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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민주주의

#. 최장집. 노동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최장집
폴리테이아, 2012

 

읽은지 몇달이 지난 채로 책상 구석에 쌓여 있던 책들 대 정리 주간이다...

 

부담없는 두께와 평이한 문체에 비해 담고 있는 내용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노동없는 민주주의의 문제를 지적해왔던 최장집 교수가, 이번에는 직접 현장을 둘러보고, 사람들의 삶 속에서 노동없는 민주주의가 어떤 '여파'를 낳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동안 현장 르포르타주들이 대개 사회학적 접근, 사회경제적 분석 혹은 문화적 분석에 치중했다면, 이 책은 드물게도 이를 민주주의와 정치의 문제로 끌어내고 있다.

 

사실, 민주주의 이론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을 노학자이지만, 이렇게 직접 현장을 찾고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한 것은 그로서도 낯선 경험인데다 다루기 쉬운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본인도 서문에서 '뒤늦게 인생공부 많이 하는구나' 생각했다고 밝혔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동정심을 감정이입 (empathy)와 공감 (sympathy)로 구분했다고 한다. 전자는 스스로 경험하지 않았지만 가치와 이념의 도움으로 다른 사람의 사정에 동정을 느끼는 것이고, 후자는 사실의 구체적 접촉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사정에 동정을 느끼는 것이란다. 여기에서 인간행위의 급진성을 불러오는 감정 형태는 감정이입이고, 그래서 현실의 삶에 기초하지 않은 학생운동 전통이 과도하게 작동할 때 진보의 행동정향도 그런 형태들 띤다. 그러한 정조와 감정은 강한 신념윤리를 격발하고 추동하는 반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윤리의 부재 내지는 약화를 가져온다. 

 

* 별 강조 없이 슥 지나가는 문장인데, "지역의 자활센터에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은, 복지정책과 관련해 정당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구절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온갖 정치집단들이 다들 복지 복지 노래를 부르는데, 정작 현실 삶 속에서 정치체로서의 정당은 어디에도 보이지도 않는 작금의 상황은 안습... ㅜ.ㅜ

 

* 저자가 안철수 정책연구소로 자리를 옮기기 전에 썼고, 나오자마자 읽은 책이었는데, 당시에 그는 안철수에 대해서 상당히 호의적 평가를 하고 있었다. 평소 강한 정당론자였던 저자였지만, "앞으로 그의 행적이 어떠하든 또 그의 정치적 결과가 어떠하든, 젊은 세대들의 자기발견과 정치적 각성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치발전에 기여했다"고 했다. 뭐가 되든, 정체되고 빈틈많은 기존 정당체제에 일종의 쇼크요법을 가져왔다는 점에서는 일정 정도 동의가 가능한데... 이는 최장집교수의 제자라고 흔히 거론되는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일관된 부정적 평가 (반 정당주의자로서의 안철수)와는 묘한 대조를 이룬다. 좋은 정당, 바람직한 정당정치를 만들고자 했던 정치학자의 이상이 현실에서 어떻게 발현될지 지켜볼 일이다. ㅡ.ㅡ 

 

* 최장집 교수의 진단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 현재와 같은 노동없는 민주주의가 나타나게 된 것은 신자유주의, 비결정 (non-decision)에 의한 선택적 의제화, 잘못된 갈등 선택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의 복지정책은 사회적 권리로서의 복지권 부여 (entitlement)보다는 물질적 급부 (provision)의 증대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분명히 물질적 급부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 수혜자의 사회적 권리는 약화되고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내용이 퇴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영국 정치학자 콜린 크라우치에 따르면, 긍정적인 시민적 개념에서는 특정 집단이나 조직들이 스스로 집합적 아이덴디티를 발전시키고 집합적 이익을 공유하면서 정부 정책에 자신들의 요구를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을 독자적으로 형성한다. 반면, 비판과 불평을 중심으로 하는 부정적 시민행위는 집권 세력과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묻고 이들에게 강력한 도덕적 기준을 요구한다. 부정잭 시민행위는 정치란 기본적으로 엘리트들의 일이고 시민은 관중이나 감시자의 역할에 만족할 뿐이라는 수동적 관점을 견지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정치 계급에 대해 극히 공격적인 모습을 띤다. 우리사회는 어쩌면 긍정적 시민의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에서도 부정적 시민의 역할에 안주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 그동안 일관되게 강조해왔던 '노동있는 민주주의' '정당 민주주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현장과 함께 좀더 풍부하고 쉽게 풀어놓았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정당민주주의에 대해 더욱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원한다면, 이 책보다는 박상훈 대표의 [민주주의의 재발견]을 추천하고 싶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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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fiction 과 fantasy 사이

#. 설국열차 (봉준호 감독, 2013년)

설국열차

 

주말에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아이맥스로 감상...

 

첨에 영화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에는 질주하는 액션극인가보다 생각했는데, 간간이 들려오는 혹평을 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감독이 전작들이 보여준 페이소스 짙은 유머나 현실에 대한 비판 혹은 풍자도 덜할 것이라는 짐작도 하게 되었다. 음.. 뭔가 어둡고 비현실적인가보구나... 말하자면 허무하고 허무맹랑하다는 뜻이렸다.... 

 

이러한 예상은 그럭저럭 들어맞았다. 그리고 내 예상보다 훨씬 밝고 복잡하고, 울림을 주는 영화였다.

물론 보여주는 상황은 냉혹하기 그지 없었다. 극심한 불평등과 억압, 견딜 수 없는 열악한 환경과 폭력이 냉혹하다기보다는, 그렇게 해야 유지되는 그 시스템 자체가 냉혹하다는 것이다. 

 

'사회주의가 만약 도구를 바꾸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보다 나을 것이 없다'

 

커티스가 마침내 엔진실에 들어가 윌포드를 만나고 진실을 마주했을 때,

그리고 모두가 앞 칸으로 이동하기 위해 싸울 때 혼자 열차 밖으로 나가는 꿈을 꾸는 남궁민수의 모습에서 내내 떠올랐던 것은 앙드레 고르의 저 말이었다.  

 

매트릭스의 네오도 마침내 아키텍트를 만나 이것이 여섯번째 시온의 멸망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 또한 시스템의 일부라는 친절한 설명... 커티스가 진실을 대면한 순간이 어쩌면 이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게다. 하지만 최소한 네오는 스스로 아키텍트의 역할을 할 필요는 없었다. 정의를 향한 투쟁, 그것도 사랑하는 이들을 숱하게 희생시키고 여기까지 왔던 그 노력이 기껏 체계를 안정화시키는 인구조절의 한 수단이었고, 더구나 이토록 냉혹한 인구조절과 계층화된 기능분화가 인류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증오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동력이라니.... 커티스의 절망과 혼란은 정말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게다.

 

그런 면에서 남궁민수가 꿈꾸는 것, 체제 내부의 변동이 아닌 체제 자체를 뛰어넘는다는 발상이야말로 '진정한 변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했다가 인류가 완전히 절멸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영화에서는 잘 풀렸다. 기후상태가 어느 정도 호전되어 생태계가 어느 정도 복원되어가는 듯 보였고, 인류를 이어갈 남자아이, 여자아이도 살아남았다. 도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미지의 세상이지만, 그 도전이 그냥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끝날 수도 있다. 7인의 반란 '유적'이 이를 잘 보여준다. 영화는 폭주하는 열차 안에서 질서를 바꾸기보다, 열차에서 내리라고, 다른 세상의 문을 열으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그 위험이 얼마나 큰지도 이야기한다.  ㅡ.ㅡ 어쩌란 말인가.... 

 

배우들 이야기도 해두고 싶다.    

 

교과서 말투의 캡틴 아메리카 모습만 봐서 그냥 별 관심도 없는 배우였는데, 크리스 에반스한테 깜놀했다. 와, 이런 배우였구나....  틸다 스윈턴은 본인이 너무 재밌어 하면서 연기했을 것같은 상상이 ㅋㅋ다른 이들 연기도 모두 훌륭한데, 특히 길리엄으로 분한 존 허트 등장할 때 나는 변희봉 선생이 등장한 줄 알았다. 헤어스타일이며 꾸부정한 모습이며, 괴물에서의 나왔던 모습이랑 너무 똑같잖아 ㅋㅋ 봉준호 감독의 변희봉 사랑은 정말 유별난가보다....

 

송강호가 분한 남궁민수가 '이게 인류 마지막 담배'라며 커티스에게 담배 던져줄 때 와우, 저 시크한 아자씨 ㅋㅋ 하긴 첨에 감옥 서랍에서 풀려나 그러지 않아도 귀에 거슬리던 '냄 (Nam)' 이라는 발음을 '남궁'이라고 고쳐줄 때부터 빵 터졌다. 고아성 요나는, 힘들게 괴물 뱃속에서 구조된 이후 결국 죽었는데, 이번에는 마침내 기차 뱃속에서 살아나왔다. 진짜 요나가 된 것이다. 피튀기는 현장을 지나서 능청맞게 웃으며 '크노롤' 하며 손을 뻗는 모습이나, 환락의 칸에서 술병으로 병나발 불며 휘청거리는 모습, 단호하게 총을 연발하던 모습.. 다 너무 사랑스럽고... 이제 진짜 인류의 희망이다 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장면들의 그로테스크함이 맘에 쏙 들었다. 스시를 만드는 흑인 요리사, 마지막 살아남은 인류는 아시아인과 흑인, 난데없이 나타나는 온실, 사우나, 수족관, 클럽, 뜬금없는 삶은 달걀 카트와 그걸 또 부잣집 어린이 이마에 부딪혀 까먹는 꼬리칸 불청객,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도망가지 않는 앞칸 사람들, 미친듯이 싸우다가 갑자기 나타난 창밖의 아름다운 풍광에 다들 손을 놓는 어처구니 없음, 적외선 카메라와 성화봉송 같은 횃불 릴레이... 

 

이 모든 걸 한꺼번에 담을 수 있는 건 영화라는 장르만이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사운드 좋은 아트나인에서 한 번 더 봐야겠당...

 

#. Orson Scott Card, Ender's Game (Tor Science Fiction 1991)

 

 

몇 년전에 3부작 사놓고 방치해두었다가 문득 (!) 소설이 읽고 싶어서 집어들었는데,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다. 휴고와 네뷸러 상을 둘 다 받은 나름 우수작이다!!! 마지막 장인 "speaker for dead" 는 없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지만, 뭐 그건 취향...

 

초능력이라 할만한 인지능력을 지닌 어린이들에게 외계침입자로부터의 인류 수호라는 대과제가 맡겨지는데, 문제는 이 아이들이 여전히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인지능력이 어른들을 뛰어넘는다고 해서, 정서나 사회성까지 어른의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엔더가 무척이나 안타깝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피터, 발렌타인, 본조 같은 아이들이 무서운 것이다.  

 

전혀 맥락은 다른데, 모든 아이다움을 강제로 포기시켜가면서 아이들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전사로 훈련시키는 battle school 의 모습이 어째 한국사회 같다는...  이들은 인류를 구하기 위해 외계인과 싸우는 훈련을 받는데 비해, 한국의 어린이들은 옆의 친구를 쳐부수기 위해 훈련을 받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 ㅜ.ㅜ

 

나중에 찾아보니,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진단다. 그러게... 그냥 읽고만 있어도 장면이 영화처럼 떠오르는데 이런 걸 놔둘리가 없지... IMDB 에서 찾아보니, 엔더 역의 배우가 참 잘 어울린다. 그리고 Graff 역을 무려 해리슨 포드가 ..... 이상하게 감성 돋는 영화로 만들지는 말아야 할텐데.... 아이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잔인하고 악마같은 속성을 보여주는 많은 장면들이 과연 가족 제일주의 헐리우드 영화 속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네 그려...

 

그런데, 인기있는 SF 들이 속속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왜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은 그렇지 않을까?

스케일이 너무 크면 앞의 로봇 3부작만 만들어도 엄청 인기있을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버디 수사물에, 액션 블록버스터에, 잔잔한 로맨스도 빠지지 않고, 미래사회의 신기한 기술문명을 늘어놓을 수 있는데다 무엇보다 전우주적 완벽남 R. 다니엘 올리버가 있잖아!!! 영화 프로메테우스 보면서 마이클 파스빈더가 올리버 역에 어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었는데, 그러기엔 얼굴이 너무 복잡미묘....  올란도 볼룸은 어떨까??? 응? 나 지금 뭐하고 있음???

 

#. Neil Gaiman, Anansi Boys (Harper Torch, 2005)

 

 

오랜만에 지하철에서 유쾌하게 킥킥거리며 읽은 명랑 소설...

 

게이먼의 전작 American Gods 에서 Anansi 가 직접 등장했었다는데, 당시에 하도 오만가지 신들이 나왔던지라 기억이 없다. ㅡ.ㅡ Anansi 는 서아프리카 지역 민담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신이란다. 

 

Anansi 두 아들, 특히 Fat Charlie 의 순박하면서 정감 가는 행태들, 등장 인물들의 해괴한 캐릭터와 완전 말도 안 되는 기상천외한 설정들 때문에 군데군데 빵빵 터진데다가, 무엇보다 이야기가 너무 촘촘하고 '재미있어서' 정말 빠져들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건 정말 현대의 '옛날 이야기', 한 번 듣기 시작하면 궁금해서 멈출 수가 없는!!! 

 

도대체 닐 게이먼은 어떤 사람인 게여...

Sandman 이나 배트맨 외전에서는 한없이 어둡고 깊게, American Gods나 Good Omens, 이번 작품에서는 들에서는 명랑쾌활하게, 또 Neverwhere 같은 데서는 신비롭고 음울하게.....

한 사람이 이럴 수 있는 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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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을 초래했던 영화, 공연..

#.

우선 공연....

이승열의 새음반 V 발매 기념 공연에 다녀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배경으로 흐르는 영상이 어찌나 눈에 피로를 주는지, 초반에 너무나 괴로웠다.

커다란 화면으로 적혈구가 휩쓸려 떠다니는 광경은 뭥미... ㅡ.ㅡ

그래서 계속 눈을 감고 들었다..... 

바깥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고, 공연장이었던 대학로 인근은 초저녁이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어둡고 인적이 드물었다.

눈을 감아버리자, 단지 정신없는 화면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까 보았던 그 어둡고 축축한 세상으로 음악과 함께 빠져드는 느낌... 

묘한 긴장과 울림... 말할 수 없는 몰입의 기쁨을 주는 공연...

 

#. 마스터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2013년)

마스터

앤더슨 감독의 최근작 (이래봤자 2007년 ㅜ.ㅜ) There will be blood 보고 숨막혀 죽을 뻔 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덧난 상처에 과산화수소를 뿌려대며 이게 자본주의야 하고 고문하는 것만 같았더랬지... 어흑...

이 영화 마스터는 그만큼 '괴롭지'는 않았으나, 마음둘곳 없는 고단하고 유약한 이 영혼들을 어쩌면 좋을까나 싶어서 심란...  그들을 잡아두고 몰두하게 했던 전쟁이 끝나고, 무엇을 해야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채로 갑자기 새로운 세계에 던져진 사람들은 무어라도 부여잡으려고 했다. 조금이라도 길안내가 될 수 있는 메시지를 준다면, 혼란을 헤쳐나갈 작은 빛이라도 비추어준다면 사람들은 빠져들었다. 프래디와 랭카스터의 관계는 통상적인 멘티와 멘토 관계도, 구원자와 피구원자의 관계도, 유사 아버지/아들 관계도, 그렇다고 연정을 품은 관계도 아니었다. 상처와 유약함으로 하나되는 일종의 치료적 동맹???   

와킨 피닉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연기에 정말 후덜덜했다. 와킨 피닉스의 그 어눌하고 저열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말투와 꾸부정한 걸음걸이... 클로즈 샷을 잡던, 원경에서 걸어가는 뒷모습을 잡던 정말 꽉 찬다는 느낌.... 어휴... 앤더슨 감독이나 이 배우들, 영화 좀 자주 찍어달라구... 

참, 영화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나, 같이 본 환자분께서 건강에 좋은 영화는 아닌 것 같다고 컴플레인을 했다는 것이 옥의 티... 그러게... 환자하고는 한바탕 웃고 즐기거나 감동이 북받쳐 쏟아지는 영화를 봐야지... 이건 좀... ㅡ.ㅡ 휴가내서 "남들 일할 때" 아침 느즈막히 이런 어두운 영화보는 게 나의 즐거운 여가생활인데, 다른 이들한테는 변태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자각...    

 

#. 코스모폴리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2013년)

코스모폴리스

아트나인에서 오늘 마지막 상영이라 해서 퇴근을 서둘러 본 영화...

로버트 패틴슨, 트와일라이트 시리즈를 못 봐서 사실상 해리포터 이후 그가 등장한 영화는 첨 본거임 ㅋㅋ 연기 못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이 영화는 어쩌면 그에게 맞춤옷 같은 영화인 듯... 창백하고 신경질적인 표정, 냉혹한 듯하지만 어쩔 줄 모르는 유약함이, 딱히 연기라기보다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어색한 연기를 펼쳐도 다 장면 속에 녹아드는 상황이랄까?

"자본주의라는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 뉴욕 시위 현장 광고판에 저 문구가 등장했을 때, 저건 뭔 되도 않는 겉멋인가 싶었는데 영화를 다 보고나니, 우리가 그동안 진짜 자본주의를 알고는 있었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그림 혼자 보려고 교회를 통째로 사버리겠다는 정신나간 금융자본가, 누구보다도 자본주의의 수혜자이자 시스템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그조차 자본주의 그 자체의 힘을 어쩌지 못하고,

대통령 암살도 미룰만큼 자본가를 혐오한다는 반자본주의자가 기껏 한다는 일이 3년 기다려 자본가 얼굴에 크림파이 던지면서 사진기자 앞에서 퍼포먼스하기, 도심의 시위대는 차에 낙서하고 식당에 들어가 들쥐 시체 던지기.. 그래서 결국 지금의 시스템에 정말 티끌만큼의 균열은 고사하고 손톱자국하나 내지 못하는 작금의 상황.... 누구도 상처내지 못하는 그 무엇, 자본주의.

유력한 펀드매니저들조차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낙오하고 미처버리는 세계...

정말 자본주의는 인류가 통제하지 못할 리바이어던인 것인가... 

한편으로는 "야, 너네 싸워봤자야.. 자본주의 못이겨... 지금 자본주의랑 싸운다고 깝치는 애들 다 웃겨"라고 말하는 것 갈으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코스모폴리스의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면서 이 세계를 폭주하는 자본주의의 정체를 '폭로'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동시에...

그러다보니 영화는 말할수 없이 음울하고 신경질적이고 기분이 나쁜데 (ㅡ.ㅡ), 

묘한 매력과 서늘한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는.... IMDB 평가가 왜 그리 엇갈린지 알것만 같다니까...

당연히, 리무진 하면, 얼마전에 본 홀리모터스랑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데,

당시 드니라방의 펄펄 끓어넘치는 육체의 생명력, 리무진으로부터의 끝임없는 탈주와 변신은, 이 영화에서 에릭의 무기력함, 끓어오르는 외부와 격리된 차폐공간으로서 리무진으로의 진입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할 수 있음. 심지어 운전기사조차, 홀리모터스에서는 깔끔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백인여성, 이 영화에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것으로 추정되는 얼굴에 상처입은 중년의 흑인 남자... 

극중에 에릭이 사람들한테 저녁에 이 리무진은 도대체 어디 주차를 하는 거냐고 물어보는데, 혼자서 '홀리모터스 주차장'이라고 대답할 뻔했음 ㅋㅋ

 

사족인데...

잭 블랙이 출연한 '버니'를 보고 싶었는데 순식간에 개봉관에서 사라져버림. 아트나인은 이런 영화나 개봉해주지 왜 레옹이니 그랑블루 같은 영화를 재개봉하는지 당최 이해가 안 감...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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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영웅' 영화들...

이라고 제목을 붙이니 너무나 거창하구나 ㅋㅋ

 

# Iron Man 3 (셰인 블랙 감독, 2012년)

 

아이언맨 3

아이언맨에게 고뇌라니, 고뇌라니, 고뇌라니..... 이게 어울려??? ㅡ.ㅡ

악당이 다짜고짜 말리부의 아이언맨 저택을 공격해서 다 때려부수고 오만가지 버전의 아이언 맨 수트들이 쏟아져 나와서 현란한 불꽃쇼 하며 싸울 때, 와... 이건 뭐 액션 어드벤처 끝판왕인가 했는데, 나중에 Man of Steel 보고 이건 장난이라는 생각이 들었음 ㅋㅋ

비행기에서 사람들 구할 때에는 완전 빵 터져서 소리내서 혼자 미친 듯이 웃어버림... 절대절명  위기상황에서도 아이언맨은 유머를 잃지 않는다 ㅋㅋㅋ 게다가 악당이 중 2병 환자라니... 한 시간동안 기다렸는데도 만나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 모든 사단이 발생한 거 아닌가 말여.... 상처입은 자존심은 소심한 인간을 삐뚤어지게 만들고, 인류를 위기에 몰아넣는다는 무서운 진리.....   

그리고 페퍼포츠는 완벽한 여친..

예쁘고 일 잘하고 마음씨 곱고.. 이제 드디어 수트를 직접 입고 대신 싸우거나 아이언맨을 구해주기도 한다는.......  아마도 전세계 도련님들의 로망이 응축된 캐릭터가 아닌가 싶네 그려...

 

# Startrek into darkness (JJ 에이브람스 감독, 2012년)

 

스타트렉 다크니스

이토록 애틋한 로맨스 영화는 진정 오랜만 ㅋㅋㅋㅋㅋㅋ

커크와 스팍의 불꽂튀는 애정전선에 정말 깜놀 ㅋㅋ 손발이 오글오글....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비주얼과 스토리 전개 모두 훌륭한 영화였음. IMAX 3D 가 아깝지 않음!!!

게다가 주연배우, 조연배우 안 가리고 어찌나 다들 깨알같이 제몫들을 해내시는지...

심지어 자기 동족을의 비참한 운명을 떠올리며 칸 (베네딕트 컴버배치)이 눈물 흘릴 때, 뭔 말도 안 되는 설정인데도 막 이해가 되려고 했음 ㅋㅋ 외계종족들은 다들 하나같이 애국애족심이 넘쳐남...

나중에 토끼한테 여중생들이 베네딕트 보려고 이 영화를 단체로 몰려가서 봤다는 이야기듣고, 깜딱 놀람.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중학생 취향이었다니... ㅡ.ㅡ 뭔가 내 취향이 초라해지는 느낌이랄까... ㅋㅋ

 

# Man of Steel (잭 스나이더 감독 2013년)

 

맨 오브 스틸

잭 스나이더와 크리스토퍼 놀란 중 어디에 더 무게를 둘 것인가... 고민고민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보았는데.... 제아무리 놀란 강독과 고이어 작가라 해도... 슈퍼맨은 슈퍼맨인게여... ㅜ.ㅜ

그래도 앞부분은 뭔가 좀 다른가 싶었는데... (배트맨 비긴즈 분위기도 나면서....),

어쩜 그렇게 고민도 없고 개념도 없는지.... 갑자기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는데, 하나도 놀라지도 않고 정체성 혼란도 전혀 없음. 죄없이 잡혀갔다가 기껏 한다는 말이 33년 동안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니, 이 무슨 난데없는 예수 코스프레?  조드 장군의 밑도 끝도 없는 애국애족심도 뭥미.... 그 연기 잘하는 배우를 데려다 바보 만들었음... ㅜ.ㅜ

그리고 하다못해 철딱서니 없는 아이언 맨도 사람들 많은 곳은 피해서 싸울 줄 아는데, 이건 뭐 싸움은 이겼는지 모르겠는데 주변 도시 완전 초토화에 사람들 다 죽어자빠짐.. ㅜ.ㅜ 그나마 지구 자체가 아작나지 않은게 불행 중 다행임.... 흑.... 슈퍼맨 영웅 맞음???

캔사스 시골마을에서 싸울 때는 새로운 농촌 블록버스터 인가보다 하면서 그 스케일에 놀랐는데, 왜 꼭 뉴욕 빌딩 숲으로 가서 건물을 다 때려부수냐고 ..... 뭐 그래도 대결과 파괴의 장면이 비주얼에서 압도적이었다는 점은 인정.....  정말 여기에 비하면, 그동안 트랜스포머들의 싸움이나 아이언맨, 어벤저스 격투 장면들은 애들 장난... ㅡ.ㅡ 이렇게 돈과 기술을 쳐발랐는데, 스토리와 캐릭터가 도저히 그걸 감당할 수 없다는 게 이 영화의 비극적 요소... 

참, 음악만 듣는다면 다크나이트 환생한 줄 알만한 장면도 더러 있었음. 찾아보니 역시 한스 짐머 ㅋㅋ

어쨌든 이렇게 벌여 놓았으니 앞으로 줄줄이 시리즈가 나오겠지? 이제 드디어 저스티스 리그를 보는 겐가? 배트맨은 안 나왔으면 좋겠건만...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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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Sigur ros

지난 부처님 오신날 연휴주간은 ... 말할수 없이 피곤했음 ㅋㅋ

물론 몸이 피곤해서 그렇지 마음만은 즐겁기 이를데 없었음

 

#1. 

 

금욜에는 토끼를 데리고 난지한강공원에서 열린 그린플러그드에 다녀옴

전세계에 80만 명이 있다는 무려 카시오페이아인 토끼가, 언제부턴가 또 '인디밴드'가 좋다는 괴이한 취향을 표명하길래 그럼 콘서트에 한 번 데려가 주겠다고 약속해서 성사된 일정...

 

근데 일단 대중교통으로 가기에 너무 불편함. 차를 가져오지 말라고 할거면 버스라도 가야할 거 아녀...

그 공원에는 자가용 있는 사람만 갈 수 있단 말인감???

심지어 언니가 무려 3단 도시락에 3단 후식/간식거리를 싸보냄...

그걸 일산에서부터 혼자 들고온 토끼... ㅡ.ㅡ

마포구청역부터는 내가 그걸 지고 땡볕에 거의 40분을 걸어 공연장까지... ㅜ.ㅜ

그래도 그 정성과 맛에 감동.... 풀밭에 담요깔고 맛나게 먹었음..

토끼 말로는 학교 소풍가도 이렇게 안 싸준다고...  아무래도 내가 시누이라서 언니가 오버했다는 생각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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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좋아한다는 '안녕바다'

노래 좋음... 땡볕이 내리쬐는데 노래가사는 샤랄라라 별이 내린다 ㅋㅋㅋㅋ

청중이 많아서 깜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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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쉬고 이번엔 장미여관....

토끼 좋아 죽음... 노래 정말 유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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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너무 쨍쨍해서 둘이 거의 탈진.... 공연 끝나고 그늘에서 휴식 ...

태양이 남중고도에 있어서 그토록 강렬했다는 토끼의 해석... 

남중고도라니.... ㅡ.ㅡ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들어보는 단어 

밤에 돌아와서 보니 팔뚝 1도 화상.. 아이구... 따가워 죽는 줄 알았음

 

저녁에 디아블로-피아 구경하고, 역시 내 취향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델리스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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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자우림 무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접근 불가능... 포기.. ㅡ.ㅡ

 

근데 내년에 이 공연, 심지어 이런 식의 컴필레이션 공연을 또 가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일단 일관된 흐름이 뭔지를 모르겠는데다,

개별 밴드들에게 할당된 시간이 너무 제한적이고, 심지어 앵콜의 여지조차 없다보니

그냥 제시한 목록을 채우는데 급급하다는 인상이.. ㅜ.ㅜ

그리고 말이 그린플러그드인데, 왠 기업 광고는 그리 많고 물량과 쓰레기도 장난 아님... 

토끼한테 다음에는 단독 공연을 보여주겠다고 약속...

 

#2.

 

일요일에 시규어 로스... 드디어 시규어 로스....

사실 작년부터 이어진 Valtari 세계투어 일정을 보면서 일본 오사카 공연이라 쫓아가야 하는겐가 고심하고 있던 차에 내한 소식 듣고 잽싸게 예매.... 했으나 좋은 자리는 이미 다 팔림.. ㅡ.ㅡ

주변에 당최 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동반자를 물색하다가 돈많은 주먹도끼가 걸려듬 ㅋㅋ

 

공연은..... 차마 말을 못하겠음.....

빛과 소리의 환상적 조합....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답고 꽉찬 사운드와 조명을 배경으로, 숨을 죽이고 무대를 응시하는 스탠딩 관객의 모습들은 은혜받은 신도들, 혹은 이제 막 '미지와의 조우'를 경험하고 UFO로 끌려올라갈 사람들...

 

CD로 혹은 MP로 듣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운드....

정말 공연 끝나고 '다 이루었다'는 생각과....

아이슬란드 가서 저 자들을 기필고 다시 봐야겠다는 기묘한 감정이 동시에....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는, 사운드 그 자체에 말로 표현할 수없는, 아주 깊은 곳으로부터의 감흥....

정말 여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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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서의 영화

블로그가 적막강산으로 방치되는 날들이 하염없이 길어지고.. ㅡ.ㅡ

미친듯이 바빴지만, 사실 영화도 보고, 섬진강변으로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봄 지나가기 전에 매화랑 벚꽂사진 올려줘야 하는데... 흠...

 

#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 오멸감독, 2012년 작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영화는 정말 영화다웠다....

화면구성과 영상, 음향, 플롯과 편집, 인물들의 캐릭터와 배우들의 연기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아름답고 꽉 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가 끝나고 났을 때, 감당할 수 없는 먹먹함과 회한, 또 슬픔만이라고도 기쁨만이라고 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는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문학작품으로도, 연극으로도, TV 드라마나 시사다큐, 혹은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이러한 감흥을 만들어낼 수 없었으리라. 예술매체들이 가진 고유한 장점과 유발하는 고유한 감흥이 있을텐데, 이 작품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영화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개봉했던 <남영동>이나 <26년> 을 보지 않았던 것, 그리고 <도가니>나  <공정사회>를 보지 않는 것은 나름 일맥상통하는 이유가 있어서이다.  그저 분노를 촉발하는고발일 뿐이라면, 누군가가 경험했던 고통을 추체험하게 해주는 시뮬레이션일 뿐이라면, 그건 심층분석 기사나 시사다큐 프로그램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일부러 생생한 고통을 느껴보려고 영화관을 찾고 싶지 않다. 혹은 (요즘은 도대체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범진보개혁진영'의 존재를 보여주기 위해 머리 수 하나 채우는 일을 하고 싶지도 않다. (이 블로그에 들어오는 사람도 별로 없기는 하지만, 보지도 않은 영화에 대해서 뭔 말이 많냐고 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믿을만한 필자들의 영화평론은 이런 판단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점을 밝혀둔다).

예술이 무언가의 도구가 되어야 하는 상황은 그닥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세상에 존재한 적도, 존재하지도 않는 '순수'예술을 상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학적 완성도와 영화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가운데, 대의명분으로 그 흠결을 덮어주는 건 영화를 위해서나, 운동을 위해서나 좋은 일을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면에서, 지슬은 그 아름다움과 완결성을 통해, 그동안 많은 다큐멘터리나 시사고발프로들이 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고 생각한다. 

해방직후의 그 시절만 돌아보면, '역사는 리셋이 안 되나요'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뭐가 깔끔하게 정리되고 청산된 것이 없다.  그 유산과 잔재들은 오늘도 현재진행형....

 

 

# <홀리 모터스> Leos Carax , 2012년 작

 

홀리 모터스

 

이 또한 영화로서의 영화, 다른 한편 영화에 대한 영화..

예고편을 볼 때에는 뭔가 싱그럽고 재기발랄한 스피드와 유쾌함을 줄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내가 바보지.... 이 감독이, 배우 드니라방이, 그럴 리가 없잖아... ㅡ.ㅡ)

 

며칠 동안 원고 때문에 피곤에 쩔어 있다가 머리를 맑게 해보려고 갔던 극장에서,

완전 정신집중하고 에너지를 극도로 소모하고 돌아왔다는 슬픈 사연이 있는 영화라고 소개해야 할 것 같다.

 

귀를 쫑긋 세우고 (프랑스어를 알아 들은 건 아니고 ㅋㅋ), 한 시도 영화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머리 속에 오만가지 상상과 억측과 때로는 멘붕과......  이런 복잡다단한 이성적/감성적 감흥은 정말 오랜만의 것이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때, 내용만이 아니라 예전 시절의 감상과 주변의 정황이 떠올라 독특한 감흥을 주는 것처럼, 이 영화는 예전 - 소위 시네키드들의 황금 시절이었던 90년대 초의 어느 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때는 이런 복잡한 감정과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들이 참으로 많았었다. 밤새도록 연달아 몇 편의 영화를 보고 종로 거리에서 일출을 맞던 그 독특한 기분도 함께 떠올랐다.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영화는 호텔인지 아파트 방에 있던 등장인물이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혹은 화면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장면이 전환되고, 드니라방이 교외 부유한 주택단지에서 멀쩡하게 리무진을 타고 출근할 때, 오.. 드디어 저 양반도 저런 역할을? 하면서 흠칫하다가 이어서 흉물스런 구걸 노인으로 변신할 때는 살짝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이건 무슨 빈곤 코스프레여.... 설마 이 감독이 언더커버 류의 홈드라마를 찍은 건 아니겠지...

그랬는데..  역시 감독은 나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줄줄이 이어지는 상황과 설정은 매번 나의 온건한 상상을 벗어나서, 이번엔 또 뭐여 하면서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드니라방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광인에서 비련남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변신에 또 변신.....

그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이 영화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영화는 점차 고조되어가고, 그래서 정말 마지막까지 상황이 어찌 흘러가는 겐가, 두근두근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니라방의 퇴근과 홀리모터스의 차고 귀환에서 완전 털썩.... ㅡ.ㅡ

그렇다고 이 영화가 식스센스 류의 반전, '이힛, 이건 몰랐지롱?' 하는 영화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가 무엇이어왔고,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영화에 대한 헌사이자 성찰이라는 생각이 든다.

 

IMDB의 평론들을 읽어봐도, 줄거리가 무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말아라,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언급이 있다. 100% 동의 ㅋㅋ

그렇다. 통상적인 줄거리나 플롯으로 요약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굳이 상징과 연계성을 꼼꼼하게 분석해서 숨은 의미를 해석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영화를 보던 내내, 그리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던 순간들에 일어나던 그 복잡미묘한 감정의 물결, 끝없는 호기심,  홀린 듯한 끌림...  이런 것들이야말로, 영화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감흥이 아닌가.... 

 

이런 영화들만이 진정한 예술적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중2병 걸린 악당의 등장에 혀를 끌끌 차면서도 <어벤져스> 같은 영화를 재미있게 본다.

나름 시원한 즐거움과 웃음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잘 해결되니 마음도 편하고 ㅋㅋ

하지만, 이런 영화들만 세상에 존재한다면 슬플 것같다.

<홀리모터스>나  <지슬>이 주었던 그 깊은 울림과 복잡미묘한 감동을 경험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다.

다양한 영화들, 기술적 상상력 만이 아니라 가치와 내용 측면에서 전복적 상상력을 갖는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소개되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영화를 볼 수 있는 나의 시간과 경제력도 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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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동화, 현대의 동화

어린이 (?) 내지는 청소년 (?)이 주인공인 영화들...

 

#. 문라이즈 킹덤 (웨스 앤더스 감독, 2012년)

 

문라이즈 킹덤

 

영화가 정말 미치도록 귀엽고 깜찍했음 ㅋㅋ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은근 잔혹하고 (낚시바늘로 피 철철 흘리며 귀를 뚫고)

은근 블록버스터 (폭풍이 몰아치는 뉴펜잔스 섬!)에  치정스릴러까지....

아이들의 연기도 너무 좋고, 베테랑 연기자들의 내려놓은 듯한 소박하고 편안한 연기도 정말 좋았음.

유약한 지역 경찰관으로 등장한 부르스 윌리스와 책임의식 투철한 범샘 캠프리더 에드워드 노튼, 융통성 없어 보이는 틸다 스윈턴 모두 그리도 잘 어울릴 수가 없었던 듯...

무엇보다... 주인공 남자아이 샘의 오동통하고 뽀얀 볼따구니가 어쩌면 그리도 귀여운지 ㅋㅋㅋㅋㅋ

음악에, 소품에, 배경에... 그 무엇하나 버리기 어려운, (그렇다고 마냥 예쁘고 착하지만은 않은) 수작임..

영화 보고나면 뭔가 재미나고 뿌듯하고 따뜻한 마음이 생겨남...

같이 영화 본 정이도 너무 좋아라 함 ㅋㅋ

 

# 잭 더 자이언트 킬러 (브라이언 싱어 감독, 2013년)

 

잭 더 자이언트 킬러

 

아무리 그래봤자 재크와 콩나무 이야기인데,

이걸 굳이 아이맥스에 3D 로 봐야겠냐고 항변했지만 감독이 브라이언 싱어라며 도끼가... ㅡ.ㅡ

근데 뭐랄까... 이런 걸 쓸데없이 고퀄이라고 해야 하나?

어찌나 기술력도 좋고, 나름 스펙타클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는지

몰입해 보다가도 잠깐씩 정신이 돌아오면 내가 뭐하고 있나.. 콩나무에....이런 자괴감이 ㅋㅋ

 

마지막 장면에서 현대의 청소년이 왕관을 보고 의미심장하게 웃는 장면에서 속편에 대한 의혹이...

분명히 콩은 다 썼는데....  하긴, 이렇게 과학이 발전한 시대에 굳이 콩나무를 심어야 그 높은 거인국에 올라갈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니콜라스 홀트는 정말 번듯하게 잘 자랐더군...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때보다 더 예뻐진 (?) 것 같음 ㅋㅋ

 

근데.. 요즘 헐리우드가 이렇게 전래동화, 아동문학에 집착하는 걸 보면...

다음엔 닐스의 대모험도 블록버스터로 나올 거 같음.

한국의 전래동화 혹부리 영감, 선녀와 나뭇꾼, 심청전 같은 것도 블록버스터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헐리우드에 제보해줘야 겠다 ㅋㅋ

 

참, 거인국 리더의 눈이 골룸이랑 너무 비슷해서 혹시 웨타 디지털 작품인가 찾아보니 그렇지는 않더군 ㅋㅋ 

 

 

# 배트맨: 망토 두른... (닐 게이먼 2012)

 

 

배트맨 : 망토 두른 십자군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 디럭스 에디션
배트맨 : 망토 두른 십자군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 디럭스 에디션
닐 게이먼
세미콜론, 2012

 

아우.....닐 게이먼.... 

이 자의 마수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네 그려...

배트맨의 죽음이라니....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경의와 연민과 애정...

아무도 진실을, 심지어 배트맨 그 자신조차도 진실은 알 수없지만,

아마도 그가 원하지는 않았던 방식으로 생은 마감되었고, 이는 언젠가 닥쳐올 수밖에 없었던 사실...

누구나, 심지어 그가 배트맨이라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니까....

안녕히.. 모두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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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대하여...

#. 잊혀진 꿈의 동굴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 2010년 작)

 

잊혀진 꿈의 동굴

 

동네에 예술영화 전용극장이 생기니까 넘 좋다...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만!!!

2010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이제사 보게 되었다. 

영화적인 특별함은 별로 없는 평이한 구성이지만.. 내용 그 자체 때문에 허거덕....

영화는 3만년 전, 크로마뇽인 버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믿을 수 없는 벽화를 찬찬히 보여준다.

갈기가 없었던 3만년 전의 사자들, 마치 움직이는 듯한 바이슨, 코뿔소들과 검고 아름다운 말들...

몇 년 있다가, 누군가가 이 그림들이 모두 현대의 조작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한 들, 나는 하나도 놀라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은 그게 아니라 외계인들의 소행이라 해도 안 놀랄 자신이 있다..

3만년 전에 이걸 진짜로 그렸다는게 그 무엇보다 놀라운 일.... ㅡ.ㅡ 

정확한 묘사와 일필휘지의 손놀림, 추상과 구상의 모호한 경계....

니스 근처 마그 재단 미술관에서 보았던 샤갈의 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고독한 천재는 왜 삼만년 일찍 세상에 태어났더란 말인가.... 

그는 누구와 어울리고, 누구와 "예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아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을까?

불과 5백년 전, 서양화는 잊혀졌던 원근법을 천년 만에야 되살렸다.  

그런데 삼만년 전에 이런 그림을 그린 크로마뇽인이 있었다.......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환희와 고독이 막 느껴지는 듯.. ㅡ.ㅡ

 

그런데 영화 마지막 부분은 갑자기 호러로 급선회... 동굴에서 멀지 않은 핵발전소 주변의 온수 때문에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이상증식한 악어들 모습은 어찌 연결시켜야 할지???  

그리고... 감독 아자씨 목소리가 나쁜 건 아닌데... 리차드 아텐보로 할배의 드라이하고 꼿꼿한 나레이션에 익숙한 나머지, 다른 목소리를 들으면 어색어색... 

 

# 샌드맨 (닐 게이먼... 그리고 여러 화가들과 편집자들...)

 

 

The SandMan 샌드맨 1 - 서곡과 야상곡
The SandMan 샌드맨 1 - 서곡과 야상곡
닐 게이먼 외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2 - 인형의 집
The SandMan 샌드맨 2 - 인형의 집
닐 게이먼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3 - 꿈의 땅, 시공 그래픽 노블
The SandMan 샌드맨 3 - 꿈의 땅, 시공 그래픽 노블
닐 게이먼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4 - 안개의 계절, 시공 그래픽 노블
The SandMan 샌드맨 4 - 안개의 계절, 시공 그래픽 노블
닐 게이먼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5 - 당신의 게임
The SandMan 샌드맨 5 - 당신의 게임
닐 게이먼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6 - 우화들
The SandMan 샌드맨 6 - 우화들
닐 게이먼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7 - 짧은 생애
The SandMan 샌드맨 7 - 짧은 생애
닐 게이먼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8 - 세상의 끝
The SandMan 샌드맨 8 - 세상의 끝
닐 게이먼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9 - 친절한 그들
The SandMan 샌드맨 9 - 친절한 그들
닐 게이먼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10 - 장례 전야
The SandMan 샌드맨 10 - 장례 전야
닐 게이먼
시공사, 2009

 

The SandMan 샌드맨 : 영원의 밤
The SandMan 샌드맨 : 영원의 밤
닐 게이먼
시공사, 2010

 

The SandMan 샌드맨 : 꿈 사냥꾼 - 완결
The SandMan 샌드맨 : 꿈 사냥꾼 - 완결
닐 게이먼
시공사, 2010

 

 

 

 

 

 

 

 

 

 

 

 

 

 

 

 

 

 

 

 

작년 말부터 저녁에 조금씩 읽어오던 것이 어제야 쫑났다..

한동안 소설을 읽지 않아서 잊고 있었는데,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닐 게이먼의 어두운 환상, 불멸하는 '영원'에 대한 미궁같은 이야기들이 너무너무 좋았다.

이건 마치 20세기의 천일야화....

나도 모르게 모르페우스와 그 형제자매들에게 빠져들어 갔고,

특히나 꿈의 군주 모르페우스, 그리고 그의 누나와 여동생 - 죽음과 절망- 에게 깊은 애착을 느꼈다.

그리고 어쩐지, 루시퍼의 고독을, 까마귀 매튜의 우애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닐 게이먼이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는 것이야 진작 알고 있었지만,

아.. 이 자가 일가를 이루었구나.. 이런 탄식(?)을 늘어놓게 만드는 놀라운 이야기들인데다

그림도 어쩌면... 한 컷도 버릴게 없는 듯...

특히나...

모르페우스가 생을 마감하고, 그를 떠나보내며 추억의 집을 짓는 영원형제들의 모습은 숨을 턱 막히게 했다.

이것이 종이 위에 그려진 '만화'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창문을 내다보면

저 멀리 적막한 어둠의 심연에서 그들을 곧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음같아선 책 한장한장 뜯어서 방에 도배하고 싶음.. ㅡ.ㅡ

그럼 악몽에 시달리겠지 ㅋㅋ

진정한 현실의 악몽은 이 아름다운 책을 '시공사'라는 이름표와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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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 벵갈 호랑이, 장발장...

포스팅만 보면, 나는 세상 제일의 한량 ㅡ.ㅡ;;

 

# 호빗: 뜻밖의 여정 (피터잭슨 감독, 2012년)

 

호빗 : 뜻밖의 여정

 

차가운 셜록의 따뜻한 남자, 마틴 프리먼이 빌보 배긴스로 ㅋㅋ

원래 이렇게 스케일이 큰 이야기는 아닌 듯한데,  

어쩌다보니... 그야말로 뜻밖에 블록버스터가 된 게 아닌가 싶네 그려..

아기자기하고, 따뜻하고, 귀여운 그야말로 재미난 동화...

저 멀리 원경의 산맥들은 마치 내고향 6시에서 본 듯한 뉴질랜드 풍광...

그리고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들....  

시간은 지난 반지원정대보다 60년 전이라는데 간달프는 더 늙어보여 ㅋㅋㅋ

스미스 요원 요정 휴고위빙도 주름 자글자글 ...  

갈라드리엘은 후광 때문에 피부 상태 확인 불가능 ㅋㅋ

 

근데,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라면 별 감흥이 없었을 수도...

번역이 좀 후지다는 거 빼고는 흡족할만한 영화였음...

특히 골룸과 빌보가 수수께끼 맞추며 대결하는 장면에서 "Lost" 에 대한 번역 완전 거슬림...ㅡ.ㅡ

근데 또 딱히 한국어로 적당하게 번역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을 듯....

다음 편들도 후딱 이어서 했으면 좋겠네...

셜록이 네크로맨서/스마우그로 나온다는데... 빌보 왓슨과 조우하는 장면이 몹시 기다려짐 ㅋㅋ

 

# 레미제라블 (탐 후퍼 감독, 2012년)

 

레미제라블

 

잘 만든 뮤지컬 영화라고 평이 좋아서 보려고는 했었는데, 여행이다 뭐다 정신없어 못보다가

대선 이후 갑자기 "힐링" 영화로 등극해있어서 이건 또 뭔 일인가 하며 보았음

음악 좋고, 연기들 잘 하고, 극도 잘 짜여져 있기는 한데........

근데 도대체 사람들이 어디에서 힐링을 받았다는 건지 당최 미스테리... ㅜ.ㅜ

 

빅토르 위고의 원작 레미제라블은 읽어본 적이 없고,

내가 기억하는 건 장발장과 은촛대 동화책 버전.... 

그래서 원작이 아닌, 딱 이 영화에만 한정해서 이야기하자면 전형적인 헐리우드 서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은 영화가 아닐까 싶음...

말 그대로 "한 때의 젊은 치기"로 혁명운동에 동참했던 마리우스 (심지어 부르주아도 아니고 앙시앙레짐의 적자...) 는 화초처럼 자라 아빠의 과거도 세상 물정도 암 것도 모르는 화사한 코제트 만나

다시 아무런 고민도 없이 이전의 귀족 생활로 돌아감.

결혼식 장면에서 정말 빡쳤음 ㅜ.ㅜ

마리우스 좋아하던 에포니는 심지어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주고 장렬히 전사....

하수구에서 마리우스 짊어지고 이동하는 장발장에게서 나는 울버린의 환영을 보았음.. .ㅡ.ㅡ

 

어쩌면 이 영화는 형사 자베르와 장발장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작품???

혁명은 그저 배경인 겐가?

사실... 극 초반 판틴을 몰아세우던 공장의 드센 여자들, 결국은 그녀가 머리카락을, 이빨을, 몸을 팔게 만들던 악다구니 같은 여자들과 남자들, 바리케이드를 쌓을 수 있게 가구를 던지던 서민들, 결국 나타나지 않고 혁명군을 고립 궤멸에 빠지게 했던 시민들(?).... 이들은 다 같은 소위 "민중" 아닌가 말여....

이렇게 복잡미묘한 인간상을, 한 순간은 극단적 악인들로, 또 다른 순간에는 전혀 다르게 세상을 바꿀 이들로 그리는 단선적 묘사는 후덜덜... 물론 뮤지컬이라는 특성 상 극적 대조를 이루기 위한 장치였다고 관대하게 이해해주기는 했음...  ㅡ.ㅡ

 

다시금 깨달은 것이지만, 나는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영화들과 친하지 않음... 

 

# 라이프 오브 파이 (리안 감독, 2012년)

 

라이프 오브 파이

 

말하자면, 이런 영화가 내 취향...  

한번 갈고닦아 놓은 통찰력은 장르가 바뀌어도, 기술이 바뀌어도, 맥락이 바뀌어도 여전히 그 광채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줌.... 

정말, 리안 감독은 어떻게 이런 인생의 깊이를 가지게 된 게야...

나이 먹으면 저절로 되나???

그런 거라면 나도 얼릉얼릉 나이 먹고 싶지만, 그렇지는 않다는 게 인생의 함정.... ㅡ.ㅡ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상대와 고립 무원의 상황에서 공존해야 하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심지어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적대자를 돌보기까지 해야 하다니...

그리고 미운 정조차 용납하지 않는 비정한 세계, 환상적인 아름다움과 치명적인 위험이 공존하는 모순덩어리의 세계, 믿고 싶은 것과 믿을 수 있는 것이 부동하는 불가해한 세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하면서도 흉포한 리차드 파커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냥 다 술술 불어버릴 것만 같았지......ㅡ.ㅡ

 

그리고 이 영화 대부분의 장면들이 CG 라는 것에 다시 한 번 깜놀....

호랑이와 소년이 실제로는 한 번도 조우한 적이 없었다고!!!

기술은 기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위해 쓰일 때, 그것이 기술인지조차 모를 때 가장 뛰어난 법 아닌가 싶음....

 

정말로, 다음 영화가 기다려진다오.. 리안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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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맨과 억척가...

기록 없이는 기억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중한 깨달음으로 열심히 복기...

 

#. 서칭 포 슈가맨 (말릭 벤젤룰 감독, 2011년)

 

서칭 포 슈가 맨

 

'다큐' 본연으로서는 좀 이상한 영화.... 전반부에 등장해서 마치 슈가맨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것처럼 인터뷰했던 사람들... 인터뷰가 진행된 영화 제작 시점에서는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던 거잖아... ㅡ.ㅡ

 

근데, 이런 문제를 다 덮어버릴 수 있는 건, 슈가맨 로드리게즈의 삶 그 자체.... 디트로이트의 황량함마저 아름다움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음악들....

비루하지만 이를 통탄하지 않고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함.... 그리고 내가 그토록 갖고자 하는 부동의 평정심..

 

어둡고 칙칙한 눈오는 디트로이트 거리를,

낡은 코트를 걸친 그가 구부정하게 한발한발 내딛는 장면에서 도대체 왜 눈물이 나는 건지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웠고,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서 목이 메어오는 느낌.... 이건 무엇일까?

 

사족이지만, 영화를 통해 한 가지 새롭게 깨달은 것은,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 백인이라고 해서 모두 희희낙락 행복하게 살지는 않았다는 점...

감시와 규율, 철권통치는 리버럴한 백인들에게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음을 난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었다네... 너무 당연한데도 말이지.... 세상을 그리도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니... ㅡ.ㅡ   

 

#. 이자람의 <억척가>

 

포스터이미지

 

 

그녀는 그 나이에 어쩌자고 이런 작폼을 만들어내고 공연할 수 있는 것일까???

관람료 3만원은 너무 저렴하다는 생각을 절로 만드는 공연....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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