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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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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적 비관과 장기적 낙관 사이에서

*

오랫만에 포스팅 하나 해볼까 하던 차에,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상의 필요와 삶의 길이는 정말 아무런 연관성이 없나보다. 

선생님 부디 영면하세요.....

 

*

어느 순간부터, 우리 세대 혹은 나에게 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이들,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한 시절을 공유한 기억이 많았던 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일들이 잦아졌다. 아마도, 재미난 농담이 창궐할 것만 같았던 어느 만우절 아침, 메신저를 통해 들불처럼 번졌던 장국영의 죽음 소식이 그 결정적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세계의 어느 부분에 아름다운 흔적을 남겼던 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야 항상 있어왔던 일이고, 아마도 정보 공유가 쉬워진 오늘날 그 체감 수준이 부쩍 높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렇게 세상을 떠나는 이들과 나의 세대적 간극이 점차 줄어들고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이들의 떠남이 점차 빈번해졌다는 것이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죽음에 익숙해지고 가까워지는 것이야말로 나이듦의 뚜렷한 징후가 아닌가 싶다.

 

*

엊그제 소위 '생계형' 알바 청년들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고하는 토론회에 다녀왔다.

정말 '아유, 애기들이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20대 초중반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참 설명하기 어려운 상념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많은 노동자와 소위 사회적 약자들을 직접 만났고, 또 글로 영화로 무수히 간접경험했지만, 유독 심사가 복잡했다. 

평생 불안정 고용, 성차별, 빈곤의 나락과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삶을 지탱해왔던 고령의 여성 노동자들을 만났을 때에도 그 삶의 신산함과 '성실함'에 대해서 나즈막한 한숨과 경의를 내뱉었지만, 이 젊은이들에 대한 감정은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다 지나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작 그들은 너무나 씩씩하게 자신들의 경험을 털어놓고 있는데, 나 혼자 비관의 늪에 빠져서 '괜찮아, 좋아질거야'라고는 결코 말해줄 수 없음을 괴로워했다. 저렇게 똘똘하고 씩씩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의 삶을 개척해온 대견한 청년들, 하지만 '가난'이라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굴레에 묶여 있는 이들의 앞길에 펼쳐질 길이란..... 

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 뭐, 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돌아보면 나의 10대, 20대도 생계와의 고분군투로 점철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학력 자본이라는 당대의 희소 자원이 있었고, 무엇보다, 앞으로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모든 것이 나아질 것이라는 시대적 낙관이 있었다. 내가 극도로 싫어했던 것이기도 했지만, 소위 청년/학생들이 엘리트 계층으로서 분에 넘치는 발언권을 가졌던 시절이기도 했다. 아마도 소위 '386 세대'는 더했겠지만, 기껏해야 20대 초중반의 대학생들이 남한 사회를 (최소한 말로는) 들었다놨다 했던 것이다. 내일 당장이라도 세상을, 학교를, 공장을 뒤집어 엎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대학생들의 객기란, 지금 돌아보면 황당하기 그지 없다. 정말 국제 정세 한 톨도 모르면서, 용감하기는 무지하게 용감했었다. 

그랬는데...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청년 세대는 '불쌍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일까...

물론 88만원 세대론이 제기한 것같은 연령/세대 중심의 분할론에는 지금도 동의하지 않는다. 장학금 지급에 필요한 소득 상한 기준을 만족시키는 가난한 학생이 도무지 없어서 기금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는 의대 교수의 이야기가 새롭지도 않고, 또 중고령의 불안정 고용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제 청년 계층 내부에 자리한 이러한 간극을 뛰어넘을 방법이 (앞으로도) 좀처럼 없다는 점이다. 이제 겨우 20대 초반인데, 인생 경로가 확정된 것이나 다름 없다면, 이보다 슬픈 일이 또 어디 있을까?

 

*

정보를 주고, 조언을 해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줄 '어른'이 절실하다고 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소에 가져왔던 '스무살 넘으면 다 어른'이라는 지론에 대해 심각하게 재고했다. 사실 그들이야말로, 그 어떤 '어른'보다 용감하게 살아왔지만, 그걸 너무 혼자, 어렵게 해왔던 것이다. 

그동안 부정하고 있었지만, 세상을 이 따위로 만들어버린 데 일조해버린 '기성세대'라는 자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지난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경험한 감정이다.

아마도, 죽음의 빈번함과 익숙해짐만큼이나, 이런 '세대적 미안함'이야말로 나이듦의 중요한 징후가 아닌가 싶다.

 

*

많은 경우, 우주적 시간 프레임에 기대서, 단기적으로 비관할지라도 장기적으로는 낙관해왔는데, 이제 그러한 낙관에 자신감이 사그라든다.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의 도저한 낙관을 상상해본다. 30년이 넘는 세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항을 포기하고 식민지배의 영구성을 의심치 않았던 상황에서, 그들을 지탱한 낙관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지 말이다. 지리산에서 스러져간 혁명 빨치산들, 광주 도청을 끝까지 사수하던 시민군의 낙관이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바닥 없는 비관이 휘몰아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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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하다 혼란해

파리에서는 폭탄이 터지고, 서울 한복판에서는 물대포가 터지고,

이게 도대체 뭔 일인가 싶다.

내가 생각했던 21세기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우애와 연대가 꽃피는 세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노골적인 종교적 근본주의와 폭력적 공안 통치가 횡행할 것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정당화 혹은 정당성 legitimacy 을 확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 따위, 개나 줘버리라는 몰염치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그래도 인간이라면 염치가 있고, 공유된 윤리가 있어야 대화의 여지가 있을텐데 말이다.

 

전쟁 같은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우리는 천안의 인형극 공연장에 있었다.

가난을 살아내는 씩씩한 아이들의 이야기와 몸짓은 '대견하다'는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이제 고등학교를 졸압하는 한 아이가, 그래도 사회에 나가면 이모나 삼촌같은 어른이 한 명은 있을 줄 알았다며 울먹이는데 정말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는.....  이 아이들이 발딛고 있고, 또 나아갈 세상이 이런 전쟁터라니......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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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세넷의 책들

읽은지 몇 달이 지났는데, 이러다가 메모해놓은 에버노트까지 날아갈까봐 후딱 옮겨놓는다.

요즘 뭐하고 다니길래 이리도 정신이 없다냐..... ㅜ.ㅜ

 

# 리처드 세넷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
리차드 세넷
문예출판사, 2004

 

 

어쩌면 나는 조금 더 구체적인 답을 원했던 건지도...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시시콜콜한 답변 따위는 주지 않았지... ㅡ.ㅡ

 

*

몇 가지 기억해둘만한 문장들이 있다.

"나는 뒤에 남겨두고 온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잃지는 않았지만, 내가 느끼는 자긍심 자체가 그들에게서 빠져나왔다는 사실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그렇다... 어쩌면 이건 내 이야기이도 하고, 그래서 리차드 세넷을 '우리편'이라고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선에는 상처를 줄 수 있는 힘이 있다. 연민은 경멸을 낳을 수 있으며, 동정심은 불평등과 직접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상호성과 연대가 필요한데, 불평등사회야말로 이것을 가장 어렵게 만든다. 어쩌면 불평등의 가장 큰 문제는 물질적 자원의 불공정한 분배가 아니라, 우애와 연대의 가능성을 침식하고 민주주의를 왜곡하여, 불평등을 뿌리부터 개선할 수 있는 바로 그 토대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회적 삶에서 상호성은 표현적인 노동을 필요로 한다. 상호성은 연기되고 연주되어야만 한다."  내가 주변 사람, 특히 암묵지로서 혼자 기대하고 또 혼자 실망하는 이들에게 항상 주장하던 내용이다....  인간이 모두 점쟁이도 아닌데, 표현하지 않는 것까지 어찌 이해해달라는 것인가 말이지... 우애와 연대에서도 아마도 이는 필수적일 것이다.

 

*

이전 책들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던 주장이기도 한데, "잠재적인 재능은 재주만이 아니라 동기와 의지의 문제로 뒤얽힌 개인적인 평가에 가까운 것. 바로 이러한 차이가 의미심장한 불평등을 낳는다"고 다시금 지적한다. 구현되지 않은 재능을 바탕으로 인간 그 자체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예와 기능을 토대로 존중을 구축하고, 여기에 타인도 나와 같은 자율성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게 그나마 이 불평등 사회에서 상호 존중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이야기로 정리하면 될까?

그런데, 그 기예나 기능, 이룩한 업적이라는 것이 '다양성'의 이름으로 포괄하기에는 그것 자체에 위계가 있다는 것이 함정.. ㅜ.ㅜ

또한 "숙련노동이라 지칭할 만한 수양과 훈련을 통해,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한 시기심이 아니라 내적 충만으로 기울어진다"는 것도 동의가 안 되염... ㅡ.ㅡ 저자 말처럼 숙련 기능을 가진 이들이 불평등한 세계에서 자기 존중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고... 그렇게 되기엔, 세상이 지금 너무너무너무 불평등하다니까....

 

*

'비개인적인 돌봄이 사람들이 타인을 개인적으로 돌보는 경우에 상처룰 주기 쉽다는 가정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따라서 곤궁에 대한 판단과 반응에서 인간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자"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손목 치료 경험을 이야기하며 의사와 자신의 관계가 비인격적 돌봄이었다면 싫었을 것이라고 함. 하지만 손을 다친 것에 대한 돌봄과 빈곤에 대한 돌봄이 같은 성격을 가져야 하나? 손을 다친 것에는 '도덕적 판단'이 결부되지 않잖여.. 그것 때문에 존중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업적주의로 잘 포장된 사회의 빈곤에는 엄연한 도덕적 판단이 결부되어 있다고... ㅡ.ㅡ

*

전반적으로 세넷 할배의 의견에 동의는 하지만, 현실의 불평등이 할배가 보는 것보다 더 암울해서 이런 제안 정도로는 도저히 인간 존중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 눈물 포인트....

 

#. 리처드 세넷 [무질서의 효용]

 

무질서의 효용 - 개인의 정체성과 도시 생활
무질서의 효용 - 개인의 정체성과 도시 생활
리차드 세넷
다시봄, 2014

 


도대체 도서관 새로 들어온 책에 밑줄 그어 가면서 읽는 인간들의 정신세계는 무엇인가, 깊은 질문을 던지게 만든 책... ㅡ.ㅡ
1960년대 혁명적 변화의 시기에서 한발자국 떨어져 있었던 저자가 1970년, 약관 스물 다섯살에 집필한 책..... 누구는 20대에 이런 책도 쓴다고 하하하...

 

*

당시 새롭게 부상해가던 교외 중산층 가족이 추구하는 것, 혹은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결국은 위험을 회피하고 안전해지려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진단, 이는 청소년이 성인으로 가는 과정에 거쳐야 하는 다양한 경험, 특히나 밀집한 도시에서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으로 갖게 되는 삶의 다양한 접점, 그를 통해 경험하는 갈등 속에서 '성장'을 겪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제기함.

갈등 경험의 본질이란 "갈등이 생존에 중요한 문제가 되었을 때 사람들이 적과 이야기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점과 자신들이 반대하는 것에 대해 여러 차원에서 고려한다는 점".. 이렇다면 갈등의 경험을 통해서만 인간은 성장할수 있겠지....

혁명의 시기를 보낸 풍요로운 백인 젊은이들이 부모들의 보호막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모색하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현상을 관찰하면서 저자의 문제의식이 싹텄다고 함. 이게 벌써 40년도 더 된 책인데, 한국 사회의 중산층 '가족' 문화와 지역 공동체를 설명하는 데에도 그닥 커다란 위화감이 없음.  

다만.... 저자는 (그것이 젊은이 고유의 성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 사회의 미래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았다는 생각이....  이렇게 더 망가지고, 미국 교외에서 벌어지던 그러한 현상이 심지어 세계화될 것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했겠지....ㅜ.ㅜ

 

전반적으로... 알러지에 대한 위생가설을 떠올리게 만드는 책.... 너무 순수하고 너무 안전한 세계 속에서, 좀처럼 갈등으로부터 배우지 못하고 성장한 이들, 혹은 공동체들은 순수의 욕망에 사로잡혀 '다른' 것에 대해  끊임없는 신경증에 시달리며, 특히나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갈등에 직면했을 때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고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심각한 폭력으로 대처한다는 것....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 - 현재 상황에 대한 진단과 설명 찾기와, 앞으로 이렇게 하자는 아름다운 이야기...

 

*

우선 진단과 설명이라면..... '순수한' 정체성의 등장과 이를 추구하는 인간발달의 독특한 시기로서 청소년기에 대한 설명, 그리고 다시 '순수한 공동체'라는 신화가 어떻게 나타났으며 무엇에 기초하고 있는지 탐구. 여기에서 특히 '풍요'의 역할에 대해 탐색... 그리고, 변화된 도시 (즉 교외로의 탈주)가 어떻게 이러한 순수성의 열망으로부터 촉발되고 혹은 이를 점화시켰는지 조곤조곤 살펴봄....


혁명이고 뭐고 "정체성을 순수화하려는 욕망 속에는 보수적인 성향이 숨어있다"고 지적했는데, 동질적인 공동체를 구성하여 안전하게 살아가려는 욕망은 요즘은 뭐 숨은 정도가 아니라 매우 노골적... "뚜렷하고 명료한 자아상과 세계 속 자신의 자리를 고스란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위협이나 고통스러운 불화를 피해야"하며, "불화보다 이미 아는 것들과의 조화가 더 현실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경험은 순수화"됨.
"알지 못해서 잠재적으로 위협적인 삶의 경험들이 등장하는 것 자체를 회피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자발적으로 제한하는 일", 즉 현재의 (당시의) 청소년들이 자발적 제한을 통해 정체성을 순수화하려는 욕망을 발견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왜 이렇게 방어적이 되어가는가 의문을 가짐.

"능동적으로 위협을 경험하지 않고 경험의 의미만 취하려는 (식의 청소년기 발달은) 일차적인 사람에게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특징이 아니"며, "이러한 왜곡된 힘은 풍요로운 공동체가 억압을 조직하는 방식에서 뚜렷하게 드러"남. "풍요로운 현대 도시 공동체의 사회 구조야말로 청소년기의 이런  회피 양상을 연장할 뿐 아니라 성인의 삶도 똑같은 양상으로 묶어두기 위해 개속해서 작용하기 때문." "사람들은 풍요로운 공동체 생활에서 일관성을 향한 욕망을 체계화함으로써 자신에게 자발적인 노예상태를 강요하는 수단을 발견"했는데, (다행히도) 예민한 청년들이 바로 이런 노예상태에서 도망가고자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게 된 것이라고 진단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플로리언 즈나니에츠키는 현재의 지역공동체가 "경험행동보다는 의지행동으로 굳어지는 공동체"라는 표현했다는데 너무 적절함. 교외 중산층 공동체는 무슨 공통의 경험이 있어서라기보다, 같아지려는 그 의지 자체로 유지되는 공동체... 물론 부동산과 학군으로 특징지워지는 동질적 계급 구성과 그 영속화에 대한 의지, 구별짓기 등 다양한 설명이 추가될 수 있겠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고 공통의 경험도 없는 이들이 같아지려는 의지로 모였다는 것 자체는 참 신비로운 현상임에 틀림없음. 뭔가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화 같다는 느낌적 느낌.... 아무런 실체는 없지만, 다들 그렇게 믿고,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믿다보니 실체가 생겨남 ㅡ.ㅡ
이런 공동체에서는 '공동체 유대를 통한 존엄'이라는 신화를 갖게 마련인데, 이를 통해 오히려 공동체 생활에 실제로 참여가 줄어들고, 일탈된 사람들을 억압하며, 예상치 못한 문제나 불화가 발생할 때 특히 외부자에 대해서 폭력적인 대결 방식이 나타남.


이러한 신화를 구축해 가는데 풍요의 역할이 중요... 예전에는 누구나 서로에게 의존해야 생존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풍요를 통해서 의존해야 하거나 싫어도 만나거나 협력을 구축해야 할 필요성 자체가 사라짐 ㅜ.ㅜ 그리까 공허한 자의식적 유대 공동체가 형성되지... ㅡ.ㅡ

저자는 당시의 청년 세대가 "이 풍요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살아가게될 첫 세대라고 했지만.... 오늘날의 우리 사회 또한 이 질문에 아직 답을 못하고 있음. 심지어 지금 한국사회의 청년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 '풍요' 그 자체가 다시 사라질 위기에 있는지라....

특히 세넷은 '성장'과 관련하여 가족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교외 중산층의 '강화된 intense 가족 생활'은 두 가지 특징을 가졌다고 진단. 첫째,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을 사회 세계 전체에 존재하는 모든 상호작용의 소우주로 간주... 하지만 그럴리가 없잖아!!! 둘째, 가족 구성원들이 평등한 수준으로 변형된다는 것 (그래서 부모와 자녀가 친구처럼 지내지 ㅋㅋ), 존엄은 모두를 동등하게 대하는 데 있다고 간주하며, 가족끼리 더 가까운 관계를 맺고, 메울 수 없는 간극은 없다고 생각.... 이러한 괴이한 유대감은 '모호한 것과 고통스러운 미지의 존재를 방아들이지 못하는 무능력'에서 생겨난다고 지적.....

이러한 강화구조 때문에 가족이 맞닥뜨릴 경험의 다양성이 제한되며, 가족 갈등은 '갈등에 대한 죄책감 증후군'으로 자리잡음. 사회질서를 위해 가정에서는 다양성과 뿌리 깊은 불화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바람 ㅋㅋㅋ 가족 질서를 위해 가족 구성원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탈과 분열을 억누르려는 시도라니, 오늘날 한국 중산층 가족을 본다면 세넷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ㅋㅋ

 

부모가 가정이나 학교 외부 사회로부터 자녀를 보호하고 차단해야 더 나은 인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결과로 생겨나는 가족 생활은 분명 자연스럽지 않고 '강요당한 친밀성'일 것이라는 진단에 완전 동의... 게다가 '오늘날의 청교도들은 두려움, 즉 알지 못하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억압한다. 강화된 가족은 이런 두려움을 유지하는 왕도'라는 진단에 완전 격하게 동감....


세넷의 주장은 '친밀한 작은 규모 자체가 사라진 게 아니라 작은 규모의 다양한 중심점들이 사라진 것'이 문제라는 것...  도시의 성장과 함께 친밀성이 양극화되면서 '개인은 새롭거나 알지 못하는 사회관계를 스스로 배척하는 강력한 도덕적 수단'을 얻게 된 것임. 참여 구조의 관료화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음. 정치조직이 인간적인 특징을 잃고 관료화가 되었을 때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유효하다고 믿은 정치적 영향력의 유일한 통로로부터 고립. 소위 '소외된 유권자' 현상

 

*

저자는 반복적으로 낭만적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미 훌쩍 지나쳐버린 그 당시의 환경을 오늘날, 그것도 긍정적 측면만을 되살릴 수 있는지는 의문일세..... 

그는 '인간적이기 위해 도구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방식으로 도구를 사용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면서, "인간 발달의 본질은 낡은 틀이 무너질 때, 즉 오래된 부분들이 이제 새로운 유기체의 요구를 감당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때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주장. 그리하야... 새로운 아나키즘을 주창....

이 때의 아나키란.....
"도시가 새로운 성인기로 나아가는 움직임을 장려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 - 한 때 도시의 특징이었던 다양한 사회적 접촉점이 풍요에 적합한 조건에서 다시 깨어날 수 있다면 다양성과 무질서를 경험하기 위한 몇몇 통로가 사람들에게 다시 열릴 것이기 때문에... 도시 생활의 위대한 약속은 도시 경계 안에서 가능한 새로운 종류의 혼란, 즉 사람들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더 풍부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아나키"

 

*

"경험을 통해 우리가 배운 것은 이런 풍요가 얼마나 취약한가가 아니라 풍요를 활용하는 방법이 얼마나 취약한가 하는 점"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세넷은 풍요가 가진 사회적 가능성을 낙관함. 즉, '경제가 가진 물질적 토대가 있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이 관련된 당사자들의 생사를 건 투쟁으로 비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함... ㅡ.ㅡ
그럼 이러한 물질적 토대는 어디에서 가져오냐고? (베트남) 전쟁에 쓸 돈 가져오면 되지 ㅋㅋㅋ "아주 간단한 문제"라고 확언해버림... 물론 틀린 소리는 아님 ㅋㅋ
그리고 과연 지금과 같은 경향이 계속될까라는 질문에도 그렇지는 않을 거야라고 판단..  갈등 경험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사람들이 과연 견딜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도 당근... 이라고 대답... "아마도 현대 사회의 특징인 '지루함' 때문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

이 부분이야말로 이 책의 저자가 20대라는 점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냄 ㅋㅋㅋㅋ

그런데 젊은이의 대책없는 낙관이라고 오구오구 하면서 책을 덮기엔 현실이 너무 시궁창이라 한숨....

 

 

# 리차드 세넷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리차드 세넷
문예출판사, 2002

 

 

뉴캐피털리즘을 비롯한 이전 책들과 역시 일관된 주장.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급속히 변화된 노동과정, 고용형태가 단순히 일자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꾸어놓았고, 그 핵심에는 '시간'의 본질이 변화했다는 점을 지적.

"사람들이 직장 밖 정서생활에 가장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은 첨단 데이터 송신이나 전세계 증권 시장, 자유 무역이 아니라 바로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시간대. '장기(long-term'는 안 돼'라는 표어는 계속 움직이되 한곳에 정신을 팔지 말고 희생하지도 말라는 뜻"

 

*

그는 직업과 일자리의 어원을 설명해주는데,

직업 (career) = 마차가 다니는 길, 즉 평생 한 우물을 판다는 의미
일자리 (job) = 짐수레로 실어 나를 수 있는 한 덩어리나 한 조각의 물건...

유연성이야말로 커리어의 길을 막아버리고 job 의 고색창연한 의미를 오늘에 되살림 ㅜ.ㅜ

 

*

2차 세계대전 전후 약 30년, 강력한 노동조합과 복지국가, 대규모 기업이 작동했던 그 시기가 소위 '안정적 과거 (stable past)'라는 세넷의 진단을 놓고 보자면... 오히려 그 시기가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이상 시기가 아닌가 싶음. 현재의 모습이 정상이고.... ㅡ.ㅡ 사실 한국사회에서 안정된 고용이라는 것이, 일부 대기업과 공무원들 빼고 근대 이래 존재한 적이나 있나.....

 

*

현대 조직에서의 단기적 시간 개념 틀은 '비공식적 신뢰'가 성숙될 여유를 주지 않음. 일터에서의 신뢰, 충성, 상호 헌신 같은 가치들은 개나 줘버리자고... ㅡ.ㅡ  '단기 자본주의'는 다른 사람과 유대 관계를 맺으면서 지속가능한 자아의 의식을 간직하는 인간성의 특징들을 훼손시킴.. ㅜ.ㅜ
"방황하는 경험과 고정 불변의 의지라는 양 극단 사이에서 실종되는 것은 그의 행위에 계통을 세워줄 수 있는, 사건의 전말에 관한 이야기"라는 설명은 뭔가 엄청나게 슬픈 진단 아닌가...

 

*

현대적 형태의 유연성을 추구하는 시스템의 세 가지 구성 요소 - 첫째, 조직의 비연속적 개혁, 둘째 생산의 유연 전문화, 셋째 중앙 집중이없는 힘의 결집

"새로운 질서는 기술 축적에 필요한 일정한 시간과 연륜이 개인에게 직장 내에서의 입지 확보와 권리를 부여해준다고 보지 않으며, 대신에 실질적인 면에 가치를 둔다. 경험의 시간적 길이를 중시하는 것은 연장자라는 권리로 인해 조직 체제를 경직시켰던 옛 관료주의적 악습의 한 가지라고 보며, 현재의 능력을 중시하는 체제를 선호"  이렇게 보자면 우리는 구 관료주의도 비판해야 하고, 새로운 유연성도 비판해야 되는 몹시도 곤란한 지점에 서 있는 게지...ㅡ.ㅡ


"노동윤리는 기다리는 훈련을 쌓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안정된 제도적 토대에서만 가능. 만족에 대한 자제력도 급속히 변하는 제도 속에서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함"
"팀에 대해 SCANS 이 제시한 이미지는 한 마을에 산다기보다 특수한 당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소집된 사람들의 모임" - 매우 적절한 비유라고 할 수 있으며, 단기간의 불안정 노동이 갖는 사회적 관계망과 정신건강에 대한 탐구가 필요해보임 ㅡ.ㅡ

 

"사회적 결속은 근본적으로 상호 의존 감정에서 시작. (하지만) 새로운 질서를 찬양하는 말들을 보면 의존성은 수치스러운 조건. 염격한 관료주의적 계급에 대한 공격은 의존성에서 벗어나 구조적으로 자유를 추구한다는 의미이며, 리스크의 감행은 주어진 것에 대해 복종하기보다 자기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쳐 보인다는 의미...." 바로 이러한 의존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부터 복지 국가에 대한 공격이 힘을 얻음. 복지 수혜자들은 사회 기생충이라고 의심하고 무시하게 됨

 

"누군가가 나에게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 나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된다" 철학자 폴 리퀘르의 이야기. 신뢰가 없더라도 큰 문제가 없이 잘 굴러가는 현대의 경제 체제에서, 즉 신뢰를 필요로 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 곳에서는 무관심이 확산. 그리고 사람들이 일회용품처럼 취급받는 조직의 구조 조정을 통해서도 무관심이 확산. 그러한 관행들은 인간으로서의 중요성, 즉 남에게 필요한 존재ㄹ는 의미를 명백하고도 잔혹하게 감소"시킨다는 진단은 얼마나 정확한가 말이지...

 

"다만, 나는 우리가 왜 인간적으로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야 하는지 그 소중한 이유를 제시해주지 못하는 체제라면 자신의 정통성을 오래 보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깟 정통성이야 개나 줘버리라고, 거추장스러운 껍데기일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세인 것 같아서 이것도...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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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공연과 영화들

#. 국가스텐 Squall vol.1 (2015/05/01 합정동 롯데카드 아트센터)

 

포스터이미지

 

그동안 스페이스 공감에서 여러 차례 공연이 있었는데, 한 번도 당첨이 안 됨 ㅡ.ㅡ

페스티벌 말고는 그닥 공연 소식도 없어서 포기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공연 공지가 뜨고, 천신만고 끝에 예매에 성공....

 

진짜 약빨고 공연한다는 게 어떤 말인지 실감.... 뭐가 이 구역의 미친 X 은 나다... 라고 못박으러 나온 느낌이랄까? 무대 위나 무대 아래 스탠딩 석이나 한꺼번에 광기에 휩싸일 무렵, 문득 나홀로 정신을 차리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됨 ㅋㅋㅋ 어찌나 뜨거운지 화들짝 정신이 갑자기 돌아왔음 ㅋㅋㅋ

 

건반 없이 일렉트로닉 기타들이 폭주하는 미친듯한 공연 너무 좋음... 

하현우 노래 잘하는 거야 뭐 두 말하면 잔소리... 저렇게 방방 뛰다 언제 한 번 기타 줄에 걸려 넘어진다에 한 표 걸겠음.....

진심 강추 공연!

 

#. 신시컴퍼니 [푸르른 날에] (2015/05/24 - 남산드라마센터)

 

 

진짜 오랜만에 연극 감상.....

공연 시작 전, 무대 한 가운데에 놓인 작은 물길이 그렇게 많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어이없게도, 이런저런 읽을거리들과 이야기들을 통한 간접경험이 쌓여서 마치 80년 5월의 광주가 내 동시대에 있었던 일인양 착각하고 있는지라, 북받치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았음. 

김남주의 시가 낭송되는 동안, 정말 몸둘바를 모르겠더라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여러 번 생각했던 건데, 내가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더라면 과연 도청으로 들어갔을까? 아마도 극 중 '지식인'과 같이, 다 죽는 무모함을 우리가 굳이 감당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했겠지. 그 무모한 열정이 결국은 살아남아 세상을 바꾼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다가올 미래를 도저히 예측할 수 없고, 과연 우리의 죽음이 기억되기는 할 것인가, 세상에 알려지기는 할 것인가도 모르는 상태에서 뛰어들었던 그 시민군들의 마음을 여전히 나는 헤아릴 길이 없다고.... 

 

그 날 날씨는 너무나 청명했고, 펍에서 나눈 연구소 식구들과의 맥주 한 잔은 그토록 맛났지만,

이제는 그 노력으로 변화된 사회에서 나누는 소소한 후일담이면 좋았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점이 비극.... 

배우들의 연기나 극의 구성은 뭐 두 말하면 잔소리....   

 

#. 넬 [Season 2015 Beautiful day] (이대 상섬홀)

 

 

아마도 처음 하는 소극장 장기공연

소극장, 어쿠스틱 공연에 걸맞게 대부분의 곡들을 편곡해서 연주했는데 아주 상큼하고 신선한 것들이 많았음.... 특히 Stay 같은 곡 ㅋㅋ

 

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큰 공연에서 들을 수 없었던 아주 초기, 언더 시절 곡들을 들려준 것...

2000년대 초반.... 정말 이들의 노래는 지구의 심연이라도 뚫을 법한 우울의 정서에, 가사는 쓰레기와 시궁창으로 점철되어 있었지....

그렇다고 그 시절 나의 정서가 딱히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도 묘한 멜랑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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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책 정리2

#. 피터 도베르뉴 [저항 주식회사]

 

저항 주식회사 - 진보는 어떻게 자본을 배불리는가
저항 주식회사 - 진보는 어떻게 자본을 배불리는가
피터 도베르뉴 외
동녘, 2015

 


책을 읽으면서 가장 두드러진 감정은 어이없게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어 ㅠㅠ


데이비드 하비 할배의 [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에도 나오듯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후퇴나 국가폭력 증대는 한국만의 예외적 후진성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내포된 하나의 과정... 자본주의 고도화는 세련된 소비문화로의 포섭이 다가 아니며 항상 어느 지점에선가 폭력을 동원하게 된다는 점.

물론 이걸 안다고 해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고 해서 위안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님 ㅠㅠ
한 때, 어쨌든 형식적 민주주의를 전취하면서 이것이 영원불멸할것이라고 믿었던 것이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실수였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며 착잡....

 

전반적으로, 좌파 정치정당이나 전통적인 노동조합운동의 정치 리더십 경험이 부재한 미국의 자유주의적 운동경험에 대한 편향이 강하긴 하지만 문제의식에는 크게 공감.... 근데 어쩔껴???? ㅠㅠ

 

* 급진주의 운동의 쇠락을 가져온 큰 흐름 진단에 완전 동의 - 1) 기업화의 정치 ㅡ 기업처럼 보기, 2) 안보를 빙자한 탄압, 3) 사회적 삶의 사유화 ㅡ 반체제 활동의 하부구조 변화, 책임의 개인화 , 사회적 시민성의 위축, 4) 운동의 제도화 ㅡ 비영리산업복합체

 

1) 기업화의 정치


운동 기업화의 흐름을 세 가지로 요약. 첫째, 대기업과의 동반자 관계 증가, 둘째, 자본가의 자선 활동과 기업형 모금에 의지, 셋째, 시장의 병폐에 대한 해법으로서 국제무역과 대중 소비를 포용

"이제 기업화된 운동은 생산효율성, 기업투명성, 기술진보를 조심스럽게 지향"하지만 "이는 사회적 갈등에 휘말려 삶의 조건이 파괴되고 있는, 가장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자본주의의 '느린 폭력'에 자기도 모르게 힘을 보태는 일"

 

근데 이게 참 애매한 것이.... 이게 어찌 보면 운동의 발전으로 볼 수 있는 측면들도 있고, 또 unintended consequences 성격이 강해서리.... 평범한 시민들에게 운동의 장벽을 낮추고 보다 폭넓은 대중 접촉면을 만들어낸다는 측면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려운지라...  결국 중요한 갈림길은 '진심'과 '진정성'인데 이걸 또 누가 판단한단 말여... 물론 모든 운동이 이런 방향으로만 가는 것은 저자의 우려대로 심각한 문제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게 낫다'라는 생각이 팽배한 요즘은 아쉽지만 뭐 이거라도 하는 걸 격려해야 하나... 이럴 정도로 나의 눈이 낮아졌음 ㅜ.ㅜ

 

2) 안보를 빙자한 탄압


"불만세력들을 감시하는 국가권력이 증대하면서 비판집단은 고립되고 대립각을 세우는 전략들은 뒷전으로 밀려"나며 한편으로 "동시에 운동의 기업화가 강화되고, 협력적인 집단들은 국가안보에 '안전한' 세력이라는 지위로 보상"

맥닐리의 지적에 의하면 "시민사회 참여는 '주류의 신망을 얻고 하찮은 군중이나 폭도로 보이지않기 위한 ' 방편을 통해 예의를 갖추는 행위에 가까워지고 " 있음

 

한국사회는 이보다 조금 복잡해서,

연이은 두 정부의 또라이짓에 '온건하던' 단체들마저 급진적으로 변해가는 양상과, 이 책에서 지적하는 것과 같은 순치화 양상이 동시에 발전하고 있는 듯.

 

3) 사회적 삶의 사유화

 

이 부분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라이트 밀즈가 이야기했던 바 개인의 경험을 공적 이슈로 전환하기는 커녕 사회적 이슈가 모두 개인화되어 그 해결책은 각자 도생이라는 무간지옥 ㅠㅠ 이것이야말로 오늘 날 한국의 현실.....


"더이상 변화의 정치는 노동과 지역사회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사회운동 내에서 우정과 신뢰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고 사람들은 개인으로서 정치에 참여하고 대의명분에 합류하려는 경향"

사실 이건 "깃발내려" 사건에 대한 설명일 수도 있는데, 이 '개인으로서의 참여'라는 것이 결국  '순수한 시민운동'과 '불순한 정치운동'에 대한 구분에서 탄생하고 또 이를 강화시켰다고나 할까....

 

4) 운동의 제도화


"비영리산업복합체"라니... 한국사회만 놓고 보면 좀 과한 개념같지만 또 전지구적이나 서구사회 보면 악히 과장도 아닌듯... "존립을 위해 주민이나 회원들에게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더이상 이들에 대한 책임도 느끼지 않음 오로지 펀더의 견해와 의중이 중요함 ㅠㅠ

이는 뒤지어 말하면, 투표를 근간으로 하는 대중민주주의에서 유권자의 영향력이 점차 사라지고, 기업과 부자들을 과대대표하게 된 미국 상황을 고발한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의 시민사회 버전... ㅡ.ㅡ


비영리산업복합체 특징은, 첫째 기업후원 증가, 둘째, 하향식 관료주의 체계에서 일하는 운동가의 숫자 급증, 셋째, 관리통제주의 문화 강화되며 자제와 순화의 가치에 대한 믿음 심화된다는 점.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반세계화 활동가들이 운동의 제도화에 가장 강력한 반대자로 활동해왔지만, 그 결과는 슬프게도 운동의 기업화, 탈중심화, 국지화 ㅠㅠ
 

수십억 원의 수입에 수천명의 활동가 혹은 직원을 거느린 글로벌 조직의 재정 상황과는 비교할 건덕지가 없지만, 한국에서도 '제도화'의 문제는 심각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음.

 

#. 오준호 [세월호를 기록하다]

 

세월호를 기록하다 - 침몰·구조·출항·선원, 150일간의 세월호 재판 기록
세월호를 기록하다 - 침몰·구조·출항·선원, 150일간의 세월호 재판 기록
오준호
미지북스, 2015

 

 

정말, 안타까움에 눈물보다는,

이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음과 무능, 얼렁뚱땅에 한숨, 짜증이...

이 마당에서, 인권을 논하는 게 다 부질없다는 생각....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오늘날 가장 시급한 것은 '근대화'의 과제 아닐까 싶음.

인간에 대한 사랑이고 고귀한 희생정신이고 다 필요 없이,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 필요해보임.

 

세상에, 차라리 그 어떤 거대한 악의 세력이나 음모라도 있었다고 하면 오히려 위안이 되었을까.... 이렇게 한심한 상황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사라져갔고, 그토록 많은 슬픔을 우리 사회에 던져 주었다니, 정말 그저 어이가 없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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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책 정리1

책을 읽고 기록을 남겨놓지 않으면, 그저 '읽었다'라는 위안 이외의 기억들은 자연스레 소멸되기 마련인지라, 항상 작은 메모라도 남겨 두려 하는데, 그게 또 은근 일이다....

사실 책 이야기 말고도 뭔가 쓰고 싶은 이야기거리는 엄청 많은데, 자꾸 순위에서 밀린다.

널뛰기하는 생각거리들을 늘어놓을 시간 혹은 여유조차 없는 삶이란 도대체 뭐지???

시간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말로, 입으로 다 풀어버려서인가? 그래도 말글이 아니라 손글로 정리하는 건 다른 건데 말이지....

 

 

#. 레나타 살레츨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레나타 살레츨
후마니타스, 2014

 

 

제목에 낚였음 ㅜ.ㅜ
초반부의 문제의식에는 완전 동감... 

 

선택이라는 전제 (tyranny) 가 '자신을 개인적인 기획의 전적인 주인으로 여기면서 정작 사회를 변화시키는 선택들'에 대해서는 잊게 만든다는...
"선택이 개인적 삶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궁극의 수단으로 찬양될 때, 사회적 비판의 여지는 거의 사라지고 만다'는 지적이나, 긍정 이데올로기, '개인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느끼게 될 때, 또 긍정적 사고가 사회적 부정의의 결과로 겪는 불행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제시될 때 사회비판은 점점 더 자기비판으로 대체'된다는 지적, 또한 "경제학 영역의 '합리적 선택'이라는 관념이 우리에게 존재하는 유일한 선택 유형으로 미화'되었다는 지적에 크게 동감했으나....

 

허나!!!!
선택이 합리성과 관련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오이디푸스 나오고, 히스테리 나오고, 라깡 출현... 아이쿠, 털썩...

이렇게 인간의 무의식과 심리적 근원의 세계로 돌아가서 선택이 그렇게 합리적인 행동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면, 이건 뭐다?? 그럼 답이 없는 거잖아???

도대체 멀쩡한 성인들의 행동과 심리가 아동기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 온전히 설명된다면, 그동안 살아온 인생은 다 헛짓인 거여??? 이 정도 되면, 사주팔자론이나 유전자결정론과 뭐가 다른 것이여?

사실 후마니타스에서 출판된 책이라 믿고 선택한 것도 있었는데, 전해 듣자니 책은 나름 인기가 있었다고.... ㅜ.ㅜ
도대체가 검정할 수 없는 영역에서 사후적 설명에만 충실한 정신분석학이 의학 이외 영역에서 왜 이렇게 인기가 있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음

 

 

#. 노명우 [세상물정의 사회학]

 

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사계절, 2013

 

딱히 나쁜 책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데...
내가 강퍅해진 건지.. 사족이 지나치다는 느낌적 느낌

"상식과 상식이 서로 견제할 때 몰상식이 생겨나지 않는다, 양식은 상식 앞에서 무력하다.."  아... ㅜ.ㅜ

"유권자가 소비자가 되는 사회에서 소비주의는 개인의 무거운 선택을 가벼운 선택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지적은 앞의 책보다 통렬.

조종된 "군중을 비난하느라 군중을 기획하고 있는 시틀러나 무솔리니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들의 또다른 노리개로 전락하는 셈"이라는 지적에 깊은 동감하면서 "공감은 동정이라는 따뜻한 감정으로 냉혹한 현실을 잠시나마 가릴 수 있다는 낭만적인 태도와는 거리를 둔다"는 지적에 공감 ㅋㅋ

 

그런데, 여기에도 역시 예상치 못한 폭탄이 있었으니, 생뚱맞게 "집단적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

오이디푸스를 조용히 잠들어 있게 놔두자... 아.... ㅡ.ㅡ

 

 

#. 킴 스탠리 로빈슨 [쌀과 소금의 시대]

 

쌀과 소금의 시대 1
쌀과 소금의 시대 1
킴 스탠리 로빈슨
열림원, 2007

 

 

해외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K 기자와 1년만에 만나서 밥을 먹고 헤어지는 길에 건널목 앞에서 문득 추천해준 책 ㅋㅋㅋㅋ

사실 필립 K 딕의 [The man in the High Castle]에 실망해서, 동양이 역사의 주인공되는 서양 작가의 대안역사 소설에 거부 반응이 있었는디....워메.....  막 빠져들었음...

작가의 그 유명한 화성 삼부작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찾아보니 그는 필립 딕의 작품 세계를 분석하여 박사 논문을 썼다고... 후덜덜......

 

이건 그냥 그저그런 오리엔탈리즘이 절대 아님. [티벳 사자의 서]를 기본 프레임으로 하여, 이성과 인간해방, 페미니즘, 생태주의를 이음새 없이 훌륭하게 엮어내고 있음. 불교,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상당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음... 사실 내가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것은 아니지만, 마치 서구인들이 기독교의 오랜 '문화'에 물들어 있듯 우리도 불교 문화에 알게 모르게 침잠되어 있고 그래서 서구인들의 소설이나 영화에서 어설픈 흉내내기를 보면 짜증이 울컥 ㅋㅋ  The man in the high castle 이나 어슐러 르 귄의 [어둠 속의 왼손]에서도 나는 음양이론 나오는 게 제일 싫었다고......


그런데 이 책의 첫 머리에 바르도 장면이 등장했을 때, 앗 깜딱이야 하면서 정신이 번쩍....

그러면서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촘촘하게 얽혀 있어서.... 나만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느낌.

비극으로 끝나는 개인의 삶들이 모여서 사회의 희극으로 이어지고, 천천히, 정말 천천히,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인류의 모습이란, 뭔가 묵직한 감동.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지만, '가자, 가자 피안으로'라는 첫 장의 메시지처럼 2보 전진과 1보 후퇴를 반복하며 어쨌든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

 

기독교나 유대교가 거의 사라지고, 이슬람조차 내부로부터의 붕괴해가면서 유일신 종교가 사라져가는 화목한 세상...  과학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세계평화를 도모하기 위해 노력하는 세상, 역사학자들이 과거로부터 배우고 미래에 단서를 주는 세상......

정말 이런 세상에 살고 싶구나... 현재가 이렇지 않으니까 이것이 '대안' 역사 소설이겠지만... ㅜ.ㅜ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페미니스트들, 앎의 환희가 무엇인지, 그 책임은 얼마나 무거운지를 깨달은 과학자들, 이 허구의 인물들 앞에서 가슴이 콩닥거리는 나는 변태인가???

 

 

# 듀나 [아직은 신이 아니야]

 

아직은 신이 아니야 - 듀나 연작 소설집
아직은 신이 아니야 - 듀나 연작 소설집
이영수(듀나)
창비, 2013

 

많은 과학소설들이 당대의 사회상에 대한 비판과 풍자, 숙고를 색다른 방식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사랑받고는 하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나같은 독자들이 고도의 맥락성이 있는 서구 과학 소설들을 100% 즐기기란 어렵다고....

국내 SF 작가들의 작품은 바로 이런 면에서 무언가 속속들이 채워진다는 느낌을 주곤 하는데...

듀나의 작품은 단순히 국적이 같아서가 아니라, 짜임새와 개연성 높은 상상력이 촘촘하게 자리한 가운데
언뜻언뜻 드러나는 장소와 인물과, 사건들의 미묘한 익숙함과 뒤틀림이 완전 매력.

왜 듀나가 국내 최고의 SF 작가로 인정받는지 단박에 알아차릴 법한 좋은 작품집 (사실, 언어적 제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서구의 단편들보다 훌륭한 작품들이 많음). 다만, 미스테리는 왜 이런 책들이 '청소년문학'으로 분류되느냐 하는 점... ㅡ.ㅡ

 

 

# 듀나 [면세구역]

 

면세구역
면세구역
이영수(듀나)
북스토리, 2013

 

단편 모음.

경계없는 상상력의 폭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음. 특히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의 젠더 밸런스 매우 호감!!!!

여러 글들 중에서도 "기녀기담" 특히 좋았음. 엄청 서늘하고 아름다운 초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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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기록 좀...

메모만 해놓고 미처 정리를 못했던 작년 하반기부터의 공연 관람 일지...

 

#. 이승열 2015.03.20

 

포스터이미지

 

앨범에 수록되지 않은 곡들, OST 작업한 곡들을 포함해서 U&Me Blue 시절부터 이런 저런 곡들을 꼬박 두 시간을 채워 들려줌.... 

연주나 노래나 하나같이 맘에 들었는데, 망할 놈의 조명... ㅡ.ㅡ

2층 정면으로 쏘아대는 광선에 망막 타버릴 뻔 했다고.... 

이 분 공연은 항상 조명과 배경 화면이 말썽...  예전, 화면 가득 적혈구 테러의 악몽이 떠올랐지... ㅜ.ㅜ

그런데, 그게 또 아이러니한 것이,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눈을 감고 음악을 듣게 되고, 더욱 빠져들게 된다니까.... 

 

#. 스티브 바라캇 2015.03.08

 

포스터이미지

 

유니세프 후원회원 초청에 당첨되어서 얼떨결에 가게 된 공연...

가서 깜놀한 것이, 무려 19만원 짜리 R 석이지 뭔가... 그런 로얄석에 머리털 나고 처음 앉아봤는데, 귀가 막귀라서 구석탱이에 앉아서 듣는 거랑 뭐가 다른지는 잘 모르겠더라는... ㅡ.ㅡ

스티브 바라캇 연관검색어가 '어디선가 들어본 음악'인데, 정말 공연 가보고 이를 절감 ㅋㅋ

메들리 연주 도중 KTX 종착역 음악 나올 때는 반사적으로 가방을 주섬주섬 ㅋㅋㅋㅋ

마침 이날이 3월 8일이라, 정면 벽에 '세계 여성의 날' 을 기린다는 메시지가 걸려있었는데, 뭔가 짠하다는 생각이....  요즘 같이 여성주의가 고생하고 있는 시절에, 이렇게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가득한 고상한 공간에, 여성의 날 기념이라....

 

#. 스페이스 공감 [고상지 반도네온] 2015.02.02

 

 

스페이스 공감 방청 신청에 내리 몇 번이나 탈락한 이후, 짜증을 듬뿍 담아 신청했는데 덜커덕 당첨 ㅋㅋ

편지글을 읽어보고 뽑는 건지, 랜덤으로 돌렸는데 그냥 이번 순서에 당첨이 된 건지 당최 모르겠음.

공연은 너무너무 좋았음....

너무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들이라고 할까... 음악은 바로 그 곳에서, 전혀 새로운 세상과 시간으로 우리를 옮겨다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니까....

고상지 씨의 독특한 정신세계와 박박사의 도플갱어 같은 외모가 놀랍기는 했지 ㅋㅋ

오랜만에 다시 피아졸라와 크레이머의 탱고 연주를 찾아들었는데, 역시나 천하의 피아졸라와 크레이머의 연주라 하더라도 음반이 현장의 온도와 호흡까지를 다 담을 수는 없다는 것을 실감...

 

#.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2014.10.10

 

포스터이미지

 

해미 덕분에 첨으로 2층 박스석에 귀부인처럼 (?) 앉아서 감상했음.

연주자들 떡대가 어마어마하셔서, 와~ 그 무거운 콘트라베이스나 바순을 번쩍번쩍 들고, 관악기 연주자들도 절대 숨이 안 찰 것만 같은 깊은 안도감을 ㅋㅋ

오케스트라 연주 들으면서, 이렇게 타악기의 힘에 집중한 것은 처음이었음.

막귀를 가진 자에게도 이것은 아름답고 조화롭다는 느낌이 절로 들게 만드는 훌륭한 연주....  이런 공연이 조금씩만 저렴하면 좋으련만....

 

 

#. 3호선 버터플라이 2014.10.5

 

포스터이미지

 

그동안 이상하게 일정이 안 맞아서 한 번도 공연에 가보지 못한 밴드...

이번에 모처럼 일정이 맞아서 얼씨구나 하고 주변 사람들한테 같이 가자고 했다가 모두 거절당하고 (ㅜ.ㅜ) 다른 일 때문에 통화하던 해미와 마침내 공통의 취향을 확인하고 동행...

사실, 그동안 그렇게 음악을 들었어도 성기완 씨 실제 모습 첨 봤음. 그동안 한 번도 찾아볼 생각도 안 했던 게, 막연히, 시인에, 제 3세계 음악을 소개해주는 예술가라면 그럴 법한, 뭔가 섬세하고 유약한 지식인 이미지 (예컨대 이동진 평론가 스탈?)를 그냥 가지고 있었던 듯....

무대에 나타난 분 보고, 순간 빵 터졌음 ㅋㅋ

하지만, 이내 음악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는데, 와우.... 사이키델릭한 음악과 보컬에 최강 몰입!!!

다음부터 공연을 절대 놓치지 않으리 ...

 

 

# 그리고....

 

국립국악원이 가까우니 풍류산방이나 연희 마당 공연에 가끔씩 가는데, 

갈 때마다 얼릉 다시 대금 배우기 시작해야지 생각했다가 돌아서면 까맣게 잊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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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짝을 이루는 영화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극장이 가깝다보니 이렇게저렇게 영화를 놓치지 않고 보고 있다.

 

#.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김성호 감독, 2014년)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귀엽다'는 말이 어쩐지 실례가 될 것만 같은 아역배우들의 연기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음. 남동생의 코 파는 연기는 가히 천하제일... ㅡ.ㅡ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텔레비전 보며 밥먹는 이다윗 배우의 연기 이후 미성년 부문 생활연기의 최고봉이랄까 ㅋㅋㅋ

 

웨스 앤더슨 같은 아기자기한 장치들과 화면구성도 은근 볼거리.... 

심지어 블록버스터 급 액션과 스릴러, 음모와 배신은 양념....

배우 김혜자와 최민수를 비롯하여 성인들의 캐릭터와 연기도 모두 과하지 않아서 좋았음.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혹한 현실에 영화에서마저 가혹하게 끝나버린다면 어쩐지 감당이 안 될 것 같더란 말이지... ㅜ.ㅜ

 

 

#. 나를 찾아줘 (데이빗 핀처 감독, 2014년)

 

나를 찾아줘

 

일단 제목이 마음에 들었음. 되도 않는 이두 문자 영어 제목에 어이 없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닌데, gone girl 이라는 원제목보다 영화를 더 잘 드러내는 듯.. .제목이 좀 스포일러인가?? "아이킬드마이마더" "인히어런트 바이스" 같은 제목들을 떠올리다보면, 절로 혈압 상승.....

 

가족들과 함께 어려운 시간을 견뎌내고, 사람과의 관계를 차곡차곡 만들어나가는 영화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었다면, 이 영화는 정 반대편에서 "피식"하면서 팔짱 끼고 썩소를 날리고 있을 영화....

이런 게 가정인가, 이런 게 사랑인가, 이런 게 인간인가.....  하는 회의를 무한생산 ㅡ.ㅡ 

아이고 무서워라.... 정말 다 보고나서 엔딩 크레딧 올라가는데 모골이 송연....

'어메이징 에이미'를 연기한 로자먼드 파이크 연기가 정말 완벽한데다, 벤 에플렉의 찌질남은 연기인지 실제인지....  오랜만에 정말 아메리칸 스윗하트가 아니라 아메리칸 호구 인증 ㅋㅋㅋ

[파이트클럽] 이후 핀처 감독 영화에 왠지 끌리지 않았는데, 몇 가지 다시 챙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음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2014년)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실스마리아의 구름"이라고 하면 품격이 떨어지나.... ㅡ.ㅡ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막나가는 듯한 심드렁한 표정과 태도가 도대체 연기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의 영화. 줄리엣 비노쉬의 캐릭터와 서사 또한 극중 인물인지, 배우 자신의 것인지 헷갈리고, 클로이 모레츠는 딱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실제 삶을 연기하고 있음 ㅋㅋㅋㅋ 이 셋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혹은 촬영장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을지가 몹시도 궁금....

 

젊음에 집착하는 나이든 여배우의 회한과 노욕, 이를 깨우쳐주는 젊은 파트너들의 활약(?)을 그린 전형적 영화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이 둘 사이 주도권의 역전과 마지막 무대 리허설까지도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 받아들이지 못하는 원로 배우의 모습, 그리고 이들 모두 (최소한 영화 중에서) 실스마리아 계곡의 구름이 몰려드는 장관을 결국 놓쳤다는 것은, 아직, 혹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인생에 대한 메타포로 보였음.

 

 

#. 버드맨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뚜 감독, 2014년)

 

버드맨

 

기묘하게도,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와 데칼코마니 같은 영화.

근데, 색깔이 달라... 그래서 분명히 거울을 보았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보이는 것 같은 기묘한 환상과 당혹감을 안겨준달까???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리건이란 인물은 어느 정도나 마이클 키튼과 다른 사람인 건지 너무너무 궁금... 분명, 버드맨은 배트맨이었고, 내면의 그 허스키보이스는 다크나이트의 그분 목소리라고 ㅋㅋㅋ

첫 장면, 공중부양할 때부터 이거이거 범상치 않겠는 걸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라틴 아메리카 작가와 감독들한테 클리세처럼 따라붙는 수식어 "마술적 리얼리즘" - 이거 말고 무슨 단어가 적절하겠냐고....

마술상자를 통과하는 기분의 카메라 롱테이크와 극장 내부 동선은 너무 유쾌했고, 불안을 극대화시키는 드럼 연주도 매력 덩어리....  대사며, 장면이며, 빵 터지는 순간이 너무 많았는데, 관객들의 기괴할 정도의 침묵에 당혹.... 나만 미친 여자처럼 킥킥댔다니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제레미 레너, 마이클 파스빈더 같은 양반들도 이 영화 보면서 나만큼 빵 터지지 않았을까 싶음 ㅋㅋ

에드워드 노튼은... 영화 보는 내내, 어쩜 저렇게 맨날 미친 놈 역할만 하나 측은한 생각이 ㅋㅋ 그가 착하거나 비교적 정상인으로 나온 영화는 아마도 [문라이즈 킹덤]이 유일한 듯..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팬티만 입은 채 맨하탄 인파 속에서 황급히 발걸음을 재촉하는 리건, 이를 사진찍고 트위터에 올리면서 사인해달라는 교양없는 시민들, 나비넥타이 매고 앉아서 고풍스런 극장을 채운 채 '순수' 예술을 즐기고 있는 교양있는 엘리트 관객들.... 정말 불협화음인데 묘하게 어색하지 않아....


세상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고 존재를 입증하고 싶어하는 전직 슈퍼히어로의 진정성은, 피를 훌려서야 완성된다는 괴이한 아이러니...  사실 그 자신만 빼고 아무도 그런 진정성 요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고 있는데 말이지....  심지어 자신의 내면조차도 다른 목소리를 들려주잖아.....

그런데, 우리들 모두의 인생이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음. 그렇게 생각하면, 리건이 버드맨처럼 날아오르고 그 모습에 환하게 미소짓는 딸의 얼굴로 영화를 맺는 건 지나친 해피엔딩....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가 태풍이 몰아치는 날의 바닷 속같은 일촉즉발의 잔잔함과 차가움으로 마무리되었다면, [버드맨]은 내내 시끌벅적하고 피와 살점이 날리는 격전을 보여주었지만 오히려 마무리는 너무 훈훈했달까???

 

이냐리뚜 감독은 이 영화 찍으면서 정말 즐거웠을 것 같음. 자신이 살고 있는 헐리우드를 이렇게 마음껏 놀려먹었는데, 결국 아카데미 수상이라니 ㅋㅋ


 

#.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빔 벤더스 감독, 2014년)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브라질 출신 불세출의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두의 사진세계와 삶을 담아 낸 빔 벤더스의 다큐 영화.


그동안 여러 차례 마주쳤던 사헬, 에티오피아, 르완다, 콩고의 참혹한 인간사를 다룬 사진들의 상당수가 살가두의 것이었음을 새삼 알게 됨....

일단, 첫 장면 브라질 광산의 모습에서 일단 압도... 이건 또 뭔가, 여긴 또 어디인가.......


작가가 '어둠의 심장'을 목격하고 사진활동을 접었던 사연은 백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음.. ㅡ.ㅡ

누구라도 쉽지 않았을 것이여... 자연으로 회귀하고 지구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 다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던 사연도 다 이해가 됨...

 

근데, 나무 250만 그루 심은 것이 주제인 것처럼 그려지고, 또 그걸 부각시킨 영화 광고는 좀 웃긴다는 생각..... 사실, 생각이 있고, 돈이 있어서 사람을 동원할 수 있으면 그게 그렇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은가 말여....  ㅡ.ㅡ

 

작가의 사진 세계와,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좀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남음...

어쨌든 화면 가득히 압도하는 흑백 사진들에 혼을 빼앗겨버림....

전시회는 어쩌다보니 놓치고.... 아쉬워라....

이런 영화를 보면 사진이 다시 찍고 싶어진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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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들의 이야기

지난 몇 주 동안 읽었던 책들의 공통점, 최소한 표면적인 공통점은 없다.

보관함에 담아놨던 책들 중, 도서관에서 대출이 가능한 책을 집어왔고, 태블릿에 담아놓았던 책들 중 하나를 건져왔을 뿐.... 그런데 포스팅 제목을 생각하다보니, 작가들이 모두 휴머니스트들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따뜻하고 인도주의적이라는 뜻에서의 휴머니스트가 절대자가 아닌 인간을 중심에 둔 사고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거울 너머의 역사]

 

갈레아노, 거울 너머의 역사 - 승자의 맞은편에서 바라본 세상,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부활
갈레아노, 거울 너머의 역사 - 승자의 맞은편에서 바라본 세상,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부활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2010

 

나즈막한 한숨과 높아지는 심박 수, 하지만 가끔씩의 깨소금같은 고소함이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많이 슬픈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아이고 한 많은 인류 역사여... ㅜ.ㅜ  한숨이 절로 나온다는.....

 

물론 인류 역사가 온통 슬품으로만 가득 찬 건 아니었지만, 지배자들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과 용맹함에, 그들이 이룩한 것에 찬탄하고 있을 때, 그 거울 너머에 존재했던, 정면에서 볼 수 없었던 역사는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은 그동안 주류 역사책과 언론, 혹은 동화나 설화에서도 그려지지 않았던 그야말로 거울 너머의 역사에 대해서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주~욱 읽다보면, 종교, 특히나 유일신을 숭배하는 종교들은 그냥 세상에서 사라져주는 게 인류에게 마지막으로 기여할 수 있는 숭고한 행위가 아닌가 싶다. 귀족, 부르주아, 군부독재, 파시스트, 다양한 악당들이 차례로 등장하지만, 역시나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가장 잔인하고 끈질기게 민중을 (달래가며) 괴롭혔던 것은 이들 (유일신) 종교들이었다.

각 종교들의 악행은 우열을 가리기도 어렵다. 카톨릭의 천년 뻘짓은 오늘날 IS에 비해 하나도 부족함이 없거니와, 기독교도 두 말하면 잔소리....  이런 역사를 알고도 그것은 일부 비뚤어진 신자들이 하느님의 뜻을 오해한 거야, 진짜 카톨릭은, 진짜 기독교는 안 그래 라고 우겨댄다면 답이 없다... 

 

그래도, 이렇게 이성을 마비시키는 역사적 뻘짓과 속임수에도, 스스로 깨닫고, 투쟁하고, 한발자국씩 우직한 발걸음을 내딛었던 인간들이 또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다. 그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여전히 이렇게 거울 뒤를 애써 찾아봐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말이다....

 

 

# 엄기호 [단속사회]

 

단속사회 -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단속사회 -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엄기호
창비, 2014

 

 

"쉴새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는 부제가 단속사회의 본질을 간명하게 보여주었지만, 현상의 '기술'을 넘어서는 분석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던 책이다. 딱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아 뭔가 조금 더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엥? 여기서 끝난 건가?" 뭐 이런 느낌....

 

(도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지탱이 될 수 있는) 관계의 부재, 다른 한편 관계의 '짐'이라는 경험이 동시에 존재하는 역설적 상황들을 글은 잘 보여주고 있다. 실존적 관계단절보다는 '사적인 관계를 공적인 언어로 전환하는 관계의 부재'가 문제라는 저자의 지적에 매우 매우 공감했다. 관계 단절을 실존적 측면에서만 보게 되면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지배자들의 언어에 스스로 동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지적하는 '가장 심각한 단절'은 "누군가의 경험이 나에게 이어지고,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참조사항이 되면서 우리를 사회적 존재로 엮어내는 그런 관계의 단절" 이다. "이는 경험의 전승을 통해 존속해온 사회를 위태롭게 하고 서로의 지혜를 모으기 위해 둥그렇게 둘러앉아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정치 또한 불가능하게 한다. 그 결과 개개인의 삶도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아니라 파편화된 에피소드들의 연속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연속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결국 이 사회에서 성장을 꿈꾸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말과 다름 없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조직 내의 문제가 공론화를 통해 해결되지 못하고 '폭로와 매장'이라는 독특한 정치행위로 귀결된다. 문제를 해결할 수있는 공동체의 무능과 무관심, 혹은 편향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겠으나, 특히 요즈음 소셜 미디어를 통한 딱지붙이기와 매장시키기는 나도 볼 때마다 후덜덜하다.

다듬어 지지 않은 몇 마디 말을 두고 '내 저럴 줄 알았다'거나 '완전 실망이야' 하면서 온라인 상 허공에 까대는 것이 과연 저항 운동인지조차 의심스러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최근 트윗 상의 '페미니즘 논쟁'도 불편한 마음이 한 가득이다 ㅡ.ㅡ)


'기획된 친밀성' 현상을 드러낸 것도 인상적이었다. 사회학자란 역시나 허공에 떠돌며 흩어지는 현상들에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는 자들이다. ㅋㅋ

나의 또래이자 가난한 가정 출신인 저자가 경험한 부모와의 관계는 나와 매우 비슷하다. 나의 부모 또한 나를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문화적 자본이나 사회적 권위가 없었다. (물론, 본인이 배운 게 없어도 성인이 된 자식들을 함부로 대하고 휘두르려는 부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획된 친밀성이 친밀성에 대한 과시로 나타난다는 관찰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특히나 부모자식 관계에서 이러한 과시는 자녀들의 사회적 관계망 차단과 성장지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주변에 이러한 사례의 목격담은 사실 차고 넘친다... ㅡ.ㅡ

 

자신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서는, 즉 '점검하는 삶'은 멈추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구절 또한 인상적이었다.

나에게도 멈춤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가도, 여기서 뭘 더 멈추나 싶기도 하고.... ㅡ.ㅡ  


참, 경청을 통해 깨닫는 것은 "자기도 모르는 자기의 삶, 즉 자기 삶에 내재되어 있는 타자성"이라는 설명에 아주 아주 공감했다.

 

 

# 커트 보네거트 [Sirens of titan]

 

타이탄의 미녀
타이탄의 미녀
커트 보네거트
금문, 2003

 

동작도서관에 책이 없어서 킨들 버전으로 구매했다. 아마존에 그렇게 악플 많이 달린 거 정말 첨 봤는데, 책 내용에 대한 악플이 아니라 킨들 버전 편집 좀 제대로 해서 내놓으라는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좀 걱정을 하긴 했으나, 못 읽을 정도는 아니고, 게다가 등장인물들이 '정상'이 아닌 경우가 많아서 이들 자체가 말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편집 상의 오타인건지 구분하기도 쉽지않았다는 슬픈 사연...

 

처음에는 우스꽝스러워 미치는 줄 알면서 시작했는데 책을 다 읽어갈 때쯤, 서늘함과 심지어 서글픔의 정체는 무엇인지 좀 당황스러웠다. 인간의 자유의지란 뭐지??? 우주 속 존재의미는 뭐지???

 

더글라스 아담스의 Mostly Harmless 보다 더 짠한 지구의 역할에 빵 터지기는 했지만, 그냥 웃을 수만은 없더라는 사연.... 

 

화성과의 전투 이후 지구에 나타난 신흥종교의 신, "God the almighty utterly indifferent"
에피쿠로스 왈, 신이 우리에게 신경을 쓴다고 믿는 것은 아주 헛된 짓. 신이 불멸성과 완벽성을 획득한 뒤부터는 우리에게 상도 벌도 내리지 않는다... ㅋ

 

보네거트 소설은, 읽을 때는 낄낄거리며 웃다가 책을 덮을 때 쯤이면, 어두운 기운이 저 심연으로부터 휘몰아치는 것 같은 서늘함을 던져준다. 그래서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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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다는 것

한 살 씩 나이를 더 먹어가면서 지혜가 급속도로 늘어난다거나 삶의 혜안이 눈부신 아우라로 비추는 일이란 좀처럼 기대도 안 했다.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았고.....

 

나이듦의 가장 분명한 징후는 죽음이 점차 가깝고 익숙한 일이 되어가는 것인듯 싶다.

 

 

후배 J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익히 예상은 했지만 그 젊음이 안타까워서 슬픔보다는 이게 다 뭔가 싶은 허망함이 더 컸던 것 같다.

 

 

작년 2014년은, 많은 그리고 어처구니 없는 죽음으로 기억된 한 해였다.

 

새해를 맞이할 때만 해도, 꿈에도 그리던 파타고니아로의 여행이 가장 한 해의 강렬한 기억이 될 줄 알았더랬다. 하지만 세상은 온통 소용돌이...

 

이별의 실감은 일상 중에 섬광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아직도 잠정적인 것만 같다.

그냥 오랜만에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어제 만났던 양 수다를 떨수 있을 것 같다.

장과 공유했던 오랜 시간 덕분에 여기저기 남아있는 흔적들 ㅡ 이란에서 사다준 작은 접시, 따가운 남미의 태양에 대비하라고 골라준 선글라스, 대리국에서 새겨다 준 책도장...  심지어 출장 길에 사다준 실론티는 아직 뜯지도 않은 채 선반에 놓여 있다.

 

중환자실로 내려가기 직전, 장이 "나 이렇게 죽는 거니?"라고 물었다. 내가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고 피식 웃어줬다. 드라마 너무 많이 봤다고....  그 전날 밤, 옆자리 환자의 임종에 괴로워하는 문자에,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니 너무 괘념치 말라고, 뭔 위로 같지도 않은 시답잖은 답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는 모두 거짓말이 된 셈이다. 그렇게 중환자실에 내려가서, 하루 여기서 푹 쉬고 다시 올라가자, 라고 이야기한 게 마지막 대화였다. 그녀가 사그라지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 자연에는 의미가 없다고 무수히 되뇌었지만, 결코 괘념치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주에는 선배 형 부인이 돌아가셔서 광주로 문상을 다녀왔다. 환자 본인이나 돌보는 가족들이나 모두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낸 듯 했다. 형은 생각보다 차분했고, 밥을 먹으면서 프리모 레비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형도 최소한 그에게는 스스로 존엄하게 자신의 삶을 종결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종결할 만한 자격"이라는 게 무엇인지는 나도, 형도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부고 연락을 받고, 지인들에게 이를 다시 알리고, 기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상심했을 선배 형을 생각하고, 또 죽음이라는 단어에 자동으로 재생되는 장과의 마지막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나이든다는 것이란 이 모든 일에 점차 익숙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정신의 누더기 상태도 좀 더 빠르게 회복하거나, 혹은 그 누더기 자체에 익숙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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