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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hongsili님의 [폭력의 감소 이해하기1] 에 관련된 글.
아니 글이 길다고 에러가 발생하네??
할 수 없이 두 개로 나눠서 포스팅...
*
인생에서 가장 폭력적인 시기는 청소년기와 청년기가 아니라 'terrible two"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게 맞네...
*
moralization gap: violence triangle of aggressors, victims, and neurtral parties
*
본질적으로, 대뇌는 inner demons 도 아니고 better angels 도 아님. 이들은 폭력을 조장할 수도 억제할 수도 있는 인지적 도구!
* 폭력의 5개 범주
1) practical, instrumental, exploitative, or predatory
탐욕, 야망 같은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채택하며 seeking system에 의해 셋업되고 사람의 지능에 의해 전적으로 가이드 (dorso lateral prefrontal cortext). 공감이나 도덕적 고려 같은 억제 요인이 부재하는 상태이자, 희생자에 대한 적의도 없음
2) dominance
지배 경합에서 즉각적으로 걸려 있는 재화는 '정보'임. 특히 지배는 갱이나 고립된 사업장처럼 소집단 안에서 폭력으로 발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경우 파벌 집단 내부의 위계가 그의 사회적 가치를 전적으로 결정하기 때문. 테스토스테론은 남성들을 보다 공격적으로 만든다기보다, 지배 관련한 도전에 그들을 준비시키는 역할(testosterone fueled dominance or intermale aggression system ). 청년 남성이 더 폭력적이라는 것은 설명이라기보다 기술이며, 남성이 여성보다 왜 더 공격적이도록 진화해왔는지는 분명한 데 비해 왜 청년이 노인 남성보다 더 폭력적인가에 대해서는 적절히 설명하지 못함. 또한 낮은 자존감이 폭력의 원인이라는 오래된 대중적 착각이 있는데, 실제로는 폭력은 너무 낮은 자존감 때문이 아니라 해당이 없는 경우에조차 너무 높은 자존감 때문에 일어나는 것임. ㅡ.ㅡ 근데, 이런 퍼스낼리티로 예를 든 사람들이 무가베, 후세인, 카다피, 김정은, 이디 아민 등등이고 미국이 서포트한 미친 독재자들 이름은 어디에도 없음 (어리둥절!). 국가 수준의 사례로도 미친 나르시스트 없어서 전쟁없는 평화로운 국가로 캐나다, 뉴질랜드와 더불어 싱가포르 지목함. 아니 항구적 생존전쟁을 일삼는 싱가포르가 여기 왜??? 핑커 양반은 전쟁이 눈먼 민족주의와 나르시스트 지도자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나이브함에 푹 빠져 있음. 인종 간 비폭력의 좋은 사례로 뉴질랜드, 말레이지아, 캐나다, 벨기에, 미국을 예로 드는 것도 제정신인가 싶음. 인종간 위계와 제도화된 비인칭의 구조적 폭력은 안 보임. 좋겠어! 전형적으로 자신의 역사를 영화로운 것으로 신격화하면서 타자를 사회적 계약으로부터 배제시키는 정부에 대해서 비판하는데, 이게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이야기는 또 하지 않지 ㅋ
3) revenge
rage system에서 비롯. 심지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서 세익스피어의 해결안 (사체 위에 정의가 구현)보다는 체홉의 해결책 (모든 사람들이 상처받고 실망하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의 선호한다는 소리에, 이게 가해자가 할 소리는 아닌거 같음
4) sadism (joy of hurting)
네 가지 동기는 macabre, dominance, revenge, sexual sadism. 그리고 사디즘은 문자 그대로 획득한 취향!
5) ideology
true believers weave a collection of motives into a creed and recruit other people to carry out its destructive goals.
이데올로기가 가져올 수 있는 세 가지 병리는 polarization, abtuseness, animosity... 스탈린, 마오, 폴포트를 지적하되 일관되게 극우 독재자와 학살자들은 언급조차 없음.. 하.... 도덕적 판단을 흐리는 방식에는 euphemism (위해를 무언가 다른 것으로 프레이밍), gradualism, displacement or diffusion of responsiblity, distancing, deratation of the victim.. 어쨌든 이데올로기라는 악마에 대응하는 백신은 개방된 사회 ㅋㅋ 순수악이라는 신화에 대한 대안은 사람들이 마주치는 위해의 대부분이 모든 보통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동기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임 (뭔가 사디스틱함 ㅋㅋ).
오늘날 empathy는 1960년대 love 가 담당했던 sentimental idea가 되었지만, 폭력의 감소요인으로는 과대평가 되었음. 분명, 폭력의 감소가 감정이입의 확장과 일부 관련은 있겠지만, 이는 보다 하드보일드한 속성인 사려깊음(prudence), 이성, 공정함, 자기통제, 규범, 타부, 인권 개념과 관련이 더 큼
1) empathy (feeling into; feeling or acting in the mind's muscle)
대중적으로 공감(sympathy)이나 연민(compassion)의 의미를 갖게 되면서 급격히 부상하게 됨. 대중 심리학의 다양한 개념들을 포괄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에 대한 호의는 그들인 척하고, 그들이 느끼는 것을 느끼며, 그들의 가죽슬리퍼를 신고 1마일을 걸을 때 그들이 느끼는 것을 느끼며, 그들의 관점을 취하고 그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 등등을 포괄함.
원래의, 가장 기계적 의미에서 감정이입은 투사 projection 을 의미하며, 관련된 것은 관점을 취하는 기술임. 마음 읽기, 마음의 이론, mentalizing, empathic accuracy 등이 그러한 능력인데, 사실 마음 읽기는 다른 사람의 생각(자폐증에서 결여된 능력)과 감정(사이코패스에서 결여된 능력)을 읽는 두 가지 능력을 포괄함
공감은 타인의 기쁨이나 고통의 인식에 근거하여, 스스로의 안녕을 다른 존재의 것과 동조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지며, 사람들이 다른 이들과 관계하는 원인이라기보다 오히려 그 결과이며 내생적이라 할 수 있음
그런데, 공감적 우려에 해당하는 도덕적 센스로서의 감정이입은 거울 뉴런의 자동반사가 아니며, 온/오프 되고 심지어 반대의 감정이입이 생겨날 수도 있음. 우리의 신경계에 감정이입 뉴런과 감정이입 센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안으며, 타인의 상황,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의 성격에 대한 인식 주체의 해석에 의존하는 복잡한 활성화와 조정의 유형이 있을 뿐임. 연민의 의미에서 감정이입과 가장 가까운 뇌조직은 cortex, subcortical organ 이 아니라 오히려 호르몬 체계 (옥시토신)
지금까지의 심리학 실험에 의하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목도함으로써 겪는 자신의 곤경을 회피하려는 이기적 동기에서 타인을 돕지만, 희생자와 공감하는 경우, 그러한 행동이 자신의 곤경을 덜어주든 아니든 타인의 고통을 감소시키려는 동기에 의해 장애를 극복함. 그렇다면 폭력 감소와 관련하여 핵심 질문은 과연 공감이 외적으로 강제될 수 있는가 하는 것.
현실에서, 공감에 대한 관점 취하기의 효과는 도덕화에 의해 걸러지게 됨. 타인의 관점 취하기 훈련은 사람들의 공감 반경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
주의할 점은, 감정이입이 어두운 이면을 갖고 있다는 점. 보다 근본적 원칙은 공정함과 충돌해서 작동할 때 감정이입은 오히려 인간 안녕을 해칠 수 있음. 또한 감정이입은 인간 이해의 보편적 고려하는 힘으로 작동하기에는 너무 지엽적/국소적임. 실제로 감정이입의 반경은 인권의 반경만큼 확장하지 못했음.
궁극적 목표는 정책과 규범이 이차 천성이 되고 감정이입이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며, 감정이입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당신이 필요한 전부가 아님 ㅋㅋ
2) self control
limbic grasshopper & frontal lobe ant ㅋㅋㅋ 이런 비유 넘 좋음 ㅋㅋ
전두엽님 - 가장 뒤쪽은 자극에 반응하고, 측면은 맥락에 반응하며, 전방극은 에피소드에 반응. 뇌영상 실험은 폭력이 변연계로부터의 충동과 전두엽으로부터의 자기통제 사이의 불균형으로부터 일어남을 보여줌
prefrontal cortex의 와이어링은 60대까지도 완전히 완료되지 않음. 폭력은 단지 자기통제 뿐 아니라 자기통제가 통제해야만한다는 욕구에 의존. 청소년기는 18세에 정점에 이르는 seeking system 에 의해 추동되는 sensation seeking의 시기이며, 테스토스테론에 의해 추동되는 남성-남성 경쟁이 증가하는 시기
지능은 범죄와 매우 상관성이 높음. 멍청한 사람들이 보다 폭력적인 범죄를 저지르며 폭력 범죄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높음. 그러나 사람마다 다른 안정된 속성은 역사를 거치면서 폭력 발생률이 감소한 현상을 설명할 수 없음. 사람과 사회는 시간에 걸쳐 자기통제 속성을 육성하고, 폭력을 줄였다고 할 수 있음
다른 많은 메타포처럼, 자기통제가 물리적 노력이라는 설명은 사실. 마치 근육처럼 자기통제도 피로하게 됨 (ego depletion)
자기통제의 사회 수준 지표를 나타내는 것이 이자율.. 응? (ㅡ.ㅡ) - 장기 지향의 사회는 미래 보상을 향한 실용적 가치 (저축, 인내 등) 지향적이며, 단기 지향 사회는 과거와 현재 (민족적 자긍심, 전통 존중, 낯 세우기)와 관련된 가치를 촉진 == indulgence vs. restraint
이러한 심리, 뇌과학, 경제학 모두 인간이 폭력적, 비폭력적 충동을 조절하는 자기통제 속성을 장착하고 있음을 보여줌
최근의 생물학적 진화? - 행동유전학은 공격적 성향이 유전될 수 있음을 확인했으며, 이는 인구집단의 평균적인 폭력 성향의 이동에서 자연선택에 구체성을 부여함 - 1) self-domestication and pedomorphy, 2) brain structure, 3) oxytocin (cuddle hormone), 4) testosterone, 5) neurotransmitter
3) morality and taboo
어떤 행동이 부도덕하기 때문에 (살인은 나쁘다) 회피하는 것과 그것이 단지 동의하지 않거나 (나는 콜리플라워가 싫다) 혹은 경솔하기 때문에 (모기 물은데 긁지 마라) 회피하는 것 사이에는 유의미한 심리적 구분이 존재. 첫째, 도덕화된 행동의 불승인은 보편화됨, 2) 도덕화된 믿음은 행동 가능함, 셋째, 도덕화된 범죄는 처벌가능함
아동발달과 역사, 진화에서 출현 순서로 도덕의 관계적 설명 모델 나열하면 communal sharing > authority ranking > equality matching > market pricing. 모든 사회에서 도덕성은 이러한 관계 모형들의 일부를 존중하거나 위반하는 것으로 구성됨.
communcal sharing 은 부족 구성원들을 단합하는, 순수하고 신성한 정수를 결여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배제하기 때문에 dehumanization 발생 / authority ranking 은 하층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온정주의적 책임감으로 평화 과정의 심리적 근간을 이루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비순응이나 불복종에 대한 폭력적 처벌을 정당화 / equality matching 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논거를 제공 / rational-legal reasoning 은 그 자체로 폭력을 강제하거나 장려하지 않지만 이윤 추구를 위해 노예를 착취할 수도 있고, 공리주의자처럼 최대 다수의 최대 선을 추구할 수도 있음
도덕적 제도를 역사적으로 이렇게 이동시킨 외부적 힘이라면? 1) 지리적, 사회적 모빌리티 2) 역사에 대한 객관적 탐구
4) reason
좌측의 비판이론가와 탈근대론자, 우측의 종교 수호자들이 동의했던 바는, 두 차례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가 계몽 시대 이래 서양의 과학과 이성 가꾸기의 독이 든 열매였다는 것. 심지어 과학자들도 이런 의견에 동조. 하지만 모든 바보같은 짓들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는 점점 똑똑해지고 있으며, 똑똑한 세계는 보다 덜 폭력적인 세계 ㅋ
심지어 미국 자료 보면 대통령 아이큐 한 포인트 높아질 때마다 13,440명이 전쟁에서 덜 사망 ㅋ
피터 싱어의 '이성의 에스컬레이터' 비유: "우리가 에스컬레이터가 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몇 미터만 가려고 올라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올라타면 끝까지 가는 걸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되고 만다. 마찬가지로, 일단 리즈닝이 시작되면, 그것이 어디에서 멈출지 알아채기 어렵다" "리즈닝은 근본적으로 팽창주의자"
이러한 에스컬레이터는 빼어난 사상가의 산발적 출현에 의하여 동력이 생길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사고의 질에서 상승에 의해 그리 됨. 우리가 점차 스마트해지기 때문에 점점 더 잘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음
근데... 이 책의 논거들이 모두 진짜 폭력, 물리적 폭력에 한정되다보니 이러한 주장이 다 받아들일만한데, 사실 화이트칼라들의 구조적 폭력이나 금융범죄 갈은 것은 다 빠져나가는 경향. 일차원적 폭력을 덜 쓸 수는 있겠지만, 그건 그들이 굳이 몸을 안 써도 되기 때문이겠지. 스마트해진다고 선해지지는 않잖여.. ㅡ.ㅡ
지난 수십년 간 지능에서 산술, 정보, 어휘보다는 매트릭스와 유사성 점수 상승 (flynn effect). 이것만 보면 일반지능 g가 가장 상승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엄청 유전 영향이 크고 환경 요인에 의한 영향이 비교적 작음. 그런데 짧은 시간에 변한 걸로 보아, 상승 효과는 거의 확실히 환경 영향으로 보임. 여기에 미스테리가 존재하는데, 최근 알려진 것은 실제로 상승한 것은 일반 지능이 아니라는 것 - postscientific thinking
현재의 아이큐 테스트는 추상적이고, 공식적인 리즈닝을 포착. 이는 자신을 스스로의 작은 세계의 지엽적 지식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순수하게 가설적인 세계의 함의를 탐색할 수 있는 능력이라 할 수 있음
이성의 평화 효과 - 이성의 힘은, 즉각적 경험을 밀어놓고 스스로를 지엽적인 시각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자신의 생각을 추상적이고 보편적 용어로 프레임하는 능력이며, 이는 더 나은 도덕적 헌신으로 이어질 수 있음. 지난 20세기에 사람들의 이러한 리즈닝 능력은 꾸준히 개선되었음
도덕적 진보와 관련된 리즈닝의 종류는 순수한 브레인파워 의미로서의 일반 지능이 아니라 추상적 리즈닝의 배양이라 할 수 있음. 에스컬레이터 가설은 합리성의 영향에 관한 것이지 (한 사회에서 추상적 리즈닝의 수준), 지식인들의 영향력에 대한 것이 아님. 리즈링 능력과 평화 가치의 연관성 - 1) 지능과 폭력적 범죄, 2) 지능과 협조, 3) 지능과 자유주의 (그런데 좌파 자유주의보다는 전통적 자유주의에 더 가까움) - " bright children become enlightened adults", 4) 지능과 경제문해력, 5) 교육, 지적 유창함, 민주주의, 5) 교육과 내전, 6) 정치적 담화의 정교화
중요하지만 일관되지 않은 결과 - 1) 무기와 무장해제, 2) 자원과 권력, 3) 부, 4) 종교
정리하자면...
1) 리바이어던 - 시민을 서로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물리력을 독점한 국가는 가장 일관된 폭력 감소자
2) 신사적 상업 gentle commerce
3) 여성화 - 폭력은 남자가 너무 많은 문제가 아니라 젊은 남자가 너무 많은 문제
4) 공감 서클의 확장
5) 이성의 에스컬레이터 - 공감서클의 확장과 더불어, 동일한 외적 요인, 특히 문해력, 코스모폴리타니즘, 교육에 의해 동력을 얻음. 공감서클이 다른 사람의 시야를 갖고 그 사람이었다면 가졌을 감정을 상상하는 것이라면, 이는 올림푸스 산의 초이성적 시야로 올라서는 것임
성찰 - 근대성을 바라보는 방식 좀 바꾸자. 비감상적인 역사와 통계적 문해력은 근대성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변화시킬 수 있음. 이는 평화로운 과거에 대한 노스텔지어가 엄청난 착각이라는 것을 보여줌 ㅋㅋㅋㅋㅋ . 물론 근대성의 힘 (이성, 과학, 인본주의, 개인의 인권)이 한 방향으로만 꾸준히 작동했던 것은 아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사이언스북스, 2014 |
hongsili님의 [나미비아 모험 ] 에 관련된 글.
대단원의 마무리 글...
hongsili님의 [나미비아 모험 ] 에 관련된 글.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여행보다 다녀와서 정리하는 게 더 힘들다...
그나마 에버노트 메모 없었다면 영영 불가능 ㅡ.ㅡ;;
남쪽으로 더 내려가 허허벌판에서 점심을 빛의 속도로 해결하고 다시 남으로 남으로
# Day7
hongsili님의 [나미비아 모험 ] 에 관련된 글.
몇 년 전부터 설왕설래하던 프로젝트였건만,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케이블방송 여행 프로에 소개되었다고 해서 이제 망했구나 걱정하며 포기하고 있었는데,
해미가 그래도 가보자고 하여 급 선회...
두 번 갈아타고, 26시간을 비행해야 하는 머나먼 곳으로.....
# Day 0
탄핵은 되었지만, 싸움이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임을 만천하에 과시한 빌런의 퇴장에....
아, 생각보다 강하고 질긴 상대였어... 새삼 깨달음.
밀린 포스팅이나 하며 가출한 어이를 기다려보자고.. ㅡ.ㅡ
정자에 앉아 맑은 술과 함께라면 정말 금상첨화겠지!!!
살다보면 오늘같은 날도 오는구나....
#.
집단적으로 싸워서 바꿔낸 경험이, 사람들의 일상 여기저기에 스며들었음 좋겠다.
#.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은 밝혀진다... 물론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두운 역사들이 수십년이 흐른 뒤에라도 조금씩 밝혀지고 뒤늦지만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들이 생겨나는 걸 보면 신기방기...
지금 당장 이기지 못하더라도, 열심히 기록하고 흔적을 남겨두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
그렇게 반대했던 종편이 이 거대한 진보의 흐름에 부인할 수 없는 큰 기여를 했고,
또 첨단기술문명의 결과물인 스마트폰 메신저가 보수반동을 결집시키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걸 보면,
정말 세상은 아이러니와 uninteded consequences 로 가득찬 곳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깨어남 - 폭발적으로 깨어나고 눈부시게 되살아난 사람들 올리버 색스 알마, 2012 |
'내게 있는 것은 어떤 끔찍한 실재다.. 그리고 어떤 끔찍한 부재가 있다"
"나는 지옥이란 그 누구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나의 환자들은 돌아왔다. 돌아온 이들에게서는 그 경험의 자국이 영영 지워지지 않는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마이클 셔머 바다출판사, 2007 |
회의주의의 열쇠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회의와 '어느 것이든 괜찮다'는 미혹 사이의 불안정한 지협을, 과학의 방법을 쉬지않고 적용하면서 빠져나가는 것
내가 지금까지 쉬지않고 노력해온 목적은 사람의 행동을 조롱하기 위해서도, 통탄하기 위해서도, 모욕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바로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 -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 레베카 솔닛 펜타그램, 2012 |
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유발 하라리 김영사, 2015 |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인간은 너무나 빨리 정점에 올랐기 때문에 생태계가 그에 맞춰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인간 자신도 적응에 실패했다.. 인간은 최근까지도 사바나의 패배자로 지냈기 때문에, 자신의 지위에 대한 공포와 걱정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 때문에 두 배로 잔인하고 위험해졌다'
'역설적이게도 일련의 개선이 합쳐져서 농부들의 어깨에 더 무거운 짐으로 얺혔다. 각각의 개선은 삶을 좀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진화적 성공과 개체의 고통 간의 이런 괴리는 우리가 농업혁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
'인지부조화는 흔히 인간 정신의 실패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핵심자산이다. 만일 사람들에게 모순되는 신념과 가치를 품을 능력이 없었다면 인간의 문화 자체를 건설하고 유지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철학가와 사상가와 예언자는 수천년에 걸쳐 돈을 흉보면서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매도했다.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한편 돈은 인류가 지닌 관용성의 정점이다. 돈은 언어나 국법, 문화코드, 종요, 신앙, 사회적 관습보다 더욱 마음이 열려 있다. 인간이 창조한 신뢰 시스템 중 유일하게 거의 모든 문화적 간극을 메울 수 있다. 종교나 사회적 성별, 인종, 연령, 성적 지향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유일한 신뢰 시스템이기도 하다. 돈 덕분에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물리학이나 경제학과 달리,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길가메시 프로젝트는 과학이 하는 모든 일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길가메시의 어깨에 목말을 타고 있다 길가메시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프랑켄슈타인을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이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에덴의 용 - 인간 지성의 기원을 찾아서 칼 세이건 사이언스북스,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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