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미술굿'은 지난해까지 4회 째 진행된 미술전시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진행될 '인천노동문화제'라는 행사 안에 이전에 노동미술제라는 부분행사가 있었는데, '노동미술굿'은 그것의 연장선이기도 하고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노동미술을 중심으로 따로 판을 구성해야겠다는 맘을 먹은 몇 명(처음에는 한 명이었다)이 노동미술굿이 라는 행사를 기획하게 된 것입니다.

1회 '비정규,비정주,근로동', 2회 'http://www.노동.미술', 3회 '네 가지 이야기' 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까지 자잘한 탈을 겪으며 ㅋㅋ 진행되어 왔습니다. 3회까지는 인천의 큰 전시관에서 전시를 했습니다. 전시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여러 의견과 전시기획단의 여러가지 욕구가 반영이 되어서 이번에는 '인천대공원'에서 야외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단 1회 때부터 참가를 하기도 했고 내내 진행일을 맡고 있었는데 3회 째에는 공동기획으로 참가할 기회까지 왔었습니다.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함께 왔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3회에는 능력이 심히 딸리는 느낌을 받았고, 사람들에게 실려서 일을 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제게 큰 자극이 되었고, 몇 년간 일하던 곳을 그만두면서 더욱 많은 생각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 상황에 올 해의 책임기획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ㅜ .. 그래도 올 해는 '노동미술굿 기획단'이라는 이름으로 상설모임을 만들었고 함께 논의하며 올 해의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노동문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통해 노동미술을 접해서 가끔 그 연관성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화운동이라는 것은 매우 다양한 활동들을 의미합니다. 문화와 미술이라는 말은 대립하는 말도 아니고, 상하부 개념도 아닙니다. 3년간 노동미술굿을 바라보면서 느낀 것은 '노동문화운동을 한다는 것'이나 '노동미술을 한다는 것'으로 일상적인 동질성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미술로서 문화운동을 한다는 것' '노동운동가가 미술로서 미술운동을 하는 것' '미술로서 노동문화를 한다는 것'이(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다 입장과 상황과 태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나는 처음에는 막연히 '노동' '미술' '운동' 이라는 단어만을 머릿속에 넣고 그것이 같은 결론을 내 줄 것이라는 식으로 순진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래가지고는 '무엇'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 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네요. 한발짝을 잊지 말아야죠. ;;;

 

보기에는 그렇더라도 무언가가 한꺼번에 변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입장에서 노동미술굿 전시와, 그것을 함께 만드는 사람들과 대화해 왔습니다. 단지 미안한 것은 제가 말이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암튼 조금 더 변화해가기를 원하며 이번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나는 좀 뻔뻔스러워지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마음은 불편하지 않습니다. 후훗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당신이 그 곳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자신이 생산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도록, 자신의 노동을 보호할 힘을 가질 수 있도록.

 

 

http://nodongood.net/

 

홈페이지를 보면 어색한 부분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뭔가 좀 잘못 말했거나 충분히 소화되지 않았다는 증거죠 ㅋㅋ 의견 주시면 여럿이서 매우~~~~~~~~~깊이 감사하고 진지한 논의를 통해 조금이라도 바꾸어 보겠습니다.

 

 

싸울 일은 많지만, '공포에 질려 살아가는 삶은 삶이 아니라고' 누군가 이야기 하더군요. 다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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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4 13:52 2007/08/04 13:52

지드님의 [의문] 에 관련된 글.

 

# 87년의 성과와 실수는 무엇인가? 87년 투쟁의 성격이 무엇이고, 어떤 점이 90년대에 영향을 미쳤는가?

 

# 좌파(또는 정치적 성향)를 규정하는 것이 사회적 지위와 조건인가? 교육인가? 심성/유전자인가?

 

 

 

덧글을 달려고 하다가,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싶어서 트랙백 날립니다.

참 오랜만에 글을 올리네요.

 

 

제 주변에는 87년을 엄청 감동스럽게 (말이 참 빈곤하다 상상도 빈곤하고 ㅋㅋ) 겪으신 선배들이 몇 분 있습니다. 뭐랄까, 아주아주 감동을 받았었고, 제가 사진만 봐도 벅찬데 거기 있었던 사람들은 얼마나 굉장했었을까 하는 생각은 들어요.

 

저는 다수의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모이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그건 87년에 대한 이야기들이나 사진들을 본 탓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87년 20주년을 기념하는 노동문화제에서 미술 부분으로 네트워크 하게 되면서 부담도 많이 느껴졌습니다. 함께 회의하는 분들은 한 분만 빼고 노동자대투쟁 때 최소한 대학 1학년이었거든요. 나만 모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단 말이죠. ㅋㅋ

 

하지만 요즘 드는 느낌은,  제가 87년의 감동을 그들과 똑같이 나누지 않았다는데 압박을 느끼는 것이 그닥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과와 실수.. 이야기를 하셨고, 그런 것에 대한 자기 나름의 구체적인 고민과 정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87년의 성과도 실수도 그닥 중요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굳이 생각하면 87년의 성과와 실수는 1987년이래 2007년까지의 활동에서 판단 가능한 것 아닐까 싶어요.

(-ㅁ- 그런 말씀이었던 것 같기도..)

그나마 확실한 것은 87노동자대투쟁이 정치적으로도 비정치적으로도 저의 현재에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것이 전체이든 부분이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똑같은 시간이 되돌아 올 리 없죠. 똑같이 변화하는 인간도 없구요. 모든 사람들이 87노동자대투쟁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전에 있던 자리와 지금 있는 자리와의 관계에 따라서 사건은 계속 변화해 가는 것 같아요. (이 글은 제가 저를 설득하기 위해 쓰는 글 같네요 -ㅅ-;;)

 

그래서, 지금이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은 소중한 시간이 변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미래에 대한 지향은 그것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중한 시간은 극단적인 경우 머릿속에만 존재했을 수도 있지만 대개 실재했던 것이고 육체적, 심리적, 사회적인 상황도 고스란히 그 설정으로서 저장하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ㅎㅎ 이건 좀 위험한 전제일 수도 있지만 87년대투쟁때 초딩이었던 제 경우를 생각하면 '정신 똑바로 차리자'라는 생각도 하게 해주고.. 소중한 시간이 방금 전이 아니라 지금이라면, 사람은 과거나 미래를 안 바라보고 충실하게 지금을 살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미래라는 것은 현재의 구체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요. (OTL 이 가물거리는 정신.. 스테미너가 필요합니다.) 

 

링크해 두신 글을 보면서 당혹감을 느끼는 것은 이미 좀 지겨운 일이 아니던가요? 그래도 풀리지 않으니 계속해서 이런 질문들이 나오는 거겠죠. 저도 풀리지는 않지만 지겨워요 -ㅁ-..

 

 

**

 

최근에 저는 제가 완벽한 주체라면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 한 적이 있어요.

어느 선배가 제게 '너는 (당연히) 주체가 아니냐'라고 이야기하기에 순간 나온 답변이었지만 제 솔직한 심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자본주의 세상에 열심히 사는 모든 이가 일견 우스워 보이는 것이 화가 나는데, 저는 전에는 제가 세상이나 사람들을 우습게 생각하는 줄 알았었죠. 그런데 지금 그건 많이 아닌 것 같아요. 이제 이 사람들을 일견 우습게 보이거나 무감각하게 느껴지는 상황이 싫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거죠. 물론 그 사람들을 나로 생각하면 더 화가 납니다. 어떤 사람이 날 보고 웃는 건 괜찮지만(실은 괴롭지만 그 때 뿐이거나 해소 가능하죠^^), 웃긴 존재로 규정되고 개념화되고,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씌웠다고 생각하면 말도 안된다는 거죠.

그것이 직장이나 학교나 거리에서 구체적인 사건들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구요.

규정하는 것은 생물체에게 그닥 쓸모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특히 진화하려 할 때는 말이죠.

저는 사실 보수적이라고 할 정도로 '나이가 들면 어쩌구된다'하는 과정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받아들입니다만

그런 생각만 가지고는 진화 안하고 그냥 초조하게 방황하다가 죽을 것만 같습니다. 열심히 사는 것과는 좀 다른 선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설프지만, 혁명이란 것은 좌든 우든 변화하지 않는 자들이 세상시스템을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자들이 그대로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닐까..하고 상상해 봅니다.

 

암튼 어렵네요.

건강하세요. 몸도 마음도. (풋.. 뭔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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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2 22:34 2007/06/12 22:34

양다슬님의 [윌리 호니스(Willy Ronis)의 사진] 에 관련된 글.

덕분에 윌리 호니스, 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할 계기가 되었습니다. -_- 꾸벅

 

 

아랫글은 불과 네 달 전, 다른 블로그에 윌리 호니스 전시 소식을 올리면서 끄적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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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휴머니스트 사진작가

살아있는 프랑스 최고의 사진작가로 추앙 받고 있는 윌리 호니스의 전시회가 2006년 12월 23일부터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열린다.  2005년 10월 19일부터 2006년 5월 27일까지 프랑스 파리 시청에서 열린 이 전시는 프랑스 정부와 국민이 문화재로 지칭되는 윌리 호니스에게 바치는 오마주였다. 파리의 2백 만 인구 중 약 25 %인 48만 명이 관람할 정도로 연일 만원 사례를 이루었던 윌리 호니스 전시는 프랑스 국민들이 갖는 그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파리 시청에서 기획한 회고전에 연이은 이번 갤러리 뤼미에르 기획전시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과 로베르 드와노(Robert Doisneau)와 함께 휴머니즘 사진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윌리 호니스를 세계순회 전시로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소개하는 가슴 벅찬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파리 시청의 적극적인 후원과 더불어 한불 수교 120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전시가 될 것이다. 약 2백여 점 흑백의 이미지들이 올해 나이 97세인 윌리 호니스의 작품 세계를 신실하게 보여준다.

 

...중략

1936년 프랑스 대혁명 기념 행진 인파에서부터 자기 보다 훨씬 커 보이는 바게뜨 빵을 들고 장난기가 가득찬 얼굴을 한 채 뛰어가는 소년, 몽마르뜨 뒷 편의 언덕길 곳곳을 찍은 벨빌-메닐몽떵(Belleville-Ménilmontant) 시리즈까지 세계 2차 대전 이후, 수 많은 신문과 잡지들이 전쟁의 그림자를 뚫고 생겨난다. 윌리 호니스 역시 저널 붐의 수혜자였다. 카메라를 들고 길거리로 뛰어 나와야 직성이 풀리는 그답게 팡테옹(Panthéon)에서부터 몽마르뜨까지, 레 알(Les Halles)에서 뤽상부르 공원(Jardin de Luxembourg)까지 파리지엥들의 삶과 파리가 갖고 있는 영속의 매력을 담은 사진들을 찍으며 명실 공히 파리를 가장 파리답게 표현하는 사진 작가로 인정받는다.

 

‘나는 인생을 따라 움직였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과 이 동네를 사랑한다.’

 

1936년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 행진 인파 속에, 1938년 시트로엥 자동차 공장 대파업장에 그가 있다. 그는 마치 수 많은 인파 속에 길 잃은 누군가의 시선을 잡아내듯이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는 수줍음이 베어 나온다. 또한 절대로 주제를 클로즈업 하지 않으며 정면을 과감하게 찍는 경우도 드물다. 그의 사진과 주제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감이 있고, 그 거리감은 주제에 대한 작가의 애틋함과 겸손함으로 채워져 있다.

 

‘나는 비어있는 길을 찍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사진을 통해 재현하는 것은 건축물이 아니라 감수성 짙은 연가이다…

나는 어떤 특별하고 특이한 것을 좇지 않는다.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사진을 통하여 자신의 기억의 뼈대를 하나씩 맞춰나간다는 윌리 호니스는 때때로 매우 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승전에 맞춰 프랑스로 귀환하는 전쟁 포로들의 사진인 1945년 작 <불르바흐 본-누벨(Boulevard Bonne-Nouvelle)>을 비롯하여 지금은 폐쇄되어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는 오르세역(Gare d’Orsay) 플랫폼에서 프랑스와 독일 국경 사이를 왕복하며 찍은 사진 중 하나인 그를 돌보던 간호사에게 입맞춤을 하는 군인의 사진이다. 과연 그들은 다시 만났을까? 윌리 호니스는 그 동안 이 사진이 출판되거나 공개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어쩌면 그들에게 이 장면은 너무나 비밀스러워야 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60년이 훨씬 지난 오늘 그들의 사랑이 공개된다.

 

..

윗 글은 조선일보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옮겨온 것이다.

 

하필이면 조선일보미술관..

화이트 큐브 안에서. 작품 앞에 선다고 해서 그것이 '순수하게' 보는 행위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이다.

윌리 호니에 대한 보도자료도 왠지 믿을 수가 없다.

전시도 윌리 호니의 부분만 보여주기일 것 같다..

 

"마지막 휴머니스트 사진작가" 라는 말도 지난 시절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듯하여 기분이 좀 안 좋고..

 

 "그가 찾아 헤매던 것은 ‘아름다움은 길 위에 있다.’ 라는 명제였다. 그에게 있어서 아름다움이란 ‘길’에서 찾아 낼 수 있는 것이다. 감자튀김을 파는 이의 손 끝에서, 땀을 훔치며 지친 몸을 벽에 기대고 있는 수리공의 얼굴에서, 춤을 추고 있는 아가씨의 치마자락에서 멜로디를 타고 되살아난다."

바로 이어지는 글. "이처럼 그의 작품은 클래식하다."  

 

'겸손함', '꾸밈없음', '수줍음', '평범함에 대한 따뜻한 시각'

 

등등. '나의 인생'이라면서 이렇게 사포로 간 듯한 문구들만 있는 것이 ..

사진과 함께 옮겨온 글들을 보면 윌리 호니의 이야기에 대한 중심이 조금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암튼! 보고나서 이야기 할 일이다.. 정말 그냥 따뜻하기만(?) 할 지도 모르지..

 


....................................................................................................................................................................................................

 

 

나는 도데체 무엇을 선택해서 보고 있는지, 날 봐도 내가 웃깁니다.

사포로 간 듯한 눈알을 갖고 있는 건 내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일입니다.

 

'시트로엥 공장 파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전쟁 이야기가 나오길래, 이러저러하게 웹을 쏘다니며

한참을 찾았는데, 윌리 호니스에 대한 자료를 조선일보미술관에 실린 이상의 것으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후후, 그래서 더 우울하기도 했고, 외국어를 못하는 것이 깝깝하기도 하고.

 

역시 휴머니즘과 지나간 시절의 세계적 사건들, 시류들을 정말 지나간 듯이 말하는 것이 갑갑하지만,

윌리 호니스의 사진과 삶을 그저 미술관에 갇힌 것으로만 판단하는 나도 갑갑합니다.

사진만을 보자면, 그가 사람을 사랑했던 것도, 낭만도 현실도 피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터뷰나 소개 글들은 분명 선별하여 보여지는 것 같습니다. (질문이 있었을 법 한데 말이지요.)

 

 

-당신에게 있어서 휴머니스트 사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인간에 관련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어떤 특이한 개인 개인이 아니라 서로 닮아 있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 관심을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휴머니스트 사진가들)은 우리 자신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여깁니다. 바로 평범한 일상을 말하는 것이죠.
특히 우리는 특별한 사건 사고나 특종에 관심이 없습니다. 제 책에도 제가 말을 했지만 사진가란 직업은 <평범한 행복에 다가가는 작은 발자국>입니다. 아마도 제가 소박하고 평범한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일까요? 저는 화려한 곳을 좋아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 곳에는 자연스런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보그Vogue>와의 작업을 하는데 거부감을 느꼈던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잠시 동안의 일이었고, 비록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지만 평생 해야만 했다면 지겨웠을 것입니다. 패션 사진에는 말할 수 없는 거추장스러움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직업 소명과 거리가 있었습니다.

 

제가 일부를 발췌한 것에서 다시 발췌한 것입니다.

고민이 됩니다. '평범한 행복에 다가가는 작은 발자국'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너무 다릅니다.

이용하는 것도 지겹고 안이용하는 것도 지겹습니다.

..

 

화이트 큐브가 갖고 있는(갈등 중) 문제와 조선일보라는 이름이 주는 억압과 윌리 호니스의 뭔가 수상하지만(이미 영향 받았다구!) 아름다운 사진들이 어우러져 이렇게도 복잡하게 머리고 마음이고 멍들게 하는군요.ㅋ

윌리 호니스는 문제가 있거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화이트 큐브와 조선일보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윌리 호니스가 문제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닐테고.

 

 

이게 너무 피상적이고 이상적인 생각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도데체 뭘 믿겠습니까, 저는 역사라는 것,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무지하고, 보수적이지만

파편적으로 제가 생각하고 느끼면서 그것을 엮는 방법 외에는 아직 뾰족한 것이 없습니다.

 

 

(1938년의 시트로엥 공장 파업이라...프랑스 월드컵 중이었네....!    2차대전 전년도!  상상만해도 무섭구나  -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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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30 21:41 2007/04/30 21:41

손이 간지러워서..-,-

from 다시 2007/04/23 15:03

샤♡님의 [2007/04/22] 에 관련된 글.

 

트랙백까지 보낼 건 없었는데,, 가벼운 제 손이 문제죠. 갑자기 '중독'과 '방종하는 이미지'에 필받아서 ^^;

모르는 이야기를 그냥 모르고 넘어가기만 하고, 아는 이야기가 나오면 신나서 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은 그것 자체가 강박인 것 같아요.

 

 

한 때, 방종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꽤 동경하고 있었는데 그 때 생각한 것이

'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누구와 같은 필도 안나고 재미가 없을까.. 나는 방종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더 방종해야하나, 방종하기도 참 어렵다' 하는 생각이었죠.

지금 생각하니 감독이 제가 아닐 뿐 슬랩스틱코메디에 가까운데 이런 점은 아마 아직도 남아있을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젼에서 재미없는 외국 드라마를 보던 중 약간의 충격과 시시함을 동시에 느낀 장면을 볼 수 있었어요. 내용인 즉, 드라마 안에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프로그램(주인공들과 관계없는 사람이 나오는) 이었는데 '청소를 못하는 병'에 걸린 청소년이 나오죠. 청소를 못하는 병에 걸린 청소년은 너무 괴로워하고 그 어머니도 나와서 처음에는 병이 아닌 줄 알았으며 지금은 더 이상 못 봐줄 정도이고 아이가 너무 안쓰럽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고 둘다 엉엉 울죠. 당시 (최근 7년은 확실히 아님) 저는 픽 웃으면서 '너무 썰렁해..저게 뭐야' 정도의 반응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후에도 왠지 그 기억이 두어번 났었던 것 같은데, 샤♡님 글을 보면서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어요.

청소를 안 하는 사람은 '청소를 못하는 병'에 걸린 것일까? 건강한데 그저 안 하는 것일까.

병에 걸린 척 한다면? 척한다고 생각한다면?

청소를 누군가가 해 준다면?

청소를 할 필요가 없는 환경이나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

 

'중독은 통제가능할 때 매력있는 것 같아,'라는 말은 중독된 그 지점(뇌의 한 부분?)이 아닌 타자의 시점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저는 중독이라는 것이 '소통불능에 대한 육체적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족들도 그들에게 살의를 느낄 때,'에 그는 중독과 생존에 대한 선택에서 엄청나게 고생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하지만 실제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는 것 아닐까요. 중독은 표현이고 중독이고, 생존은 또 다른 층위의 고민이지 않을까 싶어요. 독에 중독되어 0.0001초만에 죽더라도 0.0001초 동안은 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물론 0.0001초간의 생에 대한 사회적 적응과 선택이라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중독에 대해 사회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비교적 정확한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점에서 '통제가능할 때 매력이 있다'라는 말은 너무 쓸쓸한 말인 것 같아요. 저는 중독이라는 것이 좋고 나쁘고를 따질 수 없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왜'라는 것에 대한 대화와 해결이 가능할 때, 한 중독자의 중독에 대한 판단이 가능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무조건 (스스로도) '아니야, 끊어야 돼, 이래서 끊어야 되고, 저래서 끊어야 되고..'라는 식으로 되면 실제로 끊기도 힘들고, 그러다가 좌절하기 쉽죠.

 

 

어흣 ..글이 감당하기 힘들어지네요. 죄송.. 지나가는 긴 댓글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ㅜㅠ

 

샤♡님의 글을 보면서 '변화는 섬세한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결론?!? -ㅁ- 마사루 식? ///OT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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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3 15:03 2007/04/23 15:03

나이롱 나이롱

from 잡기장 2007/04/22 03:29

 

 

피멍이 들었다는 게 그런 건가.

 

피가 쏟아지지도 않고,

 

그 자리에 쏟아졌다.

 

 

거부당하는 두려움을 극복할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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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2 03:29 2007/04/22 03:29

게릴라 프로젝트

from 잡기장 2007/04/21 10:58

 

 

http://guerrillaproject.net/

 

게릴라 프로젝트

젊은 작가들이 공동으로 만들어내는

하나의 성과물로서 비정기적으로 무크지를

발행하는데 목적을 둔 프로젝트입니다.

 

게릴라 프로젝트, 목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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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1 10:58 2007/04/21 10:58

 

친구와 관악산을 갔다오면서 나눈 이야기 중에,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쏟아져나오는 것을 어쩔 때는 감당할 수가 없는 느낌이 들때가 있다고 했었죠.

웹에서 수 많은 경험과 생각들이 풀어져나올 때, 나는 내가 참 느리고 게으르고 겁이 많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실생활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활동을 하면서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의심하고 다시 생각해보다가도 이건 일단 하고 봐야지하면서 뛰어다니다보면 어느 순간 다시 '내가 지금 어떤 것을 하고 있는거지'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 실체와 내 행동과, 새로이 만나는 사람들과 새로이 만나는 역사 같은 것들이 잘 조화되지 못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죠. 그래서 매번 의심을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나는 실제로 아주 느린 사람이고.. (유아기 때부터 지금까지의 평으로) 상상력도 빈곤하죠.

노는 걸 아주 좋아할 뿐이고. 공부도 노는 것의 일환! -ㅅ-;;

 

의심을 풀어가기위해 내게 필요한 고요한 시간을 어떻게 확보해야할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은 행동을 하면 그런 거 없어진다고 누가 말했지만, 난 그 말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과 함께 하며 관계는 무척 좋아졌지만 내 스스로에 대한 황망함과 불안은 더욱 커졌거든요.

 

어쨌든, 조금씩이라도.. 변화하며, 타인과 나의 생각과 감정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머리보다는 손발을 움직여야 겠어요.

아마 그 사람이 말했던 행동은 이런 것이었겠죠.

 

(결국 소화가 안 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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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0 15:58 2007/04/20 15:58

보풀님의 [분노는 나의 것, 감동도 나의 것.] 에 관련된 글.

 

 

 

  모자를 쓴 V.I.레닌의 초상, 잭슨 폴록 스타일로 I

   1979, 캔버스 위에 올려진 나무판 위에 유화와 에나멜

   1.7×1.2m, 개인소장, 파리.

 

Art & Language (group; Terry Atkinson, Michael Baldwin)
born 1942, born 1945 

 

* 지금 읽고 있는 책 (브랜든 테일러, '오늘의 미술')에 나온 김에 올린다. 디카로 대충 찍었더니 꼴이 말이 아니다.. 책에 인쇄된 사진만 봐도 훨씬 섬세하고 견고한 느낌이 든다. OTL

 

윗 그림은 영국 그룹 Art & Language '미술과 언어'의 작업이다.

책에 나온 설명에 따르면 '몸짓의 순간에는 스텐실을, 눈에 드러나는 레닌의 이미지에는 공식적인 공산당 도상을 사용함으로써, 그러한 회화들은 어느 쪽에도 적용되지 않는 바탕 위에서 액션 페인팅과 "당파주의자 partiinost"를 충돌시키고 전멸시킨다. 바탕 위에서 액션 페인팅과 "당파주의자"를 충돌시키고 전멸시킨다.'라고 나와 있다.

 

폴록으로 대표되는 1950년대 형식주의를 타파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작품이라고 한다.

폴록의 작품과 거의 흡사한 모습을 보며 제목으로 보고는 푸헛하는 느낌을 순간 느끼게 된다.

폴록의 뿌리는 추상화의 방식이 뿌리는 행위 자체도 이론으로 신성화 되고, 그 과정을 거친 결과물도 신성화되고, 작품을 만드는 온 과정이 통째로 '하나의 이상적인 형식'을 이루도록 '작업'한 작자들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스텐실이라는 방법을 사용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스텐실은 대충 "무늬를 도려낸 형지·금속판 등을 직물 위에 놓고 그 위에서 스크레이퍼(scraper:날염물 긁개)로 날염풀을 칠하여 무늬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하는데 '미술과 언어'의 작업에서는 표현주의자의 기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표현주의적인 그림들이 제작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고 한다.

 

찰스 해리슨이라는 사람이 '미술과 언어' 그룹의 레닌 연작을 두고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이제 하나의 실제적인 형식으로서 회화의 가능성은 개념미술의 전설에서 벗어나 미술과 언어 그룹으로 나타났다.....회화사 자체는 회복과 수정에 노출되어있다..... 회화 문화는 이제 회화에 의해서만 비평적으로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브랜든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모더니즘 이후의 모더니즘에 대한 해석은 소수의 전후 미술가와 비평가들(말하자면 폴록과 그린버그)을 표준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만 흥미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특히 영어로 행해진 소란스런 모더니즘 논쟁과는 거리가 먼 교육을 받은 미술가들에게 그러한 강령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결코 절대적 형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들이 또 다른 남성 미술과 필사적으로 투쟁하면서 남자다운 특질을 보증하는 이론적 태도를 혐오하였다. 건조하고 학술적인 어조의 논쟁은 철학적 비판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흥미를 기대하기 어렵다. .."

 

찰스 해리슨의 이해는 가지만 구역질나는 발언은 운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과 언어' 그룹이 표현해 낸 '미국의 추상과 소비에트 사실주의의 낯뜨거운 조화' 는 냉전이 완화되었다고 해도 한창이던 시기에 2007년 현재보다 더욱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다만, 폴록이라는 화가와 그린버그라는 무시무시한 미술평론가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제목이 주는 '레닌'의 빨강색과,  폴록 스타일의 알 수 없는 추상화(게다가 방법까지 스텐실!)가 보일 뿐이다.

이중으로 거부감이 들지 않겠는가..ㅋㅋㅋ

 

그렇다고 옆에다가 폴록 그림도 전시하고 그린버그의 평문도 함께 전시하면 정말 웃길 것이다.

삼중으로 거부감....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누구에게 이야기하고 싶은가를 선택하는 것이,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던 그림이라는 것을 파악하는 것도 그 그림을 이해하는데 빠뜨릴 수 없는 지점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면.. 어쩔 수 없지만.

다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파악하면 단지 그림 뿐만이 아니라 모든 시각적 인지물들을 만든 자가 대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좀 더 분명한 판단이 가능하지 않을까.

 

 

 

Pollock, Jackson (American, 1912-56)

Lavender Mist No. 1
1950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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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8 11:53 2007/04/18 11:53

뎡야핑님의 [물랭 루즈에서, 라 굴뤼, 1981] 에 관련된 글.

 

 

저도 로트렉 좋아해서 ^^  뎡야님 포스트 보고는 덩달아 신나네요. 기억나는 것들을 올려봅니다.

 

 

이런 포스터가 길가에 붙어있다면, 너무나 즐겁고 여유로운 느낌이 들 것 같습니다.

좀 오래전에 좋아하던 스타일이 되어버렸지만.. (말하고보니 썩소는 과하고, 밝게 웃긴 좀 쑥스럽네요) 

  

 

덜 된 듯하지만 화면 전체의 투명한 반짝거림이 포착되어서 여기서 스톱한 것 같습니다.

좀 뻔뻔한 느낌도 들지만 스톱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더 그렸으면 가벼운 빛이 사라져 버렸을 거예요. (알 수야 없지만, 내 맘대로~)

 

'뭐, 이 그림으로 마지막 장도 아니니까' 이런 심정? ^^

 

 

무엇보다 제가 로트렉에 홀린 그림은 아래의 'At the Moulin Rouge' (1892) 입니다.

 

 

 

넘쳐나는 빛, 색채, 기괴함.. 이 그림을 본 순간 즐거움으로 머리가 폭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ㅁ-;

이후로 로트렉 관련 글, 그림 등은 열심히 찾아 봤었는데, 제 머리는 유독 언어를 기억 못하는지라.. 그래도 기억나는 것을 주워담자면,

로트렉은 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잘 자라다가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되어 버렸죠.

이후 하반신은 사고당한 시절 이후로 자라지 않았다고 해요. 누군가의 그림에 키가 작은 로트렉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모습도 본 것 같네요. 술을 엄청 마시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도 생각나고..

 

그림에 취미를 가진 것도 사고의 영향이 컸고.. (정말 적네.. OTL)

 

로트렉에 홀린 것은 이미 어릴적(십대)이었죠. 어느날 텔레비전에서 로트렉이 주인공인 영화를 하더군요.

안 볼 수가 없어서 보는데.. 어린 로트렉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순간 너무 놀랐답니다. 아직도 그 장면만은 눈에 선합니다. -_-;;;

 

검색해보니 그 영화는 로저 플랜천이란 감독의 '로트렉' (Lautrec, 1998)이라는 작품인 것 같네요.

게다가.. 쉬잔 발라동과의 사랑이야기라고 나오네... (그 땐 당췌 연애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구나하하하, 기억이 잘 안 남) (결국 첫 장면 몇 개만 기억하는 거군..) (게다가 이 감독, '까미유 끌로델' 감독이네.. 기억 못해서 다행이다..)

 

오랜만에 로트렉을 보니 좋긴한데, 그림이 유독 여성/남성 구분이 확연한 느낌이 드네요.

(당연한 건가.. 아니 다른 화가 그림보다 좀 더 그런 느낌이 들어서..)

 그리고 좀 괴롭네요. 실은 로트렉 그림을 보면 항상 좀 괴로워요. 그래서 매료되었는지도 모르죠.

슬픔과는 좀 다른, 강렬한 애정과 괴로움이랄까 역시 짧은 생각과 부정확한 사실로 설명하려니 재미가 없어..

 

 

 

거울 앞의 자화상 Self Portrait in front of a Mirror.

 

 

 

 

 

로트렉의 그림이 아-주 많은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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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3 04:02 2007/04/13 04:02

인천지역 문화실천단이 제작년까지 꾸준히 활동을 했었는데..

올해에는 인천노동문화연대 인천거리공연으로 새롭게 시작된다고 합니다.

 

거리에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발언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어우러지던

모습이 제겐 약간 특이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_- ;  힛,

 

 

거리공연이라는 특이한 상황은 누구와 어떻게 함께 할 것이냐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나올까에 따라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이전의 거리공연을 보면서, 문화가 변화한다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이 들었었던 기억이 납니다.


단순히 거리의 모습과, 사람들의 반응, 그런 것들 뿐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 관계하는 방식.. 아, 고민을 좀 해보아야 겠습니다. (괜찮은 이야기 생각나면 반영될 것 같은 분위기ㅎㅎ) 관심있으신 분들은 의견 보태세요. 제게 남기심 전해 드리구요..ㅋㅋ

 

http://ilcnet.net/ 인천노동문화연대

 

완전 새로 시작할 생각인지 예전 자료도 갑자기 자고 있다는.. 후훗-ㅁ-;;;;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이전보다 더 즐겁고, 재미나고, 그러면서도 의미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호호 말은 쉽지!

 

 

 

간담회, 가고 싶지만 시간이 안 맞음.. -ㅁ-;;;; 내가 가면 끝나겠군화..  뒷풀이때라도,...

 

 


2007 거리공연 "거리에서 만나자"를 함께 하고자 간담회를 제안합니다.

 


2007년 거리공연을 준비하며...

 

시대는 분명 그 시대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기본적인 원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신자유주의라고 이야기되는 자본주의의 한 형태가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린지 10년, 지배적으로 한국사회는 분명 신자유주의를 구성하는 원리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현재 경향적으로 드러나는 경제적 가치에 대한 지고지순한 내면화, 경쟁과 차별의 보편화, 빈곤의 일상화, 개방의 극대화, 공공정책의 무력화, 이념의 경직화 등은 신자유주의속 한국사회를 운영하는 원리이자 지배적 문화형태이며, 그 결과로서 파생되는 사회의 모순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극한을 달리는 시대, 우리의 거리공연은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그것은 지배적 문화를 추구하게 되면서 깨어져 버린 사람과 사람사이의 연대적 감수성의 회복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사람의 내면에 잠복해 있는 심리의 불안정성을 교묘히 활용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끊임없이 나 이외의 타인을 경쟁자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관계를 형식화하고 수단화시킴을 의미합니다. 거리공연은 이것을 예리하게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이 허구적임을, 스스로의 삶은 스스로의 판단과 행위를 통해 완전한 자기의 것이 된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적 관계와 의식을 통해 나의 근거를 찾고, 이를 공간속에서 표현함으로써 또 다른, 연대해야 하는 타인의 자아를 찾아나가 실타래처럼 엮여지는 실천적 행위가 바로 올해 거리공연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2007거리공연에 관심있는 분들, 함께 하고자 하는 분들과 고민과 계획을 나누고자 합니다.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드립니다.

 

- 주최 : 인천노동문화연대
- 일시 : 2007년 4월 23일(월) 오후3시
- 장소 : 인천노동문화제 조직위원회 사무실
- 대상 : 문화예술활동가, 거리공연에 관심있고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
- 문의 : (032)874-1479 / 김영택(016-316-3502)

 


* 간담회에서 나눌 이야기


  - 2007 거리공연의 취지
  - 거리공연 1년 계획
  - 거리공연팀 체계 및 운영계획
  - 거리공연 워크샵 소개 및 참여안내
  - 1차 거리공연 기획안 공유 및 제안
  - 거리공연 운영단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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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2 18:43 2007/04/12 1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