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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형규목사와 부정적인 댓 글

 

한 사람의 예수쟁이로 글을 씁니다. 전 광명에서 예본교회라는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는 목사입니다. 그러니 이 글은 편향된 글이 될 수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지난 7월 20일(금) 저녁 늦은 시간 잠시 컴 앞에 앉았다가 아프카니스탄에서 20여명의 사람들이 납치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놀라 여기 저기 찾아보다 관련 기사들 마다 달린 댓 글들을 통해 이 사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보게 되었고 때로는 당황스런 글들을 읽으면서 한마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오늘 새벽 컴 앞에 앉아 배형규목사가 생명을 잃었다는 기사를 보고 마음이 아파와 고민 끝에 이 글을 적습니다.


예수쟁이들은 자신이 어디 어디 선교 나가니 기도를 해달라고 합니다. 선교 나간다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 그 다양한 의미들 가운데 배형규목사와 함께한 사람들이 아프카니스탄이라는 머나 먼 땅으로 가야 했던 의미를 나름 해석해 봅니다.


배형규목사의 죽음을 두고 배형규목사와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분쟁지역에 간 것이 잘못이라 말하기 전에 그들이 왜 분쟁지역으로 갔는지를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분명 정부가 지정한 위함 지역에 들어갔고 그들이 낮에 가야 하는 길을 저녁에 갔다는 등의 실수를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 중 누군가 죽음을 당하거나 그러한 죽음을 바로 곁에서 바라볼 만큼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은 아닙니다.


이번 아프카니스탄에서 벌어진 일을 비난 하며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극대화 하려는 듯한 글도 봅니다. 조롱을 넘어 극단전 형태를 띄기도 합니다. 한 예로 다음이라는 포털에 관련 기사에 달린 댓 글 중 지금은 지워졌지만 23마리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배형규목사의 죽음을 접하고 어떤 사람은 죽으면 영웅이 된다는 글을 적은 것도 보았습니다. 그렇지요 죽으면 영웅이 되는 경우가 있지요 하지만 죽은 사람 모두가 영웅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배형규목사는 그 글을 쓴 사람에게는 영웅이 아니지만 자신의 몸도 좋지 않으면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이기에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놓고 그 머나 먼 땅으로 갔던 그 사람을 아는 그 누군가에게는 영웅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배형규목사는 하나님이 살려주신 생명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생각으로 그 땅을 향했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만약 그 누군가 그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려 한다면 그는 머리가 터져 죽을 것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현재 발생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조금씩 해결해 나가는 것입니다.


한 예로 지금 이 땅에는 수 많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최근 이랜드 사태를 바라보며 어떤 이들은 제게 이렇게 묻습니다. 월급 올려달라는 거예요? 문제의 본질은 그들이 일자리에서 내 몰렸다는 것인데 월급 올려달라는 것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그래서 알았습니다.


머나 먼 땅으로 간 그들을 보면서 공격적 선교를 하는 한국교회가 문제라고 말을 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그 말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아프카니스탄에는 현재도 많은 선교사들이 이름없이 그 땅의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배형규목사와 함께 아프카니스탄으로 갔던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에 맞게 그 땅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아픈 사람을 위해 그리고 그 땅의 아이들을 위해 자신들의 재능을 나누고자 머나 먼 길을 떠났습니다. 이 땅에도 그런 재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들은 그곳에 마음이 끌렸기에 그 곳으로 갔을 것입니다.


과거 아프리카에서 굶주림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한 단체에서 그 지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굶주림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자 모금활동을 하며 사진전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여 사진 앞에 앉아 있자니 한 흑인이 지나가다 사진을 보고는 자신의 나라라며 저를 봤다 사진을 봤다 하며 울듯이 말을 하던 것 때문에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 글을 적으며 다시 고민에 빠집니다. 그는 그 사진들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창피하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사진들을 통해 자신의 나라 상황에 대해 소개를 해 주니 감사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사진들을 길거리에 걸어 놓고 사진 속 아이의 모습을 보는 자신을 바라보고있는 한 황인종을 그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사람들은 세계 여러 곳에서 발생하는 수 많은 굶주림을 제도적인 문제가 더 크다거나 굶주림은 나랏님도 못 해결한다라는 양 극단을 넘나듭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편은 굶주림에 처한 자들에게 지금 당장 먹을 것을 줘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제가 볼 때 배형규목사와 함께 했던 이들은 지금 당장 먹을 것을 줘야 한다는 입장에 있을 것입니다.


이번 일을 비난 하는 이들 중 머나 먼 땅으로 가지 않아도 도울 일이 이 땅 가운데도 많다고 주장하는 분들에게 그렇다면 당신 자신은 이 땅에서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도울 곳이 많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 묻고 싶습니다.


왜 선교라는 단어를 쓰지 봉사라는 단어를 쓰느냐는 분들에게 말합니다. 그들은 봉사를 선교로 생각하고 간 사람들입니다. 예수쟁이들의 삶을 통해 예수를 알린다는 생각으로 간 것입니다. 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들을 통해 아프카니스탄이라는 땅과 그 땅의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간 것입니다.


그들이 믿는 종교를 비난 할 수는 있어도 그들이 처한 현재의 상황까지 조롱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종교적 확신을 가지고 그 땅을 갔지만 최소한 그들은 그 땅을 사랑했고 그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기에 자신의 재능을 그들과 나누고자 그 땅으로 간 것입니다.


파병에 반대하기 때문에 이번 일이 파병 반대의 이유는 되겠지만 그들은 관심이 없다는 글도 봤습니다. 하지만 제가 볼때 그는 진정한 파병 반대자가 아닙니다. 파병을 반대하는 사람은 그들의 생명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옳다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경이라는 15개월 된 딸 아이가 있습니다. 몇일 전 아이가 유리컵을 깨는 바람에 손을 조금 다쳤습니다. 아이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면서 마음이 흔들렸는데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오르내리는 때 그 부모와 가족들은 어떤 마음이 들까 생각해 봤습니다. 만약 그들이 이번 일과 관련한 기사의 부정적인 댓 글들을 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기독교를 개독교라 부르는 자들이라도 글을 쓸 때 제발 한번만 더 생각하고 글을 써주기를 부탁합니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가 죽었지만 그 땅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최소한 배형규목사는 그 사람들을 위해 그 땅에 갔고 결국 그는 생명을 잃었습니다.


일반인들에게 아프카니스탄이라는 나라는 회교의 나라, 텔레반이라는 조직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고 배형규목사의 죽음을 통해 아프카니스탄은 부정적인 나라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아프카니스탄과 그 땅에서 구금 중인 사람들을 위해 기도 외에는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탓하다 이 글을 적었습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이번 일을 받아들이겠지만 글을 쓸 때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과 그 가족을 생각해주세요 사람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함부로 비난과 조롱은 하지 말아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2007년 7월 26일


                                     눈물이 마른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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