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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거라, 네 슬픔아 - 신경숙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비가 풍기는 냄새와
그 비가 남기는 여운이 나는 좋다.
그때면 얼굴만 바깥으로 내밀고는 사방을
휘둘러본 뒤에 눈을 감고 코를 큼큼거려본다.
-p36

누군가 인간의 여행이 계속되는 것은 언젠가는 떠나온 곳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페인은 여기에서 이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좋겠다, 싶은 장소와 풍경에 자주 마주쳤다. 투우장에서 마타도르가 진짜 소의 숨통을 끊는 것을 그 피비린내에 기겁을 하긴 했어도 프라도 미술관에서 본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비롯한 검은 그림 앞에서는 정신이 번쩍 나 숨을 죽였다. 세비야의 플라멩고를 볼 적에는 무희의 카리스마에 전율했고 무어왕국의 마지막 요새였던 알람브라 궁전이 고요 속에 간직하고 있는 폐허의 아름다움 앞에선 말을 잃었다. 이 모두 돌아갈 수밖에 없는 자의 마음이었기에 더 충돌했을까. 돌아와서는 창문 옆에 놓인 빈 의자처럼 일주일째 줄곧 잠을 잔다. 그만 깨어나야겠다.
-p82

집집마다 긴 장대를 바깥으로 밀어내놓고 빨래들을 널어놓아 처음에는 참 희한한 풍경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 머무는 동안 자꾸 보게 되니 금세 정이 들었다. 페루의 티티카카 호수 안에서 갈대로 집을 짓고 사는 우노족들을 보게 되었을 때 나는 갈대 위에 널어놓은 빨래들을 바라보느라 자꾸만 한눈을 팔았다. 일본의 시골마을을 지날 때도 내가 유심히 보았던 것은 그들의 전통가옥 구조가 아니라 집집 마당에서 하얗게 마르고 있던 빨래들이었다.
- p209

개가 사람을 의지한다면 고양이는 공간을 의지한다.
개가 사람의 사랑을 원한다면
고양이는 공간의 아늑함을 원한다.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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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말대로 이 책은 비오는날
눅눅한 기운이 나는 곳에서
편하게 누워 읽으면 참 좋을 책이다^^
신경숙의 편안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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