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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3/30
    다짐(3)
    무화과
  2. 2010/03/25
    외롭지 않아 - 옥상달빛(2)
    무화과
  3. 2010/03/24
    반성(1)
    무화과
  4. 2010/03/23
    무화과
  5. 2010/03/17
    참 좋은 글을 만났다. (5)
    무화과
  6. 2010/03/14
    김치 잔치
    무화과
  7. 2010/03/12
    시 몇 편
    무화과
  8. 2010/03/08
    <내가 살던 용산> 북콘서트(5)
    무화과
  9. 2010/03/08
    2010/03/08(3)
    무화과
  10. 2010/03/07
    커피(1)
    무화과

다짐

원래 쉽게 살이 찌는 체질이다.

대학시절에 비해 살이 많이 빠지고,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딱히 운동을 하진 않았어도, 빨빨 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 운동량이 충분해서였다.

그리고 독방에 있을 때, 억지로 줄인 밥먹는 양이 늘어나지 않아서였다.

 

어제 샤워를 하면서 거울을 보니

세상에! 저기 저 허리가 대체 누구의 허리란 말인가!

피부 밑으로 가득차 보이는 저것들이 피하지방이라는 걸까?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하루종일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하니 운동량이 부족한 거고

업무에서 생기는 짜증을 먹는 것으로 푸니 간식량이 늘어났고

뱃속에 뭐가 들었는지 밥 먹는 양은 자꾸만 늘어났고

게다가 술은 또 왜 그리 많이 마시게 되는지

더군다나 밤에 배고파서 먹게되는 만두며, 가래떡이며, 맥주 한 캔이며

이러니 살이 찌는 게 당연하지.

 

나는 살 찌면 일단 몸이 찌뿌둥하고 답답하고 그래서 싫다.

움직이기 싫어지고 만사가 귀찮아지고 그래서 싫다.

안되겠다. 관리좀 해야겠다.

오늘부터는 간식 최대한 안먹고 밥먹는 양 줄이고

술은 되도록 적게 마시려고 노력하고

아무리 배고파도 밤에는 무조건 참아야지. 정 뭐하면 독한 술 한 잔 원샷하고 뻗어서 자야지.

이번에는 이 다짐들 꼭 지켜야지.

 

발바닥이 안아프면 문발초등학교 가서 뛰어도 좋을텐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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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아 - 옥상달빛

외롭지 않아 나는

어둔 밤하늘 별 보면

슬프지 않아 나는

그림처럼 달빛이 내리면


캄캄한 저 골목 따라

반짝이는 가로등 따라

그림자도 슬슬 걷네

나와 닮았구나


아 그렇게도 찾아 헤맨 너의 모습 보면서

참 너와 나는 닮았구나 생각했어


요새 시와 1집과 함께 매일 듣는 노래.

어떻게 들으면 참 외롭구나, 외롭지 않다는 건 반어적인 표현이구나 하는 기분이 들고

또 어떻게 들으면 외로워 보이는 풍경들 속에서도 차분하고 덤덤하게 그렇지만 외로움에 짓눌려 비틀거리지 않고 걷는 거 같아서 노랫말 그대로 외롭지 않은 거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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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술 많이 마시면 안좋다. 밤을 꼴딱새도 안좋다. 술마시면서 밤 새는 건 곱절로 안좋다.

몸에 안좋은 걸 짧은 기간에 반복했으니 몸이 탈 나는 게 당연하다.

 

안그래도 요새 쉽게 피곤해지고, 쉽게 컨디션이 떨어졌었는데,

이미 몸이 안좋아져 있는 상태에서 완전 확인사살을 했나보다.

 

한동안 몸을 좀 돌봐야겠다.

 

노는 모임이나 약속도 당분간은 자제해야지

부르는대로 달려가니 너무 몸이 버텨내지를 못한다.

 

술도 안마시고, 먹는 것도 신경써서 밀가루 안먹고

바깥에서 식사를 하게되더라도 속에 부담이 없는 음식을 찾아먹어야겠다.

 

빨리 회복해서 봄이 제대로 오면(봄이 오기도 전에 여름이 오겠지만)

훨훨 날아다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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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기 없고 시시껄렁한 잡담을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진다. 마치 영혼 한 뭉텅이가 수많은 말과 함께 새어나와서 몸 안에 커다란 공 모양의 구멍이 생기고 구멍이 커지고 커지고 살갗을 뚫고 나오면 가슴부터 등짝까지 휑한 구멍이 보이는 거다. 구멍 사이로 바람이 새어들어가고, 구멍 사이로 남아있는 영혼이 자꾸 흘러나오고 구멍은 자꾸만 커져가는 상상을 해본다. '도쿄'였던가 미셸공드리가 찍은 편의 여자 주인공처럼 말이다.

 

이렇게 속이 텅 비어 갈 때는 무언가 속을 채울 게 필요하다. 처음에는 좋은 책을 보면서, 노래를 들으면서, 하다못해 술을 마시면서도 채워졌던 속이 이제는 내성이 생겼는지 무얼해도 허전하다. 구멍이 점점 더 커져만 간다. 바람이 숭숭 들어온다.

 

또 이런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할 수 있는 말의 갯수가 정해져 있다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는 1000만 단어, 누구는 100만 문장 이런 식으로. 그래서 사람이 육체의 기능이 멈출때 죽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말을 다 해버렸을 때 죽는 걸지도 모른다.

근데 사람들은 자기에게 허용된 말의 갯수를 모르고 살아간다. 너무 어린 나이에 갑작스레 죽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허용된 말이 남들보다 적다는 것을 모르고 남들처럼 말하다 말을 다 소비해버린 결과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나이가 아주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 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것도 같다. 그분들은 말을 많이 아끼신다. 그 말을 다 쏟아버리면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그래서 한마디를 할 때도 조심스러워야한다. 내 생명을 깎아먹으면서까지 해야할 말들만 해야한다. 실없는 농담으로 소중한 인생을 단축시켜서는 안된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말을 써버렸다. 많은 경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면서. 때로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면서.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남들보다는 더 많은 말이 나에게 허용되었다고 믿고싶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 나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 조금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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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글을 만났다.

박건웅 작가가 작가 후기를 보내줬다. 자기는 글솜씨가 없으니 많이 다듬어 달라는 겸손한 부탁과 함께.쭈욱 읽어봤다. 확실히 유려한 문장은 아니었다. 맘춤법 띄어쓰기야 나도 잘 못하는 거 트집잡을 생각이 없다. 비문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문단 구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분량도 너무 길다. 책에 실릴 때는 아마 원문과는 많이 달라져있을거같다.

 

그런데 나는 박건웅 작가가 보내준 이 글이 딱 마음에 든다. 책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많이 달라지겠지만, '책'이 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일이지만, 어떤 식으로 교정교열을 보더라도 지금 내 손에 있는 이 글이 가장 좋을 거 같다.

 

박건웅 작가의 솔직하고 담백한 마음이 담뿍 담겨져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 마음이, 그림의 대상이 되는 허영철 선생님에 대한 진솔한 존경심이, 다른 이들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씨가, 세상 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려 하는 겸손한 태도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칭찬받아 마땅할 것들을 전혀 자랑하지 않고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글솜씨로 마치 꾹꾹 눌러쓴 편지처럼 소중하게 쓴 것이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진다.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하고 화려하게 포장한 내가 쓴 글들이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다.

 

지금은 아직 책 작업 중이라 아직 박건웅 작가가 보내준 글을 이곳에 올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괜찮을 시점이 되면 꼭 내가 보관하고 두고두고 읽고 싶다.

 

역시 글은 글솜씨로 쓰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것이며, 삶으로 쓰는 것이다.

참 좋은 마음을 만났다. 이럴 때 책만드는 일이 참 값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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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잔치

부천 집에 다녀오면서 갓김치를 가져왔는데

수경선배가 고들빼기 김치랑 달랑무 김치를 가져다줘서

원래있던 배추 김치까지 김치로만 밥상을 차려도 한 상이 된다.

 

쌉씁름하면서 톡 쏘는 갓 김치와

셔꼬부라져서 맵싸한 고들빼기 김치 

아삭아삭 시원한 달랑무

 

김치 한 번 먹고 밥 한 번 먹고 하면 밥 한 그릇이 뚝딱 해치워진다.

 

반찬들도 덩달아 맛있다.

달콩한 콩장, 새콤한 초장 찍어 먹는 상큼한 브로콜리, 오독오독 무말랭이, 봄내음 물씬 풍기는 냉이 나물

 

날마다 이렇게만 먹고 살면 행복하겠다.

갑자기 배고파진다.

 비오는 소리가 들린다. 우산도 없는데.

집에 가서 부침개나 부쳐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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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몇 편

혁명                               

 

하느님 몸 속에서

피를 자꾸 뽑아낸다

 

석유 가고 이어

 

자동차 서고

비행기 앉고

공장굴뚝 연기 멎고

높은 집들 텅 빌 때쯤

 

혁명이 온다

 

사람들 다시 땅을 갈아 씨를 뿌리고

오순도순 모여 작은 마을을 이루는

 

 

 

 

하느님처럼 저절로 있는 나는

낮은 곳으로 흐르다 바다에 이르면

한마리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곤 한다

 

내가 아래로 내려가면 물고기들이

개구쟁이처럼 속살을 간질이며 올라오는데

이것이 오래된 우리의 인사법이다

 

누가 우리의 만남을 시샘하는가

온갖 오물로 괴롭히더니 마침내

등을 삽으로 내리찍고 살을 토막내려 한다

 

 

 

용산참사역

 

대한민국 서울시 인권 일번지

불에 탄 주검 위에 새로 생긴 역

 

다섯구의 시신은 냉동고에서

봄 여름 가을 없이 갇혀 지내다

일년이 되어갈 때 풀려나왔네

 

늙으신 하느님이 비틀거리며

날마다 찾아와서 울고 가던 곳

 

 

 

녹색평론 이번 호에 실린 최종진 시인의 시 몇 편 '용산참사역' 마지막 두 행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늙으신 하느님이 날마다 남일당 앞 인도에서, 레아호프에서 펑펑울고 꺼이꺼이 울고 통을 하고 곡을 하는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때로는 비장한 철거민의 모습을 하고서, 때로는 귀여운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서, 시인의 모습을 하고, 백발 성성한 노신부의 모습을 하고, 카메라를 들고, 연필을 들고, 꽃을 들고, 촛불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 행색을 하고

날마다 찾아와서 자기가 지켜주지 못했던, 지켜줄 수 없었던 이들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것을 하느님 믿지 않고 천국과 지옥 믿지 않는 내 눈에도 보이는데소망교회 장로님 눈에는 왜 안보일까? 아. 한 번도 안와봤으니, 몸도 마음도 한 번도 안와봤으니 그러겠구나.

 

그나저나 그 하느님은 얼마나 원통하고 비참했을까. 예전엔 전지전능 했는데 이제는 이건희에 밀리고 건설자본에 밀리고 경찰특공대에게 밀리고 용역들에게까지 밀려 자신의 어린이이 무참히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던 무력감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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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용산> 북콘서트

 

당연히 내가 만든 웹자보 아니다. 그림은 앙꼬('상현이의 편지' 그린 만화가)가 그렸고

디자이너 수경선배가 살짝 손 본 거다. 내가 혼자 이정도 웹자보 만들 줄 알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나.

 

북콘서트니까 작가들이 나와서 이야기하고,

용산 책이니까 유가족들이 나와서 이야기하고,

콘서트니까 공연도 있다. 오프닝은 시와. 두번째 달 바드도 나오고

포스터 그림을 그린 앙꼬도 자신의 밴드와 함께 공연을 한다.

(하늘은 불공평하다. 그림도 잘그리는데 노래도 잘한단다. 재능은 가진 사람에게만 몰려있다)

 

나도 노래 잘해서 저런 곳에서 공연 한 번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프로그램

 

이야기 하나 - 유가족과의 첫 만남 

공연 시와
유가족(정영신)초대
 

이야기 둘 - 작업을 진행하면서 

내가 살던 용산(스크린으로 보여주기)
공연 앙꼬밴드
참여 작가들의 이야기
 

이야기 셋 - 요즘 용산은 

공연 바드(예정)
용산 범대위 이야기
 

엔딩 

공연 엄광현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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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8

1.

어떤 노래 가사는 한 번 들으면 좀처럼 떠날 생각을 안는다.

가슴에 콱 박혀 몇번을 심장을 쥐어짜 숨막혀 켁켁 거리고 난 후에야

겨우 귀로 들을 수 있게 된다.

작년 가을에 처음 듣게 된 오소영의 '기억상실'이 그랬다.

그리고 지금, 시와1집에 실린 굿바이가 그렇다.

참 신기한 일이다. 이 노래 공연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던 노래인데.

그 때는 이런 느낌 없었는데.

 

2.

'잠에서 깨어난 밤이면 할 일 없어 어쩔 줄 모르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잠들기 전 늦은 밤 할 일없어 어쩔 줄 모른다.

외로워야지, 고독해야지, 생각을  하고 글을 읽고 글을 쓰게 될 거라 믿었는데

점점 술에 의존하고 싶은 생각만 든다. 긴 긴 밤을 혼자 술로 보내다니

안될말이다, 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자신이 없다.

 

3.

당장 어젯 밤만 해도 그렇다.

휴일근무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청소하고 쓰레기 분리수거해서 버리고 나니

이게 뭔가 싶었다. 회사, 퇴근하고 약속. 혹은 회사, 퇴근하고 집안일.

아, 이 무미건조한 삶. 갑자기 울컥해지고 술이 확 땡겼다. 후라이드 티킨이 땡겼다.

아마 저녁 해먹기 전이었다면 주저없이 시켜먹었을지도.

그래도 굴러다니는 광고 전단지 보면서 어느 집 치킨이 가장 싼지 보기까지 했다.

그러다 무언가 찾아볼 게 있어서 전쟁없는세상 소식지를 들춰보다가

이계삼 선생님이 <꽃섬고개 친구들>과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의 서평으로 보낸

기사를 읽게 되었다. 내가 청탁을 했었는데, 나에 대한 편지 형식으로 보내 그 글에는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에 실린 내 '채식이야기'에 대한 언급이 실려있었다.

젠장, 치킨 먹고 싶은 입맛이 뚝 떨어진다. 그 글을 보고도 치킨을 시켜먹을만큼

솔직하진 못하다, 나는.

 

4.

내일 회사에서 노조를 만들기 위한 첫 모임을 하는데,

뭐라도 준비를 해야할텐데 하나도 안했다.

원래는 주말에 타사 노사협약들도 들춰보고 노동법도 들춰보고 할 계획이었는데.

그냥 좀 귀찮아졌다. 일단 아는 게 너무 없어서 무엇을 어디서부터 해야할지 몰라서.

뭐 처음부터 잘 알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이건 좀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모르면서 예전엔 뭘 그리 아는척 떠들고 다녔나 싶어서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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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언제였더라 커피를 마시게 된 게...

짐자무시의 '커피와 담배'를 보면서(재성이랑 술먹고 봐서 중간이 졸았지만 ㅠㅠ)

나도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고싶단 생각을 했던 게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걸 보면

전쟁없는세상 초창기까지 난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중학교까지는 워낙 모범생이어서 선생님과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거는 안해서 안마셨고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과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거는 신경 안썼지만

커피를 마시면 이상하게 속이 더부룩해서 안마셨다.

내가 원래 유제품과 잘 맞지 않는데, 아마도 커피에 들어있는 프림때문이려니 했다.

대학때는 IMF 직격탄을 맞은 때라서 커피숍 갈 돈은커녕 밥먹을 돈도 없었고

믹스커피는 여전히 속이 더부룩해져서 안마셨다.

 

아마도 전쟁없는세상이 서대문 아랫집에 있을 때,

신혜가 베트남 다녀오면서 선물로 커피를 줬고,  때마침 오리 동생이 커피포트를 선물해 줬고

그들의 호의를 모른채 할 수 없어 억지로 먹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냥 썼다.

뭐 맥주도 처음 마셨을 때는 썼지만 먹다보니 괜찮아졌던 것처럼 커피도 그러려니 계속 노력했다.

노력 끝에 아주 즐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씩 추운날이나 비오는 날에는 커피가

생각나고 피곤할 때 한 잔씩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는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프림이 들어간 커피나 카페라테처럼 우유가 섞인 커피는 마시지 못했다.

 

프림이 들어간 커피를 마시게 된 거는 수감생활에서였다.

감옥 안에서 난 먹을 거에 대해 조금 금욕적인 생활을 했다. 초반에는 커피는커녕 과자도 손에 대지 않았다. 그러다가 조금씩 무뎌지고 누그러지며 군것질도 하게 되었다.

워낙 먹을 것이 없으니까, 아메리카노는 마실 수 없으니까,

1회용 믹스커피라도 가끔씩 먹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몸이 적응해버렸다.

마구 좋아하지는 않아도 먹고나서 속이 더부룩해지지는 않았다.

 

출소하고 나서는 원두커피도 믹스커피도 곧잘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왠지 뿌듯^^)

 

그렇다고 커피를 썩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무언가에 중독되어 내가 내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게 싫었다. 커피뿐만 아니라, 담배와 같은 중독성이 짙은 것들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려고 커피숍에 가면 마시는 정도. 혹은 사무실에서 아이들과 두런두런 둘러앉아 이야기하며 마시는 정도였다.

 

그런데 요새 부쩍 커피가 많이 땡긴다. 그것도 맛있는 커피가.

한 잔, 두 잔 먹던 것이 이제 중독이 되었나? 아니다. 중독이라고 말하긴 나는 아직 멀었다.

그래도 예전 같으면 혼자서는 절대 커피 안 마실텐데, 집에서 한 잔씩 내려먹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날 때도 예전에는 술마시러 가고 싶을 찬스에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가고 싶기도 한다.

 

지금도 일하다 재미없으니까 혼자 커피내려서 마시며 포스팅하고 있다.

 

커피를 안마시다가 마시게 되고, 이젠 맛있는 커피를 찾게 되고

그동안 학교를 떠나고 전쟁없는세상을 떠나고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언젠가 카페라테를 즐기게 되는 날이 오면, 혹은 밀크티를 즐기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 또 무엇이 변해있을까. 나는 어디에 있을까. 누구와 있을까.

 

하나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커피는 쓰다는 것.

 

싫어할 때도 썼고, 그냥 마셨을 때도 썼고, 맛있는 지금도 쓰고, 앞으로 커피에 대한 취향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쓸 거라는 것. 커피는 원래 쓴 맛이 나는 음료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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