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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7/21
    Kissing 제시카 스타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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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6/07/07
    오, 백지영(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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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6/06/28
    필링(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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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6/25
    영화 <인어공주>를 자꾸 기억하는 이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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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06/20
    평생직장(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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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06/05
    선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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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6/05/27
    그런데 시골에서 살다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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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6/05/26
    목이 또 갔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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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6/05/24
    어제 정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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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5/07
    직관과 직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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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ing 제시카 스타인

늦게까지 함께 놀았던 친구를 무작정 뒤따라가는 규민.

어차피 그 아이는 아빠가 집으로 데리고 가는 길. 가봤자 돌아서서 우리집으로 돌아오게 될테니 내버려두었다.

그런데 아이 아빠는 집으로 곧장 가는 대신 비디오가게에 들렸다. 그 가게는 폐업한다고 비디오테이프들을 싸게 팔고 있던 중이었다.

덩달아서 비디오가게에 들어선 규민과 나, 그리고 규민의 친구와 친구의 아빠는 문에 들어선 순간부터 각각 갈라져 눈을 휘번덕이며 비디오테이프 꽂이 사이사이를 누볐다.

 

그 가게는 제법 컸다.

구석구석 잘 살펴보면 횡재를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가게가 자꾸만 문을 닫는 건, 불행이다.

넓어봤자 삼분의 이 쯤의 공간을 만화책에 거의 내어주고 있는, 그래서  비디오 테이프래봤자 구비하고 있는 자산은 없고 죄다 최신프로를 반짝 내놓고 거두고 내놓고 거두기를 반복하는 비디오가게들만이 남아가는 현실은, 불행이다.

 

그렇다고 사실 내가 영화를 자주 봐주면서, 그들의 생업에 도움을 주면서,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니 비디오가게계의 현실비판은 관두고, 아무튼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펄떡 휘번덕휘번덕 뛰며 이곳저곳을 누볐던 네 명의 사람들로 돌아가자면.....

 

규민이과 그의 친구는 곧 함께 만화비디오 칸 앞에 서서 하나하나 품평회를 하기 시작했다.

미키마우스 만화 씨리즈라면 규민이는 전문가 급. 친구 앞에서 무어라고 평을 해주는데, 친구가 못 알아듣는다. 친구는 우리나라 만화 씨리즈 '백구'를 규민에게 추천하고 있다. 들려오는 그애 아빠의 목소리, "너 그거 본적도 없잖아."

 

규민이가 친구랑 시간을 잘 보내주는 덕분에 나는 구석구석 눈을 핑글핑글 돌리고 있는데...(단시간에 가장 많은 글자를 읽어낸 순간일 듯.)

그날밤 나는 횡재하였다.

3개 2,000원 부분에서 <멘>과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 그리고 <안토니아스 라인>을 찾은 것이었다.

 

<멘>은 내가 짱 좋아하는 영화다.

평생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영화.

그리고 남편쟁이를 위해서 한 편의 좋은 작품의 스탠다드를 고르려고 했는데, <안토니아스 라인>이 눈에 딱 들어왔다. 흠, 이 영화는 두고두고 볼 것 같지는 않지만, 발견했으면 왠지 예의상 사드려야할 것 같은 기분에...

그리고 다시 남편쟁이를 위해서... 먼저 <숏컷>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걸 고르면 4편의 영화가 되니(<숏컷>은 비디오 2장), 2,000원 넘는다고 할 것 같아 포기.

그러면 무얼????? 하고 눈을 돌리고 있는데, 저 멀리멀리 꼭대기 구석에서 이 눈에 착 들어온 것이었다. 그래서 남편쟁이를 위한 것은 영원히 물건너 가고, 알차게 나만을 위한 세 편.

 

규민이도 세 편의 비디오를 골라놨음.

<미키마우스의 생일잔치>, (친구가 추천했던)<백구>, 제목은 기억안나고 순정만화 하나.

 

그래서 엊그제 을 보았다.

 


 

 

이 영화, 주인공이자, 씨나리오를 쓴 두 여자배우들이 하나는 70년 생이고, 하나는 71년 생이다. 작정하고 나와 딱 맞는 것이다.

한국/서울 남자 백 보다 지구 반대편 여자 둘이 훨씬.....

 

 


 

 

이 영화가 동성애로 안내하는 방식을 포함하여, 결국은, 이성애자들을 안도하게 해주지만, 무엇보다 큰 이 영화의 미덕은 동성애를 특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있다는 것.

영화의 씨나리오를 두 여자가 썼기 때문인데, 무척 세심하고도 유머러스한 관찰의 눈은 분명 훌륭한 것.

그런데 나는 여자의 시기를 지나 인간의 시기에 입문하고 있어서인가(이, 뭐, 썰렁한 표현인가...), 신문사를 그만두고 그림에 전념하고나선 후의 제시카, 그리고 신문사를 그만두고 작가의 길에 나선 조쉬(뉴욕 여피의 전형이었던 제시카와 조쉬의 복장이 달라졌다. 촌스러운 원피스에 청자켓을 입은 제시카, 빵꾸난 티셔쓰를 입은 조쉬)가 더 궁금해지는 기분.

 

그것은 마치 그녀 제시카 역시 여자의 시기를 지나 인간의 시기로 옮겨가고 있음처럼 느껴진다. 너무 내 식대로 해석인가.

다니던 회사 관두고 아티스트로 전념하면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삶에 입문했다는?

엉터리 도식이겠지만, 여전히 일면 일리가 있다고 믿는다.

회사와 아트 ---- 그것은 정녕 생활과 삶의 차이인 것이다.

그것은 정녕 하루하루와 인생의 차이인 것이다.

으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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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백지영

오월 초 짧은 방학 중 은행에 갔다.

이제 은행은 방학 중 아니면 갈 수가 없다. (수수료 떼이기 싫어서 주말에 못 가.)

은행에 앉아있을 때 난 항상 게걸스럽게 잡지책을 뒤진다.

먹고나면 꼭 후회하는 미원 잔뜩 든 떡볶기를 그래도 주기적으로 먹어줘야하는 것처럼, 뒤지고 나면 꼭 후회하면서도 눈 앞에 보이면 한 번 훓어줘야하는 게 여성잡지지.

그러면서, 아직도 연예인가십과 화장법으로 도배를 하냐, 하고 꼭 혀를 차지.

근데 오월 초 짧은 방학 때 갔던 은행에서 본 잡지에는 나의 수준높은, 인간에 대한 지적 탐구력을 충족시켜줄 만한 근사한 기사가 있었는데, 백지영에 관한 것이었다.

 

뭔 잡지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안 나는데, 되게 고급스러운 척 하며, 기자도 되게 멋 부리며 글을 쓴 잡지였다. 백지영 인터뷰는 딱 한 페이지였는데, 중간에 백지영의 전신 사진이 있었고, 양 싸이드에 인터뷰 글들이 한글 9pt 정도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차있었다.

 

백지영은 나에게, 오히려 그놈의 비디오 사건 때문에 호감을 주었었다.

 

사건 당시에는 그 여자를 잘 알지 못했었는데(흔한 여자땐스가수 중 하나), 사건이 나고 일 년 쯤 후에 우연히 테레비에 나온 걸 봤었다.

웬간하면 그런 일 있고 테레비에 나오겠나. 근데 그 여자는 허허 웃으면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자기는 반드시 재기해서 테레비 방송에 다시 나와야만 한단다. 그래야 자기 가족이 살 수 있단다. 거기까지 의연하게 이야기를 하더니, 막상 사건을 정확하게 상기시키는 단어가 나오자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홱 등을 보이며 황급히 일어서서 나갔다.

그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이 아니고 그런 사건이 있었던 그녀였기 때문에, 나에겐 '진짜'로 보였다. 테레비 방송을 타겠다,라는 속된 목표도, 그리고 '그래야 가족이 살고 죽는다'는 상투적 표현도, 속이 상해 울컥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나가며 보이는 등도 모두 '진짜'로 보였다.

 

 

그후 컴백을 했다고 잠깐 테레비에 나오는 듯 하더니, 곧바로 나이트 클럽 전단지로 얼굴을 옮겼던 것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니었던 것도 같고...

 

그러다가 지난 오월 초 은행에서 뒤적였던 잡지에서 본 것이었다.

두 세네번 페이지 잡아 넘기고 잡지랙에 다시 쳐박아둠이 마땅할 호들갑스럽게 고급인 척 하는 그 잡지를, 호감을 품고 있던 이에 대한 예의로, 한줄한줄 읽기 시작하였다.

 

역시, 백지영, 이 여자, 나, 좋아.

비디오 사건이 난지 이제 얼마가 지난 건가.

이제 이 여자는 이런 말도 하였다.

그 사건이 있어서 좋았다고. 그 사건이 있어서 떠날 사람들은 진작에 떠났고, 자기 곁에는 진정 있을 사람들만 있게 되었다고. 자기는 인기에 연연하는 가수가 되지 않았다고. 정말 노래(음악?)를 하겠다고 하지 않으면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게 되었다고.

이것도 얼마나 상투적인 소리인가.

그런데, 다른 사람이 아니고 그녀였기 때문에, '진짜'로 들렸다.

이 여자가 이런 말을 하기까지 그녀, 얼마나 깨고 깨야했을까.

 

그러나, 아무튼, 그 잡지는 끝까지 마음에 안 들었다.

백지영을 이렇게까지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니, 우리 잡지, 특별하고 대단하지?하는 자세 같았고, <사랑 안해>라는 노래에 대해 기자가 여러 번 이야기 하던데, 이것도 기자의 음악에 대해 뭐 쫌 알지,하는 자세 같았다.

그랬더니, 얼마 후에 백지영이 테레비 가요프로그램에서 일 위 했다는 기사가 인터넷에 뜨더라니!!!!

이미 백지영은 은행 비치용 잡지들의 인터뷰 타겟 일 위였던 것이다.

 

나는 <사랑 안해>라는 노래가 진심으로 듣고 싶어졌는데(그 전에 그 여자 노래 다 싫었음), 오늘에서야 비로소 들었다. 진보넷 블로그에 누가 뮤직 비디오를 실어놨다.

비디오는 정다빈이 레즈비언으로 이쁘게 나왔다. 마치 휀씨 제품처럼 나온 레즈비언 코드를, 그래도 백지영 때문에 용서한다.

 

노래는 뭐 그저그렇다. (벌써 까먹었다.)

그냥 백지영이 좋다.

 

근데 북한이 미사일을 무더기로 쐈다는데, 이런 한가한 소리만 하고 있어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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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링

내 핸드폰에 필링 한 번 제대로 깔았는데 전화 한 통 해주는 사람 없고말야.

이래도 되는거야.

이 블로그 보자마자 나한테 한 번 전화해줘봐바바바.

 

그 필링 고르느라고 얼마나 진땀 뺐는데 말이야 말이야.

 

 

윽, 한 잔 쯤 더 남은 줄 알고 쭉 들이켰는데, 맥주병이 비어있다.

낭패......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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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어공주>를 자꾸 기억하는 이유

이 곳에 이 영화 감상문을 올릴 때만해도, 영화 중의 소소한 부분이라고 지나가는 얘기처럼 흘렸던 것인데, 자꾸자꾸 되돌려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그것은 소소한 부분이 아니었다.

 

나에게있어 이 영화는 그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있으니, 바로

영화는, 현대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삶의 방식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는, 정치 영화인 것이다,라는 것이다.

 

극중 전도연이 엄마였을 때(엄마가 처녀였을때)와 고두심이 엄마였을 때 그녀의 삶의 모습은 180도 다르다.

 

전도연이 엄마였을 때, 그녀는 시골에서 새까만 얼굴에 몸뻬바지의 촌년이지만 일하고 싶을 때 일한다. 필요할 때 일하고, 넉넉하면 나눠준다. 그녀는 행복하였다.

고두심이 엄마였을 때, 그녀는 도시에서 빈민자로 살며, 불행하다.

 

그녀가 왜 도시로 이사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시골 대 도시의 생활방식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있고, 나는 이것이 무척 유효한 메세지라고 새삼 곱씹는다.

 

시골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에게 땅값을 높게 쳐주고, 이주비용까지 얹어주며 보상을 넉넉(?)하게 해주었으니 이주하라는 것은 사실 눈뜬 채 코 베가는 강도질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물자(물자 뿐인가)를 돈으로 환원하여, 땅도 돈으로 생활근거지도 돈으로 ("오히려 돈 더 벌어 좋지?") 바꾸는 것이 합리적이고 합당한 방식인 양 공모하고 있지만, 내가 살고있는 집과 생활근거지를 얼마의 돈으로서만 본다는 것은 실제로 얼마나 나라는 사람과 동떨어져있는 사고방식인가. 그러나 도시에 살고 있는 도시민들은 이 상황에 친숙한지도 모른다. 도시민은 이미 도시에서 돈으로서 환산되는 삶을 살고 있는 분자/부품이기 때문에. 자립과 자존으로부터 멀어진. 

나의 집과 생활근거지, 나의 생활방식을 돈으로 환산하는 작태는 무엇을 도모하고 있는 것인가.

 

 

시골이 도시화하는 것이 위험한 것은 사람사는 방식에 있는 것이다.

 

얼마전 도서관에 갔다가, 녹색평론에서 짱하게 감동받으며 읽었던 이반 일리히의 책이 있길래 첫장을 펼쳐봤더니 이런 말이 확 들어온다.

 

.....어쩌구저쩌구는 모두 환경의 이용가치를 약화시킨다. 즉 모두 인간생활의 자립, 자존을 파괴한다.

 

환경을 해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자립과 자존을 파괴하는 것임을 현안은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정말 떠날 것을 계획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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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

그러고보니 내가 가장 오래 버틴 직장이라면 000이야,하고 남편한테 말하고나니 조금, 아니라 왕창 쪽팔렸다.

 

평생을 살고나서도 여전히 가장 오래 버틴 직업은 000일이었어.라고 말하게 되면 나는 정말 당장 죽어버리고 싶을 것 같다.

 

그 000이란, 내가 아주 하는 수 없이, 내 똥구녕을 내 손으로 닦아야하는 자존심처럼, 이 정도의 밥벌이는 해야겠기에 붙어있었던 마지노선의 직장이었다.

 

그것보다 0.00000001 mg이라도 밥벌이 이상의 가치, 예를 들어 일하는 재미의 가치라든가, 대의명분의 가치, 내 삶의 의미의 가치가 더 있다고 생각되는 곳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박차 버릴 곳이었다.......고 항상 생각해왔지만, 나는 죄다 버리고 000을, 결국은 선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보면 000은 나에게 최고의 직장이었다.

 

우선 그곳은 출퇴근이 없다.

나는 나에게 월급주는 상사의 얼굴을 끝끝내 한 번 안 봤다.

그리고 그곳은 나름대로 조정할 수 있는 하루 한두어시간이 근무시간의 전부다.

 

아아,  이것이 내게 있어 최고의 근무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전부라니, 정말 가련하게 게으른 인생인 것이다.

 

 

남편의 말이 딱 맞다.

"영접까지 했으면서 약발이 오래 안 가네."

 

영접이야 했을지 모르나, 출퇴근은 노 땡큐, 하루 여덟시간 근무, 오 제발, 노노.

이런 나의 기질을 무어라고 말해야하나.

처음엔 배가 불러 세상 모르고 쉽게 놀고먹으려는 못돼먹은 철딱서니 덜 떨어진 병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를 마구 다그쳐야한다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 의심에서는 자유롭지 못 하다.

며칠 전 밤 꿈엔, 꿈에서도 이 고민을 막 하다가 뭘 봤는지, 무릎을 탁 치며,

"그래, 먹고 사는 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남들도 다 그렇다."라고 탄성(?)을 질렀다.

그게 어찌나 생생하던지, 자고 일어나니 밤새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근데 어떻게해서 그 탄성을 지르게 되었는지, 뭘 봤길래 그랬는지가 기억에 비어있으니 깨달음은 무효다.

 

매일,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 그 일에 왜?하고 결국은 묻게 되는 것이다.

이 물음은 원래 답이 궁할 때만 나오게 되어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껏, 어느새 십여 년이 풀쩍 지나버린 지금껏, 나는 애초부터 답이 궁한 일만 하였다. 처음 3년은 분명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직장이었다는 구실이 있었는데, 그 분명한 목적을 잃어버린 1997년 후, 최소한의 밥벌이만이 내 직장의 준거라며 나는 호시탐탐 그 이상의 비상을 꿈꾸는 양 굴었으나, 사실 밥벌이만큼 명백하고 준엄하고 분명한 목적이 또 무엇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더이상 나를 철이 덜 들었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이제와서보니 나의 밥벌이라는 준엄하고 분명한 목적이 매일 출근/하루 여덟시간 이상 근무/일년 일해야 얼마 휴가 따위의 조건과의 맞바꿈이더란 말이지.

내용물(무엇을 일하냐)은 조건의 다른 표현이다.

그야말로 현대자본주의사회에서 인간의 대물성/분자성/부속성이 공자왈, 맹자왈이 아니라, 내가 그렇다.

물자 노릇, 분자 노릇, 부속의 노릇, 안 해 먹어야지.

 

 

그래도 애비로드가 있었다.

내가 애비로드를 사랑하는 이유는 철마다 추가된다.

그리운 애비로드, 그러나 네게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아.

 

저녁밥을 꿀 발라놓은 듯 달게 먹느라 어느새 생선가시가 목에 걸린 줄도 몰랐다가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맨밥을 꾸역꾸역 넘겨도 안되고, 빵을 꾸역꾸역 넘겨도 안되어, 오바이트를 할까,하고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가 눈물 콧물만 나오고, 이럴 때 쓰라고 지식검색이 있지 하며, 인터넷에 들어와 생선가시를 쳐보니 별별 것들이 다 올라온다. 날달걀을 삼키라길래 해봤는데도 안됨. 인터넷의 마지막 결론은 병원이었는데, 그건 인터넷 지식검색 안해도 안다. 역시 인터넷은 쓰레기가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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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후

선거 얘기는 될 수 있으면 꺼내지 않고 살고 있다.

얘기만 꺼내지 않는 게 아니라, 생각도 될 수 있으면 하지 않고 살고 있다.

한나라당 싹쓸이를 예상하지 않았던 사람이 없었고, 나도 뭐 그러리라 아주 맘 편히 짐작하고 있었으니, 예상대로 결과가 나온 아주 편리한 경우였으니, 토 달지 말고, 괜한 상상하지 말자. 피곤하다.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였다.

주변에서, 어떡하니, 어떡하니, 혀를 찼다.

혀를 찼지만, 뭐 한 두번 겪는 일인가, 이내 잊어먹고 점심밥 메뉴는 뭐로 고를까, 끝나고 술은 먹을까 말까하고 살았다.

그러더니 그 남자가 아니었다면 터지지 않았을 전쟁이 터졌고,

그 전쟁만 아니었다면 죽지않았을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죽었다.

어떡하니, 어떡하니, 혀를 찼지만, 또 뭐 한 두 번 겪는 일인가, 이내 잊어먹고 점심밥 메뉴를 골랐다.

그러더니 김선일이 죽었다.

김선일이 죽으니까, 이거 미국 대통령 하나가 나를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구나,하고 갑자기 오금이 저려왔다.

가끔 김선일이 제발 살려달라고 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나 같으면 지랄발광을 했을 것이다. 살려달라고.

 

 

 

이제 에프티에이도 미끈하게 통과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서서히 죽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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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골에서 살다가

이제부터 우리 동네에 방파제를 세워, 매일 나가 조금조금 조개를 캐와 국를 끓이고 어느날은 해물전을 해먹고 어느날은 해물칼국수를 끓여먹게 해주던 개펄을 땅으로 바꾸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이제부터 우리 동네 얼마만한 땅에 미군 부대가 들어올테니 동의 싸인을 하라고 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들여다보니 동네 한 쪽 몇(십?)만평 땅이길래 이 정도는 나눠써도 되겠다 싶고, 국가에서 하는 일 나도 좀 양보하자 싶어 싸인해주고 났더니 그 땅이 열몇배로 불어 이 동네에서는 이제부터 살지 못 하니 보상금 받고 아예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지.

 

아니면 또 이제부터 우리 동네 한 쪽에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올테니 보상금 얼마주고 도서관도 지어주고 병원도 지어주마, 동의 싸인해라면 어떡하지.

 

이럴까봐 시골로 이사도 못 가겠다.

 

그러면 징글징글하게 싸워야할텐데 끔찍해서 어떻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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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또 갔다.

오늘오전 열한시경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방금 오분 전까지 마음대로 나오던 목소리가.

 

2004년 12월, 애 낳고 처음으로 어딘가 매일 출근했던 곳이 토플학원이었는데, 매일 3시간씩 떠들어댄 여파로 딱 닷새만에 목소리가 절단났었다.

그 후로, 한 번 절단남을 맛본 성대는 이제 왠만큼 일했다 싶으면 획 나자빠 누워버리는 꾀를 알았다.

처음으로부터 1년 후, 2005년 12월 맛이 가고, 그로부터 5개월 후 오늘 맛이 갔다.

이러다가 확, 목소리가 영영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겁이 덜컥 났음.

 

 

내가 최근에 읽은 소설은 <잘려진 머리>, 벌써 몇개월 전이다.

지금 읽겠다고 집어든 소설은 <만연원년의 풋볼>, 이번엔 꼭 끝까지 다 읽겠다고 들었는데, 1장 반을 읽고 책 덮은 지가 일주일 전. 아니 한 달 후라고해도 1장 반 읽고 있는 중일 것 같다.

 

일기를 쓰려는데 세 줄 쓰고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국민학생처럼 연필 뒷꼭지를 잘근잘근 씹다가, 내 머리가 똥이 됐나,하는 생각마저 멍~하게 하고 있었다.

누군가, 말도 안되는 보스 시집살이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 채로 한달이면 스무일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홈페이지를 보니 매일 소설이며 시에 뒤덮혀 살고 있는 것이 순간 짜릿 부럽다.

 

 

거의 영접했네,하고 남편이 놀리기까지 했던 일이었는데, 처음으로(그래봤자 5개월만에) 확 그만뒀음 좋겠다,란 생각을 했다. 나도 이제 마흔인데. 확 그만두고 돈 쬐끔 벌어도 되는 시골로 이사가고(지금은 참도 많이 번다) 애는 학교 안 보내고 그냥 뒹굴뒹굴 살며 나물캐고 시금치 열무 호박 심어먹고 책 보고 시 읽고 글 쓰며 살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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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정전

어제저녁 엄마 집에서 저녁밥을 얻어먹고(시간맞춰 퇴근을 못하면 대타 일순위가 엄마. 엄마에게 전화걸어 딸래미 데리고 와달라 부탁하고, 그러면 애 밥까지 먹여주시고, 나도 간 김에 밥 얻어먹고는 설겆이도 안하고 배째라 쉰다. 이 다음에 우리 딸래미가 나한테 그럴까 겁난다. 그 때가면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잔뜩 피곤한 기색을 무기로 설겆이도 안 하고 배째고 규민이가 집에 갈 생각을 안 한다는 핑계로 길게 누워 쉬고 있었다.

테레비젼에서는 세네갈 대 한국 축구경기 중계.

한 골이 터졌네 으쌰하는 것 같더니, 좀있다 퍽, 테레비가 꺼지고 불이 꺼지고 삑삑하며 전화기가 꺼지고 냉장고 돌아가던 소리도 멈추고, 약 1초 후, 하필이면 이런 때,하는 우리 아빠의 탄식과 동시에 바깥 길거리에서도 웅성웅성하는 소리와 함께 정전이 시작됐다.

 

제일 신난 건 우리 규민이.

(규민이의) 아빠가 잽싸게 켜는 라이터불에 매혹되었다.

정말 불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난 후 얼마간 무서워하는 것 같더니, 할머니가 촛불을 켜주실 때는 촛불처럼 눈을 반짝인다.

 

테레비 소음도 없고, 냉장고 소음도 없고, 구석구석 환하게 여기저기 다 비추던 불이 없으니 식구들이 옆에 옆에 모였다. 규민이는 자기 둘레에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가 둘러앉아 자기만을 바라보니 급속하게 기분이 상승하는 모양, 벽에 생기는 자기 그림자를 이리저리 바꿔보며 춤을 추기 시작하다가 마구 상승하는 기분에 맞추어 뛸 듯한 춤을 춘다.

그러다가 깔깔 웃고,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돌아가며 뛰어다닌다.

 

그러다 삑삑 다시 전화기가 불을 켜고 냉장고가 웅 돌아가고 불이 타다닥 켜지고 아빠는 전기 들왔다,며 리모콘을 눌러 테레비를 켰다. 고사이 한 골 넣었다고 아쉬워한다. 한 골은 이미 아까 넣었었잖아??!! 그건 옵사이드였어. 나는 못 알아들음. 한 골 아까 넣었었는데.. 그런 옵사이드라니까. 대화가 안된다. 어엉.. 반칙해서 무효가 되었다는 소리인가보다,로 대충 알아듣고 대화 관둠. 그런데 또 퍽 테레비가 나가고 불이 꺼지고 삑삑하며 전화기가 꺼지고 냉장고 돌아가던 소리가 멈춘다. 우리 아빠, 우이 또,하고 탄식하나, 규민이는 으잇,하며 다시 신남.

 

솔직히 나도 신남.

시끄러운 테레비에서 해방.

구석구석 환하여 여기저기 분명히 볼 수 밖에 없었던 눈 앞의 것들로부터 해방.

냉장고, 전화기 끊임없는 소음으로부터 해방.

거기다 촛불은 왠지 낭만적이고 소박하고 따뜻하고 풍성하다.

 

이제 정말 잘 시간이라고 엄마집을 나섰다.

골목으로 나오니 가로등도 다 꺼져있다.

그런데 정말 환하다. 여름저녁 여덟시쯤 된 것 같다. 어둡지만 막 해가 져서 주변 사물이 다 보이도록 환한. 오늘은 보름달인가. 이제야 보름달이 진짜 보름달같네.

보름달이 환해서 옆에 걷는 남편 얼굴과 남편이 안고가는 애기얼굴이 다 보이는 건, 가로등이 다 보여주던 것과 다르다. 왠지 다르다.

한 골목길인데도 오십미터 쯤 지나니 가로등이 켜있다.

달과 별이 비추던 것을 가로등이 대신하니 맥이 빠진다.

달빛과 별빛이 희소하기 때문인걸까.

밤이 되면 불을 켜고 할 일도 많고 많지.

무얼 했던 걸까.

남편얼굴과 아기 얼굴에 닿던 달빛과 별빛이 누에가 짠 명주였다면, 가로등 빛은 싸구려 나일론이란 느낌, 어쩔 수 없이.

지금껏 내 돈과 내 시간과 내 정성을 들여 싸구려로 몸을 휘감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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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직감

이십대, 대학물을 먹고 책 좀 읽은 후부터, 나의 생각과 말에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가 대충이라도 구색을 갖고있는지에 대해 확인하는, 확인해야한다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었다.

 

누군가 한 번 해준 말이거나, 신문에서나 어디에서나 한 번 흘깃이라도 본 것이거나, 무슨무슨 수치 자료가 덧붙어 있어야 그것은 비로소 생각과 말이 되는 것이었지, 내 직감/직관은 절대 어디 갖다댈 것이 아닌 것이었다.

 

그러다가 세상물을 나름대로 더 먹고는, 내가 가진, 나름대로 적나라한 사회학적 인류학적 고찰이 단지 누군가 아직 아무 말도 안 해주었고, 신문에서나 어디에서나 흘깃 흘려써있지도 않았고, 무슨무슨 수치로서 증명된 바가 없었기 때문에, 사회학적 인류학적 가치 제로이며, 개인의 소소한 잡념일 따름이라고 치부되기 쉽상인 순간 앞에서, 나는 멈칫했다.

 

 

그 후에, 개인의 소소한 잡념이 진실이 되는 소설도 있었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훼미니즘이 있어서, 나는 촌스럽고 각박한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의 협박에서 비켜 사는 유연함을 배워갔지만,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나의 직감과 직관을 인정하지 못 하는 병은 여전하였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책이나 소설 디게 많이 읽은 것 같다. 탱자탱자 놀면서 가끔 읽은 것도 내 인생에서는 읽은 것이니 그냥 그렇게 쓴 것임.)

 

그랬던 내가 그 병을 싹 고친 것은, 이 블로그에도 올렸지만, 최장집 교수 덕분이었다.

(나의 직감과 직관을 불신하는 병을 고친 것도, 결국 누군가 유명한 사람의 코멘트를 근거로 하였으니 나도 정말 한심한 노릇이다.)

 

그 때 내가 무릎을 쳤던 내용은 북한인권문제에 관한 것이 었는데, 최장집 교수라하면 누군가, 북한인권문제라 하면 무엇인가, 그야말로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에 살고 죽는 세계 속의 인물과 주제 아니겠는가.

 

 

그 때 그 내용을 다시 찾아보라고 하면 실례일 것이고(이게 무슨 옛날 페이지 들춰가며 봐야하는 토지도 아니고), 간략하게 소개하고 넘어가자면, 그날 최장집 교수의 발표 제목은 <한반도 평화의 조건-칸트의 '영구평화론'의 퍼스펙티브에서>였는데, 제목 봐라, 제목에서부터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에 살고 죽는 세계가 징하게 느껴진다.

 

논문 내용은 아주 잠깐잠깐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기도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지금으로선 전혀 기억 안난다. 암튼 알수없는 조건과 퍼스펙티브의 논문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다. 논문 내용 안에 있던 '북한/북한핵'이란 표현에 대한 시비가 일었다. 최장집 교수의 명확한 대답은 국민학생도 이해할 만한 것이었는데, 말꼬리를 잡는 사람들은 또라이들인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듯 피폐한 논쟁을 계속 이어간다. (아, 정말 안기부 사람들한테서 고문받는 사람들 얼마나 괴로웠을까... 또라이의 말꼬리 언쟁은 잠깐 들어도 진저리가 나는데..) 그러고나서 '북한인권문제' 질문이 있었다.

 

최장집 교수의 대답은 이랬다.

정치는 매우 다이나믹한 것이다. 인권문제의 개입은 그 자체가 될 수 없고, 반드시 정치의 일면으로서 위험한 것일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명쾌한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지 못했다.

북한/북한핵 말꼬리를 논리와 사실과 수치의 이름으로 지지부진 끌어가던 또라이들 위에 빛나던 그 명쾌한 직관이란!!!!

 

 

 

사람의 오래묵은 판단력으로부터 나오는 직관과 직감의 세계, 나는 그제서야 그 세계를 제대로 보게된 것이다.

그것이 맞다.

사람의 오래묵은 판단력,지혜, 거기에서 나오는 직관과 직감에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라니.. (그리고나서 미안하다, 우리 엄마, 엄마 말이 옳아요. 잘난 척한 딸이 죄인.. )

 

 

'오래묵은'이란 표현을 썼다고, 노인네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다섯살 먹은 아이의 직관과 직감도 다섯해나 묵은, 오래묵은 판단력, 직관, 직감이다.

 

그것이 진실인지를 판단하는 것도 듣는 이의 오래묵은 판단력에서 나오는 직관과 직감이다.

 

 

사람들이 한 입으로 공권력 타도를 외칠 줄 알았던 나는 이곳저곳에서 나오는 다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보상금 문제라는 얘기부터, 행정법상 행정권 행사가 당연했다는 소리, 시민단체가 반미선동했다는 얘기 벼라별 소리가 다 있다.

이것이야말로 논리/과학/사실/학문적 배경이 독이 되는 경우 자체다.

그렇다고 군대 보낸다는 게 말이 된다는 말인지......

 

그런 말을 떠드는 자, 그곳에 직접 가서 얼마나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를 찾았는지 묻고싶다. 평택의 ㅍ에도 가지 않은 자들일 것이다. 청와대와 국방부 윤 데스크가 전화 한 통 통화한 것처럼.

 

 

한명숙 총리, 옛날부터 왠지 구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말 왕재수다.

정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 적극적 폭력행위를 한 경우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를 거쳐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라니... 이 사람, 박근혜야?

사람들이 절대자처럼 할렐루야 추종할 때 무언가 구리다고 느꼈던 내 직감이 맞았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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