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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7/28
    증명사진 찍으러 갔다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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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07/20
    연희동 숲 아래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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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5/07/19
    오, 놀라워라, 홍상수 <극장전>(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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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7/12
    커피숍(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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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7/03
    뉴스,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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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6/29
    또 꿈, 무지 초라해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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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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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6/22
    이창래 <제스쳐 라이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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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6/16
    오랜만에 비디오, <빌리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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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6/12
    열화당 낸골딘 사진집(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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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사진 찍으러 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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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숲 아래 동네

역시 카메라를 늘 지니고 다니는 습관이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옷 보따리 두 개에다가 또 하나의 보따리를 양 손에 나눠 들고 있었다.

핸드백까지 어깨에 걸고.

요즘은 무조건 가벼운 짐, 그것이 움직임의 제 1의 조건이다.

어깨가 쑤시고 다리가 아퍼 지하철에서 빈자리가 보이면 쏜살같이 달려가 엉덩이부터 디밀고 본다. 다리를 구부려 앉을때 입에서는 어어어어이휴 소리가 난다.

한창 때 들고다니던 가방은 무조건 배낭, 그 안에 읽고있는 책은 물론이요, 혹 기분이 달라질 경우를 대비하여 소설도 하나 더 챙겨넣고, 사전도(사전은 왜?) 챙겨넣고, 하여 항상 바윗덩어리 가방을 메고다니면서도, 지하철의 빈자리는 소 닭 보듯 하였던 시절이 있었건만. 그러니 삼단 같은 머리채의 청춘들아 이 내몸이 늙었다고 괄시를 말게. 내일이면 그 청춘은 바람결에 사라지고 돌아보면 아득한 꿈이련가 할터이니. 이러니 무슨 얼어죽을 카메라인가 말이다.

 

그 동네는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숲 아래 있었는데, 세련되게 뽑아놓은 공원의 숲도 아니었고, 그냥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렸다는 듯한 숲이었다. 듬성듬성 나무 아래 봉숭아와 무슨 덩쿨(나팔꽃인지 호박인지 -원래 이 둘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있으나, 기억이 가물가물)이 섞여있었다. 그러니까 모양이 꼭 시골길 같았다.(시골이라면 단지 '길' 정도의 모습이었는데, 도심 한복판이라 그 정도의 모습으로도 '숲'이 연상되었다.)

그런 숲 아래, 친구 집이 있었는데, 그 집 또한 도심 한복판 하고는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30년 전의 내 기억에서 고대로 불쑥 튀어나온 듯한 집. 시멘트로 마감한 오르막길 한쪽에 엉성한 시멘트 층계가 있고, 그 오르막길 위에 철 대문이 있었다. 철 대문은 대충 열려있는 모양이었고, 그 안으로 들어서니 양팔 벌린 너비의 기다란 시멘트 마당이 있었다.

 

그 집으로 가기 전, 나는 고양이 두마리를 보았다.

어느 집에서 이불을 담장에 걸어놨는데 그 이불 아래 두 마리가 누워 자고 있었다.

한 마리는 배를 한껏 늘어뜨려 아주 길고 긴 자세로 자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등을 바닥에 대고 앞 다리 한 쌍은 머리 옆으로 들어올려 만세 자세 처럼 하고는 땅에 내려놓고 뒷 다리 한 쌍은 공중을 향해 치켜 든 채 자고 있었다.

색깔도 비슷한 두 고양이. 그 모습이 한 편의 코메디 같기도 하고, 한 편의 소설 같기도 하여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 쯤에서 사진들이 들어있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다음엔 꼭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자. 다른 짐들은 다 포기하더라도 사진기만은 놓치지 않는 자세,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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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놀라워라, 홍상수 <극장전>

<극장전>을 보기 전에, 내가 감독도 아니면서, 은근히 이 영화 별루면 어떡하나, 걱정을 다 하고 있었다.

사실 홍상수가 -그의 영화에 관한 한- 그냥 그대로더라도 좋았을 것인데, 그는 무슨 계기였는지 획기 전환점을 맞았다. 단지 영화에 대한 전환점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인간에 대한, 인생에 대한.

그것의 겸손하고도 순박하고 솔직한 고백,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나는 이 영화가 무지하게 재미있었다. 그리하여 그 다음 영화, <극장전>에 대해 기대와 벌써부터 애정과 한편으로 염려를 가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뜸들이지 말고 결론부터 말한다면, 제목으로 붙였듯, 오, 놀라워라, 홍상수! <극장전>!

 

어떤 이는, "홍상수가 B급 무비를 만들었다", "완벽한 아마츄어리즘의 완성", "홍상수는 이제 브라이언 드팔마나 로만 폴란스키가 되려나보다" 라고 떠들며 흥분했다.

 

나는 B급 무비나, 아마츄어리즘이나, 브라이언 드팔마나, 로만 폴란스킨는 잘 모르지만, 그의 흥분에는 적극 동조할 수 있었다.

오, 정말 멋진 영화이니.

그 '전환점' 이후, 그는 정말 점점 사랑스러운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또한 대단하게도 이 영화는 보는 순간의 즐거움으로 끝이 아닌 것 같다. 영화를 본 지 사흘째, 여전히 영화의 대사와 장면은 머리 속에서 이리저리 뒹굴며 떠나지 않는다. 희안한 것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대사들이 하나하나 다시 떠오르고 그것들이 죄다 주옥같은 명대사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곱씹어 볼수록 앞의 대사가 뒤의 대사와, 앞의 장면과 뒤의 장면이 연결되며 매직아이처럼 새로운 그림을 스을쩍 물 위로 떠올리는 것 같기도 하다.

 

씨네21에서 영화검색을 해보았더니 주루룩 기사가 뜬다.

허문영과 정영일의 기사를 읽어봤더니 장난이 아니다. 이거 정말 진심으로 이렇게들 생각한 것일까, 흠.

 

 

(씨네21)

 

엄지원의 휀이 되었다. 연기, 정말 잘 한다. 김상경도 잘 하지만, 그보다 낫다.

 

 


(씨네21)

 

근데 정말 의문스러운 것은, 극중 이형수 감독이 멀쩡히 포스터에서(지금 사진의 김상경 뒤에 보이는) 상원역의 이기우였다가 마지막 병실에서 누워있을 땐 상원의 의붓아버지인 것 같은 아저씨 역의 김명수였을까... 처음엔 내가 잘못본 줄 알았다. 암말기 환자 분장때문에 상원역의 이기우였는데 헛갈린 줄 알고 캐스팅 자막 올라갈때 확인해보려고 했더니 자막에도 안나온다. 씨네21에 들어가서 확인해봤더니, 김명수 맞았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싶은 것은 사실 한두개가 아니다. 그런데 이것이 헛점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미로처럼 보인다. 이걸 읽으면 더 깊은 비밀을 알 수 있게 될 거 같은...

 

홍상수의 다음 영화, 정말 본격적으로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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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

강남 교보, 1층 커피숍을 지나치다 그 멀리서도 안의 사람들이 쥐고 있는 커피잔이 눈에 띄어 냅다 들어갔다. 둥글고 뭉툭하고 큰 자기 잔. 장식없는 흰색. 이거면 내 속이 뒤집혀도 매일매일 커피를 마시겠다. 사실 난 커피를 좋아한다. 그러나 커피숍에서 돈 주고 사먹는 커피가 돈 하나도 안 아까웠던 적은 별로 없었다. 돈을 치르고 나올땐, 이 돈이면 차라리 뒀다 술 값에 보탤걸, 하는 생각이 꼭 뒷통수에 달라붙는다. 커피숍은, 뭐랄까, 하여튼 쓰잘데기 없는 장소처럼 느껴진다. 거기서 카프카의 <성>을 읽고 영감을 받아 그것만한 대작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런데 커피숍 밖에서는 안을 기웃하게 된다, 왠지. 영화에서 보는 빠리의 까페들, 아, 저기 가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꼭 머리 속에 달라붙는다.

그러고 들어가, 전망좋은 테이블을 잡고 앉아 맛있는 커피를 내가 좋아하는 뭉툭하고 큰 흰 자기 잔에 마시며 지나가는 빠리지엔느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땐 돈 생각이 안들까.

 

강남 교보 1층 커피숍에서 난 <성>도 아니고, 고등학교 불어 교과서를 읽고 있었다.

언젠간 들를 빠리의 까페를 위한 준비였다면 차라리 나았지, 과외 준비였다. 이 지긋지긋 이갈리는 과외를 아직까지 하고 있으니, 인생 정말 별거 아닌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하루빨리 소망과 허영을 구분하고, 담담한 소망만 가뿐하게 살 준비를 해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꽤 만족스러웠다. 비록 교과서 따위를 읽고 있지만, 커피는 맛있고, 오랜만에 뭉툭하고 큰 흰 자기 잔을 손 안에 넣고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리고 있고, 더구나 외부를 향한 통유리창으로 주룩주룩 빗줄기와 젖은 땅이 보였다. 흠, 커피숍이란 이런 사치를 위한 것이군. 그 순간, 딱, 렛잇비가 나왔다.

 

아, 이것은 누구의 선물인가. 과외15년 인생을 어여삐 여긴 과외요정인가, 커피숍을 비로소 흡족하게 바라봄을 기특하게 여긴 커피숍요정인가. 렛잇비가 슬그머니 나오는 순간(그 피아노 소리),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렛잇비는 그렇다. 듣고 있으면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렛잇비가 끝나고 예스터데이가 나왔다. 아, 이건 또 누구의 선물이란 말인가. 렛잇비와 예스터데이를 하나의 씨디에 묶어놓지 않았다고, 장삿속 밝은 비틀즈라 평했던, 1999년 영국문화원에서 열렸던 비틀즈 박람회 어느 하루 만났던 아줌마 아저씨 무리들이 (그들은 씨디를 사려고 씨디더미 앞에 서서 이것저것을 고르고 있었다) 떠오른다. 그들의 선곡은 정말 완벽하구나. 렛잇비에 이어 예스터데이라니, 기어이 눈물을 빗줄기마냥 주룩주룩 터뜨리려고...

 

폴 매카트니 엄마가 그랬대나, 존 레논 이모가 그랬대나, 맨날 기타만 치고 있으면 나중에 어른이 되어 어떻게 먹고 살거냐고. 그 아줌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네. 맨날 기타만 쳤던 사춘기가 수학문제 풀고 영어지문 읽었던 사춘기 보다 골백번 낫다. 인생은 정말 그런 것이다. 뭉툭하고 큰 흰 도자기 잔과 빗줄기와 렛잇비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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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싫어.

오랜만에 뉴스를 봄.

에스비에스 8시 뉴스.

삐딱하고 못돼먹은 나는 뉴스에 등장하는 넥타이맨들이 너무나 싫다.

어떻게 나오든 싫다.

저 사람들, 저러고 돌아다니면서 배고픈 사람들 돈은 얼마나 허투루 쓰고 있을 것이며,

쓰잘데기 없는 정치, 경제, 행정, 문화 온갖 쓰레기는 얼마나 많이 만들고 있을 것이며,

저 인간들 때문에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고 많으며 앞으로도 많을 것이며,

전쟁이나 또 만들고 있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나는 뉴스를 보면 안된다.

 

한참 속으로(요즘은 그래도 속으로만) 욕을 하고 있는데, 갑작 여자가 한 컷 나왔다.

정부/공사 지방 이전 소식 이후, 한참동안 넥타이맨들이 나와 각계에서의 진단과 반응과 전망이랍시고 전달하고 이제는 소소한 소식들, 내부 직원들이 이래서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는 뒷소식 류의 뉴스 중이었다.

문득 한 여자가 나왔다. 그런데 고작 한다는 소리가,

"지방으로 사무실 이전하면 결혼 때문에 걱정이에요.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울 것 같고... 그래서 직장을 옮길까 생각중이에요."

 

정말 거짓말처럼 유치하고 드럽고 치사하게 용의주도한 세상이라지.

 

후다닥 티뷔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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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꿈, 무지 초라해진

내가 날아다니는 꿈에 대해 여러번 떠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이상 안떠들겠다.)

아, 내가 그 꿈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발뒷꿈치를 살짝 들어올리고 무릎을 굽혔다가 펴면서 가볍게 점프한다. 두 팔도 좍 피고.

그러면 하늘로 스윽 올라갔더랬지.

몸이 떠오르는 그 느낌, 공기 사이를 유영하는 그 느낌, 땅바닥이 슉슉 뒤로 물러서는 걸 내려다보는 그 느낌, 나무 위로 공원 위로 들판 위로 날아다니던 그 느낌, 그 느낌.

(안 떠들겠다고 했는데 또 떠든다.)

그런데 더 이상 그 꿈을 안 꾼다고도 얘기했을 것이다.

그 이후 아주 가끔 변형된 날기를 시도하는 꿈이 있었다.

 

어젯밤 꿈,

나는 학교처럼 생긴 건물 안에서 윗층으로 윗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윗층으로 올라갈수록 벽과 천정이 골격만 있는 형태였고, 책상과 의자도 점점 없어지고 공간도 점점 좁아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영락없는 정글짐이다.)

도중 누군가 다가와 너도 할래? 물었다.

난 무서워, 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뭘 하겠냐는 거였냐면, 그때 내 머리 바로 위에서, 그래서 마치 내 머리를 스치듯 행글라이더가 지나갔고, 저걸 나보고 타보겠냐는 거였다.

 

거대한 행글라이더였다.

그 거대한 삼각형이 거의 하늘을 덮을 듯 했다.

 

나는 계속해서 정글짐 위로 위로 올라갔고(거의 꼭대기가 가까와오자 그것은 무지 높은 위치였다. 땅이 보이지 않았다.), 올라가는 도중 행글라이더들이 계속 지나갔다. 내 머리 바로 위로. 그 떄마다 머리가 닿을까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어꺠를 바싹 움츠렸다.

나는 두 손으로 정글짐을 꼭 잡고 있어서 거의 엉금엉금 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고개만 빼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행글라이더가 지나갈때마다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가 고개를 다시 빼고 하늘을 올려봤다가 하면서 거북이같이 굴었다.

그러다, 문득, 저게 바로 내가 원하던 것 아냐? 하는 깨달음이 왔다.

하늘을 날고 싶다고 했잖아. 저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건데.

아, 그러니까 이 꿈은 나에게 하늘을 날 기회를 다시 주기 위한 것인가보다.

근데 난 무서워서 엉금엉금 기기만 하고 전혀 탈 생각을 못 하고 있잖아.

예전처럼 그냥 몸이 가뿐 하늘로 떠오르는 것은 이제 꿈도 못 꾸고,

초라하게 행글라이더를 이용해야 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나마도 무서워 벌벌 떨고 있구나.... 등등을 꿈 속에서 모두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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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는 동성애자가 분명했는데, 다른 한 사람은 모르겠다.

커다란 갈색 천 소파 위에 눕듯이 앉아있다가 동성애자인지 아닌지 모를 남자가 몸을 일으켜 동성애 남자의 바지를 벗기고 그의 것을 입으로 애무했다. 갑자기 내 앞에서.

보라색 면 바지가 소파 아래로 떨어졌다.

그것은 장난이었다. 내가 평소에 하지 않는 짓을 지금 하는 이유는 널 놀리기 위해서야,라는 듯한. 그러나 그 남자는 동성애자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눈빛이 그랬다.

한참을 깔깔대며 그러고 있으니, 동성애자는 진정으로 흥분하여 이번엔 자기가 애무해주겠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다른 남자는 얼른 몸을 뺐다. 아니야, 아니야, 됐어, 됐어, 하면서.

 

이 두사람은 지금 알 수 없는 이유로 날 감금하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재빨리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었다.

내가, 나, 이제 집에 가봐야돼, 하고 일어나니, 둘은 장난을 그만두고 빨리 운동화를 꿰신느라 주춤주춤하면서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하고 외쳤다. 순간 공포감이 확 밀려왔다. 나는 태연한 척 하면서, 천천히 신발 신어,하고는 마침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몸을 던졌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대머리 노인(최근에 벤 킹슬리 영화를 봐서 그런듯)과 다른 몇몇 노인들이 있었다. 그들 뒤로 들어가 엘레베이터 벽에 몸을 착 붙이고 노인들의 뒷 모습을 봤다. 모두 깡 말랐다. 그래도 목 뒷덜미가 몇 겹 접혀있었다. 노인들은 내가 일행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나의 일행을 기다리느라 엘레베이터문의 오픈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도 안 들어오자 다시 닫힘 버튼을 눌렀다. 문이 거의 닫힐 무렵 두 남자가 뛰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서둘러 층계로 달려내려가고 엘레베이터 문은 완전히 닫혔다.

엘레베이터는 층마다 멈추고 문을 열었다. 아무도 내리고 타지도 않았는데.

문이 열릴때마다 비상계단을 달려 내려가고 있는 그들과 마주 쳤다. 그들은 엘레베이터를 타지 않고 그냥 계속 층계를 뛰어내려갔다.

 

건물을 빠져나오니 앞에 고속도로가 펼쳐있었다.

고속도로에는 뜨거운 해때문에 이글이글 아지랭이가 잔뜩 깔려있었다.

거기에 큰 개들이 늑대처럼 어슬렁 대고 있었다.

저 개 좀 봐, 어느결에 내 옆에 선 동성애자가 말했다.

그 개는 네 다리로 걸으며 작은 다리 한 쌍을 어깨에 권투글러브를 걸친 모양처럼 늘어뜨리고 흔들흔들하며 걷고 있었다. 저게 정말 다릴까?하고 내가 물어보았다.

아지랭이 때문에 잘 안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하얀색 큰 개 한마리가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배를 드러내고 누워있었다. 허리 아래부분이 차에 깔렸는지 고개와 어깨만 좌우로 흔들 뿐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저기서 새끼를 낳고 있는건지도 몰라,하고 동성애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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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래 <제스쳐 라이프>

지금 막,은 아니고 약 두어시간 전 다 읽었다.

사실 이 소설을 읽을 생각은 아니었다. 일단 작가 이름이 좀 후져보이고.

책 표지 날개에 쓰인 작가양력에는 그가 한때 월가에서 증권맨으로 일했다고 했는데, 딱 증권맨의 이름 같지 않은가(내가 그렇다고 증권맨을 폄훼하는 것이냐,한다면, 사실 그렇다). 이 번 책에는 다행히 붙어있지 않지만, 데뷔작 <영원한 이방인>의 표지 날개에는 작가사진까지 붙어있는데, 그 사진 또한 영락없는 증권맨의 얼굴이었다.

이 바쁜 세상에 증권맨이 쓴 책까지 볼 여유는 없지.

 

그래서 볼 생각이 없었는데, 듣도보도 못한 제목의 책 <영원한 이방인>을 어느날 갑자기 들고다니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작가의 또 다른 책 <제스쳐 라이프>를 연이어 사고, 결국은 이 책이 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훌륭한 것이었다는 둥의 소릴 하는 전모작가 때문에 호기심이 슬쩍 일어 한 번 보자 하고 책을 들었다가 1,2권을 3일 만에 후루룩 끝내 버리게 되고 말았다(1,2 권이라지만 사실 짧다). 아, 전직 증권맨, 생긴 것도 증권맨, 이름도 증권맨인 사람의 이토록 고요하고 슬픈 소설이라니!

 

그 전모작가의 짧은 독후감을 다시 보았다. 역시 작가는 다르다. 내가 얼레발설레발 떠드는 것보다 낫겠다. 옮기자면,

 

영원한 이방인은 사실 데뷔작이라서 그런지 무척 매력이 있지만 문체는 어딘가 안정되어 있지 않은 인상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아예 거대한 심해로 그걸 가라앉혀 놓았다. 감정의 조절, 특히 감정의 절제는 소설에서는 무척 중요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커다란 감정의 비

누방울을 만들어놓고 끝까지 그걸 줄타기하듯 터뜨리지 않았다.  (나라면 단번에 터뜨린 뒤에, 너무 슬퍼서 할 수 없었어......지랄을 할 것이다.)

 

 알려진대로 이 소설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 꽤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단, 여성의 굴절된 삶이라는 면 보다는 야만의 세기인 20세기, 그 얼굴에 난 잔인한 흉터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즉, 역사적인 맥락을 늘 떠올린다.

 

 그도 이 소설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하는 충격이 그 출발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사람들은 잊을 수 있을까, 하는 것도 역시 중요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아우슈비츠에서 사람들이 산처럼 쌓여 죽어갔는데도 어떻게 사람들은 그 위에 햄버거 가게를 세우고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일 것이다. 어쨌든, 20세기가 폭력과 혁명세기, 혹은 야만과 광기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틀림없이 망각의 세기, 단절의 세기가 될 것이다. 안 그런가, 여러분?

 

 난 최근에 읽은 소설 중에 이 소설을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 꼽고 싶다. 시간 나면 한번 읽어보시길..

 

<제스쳐 라이프>를 내려놓고 서둘러 <영원한 이방인>을 들었더니, 이 全작가가 그건 당신한텐 좀 별루일 수 있겠는데, 했다. 그래서 그냥 내려놨다. 내 귀는 참 얇기도 하지. 진짜 얇다.

 

나의 개인적 소견을 살짝 보태자면, 어느 작가는 데뷔 기념 인터뷰에서 <영원한 이방인>이 자기로 하여금 소설을 쓰게 해준 고마운 소설이라고 하였었는데, <제스쳐 라이프>를 읽고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천둥이 치는 하늘에 동시에 무지개가 걸리는 행운이 나에게 찾아와 나도 데뷔 기념 인터뷰 비스무리 한 걸 혹이라도 할 수 있게 된다면, 나도 그때 <제스쳐 라이프>를 두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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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비디오, <빌리지>

비디오 가게 아저씨가 고개를 살레살레하며, 이거 끝이 영 별루던데, 했다.

우디 알렌과 크리스티나 리치의 <애니씽 엘스>(이게 찾아보니 03년도 영화던데, 왜 이제서야?)와 <빌리지> 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전수찬이 적극 <빌리지>로 밀고 가는 중이었다. 나는 최대한 재미있는 것으로 골라야했다. 규민이가 7시부터 자는, 이 일 년에 한 번 있을까말까한 행운을 최대한 누려야하므로. 사실 요즘 영화를 너무 드문드문 보아서, 비디오가게 진열대 사이를 걷고 있자니 보고 싶은 영화들이 쏟아져 쌓일 지경이었다. 고민하고 자시고도 없이 <애니씽 엘스>며, <빌리지>며, 케이트 허드슨 주연의 영화며, 전도연의 <인어공주>, 욘사마와 전도연의 <스캔달>, 고날과 몇몇이 좋았다했던 <미치고 싶을 때>, 내가 좋아하는 까뜨린느 브레야의 <횃걸>, 한 번은 왠지 봐주어야할 것 같은 <올드보이>(아직도 안 봄), 사실은 올드보이 보다 더 보고 싶은 <복수는 나의 것>...

 

요즘 나는 '할일강박' 같은 거에 시달리고 있는 듯 하다.

영화도, 즐겁게 보아야할 것을, 보지 못한 것을 숙제화하고 있다.

인생이 숙제천지로 콱 막혀있다.

한의사가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했는데.

한의사 말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산들 뭔 부귀영화 입신양명 금의옥식 불굴불멸 왕생극락을 누린다고, 허.

 

비디오가게 아저씨가 고개를 살레살레 저었지만, <빌리지>가 최종낙찰 되었다.

<애니씽 엘스>는 로맨틱 코메디라던데, 일 년에 한 번 있을까말까한 행운으로, 반짝 행복보다는 무언가 진지한, 인생을 성찰하며 진리를 반추하는 기회를 얻고 싶었기 때문에(로멘틱 코메디에 대한 편견).

 

<빌리지>가 그렇다고 인생을 성찰하며 진리를 반추하는 기회를 주었는가 하면, 결과적으로 아니올시다 인데, 하지만 여러가지 곰곰 곱씹게 되었다. 예를 들면, 감독은 기껏 섬세하게 은둔의 모습을 그려놓고서 왜 그들을 우스꽝이로 만들었을까. 공포정치라면  타겟은 다른 데 있지 않은가.

 

감독은 사실 그런 정치적인 것에 대하여는 별 관심이 없었을런지도 모른다. 그가 가지고 있던 관심은 스산한 분위기 만들기, 그러다가 오싹 카메라 움직이기, 갑자기 한 번 짱 놀래키기. <스크림>식으로 말고. 이미 그의 전작 <싸인>에서 연습했던 듯이, 묵직하고 둔중하게. 그래서 어떤 장면은, 장면 자체만으로 아름답고도 공포스럽도록 완벽하여 기억에 남도록.

예를 들면, 치자색 망토를 두른 맹인 처녀가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를 감지하고 공포에 싸여 두손을 맹렬히 휘저으며 앞을 살피는 중, 그 바로 뒤 초록잎사귀의 고목이 한 그루 서 있고, 그 고목 에 비껴서 빨간 망토를 두른 살인마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어깨를 움츠린 채 처녀를 노리며 서있다.  카메라는 가로등 정도의 위치에서 그들을 내려다 보고.

또 예를 들면, 사랑하고 동시에 인생의 스승인 아버지가 어딘가로 이끌어가며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어떤 사건의 등장을 얘기할 것이라고 느낄 즈음 아버지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지 마라."라고 말을 툭 던진다. 그 둘을 뒤에서 얌전히 쫓던 카메라도 갑자기 툭 정지하더니, 이야기를 듣던 딸을 중심으로 두고 반바퀴 주루룩 돌아 그녀 앞에 탁 선다. 그녀의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하는 표정.

 

그 은둔자들은 거의 완벽한 평화 속에 살고 있었다. 아무도 사회로부터 소외되지 않는다. 저능아(인)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돈 많은 사람도 따로 없고, 권력자도 따로 없다. 대소사를 결정하는 원로회가 있을 뿐이고, 원로회는 모두에게 건의와 질문을 받는다.

작은 마을을 이루고 옹기종기 사는 그들 모습은 어찌 보면 도피와 은둔과 낙원을 꿈꾸는 이들의 청사진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에겐 기괴한 사건이 발생한다. 주기적으로. 이 사건은 그들을 공포스럽게 하면서 그들을 더욱 단결시켰다. 결국 이 공포정치가 모든 것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리고 마는데, 여기서 더 얘기하는 것은 이 영화를 안 봤는데 앞으로 혹 보게될 사람을 위해서 할 짓이 아니므로 입을 닫으며 하여간에 개인은 집단에 우위한다,는 정치스러운 결론은 이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접기로하고, 도피와 은둔과 낙원을 꿈꾸는 이들의 청사진이 될 수도 있는 작은 마을의 옹기종기는 보다 현명하게 평화를 이루길 바랄 뿐이다.

 

 


 

 

비디오가게 아저씨가 고개를 살레살레 저은 만큼 꽝은 아니었다. 그 아저씨도 도피와 은둔과 낙원을 꿈꾸는 분이시라 결말에 상처받았나.

호와퀸 휘닉스가 나는 리버 휘닉스보다 더 좋던데, 이 영화에서는 너무도 건실한 일등 신랑감으로 나온다. 저 사진에서 그는 드디어 그 무겁고도 섹시한 입술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열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네 생각부터 한다고 말해서 무엇하겠어. 하루 종일 너와 함께 있을 생각만 하고 있다고 말해서 무엇하겠어." 라며 사랑 고백을 한다.  어느 여자가 감동받지 않겠는가. 둘은 그 즉시 열렬한 키스를 한다.

 

그런데, 실생활에서 저렇게 과묵한 스타일의 남자는 연애나 결혼이나 다 꽝이다. 저런 가슴 절절한 대사는 곧, "사랑한다고 꼭 말해야 돼? 그거 말해서 무엇하겠어." 가슴 터지는 대사로 바뀔 가능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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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당 낸골딘 사진집

잃어버린 줄 알았던, 그런데, 토요일 아침, 우연히 찾았다.

토요일 밤, 남은 포도주와, 첫맛은 산뜻하나 뒷맛은 고린내가 나는 농주를 마시고 약간 알딸딸한 기분에 아침에 찾은 그것을 들췄다가 아, 괜히 기분만 뒤숭숭해졌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 사진, 이 잔인한 사진. 그리고 또 이거

 

 

우리, 서로에게 이런 사진 허하기 하자.

가식적인 우리 관계에 이건 너무 무리인가.

그럼 이건.

 

 

옛날에 내가 흉내낸다고 오방 난리를 치며 찍었다가 개뿔, 흉내는 커녕 그지발싸개로도 못쓸 사진 하나 찍었던 그 모델도 눈에 띈다.

 

 

우리도 누드사진을, 예술을 위해, 서로의 자유로운 예술혼을 위해 허해주는 게 어떨까.

 

이제부터, 늘 사진기를 들고다니기로 또 새삼 결심했다.

근데 문제는 사진기를 들고다니냐 아니냐가 아니다.

배워야한다.

갑자기 어디서 사진을 배우냐, 하고 인터넷을 열라 뒤지다가 여성문화예술기획에서 여성의 눈으로 사진을 찍기 어쩌구하는 강좌를 기웃했더니 수요일 밤 9시 시보마넌, 한겨레 문화센터 토요일 오전내내 이십마넌, 시간도 안되고 돈도 엄꼬, 미디어아카데미에서 오마넌에 나도 비디오저널리스트 어쩌구하는 비디오카메라 촬영 및 편집 강의가 있어 그럼 이거나(더군다나 강의가 끝나면 수강료 오마넌은 돌려주는 시스템이라고 한다.)했다가, 아무래도 시간이 맞으려면 하고 광진문화센터를 찾아보니 이건 석달에 사마넌, 강사도 광진구 각종 사진대회 상을 휩쓴 사진작가협회 소속 사진작가님. 음, 근데 이건 왜 끌리지 않을까. 결국 돈도 엄꼬 애엄마 주제에 그냥 독학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옛날 보던 책을 꺼내어 그래, 다시 처음부터 꼼꼼히 읽어가며 실습해보는거야,하고서는 빛의 성질 어쩌구 카메라 옵스큐라 어쩌구가 나오는 1장 한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다가 뻗어 자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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