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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외교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어제까지 불가능하게 보였던 일이 오늘 이뤄지고, 어제의 적이 오늘은 악수를 하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 이 모든 움직임이 우리나라의 안위와 긴밀하게 관련된 것이라는 점에서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중간선거가 끝나자마자, 북한과 미국이 관계 개선을 위한 모색에 착수했다. 북한은 9일 장기 억류 중이던 미국인 케네스 배와 매슈 밀러를 전격 석방했다. 지난달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을 먼저 석방한 데 이어 모든 미국 억류자를 풀어준 것이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케네스 배 등 2명의 신병을 넘겨받기 위해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특사로 평양에 파견했다. 클래퍼 국장은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이래 북한을 방문한 미국의 최고위직 공직자이다. 미국 국무부가 환영 성명에서 북한의 정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을 사용한 것도 눈에 띈다.

우리 정부는 클래퍼 국장의 방북에 대해 미국은 정책과 정보가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으므로 정보를 담당하는 클래퍼 국장의 방북으로 6자회담 재개 등 북한정책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제2차 남북 고위급 회담 무산의 와중에 미국의 고위급 인사가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북한을 방문했다는 점, 아들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2006년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뒤 강경한 대북정책에서 6자회담 재개로 방향을 선회한 적이 있다는 점은 우리 정부의 ‘희망적 관측’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센카쿠열도(중국이름 댜오위다오)와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중국과 일본이 1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를 계기로 급속하게 관계 정상화를 하기로 한 것도 우리 외교에는 큰 부담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은 8일 베이징에서 2년2개월 만에 정식 외무장관 회담을 열어 양국 간 경제, 전략 대화를 점진적으로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앞서 두 나라는 고위 당국자 간 협의를 통해 센카쿠열도 문제 등에 이견이 존재한다는 등의 4개 항에 합의하고 이번 아펙 정상회의 때 2년5개월 동안 중단돼왔던 양국 정상회담을 재개하기로 사실상 합의했다. 우리의 처지에서 보면, 일본 문제에서 꼭 중국과 입을 맞춰 공조해온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대일 비판 전선 이탈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다. 또 일본은 일본인 납치 문제를 고리로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을 북한에 파견하는 등 북한에 대해서도 접촉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런 속에서 우리에게는 악재만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동맹국인 미국과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를 ‘무기 연기’하기로 했지만 설명력 부족한 의사결정으로 국론만 더욱 분열시키고 있다. 또한 미국이 주한 미군 기지에 배치하려고 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 체제 도입에 대해서는 중국으로부터 강한 견제와 비판을 받고 있다.

지금 우리 외교가 당면하고 있는 사면초가의 상황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겉만 화려하고 내용이 부실한 외교정책이 부른 필연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 우리가 잘할 수 있고 상황을 주도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북관계 개선이 그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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