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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요즘 방학이 반은 지난거 같은데 뭐하고 지내나요? 게임한다고요? 그래요.. 너무 게임만 하지 말고 동네도 한바쿠 돌아보고 친구들도 만나서 놀 궁리도 하고 집에도 놀러가고 하세요. 오늘 전에 일하던 핵교에 갔다올 일이 있었어요. 작년에 아저씨가 싼타아저씨 하며 친구들 선물 나눠줄때 내년엔 박스 줍는 일 잠시 쉬시고 싼타 할머니가 오실거라 했었는데.. 올해 싼타는 새로 부임하신 남성 교장선생님이 싼타할아버지를 하셨다 합니다.
오늘은 아저씨가 진보와 보수를 얘기해주려고 합니다. 그럼 먼저.. 학교가 진보인 학교가 있고 보수인 학교가 있을까요? 친구들이 진보 학생, 보수 학생으로 구분이 되나요? 아니면 진보 교육, 보수 교육? 여기서 보수는 뭘 고치거나 수리하는 보수가 아니고 요즘 으른들이 얘기하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그 보수입니다. 친구들이 타는 버스에 진보 버스가 있고 보수 버스가 있을까요? 아니면 친구들이 오르는 산이 진보 산이 있고 보수 산이 있나요? 없죠? 그래요. 다 으른들이 지들 세력을 뻗치려는 맨들어진 말들일 뿐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동족끼리도 전쟁을 하였는데 그때 당시 생각이 내 편이 아니면 다 적이였죠. 그래서 아저씨네 동네에도 보도연맹 사람들을 죽였다고 보복으로 당시에 내 편이 아닌 사람들이 이두저두 아닌 동네사람을 인근 야산에 끌고가 다시 죽인 곳이 유적?지로 남아있습니다. 그런 역사적 상처가 있기 때문에 요즘 나이든 할아버지들은 좌파니 우파니 하며 니편 내편을 가르며 스스로 잇속들을 챙겨먹고 있습니다.
아저씨가 생각하는 진보란 지금과는 먼가 다른 더 나은게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찾는 일체의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평소에 휴지나 꽁초를 버리는 사람이 음.. 휴지나 꽁초를 버리지 않는게 우리들이 살아가는데 더 좋은겨 하며 휴지나 꽁초를 버리지 않으려는 노력과 행동이 진보이지요. 지금과는 다른 더 좋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찾는 노력, 이게 진보입니다.
보수는요. 지금과는 다른 먼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금이 가장 좋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더 좋은 것은 없고 지금이 가장 좋고 이것을 잘 유지하려는 일체의 행동과 노력. 이것이 보수입니다. 우리사회는 돈이 많은 사람들 위주로, 추앙하며, 추앙받으며 살아가는 사회라 돈없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흘러가고 있어요. 그러면 우리가 사는 사회를 그냥 유지만 하려한다면 많은 사람이 점점 불행해 지고 돈많은 사람은 점점 추앙받으며 돈이 많아지겠지요? 누구나 돈많은 사람을 부러워하며 숨죽이며 죽어가겠지요. 그렇다고 보수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사는 장점을 잘 유지하는 역할을 일면 더욱 잘 할 수 있거든요.
그럼.. 진보도 보수도 아닌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요. 그 많은 사람들 역시 묵묵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뭘 유지하고 싶지도 않고, 지금보다 더 좋은 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요. 아저씨는 아마 대부분 우리 이웃의 80% 가 여기에 속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들도 뭐가 좋은 사회이고 뭐가 나에게 행복하다는 판단은 하고 있지요. 너무나 정확히요. 사안에 따라 이들은 흔히들 말하는 진보가 되기도 하고 보수의 편에 서기도 합니다.
그래요. 세상은 진보와 보수로 무자르듯 갈라서 바라볼 수 없는 것이죠. 진보니 보수니 하는 것들은 다 자기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호칭일 뿐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에 유익한 일이냐 특정 사람들에게만 이득이 가는 일이냐의 눈가림이죠. 진보니 보수니 하는 말들은 다 개뻥입니다.
학교를 보고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들은 모두 자기 세력을 세우기 위해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이지요.
학교는 친구들에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를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친구들은 앞으로 한평생 지구라는 동네에서 함께 더불어 잘 살아가야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게 현재의 좋은 가치를 계승발전 하는 것을 강조하는 선생님도 계실 것이고, 현재의 나쁜 가치는 이렇게 저렇게 좋은 가치로 바뀌어야한다는 선생님도 계실 겁니다.
모든 선생님들은 자기가 지향하는 좋은 가치를 가지고 계십니다. 이런게 없다면 선생님이 되기 어렵구요. 고심고심해서 이런게 좋은겨 하는 생각을 무자르듯 진보 선생, 보수 선생 혹은 진보 교육, 보수 교육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진보 학생 보수 학생이 따로 없듯이요. 이렇게 상대방을 자신의 잣대로 규정하는 발상과 얘기들은 엄청난 폭력이며 으른들 싸움에 결국 그 피해는 학생, 친구들에게 돌아갑니다.
학교서는 친구들을 대하는 끝없는 애정과 그 정량에 의해서 모든 일을 결정할 일이지 진보니 보수니 하는 말이 하루 빨리 사라져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하루 빨리 진보교육이니 보수교육이니 어쩌구 하는 사람들이 없어져야겠지요. 그래야 친구들이 이 험난한 세상을 즐겁게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이번 방학때는 가까운 절에 다녀오시면 좋겠습니다. 바람소리, 새소리, 풍경소리도 듣고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차가운 샘물도 시원하게 들이키고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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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있어도 즐거웁기' 저도 그걸 연마하려고 노력중입니다. 다행히 사랑이가 곁에 있어서 그런 수련에 많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읽는 라디오를 하면서도 역시 마찬가지고요.저는 음악을 듣는 것은 좋아하지만 노래를 부른다거나 악기를 연주한다거나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재능이 꽝입니다. 그래서 노래를 잘 부르거나 자기만의 악기연주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 부럽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악기연주의 멋을 잠깐이나마 느껴봤네요. 차수한세 Arioso도 좋습니다. 재미있는 얘기랑 좋은 음악 잘 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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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파는 사람과 땅을 파지 않는 사람은 큰 차이가 벌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노력하는 사람과 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치이는 마치 미사일을 쑬때 0.5도 틀어져도 떨어지는 곳은 수백미터가 달라지 듯 저마다 죽을때 많은 차이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아닐 수도 있겠죠. ^^ 그러나 약자들이 지금보다는 더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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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뚱그려 혼자 즐거웁기라는 표현을 하였지만.. 사실 그것이 우리가 노력하는 참선, 형이상학의 종착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깨달음은 그냥 구해지는 것도 아니고.. 염불이나 참선이나 기도를 통한 목적의식적인 행위로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신론자인 저에게는 깨달음이란 신과 맞닥뜨리는 그런 즐거움이라 여겨집니다. 제가 선택한 방법론은 직접 느끼는 것이지요. 햇볕의 따스함 속에 있는 온 우주, 자연 속에 존재하고 있는 절대자를요.One River & Many Well.. 존경하는 Mathew Fox라는 신학자의 주장이기도 한데.. 이게 저의 신관이기도 합니다. 저 밑에 진리의 강이 흐르지만 파고 들어간 우물의 모습은 여러가지이다. 어떤 이는 곧바로 파내려가 진리의 강을 만나지만.. 어떤이는 지그자그로.. 어떤이는 ㄱ자나 ㄹ자로 파고내려가 만나고... 어떤이는 ㅈ자로 파내려가다 절벽 낭떨어지를 만나 떨어져 내려 진리의 강을 만나지 못하는... 그렇다고 제가 진리의 강을 아직 만난건 아닙니다. 저도 땅을 파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저는 정한수 떠놓고 간절히 기도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곧 종교이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관점을 떠나서 혼자있어도 즐거웁기는 우리의 행복과
주체적인 행동과 참 많은 것을 함축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 삶에 이런 기술이 참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관찰되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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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얻는 방식을 내가 누구인지 침전해가는 것과 신에게 온전히 모든걸 맡기는 2가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이유는 잘 모르겠음) 첫직장인 종교단체서 일하다 홧병나서 그만두고 나와서 유신론자로 살지, 무신론자로 살지 심각하게 고민하다 제가 선택한 방식은 유신론자로서 신에게 온전히 맡기는 방식이었습니다. (당시엔 무척 처절했음)책을 통해 알게된 성공회 신부로 지금도 활동 중인 매튜팍스라는 신학자는 얼마전 돌아가신 교황이 교황이 되기전 교황청 신앙교리성이라는 곳의 수장이었는데.. 그때 당시 매튜팍스 라는 신학자를 이단으로 몰아 단죄하고 가톨릭 신부자격을 박탈하였습니다.
이 신부가 주장했던 내용이 뭐냐면.. 신학자니까 신학을 공부하다가 전통신학을 분석한 결과 신학에는 2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이어오는 타락속량 신학. (원죄를 지었으니 예수를 믿어야 천당간다. 고행과 극기를 강조. 좌뇌?) 다른 하나는 오리게네스로 부터 이어오는 창조신학. (대자연속 신을 느끼며 정의롭고 기쁘며 어린아이 같으며 인간은 절대자의 모형으로 태어난 원복을 받은 존재임을 강조. 우뇌?) 뭐 둘다 잘못된 얘기는 아니지만.. 타락속량신학은 강조하다보면 독성을 가진 신학이 되며(이 신학자는 Toxic Religion 이라 표현했습니다) 창조신학이 올바른 방향이다 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핍박받던 히브리 노예들이 믿던 노예교로써 당시에 도망갔던 노예들에 대한 기록조차 남은게 신기할 정도의 약자들의 종교였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기득권 집단의 종교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교회에 가난한 이들이 없습니다.) 저는 이 신학자 주장을 내 마음에 비춰봤을때 옳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챘습니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입사 퇴사를 반복하다 지금 핵교에서 시설관리 노동자로 밥을 벌어먹고 있죠. 내일은 평생교육원에 즐거운 해금 배우러가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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