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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구간종주3] '한계령'에서 ‘마등령’거쳐 '백담사'까지

백두대간 구간종주기3(2008.11.02.)

'한계령'에서 ‘마등령’거쳐 '백담사'까지

 

 

<“이래서 ‘설악’이구나!!!”, 사진_반듸불>

 

"무박은 미친 짓이다!"

 

“무박은 미친 짓이다!”

11월 1일 22:00, 범계역에서 일행 분들과 봉고차에 올라,

3번째 구간 종주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에 잔뜩 긴장해 있을 때,

어느 분이 한 말이다.

지금까지 설악산 무박 등반을 여섯 차례 했는데,

밤에 산을 타서 한 번도 설악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면서 한 얘기다.

“그래, 미친 짓이지. 근데 왜 또 무박 등반을 할까?”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11월 2일 01:30쯤,

인제 근처에 있는 이름 모를 휴게소에서 간단하고 신속하게 야식을 먹고,

차에 올라 짐을 챙기자마자 02:30에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한다.

재빨리 배낭을 짊어지고 차에서 내렸는데,

선두는 벌써 저만큼 올라가고 있다.

숨돌릴 겨를도 없다.

 

 

<이런 휴게소가 있었는지조차 몰랐는데 ---, 사진_수담>

 

거센 바람만이 설악이 거기 있음을 알려주고

 

한계령 휴게소에서 중청(1676m)까지는 대략 7.7km다.

능선따라 오르는데, 바람은 불었지만 생각보다 맵지는 않다.

후미에서 7~8명이 어둠을 가르며 설악을 오른다.

한 30여분쯤 올랐을까, ‘이른 아침’ 왈,

“벌써 후회되지?”

 

<“그래, 첫걸음 떼자마자 후회된다”, 사진_수담>

 

전날 기상 예보에서는 대청봉에 눈이 왔고,

새벽기온이 -2도(체감온도는 -6도)될 거라고 해서 아이젠까지 챙겼는데 ---.

 

몇 시간을 끙끙 오르는데,

설악은 칠흙같은 어둠에 뒤덮혀 있고, 안개마저 산을 감싸고 있다.

어둠과 안개 때문에 숲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오를수록 바람은 더욱 거세진다.

모두를 삼킬 듯 부는 바람소리만이 숲이 거기에 있음을 알려준다.

단잠을 깨우는 불청객들에 대한 설악의 분노인가?

새벽이 오면서 깨어나는 설악의 야성인가?

검은 먹구름까지 가세해서 설악은 울부짖는다.

능선을 지날 때면 몸마저 가누기 힘들어진다.

 

새벽 6시쯤 끝청(1604m)에 도착. 3시간 30분만이다.

안개와 먹구름 사이로 멀리 귀떼기청봉(1577m)이 보인다.

 

<끝청에서 ‘청계산기슭’, 힘들어도 사진 찍을 때는 입을 다물어야겠다. 사진_이철호>

<끝청에서 ‘이른 아침’, 저 여유있는 모습. 사진_박성인>

 

‘중청3거리’에서

 

끝청을 지나 소청, 중청을 향하자,

여명과 함께 갑자기 하늘은 맑게 갠다.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멀리 대청봉에서 해가 얼굴을 내민다.

수줍어하지도 않고, 강렬하게.

 

<대청봉에서 구름을 밀어젖히며 떠오르는 해, 사진_생큐>

 

06:50, 중청3거리에 도착.

바로 아래 중청대피소가 있다.

 

 

<중청대피소, 사진_강나루>

 

여기서 대청봉까지 갔다오려면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후미라고 해야 ‘청계산 기슭’과 ‘이른 아침’, 두 부부, 그리고 후미대장.

아침식사는 희운각대피소에서 하자고 이미 지침이 내려져 있었고,

대청봉 다녀오자는 소리는 입밖에도 내지 못한다.

아니 그럴 자신도 없다.

망설일 틈도 없이 방향을 왼쪽으로 튼다.

 

“이래서 ‘설악’이구나!”

 

 

<설악의 진면목,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다. 사진_이철호>

 

중청3거리에서 마등령 방향으로 틀어 고개 하나를 넘는 순간,

시야가 갑자기 달라진다.

“아! 이래서 ‘설악’이구나!!!”

사방으로 기암절벽과 능선이 겹겹이 쌓여 있다.

 

사실 ‘설악’은 처음이었다.

한라산, 지리산 --- 그리고 2007년 1월에 금강산까지 갔었지만

‘설악’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그래서 첫 대면이다.

‘설악’은 실망시키지 않았다.

용아장성능선, 공룡능선, 그리고 멀리 울산바위까지.

 

 

<설악의 능선, 사진_이철호>

 

<설악의 능선, 사진_반듸불>

 

<설악의 능선들, 사진_반듸불>

 

놀란 눈을 거두고,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추스르고,

희운각 대피소(1,050m)를 향한다. 1.3km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간다.

무릎은 고통스럽지만, 설악을 바라보는 눈은 즐겁다.

 

<희운각대피소, 사진_박성인>

 

대청봉까지 다녀온 일행과 함께

희운각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를 하자마자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08:05이다.

공룡능선을 거쳐 마등령까지는 5.1km다.

 

공룡의 등에 올라타서 기어서 가기

 

 

<공룡능선, 사진_강나루>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공룡의 등을 타서, 오르내리길 몇 차례 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다.

오를 때는 기었고, 내려갈 때는 주춤했다.

‘이른 아침’도 이 구간은 처음이라고 했다.

공룡능선은, 그 아름다움을 멀리서 보는 것은 허락했지만,

자신의 등을 밟는 것은 쉽게 용납하지 않았다.

후미는 ‘이른 아침’과 ‘청계산기슭’, 둘만 남았다.

날아가도 시원치 않을 판에, 후미대장은 지진아 둘을 챙기느라

걸음은 물론, 마음도 시커멓게 탔을 거다.

 

<공룡능선, 어느 봉우리에서 ‘청계산기슭’, 사진_이철호>

 

<공룡능선, 어느 봉우리에서 ‘이른 아침’, 사진_박성인>

 

나중에 알았지만,

이 코스가 가장 힘든 코스라고 한다.

그래서 후미대장은 헉헉대며 간신히 발걸음을 옮기는 ‘청계산기슭’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룡능선을 등반했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다 놀랄거라”고.

그러나 그건 나중의 일.

먼저 놀란 것은 양 무릎.

가끔씩 능선의 봉우리에서 설악 한 번 쳐다보며 ‘탄성’을 지를 뿐,

어떻게든 공룡의 등 아래로 내려가기만을 간절하게 바란다.

 

공룡능선과 나란히, ‘용아장성龍牙長城’이 보인다.

설악에서 가장 위험하고 운치있고 빼어난 암봉을 가진 능선이라고 한다.

용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23개의 암봉들이 연이어 성처럼 길게 둘러쳐있다는 뜻이다.

공룡능선과 용아장성 사이는 ‘가야동계곡’이다.

 

 

<공룡능선보다 더 험하다는 ‘용아장성’, 사진_생큐>

 

간신히, 그야말로 간신히

 

마등령(1,327m) 밑에 도착한 시간,

아니 잠깐 스치고 지나간 시간이 12:10이었다.

오른쪽으로는 세존봉(1,025m)을 거쳐 비선대, 신흥사이고,

왼쪽은 오세암과 영시암을 거쳐 백담사이다.

오세암까지는 1.4km, 영시암까지는 3km, 백담사까지는 7.4km다.

헉, 벌써 12시가 넘었는데

지금 이 상태로 얼마나 걸릴건가.

눈 앞이 캄캄하다.

계속 내리막길이어서 무릎이 견뎌내지 못할 것 같은데 ---

 

<마등령 밑 표지판, 사진_반듸불>

 

오세암까지는

가파른 계곡이다.

후미대장이 앞에서 가다가 기다리다가 하면서 이끈다.

‘이른 아침’은 먼저 갔다. 혼자다.

13시 조금 넘어 오세암에 도착.

 

<오세암, 사진_반듸불>

 

백담사의 부속암자인 오세암五世巖은 643년(선덕여왕 12) 자장율사가 지었고, 다섯살된 아이가 폭설 속에서 부처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는 전설이 있어서 '오세암'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전설을 바탕으로 《샘터》의 편집자이자 동화작가인 故정채봉선생이 1983년에 동화 <오세암>을 썼고, 동화를 원작으로 에니메이션도 만들어졌다.

에니메이션을 언제가 본 적이 있다.

그 오세암을 직접 갔다.

아니 거쳤다.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

 

다시 14:10에 영시암에 도착.

후미대장에게, “지금 속도라면 2시간도 더 걸릴 것 같은데

기다리는 동료를 생각하면 어떤 조치라도 ----“

후미대장 왈, “최대한 빨리 가야 한다. 많이 기다릴테니 ---”

다행히 영시암에서 백담사까지 4.1Km는 평지였다.

14:15에 영시암을 출발하여 백담사까지 4.4km를

정신없이 걸어서 15:10에 도착했으니 ---.

오세암과 영시암에서 백담사에 이르는 길을, 계곡을, 단풍을,

그 아름다운 경치들을 채 음미하지도 못하고 뒤로 하다니 ---.

얼핏 스치고 지나쳤던 경치를 사진으로나마 다시 음미할 수밖에.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 사진_반듸불>

 

 

<백담사 가는 길 옆 계곡, 사진_생큐>

 

 

<다람쥐들이 많다. 사진_반듸불>

 

백담사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봐서 영시암이나 오세암에 가는 것 같다.

노부부도 보이고, 아이까지 동반한 일가족도 보인다.

이 길은 설악산에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 올라가면서 봐야 제맛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겁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백담사의 단풍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길과 함께 흐르는 계곡이 정겹다. 사진_ 반듸불>

 

 

<후미대장이 ‘아름답다’며 쳐다보라고 한 단풍, 사진_산초>

 

 

<단풍, 단풍, 단풍들---, 사진_산초>

 

15:10, 백담사에 도착.

백담사는 둘러볼 겨를도 없다.

벌써 용대로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행렬이 다리끝까지 이어져 있다.

 

 

<사진으로만 보는 백담사 입구, 사진_아침>

 

기다리던 우리산악회 일행에 새치기로 껴서

15:30에 버스를 탄다.

사실 다행이라는 생각 때문에 줄을 선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버스 타고, 계속을 돌고 돌아 6~7km를 내려오니,

마침내 용대리 입구.

16:00가 다됐지만, 어쨌든 도착했다.

 

 

<마침내 도착!!!, 사진_산초>

 

“계속 이런 산행 해야하나” -> “다음 산행은 어떻게 되지?”

 

16:30 버스 출발.

설악에 작별인사도 못하고 정신없이 잠을 자는데,

양쪽 무릎 통증 때문에 별 생각이 다 든다.

출발할 때, 수암대장이 왼쪽 무릎테이핑을 해줘서 그나마 나았는데,

오른쪽 무릎은 말이 아니다.

“계속 이런 산행을 해야 하나 ---.”

중간 휴게소에서 후미대장 왈,

“지금 관두면 안 된다. 최소한 10번 정도는 해야지---”

 

홍대장에게서 진통제 두 알을 받아 먹었더니

무릎통증이 조금 가라앉는다.

그러자 생각이 조금씩 바뀐다.

“다음 산행은 어떻게 되지?”

구룡령에서 쇠나드리까지는 다행히 ‘흙산’이라고 한다.

20km정도인데 무척 지루하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흙산’이어서.

 

그리고 ‘마당쇠’에게 전화를 돌린다.

 

“22:00쯤에 범계역에 도착하는데 한 잔 하셈.”

 

 

<계곡에서 바라본 설악, 사진-이철호>

 

그리고, 마지막 하나 기억하고 싶은 것.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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