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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21
    우리사회의 미래를 비추는 요술 거울이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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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1/06/11
    차마 웃을 수 없는 영화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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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1/06/06
    중의적인 US: 우리들? USA? [Crazy like U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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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 조언하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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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박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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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1/03/06
    어려운 책, 애매한 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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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1/02/16
    기묘한 도마뱀과 기이한 경제학자
    hongsili

우리사회의 미래를 비추는 요술 거울이 아니길...

 

야만적 불평등 - 미국의 공교육은 왜 실패했는가
야만적 불평등 - 미국의 공교육은 왜 실패했는가
조너선 코졸
문예출판사, 2010

 

이책이 쓰여진것은 1990년대 초반, 그래서 어쩌면 20년 전, 이미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 30년이 그러했듯, 이후 20년 동안 근본적 특성이 변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미국에 살던 2000년대 중반 즈음, 뉴욕타임즈에 실린 공교육 현장 기사들은 내눈을 의심케 만들었더랬다.

운동장이 없어서 복도에서 체육수업을 한다니, 재정이 파탄나서 스쿨버스 운영을 중단해버렸다니...

이런 류의 기사들이 참 믿기 어려웠었다.

썩어도 준치라고...그래도 세계 최고 부자 미국인데, 정말 이정도까지???

이와 달리, 주변의 한국 방문연구교수나 포스닥/대학원생들은 미국의 공립학교가 얼마나 훌륭한지 입을 모아 칭찬했다. 한국에서와 달리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모른다고.... 

 

이 화해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을 둘러싼 진실은 저 너머에 있는게 아니라, 이 책 안에 있다... ㅜ.ㅜ

 

 

예전에 한 세미나에서 누군가 미국사회의 공공의료체계가 부족함을 지적하며, 왜 학교는 공공이 존재하는데 보건의료는 그러지 못할이유가 있냐고 발표하니까, 플로어에서 미국에는 공교육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며 비유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던게 생각난다... ㅡ.ㅡ

사실, 두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권으로서 같이 가는게 보통이니, 뭐 놀라운 일은 아니다.

 

미국 공교육, 그것도 공교육 일반이 아니라, 가난한, 특히 인종적으로 분리된 지역에서의 공교육 환경은 상상을 초월한다. 교과서가 모자라고, 냉난방이 안 되는 교실은 불쌍한 축에 끼기도 어려워보인다. 불이 났던, 천장이 없는 건물에서, 때로는 화장실과 탈의실 공간에 책상을 놓고 공부를 해야하고, 교사 급여를 줄 수가 없어서 수업을 단축하고, 학교 안에 물이 새서 강이 흐르는 광경은 도대체 지옥이 있다면 여기일까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주식거래에서의 정보전달 능력이 세계최고라는 뉴욕 시에서 학교에 나오지 않는 가난한 아이의 행방을 '아무리 찾아도' 알 수 없다는 교장의 뻔뻔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아연실색이다...

 

물론, 당연히, 모든 학교가 이런 건 아니다.

중산층, 백인들, 그리고 선택받은 소수의 아시아계 학생들이 다니는 공립학교는 우리가 영화, 드라마에서 흔히 보고, 또 주변의 미국유학자들에게서 이야기 듣는 모습 그대로이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공립학교의 재원이 기본적으로 지역 재산세에서 조달되고, 교육구 사이에 재원의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데다, 지역 간 인종/계급 분리가 무지무지 극심하며 인종통합교육에 대한 (암묵적) 반대가 그 핵심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가난한 지역은 유해산업이 밀집해있거나 경제가 낙후하고, 재산 가치가 낮기 때문에 재산세 납부가 적은데다 (심지어 세율은 가난한 지역이 더 높다!!!),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기업들은 아예 독자적인 타운을 구성해서 스스로를 통치하며 세금을 회피한다. 주정부에서 내놓는 교육구 공립학교 통계연보는 부동산 시장에서 으뜸가는 근거자료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주거지와 좋은 학교, 넉넉한 학교재정의 선순환구조가, 또다른 누군가에는 열악한 주거환경과 무너져가는 학교, 파탄난 학교 재정의 악순환 구조가 고착화되는 아주 좋은 근거자료이리라...

 

중산층 학부모 (그리고 그들 중 다수는 1960년대 후반 인종분리 철폐를 위해 남부로 가는 희망버스에 탑승했던 이들!!!) 들이 자원의 재분배나 통합교육에 반대하는 것이 어이 없지만, "어쩌면 이들이 '반대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일일지 모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이들은 가난한 아이들이 피해를 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들은 그저 자신의 아이들이 최선의 것을 얻기 바라는 것뿐이다. 이러나저러나 사우스브롱크스의 아이들에게는 마찬가지다."

중산층 지역 명문 공립학교 학생들의 경쟁은 '건강에 해로울 만큼' 지나치다며 "뉴욕의 아이들 (가난한 도심지역 학생들)이 겪는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 아디을 대다수는 너무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어요" 라는 중산층 학부모의 토로에 대해 코졸은 이야기한다.  "불공정의 한계가 명확하지 않은 이런 진술들은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불행과, 불공정이 일으키는 불필요한 비참함 사이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이로써 부자들은 불편함과 파멸의 차이를 인정해야 하는 의무감에서 벗어난다".

 

이들은, 그리고 교육관료들은 교육비가 늘어난다고 환경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며, 돈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교육재정을 공평하게 분배하자는 이야기에는 펄쩍 뛴다. 돈이 중요한게 아니라면서 말이다. 심지어 부시 대통령조차 "돈이 교육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가난한 아이들의 학부모들에게 경고했다. '돈을 숭배하는 사회는... 위험한 사회입니다"

물론, 돈이 다는 아니다. 돈이 중요한게 아니니까 너네 가진 것 좀 내놓으면 안 되겠니?.

 

이러한 와중에 '마그넷 시스템'이라는 선발제 공립학교는 대안적 체계로 환영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중산층, 젊은 전문직 종사자, 백인의 자녀들이다.  "이 시스템이 겉으로는 학생의 능력 위주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이나, 이 경우 능력은 계층과 인종에 밀접하게 연관된 조건에 의해 미리 결정된다. 일부에서는 이 시스템을 '적자가 생존하는 법'이라며 옹호하지만, 사실 적자생존이라기보다 적자의 아이의 생존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뉴저지 주의 빈곤지역 학부모들이 주 정부를 상대로 교육구간 재정 불평등을 문제삼아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왜 뉴저지의 가난한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부유한 교외 지역의 아이들과 똑같은 기초 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설명하려고 7년이라는 세월과 607페이지에 걸친 문서가 소요되었다."

 

물론, 열악한 환경에서도 헌신하면서 기적을 일구어내는 교사들이 있다. 하지만, ".. 자칫하면 이러한 교사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열악한 조건에서도 좋은 교육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그림을 그리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사실 이런 식의 주장이 점점 늘어나고, 이따금 이런 논조의 책들이 대단한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격려성 연설과 장밋빛 자기계발서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나름대로 제 역할을 하지만, "희망은 청바지처럼 쉽게 판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 해방은 이런 식으로 대중 최면을 통해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이 슬프지만 진실이다.

 

책에서 인용된 존 쿤스는 "사실, 인위적으로 이권을 부여받은 자손이 한 세대의 최적자 (the fittest)를 순환적으로 대체하는 현재의 상황보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더 크게 위협하는 것은 없다" 고 경고했다. 평등과 자유는 반드시 상충하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그 무엇보다 가슴시리게 다가온 것은 이 부분이다.

 

코졸은 한 중산층 명문공립학교의 학생토론을 참관한다. 이들은 앨리스워커를 비롯하여 미국의 인종철폐와 사회정의에 대한 훌륭한 저자들의 저작을 모두 탐독했고, 학교재정의 불평등과 인종통합에 대해 아주 논리적이고 차분하게 자신의 견해를 제출할 줄 안다. "일정 부분 이들의 능숙함과 총명함은 비현실감에서 나온 듯하다. 불공정 문제는 인간애나 양심의 문제라기보다 기하학적 문제처럼 취급된다." 그리고 조금만 더 도전적인 질문을 받으면 '본심'이 튀어나온다. "... 그러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이 공정한 일이 아니겠냐고 그 학생에게 묻는다. "그래봐야 저한테 무슨 보탬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1968년에는 가장 부유한 교외 지역 학교에서조차 이런 말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생각해본다. 급우들은 위장하지 않은 사리사욕을 더내는 이런 발언에 술렁였을 것이다. 1990년 라이에서 그 학생은 아무런 째 없이 이런 말을 할 수있다. 나는 이 흥미로은 학생이 그렇게 솔직할 수 있다는 데 감탄한다." 

코졸이 20여년 전 미국에서 느껴던 이런 감정을 오늘날 한국의 많은 교수들이 대학에서 경험하고 있다.

 

사회적 연대의 부재, 적자생존의 무한경쟁, 그리고 '염치'의 상실은, 오늘날 한국사회를 나타내는 중요한 특징들이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들이 먼 남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수많은 친미관료들과 학자들에 의해 미국식 교육 프로그램들이 속속 도입되는 것 - 이를테면 입학사정관 제도나 AP 프로그램 - 은 불평등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진실로 우려할 만하다.

 

예전에 한 방송국이 주관하는 고등학생 영어토론 대회 중계를 잠시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은 아주 유창하고, 논리정연하게 국제원조 문제를 토론하고 있었다.

어떤 학생들은 식민지배의 역사와 사회정의를 이야기했지만, 그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공허함'이었다.

물론, 그 학생들에게 진심이 없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코졸이 느꼈던 것처럼, 그것이 인간애와 양심의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다.

가끔씩 학생 리포트 혹은 토론수업에서 정제되지 않은 이기적 발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올 때면, 나는 아무리 본심이 이렇더라도 제발 이렇게 대놓고 말하지만은 말았으면 하고 바랬었다. 

 

연대는 차마 바라지도 않지만,

연민과 염치.... 내가 너무 큰 걸 바라는 것일까?

이들도 역시 '개념'들과 함께 안드로메다에 가 있는 것일까?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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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웃을 수 없는 영화들...

너무 황당하고 웃기기는 한데, 차마 웃을 수 없는.... 이런 걸 블랙코미디라고 해야 하나?

차라리 '진짜' 코미디였으면 맘편하게 배꼽잡았을텐데...

 

#1. 코앤 형제 <시리어스 맨>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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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어쩌면 "세상의 복판에서 온몸으로 시련을 맞다" ?

도대체 근원을 알 수 없게 꼬여만가는 삶 -

하지만 그동안의 '정상적인' '중산층 지식인'의 삶이라는 게,

실제로는 아주 얄팍하고 위태로운 질서 위에 굴러갔던 것...

아주 작은 균열만으로도 송두리채 흔들릴 수 있었다는게 나만큼이나 주인공도 믿어지지 않았을 것이여...

 

그 꼬여버린 상황에 명료한 대답이나 해결책을 줄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 오늘의 진리...

슬프지만 진실....

 

 

#2. 김재환 <트루맛 쇼>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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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진짜 엄청나게 웃긴데... 차마 웃을 수는 없었다네... ㅜ.ㅜ

엄청나게 비장한 결기로 '고발'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시종일관 웃으며, 쿨하게, 깔끔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모자이크 없어서 너무 좋아...

연예인들부터 우리 김재철 사장님, 그리고 불만제로/소비자 고발에 등장했던 '맛집' 설렁탕 집 방문하여 친히 사진도 남겨주신 그 분까지.... (알고보면 그 분도 피해자 ㅋㅋ)

 

정말, 쉽지 않았을텐데, 그리고 앞으로도 어려움이 적지않을텐데,

집요하게 문제에 천착하며 이를 알려낸 PD 들 팟팅이요!!!

 

#3. 찰스 퍼거슨 <Inside Job>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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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보고 있노라면 울화, 쓴웃음, 어이상실 - 복합감정 3종셋트가 마구 분출...

 

정말 해결책이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다.

최소한 비판적이고 독립적인 전문가 그룹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금융패밀리의 결속은 너무도 단단하고, 그에 비해 비판자의 목소리는 너무도 미미했다.

 

영화 보는 내내, 이게 그냥 영화 속 이야기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기업자문 활동으로 엄청난 돈을 챙긴 후 대학으로 돌아온 경제학자의 인터뷰 배경으로,

"Beyond greed and fear" 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다...

사실, 화이트칼라 사기꾼들의 탐욕과 두려움이 일반인만큼만 되었어도 사건이 이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4.

맥락은 다르지만, 즐거움을 준 영화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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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중요한 주인공들 다 날려버리고 (자비에 교수 산산조각, 진 사망, 미스틱과 로그 보통인간 회귀)

매그니토를 우스꽝스러운 미치광이 할배로 만들어버리면서 시리즈를 개차반으로 망가뜨렸던 3편의 후유증이 겨우 사라져가는 시점에서,

킥 애스의 감독 매튜 본이 시기적절하게 (!!!) 시리즈를 다시 부활시켜주었다네....

타자성과 정체성에 대한 초기의 문제의식... 근본도 없는 냉전적 갈등....

어린 엑스맨들의 풋풋한 우정과 치기...

무엇보다 [어바웃 어 보이] 에서 많은 이를 사로잡았던 꼬마 니콜라스 홀트의 의젓한 모습...

그리고, 맥어보이와 파스빈더.... 오호... 결코 패트릭 슈튜어트와 이언 맥컬런에 뒤지지 않아.......

 

이 정도 했는데, 다음 편 또 망쳐버리면 진짜 화낼껴...

크리스토퍼 놀란이 했듯.. 이제 본편을 보여주오, 매튜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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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의적인 US: 우리들? USA? [Crazy like US]

읽은지 꽤나 오래되었는데, 되돌아볼 시간이 없어서 책상위에 한참이나 굴러다녔다.

원제는 [Crazy Like Us: Globalization of American Psyche]

여기에서 US 는 우리들일수도 있고 United States (of America)일수도 있다.

한국어 부제처럼 그들이 맥도날드 뿐 아니라 우울증도 팔았다는, 즉 미국적 심리의 세계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 그들은 맥도날드만이 아니라 우울증도 팔았다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 그들은 맥도날드만이 아니라 우울증도 팔았다
에단 와터스
아카이브, 2011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생물학적이지만 사회적이고,

심지어 생물학적인 부분조차도 역시 '수용가능한 ' 혹은 '치료가 필요한'  심지어 '사회가 부담가능한' 이라는 잣대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이 구분된다는 점에서 볼 때, 섭식장애,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의 전 지구적 유행 앞에서 사실은 심각한 의심을 했어야 했다.

 

한편으로는 생물학적 환원론을, 다른 한편으로 의료화 (medicalization) 을 경계한다고 자부하면서도 이런 문제들을 그동안 숙고하지 못했던 것은  여전히 서양의학/과학기술 트레이닝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어서인것같다.

저자가 서문에서 "이렇게 서로 다른 정신병 개념과 다양한 치료법이 사라지는 현상에 대해, 우리는 생물학적 다양성이 사라지는 현상을 대할때처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한다" 는 말에 심하게 공감한다.

 

#.1.

 

홍콩의 거식증 인식과 사회적 유행의 진화과정에 대한 고찰은 self-fulfilling prophecy로 작동하는 정신적, 심리적 고통의 사회화 과정을 잘 드러낸다.

 

"... 그래서 문화적 틀이 없을 때는 소수의 환자들이 진기한 행동을 보였지만, 거식증이나 하지마비 같은 새로운 히스테리성 증상이 널리 채택되면 '그로 인해' 그 장상이나 장애가 공식적으로 '발견'되고 문화적인 피드백이 이루어진다".

"... 서양식 진단을 수입함으로써 환자들과 의사들이 그 질환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질병에 대한 경험자체를 변화시켰다...."

".. 우리의 서양식 성인 개념은 개인의 정체성과 자급자족에 높은 가치를 두고, 그에 따라 서양 청소년의 질풍노도는 대부분 독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실랑이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많은 전통문화에서, 특히 아시아에서 개인의 독립은 성년의 목표가 아니다..."..

어쩌면 지금과 같은 홍콩의 거식증은 발견되었다기보다 차라리 인위적으로 퍼뜨려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수도 있겠다... 한국은 어떨까?

 

 

#2.

 

스리랑카의 쓰나미 재해 이후, PTSD 라는 2차 쓰나미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고자 달려간 미국의 수많은 심리전문가와 상담사들의 활동에 대한 묘사는 resilience 혹은 회복력이라는 현지인들의 고유한 속성에 대한 무지, 문화인류학적으로 깊이있는 상호소통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통역요원조차 갖추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지역에 '짐을 풀은' 공급자 마인드 혹은 계몽주의적 (어쩌면 폭력적인) 시각을 전형적으로 잘 드러낸다. "... 이렇게 볼 때 누구보다도 취약한 사람은 폭력과 빈곤을 직접 경험해본 적이 별로 없는 사회와 문화권에서 온 서양상담사들이었다"라는 표현은 이 상황이 갖는 아이러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암암리에 현지의 견해들과 관습들이 열등하다는 파괴적인 메시지가 전달된다. 저자들의 현장 경험으로 볼 때 이 메시지는 식민주의를 통해 이식된 열등감을 강화시키고, 그들 자신의 긍정적인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는 현지 주민들의 믿음을 약화시킬 수 있다."

 

또다른 의료인류학자의 이야기도 경청할만하다. "세계적으로 재난의 대부분은 서양 바깥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재난지역으로 가서 그들의 반응을 병으로 취급한다. 우리는 '당신들은 이 상황에서 생존하는 법을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그들의 문화적 서사들을 제거하고 우리의 것을 부과한다. 이는 사람을 비인간화하는 끔찍한 예다."

 

#3.

 

정신의학자/심리학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정신질환자의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타파해고자 노력했던 이들은 정신질환이 다른 신체질환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저 특정한 유전적 기질, 화학적 불균형, 뇌질환이 문제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인슐린이 작동 안하면 당뇨병이 생기는 것처럼, 뇌의 특정화학물질이 제대로 작동 못해서 이런 일이 생길 뿐이다. 그러니 색안경을 쓰고 이들을 쳐다보지 말아라....

하지만 이러한 생물학적 설명이 오히려 일반인들로 하여금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거리를 멀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은 '그럼 어째야 하나'는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나도 그래왔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하면서, 편견과 심리적 장벽 때문에 정신과 진료를 꺼려하는 이들에게 전문적인 의료서비스 받기를 독려했던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사랑에 빠지거나, 질투에 사로잡히거나, 아이와 놀면서 기쁨을 느끼거나, 종교적 희열을 경험할 때 우리는 친구들에게 그경험을 뇌 화학물질들의 행복한 또는 불행한 합류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신질환자에게 부과되는 사회적 낙인을 줄이려 할 때마다 뇌 화학작용 이야기는 계속 이용될 것이다. 환자 개인의 지각을 축소하고, 그 지각이 '그저 화학작용'이라는 관념을 강조하는 것보다 무엇이 더 치욕스러울 수 있을까?"

 

#4.

 

"일본의 높은 자살률은 우울증 치료가 부족함을 가리키는 증거라는 것, 서양의 SSRI들은 과학적으로 진보했다고 입증된 치료제라는 것, 1차진료의사들은 정신질환 진단을 도와주는 간단한 3분 검사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 우울증의 기준틀에 맞지 않는 환자라도 아픈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 일본인들은 업무 및 산업화와 관련된 사회적 스트레스를 SSRI로 치료해야 할 우울증의 조짐으로 재고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

이는 GSK가 일본에 SSRI를 출시하기에 앞서 진행한 전문가 워크샵에서 논의된 주제들이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제약회사의 메가마케팅을 통해 적극적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은 (짐작은 했지만)  정말 마음 편치 않은 일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제품이 효과적이라고 확신하는 것같았고, 어느 누구라도 그것들의 가치를 의심하면 당황했다.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의약산업은 자신의 마케팅 활동과 윤리적인 목표를 잘 연결시킨다. 그 결과 질병을 '기회'로 여기는 이윤추구 계획과, 인류의 건강이 그 (화학물질들의) 균형에 달려있다는 윤리적 관점이 신랑과 신부처럼 결합한다. 이 때문에 대단히 공격적인 마케팅 담당자들이라도 자신이 공익을 위해 봉사한다고 믿게 된다."

 

#5.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이 '에이즈라는 실체는 존재하지않는다. 서구 강대국의 음모일 뿐이다"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강조하는 것은 성찰과 회의, 사회적/역사적 맥락에 근거해서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고 도움을 주자는 것이다. 섭식장애 전문가로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한 교수는 그의 연구가 "그가 뿌리뽑기를 원하는 바로 그 질병을 잠재적으로 전파해왔다고 걱정한 적은 없냐"는 질문에 침울한 긍정의 답변을 보낸다.

 

어떤 정신질환, 혹은 '질환'이라 명명되지 않은 어떤 심리적 고통을 인식하고 도움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서양의학 - 근대 서구사회라는 매우 구체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생물학이자 사회학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틀에 맞추어 타인의 고통을 재단하려 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특히 편견을 줄이기 위해 정신질환은 온전히 생물학적인 것으로 만들고, 누구나 앓을 수 있는 가벼운 질환으로 '만연'시키는 것이 과연 긍정적이기만 한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

 

최근에 SERI에서 스트레스 산업의 시장규모가 수 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비관인지 낙관인지 모를 보고서를 내놓았고, 언론들은 일제히 대서특필했다. GDP 올라가서 누구는 참 좋겠다...

날로 스트레스가 커지는게 우리사회라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 만일 인구집단 내에 심적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이 비현실적인 사회적 요구라면 왜 개인이 알약을 복용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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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조언하는 책들

좀 있다 대구 출장가야 하는데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모닝포스트....

 

#1. < 사막별 여행자 >

 

법정 스님의 추천 도서 목록에서 발견한 책이다

사막별 여행자
사막별 여행자
무사 앗사리드
문학의숲, 2007

 

이 책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는게, 

한편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쫌 맘 불편한 구석도 있다.

일단 모티브 자체는 아름답고 놀랍다.

사막의 원주민 투와그레 부족 소년이 우연히 서구 관광객과 마주치는데

그들은 무려 '어린왕자'를 흘리고 떠난다.

그것을 읽게 된 소년은 완전 깜놀.....!!!

소년은, 이제, 사막에 어린 왕자가 혼자 남겨졌던 것은 아니라고,

우리가 있었다고 이야기해주러 프랑스로 떠난다.

그 곳에서 소위 '물질문명'을 체험하면서,

투와그레 부족의 영혼충만한 삶에 비추어 도시인들에게 살아가는 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전한다.... 

물론, 이 책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소년의 경험담이 작가의 실제 인생사라는 점이다.

 

나이 (가 성숙의 기준은 아니지만)에 어울리지 않게 담담하고 깊이 있는 성찰이 담긴 잠언 같은 이 글들은, 수많은 차도남 차도녀들의 삶을 뒤흔들고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주엇을 것이다. 

 

이를테면

 

"문명세계의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시간을 잃어버린다고 여긴다. 그러나 우리 투아레그인들은 다르다. 우리에게 있어 시간은 잃거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살아가는' 것이다."

 

"문명국가들에서는 자기 존재의 유일함이 지니는 가치 안에서 비상하는 열망이 아니라, 자기가 소유하지 못한 것을 '이상'이라 부른다"

 

"도망치는 삶은 여행하지 못한다"

 

"여행이란 많은 타인들을 통과하면서 자신에게서 자신으로 떠나는 거야"

 

하지만, 내가 불편했던 건 이런 거다.

mother nature 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목가적 유토피아를 되뇌이는 모습? 도시는 이러저러한데 비해, 사막과 자연은 이러저러하게 다르고, 또 문명인의 삶은 이렇게 각박한데, 원주민/투와그레족의 삶은 이렇게 풍성해.... 도시인들은 왜 이렇게 살지 못할까, 왜 이렇게 삶을 바라보지 못할까....

이건 뭐,  "나는 이런데 너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니? 생각을 좀 바꿔봐....  "하는 계몽의 또다른 버전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

 

더구나 저자가 체험하지 못했던, 계급적대, 민족/국가 혹은 봉건주의/가부장주의의 폭력성이라는 역사적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대인들의 '뿌리없는' 삶을 비판하는 대목은 안타깝기마저 하다. 가족, 출신배경, 민족/국가를 떠나 독립된 한 주체로서 '개인'을 인정받는 것이 많은 사회들에서, 특히 여성들과 낮은 신분을 가진 자들에게서 어떤 의미였는지 저자는 알고 있는 것일까?

 

"...나로서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의 가족이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는 한은 누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가족이다. 가족은 우리의 반석이다..."

"... 우리의 힘은 우리가 태어난 곳과 민족의 역사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조상을 존경하고 찬미하기에 우리 자신을 믿는다. 과거의 자신과 현재에 자기가 하고 있는 일로 자신을 정의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뿌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고독한 삶임에 틀림없는 듯했다..."

"... 사람들이 더이상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란 끔찍하다! 우리 고장에서는 수천의 사람들이 프랑스의 최저임금보다도 적은 돈을 벌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한다..."

 

이 책이 각박한 도시인들의 삶에 한줄기 바람같은 위안과 휴식을 주었다면, 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기는 할 것 같다.

하지만, 역사적/사회적 맥락 없는 '아름다운' 잠언으로는 2%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미덕은... wandering spirit 을 다시 충동질했다는 것이다... ㅡ.ㅡ

 

#2. <꾸뻬 씨의 행복 여행>

 

꾸뻬 씨의 행복 여행
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오래된미래, 2004

 

예전에 읽었던 에릭 와이너 <행복의 지도>와 비슷한 구석이 있으면서 좀더 가벼운, 그리고 심지어 '소설'이다.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자신을 모사한 주인공을 내세워 행복의 조건들을 찾아나선 여행담...

귀엽고 (?) 가벼운 문장들이지만 곰곰이 생각하면서 읽을 거리를 던져준다. (구태의연한 클리세들이 없다고는 말 못함... ㅡ.ㅡ)

 

주인공이 소소한, 때로는 엄청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매 순간 기록한 행복의 조건 스무나믄 가지들은 충분히 공감이 가는데, 인간의 행복세계를 탐구하는 연구자이자 생활인으로서 가장 와닿는 것은 이런 거다...

행복한가 라고 다른 사람한테 질문할 때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 질문은 때로 사람들의 마음을 심하게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지적 말이다....  이런 시덥잖은 (?) 질문에 미묘하게 흔들리는 눈빛들을 많이 보았더랬다.....

 

그리고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이라는 것... 

물론 이것이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유예하지 않는 삶의 중요성, 수많은 순간에서 trade-off가 존재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이 역시, 읽고 나니 길떠남을 부추겼다.

슬슬... 준비를 해볼 시간이 된 것일까? 흠흠흠....

 

행복의 지도 -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
행복의 지도 -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
에릭 와이너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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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대해서라면...

#1.

 

허영만 화백의 <식객>에서 자운선생이 오랜만에 마주친 성찬을 야단치는 장면이 나온다.

 

"차가 막혀서 늦었다고 말하지 마라!

  바빠서 연락 못했다고 말하지 마라!

  요즘엔 차 안 막히는 날이 없고 바쁘지 않은 날이 없는데 그건 핑게가 아니야 "

 

맞아....ㅡ.ㅡ

 

#2.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세프>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황소자리, 2004

 

류비셰프처럼 사는게 정말 좋은 건지는 모르겠당...

시간을 굳이 '정복'하는 것이 행복의 요건인거 같지는 않은데, 

또다른 한편으로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허랑방탕하게 지내는 스스로를 위한 변명으로 쓰이는 거 같아, 가끔씩 '시간'의 존재방식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학자, 그것도 짧은 시간 동안 그러한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생각을 하지 않는 학자는 학자로서 아무런 가망도 없습니다. "

헉.......................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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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성을 전복하는 영화 두 편

최근에 본 영화 두 편, 외양은 엄청나게 다르지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기존의 전형성을 전복하는데다,

바탕에 '소통과 교감'의 중요성을 강조한게 아닐까 싶다. 물론 전적으로 내 생각...

 

#1. <황당한 외계인 폴> 2011년 (그렉 모폴라 감독)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근자에 본 영화들 중에 가장 발랄하고 웃겼던 작품

세 주인공 (사이먼 페그, 닉 프로스트, 그리고 폴 역의 세스 로건)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단다.

 

외계인 폴은, 한편으로 우리 통념이랑 너무 똑같아서 ('기존' 외계인과 똑같은 외모, 그리고 여타의 영화에서처럼 영어를 쓴다는 ㅋㅋ) 미지와의 조우를 기다리던 자에게 한없는 실망과 허탈함을 안겨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통념이랑 너무 달라서 (너무 터프하고 외설적이야 ㅋㅋ) 사람들을 식겁하게 만든다.

그동안 인구에 회자되던 모든 외계인 괴담들을 총망라했고 (이를테면 항문에 probe를 집어넣는다, 앨비스 프레슬리 살아있다 등등) 또 SF 를 둘러싼 독특한 팬덤을 아주 재간있게 비틀어놓은지라 (코믹콘에서 수여되는 상이 Hugo와 쌍벽을 이루는 Nebular award 가 아니라 Nebulon award, X-file 의 멀더캐릭터나 스필버그 ET 컨셉은 모두 폴이 조언해준 것이었어!!!) SF 를 좋아하는 자라면 정말 즐거워하며 볼 수 있는 영화...

심지어 마지막에 등장하는 우리 시고니 위버 왕언니... ㅋㅋㅋ

 

정부는 요원을 통해 폴을 추적하고,

우연하게 이들과 동행이 된 애꾸눈 처녀 때문에

복음주의 광신도 아버지가 이들을 추적하고,

정규직 요원자리를 차지하고픈 꼬붕 요원들이 다시 또 이들을 추적하고...

엄청 정신없는 추적극과 대소동 속에서

은근히 드러나는 것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긍정하는 따뜻한 마음..... 이라고 하면 내가 오바쟁이?

 

 

#2. <파수꾼> 2011년 (윤성현 감독)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보는 내내, 전형성에 길들여진 나의 무의식적 통념과 배반이 이어졌다.

이건 나만이 아니라 같이 본 도끼도 호소한 증상이다.

 

첨에는 누가 죽은 줄 몰랐다,

다음에는 괴롭힘을 당하던 희준이가 죽은 줄 알았다,

그리고는 기태 아버지가 아이들을 쫓아다니면서 무언가 어두운 음모가 밝혀질 줄 알았다.

아이들의 어정쩡한 말투에서 분명 무언가를 숨긴다고 생각했다.

기태가 다른 친구들로부터 '복수' 의 징벌을 당한거라고 믿었었다.

 

동윤이와 기태와 결정적으로 갈라서는 순간에도

동윤이의 여친 세정이에게 기태 일당이 무슨 대단한 해꼬지라도 한 줄 알았다.

심지어 집단성폭행이라도 한게 아닌가 의심했다.

 

동윤과 기태가 밤을 지새우며 수다를 떨 때도,

'나도 한 잔 줘' 하는 대사에 당연히 술을 줄 것으로 알았다.

물병을 보고도 믿지 못해, 저것들이 물병에 술을 따랐나 했다.

애들이 쌈박질 하는 장면에서도 체인이나 주머니칼 정도는 나올 줄 알았다.

근데 그냥 치고받고 싸우기만 했다.

 

나보다 한술 더뜬 도끼는 이 남자아이들이 서로 사귀는 줄 알았단다... ㅡ.ㅡ

그래서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한 아이가 세상을 뜨는...............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들어맞지 않았다...

아이들의 파국은 그저 사소한 오해와 미숙한 대화, 상처받은 여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우리는 영화적인 '드라마'와 '스펙타클'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 것들은 차마 영화적 갈등의 요소가 될 거라고 미처 예상치 못했던 거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떠오른 한 마디는 "애들은 애들이다" ....

내가 너무 때묻은 존재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니... ㅡ.ㅡ

 

겉모습은 마초에 야생마 같았지만

아이들의 속마음은 너무 여렸고, 스스로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알지 못했다.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도 모호할 뿐더러

살아남은 아이들이 기태 아버지를 만나 영문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던 것은

'저런 영악한 놈들!'이 아니라 정말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 선생이나 부모는 그저 주변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이게 현실에서도 사실이리라.

파수꾼 한명 없는 비정한 안개 속 세계에 던져진 아이들.....

서로라도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으면 좋았으련만..............

 

영화는 신인감독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짜임새가 빼어났고,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기태 역을 맡은 배우는 박해일 동생인 줄 알았음)

감독과 배우들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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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이야기 [휴전]

hongsili님의 [이것이 인간인가...] 에 관련된 글.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포로수용소에서의 생활은 끝나나 싶었지만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조차 순탄치는 않았다.

세계 정치라는, 도대체 우리네 일상과는 닿아있지 않을 법한 그 거대한 질서가

그들의 귀향길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행군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역사의 회오리에 휘말린 자들,

그들 개개인이 경험한 '비일상'을 어떻게 스스로에게 또 타인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휴전
휴전
프리모 레비
돌베개, 2010

 

 

전편 [이것이 인간인가] 와 마찬가지로,

책을 읽으면서, 또 읽고 나서 생겨나는 감정은 그야말로  '몸둘바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는 경험 속에서 깨달은  '인간'으로서의 본원적 욕구와 고유한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 하릴없고 상대적으로 건강하게 보낸, 그래서 가슴속에 스며드는 향수로 가득한 두 달이었다.

향수는 깨어지기 쉽고 섬세하며,

본질적으로 다른 고통이다.

구타와 추위, 배고픔, 공포, 박탈, 질병 같은,

우리가 그 때까지 겪었던 고통들보다는 더 친밀하고 인간적인 고통이다.

맑고 깨끗한 고통이다.

그러나 절박한 고통이다..."

 

물론, 전작과 다르게 문득문득 기지와 유쾌함이 발휘되기도 한다.

이전 작품이 '증언'이라는 시급한 복무에 따라 폭풍처럼 쓰여졌다면,

이 책은 무려 20년이 흐른 후에 어쩌면 (이런 말을 써도 될는지 모르지만) 관조의 시선으로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찾은 후에서 더욱 차분하게 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전자가 바닥을 알 수 없는 나락에 대한 기록이라면,

과정이 어쨌든 이책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 수 있기에 그런 것이기도 할게다.

 

제각기 개성이 뚜렷한, 위기 상황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변이를 보이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무척 '재미있다'

심지어 수용소를 벗어나 벌거벗은 수렵채집인의 생활을 하는 한 포로의 기술발전사(?)를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무거운 마음 중에도 웃지 않을 수가 없다.

"... 그렇더라도 그 또한 사람의 아들이었으므로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지식과 덕을 추구했고

매일같이 자신의 기술과 도구를 단련했다.

그는 칼을 제작했고 그런 다음 창과 도끼도 만들었다.

시간이 있었다면 농업과 목축 기술도 재발견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런 건 원래 더글라스 아담스 전공인데...

러시아 수용소에서 겪은 영화상영의 일화는 또 어찌나 황당하던지...

잠시 열차가 정차한 순간 물을 길러 갔다가 차를 놓칠뻔한 이야기도 요즘 유머 게시판 수준이다.

 

그렇다고, 옮긴이가 후기에 쓴 것처럼 이 책이 그렇게 '유머 가득한 시선'이라고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독자들로 하여금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성찰에 동참하게 했다는 해설도 도저히 동의하기 어렵다.

 

프리모 레비는 차분하지만 끈질기게. 인간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 질문의 무거움은, 앞서의 유쾌함과 생동감으로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 모든 역경을 거치고 마침내 오른 거대한 귀환 열차는 비엔나를 거친다.

 

"우리는 패배한 독일인들과 파괴된 비엔나를 보면서

아무런 기쁨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가슴 아팠다.

연민이 아니라 좀더 폭넓은 의미의 아픔이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비참함과 혼동되는, 가혹하고 곧 닥쳐올 듯한 느낌,

회복될 수 없고 결정적이고 도처에 있는 병의 느낌,

유럽의, 세계의 뱃속에 궤양처럼,

미래 재앙의 씨앗처럼 자리잡은 병마의 느낌과 혼동되는 아픔이었다."

 

열차는 오스트리아 국경을 지나 다시 뮌헨에 정차한다.

 

"... 처음으로 우리의 발밑에 독일의, 상 슐레지안이나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바로 독일의 한 자락을 느낀다는 사실은

피곤함에 더하여, 견딜 수없는 초조함과 좌절과 긴장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심정을 한층 가중시켰다.

우리는 독일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엄청난 것들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독일인 각각은 우리에게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결산을 해야 할,

체스 선수들이 경기가 끝날 때 그러는 것처럼 질문하고 설명하고 논평해야 할 절박함을 느꼈다.

아우슈비츠에 대해, 자기집 문으로부터 한걸음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상적으로 자행된 조용한 대학살에 대해 '그들'은 알고 있었던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길을 가고 집으로 돌아와 자기 자식들을 바라보고

교회의 문턱을 넘어 들어갈 수 있었단 말인가?

만약 아니라면 그들은 경건하게 우리에게서,

나에게서 모든 것을 당장 들어야 하고 배워야 한다. 그래야 한다.

나는 내 팔에 문신으로 새겨진 숫자가 쓰라린 상처처럼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을 들었다.

 

또한번 우리의 열차가 좌초하여 누워있는 역 주변,

잔해로 가득한 뮌헨의 거리들을 배회하면서

나는 마치 각자가 내게 무언가를 갚아야 하지만 갚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지불 불능의 채무자 무리들 사이를 헤매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들 사이에, 아그라만테의 진영에, '지배민족'의 한가운데에 나는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적었고, 많은 이들이 불구자였고,

많은 이들이 우리처럼 누더기를 입고 있었다.

그들 각자가 우리에게 당연히 질문을 할 것이라고,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얼굴에서 읽을 것이라고,

겸손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경청할 것이라고 나는 기대했다.

그러나 아무도 우리의 눈을 쳐다보지 않았고

아무도 대면해서 이야기하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귀머거리, 벙어리에 장님이었다.

의도적인 무지의 요새 속에 있는 양 자신들의 폐허 속에 피신해 방어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도 강하고, 아직도 증오와 멸시를 할 수 있는,

오만과 죄의 그 오래된 매듭에 묶인 포로들이었다..."

 

나는 웬지 이 심정을 스스로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만 같다.

실제로는 이런 경험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이건 인간의 보편적인 도덕적 감수성을 건드리는 프리모 레비의 탁월한 통찰력과

그에 걸맞는 담백한 글쓰기 덕분일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영성 체험' (?) 때문에 사람이 책을 읽는 게 아닌가 싶다.

작년이 존 버거의 차분함에 경도되었던 해라면,

올해는 단연 프리모 레비의 '깊이'에 몰두하는 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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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들

엄청 웃긴데, 사실은 슬픈 내용이고,

또 가슴이 무너질듯 하지만, 주저앉지만은 않게 만드는 기묘한 두 권의 책 이야기다

 

#1. 더글라스 아담스, 마크 카워다인 [ 마지막 기회라니?]

 

"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는데,

나는 이것 말고 더 필요한 이유는 없다고 믿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코뿔소와 앵무새와 카카포와 돌고래를 지키는 데

인생을 거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그들이 없으면 이 세상은 더 가난하고 더 암울하고

더 쓸쓸한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마지막 기회라니? - 20주년 개정판
마지막 기회라니? - 20주년 개정판
더글러스 애덤스.마크 카워다인
홍시, 2010

그러게나 말이다.

 

오랜만에 독특한 그의 글을 읽자니,

사라져버린 도도새만큼이나 아쉬운 것은

더글라스 아담스 역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리차드 도킨스도 책머리 추천사에서 이 점을 대단히 아쉬워하고 있다.

 

더글라스 아담스가 사라져서,

나에게 지구는 조금 더  가난하고, 암울하고, 쓸쓸한 곳이 되었다.  ㅜ.ㅜ

 

#2. 프리모 레비 [ 지금이 아니면 언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로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내팽겨쳐진 삶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 작품보다  [태백산맥]을 더 꼽고 싶다.

정서적 거리가 가깝기도 하거니와

(분량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으나) 그 생생함과 짜임새있는 플롯에서 훨씬 낫다는 생각이...

사실, 상당 부분 사실에 기초한 자전적 소설을 두고

플롯이니, 등장인물의 속성들을 논하는게 좀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는데...)

그래도 이것이 르포가 아니라 소설인 이상,

아쉬운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책이 안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노마드북스, 2010

 

" 난 책 없는 빨치산 배낭은

실탄 없는 총이나 조종사 없는 전투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네.

그런 자들은 좋은 세상이 와도

살 자격이 없는 인간 쓰레기들이지.

그리고 책은 읽고 난 다음엔 반드시 덮게.

모든 길은 책 바깥에 있으니까."

 

시오니즘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곳곳에서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유태인 빨치산 대장 게달레는 이야기한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들이 척박한 팔레스타인에 정착해

사막에 오렌지와 올리브 나무를 심는 자유로운 삶의 공동체를 희망하고 있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분명히, 빨치산 여전사 라인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동료 포로들의 학살 '작업'에 참여한

유태인 포로들을 비난한다.

".. 도대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뭐죠? ... 아무리 하늘같은 상관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그게 잘못된 명령이면 당연히 거역해야죠. 왜냐하면 인간은 바로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니까요.

그런데 저 포로들은 자기들이 살기 위해 그런 생각을 모조리 유보해버린거예요.

무뇌아나 짐승이 됐단 말예요!"

 

현대사에서 가장 큰 아이러니 중 하나는

맹목적 폭력의 희생자였던 유태인들이,

희생의 역사를 전가의 보도 삼아 듣도보도 못한 깡패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인 것 같다.

자기들이 살기 위해서...

 

오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벌이는 짓거리들을 떠올리면, 

그저 땅한뙈기 얻어서 오렌지, 올리브 심는게 소원이라던 소박한 유태인들의 모습이

마냥 따뜻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시오니즘 이야기는 이 책의 아주 작은 부분이다.

어둡고 혼돈으로 가득찬 시절에,

과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핵심이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작 [이것이 인간인가?] 에서 했던 질문이 이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살아줄 것인가?

내가 또한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길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

 

이보다 더 폐부를 찌르는 '잠언'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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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책, 애매한 책...

도서관 반납 때문에 허둥지둥 정리...

사무실에도 몇 가지 정리할 책들이 곱게 쌓여있는디...

기록이 없으면 기억도 없어지는 처참한 현실을 몇 번 경험하고 짧게라도 독후감을 꼭 남겨두려 하는데 이것도 쉽지는 않아...

 

 

#1. 테리 이글턴 [반대자의 초상]

 

반대자의 초상 - 지젝부터 베컴까지 삐딱하게 읽는 서구 지성사
반대자의 초상 - 지젝부터 베컴까지 삐딱하게 읽는 서구 지성사
테리 이글턴
이매진, 2010

 


언론의 리뷰가 하도 좋길래 빌렸는데, 황새 쫓아가려다 다리 찣어진 뱁새 꼴이랄까...
비평 대상으로 삼고 있는 대상과 배경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어서 도무지.. ㅡ.ㅡ


딱히 텍스트를 구구절절 참조한 것만은 아니기에
꼼꼼하게 읽어보면 굳이 비평 대상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좋았겠지만

일단 흥미가 떨어져서리....

그나마 백만년 전에 세미나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

재작년에나 읽었던 데이비드 하비에 대한 이야기 정도만 어렵사리 이해...
저작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워낙 유명하고 난해한 인용문들 때문에 이름만 알고 있는 스피박에 대한 비평 약간 이해... 그녀의 글이 지나치게 어렵다는 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 최대 수확이랄까...

한 10년 지나도 이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뭐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고... (여우와 신포도)

한 가지 궁금점... 이 책에 대한 호평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다들 참 유식하구나.... ㅡ.ㅡ
 

#2. 문제적 저작 [세계시민주의]

세계시민주의 - 이방인들의 세계를 위한 윤리학
세계시민주의 - 이방인들의 세계를 위한 윤리학
콰메 앤터니 애피아
바이북스, 2008

 

"시민"이 스스로 충성을 맹세한 특정 폴리스에 속한다는 것에 비해,
"세계시민주의"는 코스모스 (우주)에 속함으로써 모든 시민이 여러 공동체 중 하나에 속해야 한다는 전통적 관점을 거부... !

내가 지향하는 '나라없는 사람' (보네커트의 에세이집 제목이자, 아인슈타인이 실제로 10대에 성취했던 놀라운 업적)에 대한 설명과 사람들의 궁금함, 고민의 지점들을 차분히 설명해주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


어쩌면 가장 기본적 의심은

추상적 개념인 인간의 이름으로 구체적 대상에 대한 충성과 애착을 포기할 수 있냐는 것..

쫌 황당한 에피소드라면,

'인류의 친구이지만 그와 관계있던 모든 사람들의 적'이라고 평가받은 미라보는
'인간의 벗'을 집필하느라 아들이 투옥되는 걸 알지 못했고

연민을 인간의 본성으로 이야기한
루소는 다섯 아들을 고아원으로... ㅡ.ㅡ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에 대한 철저한 무지는 강자의 특성이라는 말에 절대 동의!!!

 

윤리와 도덕에 대한 상대주의가 진리라면,

결국 '내가 서 있는 곳에서는 내가 옳다. 그렇지만 네가 서 있는 곳에서는 네가 옳다'로 끝나고

그러면 대화는 불가능해짐

흔히 상대주의가 우리를 관용으로 이끌 것이라 생각하지만
서로에게 배울 수 없다면 대화는 무의미하고

상대주의는 대화를 장려하기보다 침묵하게 만든다는데도 역시 동의!

우리가 하는 웬갖 특이한 습속들의 이유는 어떤 특별한 근거가 있다기보다

대부분 우리가 '평소에 하는 일이기 때문'
이를테면 동성애자에 대한 관용성이 높아진 것은 합리적인 견해를 찾거나 사회적으로 합의가 성숙해졌다기보다 단순히 익숙해졌기 때문일 수 있음...
이는 반드시 뭔가 합의에 도달해야 서로를 인정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줌.

또 일치하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시사...


인류학의 교훈이라면,

이방인이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존재라는 점을 인지하고

사회적 삶을 공유하면 호불호를 떠나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

나의 진리를 세계 보편으로 만들겠다는 보편주의의 위험성 지적에는 동의.
그리고 단 하나의 보편적 진리라면

모든 인간은 다른 모든 인간에 대한 의무가 있다는 것... . 즉 모든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 모든 차분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불편한 지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의 근원이

율법에 철저한 무슬림과 유대인 모두 예루살렘성전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다는 것 때문?
장난하셔???


마찬가지로, 문화제국주의가 주변부 사람들의 의식을 구성한다는 담론은 타자를 무지렁이로 취급한다는 비판에 일정부분 동의하지만, 만일 그러한 영향이 전혀 없다면 다국적 기업들은 왜 그리 결사적으로 주변부 시장 공략에 나서나? 맥도널드가 저개발 국에서 서구적이라는 이유로 인기를 끄는게, 기업 본사에서조차 결정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것이 과연 적절한 설명?

사람들은 알아서 재량껏 상품을 고르고 산다고???

.
또 국가성립 100년밖에 안 된 나이지리아,

아무 기여한 것 없는 이집트 후손들이 조상들의 문화유적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는게 어불성설이라는 이야기는 미치겠음...
모든 유물을 돌려받은 현실적인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약탈당한 유물이 반환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도대체 뭔 소리임?
특히나 식민지배와 관련된 약탈과 착취를 이리 간단하게 말해도 되는 것이여?

한편 '무슬림이 아닌 우리같은 사람들이...'라는 표현 자체가 무슬림을 타자화...

대부분의 내용이 성찰과 깊은 윤리적 기반을 갖고 있는데 비해

막상 정치경제학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어찌나 리버럴하신지....

기묘하게 흥미롭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한.. 애매한 책이라는 생각...

 

이런 건 여럿이 함께 읽고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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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도마뱀과 기이한 경제학자

내 소중한 뇌의 시냅스들이 빠찌직 거리며 타들어가고 있다........................ㅡ.ㅡ

 

옴짝달싹할 수 없는 일정 속에 지하철 독서시간에만, 나는 자유인일세... ㅜ.ㅜ

 

#. 기묘한 도마뱀이 벌인 떠들썩한 소동 이야기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크리스토퍼 무어
푸른숲, 2010

 

웃겨 죽어......ㅋㅋㅋ

이 황당무계한 소동극은 대체 어쩌란 말여......(하지만 은근히 '사상자'는 많아...)

발랄한 상상력과, 그에 걸맞는 또 발랄한 문체에 반했음.

짜임새도 좋고, 보네거트 할배만큼 시니컬하지는 않지만 과학적 사실들은 은근 정교하고 시선은 냉철...

다른 책도 빌려봐야겠쓰.... 이런 책은 뇌에 주는 선물....

 

#. 가장 재미난 경제학  이야기

 

세속의 철학자들 - 위대한 경제사상가들의 생애, 시대와 아이디어
세속의 철학자들 - 위대한 경제사상가들의 생애, 시대와 아이디어
로버트 하일브로너
이마고, 2008

 

원래 껍데기가 저렇게 요란 뻑쩍지근하게 생겼구나...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회색 하드커버만 남아 있어서... 원....

뭐 경제관련 책은 별로 읽어본 것도 없긴 하지만... 이렇게 재미난 책은 처음!!!

 

칼 폴라니가 오늘날과 같은 시장 질서가 유구한 전통을 가진 것이 아님을 강조했듯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이윤 추구의 동기는 겨우 현대인과 함께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지적으로부터 글을 시작...

 

하일브로너는 대표적인 경제학자들의 생애와 그들 사상의 핵심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개괄하며

경제학이란 학문의 본성과 진화를 논하고 있다.

경제사상사라고 분류되지만, 말하자면 이론들에 대한 이론 - 메타적 접근이라고 보면 되겠다.

각 이론들이 옳았냐, 혹은 본인이 동의하느냐가 아니라

어떠한 역사적 맥락에서 그러한 사상이 진화했고

그것이 당대에 혹은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그런데... 이렇게 써놓고 보면 엄청 어렵고 딱딱할 것 같은 이 내용들을

너무너무 재미있고 눈에 쏙쏙 들어오게 썼더란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건 이런 거다.

현재의 시각으로 완결된 구성물을 이러니 저러니 논평하는게 아니라,

당대의 문제의식 속에서 왜 그러한 사상이 출현했고,

또 그게 당시로서는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거....

지금 보면, 누구나 다 아는 것 같고 혹은 결함투성이의 주장일지라도

그 배경과 속내를 알고 나면 '우와' 하고 정신이 번쩍 드는 것들이 많다.

 

인물에 대한 뒷얘기라면...

 

 

케인즈 잘난 거 소문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진짜 엄청 잘난 인간...

아침에 침대에서 30분씩 투자해서 완전 부자된데다, 가문도 좋아, 예술에도 조예가 깊어..

인품도 훌륭해, 수학도 잘해.... 정치면 정치, 경제면 경제....

제일 황당했던 건 케인즈 자신의 표현

"경제학을 연구하는 데는 전문화된 고도의 재능은 별로 필요하지 않다... 참 쉬운 분야인데도 잘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참 쉬운 분야래.............. 참 쉬운 분야...............

이 한마디로 전세계 수천명의 수재들을 바보 만들었어..... ㅋㅋㅋㅋㅋ

 

공상적 사회주의자들로 오언, 생시몽, 푸리에, 밀 등을 한 챕터에 묶어놓았는데,

생시몽은 공상적 사회주의자 수준이 아니라 완전 사이코같애... ㅡ.ㅡ

가장 지적인 동물 비버가 인간의 자리를 빼앗을 가능성을 고민했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일브로너는 이야기한다

"그들이 주목받아야 할 이유는 그들의 괴벽도 아니고

그들이 제시한 환상의 다채로움가 매력도 아니다.

우리의 주목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의 용기다.

그들의 용기를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지적인 풍토를 파악하고 이해해야만 한다."

그러게.... 막 웃어버리기는 뭐한데... 그래도 비버의 충격은... ㅡ.ㅡ

JS 밀의 아버지 제임스 밀은 아들을 엄청 쪼아대며 공부를 시켰는데,

그래서 1806년에 태어난 JS 밀은 "1809년 (1819년이 아니라)부터 " 그리스어를 배우고

일곱살에는 플라톤을 읽은데다 고전들을 다 떼고 열 두살에는 홉스의 저작들을,

열세살에는 정치경제학의 모든 저작들을 다 읽었단다...

그래서 하일브로너의 논평은 "밀이 훗날 위대한 저서를 저술한 것이 기적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도 어쨌든 심각한 인격장애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마르크스에 대한 마지막 문장들은 이렇다.

" 마르크스는 그를 향해 바쳐진 모든 우상숭배에도 불구하고 분명 무오류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피할 수 없는 어떤 존재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즉 자신이 발견한 사회사상의 대륙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긴 위대한 탐험가인 것이다. 마르크스의 발견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이 대륙을 더 깊숙이 탐험하길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인류를 위해 처음으로 팻말을 꽂은 그 사람에게 존경을 표해야 마땅할 것이다."

 

제목이 '겅제사상사'가 아니라 '세속의 철학자들'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자본주의 태동 이전에는 경제학이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할 필요가 없었고)

사회를 읽어내는 새로운 체계이던 '정치경제학'은 (그래서 '세속의 철학')

빅토리아 시대를 거치면서 '경제학'이 되었고 점점 더 강단으로 이동하여

엄밀한 과학 중심주의로 변해간다.

그리고 1, 2차 대전과 대공황, 세계혁명의 갈등 와중에

이러한 문제에는 아랑곳 없이 (심지어 조절과 균형 이론을 꽃피우며)

강단 경제학은 이상적 가정과 수학적 복잡성 속에서 점점 더 고고하게 '발전'해나간다.

당대의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해결하려던 노력이었던 경제학은 어디로................

 

미국민중사에도 등장하는 아수라 지옥 자본축적기에 벌어진 일들은

참 다시 봐도 믿어지지 않을 지경인데 (이를테면 철도 지배권을 두고 양측 자본가들이 기관차 몰고 서로 돌진하여 승부를 가리는... ㅜ.ㅜ)

이 대혼란의 시대에

"이 모든 것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생각한 게 별로 없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자신을 가르친 유럽 선생들의 발자취를 따라갔고, 미국 사회를 전혀 맞지 않은 틀에 강제로 집어넣었다. 피비린내 나는 돈싸움의 환상적인 게임을 두고 '검약과 축적'의 과정이라고 표현했고, 명백한 사기행위를 '사업'이라 했으며, 그 시대의 금빛 나는 사치를 아무 색깔 없이 '소비'라고 묘사했다."  ---- 

이 구절을 읽으면서 오늘날 한국사회를 떠올리면 내가 오바인가?  한국의 전문가들은 미국 선생들의 발자취를 따라.. 한국 사회에 맞지 않는 틀에.........

 

하일브로너는 경제학을 과학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는 것에 환호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두 가지 들었다. 첫째는, 경제학이 물리학이나 화학과 달리 인간의 행위를 다룬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의지를 가진 인간, 사고하는 인간, 선택하는 인간, 기쁨과 고통을 느끼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두번째는 이런 맥락에서, 인간의 사회생활이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학 - 아니 세속 철학의 유용성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몇 세기 동안 적어도 몇몇 자본주의가  가능한 한 안전하게 나아가는 데 구체적이지는 않아도 비전으로나마 도움을 주는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재탄생하는 세속철학이 가장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자본주의의 사회적 측면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추가 독서 안내글에서 "훌륭한 교과서를 몇 권 독파하려면 낙타와 같은 지구력과 성자와 같은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썼지만, 이 책을 읽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손목의 근력, 인간세상에 대한 호기심만 있으면 충분....

적절한 타이밍에 웃고, 분노하고, 깜짝 놀라며 맞장구 쳐 줄수 있는 센스가 있다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연정이가 경제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하는데 (뭘 알고 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음 ㅋㅋ)

대학에 합격하면 꼭 사주고 싶은 책이다... 

참, 이 책이 사무엘슨의 [경제학] 이래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네....

하일브로너 자신도, 기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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