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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독일판결보다 퇴행한 헌재

진보당에 대한 강제해산 결정은 1950년대 독일공산당해산판결과 자주 비교된다. 해산을 청구한 정부는 독일을 예로 들어 '민주주의의 적에게는 관용이 없다'는 방어민주주의의 논리를 내세운다. 수단의 폭력성이 입증되지 않아도 목적만으로 정당을 해산할 수 있는 사례로도 적극 활용했다. 의원직을 상실시키고 대체조직 금지 명분으로 200여개의 단체 해체를 강행한 것 등도 마찬가지다. 반면 진보당은 1950년대 독일 사정과 21세기의 한국은 전혀 다르다는 주장이었다. 60년전 반공을 앞세운 냉전질서하에서 벌어진, 그리고 독일에서조차 민주주의의 상처로 기억되는 사례를 드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반세기가 넘게 차이가 나고, 나치즘이라는 역사적 배경도 크게 다르지만 유사한 점도 있다. 1950년대 독일과 우리는 모두 분단국가다.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군사기지로 활용된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독일공산당 해산의 진정한 목적은 민주주의의 옹호보다는 나토 창설을 반대하고 미국 영향력 하의 재무장을 반대한 정치세력의 제거였다. 우리나라에서 진보당의 해산 또한 오마바 행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나 일본의 재무장화에서 걸림돌이 제거된 효과를 낳을 것이다.

이처럼 거시적으로 볼 때 두 사건은 일정한 공통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반세기가 넘는 시간의 거리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독일의 경험이 반면 교사는 될 수 있을지언정 전범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헌재의 진보당 해산판결은 독일공산당해산판결보다 더 퇴행했다. 독일공산당은 공산 정권인 동독과 직접적 연계가 있었다. 또 당의 강령에 맑스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명시했다. 반면 진보당은 북한과 연계된 증거도 없고 강령에서는 상해임시정부의 기본노선인 진보적민주주의를 채택했다. 헌재가 '숨은 목적’, ‘진정한 목적’을 내세운 것은 역설적으로 당의 목적이나 실제활동에서 독일과 같은 수준의 증거를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재정권 시절 ‘좌경분자’의 색출과정에서 보안경찰들은 '내심의 목적'을 찾아내기 위해 고문을 동원했고 허위자백을 받아내 증거로 삼았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오직 ‘심증'만으로도 진보당을 해산했다. 좋지 않은 선례보다도 퇴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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