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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성역?

헌재는 성역이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선고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큰 파장으로 일어나고 있다. 헌재가 진보당의 ‘숨은 목적’이며, ‘주도세력’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동원해 ‘관심법’ 수준의 논리를 전개한 것과,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없는 국회의원직 박탈을 월권으로 결정한 것이 이유다. 통치자들이 법에 따라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법치주의의 원칙을 헌재가 스스로 어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대신 헌재가 내세운 것은 ‘종북’의 논리였다. 북한과 연계되지 않았어도 북한과 유사한 주장을 하거나 한 때 국가보안법으로 수감된 경력이 있다면 ‘종북’으로 판정하기에 어려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헌법 대신 북한이 기준이되고, 민주공화국의 원리 대신 유신 독재가 내세운 ‘한국적 민주주의’가 대원칙으로 자리잡은 양상이다.

헌재 결정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새누리당은 이를 ‘헌법 불복’이라며 윽박지르고 나왔다. 특히 김무성 대표는 시민사회의 규탄 집회에 대해서도 “강력한 공권력으로 막아주길 촉구”하기도 했다. 헌재가 그렇게 결정했으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헌재의 결정을 ‘성역’으로 보는 이런 시각이야말로 전형적인 독재의 논리다. 유신 체제에서는 유신 헌법을 반대하는 행위,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하는 행위까지 처벌하는 ‘긴급조치’가 있었다. 지금 새누리당의 주장은 유신 체제의 긴급조치나 다를 바가 없다.

외려 지금 헌재 결정에 대한 비판론이 제기된 것은 박근혜 정부 2년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민주 역량이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라 평가할만 하다.

헌재는 1987년 헌법에 의해 창설되었다는 이유로 6월 민주항쟁의 소산이라고 일컬어져 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드러난 것처럼 헌재는 자신의 존립근거를 스스로 허물었다. 이는 헌법재판이라는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왜곡되고 편향적인 헌재 구성의 문제다. 헌재는 9명의 재판관을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고, 이 중 세 사람을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로, 또 세 사람을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로 임명한다. 대법원장 역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집권세력은 최소한 7명에서 최대 8명까지의 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지금의 헌재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보수 일색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는 이번 정당해산 심판이 법 대신 정치적 주의에 따라 매듭지어진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이제 헌재 자체를 수술대에 올리는 논의도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현 정권과 새누리당은 독일 헌재의 냉전시기 판례를 입에 달고다니는데, 그렇다면 헌재의 구성 역시 독일처럼 의회내에 재판관 선출위원회를 두고 2/3의 찬성으로 선출하는 방법도 검토할 만하다. 법관이나 검사로서 출세한 사람들로만 구성되는 관행도 벗어나야 한다. 그 출발은 이번 헌재 결정에 대한 시민사회의 활발한 토론과 논쟁이다. 민주공화국은 시민의 힘으로만 지탱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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