비웃는 사람들
충북대학교에서 최저임금 홍보와 현장상담을 진행하고 난 뒤, 우리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상반된 글이 게재되었다. 한사람은 편의점 업주인 듯하고, 또 한사람은 아르바이트 학생이다.
두 개의 글들중에서 일부를 옮겨본다.
“당신(민주노총)들이 뭘 안다고 떠들고 다니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고용할때 최저임금에 맞춰 줄수 없다고 미리말하고나서 알바 채용하거든! 당신들 그렇게 할 짓이 없어서 떠들고 다녀! 노동자를 위한거라고 생각하나! 천만에 말씀이지. 그럼 편의점 업주들 최저임금에 맞춰서 시급으로 주고 바로 알바생 그만 두게 하면 당장 타지에서 올라와서 알바해서 용돈하는 학생들 당신(민주노총)들이 용돈줄려고!”(편의점 사업주)
“사장님도 자식을 키우시면서 학교 근처라서 아무리 알바생 구하기가 쉬워도 그렇지.. 2500원이 말이 되나요. 사모님은 아파트 근처에서 독서실을 운영하셔서 결코 수입이 적은게 아닌데.. 저한테 딸내미 둘 과외비가 한달에 200만원 나간다고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전 이달에 그만둘겁니다. 다행히 상반기에 취업이 될것 같아서요. 제가 바라는건 전 차액 못받아도 괜찮습니다. 정말 그런 사람들과 다시 엮기고 싶지도 않구요. 단.. 저 다음에 일하게 될.. 알바생들부터는 제대로 임금받고 일할수 있도록 고쳐졌으면 합니다.”(피해학생)
우리사회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는 여전히 귀족노조의 사치품쯤으로 여겨진다. 학교에서 저 먼나라의 왕조 족보는 달달 외우게 해도, 근로기준법은 절대로 가르치지도 않는다. 떼어먹은 임금 달라고 항의하다 홧김에 주먹한번 휘두르고 책상한번 뒤집어 엎으면 구속돼도, 임금 2억원을 떼먹은 사장은 구속되지 않는다.
그래선가! 근로기준법은 법으로 보지 않는다. 일반 국민도 그렇고 사법기관도 그렇다.
그래서 황당한 역전현상이 일어난다.
위, 근로기준법의 최저임금을 위반한 사람은 당당하게 이메일까지 알려주고 우리 사무실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반면에 피해자로서 학생은 홈페이지 관리자만 볼수 있도록 비밀글로 올렸다.
방귀 뀐 사람은 당당하고, 냄새를 맡는 사람이 오히려 미안하다.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걸 가진자들은 ‘떼법’이라고 조롱한다. 그들이 이렇게 위풍당당할수 있는 근거는 무얼까! 바로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 사회풍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밥’을 위해 목숨을 건다. ‘밥’을 위헤 장기를 떼어 팔기도 하고, ‘밥’을 위해 육체까지 상품으로 거래한다. 그래서 ‘밥’은 ‘하늘’이랬다. 사람들이 온전하고 안전하게 ‘밥’을 얻을수 있도록 보호해주기 위한 것이 ‘노동기본권, 노동인권’이고 그것이 근로기준법이다. 이걸 우습게 아는건 ‘하늘’을 우습게 아는 거다.
또 다시 일요일 밤입니다.
지난주에 이어 세 살배기 딸내미 보러 수원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내려오면 지금 이시간 저녁이죠. 밤 열시 사십분입니다.
잎새보다 꽃이 먼저 피는 벚꽃이 폈는가 했더니 금새 졌지요. 그리고 벚꽃을 대신해, 또 다른 꽃들로 만화방창(萬化方暢)입니다. 그런데 꽃보다 더 아름다운 건, 초록입니다. 나무와 풀들이 새순을 틔워 온통 초록입니다.
그 초록을 딸아이 손을 잡고 보면서 한 생각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떠나 있는 것은 참을수 없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사람과 잠시 떨어져 있는 것은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여유의 시간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징역살이는 고통스럽습니다. 가족이 그립고, 또한 주변의 벗들이 그리울겁니다. 그런데 오늘 하루만큼은 사람과 떨어져 있는 그 고통보다도 자연의 변화, 초록의 생명력과 떨어져 있는 것이 더 고통일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주교도소 미결사동... 하루 30분 실제로는 한 십오분정도겠죠. 네모난 벽들로 차단된 네모난 하늘을 보겠지요. 그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선 줄쳐진 네모난 창틀에 비쳐진 세상만 보게됩니다.
구름이 끼어도, 햇살이 유난히 빛나도, 보름달빛도 쇠창살 네모난 창밖의 세상입니다.
오늘, 징역 밖 세상의 초록 녹음을 지부장님께 꼭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4.20.
지부장님 편지 잘 받았습니다.
미결수 운동장 담벼락을 무너뜨리겠다니 속이 시원하네요. 고것이 말로만 운동장이지 한마디로 닭장이지요. 백평도 안되는 것을 네조각 담벼락으로 막아놓고 고놈을 운동장이라 부르는... 저도 그당시 무척 답답했는데 그것을 무너뜨리겠다는 생각은 못해봤네요. 지부장님 짱!
점심 먹다가 그애기를 우리 대협한테 했드만 1사 담벼락은 예전에 무너졌다고 애기하네요.
위대한 영장류 호모사피엔스를 겨우 닭장에 있는 닭으로 취급하다니 정말 나쁜 놈덜이죠.
선거끝나고 어제는 멍했는데 그래도 하룻밤 더 잤다고 오늘은 그런가보다 십네요. 역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가봐요. 어제의 아픔도 훌훌 털고 오늘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주니 망각이 꼭 나쁜건 아니죠.
풀잎은 바람에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하죠. 바람에 가장 먼저 몸을 누이지만, 바람이 지나고 난 자리에 가장 먼저 몸을 일으키는 것도 풀잎이라 하죠. 그런 유연함과 근성을 배워야 하는데, 저는 고작 잊는 다는 것, 기억상실로 마음과 몸이 편해지니 큰일이네요.
저도 낼 모레면 불혹인데요. 불혹(不惑),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 없다는 뜻이라죠. 저는 아직 멀어서 어떤 유혹에도 혹 하니, 저는 유혹(有惑)인가벼요.
오늘 한겨레 신문을 보니 남산 벚꽃 사진이 실려있네요. 지부장님도 그 사진을 보았는지요.
고단한 징역살이, 지루한 징역살이에 그래도 한줄기 여유와 풍류는 있어야 겠죠.
면회없는 주말, 그래서 더 지루하고 무료한 주말 잘 보내세요. 그리고 일요일 열두시가 되면은 아시죠. 송해 아저씨 목소리따라 크게 외쳐보세요. 4.11.
선거가 끝이 났군요. 사실 저는 진보신당을 지지했습니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 옳건 그르건 존재하고, 그래서 사실 내놓고 진보신당 선거운동도 하지 못했습니다만 마음속으로 정말 열심히 응원을 많이 했었어요. 결과는... 심상정, 노회찬 의원 선전에도 불과하고 1천표, 2천표 차로 낙선을 했어요. 비례대표 후보는 2.94%. 즉 0.06%가 모자라 그것도 낙선...
민주노동당 권영길,강기갑 의원 당선, 비례대표 3명 당선....
한나라당, 친박, 회충이당 합쳐서 2백석..
오늘 아침, 정말로 멍하네요. 엄청난 충격파지요. 고생하시는 지부장님 앞에서 이깟 선거가지고 요로코롬 애기하는 제가 정말 못났네요. 죄송합니다.
엇그제, 충남 계룡에 있는 금속노조 콜텍지회 1주년 투쟁 문화제에 갔다왔어요. 말이 좋아 1년이지 길거리에 나앉아 1년동안 싸운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에요. 어하다 1백일, 어하다 2백일, 어하다 1주년, 어하다 2주년 하이닉스가 그렇게 갔었었지요.
투사도 아니고, 이념이 있어서도 아니고 억울해서, 분통이 터져서 그다음엔 오기로 싸우는 게 노동자인가봐요.
화요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아침 든든히 먹고는 수동 인력센터에 선전전을 다녀왔습니다. 거기 있는 남루한 옷차림의 건설 노동자들과 만났지요. 그 양반들 주로 하는 애기가 용역업체 애기 많이 하더라고요. 법정수수료는 10%인데 그 놈들 그거 지키는 놈 한놈도 없다고... 그거나 바로 잡았음 좋겠다고... 한번 해봐야지요.
이용대 지부장님... 바깥엔 벚꽃도 다 졌어요. 근대요. 꽃이 지면 꽃이 아닐까요. 꽃은 져도 꽃이라 하더이다. 지부장님이 갇혀 있어도 지부장님 여전하시죠. 담쟁이 마냥, 지부장님이 맨 앞에서 하나둘 이파리 끌고 전진해 교도소 담벼락 훌쩍 뛰어넘어 건설노동자들의 해방세상을 만들어 갈거죠.
오늘 하루도 건강하시길.... 2008.4.10.
지부장님! 저 ***입니다.
면목도 없는 제가 이제서야 편지글 올립니다.
예전에 제가 징역살이 할 때였죠. 조그만 앞마당 같은 청주교도소 미결사동 운동장. 운동 나가면 그 조그만 담벼락 주변 햇살 잘 드는 곳에 민들레 노란 꽃망울 터진 것 보고 아구 ‘징한 놈’이라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어요.
하필 좋은 땅 두고 마른 땅 찾아서 씨를 뿌리나. 마른 땅 한가운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사람 발길, 동물 발길 피하다 겨우 찾은 곳이 하필이면 교도소 담벼락 밑이냐 하고 에둘러 애기 했었죠. 민들레 신세나 내 신세나 교도소 담벼락 밑에서 햇살 쫒기는 매 한가지구 하고 말이죠.
그 민들레가 이곳 복지관 건물 벽, 혹은 계단 따라 또 꽃망울을 터뜨렸어요. 이 잡것 같은 민들레가 또 한다는 짓이 말이에요. 겨우 계단과 보도블록 그 3-5mm 틈바구니를 찾아서 꽃을 틔우는 거죠. 참 징한 놈들이에요.
좋은 땅 놔두고, 험한 곳, 남들 잘 찾아오지 않는 곳 꼭 그런곳만 찾아요.
지부장님하고 이놈 민들레란 넘 같은 족보에요. 아마도 유전자가 같은 모양이죠.
예전에 지부장님 계신 바로 그 미결사동에 있을 때 앞 사동에 있는 후배랑 통방을 할려고 꽤 곤욕을 치뤘죠. 사동과 사동을 가로막는 사람 두키정도 되는 그 담벼락에 운동나온 후배가 다른 미결수 어깨를 타고 간신히 담벼락 타고 올라와 ‘**이형’하고 한마디 하고 뚝 털어지고, 잠시후 또 올아와 한마디 하고 뚝 떨어지고...
청주지회장님하고 조직부장하고 안부는 잘 주고받는지요. 지부장님도 그때 후배처럼 그러고 있는지요.
작년 플랜트 모임 동지들하고 삼겹살 먹고 헤어지던 날, 같이 둑방길을 걸었어요. 그때 지부장님이 그랬죠.
건설기계 말고 우리 힘들게 사는 건설노동자 천명모을때까지 하고 싶다고... 열심히 하자고 그랬죠. 플랜트 모임은 그래선지 매달 꼬박 꼬박 하고 있어요. 다음주에는 우리 덤프, 사무국장님 호죽인권센터하고 수동 인력센터에 새벽 선전전도 나갈 거에요.
구속영장이 재 청구되었던 날, 그날 밤 늦게 만났었죠. 지부장님도 취했고 저도 취했고, 취한사람끼리 술먹으로 들어간 호프집, 그 앞에서 술에 취해 또 티격거리는 또 다른 노동운동 후배들도 있었고... 그날밤 그런 날이었죠. 지부장님이 마음을 비웠다 했어요. 그 날 밤에 말이죠.
마음이란게 사실상 쉽게 비워지는 것도 아닌 데, 지부장님 그 말에 오십줄 살아오신 연륜이 깊게 느껴졌었어요.
건강하세요. 앞으로 편지 자주 할께요. 아마, 작년 청주교도소 담벼락 및 민들레가 흩뿌린 홀씨가 교도소 담벼락을 타 넘어, 이곳 복지관에 다시 꽃망울을 터드렸나봐요.
2008. 4. 4.
민주노총충북지역본부 비정규사업부장 올림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꾼 ‘손수건 한장’
대학 새내기 시절, 이맘때 였다. 수업이 오후에 있어 느지막이 학교에 가던 날, 학교 정문주변으로 전경버스가 나래비로 서있고, 그 옆으론 방패와 곤봉을 든 전경들이 또 나래비로 서있었다. 그 사이로 지나가는데 가방을 열란다.
헉, 웬 소지품 검사!
발끈한 나는 ‘당신들이 뭔데 남의 가방을 뒤지냐! 못 열겠다’고 했다.
그러나 내 말은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잽싸게 전경 둘이서 내 팔을 붙들고 전경 하나는 내 가방을 낚아챘다. 가방을 열어본 전경하나가 무언가 대단한 증거물을 발견했다는 듯
‘이 새끼, 운동권이네’하고 손수건을 꺼네든다. 그 손수건은 백두산 천지 연못정도가 그려져 있는 손수건이였다.
나에겐 아무 의미도 없는, 학생회에서 모든 학생에게 나누어준 그 손수건 하나가 ‘운동권’이라는 증거가 되었고 전경버스로 끌려가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고, 한시간이나 무릎을 꿇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학교로 들어왔는데, 맞은 것이 너무 분했다. 수업도 들어가지 않고 친구랑 학교 뒤쪽에 있는 식당으로가 막걸리를 들이부었다.. 막걸리를 마셨으니 수업도 못들어가고 그 길로 학교를 나서는데, 이게 웬걸 정문에선 한바탕 전투가 진행중이다.
이런, 오로지 영문도 모른채 당했던 그 폭행에 대한 복수심이 타올랐고 어느 순간인지도 모르게 내 손에는 쇠파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나는 그 날 죽어라 싸웠다. 낮에 날 때린 놈 한 대라도 쥐박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전경들 얼굴까지 확인하며 싸웠다. 그리고 그날, 저 멀리 서울에서 내 또래의 한 학생, 강경대가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다.
난 그날 이후 이른바 ‘운동권’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이 사십 다 되어서도 노동운동에 몸담고 있다.
결국, 그 손수건은 내 삶을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20년 동안이나 나를 옭아맨 내인생의 올가미였던 셈이다. 다른 동료들이 사회와 사람의 암울한 현실에 자극받아 이런 길로 들어서게되었다는 그런 얘길 들을때면 속으로 난 ‘나는 코메디야, 난 손수건 땜에 이렇게 됐어’하고 속웃음친다.
시간이 20년이 지나서, 또 다른 나 같은 ‘코메디’가 생길란가 보다. 집회중에 마스크만 써도 근엄한 국가의 법으로 ‘이메가바이트’ 정부께서 처벌하신댄다.
아무생각없이 집회장 주변에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다가 범법자로 몰릴지 모를 어떤 가련한 사람의 인생이, 20년전의 나처럼 인생이 바뀌는 결정적 계기가 될지도 모를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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