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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월급 작은 우리 연구소의 비장의 활동가 유인책... 3년 근속 시 한 달의 유급 안식월 휴가..
나는 원래 작년에 쓸 수 있었는데 미친 듯이 일이 몰려드는 바람에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어서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가고, 올해는 꼭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작년 하반기에 덜컥 예약을 해버렸다.
돈이 어마무시하게 비쌌지만, 한 달씩이나 받은 휴가로 그저 가까운 데에 다녀오기는 아쉬운지라, 뭔가 멀어서 그동안 가지 못했던 곳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게 바로 파타고니아....
도대체 어디에서 파타고니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건지, 또 Punta Arenas 라는 도시의 이름은 어디서 주워들은 건지 모르겠으나, 내 무의식 어딘가에 설명 못할 로망이 자리잡고 있다가 툭 튀어나온 게다.
이러한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간과, 할부를 두려워하지 않는 작은 용기? (ㅜ.ㅜ)
물론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너무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십수년 전에 크라운을 씌운 어금니의 극심한 통증과 예상치 못했던 신경치료, 그리고 아빠의 통풍 재발로 인한 입원... 알코올 규제 보고서 마감은 이런 일들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었지..... 치통은 너무나 견딜 수 없어서, 불구대천 원수들이나 대역죄인들은 앞으로 치통지옥에 보내야겠다는 망상에 빠져들기도 했지... ㅡ.ㅡ
그래도 어쩌나.... 떠나야지....
#1.
뱅기 두 번 갈아타고 30시간 걸려서, 서울에서 줄기차게 땅 파면 나온다는 Buenos Aires 에 도착했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만신창이....
첫 환승지 디트로이트에서 남긴 메모 "이제 40%의 비행 완료했을 뿐인데 다 죽어감. 홍삼즙 먹고 여행이라니 ㅠㅠ"
부에노스 아이레스 공항 입국장의 엄청난 환영 인파에 깜놀... 수많은 가족들과 손님맞이 영업맨들이 손팻말을 들고 큰 소리로 인사말과 따뜻한 포옹을 쉴새 없이 주고받는.... 여긴 정말 따뜻한 나라여 ㅋㅋ
호텔에서는 다행히 이른 시간인데도 체크인을 해주어서, 일단 씻고 좀 쉬었다 나들이 시작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일단 호텔주변 맛집을 전광석화처럼 검색하여 피자집 픽업.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많아 그곳 음식점도 많더구만.... 스페셜티 FILO 피자 먹었는데 겁나 맛있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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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고 슬슬 Santa Fe 거리를 통해 아테나 서점까지 걸어감. 아름다운 공간, 극장보존의 놀라운 창의성을 보여줌. 태양이 작렬하여 뜨거워 죽는 줄 알았으나, 가는 길 도중, 호텔에서 가까운 San Martin 공원에서는 전혀 다른 세상.... 시원하고 청량한 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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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돌아오니 투어리더가 엘리베이터 옆에 붙여 놓은 공지사항....
이 인간은 손으로 글씨를 쓴 건가, 발로 쓴 건가.... 독해에 엄청난 시간이 걸렸지 뭔가... ㅡ.ㅡ.
특히 미스테리한 a의 쓰기 방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함....

#2.
다음 날 점심에 투어 미팅이 예정된지라, 오전에 자유 시간....
아침 먹고 catedral metropolis 방문 ㅡ 도대체 뭐가 그리 일급정보인지 겨우겨우 번역기 돌려서 미사 시간을 알아냈는데, 정작 가보니 인터넷 정보와 다름.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마침 딱 미사 시간.... ㅡ.ㅡ 크자님 꾀임에 빠져 미사 참여. 연로하신 신부님이 강론을 엄청 길게 열정적으로 하는 바람에 한 시간 반이나 진행... 어이쿠... ㅜ.ㅜ
엄마 선물로 여기 출신 프란체스코 교황 기념품 장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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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Rough Guide에서 보았던 mustard attack 당함. 하지만 우리는 현명하게 대처함 ㅋㅋ 옷에 얼룩이 남았지만 그래도 털리지는 않음. 정말 책에서처럼 뭔가 옷에 튀었음을 감지하고 돌아본 순간, 닦을 휴지를 들고 친절한 아저씨가 갑자기 거짓말처럼 나타남 ㅋㅋㅋ 우리는 물론 노땡큐하고 직진.... 역시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은 아니고, 최소한 쫄딱 망하지는 않는다는 진리....
#3.
점심을 호텔 근처 카페에서 엄청 맛난 에스프레소와 페스트리 먹고 익스플로어 그룹에 조인, 리더 Ramiro 설명 듣고 서로 인사 ㅡ 투어 그룹은 런던, 맨체스터, 요크, 시드니, 홍콩, 한국 등 다국적군으로 구성됨.
이후 로컬 가이드 안나와 함께 시내 투어. 대통령궁 ㅡ 오월 광장 ㅡ San Telmo 벼룩시장 ㅡ Boca 지구 ㅡ 신도시 거쳐 Recoleta cemetry.
오월 광장 어머니들의 하얀 스카프 이야기 듣고 숙연해짐. 감히 아무도 저항하지 못하던 엄혹한 군사독재정권 시절 아기 기저귀를 상징하는 하얀 스카프를 두르고 엄마들이 ㅠㅠ
경제부를 비롯한 정부 주요 청사와 대통령 궁, 의회가 옹기종기 모여있어서 데모하기는 딱 좋다는 오월광장...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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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이동하여 San Telmo 거리의 주말 벼룩시장 구경.... 시장 한 가운데에서는 즉석 공연....
탱고는 영화에서처럼 날렵한 선남선녀들이 아니라, 나이도 많고 후덕하신 분들이 추는게 오히려 포스가 느껴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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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미 불평등 심한 거야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정말 심하기는 하더라니....
이주민들이 초기에 남쪽 구역에 정착했다가 북쪽으로 이주하면서 전반적으로 남쪽 구역의 동네들이 황폐화했고, Boca 지구는 전형적으로 쇠락한 동네 중 하나....
마을을 되살려보겠다는 예술가의 열정 덕에 아름다운 색채로 물든 이색 관광명소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보는 마음이 편치는 않음.... 뭐랄까 빈곤을 전시한다고나 할까? 이동하는 길에 마주한 구 항구지역의 황폐함과 달동네는 초라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비해 신도시는 분당이나 뉴욕 저리 가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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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leta 묘지는 생각한 것과 매우 다름. 통상적인 묘지에 비석이 세워진 곳인 줄 알았는데, 이건 뭐 영생을 누리겠다고 돈지랄들을 한 건지 ㅠㅠ
마침 전 날이 여성의 날이라 에바 페론의 묘지에는 꽃이..... (사실 일년 내내 이렇게들 꽃을 가져다 둔다고..... 페로니즘도 참 특이한 정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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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어제 봐둔 El establo에서 스테이크에 와인, 대박!!!
이렇게 맛있는 고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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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가 넘어야 식사가 시작되는 괴이한 풍습에 놀라기도 잠시...
내일은 Ushuaia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3시 30분에 출발해야 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
사람들의 괴성에 라미로가 이번 한 번뿐이라며 막 달램.... 이렇게 희대의 사기극이 시작된 것이었지..... ㅋㅋ
지난 달에 다녀온 여행을 이제사 정리...
도대체 트레킹과 등반의 차이가 뭔지 아직도 모르겠는데,
트레킹으로 알고 병약한 박박사를 꼬드겨 같이 갔다가 산에서 살해의 위협을 느꼈더랬다.
소개글을 대강 읽어서 4km 만 눈에 담아 두었더니, 오르막길만 4km.... 심지어 둘레길 정도의 산책이 아니라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마냥 쉽지만은 않은 코스...
*
광주에 혹은 광주를 기점으로 삼아 남도 지역을 무수히 다녀보았지만, 막상 무등산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환상적인 풍경 사진을 보고 냅다 신청했지만, 가는 도중에는 날씨가 하도 따뜻해서 눈꽃은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안내를 들어야 했다.
그래도 신기하게, 산 입구에 들어서니 눈이 아직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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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거짓말 같이....
조금 올라가니 믿을 수 없는 아름다운 정경들이....
날도 춥고, 생각보다 등반객들이 많고, 심지어 오르막길이 꽤나 길어서 힘들기는 했지만 정말 풍광은 굉장했다. 흩날리는 눈발과 안개낀 눈꽃 숲은 몹시도 아름다웠다.
그 높은 곳의 주상절리가 신기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
나도 오랜만의 산행이라 힘들기는 했는데,
옆의 환자가 폐를 쥐어짜는 듯 헥헥거리고 있어서 도저히 힘든 내색도 할 수 없었다. ㅡ.ㅡ
정말 나를 죽일 것 같았지... 나도 피해자라 말해도 소용 없었다는... ㅜㅜ
하지만 내려오는 6km 의 눈덮인 조용한 임도는 완만하고도 포근한 산책로 그 자체여서 그간의 어려움을 모두 상쇄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돌아보니 벌써 한 달 전이다...
저런 아름다움과 장엄함의 기억을 에너지로 삼아, 또 일상의 삶을 이어간다.
어영부영하다보니, 이제 봄나들이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앙드레 고르 할배께서는 일찍이, 생산력이 눈부시게 발전하니 이제 기본소득 받으면서 최소한의 억지 노동만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뭔가 보람찬 일을 하면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는 아름다운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제레미 리프킨은 천만의 말씀, 생산력이 눈부시게 발전하니 이제 인간 노동력 필요없음, 노동의 종말 시대가 올 것이로다... 인간들 불쌍해서 어쩌나.... 대안 에너지 산업 같은 다른 일자리 만들어야지 안 그러면 큰일난다고 충고하셨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자면, 심정적으로 앙드레 할배를 지지하지만 제레미 할배가 현실에 더 잘 부합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 주에 읽은 미국 정치학자 크렌슨과 긴스버그의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는 비단 생산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에서도 잉여인간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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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 매튜 A. 크렌슨 & 벤저민 긴스버그 후마니타스, 2013 |
오호 통재라... ㅜ.ㅜ
노동시장에서도, 정치의 장에서도 이제 인간들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니... 우리는 이제 매트릭스에 에너지나 공급하면 되는 존재들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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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그 어느 때보다 참여의 '기술적' 기회는 증진되고 있는데, 그깟 '사람'쯤은 필요도 없는 정치라니.... 이 책에서는 정치엘리트들이 더이상 대중을 동원하지 않고, 그들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권력을 유지하고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진단한다.
저자들은 이를 '대중민주주의'와 구분해 '개인민주주의'라고 지칭했다. 그들이 보기에 이러한 현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낸 에피소드라면,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동료 시민들을 돕기 위해 뭐라도 하려 했던 애국적 시민들한테 부시 대통령이 했던 말 - 뒷수습은 정부가 알아서 할테니 시민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하던 대로 열심히 쇼핑을 하면 된다고 했던 것이다. 이건 미국 건국 이래 전쟁을 하기 위해 더 많은 이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징병을 하고, 또 집권을 위해 노동자를 조직하고 소수인종 지역사회를 조직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바야흐로, 시민들의 참여나 지원, 적극적 의지의 표명 따위는 개나 줘버려야 국정운영이 제대로 된다는 것이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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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의지를 대표한다는 좋은 뜻이든, 대중을 이용해먹었다는 나쁜 뜻이든, 정치엘리트들은 그렇게 '대중'으로부터 권력의 기초를 확보했고 그들이 있어야 무언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소위 '개인 민주주의' 시대에는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권력에 접근하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다.
예측하기도 어렵고 조직화에 노력이 필요한 대중들은 없어도 그만이다. 엘리트간 갈등 수준이 높아질수록 정치적 지지를 동원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따라서 대중 참여도 증가할 것이라는 고전적 대중 동원이론은 이제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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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노동현장에서 지역사회에서 시민들을 조직하고 동원하던 수고로움을 이제는 시장, 법원, 행정절차가 '덜어주고' 있다.
정당들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더이상 기울이지 않으며 막대한 선거기금을 활용한 공중전에 집중한다. 그러다보니 선명성을 부각하기 위한 '정쟁'이 격화되고 일반 시민들의 정치의욕은 더욱 약해진다. 예비경선, 정당 공천 없는 선거는 정당정체성이나 평소의 정당 조직화 수준보다는 이슈나 이념, 정책 선호에 따라 향배가 결정된다. 교육받은 중상계급의 관심과 선호, 참여가 상대적으로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 정치 또한 대중을 탈동원화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강한 주장을 갖는 의견과 조직화에 드는 비용을 대신해주며, 그 결과는 '집단'의 의견이라기보다 '개인의 합'으로서의 의견일 뿐으로 간주되며, 무엇이 의제가 될지를 사전에 결정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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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 생각하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전문적 기술역량을 갖춘 (심지어 한국에서는 댓글달기 능력까지 있어야 하잖아.. ㅜ.ㅜ) 관료체계는 행정과 정치를 분리시켰다 당연하게도, 이렇게 되면 행정은 대중을 '동원'하는 일 따위에 관심을 가져서도 안 되고, 가질 필요도 없다. 시민은 이제 주권자가 아니라 행정서비스의 소비자가 된다.
이러한 흐름의 본격화된 것은 소위 '혁신의 시대 (Progressive era)'였다고 저자들은 진단한다. 당시 혁신주의 흐름은, 기존의 정치/경제/사회 체제가 부패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진단하고 이를 '깨끗하고 효율적인' 체계로 변화시키는데 초점을 두었다. 이 과정에서 정당제도, 선거제도, 관료제의 부패와 비효율이 주된 개혁 대상이었고, 당연히 이를 통해 '정치의 영역'은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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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시민단체들도 풀뿌리에서 시민들을 조직하고 힘으로 정치권과 기득권 세력을 압박하기보다 워싱턴에서 로비를 하고 씽크탱크를 운영하고 소송을 통해서 원하는 것은 얻는다.
메일링리스트로만 존재하는 회원들은 회비만 내주면 그만인데, 그나마 소송이나 정부 기금을 통해서 재원을 마련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개미회원들의 회비도 그리 절박한 것은 아니다.
노조도 조직률은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중앙무대에서의 로비를 통한 정치활동은 더 활발해지는 역설적 상황이 낯설지 않게 된다.
제도적 차원에서 적극적 차별 시정 정책을 강화하고 소송을 통해서 그 범위를 확장하고 지키는 것 또한 집단 동원과 투쟁을 약화시키고 소수인종 중상계급을 분리하여 불평등 강화로 이어졌을 뿐이다.
시민단체들의 의제 또한 탈동원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오늘날 시민운동을 대표하는 생태주의, 삶의 질을 표방하는 탈물질주의적 지향은 중산계급의 담론이다. 즉 물질적 복지보다는 안락함과 지위, 심미적 만족이라는 부유한 엘리트들의 협소한 욕망이 운동의 초점이 되면서 삶의 조건 개선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조직하고 동원하는 것은 그닥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버렸다. 저자들은 극단적으로 "탈물질주의는 가난을 비껴간 시민들의 신념"이라고까지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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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공립학교를 개혁하기 위해 학부모가 지역사회가 조직화를 하고 항의를 했지만, 이제는 바우처를 이용해 더 나은 학교로 이동해버리면 그만이다. 바우처 제도야말로 공공정책을 '사적 결정'으로 순치한 어마어마한 수단이다. 민영화의 어떤 메커니즘보다 확실하게 시민을 '고객'으로 바꾼 것이 바로 이 바우처 제도라 할 수 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구호는 '정치적인 것이 개인적인 것'으로 뒤집혔다. 그래서 바우처 제도 반대쪽에서, 집단적 저항운동은 개인의 '봉사활동'으로 순치되었다. 정치활동은 혼란이나 모호함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성취와 역량 강화가 동반되는 개인들의 그 무엇이 되었다. 여기에서 자발적 행동주의는 집단적 반대를 사회봉사와 치유 노력이라는 풍경 속에 은닉'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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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문제의식과 진단에 동의하면서 장탄식을 늘어놓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탈동원화의 문제가 한국사회만큼 극적으로 진전된 곳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국민경선제니,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같은 정당 자해적 개혁조치가 정당으로부터 나오고, 또 시민사회에서 수용되는 현상을 보면 그야말로 곡소리가 절로 날 지경이다. 아주 꼴도 보기 싫은 바우처 제도에 대한 비판이나 '봉사' 문화에 대한 지적, 소위 '정부혁신'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탈정치/탈동원화의 문제에 대해서도 100% 동의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 책을 읽는 내내, 결국 저자들은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다운 과거' - "대중민주주의가 펄펄 살아 숨쉬던 그때가 좋았지" 라며 실재하지 않았던 ideal 에 사로잡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암묵적으로 저자들이 지향하는 '대중민주주의'란 것이 도대체 뭔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행진을 하는 것, 노동조합에 정당에 등록을 하는 것, 투표장에 적극적으로 달려가는 것. 이런 것이 대중 민주주의의 전부인가???
게다가 저자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의심', 활동에 대한 '의심'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에 이타적 인간은 존재하지 않고, 연대나 헌신은 과거 그 어느 시기에 존재했다던 전설 속의 그 무엇이 아닌가 싶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시민단체라는 것들은 다 자기 조직 보전하려고 활동하는 거다, 소위 '직업적 사회운동'은 소수의 상근 직원들에 의해 운영되며 오로지 상상된 이해 당사자들을 대표한다, 집단 소송이라는 게 결국은 변호사들이 돈벌이하려고 조직하는 거다, 담배 소송처럼 정부나 시민단체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하면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배상이 돌아가기보다 결국 타협과 야합으로 끝나서 해악은 계속되고 정부나 시민단체, 변호사들만 돈번다, 넷스케이프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부당독점으로 기소한 것은 시장에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으니 시장과 광범위한 대중이 아닌 '판사만 설득하면 되는' 법정으로 가져간 것이다, 더많은 의료보장을 위해 지출하라는 '이익단체'는 절대로 저절로 생겨나는게 아니라 기업가적 정치인들이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이건, 사실 한국사회에 굉장히 익숙한 레토릭이다. 시민단체 명망가들이 다들 나중에 자기 출세하려고 이용해먹는 거다.... 그런데 결국 이런 논리가 가져온 것은 엄청난 탈동원화와 무력화 아닌가 말이다.
저자들이 생각하듯 세상에 선의, 연대의 진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대중 민주주의란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세상에는 충돌하는 '이해관계'만이 존재하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동원하고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권력을 둘러싸고 투쟁하는 것만이 정치이고 대중민주주의인가???
이를테면 환경이슈가 반드시 중산층의 탈물질주의적 지향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 빈곤지역에 환경피해가 집중되는 환경 부정의의 문제이자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의 전국민건강보험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모두 다른 속내를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거대공룡 마이크로소프트의 부당행위에 맞서기 위해 넷스케이프가 법정이 아니라 시장에서 정정당당하게 (?) 싸워야 했단 말인가? 소비자들을 조직해서 불매운동이라도 했어야 한다는 말인가???
한 마디로... 이 저자들의 밑도 끝도 없는 인간 불신에 기분이 나쁘다.. ㅜ.ㅜ
이렇게 인간을 못 믿으면 대중민주주의 절대 못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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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저자들이 지적한 요소들 - 시장, 관료제, 여론조사, 로비와 씽크탱크 같은 - 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대중민주주의를 저해하고 있는가, 유심히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같다. 한국은 진보고 보수고 간에, 미제라면 다들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서리...
지난 한 주는 참, 어두운 소식들이 끊이지 않는 이상한 한 주였다. 초현실적이었던 박상표 선생님 부고도 그랬고, 친한 지인들의 개인적 수난들도 참 그로테스크했다...
정말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찬 망망대해인가 싶다.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이 우리를 진정으로 구원할 수 있을까?
우연히도, 지난 2주 동안 삶에 대한 책과 영화를 읽고 감상했지만, 정작 이런 일들에 대처하는데 어떤 용기와 지혜를 주었는지는 잘모르겠네 그려.. ㅡ.ㅡ
#. 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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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11 |
지난 가을 무렵에 문을 연 동네 도서관에는 새 책이 그득했다. 읽고 싶었던 리차드 세넷의 책들, 사회과학 서적들은 찾아보기 힘든데 그대신 예술이나 문학, 소프트 버전의 인문학 서적들은 꽤나 갖춰져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모두 반딱거리는 새 책이라는 점이 장점....
보통의 이 책은 사실 제목을 '행복의 예술'이라도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작정하고 예술을 의도한 작품과 달리 건축물이란 일상 속에 존재하고 특히나 '실용성'이라는 목표가 있는만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소비되고 감상할 지점이 있는 예술품이라 할 수 있겠다.
가장 마음에 남는 문장들은 이것들이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작품이란 우리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투사를 견딜만한 내적 자산을 갖춘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도모른다. 그런 작품은 좋은 특질을 단지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현한다."
(나같은 경우) 예술작품이 감상 당시의 맥락이나 감정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비해, 돌이켜보면 정말 위대한 작품들에서는 그런 감정과 맥락 없이 그 자체로 경이와 감동을 느꼈던 것 같다.
"사회는 무엇이든 자기 내부에 충분하지 않은 것을 예술에서 찾고 사랑한다...."
그러게나, 각박한 기술문명사회는 자연을 동경하고, 기술적으로 낙후된 사회는 '첨단'의 이미지를 선호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 사회는 독특하다. 이제는 기술/첨단/규모에의 집착을 버릴 때도 되었다 싶은데 말이다.
노발리스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예술작품에서는 질서의 베일을 통해서 혼돈이 아른거려야 한다'. 정말 탁월한 진단이 아닐 수 없다.
#. 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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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의 위안 -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12 |
그야말로 다양한 '위안'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위안을 얻으려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만일 위안이 필요해서 읽었더라면 대실망했을 것 같다. 절박하게 위안이 필요한 급성기 환자보다는, 만성적으로 인생에 회의하는 이들에게 살짝 고개를 돌려보라고 제안하는 일종의 nudge? 정도로 생각하면 충분할 듯하다.
책은 크게 여섯 가지의 위안이 필요한 사람 혹은 상황에 대해서, 여섯 명의 철학자들의 입과 생활을 빌어 '그렇지 않아' 라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인기없는 존재 - 소크라테스 / 가난한 존재 - 에피쿠로스 / 좌절한 존재 - 세네카 / 부적절한 존재 - 몽테뉴 / 상심한 존재 - 쇼펜하우어 / 어려움에 처한 존재 - 니체" 가 그것이다.
문제는, 스스로 저런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감히 언급된 철학자들의 처지와 가르침을 떠올리며 위안을 얻을 것 같지는 않더란 말씀....
이를테면 모든 통념에 대한 질문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드러냈기 때문에 사람들을 온통 불편하게 만들었던 인기없는 존재 소크라테스를 이야기하며, "소크라테스의 예를 따라서, 늘 이성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최고의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고 이야기하는데, 글쎄다. 많은 사람들이 인기가 없는 이유가 그들이 세상과 불화하는 소크라테스, 혹은 랭보나 보들레르이기 때문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ㅡ.ㅡ
또한 정상과 비정상성에 대한 편견을 비판하고 현학을 멀리했던 몽테뉴의 가르침을 따라 "평범하고 도덕적인 삶이라면, 비록 지혜를 얻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우둔함에서 결코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성취를 이룬 삶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위안을 얻을만큼 우리가 순진하지는 않다.
"철학의 임무는 우리의 바람이 현실세계의 단단한 벽에 부딪힐 때에 가능한 한 부드럽게 안착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는 동의하지만, 이것이 정신승리와 현실 굴종의 내면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한에서 말이다.
사람들은 이런 책 혹은 이런 종류의 위안/힐링 강연에서 도대체 무엇을 얻는 것일까? 보통이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서 거듭 이야기했듯,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사람들은 도통 알지 못하고, 수학이나 문학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치는 학교가 필요하다는 진단과 무관하지 않겠지...
#. 벤 스틸러 감독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너무 전형적이긴 한데, 순간순간 빵 터지는 코미디와 아름다운 풍광에 나도 모르게 마음을 뺏겨버린 영화라고나 할까.... 사실 아무 데도 가본 곳이 없고, 특별한 일이라고는 없는 월터의 일상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왔기에 딱히 로망을 가질 만한 것은 없었지만, 어쨌든 모험을 떠나는 소심남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고 응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린란드 항구 마을, 아이슬란드 화산 도시, 아프가니스탄 산자락이 모두 사실은 아이슬란드 였단다. 시규어 로스의 뮤직비디오에서 마주쳤던 풍광을 떠올렸었는데 역시나....
누군가 '현재' 우울한 사람이 있다면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 보다는 이영화를 추천해주겠다.
#. 연상호 감독 <사이비>

이 영화는 '위안'이라는 단어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말종이 진실을 말하고, 신을 참칭한 사이비들이 그 인간말종으로부터 응징을 당한다.
하지만, 이런 인생의 아이러니는 이 영화가 던지는 불편한 질문의 일부에 불과하다.
터무니 없는 사이비로부터 진정한 위안을 얻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진심어린 표정이야말로 이 세상이 얼마나 난해한 곳이며 인간이란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지를 보여주었던 것 같다. 보상금을 모조리 기도원 건립기금으로 갖다 바친 마을 주민들, 치료약이 아니라 반석 샘물을 마시며 병을 키워나가는 마을 주민의 모습에서 우리가 본 것은 광신자들의 기괴함이나 어리석음이 아니었다. 답답해 미칠 것 같았지만, 어쩐지 그 평화를 깨뜨리면 안 될 것 같았다.
또한 세월이 흐른 후, 신을 비웃으며 사이비들을 응징했던 인간 말종이 자신만의 '진정한' 신앙으로 귀의해 있었다는 사실도 맘을 착잡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이비가 아니라 '진짜'라면 괜찮은 거였던 것일까? 진짜와 사이비를 가르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영화가 너무나 리얼해서, 실사가 아닌 굳이 애니메이션으로서 갖는 장점이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보았는데, 아마도 저 끔찍한 상황이 실사가 아니라서 조금 덜 부담스럽게 직면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이 내가 토종 서울 녀자라는 것을 알면 약간들 놀라는 경향이 있지만 (도대체 왜?)
나란 녀자, 사실 농활을 빼놓고는 농촌에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
게다가 농사일은 어찌나 몸에 안 맞는지, 농활이 열흘이었기에 망정이지 정말 더 길었다면 도망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쪼그려앉기는 정말 쥐약.. ㅜ.ㅜ
하긴, 본 1 때 갔던 Y 마을은 너무 외지고 일도 힘들어서 (여름담배농사... ㅡ.ㅡ) 하루에 두 번 다니는 버스가 마을길을 지날 때마다 팀원들이 넋 놓고 버스 꽁무니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했더랬지.... 지금 생각하니 참... ㅋㅋ
하여간, 과거는 이러했지만, 미국에 사는 동안 체리가 너무 맛나서 나중에 마당있는 집에 살면서 체리나무를 키워 배가 터지도록 먹어보자 하는 생각을 잠시 했더랬다.
하지만 아무래도 농사는 자신이 없고, 그렇다고 주말농장에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그래도 뭔가 내 손으로 키워보고 싶은 마음은 있고... 그러다 우연히 도시농부학교 이야기를 듣고 바로 이거다, 내내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침 지난 가을에 지역에서 도시농부학교가 열리길래 냅다 신청....
일단, 초등학생부터 70대 어르신까지 농사라는 한 가지 목적으로 모인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물론, 여전히 농사짓기 방식은 나의 적성과는 잘 맞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것 말이다. 천연 농약이나 비료 만들기 방법은, 어쩌구저쩌구 재로를 만들어 물에 1백배 ~ 5백배 희석해서 사용하라는 거다. 1백배에 5백배라니??? confidence interval 이 너무 넓지않냐는 말이다.. ㅡ.ㅡ 그리고 정리된 매뉴얼을 안 줘 ...
프로토콜에 따라 일을 하고 자료를 분석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게 다 부담이다 ㅋㅋ
하지만, 이런저런 우여곡적을 겪어가며,
특히 지난 해 하반기처럼 미친듯이 일이 바빴던 시절에, 조금씩 짬을 내서 코딱지만한 밭을 둘러보고 물을 주고 비료를 만드는 과정은 정말 뭐라 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에는 배추 떠내려갈까봐 걱정하고, 비가 그치면 민달팽이가 내 배추 다 뜯어먹을까봐 걱정하고.... 비싼 말보로 담배 얻어다가 맥주에 섞어서 달팽이 덫도 설치하고, 쪼그리고 앉아 나무 젓가락 들고 달팽이랑 벌레를 잡아내던 그 날들...
배추 안 쪽 깊숙이에 몸을 또아리고 있던 초대형 토실토실 애벌레의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침 일찍 밭에 갔다가 그 놈을 마주하고 혼자 비명을 질렀더랬지... 차마 발로 밟을 수가 없어서, 바위로 내리쳤던 (뭐야, 더 잔인해보이잖아.. ㅡ.ㅡ)...
어쨌든 마지막 수확 때에는 정말 감격만세 찍을 뻔 했다니까 ㅋㅋ
2013/09/03 정성껏 거지같이 심은 배추 모종... ㅋㅋ

2013/09/14 배추가 벌써 달팽이의 공격을... 과연 얘네들이 잘 클 수 있을까 걱정이...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2013/9/27, 10/05
하지만, 이건 우리가 평소에 보던 배추가 아니라 화초?


2013/10/14 배추는 날로 옆으로만 퍼지고, 사진을 보신 엄마가 의심을 하기 시작.... "니가 심은 게 배추 맞냐?" 응??? 잎사귀도 어찌나 억센지, 손가락을 다칠 지경... 선생님은 저절로 결구가 되는 품종의 배추라 묶어줄 필요가 없다고 하셨는데, 왠지 혼자 결구할 것 같지 않은 느낌적 느낌.... 달걀껍질과 현미식초로 만든 칼슘비료 열심히 뿌리며 기다리고 또 기다림....
파는 아무리 쪽파를 심었다지만 저렇게 미세하게 가늘 수가... ㅡ.ㅡ



2013/11/03 어쩐지 아마존 열대우림에서나 생장할 법한 야생배추의 탄생이 예고되는 마당에...
심지어 주차공원 관리아저씨마저 나한테 배추 좀 묶어주라고 조언을 하실 정도...
2013/11/08 주중에 같은 조원인 로피쉬가 귀한 지푸라기를 구해다가 드디어 배추를 묶어 주심... 배추야, 제발 이제 속을 채워다오.... 나는 파란 잎보다 보드라운 하얀 속 부분을 더 좋아한다구...


2013/11/21 드디어 수확..
배추를 열 포기 심었지만, 두 포기는 중도 사망, 두 포기는 너무 알이 작고 벌레가 많이 먹어서 포기... 그래도 여섯 포기라는 경이적인 수확률을 기록하고, 갓과 쪽파, 무우도 극소량 수확.... (사진 속의 쪽파와 무우는 세 사람의 수확물을 합친 것 ㅋㅋ)
막판에 묶어준 덕택에 배추가 제법 배추다운 모습...
어찌나 마음이 뿌듯하던지....



배추에 진딧물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 있는데, 우리 집은 담가놓고 씻을 곳이 없어서 부모님 댁으로 운반..... 결국 욕하면서 엄마가 다 다듬어주심 ㅋㅋ
무우가 하도 작다보니, 엄마가 혹시 열무를 심은 거 아니냐고 물어보심... ㅋㅋㅋ 그러게, 우리도 뽑아보고 깜딱 놀랐다니까.... 이건 뭐 무우 미니어처, 분재라도 되는 거야?


이 수확물들 중 무우는 엄마네 집 김장에 기념으로 들어갔고 (엄마가 나중에 나 다 먹으라고 ㅋㅋ)
나머지는 우리집에서 연구소 샘들하고 나눠 먹음....
배추는 겉절이와 배춧국 5인분, 갓도 겉절이 재료로, 그리고 3명이 수확한 쪽파는 달랑 파전 두 장 ㅋㅋ
하지만 어찌나 배추, 갓, 쪽파가 달고 맛있는지, 사람들 깜놀....
3개월 농사가 세 시간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마법이라니...
*
올해 가을에 또 하면 더 능숙하게, 당황하지 않으면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도시농부라는 말이 너무 예쁘면서도 씩씩해보이지 않나?
새삼, 농약의 중요성도 깨닫고 ( ㅡ.ㅡ 정말 생계로 짓는 농사인데 그렇게 벌레가 많으면 울어버리고 싶을 듯) 날씨와 절기의 변화라는 자연의 힘도 절실하게 체감하고...
지인들과 협동해서 뭔가 꼼지락꼼지락 일을 함께 한다는 것의 뿌듯함도 맛보고.....
이러니, 도시농부활동을 2013년 최고의 보람 사건으로 꼽지 않을 수가 없었더란 말이다....
원래 이런 글은 2013년 12월 30일이나 31일쯤 쓰여야 제 맛인데,
삿포로 여행 다녀와서 숙취와 (ㅜ.ㅜ) 아마도 인류 최후의 날까지 쪼아댈 것만 같은 마감의 압박에 그럴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언제 2014년이 왔는지 모르겠어... 흑....
여행 가 있는 동안 2013년은 어떠했는지 잠깐씩 돌아보며 몇 가지 키워드를 정리해두기는 했었다.
1. "보람"
#.
별로 고민할 것도 없이 대번 떠올린 것은 도시농부 활동이었다. 불질을 놓고 있던 차라 그 소중한 기억들을 그때그때 남기지는 못했지만, 정말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조만간 정리를 해야지...
사실, 지난 해 유난히 프로젝트에 쫓겨서 정말 정신이 없었는데, 그나마 코딱지만한 밭에서 땀흘리며 마음을 쏟아붓는 그 시간들이 없었더라면 정말로 마음은 황폐해졌을 것이다. 남들은 주경야독을 한다지만, 낮에는 일하고 밤에 가서 밭을 가꾸는 이중생활 ㅋㅋ
#.
처음 작업을 시작했던 시점으로 따진다면 거의 3년이나 걸렸던 반도체 건강영향에 대한 리뷰 논문을 드디어 마무리를 했다. 좋은 코멘트를 해주고, 발표의 기회를 마련해주고, 자료를 찾아주고, 영문 교정을 도와준 많은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도 완성을 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논문들에 '하나의 케이스'로밖에 헤아려지지 못한 노동자들의 건강과 노동권을 보호하는데 이런 작업이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랄 뿐이다.
#.
비판적 실재론에 대한 조금 더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싶어 S 선생님의 대학원 수업을 한 학기 동안 청강했다. 비단 실재론 뿐 아니라 사회과학에 대한 메타과학적 접근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강의와 읽기자료들을 조금 더 정리해둘 필요가 있겠다.
2. "즐거움"
#.
사실 (주지육림 때문에 힘들어서) 즐거움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ㅋㅋ
연말의 북해도 여행은 어쨌든 반가운 얼굴과 맛난 음식, 아름다운 풍광이 함께 했던 나날들이었다. 작년에는 특히 나들이를 몇 번 가지 못했는데 그나마 연말에 아쉬움을 달랜 격....
#.
닐 게이먼이 있어서 즐겁고 행복했더랬다. 그의 샌드맨 시리즈, 이어서 일본 여행 즈음하여 외전, 샌드맨의 사랑스러운 누나 DEATH 의 이야기를 읽었다. 이 언니 너무 멋지다....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녀, 세상의 문을 닫고 무대를 정리하는 그녀...
그녀가 이토록 매혹적이기 때문에 지상의 누구도 그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평생(?)의 과업이었던 Sigur ros 의 내한공연을 관람한 것은 역시 대사건이다. 물론 다른 공연들도 여럿 보았고 다들 좋았지만, 이 공연은 특히나 예상치 못했던 것이라....
예전에, 김광석이 1년에 수백번씩 공연을 하던 시절, 항상 다음 공연에는 꼭 가야지가야지 했는데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버렸고, 그 때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인생에 유보는 없다는 것.... 할 수 있으면 미루지 말자고.....
3. "당혹"
#.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한 일들 만큼이나 황당한 일들도 적지 않았다.
아마도 가장 황당한 것은 박사원정대에 참여했던 두 박사의 발병 아닐까 싶다. 한 박사는 소위 선진국형 중증질환에, 또 다른 박사는 소위 후진국형 소모성 질환에.... ㅡ.ㅡ
심지어 두 사람이 진단 시기도 비슷하고, (엄청난 중증도 차이에도 불구하고) 치료 경과마저 비슷하여 아연 실색.... 둘 다 처음 입원했을 때에는 하루 간격으로 두 병원을 뛰어다니며 문병을 하는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으니... 지금 돌아봐도 참 어이없는 일이기는 하다. 당사자들도 어이 없어 하기는 마찬가지 ㅋㅋ
지금이야 어쨌든 고비들을 넘기고 다들 평정을 되찾았지만, 가히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
일터에서 한 사람이 퇴직하면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각자 처한 입장이 다르니 똑같은 사실을 두고도 그에 대한 해석이 다르고, 감정적 반응이 다른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진심으로 대했던 모든 시간들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게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다.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민간기업에 다니는 친구들한테 이야기했다가 욕만 한 바가지 먹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개인적 배려'로 처음부터 근무시간/임금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나와 연구소를 비난했다. 이미 처음부터 잘못된 시그널을 충분히 주었기 때문에, 나중에 원칙 운운 해봤자 역효과가 난다는 주장이었다. 일견 수긍할 수 있으면서도, 여전히 회의는 남는다.
우리가, 대안적 세계를 지향한다는 연구공동체에서, 근태를 칼같이 점검하고 그걸 또 임금에 반영하는 게 바람직한 것 같지는 않다. 특히나 연구 활동이라는 것이 출근해 있는 시간에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쨌든 두고두고 씁쓸함을 남긴 사건이었다...
4. "후회"
뭐 후회할만한 일들도 널려 있다만... 단연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부모님과 함께 떠나려던 큐슈 여행이 취소된 것이다.
여행 일정 다 잡아놓고 아빠가 갑자기 통풍이 발병하는 바람에 그리 되었다....
그래서 경주라도 구경시켜 드려려 했는데, 그 때도 마침 무릎 통증이 재발하여 도대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부모님이 조금 더 건강하고 젊으셨을 때 모시고 갈 것을, 이제는 정말 영영 어디디에도 갈 수가 없겠구나 하는 회한이 몰려왔다.
그런데 또 이러한 회한의 특징은 평소에 잊혀졌다가 결정적 순간에 다시 반복된다는 것이다.
날이 좀 풀리면 나들이를 시켜드려야 하는데, 그런 때는 넋 놓고 딴 짓하다가 날 추워지면 아이고, 그 때 갈 것을.. 하는 뻘짓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ㅜ.ㅜ
정말로... 국내 여행마저 불가능해지기 전에, 올해에는 꼭 따뜻한 남도 여행을 시켜드려야겠다...
5. "아쉬움"
계획했다가 하지 못한 일들 또한 '무수히' 많은데, 특히 아쉬운 것은 프로젝트들에 밀려서 나들이를 충분히 다니지 못한 것, 불질을 거의 개점휴업한 것.. 그리고 몇몇 지인들과 한 달에 한 번 정도 북클럽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중간에 중단된 것이다.
*
전반적으로 '힘들고 괴로운' 한 해는 아니었지만, 너무나 일에 쫓기며 산 것은 분명하다.
지금까지도 그 잔재들이 남아서 나를 괴롭히고 있으니 말이다....
2014년 말에는 조금 덜 후회하고, 조금 더 "즐거운 아쉬움"으로 돌아볼 수 있기를....
hongsili님의 [홋카이도 여행_하코다테] 에 관련된 글.
원래 삿포로는 하루 정도 돌아보고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라는 비에이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J 가 극구 말림... 삿포로에도 볼 게 많다며.... 처음에 이 손님을 방치하겠다는 선전포고와 달리 친절하지만 나보다 그닥 나을 것도 없는 ㅋㅋ 그런 '숙련된 현지가이드'를 자처하는데, 차마 거절할 수도 없고....
그래서 결국 삿포로 이틀 머물면서 한 일은 오후부터 저녁 늦게까지 내내 술마시기..
남들 들르는 관광지는 술집을 이동하는 길에 잠시 눈도장 ㅋㅋㅋ
*
일단 삿포로 맥주 박물관!
독일에서 몰래 맥주 기술과 효모를 가지고 왔다는 믿거나말거나 '삿포로 맥주 문익점' 스토리를 전해주며, 가이드는 그 어느 때보다 뿌듯한 자부심을 내보임...
나는 맥주도 맥주지만, 그 당시에 유리병 제조를 입으로 불어서 했다는 데 더 깜놀... 도쿄까지 운반하기 위한 커다란 32리터짜리 맥주병 후덜덜



초기의 맥주 광고...
광고 그림을 보노라면 당대의 미인 기준, 그리고 주 소비계층을 파악할 수 있음. 초기에는 모두 통통한 일본 전통 미인 여성들이던 것이, 점차 서구적 미모의 여성으로, 최근에 와서는 남성으로 대폭 교체됨... 예전에는 술광고에 어린이도 등장함 ㅋㅋ

이 박물관에서 제일 웃긴 전시..
"우주에 갔다온 보리의 후손"으로 만든 스페셜 에디션 스페이스 맥주 ㅋㅋㅋㅋㅋ 이게 뭐라고 ..... 첨에는 우주에서 제조해왔나, 아님 비행사들이 이 맥주를 들고 우주에 나갔다왔나 했으나, 읽어보니 우주선에서 패트리디쉬에 탈지면 깔고 실험했던 보리 씨앗들의 소중한 후손이래 ㅋㅋ 근데 이게 또 한정판임....

마지막 시음실에서 전통의 '개척사' 시대 맥주 (약간 거칠고 텁텁한 편), 현재 가장 잘 나가고 있는 '블랙라벨', 그리고 홋카이도에서만 판매된다는 '클래식'... 와 진짜 환상의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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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맥주 시음하고 눈밭을 걸어서 팩토리 지역으로 이동...
거기에서 소위 '징기스칸'으로 일컬어지는 양고기 구이와 또 맥주...
소스에 찍어 먹어야 하는 생고기, 소금양념, 간장양념, 미소양념 구이를 골고루 야채와 함께 구워먹었는데, 정말정말... 이건 뭐 식신원정대도 아니고....
맥주도 이것저것 골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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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근처로 돌아오다가 스쳐지나간 오도리 공원 TV 타워와 시계탑...
우리는 식신원정대지 관광객이 아니라고 ㅋㅋㅋㅋ
사진도 엄청 대충대충 찍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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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도청사 관람.
점심에 홋카이도 대학에서 다시 현지 가이드를 만나기로 하고 오전에는 혼자 숙소 가까이에 위치한 구 도청사를 둘러 봄...
지역 역사를 볼 수 있는 작은 전시관을 마련해두었는데, 만감이... ㅡ.ㅡ
석탄 채굴에 사용되었던 당대의 보호장비를 보니, 후덜덜한게, 갱도에 들어가는데 헤드랜턴이 가스를 연료로 하고 있음... ㅜ.ㅜ

전쟁 독려 찌라시나 국채 같은 걸 유감 따위의 형식적 인사말도 없이 참 아무렇지도 않게 전시됨.
사할린 지역러시아/중국/한국과 사방에서 영토분쟁 중인데 이 곳은 마침 북쪽이니 러시아와의 영토 분쟁 지역을 떡하니 전시관 마련해놓고 우리땅이라는 서명까지 받고 있음... ㅡ.ㅡ



*
현지 가이드를 만나러 홋카이도 대학으로 이동...
찾아오라는 곳은 대학캠퍼스 동쪽 지하차도 입구.... ㅡ.ㅡ 뭐 이딴 데서 만나냐구...

홋카이도 대학은 몇 개 안 되는 제국대학 중 하나.
성문종합영어의 Boys, Be Ambitious! 로 유명한 클라크 할배가 처음에 농업학교로 세운 곳... 캠퍼스는 인적이 드물고 더구나 모두 눈으로 덮혀 있어서 한적하고 시골 분위기가 나는데, 붙어있는 연구소 이름표는 다들 후덜덜.. 심층해양, 극저냉동기술, 양자역학.... 여기 어느 연구소에선가 외계생물체를 연구하고 있다고 해도 하나 어색하지 않음... 2010년에는 노벨화학상 수상자도 배출..
그래서 대학박물관은 작지만 자부심 폭발 직전 ㅋㅋ




*
시내에 나와서 삿포로 라면 먹고,
근대 미술관 둘러보고
천상의 맛을 가진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맛보고,
다시 또 술집으로 이동... ㅡ.ㅡ
라면 맛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도 내 평생 먹어본 소프트 아이스크림 중에 단언컨대 최고....


*
시내로 돌아와 꼬치구이 집에서 간단히 맥주와 다종다양 꼬치들 시식...
정말 하나같이 맛난데다, 옆에 앉은 손님들이 술도 안 마시고 엄청난 양의 꼬치들을 먹어치우는데 깜놀함.. 술 퍼마시는 인간은 우리밖에 없음 ㅋㅋ
술 마시는 내내 정말 평범한 임상의사인 J 마저 노심초사 나라걱정... 이 나라가 우리 대학도 들어가기 이전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장탄식... ㅡ.ㅡ 그러게나 말이다....

*
막간에 JR 타워 전망대에 올라 야경 구경.... 하고 다시 사케집으로...

마침 이 날이 일본 기업들이 종무식하는 날이라, 삿포로 역 근처 번화가는 이른 저녁부터 떼로 몰려다니는 취객들로 가득...
요즘 한국 기업들은 연말이라고 달력을 나눠주는 일이 별로 없는데, 모두 비슷한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서류가방에 둥글게 말은 달력 하나씩 끼고 어깨 동무를 하고 서로를 부축이며 떼로 옮겨다니는 모습이 약간 낯설기도 하고 .... 이들이 온통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우리는 들어갈 곳이 없어서 거의 열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자리를 구걸... 겨우 마지막에 간발의 차이로 한 팀을 따돌리고 (ㅡ.ㅡ) 오뎅집에 입성...
즐겁고 뭔가 회한도 있어보이는 양복쟁이 직장인 무리 사이에서 이방인의 자유를 만끽하며 따뜻한 사케... 오뎅도 맛나고 무우가 특히 맛나더라는 ㅋㅋ

한국에 있을 때에도 몇 달에 한번씩밖에 얼굴을 보지 못하는 사이인데, 오랜 만에 후배랑 장시간 술 마시면서 옛날 이야기들도 하고 나라 걱정도 하고... ㅡ.ㅡ
선물로, 여행 중에 다 읽은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 를 주고 왔음...
그렇게 식도락 여행은 저물고....
*
돌아오는 날 아침 삿포로에는 역시 눈보라가.....

*
이번 여행은 혼자 조용히 책도 읽고 고민도 좀 정리해보는 차분한 여행으로 계획했는데,
고민이나 정리는 커녕 매일 저녁 주지육림에 빠져 사느라 아침에 일어나면 눈은 탱탱 부어 있고, 도대체 연말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상황...
하긴, 뭐 계획한 대로만 된다면 그게 무슨 여행이겠어.... 잘 짜인 공연이지...
오랜 지인을 만나 맛난 음식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짧은 찰라의 순간들에 이런저런 몽상과 반성에 빠져들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도 대만족....
그리고 성찰용 여행은 나중에 다시 도전 ㅋㅋ
hongsili님의 [홋카이도_여행_오타루] 에 관련된 글.
*
열차가 출발하자 마자 도시락!
에키벤.. 일본 철도 여행자의 로망 아닌가 말이다....
겨울 특선 계절도시락은 담백하고 맛났더군.


전광석화처럼 밥을 먹고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기 시작...
유앤미 블루의 낮은 음색은 겨울 여행에 안성맞춤... 뭔가 낭만적인 책이라면 더 좋았을지 모르겠지만 들고 간 책이 아마티야 센 할배의 '자유로서의 발전'이라는 게 함정... 사실 낭만적 기차여행에 어울리는 품목은 아니었더랬다.... ㅡ.ㅡ

하지만 이내 바깥 풍경에 정신을 빼앗겨 책이고 뭐고.... 센 할배 미얀... ㅡ.ㅡ
하코다테로 가는 기차 밖으로 내다본 풍경은 정말 너무너무 아름다웠는디,
설원이 있었고, 손에 잡히는 바다가 있었다. 이렇게 바다랑 가까워도 되는 건가???

사실, 작년에 JR 홋카이도에서 큰 사고가 났던게 바로 이 하코다테 선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는 ㅡ.ㅡ 어쩐지 그 흔들거림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ㅜ.ㅜ 밥 먹다가 젓가락으로 내 콧구멍 찌를 뻔 하기도 하고, 화장실에서 마치 비행기 기류 변동때와 같은 불안을 경험하기도 했지...
일본어 과외 선생님도 위험하다고 가급적 타지 말라고 하셨는데, 근데 또 딱히 다른 교통수단이 적절한게 없었서리.... 철도민영화로 인해 안전사고가 빈발하는, 국내 언론에도 많이 소개된 그 악명의 JR 홋카이도 노선을 타고 바깥 광경에 완전 홀리고 있었다는 안타까운 사연 ㅜ.ㅜ
어쨌든 그렇게 하코다테에 도착하니 해가 뉘엿뉘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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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J 가 가르쳐준대로 하코다테 산 전망대에 오르는 버스를 타러 갔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일본어 공부의 보람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푹풍같은 칭찬을... ㅋㅋ
겨울철에는 산간 도로가 미끄러워 버스 운행을 하지 않으니 케이블카를 타고 가야한다는 안내문을 내가 읽었던 것이다!!! 까막눈이었더라면, 추운데 계속 기다리다가 얼어죽지 않았겠냐는 말이지 ㅋㅋ
하여간 그래서 버스타고 로프웨이 타는 데까지 가서 거기에서 로프웨이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갔는데, 일찍이 세계 3대 야경이라는 안내를 볼 때부터 이건 또 무슨 개뻥이냐 했지만 역시나 ㅋㅋㅋ
항간에 중국이 세계 최고 뻥쟁이들인 것처럼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도 관광지 다녀보면 뻥이 그에 못지 않은 적이 여러 번 있어서 요즘에는 그런 안내 봐도 꿈쩍도 안 한다. 홍콩은 안 가봐서 모르겠는데, 그동안 여기저기서 야경을 둘러본 결과, 야경 하면 서울이 갑인 것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빽빽한 불빛들에 빨간 십자가 토핑이 있어야 역시 제대로 된 야경 ㅋㅋㅋ 그에 비하면 하코다테 야경은 참 수줍고 소박. 야경 찍으려고 삼각대 들고 갔는데, 꺼내서 찍기도 참 뭐하더라는.... 물론 바다를 배경으로 펼처지는 따뜻하고 동화같은 아름다움은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이 사진을 찍은 시간이 겨우 오후 5시 46분 ㅋㅋㅋㅋㅋ

야경 감상 후 내려와서 시장에 덮밥 먹으러 갔는데 아무래도 아침 시장이 중심이다 보니 문이 벌써 닫혀 있어서, 할 수 없이 꼬치구이 식당에 들어가 새우튀김 덮밥과 역시 삿포로 클래식 한 잔....
여행 가서 혼자 조리대 앞 테이블에 앉아 주방장 아저씨 바쁘게 손 놀리는 거 보면서 따뜻한 끼니와 술 한 잔 할 때, 그 때야 말로 정말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말이 통하면 뭐라도 이야기를 나누었겠지만, 벙어리 신세라...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국제 맥주 대회에서 1등 먹었다는 지역 맥주를 사가지고 가서 역시, 따뜻하게 씻고 난 후 한 잔.... 주지육림의 향연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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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엄청나게 맛난 조식을 먹고, 하루 전차 패스를 끊어서 일찌감치 코료가쿠로 이동.

서구의 기술문명에 커다란 자극을 받아 에도 시대 말기에 세워졌다는 별 모양의 성곽 구조 요새,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진격의 거인 방어선이 떠오름.
웃긴 건, 성곽을 빙 돌아서 폭 10미터 가량의 해자가 주욱 배치되어 있는데, 날이 추워서 다 얼어 있다는.... 적이 침입하면 걸어서도 건널 수 있음 ㅋㅋㅋㅋㅋ 이런 기후의 지역에는 어울리지 않는 구조물이잖아 ㅋㅋ


코료가쿠 공원 안으로 들어가서 당시 공무를 보았던 봉행소를 관람...
웬지 저 천장 어디, 문짝 너머에 닌자가 숨어 있을 것만 같더라는 ㅋㅋ
건물이 너무 빤짝여서 관리를 엉청나게 잘 한 건가 했는데, 안내 동영상 보니까 불과 3년전에 다시 지어진 것이라고... 어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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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전차 타고 모토마치 지구로 이동..
이 곳은 처음으로 일본이 개항을 해서 서구 문물이 유입되던 당대의 국제도시였던지라 당시의 영사관이나 교회 등 오래된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는 곳....
우선 항구 인근 이제는 각종 상업시설로 활용되고 있는 참고 지역으로 가서 점심부터...
유명한 스네이플즈 치즈케익을 먹었는데, 와.... 정말 천상의 맛.... 평생 먹어본 치즈케익 중에 제일 맛있다는 생각... 나중에 공항 면세점에 팔면 사오려고 했는데 안타깝게 ㅜ.ㅜ


따뜻한 커피로 에너지 충전한 후 아이누 족의 역사가 보존되어 있는 북방민족 박물관 관람..
사진에서 보는 아이누 족의 외모는 저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너무 심하게 털복숭이로 그려놓는 족자에 약간 당황... 저건 뭐여.. 인종주의인 게여? 그들의 모피 외투는 너무나 시크해보임



조금씩 눈발이 흘날리면서 흐려지고, 크리스마스였지만 일본은 특별히 이 날을 챙기는 분위기는 아니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고풍스런 분위기의 거리는 살짝 을씨년스러우면서도 뭔가 그윽한 분위기....
구 영국 영사관이랑 구 공회당 건물에 들어가보았는데, 뭐 건축물 자체야 특별히 놀라운 게 없었지만, 뜬금없는 '잉글리쉬 티룸'과 '드레스 코스프레'를 즐기는 사람들 모습에 빵 터짐... 첨에는 웨딩촬영이라도 온 사람들인가 했다니까 ㅋㅋㅋ




구 공회당 건물 안에서 소화 52년의 하코다테 시민헌장 발견....
뭔 놈의 헌장이 권리는 하나도 없고 이렇게 의무만 주구장창 써놓고 있냐... 한국의 국민교육헌장이랑 조상님이 같다보니 그런 거겠지 싶더라니... ㅡ.ㅡ

골목길을 거니며 그리스 정교회, 카톨릭 교회, 러시아 정교회 같은 오래된 교회 건물들을 둘러보고, 잠깐 작은 찻집에 들러 홍차 한 잔 마시며 한 숨 돌리기... 주인 아주머니가 몹시도 친절하신데, 내가 통 말을 못 하니 어찌나 안타까워하시는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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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가 위치한 하코다테 역 근처로 돌아와 하코다테의 명물이라는 시오라멘으로 저녁을...
오타루에서와 같은 요코초 구역에 선술집과 작은 라면집들이 모여 있는데, 그러지 않아도 작은 가게에 손님도 나 혼자 뿐이어서 다른 때 같았으면 주방장 할배랑 이런 저런 이야기도 했겠지만 역시 말을 못해서... ㅜ.ㅜ 최소한의 말하기도 좀 공부를 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음... 여행 하면서 그 지역 말을 한 마디도 못하는 건 너무 예의없는 행동 아닌가 싶더라는....
하여간, 라면은 굉장히 맛있었음... 미소라면과 간장라면은 한국에서도 익숙한 맛인데 반해, 소금라면은 난생 처음 먹어보는 것...



숙소로 돌아와 근처 야경 한 컷.....
그리고 다시 맥주 한 잔 마시며 2013년 반성과 2014년 계획 세우다 스르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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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역시 호텔에서 조식 먹고 아침 수산 시장 구경하러 나감...
원래 이 새벽 시장에서 3색 덮밥을 먹는게 여행자들의 정석 코스라는데 나는 성게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패스...
이 시즌 하코다테 털게가 무척이나 유명하다는데 게 찌는 모양새는 역시 한국 수산시장이 짱 ㅋㅋ 너무 아마추어처럼 보임 ㅋㅋ
시장 규모가 크지는 않은데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정말 수산물이 엄청 신선해보임.... 후쿠시마 사건만 터지지 않았으면 얼마나 풍요로운 식탁이 되었을까 짠한 마음이.... ㅡ.ㅡ
한 가게 수족관에서 마주친 거대 문어는 완전히 심해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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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기차타고 삿포로로....
마지막 포스팅 무려 3개월 전... 정말 지난 세 달 너무너무 쫓기는 일상의 연속.
누굴 나무랄 수도 없는게, 스스로 자초한 일들이라 그저 미친듯이 괴로워하며 원고 빚쟁이들에게 구걸과 읍소... ㅡ.ㅡ
휴가를 떠나기 전날 밤까지도 원고 수정을 하나 하느라고 허덕허덕. 하지만, 노트북을 챙겨서 휴가를 떠나는 일 따위는 이제 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지 오래... 이건 몇 년 전 결심한 이후 의외로 한 번도 어기지 않은 휴가 철칙!!!
원래, 서클후배 D와 함께 가려 했으나, 시부모 결혼기념일 행사 때문에 가기 어렵다는 황당한 소식 (생신도 아니고 정작 본인들 결혼기념일도 아닌데 그게 뭐라고....천하의 D 가 착한 며느리 코스프레에 마음고생할 것을 생각해서 비난은 하지 않았음 ㅋㅋ), 이어서 친구 S 마저 예정보다 빨리 새 직장을 구하면서 결국 혼자 떠나게 되었는디.... 삿포로에 있는 J 는 그동안 손님 치레를 하도 해서 귀찮다며 나보구 알아서 혼자 다니라고... ㅡ.ㅡ 그래, 뭐 혼자 못 갈 이유가 없잖은가???
그런데 또 의외로 마지막에 스케줄 확정하고 연락하니, J 가 친히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서 오타루에 함께 가주겠다고 제안.... 공항이 복잡해서 못만나면 어쩌나 살짝 걱정했는데, 그러기도 어려운 구조 ㅋㅋ 하여간 그렇게 겨울 홋카이도 여행 시작...
하여간 삿포로 공항에 비행기가 근접하면서 드디어 설국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화악~~
사실, 나라꼴이 몹시 어수선하고 추운데 고생하는 사람들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무거웠지만 ㅜ.ㅜ
1. 첫번째 여행지_오타루
신 치토세 공항에서 J 만나 JR 홋카이도 패스 끊고 일단 오타루 이동.... 숙소에 짐 내려놓고 늦은 점심부터...
방사능 때문에 해산물을 먹지 말라는 조언을 많이 받았지만, 현지에서는 또 그러기가 쉽지 않음... 아예 여행을 가지 말던가, 가서 호들갑 떨면서 안 먹기도 좀 그래서, 그냥 되는 대로 먹고 마셔댔음...
회전초밥집에서 놀랍도록 부드러운 관자와 연어 초밥, 그리고 역시 놀라운 삿포로 클래식을 맛보며 연신 탄성을 자아냄. 초밥의 이 부드러움은 방사선의 효과인 게냐, 아니면 활어가 아니라 숙성을 시켜서 그런 것이냐 갑론을박하며 정말 배가 터지도록 먹어댐.... 삿포로 클래식은..... 아.....

늦은 점심 먹고 나왔을 뿐인데, 벌써 오타루 시내는 해가 지고 있더라는... 겨우 네 시 무렵....
눈은 계속 흩날리고, 작고 오래된 골목길에는 따뜻한 가로등 불빛과 눈쌓인 거리를 오종종 거니는 사람들...



오타루의 유명한 오르골 상점, 일명 오르골 당에서 구경하고 나를 위한 작은 선물 구입 ㅋㅋ
사실, 체험코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지라, 하나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오르골 자체를 조립하는게 아니라 만들어진 오르골에 빤짝이 스티커를 붙이는 수준.... ㅡ.ㅡ
오르골당 안은 별별 손발이 오그라드는 공주풍 오르골에서부터 초밥모양 엽기 오르골까지 실로 다양한 오르골의 향연과 아름다은 음악으로 꽉 찬 느낌...

오타루의 유명한 운하 구경을 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들이닥친 단체관광객 때문에 식겁....
운하 옆으로 길게 늘어선 옛 하역 창고들은 이제 개조해서 식당이나 주차장, 술집 같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다는 오타루비어로 이동....
여기에서 오타루 지역 맥주... 아이고 맛나라... 생각하니 또 침이 꼴깍.... ㅡ.ㅡ


맥주 마시고 나오니까 아까의 단체 관광객들은 다 사라지고, 다시금 고요해진 운하...
아까 운하에 띄워놓았던 조명등들을 나룻배 타고 뜰채로 건져내는 괴이한 광경 관찰 ㅋㅋ
저걸 저렇게 매일 밤 풀어놓고 치우기를 반복한다는 말인가???
하여간 하얀 지붕과 거리들, 검은 운하와 그 위에 쏟아지는 가로등 불빛, 떠다니는 조명등의 모습은 정말 운치있는 한 장면... 낭만여행자의 행복감과 해방감....

다시 또 골목길 (요초코) 선술집으로 따뜻한 사케를 마시러....



이제 J 는 삿포로로 돌아가고 나는 숙소로 돌아와 긴 하루를 마무리....
비행기 타고 두 시간 남짓 이동했을 뿐인데, 이 곳은 다른 세계.....
다음 날 아침, 호텔에서 맛난 조식을 챙겨 먹고 다시 운하와 항구쪽을 돌아보았는데 어제 저녁과는 또다른 모습...
일단 숙소에서 내려다 본 운하와 오래된 창고 건물들, 그리거 저 너머 바다..

항구, 어제 들렀던 오타루 비어, 그리고 운하....



이제 기차를 타고 하코다테로.....

to be continued
최근 읽은 책들은 공통적으로, 뭘 어쩌라는 말인가... 라는 공통된 질문을 던져주었다.
#. 악셀 하커, 조반니 로렌조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
![]() |
|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 - 두 남자의 고백 악셀 하케 & 조반니 디 로렌초 푸른지식, 2011 |
알라딘에서 퍼온 책표지는 저리 상쿰한 레몬색이지만... 내가 동작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껍데기 날아간 검은 양장본... ㅡ.ㅡ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들인 두 아자씨들.
이들은 잘못된 선택과 실패를 경험하며 성장해왔고, 신사회운동의 언저리에서 적극적 혹은 소극적 참여를 경험했고, 매 순간의 선택과 비선택에 대해서 후회와 사려깊은 성찰을 피하지 않는, 괜찮은 사람들로 추정된다 (실제 사생활이야 어찌 알겠냐구... ).
아주 특출나게 주장이 강한 별종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전히 시류에만 몸을 맡긴 소시민 대표주자도 아닌 그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나도 때로는 속물인 때가 있'지만 그래도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간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가치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품새가 마치 인생의 선배가 토닥토닥하며 후배한테 두런두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아 좋기는 했다. 폼이나 잡고 '내가 왕년에는...' 이런 거 절대 없고 ㅋㅋㅋ
그런데, 독일에서 이들이 위치한 것과 비슷한 입지에 있는 한국의 인사가 이런 책을 썼더라면, 혹은 내가 독일인이었다면 훨씬 더 진지하게 고민했을법한 이야기들이, 어쩔 수없는 '사회적 거리' 때문에 영 살갑게 다가오지는 않더라는 문제가.... ㅡ.ㅡ
이들도 딱히 인생의 답을 주려고 이 책을 쓴 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다 읽고 나서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라는 느낌은 영 피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내가 이들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도 과거를 돌아보면서 이들만큼의 긍정적 성찰과 반성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
참, 로렌초의 안토니오 네그리 인터뷰 삽화는 허거덕.... 이런 일화를 가지고 그의 생애와 활동을 모두 파악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이런 상황이 또 아주 낯선 건 아니라서 ㅜ.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쩐지 알 것만 같은....... 에휴....
#. 리처드 세넷 [뉴 캐피탈리즘]
![]() |
| 뉴캐피털리즘 - 표류하는 개인과 소멸하는 열정 리차드 세넷 위즈덤하우스, 2009 |
몇 가지 주요 내용 요약
*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과 관련된 세 가지 요인 (혹은 도전과제)
첫째, 시간 - 프레임이 달라졌다, 자주 바뀐다 (여기에 적응할 수 있어야 현대적 인간 ㅡ.ㅡ) 사실, 자본주의가 군대를 모방할 수 있었던 (그래서 효율을 높일 수 있었던) 비밀의 열쇠는 시간, 즉 제도가 개인에게 보장하는 기간으로서의 구조화된 시간이었다. 그런데 더이상 그렇지 못하다는...
둘째, 재능- 특정 기술이 아니라 잠재력이 중요한 세상 (기술과 지식은 금방 낡은 것이 되어버리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부단하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
셋째, 포기의 문제 - 과거와 얼마나 잘 단절할 수 있는가 (즉, 새로운 것에 재깍 얼마나 뛰어들고 몰입할 수 있느냐)
*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노동하는 개인들이 경험하는 변화를 특징짓는 거대요인 - 첫째, 관료제의 변화
경직되고 진부한 관료제 (말하자면 '사회자본주의')란 오늘날 '비효율'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하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노동자 개개인이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고 설계할 수 있게 했던 안정된 토대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컨설턴트들에 의해 관료적 조직특성을 변화시키는 구조조정과 개혁이 추진되지만, 조직 안정성의 붕괴, 단기적 수익에의 몰두는 위계의 가장 말단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부담을 안겼을 뿐이다. 안정된 조직 기반의 붕괴는 조지 소로스의 지적처럼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관계맺기'가 아닌 '거래'로 이동시켰다. 그런데 이게 참 딜레마인 것이.... 관료제야말로 그 특유의 안정성과 지속성, 피라미드적 위계를 통해 치밀한 '포섭'을 가능케 하고 변혁의 가능성을 가로막는데, 문제는 관료제를 뛰어넘는 소위 '현대적' 기업운영체계로의 변화야말로 노동유연화를 통해 변혁의 가능성을 더욱 가로막고 있으니....
저자는 '관료제 쇠창살' 해체와 관련된 주요 변화를 (1) 경영자에게서 주주로의 권력 이동, (2) 이와 관련된 것으로 장기실적보다 단기성과의 중시, (3) 통신과 제조부문의 기술혁신 으로 꼽았다. 기술이 혁신하면서 앙드레 고르가 기대했던 것처럼 모든 이들의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새로운 여가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제레미 리프킨이 걱정했던 것 같은 '노동의 종말'이 다가왔고, 주주 자본주의의 대두는 단기적 이익과 책임지지 않는 경영체제 (의사결정과 책임의 분리),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뭐 새로운 분석은 아니지만, 명쾌하게 1, 2, 3으로 정리해주니까 오케이 ㅋㅋ
하여간 이러한 변화를 통해 이제 조직은 MP3 같은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비유가 적절한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이 쓰여졌던 시점에서는 그랬을지도 모르겠으나, 말하자면 피라미드 관료조직과 달리 복잡한 중간단계 없이 중앙이 말단을 직접 통제하는 구조, 유연한 조직으로서 MP3라니... ㅡ.ㅡ (저자가 말한 대로 기술문명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ㅋㅋ)
그리고 노동자들은 이런 유연한 조직에서 상시적인,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 (anxiety) 에 시달린다. 기업들은 개인들의 독립성과 자기관리를 미덕으로 내세우며 더이상 책임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타나는 세 가지 사회적 적자라면 (1) 충성도 저하, (2) 노동자들 사이의 비공식적 신뢰 붕괴, (3) 구성원들의 조직 생리에 대한 무지... 결국 이렇게 되면 미래를 위해 현재의 보상을 유예하고 지연하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이는 개인과 기업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저자는 이를 '자본주의만 살아남고 사회적인 것 the social 은 죽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렇게 불안과 유동성이 특징인 사회, 공식적인 제도와 관료제적 안정성이 사라진 사회에서 특권, 사회 네트워크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특권을 가진 이들이라면 삶을 전략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수고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이러한 지적에 격하게 공감... ㅜ.ㅜ) 사회자본주의가 쇠퇴하는 곳에 불평등과 소외는 커지고 있다.
* 거대요인 - 둘째, 능력주의 (와 동반된 퇴출의 공포)
능력주의와 그에 따른 퇴출의 공포는 현재에만 해당하는 독특한 현상은 아니지만, 특별히 오늘날의 공포는 (1) 글로벌 노동력 공급, (2) 자동화, (3) 고령자에 대한 처우 라는 세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앞의 두 가지야 뭐 워낙 익숙한 것이고, 특별히 고령자 처우 문제를 보자면,
사회자본주의의 틀을 해체한 기업들에게 중요한 것은 고령노동자의 경험이 아니라 젊은층의 재능, 그래서 경험이 늘어날수록 가치가 떨어진다는 기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건비만 잡아먹는 무능한 집단이라는 평가... ㅜ.ㅜ
이러한 퇴출의 공포는 복지국가를 위협하는 요인, 즉 아예 사람들을 복지국가의 체계 바깥으로 밀어내버린다는 지젹에 동의.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지 않나... ㅡ.ㅡ
한편 저자는 '잠재력'에 대한 강조가 '재능'의 기준을 훼손시킨다고 지적하고 있다. 잠재력을 발굴하는 것이 곧 정의로 여겨지지만 (대표적으로 아마티야 센이나 마샤 누스바움의 논거를 드는데, 적절한 것같지는 않음), 이는 경험의 축적이나 연습, 노력의 중요성을 미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무리 천재적 소질(잠재력)을 가진 연주자라도 부단한 연습이 없으면 좋은 연주를 해낼 수 없는 것인데, 미래를 준거로 과거의 노력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장은 번역이 이상한 건지, 사회적 맥락이 달라서 그런지 잘 이해가 안 가는게... 재능/잠재력/능력주의 용어가 내가 생각했던 맥락과는 좀 안 들어맞음.. ㅜ.ㅜ 이를테면 SAT 사례도 지식 자체보다 생각하는 방법에 초점을 두는 평가라고 하면서 이것이 잠재력을 중시하는 현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주입식 교육과 암기를 위주로 학력고사를 통해 1등부터 백만등 까지 줄세웠던 과거의 입시제도에 비해 사고력을 중심으로 평가한다는 수능과 논술, 잠재력을 중심에 둔다는 입학사정관 제도들이 훨씬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사실로 얼추 이해는 하겠는데.. 개별 문장들의 앞 뒤가 연결되지 않는 것 같은... 이건 뭐 원서를 확인해봐야 알 것 같다.
하여간 신분적 귀족사회가 아니라 능력에 따라 지위를 보장받는 '자연적 귀족사회' 혹은 능력주의가 분명히 정의로운 것은 사실이었으나, 오늘날은 여기에 보태 과거보다는 미래의 잠재력을 강조함으로써, 개인을 독려하고 개인을 무력화시킨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업적을 기준으로 '비인격적'인 평가를 했던데 비해, 타고난 재능이나 잠재력을 중요시한다는 것은 '인격'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재주, 잠재력이 없다고 판정된 이들은 과거의 업적이 어떠하든 이제 쓸모 없는 인물인 것이다. ㅜ.ㅜ
* 거대요인 - 셋째, 정치의 몰락
이제 이렇게 변화된 경제는 정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뭐 당연하겠다.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분절된 노동자계급, 원자화된 개인들을 낳고 이들의 불안정성과 노동의 방식은 정치 또한 소비상품의 하나로 만들 뿐이다. 변혁에의 열정은 소멸해버린다.
저자는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이유를 '소비자'이자 '구경꾼'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1) 기업의 생산이나 유통에서 활용되는 플랫폼과 유사한 정치적 플랫폼을 제공받으며, (1) 정치제품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아니라) 금박을 입힌 정도의 차이만 존재하고, (3) 칸드가 명명한 '인간성이란 휘어진 목재'를 평가절하하며 (즉 이미 손에 진 것은 무엇이든지 충분치 못하다고 여기는 소비자들의 생각), (4) (굳이 배우고 노력할 필요없이 간편하게 제시되는) 사용자 중심의 정치를 신뢰하도록 요구받고, (5) 부단히 제공되는 정치적 신제품을 받아들인다.
자, 그러다보니 정치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 진보정치가 성장하기 어렵다.... 고 이야기하는데, 한편으로는 진보정치의 저성장에 대해 (최소한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상황 탓만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 그렇다면???
저자는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 문화적 닻을 단단하게 내리는데 꼭 필요한 가치로 (1) 사건과 경험의 축적, (2) 개인 유용성의 발견, (3) 장인정신 의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사건과 경험의 축적을 할 수 있는 안정된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노동유연화로 인해 안정된 노동기반과 노동조합을 가질 수 없다면 노동자센터 같은 병렬조직을 세우고, 일자리를 나누고, 새로운 상황에서 시간을 재구성하여 인생설계를 할 수 있는 방식 (기본소득이나 기본자본)
둘째, 사람들이 쓸모있는 존재임을 각인시키기 위한 제도가 필요한데, 특히나 국가가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비슷한 일이지만 공공서비스 부문 노동자와 무급 가사노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고려한다면 쉽게 이해 가능)
셋째.. 이게 약간 거시기한데, '헌신'을 특징으로 하는 '장인정신'을 회복하는 것... '사람은 누구나 일을 제대로 해내려 노력함으로써만 스스로의 삶이 아무렇게나 흘러가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어맬수 있다'는 주장에 매우 공감은 하는데... 문제는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싶어도 할 기회가 없다는 것 아닌가 말이지... ㅜ.ㅜ 우리 모두 생활의 달인이 되라는 것이여???
문제의 제기와 진단에 비한다면, 사실 저자가 내놓은 처방이 충분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쩌면 문제들을 정치경제적 관점보다는 문화적 관점에서 분석했기 때문에 이런 결론에 이르렀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뭐 일목요연하게 (특히 번호매겨가면서 ㅋㅋ) 정리해주고, 오히려 그동안 익숙했던 정치경제 방식의 신자유주의 분석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준 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좀 읽어봐야겠다.
#. 전성원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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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 헨리 포드부터 마사 스튜어트까지 현대를 창조한 사람들 전성원 인물과사상사, 2012 |
만물박사 지식을 익혀서 남들한테 자랑하는데 써먹기에는 유용한 책인데..
딱히 통찰력을 주는 책은 아니다.
무거워서 들고 다니는데 고생만...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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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시작했군요. 난 하도 오래 되어서 기억도 안나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