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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구간종주2] '한계령'에서 '옛조침령'까지

백두대간 구간종주기2(2008.10.19.)

'한계령'에서 '옛조침령'까지

 

"산길을 따라 걷는 이 시간 모든 것이 아름답다"

 

 

 <산길을 따라 걷는 이 시간 모든 것이 아름답다. 사진: 수담>

 

산악회 홈페이지 맨 위에 있는 글이다.

이 글은 글 자체로만 해도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두 번째 산행을 해보니 그게 아니다.

산이 누구에게나 항상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내게는’ 그 뒤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꼴찌를 면할 수 있을 때---.”

이번에는 좀 다를까 했는데, 역시 꼴찌다.

간신히 도착해보서 보니, 선두와는 2~3시간 차이가 났다.

아~ 언제 먼저 도착해서 여유있게, 아니면 “왜 빨리 안와”하면서

일행을 기다려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산악 게릴라처럼---

 

숨 돌릴 틈도 없었다.

01시 50분경, 한계령 어디엔가 도착하자마자

산을 오른다.

첫 번째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출발부터 뒤처지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뒤편이다.

다행히 날씨는 맑고, 기온은 가을답게 덥지도 차갑지도 않다.

한 시간 가량, 암릉 구간을 오른다.

사실 이건 차라리 쉽다.

 

 

<암릉을 오르며, 사진:이철호>

 

앞서간 일행들의 헤드랜턴이 별빛처럼 흔들린다.

잠깐 고개를 쳐들면 밤하늘에는 달빛과 몇몇 익숙한 별자리가

무심히 우릴 쳐다보고 있다.

멀리 한계령이 내려다 보이고,

가끔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날이 밝았으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을 단풍과 암릉과

멀리 있는 산들이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

오밤중의 불청객들에게

숙면의 시간을 뺏긴 한계령은

가끔 차가운 한숨을 뱉어낸다.

 

4시 40분경,

망대암산(1236m)에서 짐을 잠깐 풀어

드러누었다.

 

<망대암산 표지, 사진:산초>

 

온갖 잡생각

 

점봉산(1424m)까지는 완만한 능선이다.

새벽 5시 30분 즈음에 점봉산에 도착했다.

아직 동이 트지는 않았지만,

어둠속에나마 멀리 산들의 윤곽이 드러난다.

 

 

<점봉산에서>

 

잠깐 앉았다가

다시 단목령을 향한다.

단목령까지는 6.2Km다.

옛날에는 산을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데 더 자신이 있었는데

이번 산행에서는 힘들었다.

왼쪽 무릎 통증 때문이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왼쪽 무릎이

통증을 호소한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걷고 싶지만

통증을 떨쳐버리려

이 생각 저 생각, 온갖 실없는 잡생각을 떠올린다.

“산도 인생처럼 결국 자신의 짐은 자신이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하는 건가?”

“아니, 그래도 ‘우리’라는 게 있는데 ---”

“어디까지 ‘나’이고, 어디까지 ‘우리’인가?”

“혼자 가는 건가? 함께 가는 건가?”

 

이런 잡생각을 비웃는듯

단풍숲 사이로 여명이 조금씩 밝아온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을 따라

아침해도 모습을 드러냈다 감췄다 한다.

 

<단풍숲 사이로 밝아오는 여명, 사진: 산초>

 

길이 나를 이끈다

 

끝없이 걷고 또 걷는다.

내가 길을 걷는 게 아니다.

길이 나를 이끈다.

내려갈수록 산은 어둠 속에 감춰두었던 단풍을 드러낸다.

온통 빨갛고, 온통 노랗다.

 

<세상 모든 물감을 뿌려놓아도 이 보다 더 붉지는 안을 단풍, 사진: 산초>

 

가끔 단풍숲 사이로

산죽=조릿대도 모습을 내민다.

 

 

<조릿대 사잇길, 사진: 물안개>

 

<점봉산 내려오는 길에서 ‘이른아침’, 사진: 박성인>

 

단목령에서

 

아침 8시 5분경에 간신히 단목령에 도착했다.

 

<단목령에서 ‘청계산기슭, 사진: 이철호>

 

잠깐 숨을 돌리고 있는데

후미대장이 배낭 두 개를 짊어지고 내려온다.

우리보다 뒤쳐진 일행의 배낭이다.

참 대단하다. 아무나 대장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나중에 홈페이지를 보고 알게 된 사실.

선두 그룹은 날도 밝지 않았는데 단목령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마 우리 일행이 점봉산 정상에 있을 때

이미 이곳을 지나간 듯.

 

 

<이해가 안된다. 아직 날도 밝지 않았는데 단목령이라니---, 사진: 수담>

 

근처 개울에서 라면을 끓여 아침을 해먹고

다시 배낭을 짊어진다.

 

“걷다보니 줄어드네”

 

다시 조침령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뗀다.

조침령까지는 9.9Km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아직 채 반도 지나지 않았다.

 

길은 오솔길이고, 가파르지 않아

정겨웠지만,

너무 길었다.

이 길이 2~3Km 정도만 됐으면

걸음이 얼마나 가벼울까?

근데 같이 걷던 ‘이른 아침’ 왈, “어, 걷다 보니 줄어드네?”

 

 

<빨강과 노랑과 녹색과 ---모든 색들의 어우러짐. 인간도 그럴 수 있을까? 사진: 불루문,>

 

북암령을 거쳐

걷고, 또 걷고

또 걷고, 또 또 걷고

 

 

 

 

조침령에서 옛조침령까지

 

걷다보니 길은 줄어들어

13시 5분에 조침령 관망대에 도착.

다 와간다고 생각하니 보이지 않던

산도 보이고

 

 

<조침령 근처에서 바라본 단풍산의 절경, 사진: 하나비>

 

조침령 관망대에서

마지막 숨도 고르고

 

 

<조침령 관망대에서 ‘이른 아침’, 사진: 박성인>

 

 

<조침령 관망대에서 ‘청계산 기슭’, 사진: 이철호>

 

그래도 진동계곡 옛조침령까지는

다시 3Km를 더 가야.

길은 다시 우리를 불러 일으키고

 

 

<조침령, 사진: 산초>

 

 

<조침령에서 옛조침령으로 난 길, 사진:물안개>

 

드디어 ‘옛조침령’에 도착하다!

 

다시 정신없이 걷고 또 걸어

어떻게 걸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내려오다 보니

멀리 억새 사이로 옛조침령과 쇠나드리교가 보인다.

 

<억새 사이로 보이는 옛조침령과 쇠나드리교, 사진: 물안개>

 

14시 30분, 마침내 도착했다.

한계령에서 출발한 지 12시간 40분만이다.

족히 25Km는 된다고 했다.

돌아오는 차에서 홍 대장께서,

이 구간이 백두대간 무박코스에서 가장 긴 구간이라고 했다.

 

먼저 와서 기다리신 일행분들에게 미안했지만

그래서 다음에는 꼴찌는 면해야 한다고 거듭 거듭 다짐하면서

염치없이 급히 점심을 먹고, 쇠나드리교 아래 물가에서 간단히 몸을 씻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15시 10분에 출발했고

옛조침령에는 제대로 작별인사도 못한 채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꿈인지 현실인지, 잠결에 몇 가지 생각이 스쳐간다.

--- ‘이른 아침’이 사진을 조금만 더 잘 찍어 주었으면 좋을텐데, 그리고 사진기도 좋았으면 ---

--- 오늘 다른 일정 때문에 빠진 ‘마당쇠’가 이번에 일정이 바뀌어서 가장 어려운 코스를 등반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얼마나 기뻐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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