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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산행기1(2008.10.04.~05.)
진부령 고개에서 화암사(미시령)까지
첫발을 내딛다
<진부령 고개 - 백두대간 출발에 앞서, 사진:이철호>
<진부령 고개 - 백두대간 출발에 앞서, 사진:이철호>
사실 얼떨결에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90년대 초에 백두대간 종주 꿈꿨고, 15년 넘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나이도 있고 해서 더 미루지 말아야겠다고 거듭 다짐하다가
마침내 결심했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지다 ‘경기우리산악회’를 만났다.
그렇게 첫걸음을 뗐다.
새벽 2시경 인제의 어느 휴게소에서 먹은 시레기국과 김치는
뭐랄까, 무박산행의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된 면모를 보는 것 같았다.
“바로 이거다.” 무릎을 쳤다.
경험은 복잡할 수 있는 것을 아주 단순하면서도 매끄럽고 부드럽게 한다.
무모한 도전?
<새벽 안개 사이로, 사진: 초록이>
너무 무모한 도전이 아니었나고 뼈저리게 느끼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새벽 3시 진부령 고개에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산에 오르는데
숨은 벅차오르고, 두 발은 점점 무거워지고 ---
아 이런 걸 이른바 ‘사점(死點)’이라고 하는구나.
“너무 준비를 안했구나. 되돌아 갈 수도 없고. 다시 결심하기도 쉽지 않을텐데---”
죽자 사자 뒤따라 잡았다.
후미 대장은 그럴 필요없다고 천천히 가라고 하지만
한번 뒤처지면 끝내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아.
<새벽에 마산봉을 오르며, 사진: 수담>
내려가는 게 더 두려운 ---
마산봉으로 올라가는 사방은 칠흙같이 컴컴한데---
해드렌턴이 비친 길만이 새벽 안개를 뚫고 다가온다.
계속 오르길 두시간 반 여만에 드디어 내리막길이다.
그런데 내려가는 게 더 두렵다. 다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산은 새벽 안개 속에서 모습을 조금씩 내밀고, 사진: 좋은친구>
6시 30분 병풍바위 직전에서 아침식사.
동은 이미 터서 단풍에 물든 산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지만
구름에 덮힌 산은 자신의 모습을 온전하게 보여주길 꺼려한다.
<병풍바위 앞에서 아침식사, 사진: 수담>
걷고, 또 걷고
7시에 다시 출발.
한걸음 한걸음씩 사부작 사부작, 호흡을 가다듬으며.
숨가쁘게 걷다 잠깐 스친 붉고 노란 단풍들이
눈길을 붙잡지만
채 음미할 틈도 없이 걷고 또 걷고 ---
<그림같은 단풍, 사진: 초록이>
7시 50분경에 대간령(큰새이령)을 지나치고 가는데
8시 반쯤 갑자기 비가 내려
비옷을 뒤집은 쓰고
무릎에 쥐가 난 이치열을 뒤로 하고
다시 신선봉을 향해 오른다.
그리고 다시 10시 20분에 상봉(1244m) 도착.
<상봉에서, 사진: 이철호>
홀딱 빠지다
상봉에서
숨돌릴 틈도 없이 다시 하산하기 시작.
<상봉에서, 사진: 하나비>
드디어 이제 오를 건 다오르고 내려가는구나. 드디어.
내려가다
너덜바위 근처에서
뒤따라오는 일행과 만났는데
이치열이 발에 난 ‘쥐’ 때문에 초죽음.
<상봉에서 내려오다가, 사진:하나비>
그래도 하산으로 생긴 여유 덕택에
안개인지 구름인지 사이로 살짝 모습을 드러낸
단풍든 산에 홀딱 빠지기도 하고.
<빨갛게 물이 오른 단풍, 사진: 산초>
꼴찌지만 ‘알탕’도 하고
미시령 400여m 못 미쳐
화암사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내려가고 또 내려가도 끝이 없다.
간신히 2시쯤에 주암을 거쳐 화암사에 도착. 다시 걸어서 버스까지.
도상으로 14.25Km라고 하지만 18Km는 족히 걸은 듯.
하루동안 이렇게 오래, 길게 등산해 보기는 처음.
<화암사 근처에 있는 주암, 사진: 산초>
일행은 이미 다들 와서 전체 사진까지 찍어 출발준비를 하고 있고,
당연히 지진아 3인은 전체 기념 사진에 끼지도 못하고.
다음번에는 전체기념 사진에 꼭 끼어야 한다고 굳게 다짐도 해본다.
<화암사 입구에서 전체 기념사진, 사진: 산초>
그래도 서둘러 점심을 먹고
주변 천진천에서 몸을 씻으니(‘알탕’)
몸과 마음이 깨끗하게 씻긴 듯 개운.
바로 이 기분이구나. 이 맛이구나.
11시간 반동안의 힘든 기억도, 피로도
천진천의 차가운 물에 씻겨 가고.
버스에 오르니 오후 3시.
범개역에 도착하니 오후 8시 30분.
<하산후 막걸리와 함께 점심식사, 사진: 반디불>
“다시 산에 오르다. 살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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