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대규모 공안정국으로 정권 위기 덮을 수 있을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대규모 공안정국의 조짐이 빠르게 드러나고 있다.

19일의 헌법재판소의 충격적인 통합진보당 해산 선고가 내려진 직후 김진태 검찰총장은 긴급 공안대책협의회를 개최해 헌재 결정에 불복하거나 집회·시위 등 집단행동이 발생할 경우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통합진보당 해산 국민운동본부'와 ‘활빈당’이 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통합진보당 10만 당원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바로 다음 날에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에 사건을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고발을 주도한 '통합진보당 해산 국민운동본부'라는 단체의 대표는 부산지역 최대의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의 담당 검사였던 고영주 변호사다.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부림사건'은 학생,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도 없이 불법 체포,감금, 고문한 대표적인 용공조작 사건이다. 이 시기는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 정권이 집권 초기에 통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민주화운동 세력을 탄압하던 때였다. 35년이 지나 다시금 ‘부림사건’의 망령이 되살아난 셈이다.

앞으로 진보당 당원 10만 여 명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경우 국가보안법 수사의 특성상 먼지털이식 사상·행적에 대한 검증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당적을 가졌던 이들은 물론 피소된 당원들의 친인척, 지인 등에 대한 마녀사냥이 진행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재판관 9명 중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낸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독일에서 공산당 해산 결정이 이루어진 후 12만5천여 명에 이르는 공산당 관련자가 수사를 받았고, 그 중 6~7천 명이 형사처벌을 받았다”며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일이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한 말이 이미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로의 회귀는 안창호·조용호 재판관이 내놓은 보충의견에서 이미 징후를 보여줬다. 재판관 의견 8:1로 ‘압승’을 한 상황에서 보충의견을 굳이 낸 것도 이례적이지만 그 내용의 선정성과 오만함이 놀랍다. 두 재판관은 “어리석은 대중, 기회주의 지식인·언론인,사이비 진보주의자, 인기영합 정치인”이라는 선정적인 표현과 함께 “쓸모 있는 바보들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국민들과 비판적인 지식인들을 싸잡아 훈계하는 오만을 보였다. 진보당에 대해서는 ‘대역행위’, ‘불사(절대 용서할 수 없다)’라는 적대적인 단어까지 사용했다. 87년 민주화투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헌법재판소에서 조선왕조시대에나 쓰이던 봉건적인 단어들이 난무하니 읽고도 믿기가 어렵다. 여기에 법무부장관은 “헌법의 적”이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쓰고, 대통령은 “역사적 결단” 운운하며 뒷배를 잡고 있다. 이런 식으로 정권이 총체적으로 나선다면 관속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던 연좌제나 계엄까지 되살아날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리 성급하고 거칠며 적대적인가? 그 이면에는 정권의 초조함이 있을 것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최근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40%선이 무너졌다. 이는 취임 초기 국정원 대선 여론 조작 사건이 벌어졌을 때보다 더 낮은 수치다. 박 정권이 정권의 위기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대대적이고 광범위한 '종북몰이'를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이유다. 하지만 거짓은 진실을 가리지 못하며 탄압이 있는 곳에는 저항이 있게 마련이다. 진보당 해산을 계기로 한 공안정국 조성은 결국 정권의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다.

교수신문에서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들었다. 권력의 힘으로 사슴을 두고 말이라고 부르도록 겁박하는 시대라는 뜻이다. 겁을 주어 사람들의 입을 잠시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정의롭지 못한 정권은 결국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 불행한 종말을 맞는다. 이것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역사의 교훈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