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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망 71년에 보는 일본의 범죄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우리 민족과 아시아인민들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강요하고 전쟁의 참화를 들씌웠던 일본제국주의가 패망한 때로부터 71년이 되였다.
그동안 세계는 참혹하였던 제2차 세계대전의 력사적상처를 치유하고 독립과 문명발전의 길로 나아가고있다.
그러나 일본은 세기와 세대를 넘긴 지금까지도 어지러운 과거를 청산하지 않고 새로운 죄악들을 덧쌓고있다.
조선민족말살을 노린 일제의 야만적인 학살만행
일제는 《대동아공영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선을 군사적으로 침략하고 조선민족말살책동에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지난날 일제가 조선민족에게 저지른 죄악중에서 가장 큰 죄악이 바로 력사에 전무후무한 대인간살륙범죄이다.
일본제국주의가 감행한 조선인살륙만행은 인간의 두뇌를 가지고서는 상상조차 할수 없는 가장 추악하고 가장 치떨리는 반인륜범죄이다.
일제는 저들의 대조선침략에 항거해나선 우리 인민들을 온갖 야수적인 방법을 다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다.
1905년 불법무효한 《을사5조약》을 날조하여 조선을 타고앉은 일제는 1906년 여름부터 1911년까지의 기간에만도 반일의병대들에 대한 《토벌》로 무려 15만명이상의 애국자들을 살해하였다.
일제의 식민지파쑈통치에 대한 우리 인민의 쌓이고쌓인 울분과 원한이 1919년 3월 1일 3. 1인민봉기를 계기로 폭발하게 되자 이에 당황망조한 일제는 수많은 헌병, 경찰무력과 완전무장한 수비대병력을 인민봉기탄압에 내몰았다.
일제살인귀들은 시위행진에 참가한 나어린 한 녀학생에게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기발을 쥔 그의 두팔을 칼로 뭉청 잘라버렸으며 녀학생이 쓰러지면서도 굴하지 않고 독립만세를 높이 부르자 그의 가슴을 찔러 처참하게 살해하였다.
일제야수들은 봉기자들을 총살하는것은 《흥미없는 일》이며 그들에게 칼을 쓰는것도 아깝다고 하면서 팔다리를 네마리의 소나 말에 매고 채찍으로 내몰아 사지를 찢어죽이거나 작두로 목과 팔다리를 잘라 나무에 매달아놓는짓도 서슴지 않았다. 하여 봉기전기간 무려 10여만명에 달하는 조선사람들이 일제의 야수적폭압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1930년대초에 동만의 방방곡곡에서 벌어진 유격근거지《봉쇄》, 《압살》을 위한 일제의 《토벌》작전은 극악한 전쟁범죄의 하나였다.
일제는 1932년 4월초 일본륙군성의 명령에 따라 라남주둔 19사단을 주력으로 하는 《간도파견대》를 편성하고 두만강을 건너 왕청과 훈춘, 연길과 화룡을 비롯한 농촌지구들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개시하였다.
일제살인마들은 《조선사람 100명을 죽이면 그가운데 적어도 공산주의자가 한명은 있을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죽이라.》고 뇌까리면서 간도일대의 조선인마을들을 불바다, 피바다로 만듦으로써 1932년 4월부터 1933년 3월까지의 사이에 4만여명의 조선사람들을 학살하고 수천, 수만호의 조선주민가옥을 불태워버렸다.
1936년 한해동안에는 9만 2 500여명에 달하는 인민들을 《사상범》으로 몰아 검거, 투옥하고 무참히 살해하였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침략전쟁을 더욱 확대한 일제는 조선을 저들의 《공고한 후방》으로, 침략전쟁의 교두보로 튼튼히 다질 목적밑에 혁명조직들과 혁명가들, 애국적인민들에 대한 탄압과 살륙공세를 더욱 미친듯이 벌려나갔다.
그러한 속에 항일유격대원들과 지하공작원들을 체포하면 눈알을 뽑거나 심장을 도려내고 가슴과 배에 참나무말뚝을 박아 살해하였으며 군도로 머리를 잘라 장대끝에 매달아놓거나 감자를 가는 기계에 집어넣어 갈아죽이는 등 상상 못할 야수적만행을 거리낌없이 감행하였다.
일제는 무고한 평화적주민들까지 아시아제패실현을 위한 제물로, 살륙대상으로 삼는 반인륜적범죄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간또대지진때 일제의 조선인학살만행은 일본의 민족배타적참살행위를 만천하에 고발하는 증거이다.
1923년 9월 1일 일본의 간또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도시가 페허로 되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일본정부는 민심을 다른데로 돌리는 한편 일본인들의 대조선적대감을 고취하고 그를 통하여 저들의 식민지지배를 더욱 합리화하기 위해 전대미문의 조선인《사냥》흉계를 꾸미였다.
그에 따라 일본왕의 《칙령》 401호로 계엄령이 선포되고 각 지방장관들에게 조선사람들을 철저히 탄압할데 대한 공식지령이 떨어졌으며 신문들이 《조선인이 방화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쳤다.》는 무근거한 류언비어들을 련일 보도함으로써 온 일본땅에 조선사람에 대한 증오의 분위기가 조성되였다.
당시 내무대신이였던 미즈노 렌따로의 지령에 따라 후나바시해군무전국을 통해 조선사람들을 박멸할데 대한 명령이 전국에 하달되였다.
군대와 경찰, 《자경단》, 《청년단》을 비롯한 피에 주린 살인귀들은 《오래간만에 법이 허락하는 사람잡이이니 흥이 난다.》고까지 줴치면서 조선사람들을 가차없이 목을 자르고 배를 갈라죽였을뿐아니라 눈알을 파내고 코를 베여냈으며 벌거벗겨 모욕을 준 다음 죽여서는 그 시체를 질질 끌고다니는 등 온갖 치떨리는 만행을 다 감행하였다.
조선사람들의 참상들을 직접 목격한 도꾜에 있는 각국 대사와 공사들이 야만적인 일본을 상대로 외교활동을 계속할수 없다고 하면서 일본외무성에 련명으로 항의를 들이댄 사실은 일제가 간또대지진때 얼마나 잔인하고 처참한 방법으로 대살륙전을 벌려왔는가를 여실히 말해주고있다.
간또대지진을 계기로 희생된 재일조선인들의 수는 《조선총독부》의 자료에 밝혀진것만 하여도 2만 3 000여명에 달하였다.
일제의 만행은 아시아침략에 유리한 사회정치적환경을 마련할 목적밑에 일본의 최고통치자가 직접 명령을 내리고 국가권력이 발동되여 그를 조직적으로, 계획적으로 집행한 민족배타적살륙전, 국가적테로행위였다.
일제는 840만여명에 달하는 조선의 청장년들을 강제련행하여 침략전쟁터와 죽음의 고역장들에 끌어갔으며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사냥》하듯 랍치, 유괴하여 치욕스러운 성노예생활을 강요하다 못해 그들중 많은 사람들을 참혹하게 학살하였다.
1942년 8월 미해병대가 과달카날섬에 대한 상륙작전을 개시하자 일제침략군은 공군기지건설에 내몰렸던 조선인《군속》 2 000명을 미국에 투항할 우려가 있다고 하여 일부는 밀림속으로 내몰아 굶어죽거나 병들어죽게 하였으며 나머지는 직접 총살하는 치떨리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태평양전쟁시기 일제는 전쟁마당에 끌고나온 조선청년들을 《식용》으로 잡아먹는 몸서리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1944년 2월 23일 제르본섬에서 일제식인종들은 조선사람 2명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에서 살을 도려내여 《고래고기》라고 하면서 먹어댔으며 이에 항의하는 140여명의 조선사람들에게 몰사격을 퍼부어 집단학살하고 식용하는 몸서리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일제는 조선인강제련행자들을 《숨쉬는 도구》, 《말하는 짐승》으로 취급하면서 소나 말보다 더 가혹하게 혹사하고 학살하였다.
그 어떤 시설물을 건설하거나 완공한 후 그 《안전》과 《보호》를 빌면서 살아있는 조선사람들을 《제물》로 하여 무참히 죽이는 중세기적인 만행도 뻐젓이 감행하였다.
일제는 패망직후 해방의 기쁨과 환희속에 그리운 부모처자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조국으로 돌아가는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저들의 죄악의 력사를 영원히 흑막속에 묻어두며 패전의 앙갚음을 위해 집단적으로 살해하는 천추에 용납 못할 범죄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1945년 8월 22일 아오모리현 오미나또항을 출발해 이틀 뒤인 24일 일본 교또부의 마이즈루앞바다를 항행하는 《우끼시마마루》를 폭파하여 거기에 타고있던 수천명의 조선사람들을 검푸른 바다속에 수장하였다.
조선민족을 멸족시키려는 일제의 책동은 비단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만이 아니였다.
일제는 바다에 기뢰를 부설하거나 배에 폭발물을 장치하는 방법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우리 동포들이 오른 배들을 폭파하여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학살하였다.
일제에 의해 침략전쟁터와 죽음의 고역장들에 끌려갔다가 목숨을 잃은 조선청장년들의 수는 무려 100여만명에 달하였다.
일제의 귀축같은 살륙만행은 성노예로 끌려온 20만의 조선녀성들에게 온갖 치욕을 안긴것도 모자라 14만 6 000명이나 무참히 죽인데서 더욱 여실히 드러나고있다.
일제야수들은 성노예들이 반항하거나 병에 걸리는 등 저들의 비위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갖은 추악한 방법을 다 동원하여 학살하였으며 그것을 하나의 도락으로 삼았다.
심지어 일제는 동료의 죽음앞에서 울고있는 성노예녀성들에게 《저년들이 고기를 못먹어서 그런다.》고 지껄이면서 죽은 녀성들을 토막쳐 가마에 삶아내서는 강제로 먹이는짓도 서슴지 않았다.
일제는 성노예들을 저들의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식용품》으로까지 리용하는 치떨리는 만행도 감행하였다.
태평양전쟁의 마지막시기 태평양상의 호니아라섬을 강점하고있던 일제는 보급로가 끊어져 기아상태에 빠지게 되자 무방비상태의 성노예들에게 무리로 달려들어 그들을 죽이고는 저마끔 칼을 빼들고 살을 저며내고 토막내여 먹어대는 몸서리치는 살륙범죄를 감행하였다.
지어 놈들은 부패방지를 위해 사람을 살려둔채 매번 먹으리만큼씩 사람고기를 잘라내여 먹는 방법을 적용하기까지 하였다.
구일본군보병 제144련대에서 복무한 니시야마 고기찌는 《1942년 7월 뉴기니아섬에 진출할데 대한 명령을 받고 식량보급이 없는 상태에서 80여일의 밀림행군을 하던중 우리는 성위안을 위해 데리고 다니던 위안부들을 총으로 쏴죽이고 군도로 각을 떠 먹었다.》고 고백하였다.
수십만 조선녀성들의 정조를 유린한것도 모자라 그들을 참혹하게 대량학살한 일제야수들의 만행이야말로 세계 그 어느 나라의 력사갈피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가장 추악한 반인륜적범죄이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을 악명높은 731부대의 생화학무기실험대상으로 삼는 치떨리는 만행도 감행하였다.
중국 흑룡강성 할빈시의 평방지역에 존재해있던 일본관동군휘하의 세균전부대인 731부대는 생화학무기와 관련한 생체해부실험, 생체랭동실험, 세균주입실험 등 온갖 비인간적인 실험을 해마다 헌병대로부터 《마루따》(통나무)라는 은어로 불리운 500~600명의 실험대상들을 보장받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731부대의 총무부, 생산부, 3부 부장을 한 가와시마 기요시(륙군소장)는 하바롭스크전범자재판정에서 《… 우리는 실험대상으로 쓸 사람의 부족을 느껴보지 못했다. 매년 〈특수공급〉체계에 따라 부대에 600여명을 보내주군 하였다.》, 《… 해마다 평균 무려 600여명씩 살해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일제는 패망이 박두하자 저들의 범죄적사실들을 은페하기 위하여 1945년 8월 9일 404명의 《수인》들을 청산카리와 기관총으로 살륙하고 그 시체마저도 완전히 없애버리는 살륙만행을 감행하였다.
인간의 두뇌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수 없는 일제의 천인공노할 살륙만행은 비단 근대시기나 조선에 대한 식민지파쑈통치시기에만 저질러진것이 아니였다.
인두겁을 쓴 야수 일본살인귀들의 귀축같은 조선인살륙만행은 왜구들이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의 길에 올랐던 고려시기때에도 감행되여왔으며 그 포악성과 야만성은 임진조국전쟁시기에 벌써 극도에 이르렀다.
왜구들은 1223년 5월과 1352년 3월, 1360년 윤 5월 김주(김해)와 파음도, 강화도일대에 침입하여 이 일대의 주민들을 모조리 학살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으며 그러한 만행은 고려 말엽에 이르러 더욱 성행하였다.
《세종실록》권101 세종25년 8월에는 《군읍을 도륙내고 불사르며 사람을 죽이고 랍치하며 재물을 략탈해가면서 닭과 개마저 남기지 않으니 연해 수천리 땅에 인적이 끊어졌다.》고 기록되여있다.
조선사람들에 대한 학살만행은 1592년 임진조국전쟁시기 절정에 달하였다.
일본침략자들은 1592년-1598년까지의 임진조국전쟁기간에 수십만명의 조선인민들을 남녀로소 가림없이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 랍치해갔으며 수많은 문화재들을 파괴, 략탈하였다.
지금도 일본 교또시에 있는 《귀무덤》은 임진전쟁시기 우리 민족을 야수적으로 살해하고 온갖 민족적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일본의 특대형 국가범죄, 죄많은 과거력사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력사적증견물로 되고있다.
수세기를 걸쳐 감행되여온 일본살인마들의 몸서리치는 조선인학살만행은 조선민족을 송두리채 멸살시키고 그우에 저들의 범죄국가, 살인왕국을 세우기 위한 인간대살륙전이였다.
일제는 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던 첫 시기에 벌써 《조선사람은 일본의 법률에 복종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는 조선민족말살정책을 공공연히 떠벌이며 우리 인민을 닥치는대로 체포, 투옥하고 학살하였다.
해방전 일제가 혁명력량을 탄압말살하기 위하여 실시한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불태워버리며 모조리 빼앗으라.》는 범죄적인 《3광정책》은 이미 고려시기와 조선봉건왕조시기를 비롯한 수세기전에 형성되고 실행되여온 살륙정책, 략탈정책이였다.
일본살인마들의 조선인살륙만행이야말로 민족배타적인 인간참살행위에 대한 국가의 조직성에 있어서나, 살륙행위의 지구성과 규모, 그 방법의 잔혹성에 있어서 미국의 인디안살륙과 히틀러파쑈도당의 유태인멸살행위를 무색케 하는 전대미문의 야수적인 반인륜범죄이다.
조선민족에 대한 일본의 뿌리깊은 말살책동은 시효가 없는 특대형범죄이다.
반인륜범죄의 주범 일본은 그 누구의 《인권》에 대하여 운운할 자격이 없다
오늘 일본반동들은 패망후 저들의 반인륜적범죄에 대해 조선인민과 세계앞에 백배, 천배로 사죄할대신 과거범죄를 부정하고 찬미하는 력사외곡과 반공화국적대시정책을 집요하게 추구하고있다.
현 집권세력은 지난해 8월 《태평양전쟁패전 70년 담화》라는데서 《전쟁과 관련이 없는 전후세대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지워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과거범죄에 대한 인정과 사죄, 배상을 전면거부해나서고있다.
오래전부터 감행되여온 과거범죄를 정당화하는 력사교과서외곡놀음을더욱 로골적으로 감행하고있으며 최근시기에는 조선인민을 비롯한 아시아나라 인민들의 고혈이 스민 범죄현장들을 《일본의 근대화에 기여한 산업대상》들로 둔갑시켜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철면피한 행위를 감행하였다.
지난해말에는 겉발림에 불과한 《사과》와 몇푼의 자금제공을 미끼로 남조선괴뢰들을 얼려넘김으로써 저들의 과거범행을 사실상 부인하고 그 청산을 회피하는 일본군성노예문제와 관련한 《합의》까지 조작해냈다.
최근시기 과거범죄를 회피하고 그것을 재현하려는 일본집권세력의 책동은 극악한 대조선적대시정책으로 표현되고있다.
일본반동들은 조일평양선언에 따라 해결된 《랍치문제》를 더욱 물고늘어지면서 반공화국《인권》소동과 고립압살책동에 매여달리고있으며 재침야망을 로골적으로 드러내고있다.
《랍치문제》를 모든 학교들의 교육내용에 포함시킬것을 결정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랍치문제》이상의 인권문제가 없으며 조일관계에서도 이것이 근본문제라는 등 갖가지 간특한 궤변들을 여론화하고있다. 이를 구실로 반공화국《인권》소동을 더욱 악랄하게 벌리고있으며 미국의 대조선고립압살책동에 편승하여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군사적도발, 총련과 재일동포들에 대한 탄압소동에 광분하고있다.
최근까지도 일본당국자들은 저들의 과거죄악을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조선의 주장은 일방적인것이며 받아들일수 없다고 공공연히 망발하고있다.
이것은 조선에 대한 침략과 략탈의 엄연한 력사를 흑막속에 묻어버리려는 파렴치한 술책으로서 도덕적으로 저렬하고 철면피한 일본의 몰골을 국제사회앞에 더욱 똑똑히 드러낸것으로 된다.
제반 사실들은 일본이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모든 범죄에 대한 사죄와 배상의 국가적책임에서 어떻게 하나 벗어나는 한편 일본사회에 대조선적대의식과 군국주의를 불어넣음으로써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기어이 실현하려 하고있다는것을 실증해주고있다.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는 이미 오래전에 끝장났지만 일본의 추악한 반인륜범죄의 력사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일본이 어지러운 과거에서 교훈을 찾을대신 재침책동에로 끝까지 나아간다면 인류앞에 씻을길없는 죄악, 시효가 없는 더 큰 범죄를 저지르는것으로 될것이다.
일본이 날강도적인 방법으로 남의 나라 땅을 강탈하고 지배하던 시대는 영원히 지나갔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천년숙적 일본에 대해서는 대를 이어가면서 피맺힌 원한의 대가를 기어이 받아내고야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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