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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56회 – 나의 외로움이 사치스럽지 않으려면

 

 

 

1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쉰여섯 번째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방송은 성민이와 들풀이 같이 진행하고요

먼저 입은 연 저는 성민입니다.

 

외로움 척도를 측정하는 체크리스트를 발견하고 재미삼아 한번 해봤습니다.

‘얼마나 자주 내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다고 느낍니까?’ ‘얼마나 자주 주변 사람과 공통점이 많다고 느낍니까?’ 같은 질문들에 수량화된 답변들을 해서 그 총합으로 외로움 정도를 측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체크리스트를 해나가면서 제가 느끼는 외로움이 많이 표현되어 있는 것 같아서 당연히 제 외로움 지수가 높게 나타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모든 문항을 다 체크하고 합산된 결과를 봤더니 36점이 나오더군요.

43점 이상이면 외로운 것으로 간주되는데 저는 기준점 이하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제 외로움 지수가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똘똘 뭉쳐진 채

시골마을에서도 외곽에 동떨어져 개 한 마리에 의지해 살아가는 제가

생각보다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다는 얘기였으니까요.

 

제가 이렇게 정서적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은

가까이에서 저를 위해 많은 신경을 써주는 동생들이 있기 때문이고

저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는 사랑이가 있기 때문이고

읽는 라디오를 통해 제 자신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꽁꽁 얼어붙었던 제 마음을 녹이며 삶의 온기를 만들어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분 좋은 소식은 읽는 라디오를 통해 밖으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방송 원고를 준비하면서 다시 한 번 체크리스트를 해봤는데

이번에는 결과가 기준점인 43점을 넘어선 48점이 나오는 겁니다.

즐거웠던 기분이 푹 가라앉아버렸지만 애써 위로를 해봤습니다.

기준점에서 그리 많이 초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만 더 노력하면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를 다독였습니다.

 

외로움 지수의 수치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봤습니다.

동생들과 사랑이와 제 자신에게 좀 더 많이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해주는 것

주위를 둘러보며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서 즐거움을 쌓아가는 것

세상 사람들의 힘겨움을 외면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것

내 마음 속에 그런 온기들을 조금이라도 더 간직하는 것

 

올 한 해 동안 이런 노력들을 조금 더 열심히 해서

내년에는 외로움 지수가 기준점 이하로 낮아지면

진짜로 즐거운 기분을 원 없이 만끽해봐야겠습니다.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느 집 담장 안에 목련이 환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겨우내 앙상했던 나무에 불이 켜지는 것처럼 말이죠.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제 마음이 환해집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도 환한 기운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3

 

안녕하세요, 들풀입니다.

앞에서 성민씨가 외로움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저도 외로움이라면 만만치 않게 달고 살아갑니다.

삭막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은 사람들과의 거리두기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지 않으려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면 당연히 외로움이 밀려오지만 그 외로움이라는 것도 도시생활의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영혼은 고갈되어 가겠죠.

 

일상에서 스치듯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짧은 온정으로도 정서적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커피숍에서 주문을 할 때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짧은 덕담을 나눈 그룹과 무표정한 표정으로 주문만 했던 그룹을 조사했더니 30초의 짧은 관계 속에서도 행복감과 친밀감이 높아진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하루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면서도 사람을 통한 온기를 느끼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삶을 살다보니 이런 얘기가 가슴에 팍 꽂혔습니다.

 

이 얘기를 듣고 제 삶에도 작은 변화를 주기로 했습니다.

편의점에서 계산을 할 때, 버스를 타고 내릴 때, 커피숍에서 주문을 할 때 덕담을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밝은 표정으로 ‘고맙습니다’라고 한마디를 건네기로 했습니다.

처음 몇 번은 그런 행동이 익숙지 않아서 평소처럼 무표정하게 그냥 지나갔는데, 나중에 의식적으로 인사를 하기 시작했더니 상대방도 역시 ‘감사합니다’라고 반응을 해주더군요.

그 반응이 기계적인 사람도 있었고, 어색하게 작은 목소리인 사람도 있었고, 간혹 무반응인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게라도 짧은 순간 교감을 할 수 있다는 느낌은 좋았습니다.

자판기에 돈을 넣고 기계적으로 물건을 받아드는 느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질 수 있었던 겁니다.

그 작은 변화가 제 마음을 환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이제는 그 변화를 온라인에서도 주려고 합니다.

유튜브나 sns를 보면서도 고작해야 ‘좋아야’를 누르는 것이 전부였는데 마음에 드는 내용이 있으면 짧은 댓글로 제 마음을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뉴스레터를 받아보면서도 정보만 읽고 나서는 휴지통에 그냥 버리곤 했었는데 좋았던 내용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서 되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분들도 저희처럼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정성스럽게 만들었을텐데 한번 보고 아무런 반응 없이 지나쳐버린 것이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내가 보인 반응에 상대방이 다시 ‘좋아요’를 눌러주고, 나의 피드백을 다음 뉴스레터에서 소개도 해주는 것을 보면서 서로 마음이 통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역시 기분이 좋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참 많은 사람들과 관계하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사람들과 마음을 교감하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지금 당장 그런 현실을 바꾸기 위한 거대한 프로젝트는 못하겠지만

일상에서 이런 작은 노력들을 쌓아가면서

내 마음에 온기가 조금씩 타오를 수 있도록 해봐야겠습니다.

 

 

4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온통 신경이 가 있는 요즘인데요

제가 받아보는 뉴스레터에서 지금 지구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들을 알려주더군요.

 

 

미얀마 🇲🇲: 작년 2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어요. 군부는 이에 맞서는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탄압하고 있고요. 지금까지 최소 민간인 1600명이 희생됐고, 44만 명 이상이 피란길에 올랐어요. 미얀마 인구의 1/3인 1400만 명이 당장 식량·의약품 등을 지원받아야 하는 상태에 처해 있고요.

 

아프가니스탄 🇦🇫: 작년 8월, 미국 군인들이 떠나면서 탈레반 정권이 들어섰는데요. 이후 테러 등이 이어지며 400명 가까운 민간인이 희생됐어요. 인구의 절반이 넘는 2300만 명이 굶주리고 있고요. 아프간을 떠나 세계 곳곳에 머무는 난민은 260만 명 정도라고.

 

에티오피아 🇪🇹: 2020년 11월부터 티그라이 지역 정부와 중앙 정부가 내전을 벌이고 있어요. 정부군이 티그라이로 가는 길을 가로막으면서 이곳에 살고 있는 약 600만 명이 몇 개월째 식량 등 구호물자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고요. 40만 명은 굶어 죽을 위기에 처했다고.

 

예멘 🇾🇪: 무장 반군이 정부에 반기를 들며 내전이 일어났어요.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까지 끼어들며 벌써 8년 넘게 갈등이 이어지고 있고요. 2021년 말까지 적어도 37만 명이 숨졌고, 음식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1700만 명이 넘어요. 약 400만 명은 예멘을 떠나 난민이 됐고요.

 

(NEWNEEK 2022년 3월 22일자 뉴스레터 중에서)

 

 

미얀마와 아프카니스탄은 얼마 전까지 이목을 집중시켰던 곳이고

에디오피아와 예맨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도 몰랐던 곳입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다 품어야할 필요도 없고

이런 소식을 접하는 것 이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없지만

제 마음 속에 전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자리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조그만 마음자리가 있다면 풍요로운 대도시에서 살아가며 외롭다고 얘기하는 것이 사치가 되지는 않겠죠?

 

 

 

 

 

(Tish Hinojosa의 ‘Donde V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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