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그래.

from .. 2005/03/18 23:10

보고 싶은 거 못 보면 눈이 멀고

듣고 싶은 거 못 들으면 귀가 먼다.

 

 

죽을 땐 뭔가 하나 쯤은 정리되었으면 좋겠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자치.

 

 

모르겠다. 지금은 그건 그냥 상처를 주고받지 않기 위한 것 같아.

 

지금은 우울하니까. 아까는 신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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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8 23:10 2005/03/18 23:10
참지 못하고..'페인팅레이디 그림동화'님의 블로그에서 퍼 와 버렸습니다..




나란히 가지 않아도 - 손병휘



최근 김선일님의 마지막 모습을 목판화로 찍어 촛불시위에서 배포한 최병수작가(전북 부안군 계화면 돈지리)6.10민주화 투쟁 당시 ‘한열이를 살려내라’의 작가로 바다 메우는 현장인 새만금(부안 해창)에 장승을 세운 새만금지킴이이며 이라크에 인간방패로 다녀오기도 했다. 아래는 최병수 작가의 작품과 기사들.(스크롤압박있음)






















▲ 한열이를 살려내라!
이한열 걸개그림

최병수 작









최병수 작. '야만의 둥지'
600, 850cm










'오일깡패'
최병수 작/문현정 아트웤

최병수 작가가 이라크의 오일을 강탈하는 부시로 분했다.  지난 2003년  2월 14일, 오일깡패 부시로 분하고 광화문에 나타났던 현장미술가 최병수 작가가, 이번엔 ‘온 몸으로 이라크 전쟁을 막겠다’며 한국이라크평화팀 활동가 5명과 함께 오늘(6일) 1시 30분 인천공항을 출발, 이라크로 떠난다.

최 작가는 먼저 요르단에 도착해 이라크 상황을 파악한 다음, 육로를 통해 이라크 바그다드로 들어가 국제공동반전평화팀과 함께 반전평화 활동을 펼 예정이다. 이를 위해, 최 작가는 600×850cm의 대형 걸개 ‘야만의 둥지’와 150×250cm 크기의 ‘오일깡패 부시’ 걸개를 준비 했다.

어제(5일) ‘야만의 둥지’ 걸개 마무리 작업 중인 홍익대 작업 현장을 찾아 최 작가를 만났다.

‘왜 인간방패를 택했나?’

‘부시의 미친 짓은 이런 미친 짓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현재, 전쟁전야인 이라크에는 각국에서 반전평화활동동가들이 속속 집결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한국이라크평화팀(팀장 한상진) 1진(2월 7일 출발)과 2진(2월 16일 출발)이 한국을 떠나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활동 중이다.

최병수 작가(전북 부안군 계화면 돈지리)는 6.10민주화 투쟁 당시 ‘한열이를 살려내라’의 작가로,산 깎아다 바다 메우는 현장인 새만금(부안 해창)에 장승을 세운 새만금지킴이이다.




2002년에는 북한산을 지키기 위해 사패산농성장을 만들고, 현재 투쟁 중이다. 그런 바쁜 와중에도 부시가 미친 짓 할 때마다 산에서 내려와 부시에게 일격을 가한다. 부시의 쿄토의정서 파기 사건과 관련해서는 ‘부시가 지구를 녹여 먹고 있다’라는 컨셉으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건너가 세계인들에게 미국의 야만성을 고발하였다. 그리고, 부시의 F15 사기매각 사건인 FX는 ‘고물비행기’, 이라크전과 관련한 ‘오일깡패 부시’등이 그것이다.




















사진 위/티그리스 강에 띠운 평화의 배
3월 17일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에 의해 티그리스 강에 띠워진 평화의 배. 일행들은 배를 띠운 후 바로 그곳을 철수해 요르단으로 나왔다고 한다.
/사진 : 뉴스앤조이 주재일 기자

사진 아래/걸개그림(최병수 작, 야만의 둥지) 앞에 앉아있는 이라크 아이들과 전쟁을 반대하는 세계인들./사진 : 뉴스앤조이 주재일 기자

이 소식은 미국이 이라크를 향해 공격을 개시한 20일 오후 6시경에 이라크전 인간방패로 활동 중인 최병수 작가가 메일로 보내왔다. 최 작가는 이라크 바그다드로부터 반전평화팀 8명과 함께 국경이 폐쇄되기 전인 18일 요르단으로 나와 현재 귀국을 준비하고 있고, 나머지 반전평화팀은 난민 구호활동과 반전활동을 계속 전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또한 민주노총 전쟁반대 대표단에 따르면, 현재 이라크에 남아있는 반전평화팀은 한상진(38. 평화운동가), 유은하(29,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배상현(28. 경남열린사회희망연대)씨 등이며, 한겨레신문 임종진 사진기자도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배상현 씨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폭격 가능성이 높은 북바그다드 발전소에 자청해 배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한상진 유은하씨는 고아원 등 이라크 민간인들과 함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3월 25일



이제는 파병반대

미.영침략군과 전쟁 중인 이라크에서 반전평화를 외쳐 온 최병수(44, 설치미술가) 씨가 어제(24일)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 일원 중 오김숙이(34.여성운동가). 전승로(22.대학생). 이해종(57.노동자) 씨 등과 함께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최작가는 개전 이틀전인 18일 이들과 함께 이라크를 빠져 나왔으며 현재 이라크에는 한상진(38), 유은하(29), 배상현(28)씨 등 3명이 남아있다.

최병수 작가는 귀국직후 공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라크 전쟁은 이라크인들만의 전쟁이 아니라 우리의 전쟁"이라며,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지원연대'와 함께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하루빨리 중단시키고, 현 정부의 침략전쟁 지원을 막기 위한 국내 반전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 그는 시급한 건 '국회 파병안'을 저지시켜야 한다며, 여장을 풀 겨를도 없이 걸개 등을 준비해 국회 앞 '파병반대' 집회장으로 달려 갔다.

막간 막간 그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이라크 소식은 이렇다.

"3월 16일 반전평화팀원들과 바스라를 둘러 봤다. 그곳은 지난 걸프전 이후 전쟁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포탄을 맞은 탱크가 시내에 널려 있었고 병원 바로 앞에는 흉칙하게 참호가 파여져 있었다. 방사능 등 전쟁후유증으로 태어날 때부터 부스럼 등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바그다드에서의 퍼포먼스는 좋았다. 이 전쟁의 본질이 석유전쟁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오일깡패-부시' 복장을 하고 나타났더니 바그다드 시민들이 재미 있어 했다. 걸개 전시도 큰 호응을 보내줬다. 그림을 걸기 위해 도르래가 필요해 도르래 가게에 갔는데 주인이 50달러나 되는 것을 그냥 줬다. 그리고 반전평화 팀원으로 현재 요르단에 남아 활동하고 있는 유은하 씨가 걸개그림 위에서 춤을 추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이라크 정부의 장관급 고위관료 한 분은 이 그림을 이라크 박물관에 전시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우리는 남을 침략하는 민족이 아니다. 명분없는 전쟁에 파병이라니, 이는 우리도 전범국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국회 파병안은 꼭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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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수 작/We are leaving you.
사진 아래/작품 아래에 선 최병수 작가








연합뉴스.펌
<年中企劃>새만금 편지-(18) 현장미술가 최병수


날품팔이 목수에서 현장미술가로
"분노와 슬픔이 작품의 원동력"

(전주=연합뉴스) 홍인철 기자= 새만금 간척사업이 한창인 해창갯벌에는 70여개의 장승과 망둥어, 갯지렁이, 꽃게 등을 올려 놓은 솟대가 사라져 가는 생명체의 소리없는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 장승과 솟대를 세운 사람이 바로 최병수(43)씨다.

최씨는 원래 날품팔이 목수였으나 지난 80년대 살벌했던 대학가의 투쟁을 계기로 아마추어 화가를 겸업하다 새만금사업을 계기로 현장 미술가로 변신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이한열 군을 친구들이 부축하고 있는 사진을 신문에서 본 그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대형 걸개그림(10m×7.5)으로 표현했고 이 그림은 대학생들의 저항정신에 기름을 부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이 걸개그림은 80년대 민중 미술운동을 상징하는 걸개그림의 대표작이 된다.

그후에도 `메이데이 투쟁도'와 `장산곶 매' `백두산' 등의 걸개그림으로 갈등과 모순의 현장에 정면으로 조우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걸개그림은 1980년 이후 한국의 민족 미술운동계에서 제작한 대형 선전그림으로... 대표적인 작품과 창작집단으로는 최병수 외 다수가 그린 '한열이를 살려내라' '메이데이 투쟁도'가 있다"라고 적혀 있을 정도다.

최씨는 미술전문지 `가나아트'가 선정한 '근현대 미술인 베스트 100'의 한 사람이며 `더 타임즈'(The Times)와 `아사히 신문' 등 세계 유력 언론이 주목하는 현장미술가이기도 하다.

서울 상도동에서 8남매중 6째로 태어난 그는 너무도 어려운 가정형편이 못마땅해 다니던 중학교를 그만두고 무작정 가출, 신문팔이를 시작으로 중국요릿집 배달원, 보일러공, 선반 보조공 등 각종 직업을 전전하며 먹고 사는데 매달렸다.

사다리를 만드는 날품팔이 목수로 일하던 그는 지난 86년 홍익대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벽화를 그리는데 필요한 사다리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소위 `신촌 벽화사건'과 `정릉 벽화사건'이다.

현장에서 금새 사다리를 만든 뒤 남은 시간에 다른 사람들이 벽에 꽃 그림을 그리는 것을 지켜보고 거들기도 했다.

현장을 덮친 경찰은 붓을 든 사람들을 모두 연행했다.

조서를 쓰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목수라고 밝혔지만 경찰은 그의 직업란에 `화가'라고 썼다.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화가'가 돼버린 것이다.

최씨는 "어머니.아버지가 날 낳으시고 경찰이 날 화가로 키웠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한 순간에 직업이 바뀐 그는 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의 모순들을 발견하면서 정체성의 혼란과 갈등을 겪었다.

"도대체 뭐가 잘못돼서 이럴까. 못질만 해대며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고 공부를 좀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죠."
월간 `말'지(誌) 등 진보적 잡지와 `전태일 평전'과 같은 책들을 들여다 보시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세상을 조금씩 알게 되니 점점 화가 났고 그래서 계속 그림을 그리게 됐다.

이후 모순과 갈등의 현장에 그림을 내걸었고 노동자와 민중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작품을 만들어 `바리케이드 화가'라는 별명이 붙었다.

체계적인 미술교육이나 오랜 창작과정 없이 현장에서 분노이자 슬픔처럼 분출된 그의 그림은 보는 사람들에게 뜨겁고 진솔하게 어필했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그를 더욱 화나게 했다.

"피가 거꾸로 솟았습니다. 신이 인간에게 준 풍성한 갯벌을 모조리 없앤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전북 무주군의 의뢰로 반딧불이 행사를 준비하던 최씨는 3년 전 `간척사업 반대 장승제'를 열자는 환경단체의 제의를 받고 주저없이 서울의 작업장을 정리하고 아예 붓과 망치를 부안으로 옮겼다.

간척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해창갯벌이 그에겐 바로 `항쟁의 현장'이고 문을 닫은 김 공장의 빈 창고가 혼자 사는 그의 집이자 작업실이기도 하다.

갯벌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야 했다.

그래서 그는 해창갯벌에 눈을 부릅뜬 `바다 대장군'과 `갯벌 여장군'을, 아우성치는 망둥어와 꽃게 솟대를, 어민의 신음을 담은 뒤집힌 `새만금호'를 띄었다.

누구나 한번쯤 차를 멈추는 해창갯벌의 장승과 솟대는 이제 새만금의 또 하나의 명물이 됐으니 최씨의 계산은 맞아 떨어진 셈이다.

얼마전 이라크에서 가장 큰 환경피해는 전쟁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전을 끝낸 그는 "간척사업이 중단될 때까지 새만금 갯벌에서 살겠다"며 반들반들한 대머리를 쓸어내렸다.


산은 산이고/ 강은 강이고/ 바다는 바다다.

산마다 파헤치고/ 강마다 하구 막아버리고
그 좋은 갯벌은 모조리 메워버리고
무슨 영화를 보겠다는 것인가?

그가 세운 솟대가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사진있음)
ichong@yna.co.kr
(끝)2003/05/05 10:30 송고














최병수 작ⓒ040325부안21











최병수 작 '남극이 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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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최병수 작 "메두사 부시"
2003년 03년 3월, 최병수 작가는 한국이라크반평화팀의 일원으로 이라크에서 반전평화 활동을 벌인 바 있다. 그때, 이라크전을 감행하는 부시의 만행을 현지에서 목도하고 그린 그림이 위의 그림이다.
▲사진2/2003년 03.03.22일 오전 요르단 수도 암만의 한국대사관 앞에서 한국 반전평화팀과 민주노총 대표자들이 최병수 작가가 그린 '메두사 부시'를 들고 한국의 이라크전 파병 계획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CHOI, BYUNG-SOO/SEOUL, KOREA 2003



너의 몸이 꽃이 되어


외마디 절규로, 지린 고통으로
피 흘리며 잠을 자고, 피 흘리며 잠을 깨며
저 하늘로 날아 갔지

아이들아 용서해라! 애원한다 아이들아!
잔인한 현실, 탐욕스런 현실을
살육을 설교하고 자행하는 자들의 총과 칼을

너의 몸이 꽃이 되어, 누 천년 누 만년
너의 넋이 꽃이 되어
너의 넋이 꽃이 되어


최병수


Your Body becomes a Flower


In your suffering
with your shrill scream
You slept while you bled and
You bled as you awoke
You flew away to the sky

Children, I appeal to you
Children, please forgive
The world of corruption and greed
The guns and swords of those
who preach and commit slaughter

Your body becomes a flower
for near eternity
Your soul is a flower
Your soul is a flower


Choi, Byung-Soo









모범생 아이가 어떻게...

조지는 평소 사람은 커녕 개도 목에 줄을 걸어 끌고 다니지 않는 성품이라며,
이 사진은 연출된 사진이 틀림없다고 아버지 부시는 주장했다.


최병수 작
















최병수 작-패륜기






부안 핵폐기장 반대에 동참하고 있는 최병수 작가














최병수 작/문현정 컴퓨그라픽











최병수 작/허철희 사진-정읍방사선센터 이미지









사진 위/약될까 독될까. 최병수작, 문현정 컴퓨그래픽











 








현장미술가 최병수 작가의 퍼포먼스/28일 오후 2시, 인사동 문화광장. 빗속에서 노무현 대통령, 윤진식 산자부장관, 김종규 부안군수, 김형인 부안군의회 의장이 저승사자의 감독 아래 모래 위에 핵시설물을 짓고 있다.








'핵에너지정책 전환하라' 최병수 작/문현정 디자인ⓒ부안21










최병수 작 /ⓒ2003.부안21






▲반핵민주광광에 부안사람들의 '핵없는 세상' 염원을 담은 장승을 세웠다.'핵반대대장군' '핵반대여장군'..., 보조지킴이로 태양에너지를 상징하는 햇님과 구름솟대도 세움-부안 핵폐기장 반대 100일 촛불집회에서 .(최병수 작)ⓒ부안21









최병수 작, 문현정 아트웤







http://club.cyworld.nate.com/club/main/club_main.asp?club_id=50089224#









제목 - 골프 공화국 / 최병수













최병수 화백이 1996년도에 그린 골프공화국이라는 작품입니다. 우리땅 곳곳에서 골프장 건설이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북도는 새만금 간척사업을 한 땅에 세계 최대인 540홀 규모의 골프장 조성을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전라도의 아름다운 해창석산을 비롯한 수많은 산을 뭉개 바다를 메꾸고, 그곳에 골프장을 조성하기 위해 또 구릉을 만들고 호수를 파야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세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알까 부끄럽습니다. 지난 7월20일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2백30여개의 골프장 허가를 넉달안에 내주겠다"며 '골프장 경기부양론'을 폈습니다. 골프장은 지하수를 고갈시켜 '물 문제'를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고용 효과도 미비합니다. 골프장에서 뿌려대는 엄청난 농약은 자연에 그대로 남게 됩니다. 정녕 우리 아이들에게 '골프 공화국'을 물려주시렵니까? < 글쓴 이 - 녹색연합 이유진 간사> 꼬리 글 하나 - 밥과꽃 : 어제 티비에 이 문제가 다시 한번 조명되었더군요. 심지어 골프장경영주들 역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모습은 이 일이 얼마나 잘못되어가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몸에 푸른곰팡이가 피어나는것 같습니다. 2004/09/16 삭제









제목 - 밥먹고 삽시다! / 최병수



















작 최병수/ 사진 허철희/ 컴퓨그래픽 문현정ⓒ부안21





돈도 없고, 빽도 없고, 학벌도 없고, 계보도 없다던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자 골프애찬론을 폈다.
그런 그가 이제 건설 족에 포위되어 "행정수도 반대는 대통령 불신임"
"100조원이 들어도 행정수도는 간다" 운운하며국민을 협박하고 있다.

이제는, 한 술 더 떠 전국토의 골프장화를 꾀하고 있다.

아서라! 골프 먹으면 죽는다.
밥 먹고 살자!




[프레시안 기사보기]
이헌재 '2백30개 골프장 허가 추진' 논란
환경단체 "그만 두고 골프나 치러가라", 연쇄도산 우려도

2004-07-21 오전 11:21:50





재정경제부가 현재 허가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2백30여개 골프장에 대해 일괄심사를 거쳐 4개월내에 신속하게 허가 여부를 결정해주고, 전남 목포 남부지역은 수십 개의 골프장이 들어서는 리조트 특구로 개발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지난해말 현재 전국에 운영중인 골프장이 1백81개인 것을 감안할 때 조기에 골프장 숫자를 배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것으로, 환경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사는 것은 물론 '무대책'인 정부가 골프장 건설 허가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사고 있다.

"2백30개 골프장 신청건, 4개월내 신속 처리"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0일 “현재 허가를 받기 위해 대기중인 2백30개의 골프장 건립 신청건을 4개월 안에 일괄 심사를 거쳐 조기 허용해주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목포 남쪽에 ‘리조트 특구’를 조성해 골프장 수십개코스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현재 골프장 하나를 짓기 위해선 인.허가를 받는 데만 평균 5년이 걸린다”며 “(골프관광객 유치를 위해) 국무조정실과 함께 골프장 인·허가 기간을 대폭 줄이는 방안을 논의해 나갈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특히 올림픽 관광특수를 위해 골프장을 대거 설립중인 중국의 예를 들며“중국 미션힐스 골프장의 경우 12개 코스 2백16홀을 짓고있다”며 “목포 남쪽에 리조트 특구를 만들어 골프장 수십개 코스가 들어설 수 있도록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재경부, "골프 해외여행객의 외화유출 국내 유인책"

재경부는 이같은 이 부총리 발언과 관련, 해외로 골프 여행을 떠나는 인구가 연간 10만명이 넘고 매년 해외 골프로 유출되는 외화는 1조원에 이르는 현실에서 국내에 골프장을 다수 건립하면 세수 증가와 고용 창출 효과가 상당하다고 주장, 허가를 신청한 2백30개 골프장 대부분에 대해 허가를 내줄 방침임을 시사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오는 9월 하순부터 시행될 지역특화발전특구법(일명 지역특구법)을 적극 활용해 리조트특구로 지정되는 지방자치단체의 골프장 설립과 관련된 규제를 적극 풀어줄 방침이다. 최근 산업자원부와 규제개혁위원회 등은 "경기도 골프장을 조사한 결과, 최종 건립 때까지 중앙정부 및 지자체로부터 받아야 할 도장 숫자는 최대 8백6개에 달했다"며 골프장 규제 대폭완화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환경단체, "부총리 그만 두고 골프나 치러 가라"

재경부의 이같은 무더기 골프장 허가 방침은 당연히 환경단체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녹색연합 서재철 자연생태국장은 이런 이헌재 부총리의 발언에 대해서 "한 나라의 경제수장 입에서 이런 한심한 발상이 나온다는 게 어이가 없다"며 "요즘 논란도 분분한데 아예 그만 두고 골프나 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서 국장은 "골프장을 많이 지으면 경기부양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경제 논리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골프를 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서 국장은 "대한민국 대부분의 서민들은 자기 소득으로 절대 골프를 칠 수 없다"며 "일부 부유층과 접대를 위해 존재하는 골프장을 더 많이 짓겠다는 것은 특정 계층을 위해 경제 정책을 펴겠다는 선언과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토 난개발을 부추기고 수많은 환경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골프장으로 경제 난국을 해결하려는 이 부총리에게 연민을 느낀다"며 "능력이 안 되면 그만 자리를 내놓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비판했다.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 최김수진 간사도 "골프장 허가는 당연히 적법한 절차에 입각해 지어야지 이 경제부총리가 무슨 자격으로 절차 간소화를 운운하는지 모르겠다"며 "부총리는 자기 일이나 잘 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이 부총리를 강하게 비판했다.

최김 간사는 "골프를 치러 외국으로 나가는 관광객이 문제라면 이미 과포화 상태인 국내에 골프장을 더 지을 게 아니라 그들의 해외 골프 수요를 억제하는 방책을 세워야 한다"며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골프장을 더 지어야겠다는 발상이 한심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골프장 연쇄도산도 우려돼

정부의 무더기 골프장 허가는 IMF사태 발발직후 발생했던 골프장 연쇄도산을 초래할 가능성도 크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최근 골프장에도 불황이 밀어닥쳐 평일 손님이 크게 줄어드는 등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은 판에 정부가 국내의 현존 골프장보다 많은 골프장을 한꺼번에 무더기로 허가해줄 경우 단기적으론 건설경기 부양 효과가 날지 모르나, IMF사태직후 경험했듯 골프장 연쇄도산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도 90년대초 장기복합불황에 들어가면서 골프장이 연쇄도산하고 골프회원권 값이 폭락하는 사태가 발발했다"며 "일본처럼 장기불황에 돌입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현시점에 취할 정책이 못된다"고 비판했다.


이승선,강양구/기자









제목 - 야만의 둥지 / 최병수





















<<살고 싶다!>> 작품을 다시 걸개로 만든 것입니다. 7월 3일 집회에 걸었지요.











제목 - 당신 / 최병수













처음에 봤을 때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옷걸이 뒤에 있는 사진은 물개, 동물학대 사진으로 유명한 거래요.



그러면 바로 머리를 치는 게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이 옷걸이에 모피 옷을 걸겠는가?'









제목 - 당신 / 최병수





















제목 - 초심평심 / 최병수



















제목 - 대동여지도 / 최병수

















제목 - 초심불심 / 최병수























제목 - 산솟대 / 최병수

















제목 - 미안해요, 베트남 / 최병수













최병수 작가가 베트남 푸엔성의 '한-베 평화공원'에 세운 생명솟대와 '진실과 우정의 돌' 현장미술가 최병수(41) 작가가 베트남 푸옌성의 ‘한-베 평화공원’(Han-Viet Peace Park) 내에 예술조형물 설치작업을 마치고 12월 19일 귀국했다. 최 작가는 지난 11월29일 오전발 비행기로 출국, 20여일 동안 그곳에 머무르며 <한겨레21> 독자들의 성금운동을 상징하는 ‘진실과 우정의 돌’을 설치하고 8m 높이의 ‘생명의 솟대’ 세 기를 세웠다.





(구름 솟대라나 봐요. 하늘의 정기를 내려받는 솟대라고요. 그래서 구름들이 땅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담은 거라고. 둥근 알은 사랑과 평화를 품자는 뜻으로 한 없이 갈고 갈아 만들었다고 하지요.)











제목 - 나침반이 녹고 있다 / 최병수





























(사실 반전평화와 환경생태가 따로 떨어진 문제는 아니지만



병수 아저씨는 이라크 전쟁 이전에는 환경생태 운동을 하는 설치미술가로 더 알려져 있었습니다.



지구 온난화의 심각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나침반 그림과, 얼음조각 퍼포먼쓰입니다.)











제목 - 장애인 행정 / 최병수























제목 - 꿩먹고 알먹으면 멸종이다 / 최병수































제목 - 밭가는 돼지 / 최병수

























제목 - 상생도 / 최병수














http://www.jigubanji.com/

 

최병수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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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8 12:26 2005/02/18 12:26

청소년을 위한 노동법 길라잡이<우리교육>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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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5 10:20 2005/02/15 10:20

* 이 글은 보풀님의 [천재성이라. 참 난해한 기준.. -ㅅ-]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이런저런 사람이야기가 담긴 논픽션의 잡글을 재밌어라 읽곤 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에

 

한창 전위가 꽃피기 시작한 프랑스의 한 때,

페르디낭 슈발이라는 우편배달부가 있었으니.

 

우연히 심심풀이로 한 것이 먼저인지 원대한 포부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백년이상 해외토픽감이 될 만한 건물을 지었다..

 

이 우체부가 말하길,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농부로 살아온 나는, 나와 같은 계층의 사람들
중에도 천재성을 가진 사람, 힘찬 정열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살고 또 죽겠노라."고.

 

이런 이야기를 우편배달부가 할 정도이니 당시 프랑스 예술가들의 위상은 끝내줬었나보다.

 

이 이야기를 혼자 노닥거리며 읽다가 나도 모르게 불쌍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요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묘한 표정을 지었었다.

나도 모르게 '에에이, 그냥 아무도 안 봐도 하고 싶은 거 하면 되지 뭐'라고 한창 생각하고 살던 때라 이 사람의 행동은 더욱 묘했다. 그건 사진으로 보았을 때, 그 건물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고 괴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음, 참 괴상해 보였다.

 

물론 뭇슈 슈발이 그 건물을 보면서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라고 만든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결과는 도데체.. 무엇인가? 하는 난감함을 느꼈다.

나는 최소한 평생을 함께 할 일이라면 그 완성을 생각하면서 그 완성된 모습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서 가는 것일테다라고 생각했다. 위인전을 인상깊게 보고 자란 나는, 결과적으로 어떤 모습이 되었다는 논픽션에서도 픽션스러운 인물들에 대한 정보만을 접했었던 것이다.

나이가 좀 더 들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위인전보다는 신문이나 뉴스가 나에게 가까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속으론 그 픽션스러운 인물들에 대한 당연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고 우연한 기회로 뭇슈 슈발을 만났다. 뭇슈 슈발이 나에게 준 것은 '논픽션에 대한 혐오감'과 '목적없는 성실한 이행이 가져오는 엄청난 결과' 등이었다.

 

'논픽션에 대한 혐오감'은 쉽게 말하면 '내 인생 만큼은 뭔가 멋지게 잘 되겠지'라던가

'내 인생은 자질구레할 망정 소중하고 나는 세상의 중심이야' 따위를 생각하는 마인드가 받아들일 수 없는, 묻혀서 안 보였어야 되었을 사실이 눈앞에 보이니 부정하고 싶어서 토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대체 이 건물은 뭐란 말이냐.. 뭇슈 슈발이 여타 아방가르드 작가들과 다를 게 뭐가 있나. 다른 점, 사실은 많다. 그는 우편배달부와 농부를 자처했고, 성실했고, 생전에 크게 사랑받지는 않았으나(말년에 존경은 받았다 한다) 죽어서도 묻히지 않았다. 처음 이 미술사의 작은 에피소드에 대해서는 무척 매력을 느꼈지만 사진을 보는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에피소드 자체는 엄청난 매력이 있지만 결과물이 그렇지 않다는 데에서.

 

'목적없는 성실한 이행이 가져오는 엄청난 결과'는 뭇슈 슈발의 작품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것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다행이 참 많은 쓰레기(작가가 알아서 깨거나 버리는 작품)를 만들어내는 예술가들은 예술가를 자처하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그다지 생존에 성실하지도 않고 보통은 자기의 시선에 포함되어 있는 타인의 시선에 좀 더 예민해지는 편인 것 같다. 그리고 예술가는 대다수가 어떤 선에 가기 전에는 가난한 직업이다. 게다가 예술가라 하는 사람들도 미리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를 대충이라도 머릿속에서 먼저 그려보고 그게 맘에 들어야 움직이는 기술자들인지라(그냥 계획없이 하는 경우도 자신의 태도와 감을 믿기 때문이라고 본다) 목적과 자신의 표현이 동떨어질 경우 일부러 바보(다양하다)가 되기도 하고 목적을 변경하여 말하는 사기를 친다거나 업 자체를 포기하기도 할 정도이다. 그런데 뭇슈 슈발을 보라. 이 사람은 계획없이 세부로부터 만들어나가서 죽을 때까지 진행하였다. 이 경우 시각화가 되어서 그 결과가 육안으로 보이는 것인데, 문득 드는 생각은 어떤 사람이 매우 성실하게 살았는데 그 내용이 왠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이다. 성실한 것은 어떤 목적을 잃을 수록 그 활동의 다양함의 숫자가 적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마음에 드는 것을 만든다는 것은 큰 틀거리와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그 과정에서의 다양함의 숫자는 셀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손바닥에 붙어 있는 손가락처럼 목적이 손바닥이고 손가락은 다양함이랄까..그런 식의 다양함이 다양함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목적이 없는 성실함이란 내가 생각하기엔 손바닥에서 잘라낸 손가락을 세는 것과 같은 일이다. 이야기가 점점 정신없어지는데, 처음으로 돌아가서.(너무 눈이 아프다 @_@) 

 

슈발의 건물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시각적인 것 보다는 이야기의 매력이 크다. 확신하건데 실물을 보면 감동은 지나치고 살짝쿵 인생이란 것에 대해 깨달음을 얻을지도 모를 정도로 강렬할 것이다. 그래도 그 결과가 시각적으로 그닥 아름답지 않음은 충격이다.

그 강렬함은 부럽고 존경스럽기까지 한 자신의 계급에 대한 자부심과 예술에 대한 강한 정렬의 산물이지만 사실 이 건물을 보면 나는 그가 이 건물을 통해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 ㅠ_ㅠ

 

도데체 보여주고 싶은 '힘찬 정열'과 '천재성'이 무어란 말인가?

 

그건 도데체 누굴 위한 건가 

 

 

뭇슈 슈발의 말에서 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말은 '나와 같은 계층의 사람들 중에도' 정도이다.

 

 

내 손가락은 두 개나 되나 몰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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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2 01:06 2005/02/02 01:06

정말 싫은 감정.

 

기분이 나쁜 것은,

 

사람이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

 

 

오히려 그걸 뼛속깊이 알아야 도울 수 있다는 것.

 

뼈가 시리다. 마음이 춥다.

 

 

'신이 없는 것처럼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말은 신을 믿는 사람의 말이다.

 

 

어떻게 해야 이 미몽을 박살낼 수 있을까.

 

자꾸만 쉽게 얻으려는 이 어리석음을, 거꾸로 생각하는 습관을.

 

 

 

혼자서 괴로워하지 말라고..말 한마디 하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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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1 23:45 2005/02/01 23:45

* 이 글은 미갱님의 [자연은 직선이 없다_가우디 1] 에 관련된 글입니다.

갑자기 생각나서...

우체부일을 하면서 만든 궁전..

 

프랑스의 우체부 페르디낭 슈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농부로 살아온 나는, 나와 같은 계층의 사람들
중에도 천재성을 가진 사람, 힘찬 정열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살고 또 죽겠노라."
프랑스의 오트리브 지역 우편배달부
페르디낭 슈발이 딸의 출생기념으로 1879년부터 짓기 시작해 33년 1만여일,
9만 3천시간에 걸쳐 완성한 '궁궐'의 벽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한다.
그는 매일 30씩㎞씩 우편배달을 하면서 모은 자갈, 조개껍질들로
이 건축물을 완성했고, 평소 그가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던 인생의
좌우명이나 격언을 새겨넣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던
마을 사람들은 존경심을 표하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의 집 앞에서 그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1924년 8월 19일, 88세로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세계 각지의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고 한다.

 

 

 

팔레 이데알 ; 꿈의 궁전?

 

 

굵게 한 글씨의 내용에서 느껴지는 묘한 느낌.

보수적이면서도 개인적이기도 하고 민중적인듯 하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불쾌하기도하고...이게 뭐야..ㅠ_ㅠ

그래도 이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팔레 이데알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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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9 14:22 2005/01/19 14:22

맨발의 겐

from 잡기장 2005/01/15 14:40

만화를 보면서 운적은 많아도 비명을 지른 건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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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5 14:40 2005/01/15 14:40

* 이 글은 붉은사랑님의 [나이 서른에 우린] 에 관련된 글입니다.

스무살 무렵에 이 노래를 들었을 때에는 좀 무서웠었는데. ㅎㅎㅎ 

 

뭔가 아무것도 안 되었으면 어떻게 하지,

서른 살에는 팍팍한 사람으로 변하면 어떻게 하지 등등..

 

이십대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면서 느낀 감정은 허무함과 나 자신에 대한 지긋지긋함이다.

어디서 들은 거지만 정말 정오의 태양아래 있는 듯 하여

내가 추하고 비굴한 사람인 것이 내 내부에서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외부에서는 그런 점이 너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에서 

절망스러운 감정을 느꼈지만 바꾸기엔 방법도 모르겠고 무척이나 게을렀다.

 

지긋지긋한 20대......ㅋㅋㅋ 드디어 서른이다!

뭔가 중요한 일은 하나도 못 이루었지만 만족스럽다.

나는 스무살때보다 더 많은 사람을 알고 있고 역사라는 게 존재했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고 이제는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0대를 지나며 내 태생대로 허둥대며 뻘짓거리를 해가며 지냈던 경험들이 나의 한 생을 무언가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느낀다. 게다가 나이가 드니까 외부에서 추하고 비굴한 것이 드러나서 더욱 개선하기가 쉽다..ㅋ (쉽긴 쥐뿔도..)

나이가 들 수록 돈과 시간이 아니라 경험과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기를.

 

좀 더 많~이 부지런하고 용감해져야 할테지만

정말 솔직히 나의 20대 때 보다 30대가 더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된다.

 

그걸 원했는데 진짜 그러니 좀 당혹스럽다.

 

-_-;;;

 

 

암튼 좀 더 열심히 살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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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5 01:58 2005/01/15 01:58

취업이라긴 뭣하고.. 넘 우울해져서..

 

신촌의 민속주점에 알바를 했었다. 하하하 그 곳 아줌마들은 나를 너무 좋아해서 반찬을 김치전으로 자주 해 주셨다~~

 

다른 알바들은 싫어했지만~ㅋㅋㅋ

 

샘플로나온 산사춘이나 뭐 이런 것도 많이 얻고~

한달에 한 번 정도 주인집에서 회식을 시켜줬었고 (좀 친한 예전 알바들도 부르고 해서)

알바비 셈도 아주 정확했고 청소는 주인아줌마와 아저씨가 바지런히 하시는 편이어서 정말 일하기 편했다.

 

장사도 잘 되는 편이고.

돈도 꽤? 벌었었다. 푸헤헤 힘들긴 했었지만 열심히 일하고 나서 집에 가면 너무 좋았었다..

 

 

일은 그렇게 해야 되는데..

후련하게...

 

 

 

 

 

 

아.. 다시 우울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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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5 00:32 2005/01/15 00:32

ㅋㅋㅋ 아랫글을 쓰다보니 또 생각나서.

 

ㅁㅁㅁ 미술교실에 또 취직을 하려 했었다. 이건 폰마켓팅 이전의 경험.

기냥 아르바이트나 할까 하다가 연수 받고 정식으로 취직했다. 그 때도 역시 아주 가난.

 

그러니까 이건 학습지 선생 일이었는데 발품파는 일이었다.

 

여기서도 완전 몇년전의 교재를 나누어주고.. 자기가 알아서 프로그램 연구해야되고..

예쁘게 입어야 하고.. 화장을 하래서 첨 파운데이션을 발랐을 때의 부담스러움과 역겨움..

그걸 보고 또 예쁘다고 하는 팀장의 말에 토하고 싶은 심정 ...-ㅠ-

한 번 하고는 안해버렸지만.

엄마들에게 잘 보여야 되고 ..뭐..

 

이런 것은 많은 미술학습지 선생님들이 느끼고 있는 점일것이고 좋은 느낌은 절대 아니었지만 정말 열심히 하려고 했었다.

몇일동안 상황을 살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즐겁게 하려고 했었는데..

결정적으로 도난사건이 발생하면서 다 박살났다.

 

어느 날 예쁜 팀장과 예쁜 언니가, 신촌 근처에 왔다고 전화로 불러냈다. 로바다야끼에서 맛난 걸 먹자고 하며 할 이야기가 있단다.

잘 먹고 나서 이야기하기를  

 

사무실에서 돈이 10만원인지가 없어졌는데, 내가 가져간 것이 아니냐는 거다.

 

 

처음엔 화도 안나고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참 괴상하다. 자꾸 나를 설득하는 거다. 네가 한 것이라도 상관 없다. 형편이 힘들어서 그럴 수 있다. 말만 해줘라. 등등.

 

생까고 그냥 미친X들.. 하고 무시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밥을 먹인 뒤에 그따위 소리를 하니 정말 미치도록 비참하고 서글펐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펑하고 눈물샘 터지고 나니 수습이 안 되었다. 그러고 보니 생각보다 꽤 울었구나.

 

상황은 사무실에서 팀장이 돈을 세어서 노트 사이에 끼워놓고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그 때 사무실에 있었던 사람이 나 뿐이라는 거다.

울면서 나는 아니라고 하는 나를 달래면서 안되었다는 듯이 쳐다보던 그 예쁜 언니들, 정말 다시보면 패주고 싶다... 왜 그 때 제대로 화 내지 못했던 걸까.

 

사무실에 이박삼일쯤 안 나갔는데 연락이 다시 왔다. 돈이 돌아온 것이다.

 

은행에서 돈을 안 줬단다. 나도 은행에서도 실수를 한다는 것은 그 때 첨 알았다. -_-;

팀장은 정말 미안하고, 내가 불편하면 다른 팀으로 옮겨서 일하게 해 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자기는 나를 좋아하며 같이 일했으면 좋겠고 다른 곳에서 일하더라도 자기에게 연락을 하며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단다.

 

그냥 꼴도 보기 싫어서 "안 한다"고만 했다. 

내가 아닌 걸 알았으니 후련하고 기쁘다는 기분까지 들었다.. 왜 나는 나를 죄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부당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괴상망측한.....

아무래도 그 즈음의 나는 심각한 자폐였던 것 같다. 지금도 조금 남았겠지. -_-;

 

돌아서 나가는데 또 연락하란다.

휙 돌아보며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봐줬을 뿐 뭐라 하기 싫어서 기냥 문 쾅닫고 나와버렸다.

 

자기 잘못은 냉정하게 생각 안 하고 착한 사람이고자 하면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걸 그 때 배웠다.

그리고..부당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건 나도 부당한 사람이라는 증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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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5 00:21 2005/01/15 0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