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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6

내일이면 이 곳을 떠난다.

 

지금까지 몇 번인가 숙소를 떠나며 눈물을 글썽였던 기억이 있다.
오래 머물렀건 짧게 머물렀건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 곳의 누군가와 1시간을 얘기했건,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건 , 그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엊저녁에 기예르모에게, ´나 금요일에 떠나, 내일이 마지막 날이야. 이렇게 슬픈 일이!´했더니, 그가 내게 하는 말, ´슬픈데 왜 떠나? 가지 마!´

 

유난히 기억하고 싶은, 이 곳 사람들에 대한 기록.

 

기예르모. 당신은 말이 별로 없죠. 하지만 늘 은근한 미소가 담긴 그 표정이 좋았어요. 늘 내게 먼저 인사해 오던 다정한 표정이 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하지만 스시라고 부르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냐고요... ㅎㅎ 어제도 스시라고 부르다니, 용서할 수 없어! 

 

룰리. 하하. 널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새벽까지 무슨 얘길 그렇게 했더라. 기억 나? 넌 맥주 몇 잔에도 쉽사리 취했지. 첫날 그 자리에서 눈 맞추며 잔을 들었던 그 순간을 기억해.

 

프란시스꼬. 당신도 무척 조용한 사람. 하지만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내게 칠레 남부의 아름다움에 대해 알려주고, 갈 만한 곳도 한 페이지 가득 추천해줬죠. 내게 tú가 아니라 usted라고 칭하는 이유를 물으니, 나에 대한 존중의 의미라고. 그래도 난 tú가 좋다고 했는데 여전히 당신은 나를 usted라고... 칠레 사람들의 첫인상이 차가운 것은, 소심해서 그렇다는 비밀!을 알려준 것도 당신. :-) puerto varas에 꼭 갈께요. 그리고 당신을 기억할께요.

 

루벤. 아.... 루벤 아저씨... 우리가 동네 산책을 나섰던 게 두 번. 내가 아저씨의 말을 이해하지 못 할 때마다, 아저씨는 길 가운데에 멈춰서서 어떻게 쉽게 설명할까 곰곰히 생각하곤 했죠. 그 때의 표정이 너무 좋았어요. 고마웠구요. 뽄체 데 두라스노(백포도주+삐스꼬+복숭아)를 마시고 쓴 입맛 다시는 내 표정을 재밌어 했던 따뜻한 아저씨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나의 건강을 염려해 준 것, 인생에 대해 여러가지 조언해 준 것, 모두 고마워요. 아저씨도 늘 건강하기를....

 

훌리오. 너는 모르겠지만, 내가 여기 도착한 첫 날 이 동네를 탐색하고 있을 때, 내게 처음 인사를 건네 온 칠레인이 바로 너였어. 무척 예쁜 얼굴이라 감탄했었는데, 네가 같은 숙소에 묵고 있을 줄이야. ㅎㅎ 부엌문의 마법을 알려줄 때, 너의 그 부드러운 목소리를 기억해. 어제 네가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엠빠나다 먹을 때, 창가에서 장난치는 너는 정말이지 ´베니와 준´에서의 조니 뎁 같았어.. 항상 그렇게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사람이기를. 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야.

 

빅또르. 22일에 생일을 맞아 이제 겨우 스무살이 된 어린 친구. 개구쟁이 같은 네가 처음부터 무척 좋았어. 너도 날 무척 좋아해주었지. 내내 명랑하던 네가 어젯밤에 유난히 우울해 보여서 말을 걸었던 건데, 그래... 넌 여기가 지루했던 거야.. 땡볕에 일하는 것도 신물 나고, 모두가 연상인 것도, 친구들과 애인이 모두 산띠아고에 있는 것도.. 난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넬 수 없었고, 그게 참 답답했어. 참 많은 얘길 했구나.. 가족에 대해.. 사랑에 대해... 하하. 네 여자친구를 정말 사랑하니? 확실해? 내 짖꿎은 질문에 넌 머뭇거렸지. 거 참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야 하고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아닐 지도 모른다, 내 마음으로 들은 네 답은 바로 이건데, 맞나? ㅎㅎ 아무튼 너와의 가벼운 포옹, 서로의 등을 토닥거려 줄 때, 그게 참 위안이 되었어.. 너도 그랬을까? 아, 마지막 말 또한 고마워... 넌 괜찮을거야. 나 또한 이 말을 너에게 해 주고 싶었어. 넌 괜찮을거라고..

 

 

그 때 그 친구들... 어린 프란시스꼬와 빅또르 그리고 엘리아스, 프란시스꼬



거의 늘 외로웠던 것만 같은데, 실은 아니었다.
내 여행에 참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주었구나.
난 행복한 사람, 그리고 모두에게 고마워.

 

리차르. 루이스와 데이시. 수사나. 레오나르도. 이졔르모 아저씨. 마리아와 뚜빡. 실비아. 아이다. 다리오. 까를로스와 빠뜨리시오. 리까르도. 에콰도르의 빠블로와 페루의 빠블로. 레네. 앙헬. 리스. 글래디스와 갈로. 아르헨띠나의 훌리오와 볼리비아의 훌리오. 페루의 호세와 볼리비아의 호세. 로살리아. 다니엘. 요아나. 울리와 마틴. 까를과 빠올라. 아우렐리아. 호르헤. 요살린과 움베르또. 루이스. 에릭. 그리고, 마르꼬.... 당신을 잘 잊어가고 있어. 잊을 건 잊고, 그리고 기억하려 해....

 

모두들 행복하길 바래요.
길에서 나를 도와주었던, 이름을 알 수 없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도. 엊그제 깔라마의 어느 식당 1층, 화장실을 무료로 이용하게 해 준 할아버지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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