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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 브레고비치 공연..


 

 



어디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집시 음악을 좋아한다. 집시들이 나오는 영화도 좋아한다.

그래서 고란 브레고비치의 공연에 안 갈 수가 없었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언더그라운드><아리조나 드림> 등에서 영화음악을 맡았던 고란 브레고비치...

 

그의 음악은 단지 '집시 음악'이라고 하기에는 다른 무언가가 많이 뒤섞여 있다.

크로아티아인 아버지와 세르비아 출신 어머니에 무슬림 아내,

유고슬라비아 시절에 태어났지만 더이상 그가 태어난 나라는 없는 시대.

그의 음악은, 다국적인 배경만큼이나 복잡하지만 아름답다.

 

 

(앞줄 왼쪽부터, 불가리아 출신 여성 코러스 3인, 알렌 아데모비치(아코디언과 북을 주로 연주하면서 노래도 했다. 어찌나 멋진지 그의 두 손목을 보호하고 있던 까만 손목 보호밴드가 되고 싶다는 생각만 줄곧!), 고란 브레고비치(때때로 전자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도 많이 했는데, 다양한 창법을 구사했다), 뒷줄은 웨딩 앤 퓨너럴 밴드(집시 브라스 밴드다))

 

언뜻 눈에 띄는 악기만 보더라도, 브라스와 전자기타와 아코디언과 불가리아 여성들의 애절한 목소리... 이 조합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러나 단언컨대, 정말 훌륭하다.

애절하고 아름다운가 하면, 흥겹고 떠들썩하고, 장중하면서 슬펐다가, 다시 기쁘고 즐거운.

정신없을 정도로 인간의 모든 감정을 순식간에 넘나든다. 주로는 집시 음악일 것이나, 고란 브레고비치 자신이 록밴드 출신이듯 록음악부터 시작해서 그가 섭렵한 문화의 다양한 음악 양식이 모두 섞여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삶과 사랑, 열정, 죽음, 모든 경험을 다 하게 된다. 그냥 그렇다고 말로 표현하는 건 정말이지 한계가 있다.

 



 

쩍벌남 자세는 맘에 안 들었지만 ~.~ 그가 브라스 밴드를 지휘하는 손모양들은 아주 느낌이 좋았다. 수많은 영화에서 보아 온, 동구권 사람들이 춤출 때 취하는 손모양. 팔의 움직임. 수도 없이 봤다. 게다가 옆자리에 함께 온 단원들인지 국내에 살고 있는 발칸 반도 사람들인지, 어찌나 신나게 박수치고 소리지르고 춤을 추는지, 덩달아서 더 신났던 것 같다.

 

팜플렛에서 몇 가지 흥미로웠던 부분을 추려보자면,

 

- 고란 브레고비치가 20대 초반부터 16년 동안 비옐로 두그메라는 록그룹을 이끌었으며, 80년대 동안 1500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릴 만큼 유명했다는 사실이다. 유고슬라비아의 비틀즈라고 불렸댄다.

 

- 전쟁 시, 군악대를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집시들에게 악기를 나눠주는 것이었단다. 특별한 가르침 없이도 어떤 악기든 잘 다루는 집시들은 곧 뛰어난 군악대가 되었고, 트럼펫을 이용해서 결혼식이나 장례식에서 음악을 연주하곤 했단다.

집시 브라스 밴드도 훌륭했지만, 언젠가는 집시 바이얼린 공연을 꼭 보고 싶다.

엘지 아트센터 같이 집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런 고급스런 공간이 아니라,

어느 식당이고 들이닥쳐서 연주하고, 침도 찍 뱉어가면서 춤도 춰가면서 연주한다는, 그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공간에서. 아. 별 수 없다. 여행 가야지.

 

그러고 보면 참 웃기다. 그 지역에서는 서민적인, 너무나도 서민적인 음악이며 밴드일 터인데, 극동의 한 나라에 와서는 최소한 3만원 이상 내야 볼 수 있는 고급 공연으로 탈바꿈하다니. 사진도 찍을 수 없고, 그래, 연주자들이 바닥에 침도 찍 뱉을 수 없는 그런..

 

- 고란 브레고비치가 한 말 중에 제일 맘에 드는 건, "집시 브라스 밴드 안에서 튜닝 되지 않은 인간적인 어떤 것을 찾고 있는 중이고 그들이 이를 실현시켜 주리라 믿는다"고 한 부분이다.

(자신이 실현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실현시켜 주리라' 믿는다는 표현..)

 

튜닝 되지 않은 인간적인 어떤 것, 막연하지만, 직관적으로, 알 것 같지 않은가.

그 날 공연에서 들었던 인간의 목소리만 하더라도,

불가리아 코러스는 무엇보다 애절하며 아름다웠고, (집시의 시간에서, 노을에 젖은 집시 여인의 얼굴이 떠오르는..)

고란 브레고비치의 목소리는 힘있고 멋있다가도 능청스럽고 느끼했고(섹스라는 노래에서, '스스스스스스 섹스' 할 때의 느끼함이란.. 우아.. 장난아니었다. ㅋ) 신났다.

알렌 아데모비치의 목소리도 참 아름다웠고, 트럼펫 연주자의 낮은 음색은 강하고 장중했다.

깔끔하게 다듬어지지 않았으되 각자 지닌 아름다움은 충분히 어우러졌고 감동적이었다.

악기 연주도 뭐.... 트럼펫은 어느 순간 태평소 소리를 내고 있었고, 알렌의 북 연주는 특이하게도 장구 치듯 북의 양면과 옆면까지 활용하고 있었다.. 정제되지 않은 기발함,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아름다움이 고란 브레고비치 음악의 매력이었다.

 

가사를 알아듣지 못 한 게 매우 아쉬웠고....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과...

고란 브레고비치의 모든 음악을 들어보고 싶다는...

 

2년 만에 본 공연이었는데, 대만족. 굶어도 좋아~

 

ps. 연극 '신곡'의 음악도 맡아서 했다는데,
찾아보니 이 연극, 이미지가 장난 아니다.
거의 피터 그리너웨이 영화를 연상시키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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