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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나자프

나자프 -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아니라 부시가 이 반란에 불을 붙였다

 

밀란 라이 (2004. 8. 13)

(원문은 http://www.zmag.org/CrisesCurEvts/Iraq/IraqCrisis.cfm) 참조

 

 

다수 시아파에 대한 습격

 

미국은 이라크인 다수에 대한 전쟁을 시작했다. 가장 최근의 이 반란을 촉발한 것은 시아파 저항세력의 전투성이 아니라 완전한 지배를 위한 부시행정부의 욕망이다. 미국은 다수파인 시아파를 길들이려 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미군은 무크타다 알-사드르의 병력과 8일간 수백명을 사망하게 하는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나서 이라크 남부의 나자프에서 시아파의 최대 성지인 이맘 알리 사원을 포위하였다.

이라크 임시정부에 따르면 ‘미 공군은 시아파 도시인 쿠트를 폭격하여 72명을 죽게했고 약 150명을 부상당하게 했다’(BBC뉴스온라인, 8월 12일) ‘영국군은 아마라와 바스라에서 저항세력과 격렬하게 싸웠고...아마라 남쪽 거리에서는 시아파 군대를 10명 사살하면서 밤새 싸웠다고 민병대가 밝혔다. 병원 관계자는 시민 4명도 사망했다고 말했다’ (텔레그래프, 8월 12일 12면) ‘목적은 아마라에 대한 통제를 재획득하는 것이었다’고 영국군 대변인인 스파이크 윌슨 대대장이 말했다. (‘영국군, 10명 사살’ 타임즈 8월 12일) 통제가 모든것이었던 것이다.

 

 

다음 차례 : 사드르 시티, 바그다드

 

‘이야드 알라위 총리에 대한 최대의 도전 가운데 하나는 수도에 대한 정부 권위를 확실히 하는 것이다. 바그다드 북동쪽의 시아파 거주지로 알려진 사드르 시티는 점점 1980년대의 베이루트와 닮아가기 시작했다. 미군 탱크와 전투기들이 반란을 공격함에 따라 지난 주에 수십명이 죽었다’ (텔레그래프, 8월 12일 12면).

 

텔레그래프의 아드리안 블럼필드가 사드르 시티를 방문했다. ‘미군에 의해 시민들이 살해당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제 피가 흥건한 병원 수술실 바닥에서 의사들은 미군 탱크의 병사들이 쏜 총에 배를 맞은 6살난 알리 후세인을 살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의사들은 말했다. ‘오늘 적어도 20명이 죽었다’. (텔레그래프, 8월 12일 12면)

 

사드르 시티의 상인인 메흐디 누리는 말했다. ‘미국인들은 지금 우리를 이길 수 없다. 미국인들은 평범한 이라크인들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싫어한다. 우리는 그들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싫어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죽음과 더 많은 죽음만 목도할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미군이 나가기를 애원한다’ (텔레그래프, 8월 12일 12면)

 

알라위는 워싱턴을 위해 봉사한다 이것은 나자프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다. ‘이라크 정부군 역시 개입되어 있지만 그들의 참여는 주로 정치적인 이유때문이다 - 특히 이라크 임시정부의 총리를 완전히 뒷받침하는 작전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조나단 마커스, 외교 통신원, BBC 뉴스온라인 8월 12일) ‘임시정부의 수상 이야드 알라위는 사드르의 메흐디 민병대를 완전히 파괴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그의 신용을 경계선위에 놓았다.’ (텔레그래프, 8월 12일 12면)

 

그러나 ‘이라크의 두명의 부통령 가운데 한명이자 시아파 최대정당인 다와 당의 지도자인 이브라힘 알-자파리는 어제(8월 11일) 미군은 나자파 공격을 중단해야 하고 그 임무를 이라크 보안군에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가디언, 8월 12일 3면)

 

자파리는 ‘올해 초 의견조사에서 이라크에서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 수위에 올랐다’ (파이낸셜타임즈, 8월 12일 7면)

 

 

사드르가 아니라 미국이 이 반란을 시작했다

 

‘바그다드의 한 외교 소식통은 어제 왜 성직자가 이 피비린내 나는 반란을 이끌고 있고 4개월동안 선동해왔는지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영국군, 10명 살해’, 타임즈 8월 12일)

 

언론보도는 이 폭력의 기원을 모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간단한 진실은, 최초의 ‘사드르 반란’에 있어 폭력은 시아파 군대가 아니라 미국에 의해 ‘선동되었다’는 것이다. 시작점인 8월 2일로 돌아가보자. ‘미군은 바그다드에서 영향력있는 수니파 성직자를 체포하고 쿠파에 근거하고 있는 급진 시아파 무크타다 알-사드르 추종자들과의 2개월간의 휴전을 깨면서 어제(8월 2일) 두 이슬람 정치세력에 대해 공격적인 자세로 돌아섰다. 바그다드의 사드르 대변인 셰이크 마흐무드 알-수다니는 미군이 사드르의 집을 포위했다고 언론에 말했다. 로이터뉴스는 미군이 나자프 옆의 쿠파에서 사드르 집 근처까지 이동했고 메흐디 민병대와 교전하고 있었다는 목격자의 말을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즈, 8월 3일 9면)

 

흥미로운 것은, 뒤에 부인되었지만 처음 보도에서는 사드르를 체포하는 것이 임무였다는 것이 명확했다는 것이다. ‘미군은 작년 나자프에서 라이벌 성직자 살해와 관련하여 사드르에 대해 체포영장이 청구되었다고 말한다’. 인디펜던트誌는 또한 ‘올해 초 휴전협상 당시 이라크 관리들이 사드르는 체포에 직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인디펜던트, 8월 3일 25면) 또다른 거짓말인 것이다.

며칠 후 알라위 정부의 고문인 사바 카딤은 사드르 체포가 최우선이라고 간접적으로 확인했다. ‘사드르가 체포될 것이냐고 물었을때, 카딤은 “우리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범죄자들과 싸울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세력이 큰지는 중요하지 않다”’ (가디언, 8월 7일 1면)

 

8월 2일의 공습이후 ‘성직자들의 고위 조력자들을 몇명 체포한 것에 대응하여 사드르의 지지자들이 이라크 경찰 18명을 붙잡고 있는 동안 긴장이 고조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나자프에서의 본격적인 폭력은 8월 4일 시작되었다. (가디언, 8월 6일 2면)

 

8월 5일 이전에 ‘무크타다 알-사드르에 연계된 군대는 영국군에 대한 성전을 선포했다’. 8월 3일 영국군은 바스라에서 사드르 지지자 4명을 체포하였다. 전투는 8월 5일 ‘그들을 석방하라는 시점인 정오가 지나서’ 발발했다. (텔레그래프, 8월 6일 14면)

 

이 모든 것은 올 봄의 ‘사드르 반란’의 시작과 매우 유사하다. 그것은 ‘미 점령당국이 그의 신문을 폐쇄하고 핵심 조력자를 체포하고 온건 시아파 지도자 살해혐의로 그의 체포를 요구한 이후’ 발발했다. (BBC 뉴스온라인, 6월 16일)

 

8월 5일 아마라의 사드르 대변인은 이러한 최근의 폭력에 대해 매우 정확하게 언급했다. ‘점령군의 행위로 인해 휴전은 끝났다’. (텔레그래프, 8월 6일 14면) 사드르는 휴전을 요구한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같은 날 ‘사드르의 대변인은 사드르 군대와 미군 사이에서 6월에 합의된 휴전의 회복을 요구했다’ (파이낸셜타임즈, 8월 6일 5면)

 

나자프의 주지사인 아드난 알-주루피는 이러한 요청에 대해 ‘또다른 휴전을 위한 타협이나 여지는 없다’고 대응했다.’ (타임즈, 8월 7일 18면) 어느 미 외교관은 ‘이것은 우리가 정말 이길수 있다고 느끼는 전투다’라고 말했다. (텔레그래프, 8월 7일 12면)

 

 

더 이상의 휴전은 없다

 

사드르가 휴전을 원했던 이유는 정치 과정의 일부가 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첫 휴전협정의 일부로서, ‘사드르는 나자프 출신이 아닌 그의 지지자들이 “그들의 임무”를 다하고 집으로 갈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는 내년 선거에 출마하게 위해 정당을 결성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드르가 민병대에게 나자프를 떠나라고 명령하다’, BBC 뉴스온라인, 6월 16일)

 

바그다드에 있는 BBC의 두메타 루스라는 비거주 전투원들은 나자프를 떠나라는 명령은 ‘미래 이라크 정부에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시험적인 조치’일 수 있다고 여겼다. 사다르는 ‘지지자들에게 이라크 보안군을 공격하지 말라고 했고 최근에 형성된 임시정부는 “통일된 이라크를 건설”하는 기회라고 말했다’. (‘사드르가 민병대에게 나자프를 떠나라고 명령하다’, BBC 뉴스온라인, 6월 16일)

 

사드르는 더 이상 임시정부를 미국의 꼭두각시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는 군사적인 동원이 아니라 정치적인 동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알라위 정부와 부시 정부가 두려워하고 파괴하기를 원하는 것은 정확히 다수 시아파의 정치적 힘이다. 그것이 그들이 사드르를 사로잡기 위해 공격을 감행한 이유다. 그것이 그들이 나자프를 공격하고 수백명을 죽이는 이유다. 그것이 그들이 이라크 전역에서 시아파 지역사회를 공격하고 있는 이유다. 미국의 지배에 대한 위협은 사드르의 총이 아니라 득표력이다. 선거(국민의회 선거라도)는 (정치적) 반대가 함께 뽑히거나 분쇄될 때까지 치러질 수 없다. 8월 9일 바스라의 전투에서 사망한 병사 ‘리 오캘러헌’은 다음주에 영국으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다. 그의 이모이 마가렛 에반스는 ‘토니 블레어에 대한 내 메시지는 우리가 거기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왜 이라크에 있는가? 내 메시지는 남아있는 모든 젊은이들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텔레그래프, 8월 11일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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