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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5/04
    Give peace a chance(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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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6/03/20
    한일전 야구, 다행 패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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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6/03/03
    몸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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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2/18
    앳된 얼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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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02/17
    잉여에 대한 집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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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02/16
    라디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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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6/02/07
    어제 신문 보고 울고, 오늘 책 보다 기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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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6/01/24
    최근 본 미남자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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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6/01/16
    집 떠나 일주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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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1/09
    새해소망이라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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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 peace a chance

달군님의 [대추리를 지키기위해 블로거가 할 수 있는 일들] 에 관련된 글.

몇 십년 묵은 저 지루하고 지루한 가사가 아직도 유효하다니....

 

 

아침에 아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가려고 대문을 열었다가 대문 앞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추리 오늘 병력 투입"이 제목인데, 제목 위 사진에는 한 농민(여자?)의 약간 흔들린 촛불 집회 사진이 있었다. 그 농민의 주름진 이마, 주름진 입가, 두껍고 꺼칠한 손, 흔들리는 촛불이 비친 푹꺼진 눈동자....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얼굴은 누구나 다 촌스러운 내 엄마같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 사람 앞에서 나는 항상 객관을 잃는 심정이 되지만, 그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당신 밥 먹지 말고 컴퓨터랑 핸드폰만 먹고 사시오,하고 말하고 싶다.

 

벌컥 눈물이 나왔고, 어이쿠,하는 소리가 나왔다.

규민이가 왜애?하고 물어서, 몇 초간 무어라 말해야하나 유난히 우왕좌왕했다.

결국, 규민이 학교에 많이 늦어서...하고 말았다.

노무현은 두고두고 규민이에게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나중에 규민은 그 이유를 알겠지.

전두환을 그렇게 기억하듯, 노무현을 치욕스럽게 기억할 것이다.

 

 

오늘은 사실, 나의 금쪽같은 휴가 마지막 날이다.

오월 첫 주가 잠깐 방학인데, 말이 좋아 일주일 휴가지, 월요일 노동절, 금요일 어린이날, 규민이 어린이집 안 가는 이틀 빼면 남는 날은 고작 화/수/목 딱 3일. 3일의 금쪽같은 휴가 마지막 날인 것이다.

 

이 3일 동안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무한대천대 (규민이가 가장 많은 것을 표현할 때 쓰는 수) 하고 싶은 게 있었다. 하지만 그 일들을 뒤로 하고 폭탄을 맞고 또 맞고 또 맞아 너덜너덜해진 집을 원상복귀해야하는 의무가 휴가 중에 버티고 있었으니......

그리하여 쓸고, 닦고, 버리고, 다시 닦고,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물건을 이리로 저리로, 설겆이 4번, 빨래 3번, 이불 3장 빨래 하느라 멀미와 진저리를 반복하며 화요일을 보내고,

그동안 엄마 얼굴을 덜 봐, 아침에 눈 뜨자 여전히 자기 옆에 있는 엄마에게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기 작전을 피우는 규민에게 나도 못 이기는 척 넘어가 규민과 하루종일 뒹구느라 수요일을 보낸 나는

목요일은! 목요일은! 하고 벼르고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목요일에 나는,

소설을 한 권 봐야하고, 영화 한 편을 봐야하고, 수업준비를 한 달치 해놔야 하고, 밀렸던 교육자료를 훑어야하고, 도서관에 가서 빈둥거려야하고, 꽃과 풀 사이 산길을 거닐어야 하고, 이제 봄이 되어 딱 입기 좋은 때가 된 내가 만들다 만 치마를 완성해야하고, 작년부터 구상만 하던 원피스 하나를 만들었으면 좋겠고, 기타 연습을 해야하고, 짧은 ** **를 하여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이 터진 것이다.

으악 씨발놈(욕은 이럴 때 하라고 있는 것이지).... 

 

나는 먼저 열린우리당에 전화를 걸었다.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저도 같은 심정입니다."하고 연신 굽신거리는 민원담당 당직자.

그러면 그 당에 있으면 안되지. 이제 열린우리당은 끝장이오. 2번 잡으면 정권이 넘어간다더니 정말 영락없네. 하긴 열린우리당이 무슨 관련이 있겠오.

 

나는 청와대에 전화를 걸었다.

청와대는 전화도 직접 안 받는다. 어떤 번호를 눌러도 자동응답기가 답한다.

하는 수 없이 민원청구 번호를 누르고 녹음기에 대고 하소연을 했다.

지금 청와대에 전두환이 있는지, 노태우가 있는지, 박정희가 있는지 좀 알려달라, 내 전화번호는 010-****-어쩌구다. 이름은 뭐다. 꼭 전화해라. 딸이 계속 묻는데 무어라고 할 말이 없어 그런다. 딸에게 무어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너무 창피하다.

 

다시 한명숙 국무총리실에 걸었다.

얼마전에 신문에서 장관회의를 열어 대추리 논의를 했다더니 그때 탱크보내자고 결의했소?

자기들은 아는 바 없으니 국방부에 걸어 문의하란다.

아니 국방부 장관보다 국무총리가 하급공무원이란 말이오?

그걸 국무총리실에서 모르고 국방부에 물어보라고 합니까?

모르니까 국방부에 전화걸어보시라니까요. (전화 뚝)

그래, 니들도 쪽팔리니 나한테 화풀이구나....

 

다시 민주노동당에 전화를 걸었다.

(뜬금없이) 평택에 가려면 어떡하지요?

네, 일단 주차장에 모였다가 이동하시구요. 지금 워낙 유동적이라 장소 어디다, 라고 말씀 드릴 수가 없네요. 초등학교에 많이들 계시구요.. 일단 가보시면 판단하실 수 있을거에요.

(정말 뜬금없이) 나는 눈물이 줄줄 나왔다.

제가 너무 슬퍼서 창피하게 이렇게 전화를 하네요. 이해해주세요.

네, 이해해요.

사실 저는 애기엄마라서 평택에 가기 힘들어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민주노동당 밖에 믿을 데가 없네요.(이제 정말 감정적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저희도 열심히 하려고 해요.

 

이 짓 하느라 오전 다 보냄. 금쪽 같은 하루.

다시 어제 먹은 밥 설겆이, 만 이틀 사이에 다시 폭탄 맞은 집 쓸고 닦기, 남은 빨래에 오후 3시간 반을 보냄. 금쪽 같은 하루.

그리고 남은 시간 인터넷에 들어와 여기저기(청와대, 국방부, 총리실, 열린우리당.....) 죄다 돌아다니며 게시판 글 쓰느라 한 시간 여 보냄. 아아, 금쪽 같은 하루.

 

 

그러나 휴가가 무슨 상관이랴,

밤새 내 세금으로 먹고 산 공무원과 군인들이 나에게 총을 겨누고 다가왔는데...

  ( 진압작전을 펼치고 있는 경찰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 한겨레 신문에서 가져옴)

 

 

제발 평화에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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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 야구, 다행 패배

뻔한 이야기임.

 

97년도에 지금의 남편을 만난지 얼마 안되었을 때였다.

그에게 거의 한 눈에 반했던 나는 그 남자와 어디든 싸돌아다니고 있던 때였는데,

그 무렵 그 남자는 하이텔(이란 이름 정말 오랜만이다)에 '록키호러픽쳐쑈 소모임'을 만들어놓고 거기 사람들(어차피 원래 술먹던 사람들)과 술먹고 노는 일이 많았다. (그러고보니 '록키호러 픽쳐쑈'도 그남자 덕분에 보게되었군.) 어느날 그 소모임의 한사람이 제안하여 홍대앞 어느 까페에서 에스에프영화 상영회를 하기로 하였다. 불과 (라고 써놓고 보니 어느새 거의 10년전이군) 97년도나 된 시절이지만, 그때에는 인터넷도 그리 쓰이지 않았었고, 디비디란 것도 없어서 누군가 희귀한 비디오테이프를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 모여 까페에서 상영회하는 것이 소소한 재미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소소한 게 아니라 나름 큰 재미였다. 지금보다 훨씬. (하여간에 다시 한 번 갓댐 디지털)

 

약속 시간에 딱 맞춰 그 까페에 들어섰는데, 어두컴컴하고 흰 커텐같은 거에 틀어진 영상에 사람들이 벌써 집중하고 있었다. 간신히 그 남자를 찾았더니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바에 앉아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다니 열화와 같은 반응이구나,하며, 그 사이를 비집고 그의 바로 옆에 앉아 그 영상이란 것을 쳐다보니, 어랍쇼, 축구였다. 아니 야구였었나. 하여간에 무슨 경기였는데 한일전이었다. (그래도 그때에는 대한민국이라고 안했다.) 지루해죽겠는데도, 그떄그때 사람들이 보여주는 아, 어, 으,하는 탄성에 나도 동반해주며 경기는 끝났고, 까페에 불이 켜졌다. 상영회 시작하기로 한 시간이 훨씬 지나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 볼 영화 보자,고 사람들이 우르르 담합할 줄 알았다. 근데, 사람들은 우르르 까페 밖으로 나갔다. 죄다 축구인지 야구인지 보러 들어왔던 사람들이었고, 에스에프 상영회에 실제로 참석한 사람은, 나와, 내 남자친구와, 모임을 제안했던 남자와, 그 남자의 추종자로 보이는 서넛이 전부였다. 애게.

그래도 우리는 영화 잘 보았고(지금은 토성의 어쩌구 밖에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데, 당시 그래도 꽤 오래동안 쇼킹한 그 줄거리를 되새겼던 것 같다.), 영화 끝나고 나름 토론회 같은 것도 했고(상영회를 제안했던 남자가 에스에프계 거물인 줄 그 토론회에서 알아보았음. 그 남자가 하는 소리가 뭔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 들었었다), 하여간에 즐거웠다.

 

내가 이 날의 일을, 그 에스에프 영화의 제목도 까먹은 지금껏 이렇게 기억하는 이유는, 이제부터다.

그 나름 토론회가 대충 끝나고 나와 남자친구는 까페에서 나왔는데, 무슨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아까 보았던 축구인지 야구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나는 축구이건 야구이건 정말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걸 내색하면 이 남자에게 점수를 깎일라, 그냥 스물일곱(내가 그땐 스물일곱살이었다!)해 익힌 눈치대로, 맞장구를 치려하고 있었는데, 이 남자 하는 말이 나에게 복음이었던 거다.

 

그 -- "너 아까 되게 재미있어하는 거 같던데."

나 -- "아니 그냥....."

그 -- "난 한국져라, 일본이겨라,하고 있었는데."

 

내가 재미없으면 그냥 재미없다고 해도 되는거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었다.

신성불가침 타이틀인 양 구는 한일전, 대학때 그 숱한 경기전들, 아, 거기에 침을 뱉어도 되는거구나.

 

나는 그때 스포츠를 스포츠로 보는 진정한 깨우침을 얻었다.

거기에 학교가 붙고 나라가 붙는 게 웃기는 짬뽕이구나.

정말 웃기는 짬뽕이다. 그러면 온국민 밤낮없이 축구야구만 열라하면 되겠네.

더더군다나 공식적 여자경기는 없는(지금은 있나?) 거면서.

하여간에 결론은 난 축구, 야구, 싫다, 재미없다.

 

얼마전 한겨레의 김어준 칼럼에, 김어준이 오바 좀 하자면서, 한국야구가 미국 야구이겼으니, 한국이 미국 이겼다고 오바 좀 하자는 얘기인 듯한 글을 썼다. 무슨 주장인가 싶어 읽어보려 했다가, 첫 줄 부터 내가 알아들 을 수 없는 경기용어라서 관둬버렸다. 작년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코메디언 김승대가 개그맨 기획사 문제로 뉴스가 되었을 때 김어준이 썼던 칼럼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때 확 휀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김어준 칼럼을 꼬박꼬박 읽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황우석부터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가(황우석에 대한 기사와 뒷얘기를 아주 속속들이 알고 있지않는 한 김어준의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는 듯한 인상을 받았음) 갑자기 야구 경기 이긴 것을 미국 이겼다고 오바 좀 하자는 건, 으흠....

 

김어준처럼 '공식적으로' 전제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언론사들이 이미 오바하고 있다. 시청앞 광장에 왜 사람들이 모였으며, 그건 왜 카메라로 찍고 있으며, 왜 뉴스 앞대가리 다 경기이야기로 채우는냐 말이다.

 

 

나는 당신들이 외치는 대~한민국이 싫다.

새만금도 그렇고(그래도 대법원은 다를 줄 알았다), 에프티에이도 그렇고, 비정규직법 통과된 것도 그렇고, 최연희인지 뭔지가 국회의원인 것도 그렇고, 애들은 성추행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도 그렇고, 평택에 들이미는 미군은 어떡할꺼며 또또..........................................

 

 

야구, 볼 생각도 없었지만, 지금은 한 집에 같이 사는 그 옛날 그 남자는, 겐이치로처럼 야구를 '우아하고 감상적'이라고 생각('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도 내게는 어려운 소설)하는 야구 휀이라서 우리집 티뷔에도 열두시부터 야구가 중계되고 있었던 바람에 보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래서 나는, 정말 마음 속으로, 한국 져라, 일본 이겨라, 하고 응원했다.

여기서 이기면 정말 좋은 나라라고 오바한다. 제발 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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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3월1일, 입학식.

엄마아빠 다 오시라, 이날 입학식을 한다고 함.

시간 외 근무는 절대사절이고 싶은데...

전날부터 무대(!)세팅이며, 식순 정하고 쓰고, 사회자 뽑고 예행연습을 한다만다, 거의 결혼식 수준. 그러나 실상은, 각 교실에 떠도는 커텐자락 같은 천쪼가리 모아 바닥에 깔고, 꽃잎 뿌려놓고, 촛불 켜놓고, 색상지 오려 환영합니다 글자 만들고, 조잡유치한 학급 학예회 수준.

 

 

신입생 한명 한명 엄마나 아빠, 혹은 둘이 손을 잡고 등장.

아이에게는 화관이 씌워져있다. (겨울이라 꽃 한다발을 사서 만들었지만, 작년 9월 편입식에서는 주위에서 칡넝쿨 캐고 꽃 꺾어 만들었다. 이거 만들기가 손품도 만만치 않고, 바뻐죽겠는데 앉아서 이짓거리나 하고 있냐 싶어서 이번부터는 반드시 화관을 회수하기로 하였다.)

담임선생님이 아이에게 이름표를 달아주고, 촛불을 켜서 쥐어준다.

한명한명 그렇게 입장한 후, 한명한명 엄마나 아빠가 아이에게 선물을 주고(꽃씨와 화분) 무언가 덕담을 한 마디 한다.

다음에는 담임이 선물을 주고 덕담을 한다.

 

사람들도 버글버글(신입생 가족들과 재학생 가족들)하고, 비좁은 강당과 초라한 학교 시설이라는, 전체적으로 후진 배경에서, 부모와 선생의 선물과 덕담, 아이의 긴장된 행복한 표정이, 그런데 극적이고 놀라운 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엄마나 아빠의 덕담은 상투적이고도 상투적이다.

"건강하고, 행복하거라", "푸른 나무가 되길 바란다.". "자유로운 인간이 되거라."식의.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말에 배어있는 진심, 정말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올라나왔을 그 진심이 가슴을 울리고 뭉클하게 하였다.

곳곳에서 눈이 벌게졌다.

그리고 또 1학년 담임의 선물.

 

1학년 선생님은, '이제 이곳에 발을 잘 디디라'는 의미로 버선을 준비했다. (수공예 선생님이 직접 만들어서 모양도 앙징맞고 예뻤다.)

아이 하나하나 선생님은 그 버선을 신겨주었다.

아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아이 신발을 벗겨 버선을 신기면서 그 아이 발을 만지게 된다.

이상한 모습이었다.

저런 선생님이 있던가.

선생님의 그런 모습 자체가 보고있자니 기기묘묘하게 극적이었다.

 

 

아이들은, 기기묘묘하게 감동을 준다.

어른도 생각하지 못 했던 배려, 웃음, 시선.....

 

개학 후 며칠,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몸살이 났다.

아이들과 만난다는 것은 더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나에게 덜컥 부담이 되었나보다.

직장에서는 적절하게 웃고 적절하게 말하고 적절하게 대응하고 적절하게 관심과 무관심을 섞고 적절하게 처신해야하는 사회의 법칙이 이 곳 직장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또 이곳에서도, 어른 대 어른의 공간; 교사 대 교사의 공간, 부모 대 교사의 공간에서는 위의 사회의 법칙이 다시 칼날처럼 엄숙하게 등장한다. 어른이란 정말이지 비굴한 존재다.

 

나는 직장에서도 거짓말을 할 수 없고, 집에 돌아와서도 규민을 만나면서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곤란한 세계에 살게 되었다.

규민을 보면, 나는 다시 새직장에 출근이다.

아침에 아이가 깨기도 전에 엄마 먼저 일을 나가야 하고, 삼일절에도 나가야하고, 일주일에 몇번은 늦어야하는 엄마가 너무나 미안하다.미안할 수록 나의 곤란한 세계는 혹독하다.

 

참, (입학식에 쓰인 화관은 아이들이 절대로 벗지 않겠다고 하여 처음의도와는 다르게 도저히 회수 불가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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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된 얼굴

딸래미와 놀다가 장난을 한 번 쳤다.

동그랗게 말아놓은 양말을 옷 속에 집어넣어 '찌찌 생겼다'하는 장난.

내 딸래미는 아직 다섯살 밖에 되지 않았다.

엄마 찌찌를 애기였을 때의 친구처럼 느끼는 딸래미와 그냥 그런 식으로의 찌찌 장난을 할 생각이었다. 좋아하는 인형을 애기라고 하고 젖을 물리며 놀 수도 있겠고...

그런데 나는 양말 말아놓은 덩어리를 찌찌라고 옷 속에 밀어넣었다가 아주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다섯살 아이 얼굴 하고 불룩 튀어나온 가슴이 전혀 뚱딴지 같지 않고 어떤 '그림'을 자연스럽게 연출해 놓는 것이었다. 

그 그림은, 초등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캐릭터, 그래서 아동용 종합장이나 필통이나 스티커 등등에 수도 없이 찍혀있는 캐릭터, 베리베리 뮤뮤나 마법전사 ****(이름을 까먹음), 이누야샤의 누구누구(이름 또 까먹음)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보니 그 캐릭터들의 이미지가 바로 이것이로구나.

얼굴은 십대, 아니 십대 중에서도 초초반, 아니 십대도 될까말까에 가슴은 c컵 쯤 불룩.

바로 딱 이것이었다.

 

으악 구역질이 나왔다.

이런 이미지는 누가 만들어놓는 것일까.

초등학생들이, 얼굴은 자기 또래의 친구를 원하지만 가슴은 불룩해서 엄마같은 여자가 좋다고 하는 것일까.

 

 

앳된 얼굴이 유행이네 어쩌구 하던데,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얼굴이 악세사리인 수준을 넘어, 나이는 또 왜 무작정 어려야 되는 걸까.

얼마전 민씨 모녀의 자살미수 때문에도 이 나라의 맹목적 배타성, 주변으로 밀려나면 그대로 추락이고 마는 맹목적 중앙집중형 배타성 때문에 비참한 기분이었는데, 이 나라가 집중하는 그 '중앙'은 정말 재수없게 유치하고 질이 낮구나,하는 생각이다.

 

하루, 내면이 성장했다고 고요하고 평화롭다가 바로 그 다음날 입에서 욕만 튀어나오니, 내가 아직 성장이 덜 된거야, 누가 내 성장을 막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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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에 대한 집착

한때 카메라에 집착했던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내가 아니라 렌즈가 내가 누구인지 말해준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내 앞에 카메라를 매달고, 어딘가에 렌즈를 갖다대면서.

나는, 사진이 아니라, 그 착각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성장하면서 사진을 잊었다.

사진을 잃어 아쉽지만, 다행이라면 다행, 나는 성장하였다.

내가 찍은 사진을 어떻게 '전시'할 수 있을까- 그것은 잠시 나를 착각하게 해준 기특한 렌즈의 결과물인데- 에 집착하면서 스캐너를 샀었다. 없는 돈을 쪼개쪼개 반드시 사야만 했었다.

 

스캐너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잭 한 쪽이 떨어져나간지 오래됐다.

이쑤시개 보다 작은 쪼가리가 부러진 건데, 그럼으로써, 스캐너는 아주 무용지물이 됐다.

 

그런 스캐너를 가지고도 평화롭게 산지 몇개월이 넘었다(일년이 넘었는지도 모르겠다).

 

일곱살에 영구치를 얻고, 열네살에 성호르몬을 얻고, 스물한살에 방탕을 얻고, 스물여덟에 독립과 살림을 얻고, 이제 서른다섯. 구불구불 칠년마다 돌아오는 나의 자아는 지금 성장을 얻고 있는 듯. 그것이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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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설겆이 하면서는 라디오가 제격.

씨디를 고르는 것도 설겆이 전초 행위로서는 너무 과하다.

그저 전원만 켜면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하는 라디오가 최고의 설겆이 친구.

 

나는 10시에 <김갑수의 아름다운 당신에게>부터 11시 <신지혜의 영화음악> 씨비에스 고정, 12시 이후엔 케이비에스 클라식 에프엠 (12시 클라식 방송에는 한국 근대 소설가나 시인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줌), 한동안 이 시간의 설겆이를 양도받은 남편은 그냥 이비에스만 냅다 틀어놓는 쪽이라함. 한영애가 진행하는 음악시간이 끝나면 무슨 교육상담이 있고(상담프로그램은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 거 같음), 또 무슨 (방송대) 강의 같은 것이 있고, 그거 끝나면 어떤 음악하는 사람이 게스트를 한 명 초청해서 마구 수다를 떠는 프로가 있는 것 같고(왕수다판), 또 소설가 한강의 오디오북 어쩌구하는 프로(한강 목소리 너무 깜).. 이걸 그냥 다 듣는다고 한다(그의 의외의 느긋함?).

 

 

어제는 11시 쯤 내가 설겆이를 하고 있었는데, 라디오 주파수가 도무지 잘 맞지 않아 그 잡음을 피하려고 어디 잡히는 데 아무데만 나와라하고 있었다.

에프 알 데이빗의 <워즈>가 잡혔다. 음, 뭐 들어줄만 하지. 옛날 생각도 나고.

노래가 끝나고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김기덕.

이 양반 장수한다.

사랑사는 사람에게 고백을 하려는데 말이 안나온다, 이런 노래가 워즙니다.

여전히 김기덕식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하는 말,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4*위, 스모키의 리빙 넥스트 도어 투 엘리스!!!!

이러고 있는 거다.

아니, 김기덕 식 강의가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이란 오백년 묵은 챠트를 아직도!!!!!

 

그는 이 챠트만 벌써 몇년째 하고 있는 것일까.

몇년 째 거기서 거기 팝송을 틀면서 몇년 째 똑같은 썰을 풀고있는 저 대단한 집념.

엘리스네 집에 어느날 리무진이 들어갔어요. 죽었다는 거죠. 사랑하는 엘리스가 죽었다는 겁니다. 이런 노랩니다, 이게.

하면서 이어지는 비지스의 할러데이.

...정말 이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는지, 스콜피언스의 할러데이를 틀어달라고 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 있었던 경찰이 아닌 다음에야 그걸 어떻게 확인하겠습니까. 근데 그냥 비지스의 할러데이를 틀어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노래가 히트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41위까지만, 내일은 40위부터..

 

김기덕의 저 마구리가 먹혀드는 방송계란 나로선 알 수 없지.

그 나물에 그 반찬도 도가 있지, 이십년전에 끓인 국 한 냄비를 물만 더 붓고 내내 계속 끓여내놓고 있는 저 뚝심은 무얼까.

사람이란 원래 무슨 챠트 씨리즈를 좋아하는 본능을 갖고 있는 것인지도..

나도 베스트 어쩌구하는 거 좋아하잖아?

아무튼 김기덕에게는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언제까지 하는지 한 번 보자.

이왕지사 내년에도 십년후에도 이십년후에도 계속 하시길.

그렇게 되면 오호,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챠트계에 독보적인 기록이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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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신문 보고 울고, 오늘 책 보다 기절

뭐야, 세상에, 어제 신문 보다가 기가 막혀 울음.

마흔 된 여자가 딸 죽이고 자기도 죽으려다가 딸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바람에 다 실패하고 말았다고.

이영표가 일부러 먼 길 돌아 드리블 연습하며 가슴에 품는다는 대한민국이 이런 나라다.

자칫해서 주변으로 빠지면 되돌아 살아올 길 없는 황천길 되는 나라.

마흔몇살이라는 민씨 그녀, 대학도 다녔던 엘리트에, 왠만큼 사는 집 자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오토바이에 한 번 치였던 것이 시각장애인으로 빠지는 삐걱이었고, 서른 즈음에 연애했다가 임신했을 때 낙태하지 않고 애 낳은 것이 미혼모로 빠지는 삐걱이었다.

내가 그녀가 아니될 것이란 보장이 어디있는가.

배 아프지 않는 약이라며 애에게 수면제 먹일 때 어미 심정이 어떠했을까.

딸은 보호소로 보내지고, 어미는 정신치료원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물론 그녀의 해발 5만 피트의 상처를 치료하려면 정신치료원이든 어디든 가서 쉬어야겠지만, 정작 정신치료원에 보내져서 정신치료 좀 받아야할 사람들이 멀쩡히 돌아다니며 정치입네, 나랏일하네하고 있는 데 정말 멀미가 난다.

 

 

그리고 바로 하루 지나고 오늘은 책을 보다가 심폐를 찌르는 곳곳의 문장들 때문에 기절함.

 

아이리스 머독의 <잘려진 머리>, 왜 이리 재밌는 거야. 진작 볼걸. 마틴 때문에 웃겨죽겠네.

오늘의 숱한 명명문장들 중 하나: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람됨이 밖으로 흘러나와 형성된 모든 것을 함께 잃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는 경우, 우리는 그렇게나 많은 것들, 그림들, 시들, 노래들, 장소들도 함께 잃게되는 것이다.  단테, 아비뇽, 셰익스피어의 노래, 콘웰의 바다, 그 방이 그대로 안토니어였다.

 

흠, 이것을 보고 문득 얼마전에 보았던 영화 <이터널 썬샤인 오브 스폿리스 마인드>가 생각남.

이 영화,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렛 두 배우 덕분에, 그리고 (올모여사가 지적했던) '날고 뛰어봤자 운명의 짝은 돌고도는 윤회의 동일자'란 사랑에 대한 냉소(난 영화보다 여사의 이 표현이 더 좋았던듯)적 자세를 감상하는 맛이 나쁘지 않았으나, 찝찝하게 뒷통수에 남은 것, 바로 기억의 말소에 대한 부분.

대상에 대한 기억을 지운다고 그게 그렇게 말끔하게 되나. 대상과 관련된 일기, 사건, 장소, 타인과의 대화 등등은 어떡할건가. 그것까지 지워버리면 남은 기억은 너덜너덜해져있을텐데.

<메멘토>도 그렇고, 나는 기억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어쩐지 대충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자는 것 같아 보고나면 좀 민망하다.

 

그래서 야심차게 <이터널 썬샤인> 비디오를 빌려본 후 괜히 머쓱해져서 영화 보기가 쭉쭉 이어지지 못하고 있음. 아무래도 나에게 있어 영화는 막을 내린 듯. <청연>, <그대는 내 운명>, <사랑니> 등등 보고싶어 좀이 쑤시던 것들이 언제 그랬냐 싶게 맹맹하다. 이것도 청춘의 막이 내리고 중년의 막이 오름의 한 증상인지 싶다.

 

하여간에 민씨 모녀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그녀들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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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 미남자둘

한 남자는 키가 훌쩍 커서 백 구십 센티미터는 되어 보였다.

색깔이 바랜 보라색 털모자를 쓰고 있었고 헐렁한 검정 스웨터를 입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긴 얼굴, 그러니까 뭐든 다 길어보이는 인상, 손가락도 길 것 같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예민섬세하기만 한 얼굴은 아닌데, 순정만화과의 극단으로 쏠릴 뻔한 분위기를 잡아주는 것은 나이 같다.

젊게 봐야 삼십대 후반. 마흔이 넘었다고 해도 그럴 법해보이는 연륜이 이 사람의 경우 매력 포인트 몇십점을 가산해주는 것 같다.

고개를 끄덕이며 주로 듣는다. 목소리는 분명 보드럽고 감미로울 것 같아.

 

옆의 남자도 어디서 빠지지않을 얼굴이지만, 키 큰 남자에 비해 약간 간이 덜 된 느낌이다.

조금 키가 작고, 조금 살집이 있고, 조금 더 젊어보인다.

주로 말을 하고 있고, 눈이 크고 눈빛이 강하다.

 

 

멀리서도 그들은 큰 키 때문에 눈에 띄었다.

내가 서있는 방향으로 그들이 걸어오고 있는 사이, 점점 더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시선을 끌어잡는 무언가 다른 공기가 있었다.

 

둘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삼십대 후반, 마흔의 두 (미)남자가 팔짱을 끼고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걷고 있는 그 모습은 아찔할 정도로 고혹적이었다.

여기가 빠리의 거리라면 그렇게나 아찔하지는 않았을 지도..

 

그 둘이 내 곁을 스쳐지나가는 순간, 나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살짝 꽃 냄새와 벌꿀 냄새가 가미된 고농도 순수자연 신선 공기가 대기엔 가득하고, 햇볕은 항상 골든 옐로우이며, 비는 나무와 풀을 어루만져 항상 진초록이고, 사람들은 사랑한다. 항상 서로 사랑한다.

 

내가 잠깐 천사를 본 것이었다고 해도 그럴 법 했다.

 

사람들은 왜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의 사랑을 갈라놓으려 했던 걸까.

그것이 가장 아름다와, 너무 고혹적이라, 세상이 너무나 평화로와져서 악마질을 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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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나 일주일

집 떠나기 전 일주일, 규민이랑 부비며 꼬박 집에만 있었다.

규민이가 기관지염을 앓아 꼼짝없이.

공기 좋은 데 가서 살아야지, 하는 소리가 입에 달렸다.

그런 일주일을 보내니 어서 빨리 부산으로 가고 싶었다.

떠나는 날 월요일 전 주말엔 규민이에게 "엄마 퇴근"을 선언하고 뻗었다.

일요일밤엔 잠까지 안 왔다.

이게 얼마만이냐. 흥분과 긴장.

아이가 걱정되긴 했지만, 남은 선수진들도 든든하고, 이제 애 걱정은 의도적으로 접어두기로 작정하였다.

 

월요일 새벽 4시반 집을 나섰다.

5시25분 발 케이티엑스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정확히 구포역.

8시 10분 도착했더니 왠걸, 날씨 너무 좋음. 완전 봄.

촌스럽게 두꺼운 겨울코트 차림이라니.

낯선 도시, 차 창 밖의 낯선 거리,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8시 45분 쯤 목적지 신라대에 도착했다.

대학켐퍼스 또한 얼마만이냐. 스무살로 돌아가는 기분이닷.

 

그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아홉시부터 저녁 여덟시까지 수업으로 꽉 채워진 날을 보내는데, 왜 그렇게 신이 나고 재미있고 즐겁고 상쾌하고 유쾌한지.

규민, 미안, 집에서 고생하는 남편, 미안, 여러모로 신경쓰고 고생한 엄마, 미안.

역시 학생이 최고 좋은 직업임을 다시 한 번 느낌.

나, 그냥 학생으로 평생 살면 안될까.

수업은 어찌나 가슴을 절절 끓이던지, 그림 수업은 또 나의 손의 아티스틱 욕구를 어찌나 일깨우던지, 몸으로 움직이는 수업은 또 어찌나 착 달라붙던지.

이렇게 한나절을 보내고, 기숙사 방의 단출한 살림 속에서 밥을 챙겨 먹고 빨래를 하고 책을 들춰보는 저녁나절, 이런 하루가 꿈인가, 생시인가..

 

그리고 집으로 왔다.

마지막 뒷풀이밤을 거하게 보내고, 잠이라곤 기차안에서 잠깐 눈을 붙인 게 전부인 물먹은 솜덩이같은 몸을 끌고.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안에서 누가 달려온다.

엄마, 부르면서.

 

앗, 저 아이가 규민인가.

내 팔에 들어온 이 아이가 규민이던가.

나랑 너무도 똑같이 생긴 이 아이.

특히 눈매가 너무 나랑 똑같다. 표정을 어색하게 구사하는 모양새하며, 입 안의 말을 분명하게 꺼내놓지 못하는 망설임도 어쩜 이렇게 나랑 똑같은지.

내가 이렇게 나랑 똑같은 애를 세상에 내놨구나, 넌 어떻게 앞으로 살아갈래.

갑자기 이 애가 와락 측은하다.

어차피 세상에 나와서 살아가야하는, 나랑 똑같은 아이.

 

규민아, 니가 규민이 맞아?

엄마는 어떤 예쁜 요정이 날개를 훨훨 움직여 엄마한테 오는 줄 알았어.

 

엄마, 나 보고싶었어?

그럼,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몰라.

맨날맨날 내 생각했어?

그럼, 규민이 잘 있는지, 밥 잘 먹는지, 터전에서 잘 놀고 있는지, 아빠랑 잘 놀고 있는지, 맨날맨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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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소망이라면,

돈 많다는 삼성생명은 어찌나 돈이 많은지, 정확한 기간과 액수를 외우고 있었는데 까먹었다, 비틀즈 원곡을 사용할 때 지불해야하는 로열티(원곡 뿐 아니라 비슷하게 부르거나 연주된 곡도 사용료를 내야한다고 함, 웬 재수.)가 가히 상상을 초월할 만큼 어마어마했는데, 테레비를 거의 틀지 않는 나도 자주 봐야할 정도로 쉴 새 없이 쏘아대던 삼성생명 부라보 유어 라이프 광고 배경음악으로 "I will"을 정확하게 폴 메카트니가 부른 것으로 쓰고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삼성생명이 그토록 거부가 된 데에는 적으나마 나의 돈도 있다. 십시일반이라고, 없는 통장에서 꼬박꼬박 매달 삼성생명께 돈을 바친다. 암보험도 두 개나 들어있고, 엄마가 옛날에 들어준 여성보험도 하나 있다.

 

그래서 삼성생명 직원(은 아닌데.. 보험아줌마의 현재 호칭은 무엇인가.)이 가끔 사근사근한 안부전화를 한다. 지금 돈이 없어서 보험을 더 들 수 없는데요,하고 어느날 용기있게 말했는데, 아, 그런 거 신경쓰지 마세요, 그것때문에 전화하는 거 아니에요,하고 그녀는 매우 프로훼셔널하게 대꾸를 하였다.

그러더니 급기야 우리집에 한 번 오겠다고 조르고 졸랐다. 내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게 이유의 전부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왔다.

산타클로즈처럼 선물을 잔뜩 들고.

2006년 새해달력은 기본이고, 내가 평소에 갖고 싶어했던 딱 그 모양의 탁상거울이랑, 핸드폰에 매달라는 앙징맞은 개 인형줄 두 개, 원래는 여기까지였는데 애기선물을 안 챙겼다며 18 k 금으로 된 네잎클로바 책갈피까지.

 

나도 답변용 무언가를 내주어야하겠는데, 줄 수 있는 거라곤 그녀의 강의를 열심히 들어주는 것 뿐. 그녀는 역시 프로훼셔널하다.

 

삼십대 중반, 이때 십년 이십년을 내다보며 돈을 모아야한다,는 게 그녀 강의의 요지였다.

사실 나도 이 걱정을 안해본 것은 아니다.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세월이 어디까지일까.

땡자땡자하며 지나온 젊음 덕에 수중은 빈털털이고, 거의 하루 벌어 하루 살고 있는 형편인데, 그렇다면 앞으로 하루벌이가 끝나는 날, 내 생활도 끝인 것이다. 그때 가서 나는 살만큼 살았다고쳐도 규민은 또 어떡할건가(이런 걱정을 정말 진심으로 하게된다).

 

그녀는 은행저축보다 보험회사 재테크 보험이 왜 좋은지 줄줄 꿰더니, 그 중 하나 가장 추천할 만한 것으로 변제주식펀드? 변환주식펀드? 하여간에 주식에다가 일정 투자하는 보험을 설명한다.

그녀 : 지금 주식이 얼마인지 아시죠?

나 : 네?.... 네, 얼마더라..

그녀 : 1,300이에요.

나 : 헉 (거기까지 올랐나, 벌써. 천이라고 하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렇다면 갈 데까지 다 갔네.)

그녀 : (나의 표정을 읽은 듯) 미국 주식이 얼만지 아세요? 만***에요. 분석가들은 우리나라 주식이 미국의 딱 이십년전 상황이라고 해요. 이제 우리나라 주식도 그렇게 될거에요. 올해도 천오백,육백된다고 하잖아요. 삼성전자, 에스케이텔레콤 이런데에 예전에 주식 2억정도 가지고 계셨던 분들, 지금 68억원이래요. 주식으로 돈 번 사람들 참 많잖아요.

 

주식이 자본주의 꽃이라더니, 노동자도 자본의 주인으로 만들어주어 부자가 될 희망을 피워준다고 꽃인가, 아, 그 꽃, 공포스럽다.

침이 넘어갔다. 우리나라가 20년 후에 주식 만 포인트 달성하려고 무기 장사 총 장사에 전쟁 장사까지 벌이겠구나. 못할 짓이 무어겠는가. 삼성전자, 에스케이텔레콤 급기야 쌀농사까지 팔아넘기고 주식 천 삼백을 얻었는데. 핸드폰 장사 더 해먹어야 한다는 논리 오로지 이거 하나로 쌀농사 쯤 해치우지않았는가. 이것에 대면 그 어떤 논리도 나가떨어지지않았는가.

아, 무섭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한 사람이 어떻게 돈을 모아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는지를 얘기하는 자리에서 이제 다른 한 쪽은 어떻게 죽어나가든 상관없다는 식이라니.

 

 

새해 소망을 묻는 마이크에다 열에 여덟은 경기가 풀리고, 경제가 나아지고, 부자가 되었으면, 이라고 한다. 가구 당 한 대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고, 인터넷은 삼천만명이 사용한다고 하며, 핸드폰은 중학생이면 거의 가지고 있는 세상이면 소비산업이란 갈 데까지 다 간 것 아닌가. 여기서 경기/경제더러 더!더! 외치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정말 모르겠다. 사람들이 무얼 원하는 건지.

 

새해소망이란 거 없었는데, 생겼다.

주식 500대 이하로 확 꺽어서 자본주의 꽃 말라비틀어주시고, 미국 전쟁산업 좀 고만하게 하시고, (여기서 끝나면 좀 아쉬우니)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홀딱 망하고, 민주노동당 많이 당선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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