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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정리하려고 쌓아둔 책들이 쓰러지기 일보직전....
#. 한병철 지음. <피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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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문학과지성사, 2012 |
*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첫 문장을 이렇게 의미심장하게 시작했다.
오늘, 이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란 과거와 달리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에서 비롯된 질병이며,
그래서 '피로사회'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압축할 수 있겠다.
외부 혹은 타자에 대한 면역반응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내적 동력에서 비롯된 과잉... 그래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이해할 수도, 치료할 수도 없는...
*
21세기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하면서, 주민들은 복종주체가 아닌 (규율단계를 졸업한) 성과주체가 되었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이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면, 성과사회는 우울증과 낙오자를 낳는다.
이런 사회에서 지배기구가 소멸된다 해도 자유는 도래하지 않는다. 자유와 강제가 이미 일치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일명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
과다한 노동의 성과는 자기 착취로 치닫고, 하지만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더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즉,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이라는 것이다.
*
한편 긍정성의 과잉은 자극, 정보의 과잉으로 이어지고, 이는 '멀티태스킹'을 낳았다. 심심함은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었으며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전반적인 산만함은 강렬하고 정력적인 분노가 일어날 여지를 없애버렸는데, 이 때 분노란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된다.
*
학문분야들마다 사용하는 렌즈가 다르니까 그런가보다 하지만,
소위 '피로사회'라고 명명될 만한 오늘날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내면의 풍경은 날카롭게 지적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왜 이런 피로사회가 만들어졌는가, 누가 이를 구축하고, 누가 이로부터 이득과 피해를 경험하는가에 대한 구조적 시선은 원천 차단... ㅡ.ㅡ
자발적 과잉이 없지는 않겠으나, 과연 오늘날 사람들이 미친듯이 일해대는 것을 자기착취로 명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이를테면 부록 '우울사회'에서 소진 (burnout)을 자발적인 자기착취의 병리학적 결과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절대 반대일세....
어느날 "짠 "하고 성과사회가 출현하고, 개인들은 갑자기 정신줄 놓고 몰두하다가 탈진해버리는 건 아니잖여...
역사와 정치경제적 맥락을 탈각한 이런 서술 방식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고 마음에 들지도 않음.
책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가???
아무래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일단 얇고,
그리고 또다른 방식의 힐링과 마음의 자각을 주기 때문 아닐까 싶음... 네가 피곤한 건 이래서야..... ㅡ.ㅡ
#. 김상봉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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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 철학, 자본주의를 뒤집다 김상봉 꾸리에,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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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철학자가 쓴 책인데, 이 쪽은 훨씬 이해가 잘 되었음.
정서적 거리가 가까워서인가 ㅋㅋ
책을 빌려주신 CY 샘은 좀더 추상수준이 높은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너무 구체적 디테일에 천착하는게 오히려 아쉬웠다고 평하셨지만, 그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예상보다는 철학적 논의가 풍부했음
철학자가 본 자본주의의 전복 가능성 - 총들고 싸우는 혁명 말고 - 을 오늘날 현실의 법과 제도, 그 균열과 모순 사이에서 찾아본 시도라고 요약할 수 있을 듯...
*
공화국도 뛰어넘어 기업국가, 기업사회가 된 마당에서
새로운 변화는 잉여가치를 노동자가 관리하자는 것, 즉 경영권을 노동자가 갖자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반드시 자유가 소유에 기초하는 것은 아니며, 기업의 소유 (소위 주주)와 경영의 이해관계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기업의 장기적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소유주와 노동자는 동일한 이해를 가질 수도 있다... '경영권'이라는 것이 소유할 수 없는 개념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자격 (공식 직책으로나 주식소유로 보나)도 없는 총수들이 전횡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직시해보자는 것이다.
*
일단은 자본주의 기업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주식회사로부터 논의를 시작했지만, 노동자 경영제도는 공공기관, 공기업 등에 당장 도입될 수도 있고, 또 이는 단순히 최고경영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수준에서 작업장 통제권과 노동자 자치를 포함하는 일련의 민주주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노동의 현장에서 자치를 확보하고, 생산과 초과이윤 분배 (재분배가 아니라!)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 혹은 심도깊은 사회개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던 것은, 앙드레 고르의 문제의식에 대한 샘의 의견이었다.
고르는 노동자 자주기업 또한 자본가 권력을 다른 얼굴로 대체한 것일뿐이라고 비판했다.
"사회주의가 만약 도구를 바꾸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바로 그 말...
또한 초과이윤이 발생하지 않는 비영리 기업, 혹은 협동조합 같은 경우 노동자 경영권은 어떤 형태이어야 할까??? 사실 연구소 월례 세미나 때 김상봉 샘을 초청했고, 직접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다들 어찌나 질문이 많은지....도대체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ㅜ.ㅜ
*
말이 나온김에... 월례세미나 분위기는 아주 따뜻하고 유쾌했다. 개그 욕심이 상당하셨는데, 참가자들이 또 그걸 엄청 좋아함 ㅋㅋ 참석자들과 강연자 사이에 묘한 상승기류가 형성되어 뒤풀이마저 아주아주 뜨거웠더랬다.
두세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건, 주류 철학계에서 관심을 두지 않는 씨알사상이나 자본주의 문제 탐구를 해서 힘들지 않으시냐는 진지한 질문에 "뭐가 힘드냐, 프론티어라고 생각한다"는 근자감 폭발 답변ㅋㅋㅋ 그 뒤로 세미나 참가자들은 "우리 프론티어 김 선생님" 이라는 애칭을 사용하기로 했다.
끝나고 정류장으로 가면서 당원이라고 수줍게 (?) 고백하고 진보신당이 과연 어찌 될까 여쭤봤다. (점쟁이 만난게냐.. ㅡ.ㅡ). 샘은 서두르면 또 망한다고, 한 3년을 두고 천천히 가야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게요... 근데, 그 시간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ㅡ.ㅡ
#. 단비뉴스 취재팀 <벼랑에 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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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 선 사람들 - 서럽고 눈물 나는 우리 시대 가장 작은 사람들의 삶의 기록 제정임.단비뉴스취재팀 오월의봄, 2012 |
*
이런 '류'의 책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또 여기에 담긴 삶들이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청년 세대들이 이런 종류의 탐사취재를 하고 책을 엮어 냈다는 사실 자체에 경의를!!!
"요즘 애들"이라고 싸잡아서 비난을 퍼붓거나 혹은 치유와 힐링의 대상으로서만 청년세대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소중한 증거자료라고 할 수있음.
이들은 날카로운 눈과 용기를 가졌고, 공감과 성찰 능력이 있으며
생각보다 멀쩡함 ㅋㅋ
이런 잠재력들을 키워주고 엮어주는 것들이 기성세대와 교육자의 중요한 역할....
*
벼랑에 선 사람들의 현실은 그저 막막...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생각.....
오늘같은 날에는 꼭 읽어주고 싶은 전연옥의 송사...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안개
그는 사랑을 잃었네
사랑을 잃고 봉분 하나를 그는 얻었다 하네
익명의 소문들이 그의 생애를 지우는 동안
슬픔이 창궐한 전등불 아래서
사람들은 경악의 얼굴로 술을 마셨네
아름다운 기억들이 술잔에 가득 넘쳤네
그가 기른 가축들이 긴 나무 다리를 건너와
시린 별빛 아래서 이별을 고하는 동안
어떤 편안한 잠이 그의 곁에 와 누웠네
아무도 그의 사랑 찾아주지 못했네
그가 잃은 사랑 눈먼 자의 슬픔으로 떠돌 때
사람들은 새끼처럼 꼬여 칼잠을 자고
꿈속 어느 갈피 짬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네
그가 찍은 삶의 구두점이
동행 없는 모습으로 거리를 헤매고
안개가 그의 그림자를 지우고 있었네
아무도 그의 사랑이 되어주지 못했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잘가요...
여한은 남은 이들의 몫....
어쩌다보니 근 두 달 만의 불질이로세.... ㅡ.ㅡ
정신못차리게 바쁘기도 했거니와, 어른패드가 생기는 바람에 퇴근 후에는 그걸로 간단한 일처리를 하면서 컴을 켜는 일이 많이 줄어서인듯...
어른패드에서도 불질 할 수는 있는데, 그건 또 웬지 안 어울린다는, 사실 딱히 근거도 없는 생각...
그동안 본 영화들, 공연들....
# 브로콜리 너마저 < 이른 열대야> (KT&G 상상아트홀)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은 공연이라는데, 나는 딱히 위로받을만한 상처가 없어서인지 그런 감정은 없었고
그냥 좀 귀엽다는 느낌? ㅋㅋ
솔직하게 말하자면, 뭔가 아기자기하고 사려깊으면서 소심한 소녀풍의 이미지랄까....
어쿠스틱 감성이라고 뭉뚱그리기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고...
사실 김광석의 음악이 대표적 어쿠스틱 정서라고 할텐데, 그의 음악이 숲속의 자작나무 같다면 이들의 음악은 파스텔 색조로 튀지 않게 단장한 친환경 가구 같은 느낌이랄까??? (뭔 말이여???)
어쩌면 이건 인생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일지도....
#. <다크나이트 라이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2012년)

아이맥스로 보려고 개봉 한참 후에는 겨우 보게되었음.
연작 세 편 중 최상은 역시 두 번째 <다크나이트>. 하지만 완결작으로서 이보다 더 나은 엔딩도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 이별이라니 뭉클한 감정도 ㅋㅋ (심지어 마지막에 로빈이 등장할 수 있는 여지마저 남겨놓고 손을 털어버린 놀란 감독, 참 대단한 양반!!!)
신파적 서사와 반민중적 혁명론이 맘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더이상 영웅이 필요없는 고담시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임. 배트맨이 혼자 고고하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경찰들과 함께 육탄전을 벌이는 장면은 한편으로 탈영웅주의이되, 또다른 한편으로 민중 스스로가 아닌 공권력인 경찰에게 그 힘을 돌려준다는 점에서 참으로 체제순응적이기도 함.
그리고 무엇보다 예상못했던 것은 베인이 이 시대의 순정마초였다는 점!!!
그 눈물 한 방울... 흑!!!
미란다를 보면서 이 영화의 숨은 교훈이 혹시 '여자는 진정 요물'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음. 심지어 주먹도끼는 미란다가 부자된게 베인이 용병으로 벌어온 돈 덕분이라면서, 베인 불쌍하다고 장탄식을 늘어놓음 ... ㅡ.ㅡ
해리포터의 세베루스 스네이프 교수와 베인 중 누가 더 진정한 순정마초인지 자웅을 겨뤄볼만 함..
크리스천 베일, 고담시도 구하고, 지구도 구하고, 이제 우주만 구하면 될 차례!!!
킬리언 머피, 기어이 세 편의 영화에 다 출연하다니, 반가우면서도 짠한 마음... 이제 좀 큰 역할로 돌아와줘....
# <프레스티지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2006년)

다크나이트 기다리면서 쿡으로 찾아본 영화...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이건 호러...
갈 데까지 가보는 인간의 집착과 광기라니...
크리스천 베일, 휴잭맨 완전 후덜덜....
왜 이영화가 별로 주목받지 못했었을까나...
너무 다크하기 때문일까?
# <멜랑콜리아> (라스 폰 트리에 감독, 2011년)

만일, 이렇게 압도적이고 숨막힐 듯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무리된다면 나도 저스틴 (커스틴 던스트)처럼 지구의 마지막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영화라는 장르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고유한 경험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 영화임.
지독하게 우울하고, 어둡고, 하지만 웅장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게 믿기 어려울 지경.. 영화를 보고나서 한참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네...
여태까지 본 최고의 종말 서사.....
아, 그 푸른 멜랑콜리아를 잊을 수 없어...
# <내 아내의 모든 것> (민규동 감독, 2011년)

의외로 재미있게 본 영화..
두 찌질한 남자를 거둬들이는 여자 어른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우쭈쭈쭈ㅋㅋ
사실 극 중 임수정이 비호감으로 여겨지는 게 독설과 수다 때문인데, 가만 들어보면 이야기하는 내용들 중 하나도 틀린 게 없음. 속시원하다는 느낌....
잘생긴 꽃미남이나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니라, 어쩌면 이런 영화야말로 진정한 어른 여자용 판타지...
<장화 홍련>, <행복>,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에서 장기요양 전문배우로 활약했던 임수정의 변화된 모습에 깜놀함. 이선균은 멋지게 나왔다는 TV 드라마들을 내가 못봐서 그런지, 찌질 전문 배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음 ㅋㅋ 유승룡은 전혀 새로운 유형의 카사노바 탄생 ㅋㅋ "이제 그만 뽀삐를 놓아주세요" 라는 임수정의 위로에 흐느끼는 카사노바에서 완전 빵 터짐.....
이들 배우와 감독의 다음 행보에 주목...
# 이자람의 <사천가> (화성아트홀.. 멀리까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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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이토록 심오하면서 재미난 공연이라니....
일행들 모두 깜놀하고 대만족....
'꽉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상호작용하는 무대의 매력이란 이런 것.
판소리의 마력에 흠뻑 빠져보아요....
다음엔 수궁가나 심청가 공연을 꼭!꼭!꼭! 보자고 약속하며 공연장을 나섬...
그리고 있는 대상과 그리는 방법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이 둘은 구조적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 조은. [사당동 더하기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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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동 더하기 25 -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 조은 또하나의문화, 2012 |
* 연구자 혹은 관찰자....
이 책은 인간의 삶을 관찰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구조적 질서와 폭력을 해석하는 모든 학문분야에 던져진 도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조은 선생은 빈곤에 대한 주류적 시각 - 소위 '빈곤의 문화' - 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빈곤의 문화'는 중산층, 혹은 전형적으로 중산층인 연구자들이 빈곤을 이해할 때 가장 쉽게 내릴 수 있는 해석이자 결론이다.
"이 연구를 정리하면서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을 설명하는 '문화적 요인'이 아니라 그러한 문화를 가져오는 구조에 주목하게 되었다. 빈곤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빈곤이 있을 뿐이며, 가난을 설명하는 데 가난 그 자체만큼 설명력을 가진 변수는 없다. '가난의 구조적 조건'이 있을 뿐이다."
" '가난함'의 경험은 그 가난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지만,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생활양식인 것이다."
" 이들의 가난은 세계화나 금융 자본주의, 도시 공간의 자본주의적 재편 같은 구조적 요인과 동떨어진 듯하지만 실제로 이들의 삶은 바로 그러한 구조적 요인의 직접적인 충격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적 충격 속에서 그들이 살아 내는 방식, 곧 삶의 양식이 빈곤문화라고 이름 붙여진다. 그리고 그러한 빈곤문화의 핵심에 그들의 성과 사랑과 결혼의 방식이 있다. 그리고 가족이 있다. 이들이 그나마 스스로 선택했고 또 선택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영역이다. 특히 대중 매체가 대량으로 유포하는 로맨스 각본은 이들이 손쉽게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삶의 각본이기도 하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성적 문란'이나 가출, 이혼, 동거와 출산 등이 '가족의 위기'로 읽히고 빈곤을 재생산하는 빈곤 문화의 핵심 요소로 주목된다."
관찰자들, 혹은 연구자들은 같은 현상을 보면서, 다른 해석과 답을 찾아내곤 한다.
이를테면 같은 시기에 사당동을 연구한 또다른 이들은 지역의 노동통계를 작성하면서 여성 취업률이 채 1/3도 안 된다고 파악했지만, 조은선생님 팀이 본 바로는 큰 병이 걸리지 않는 이상 집에서 '노는' 여자는 없었다.
그것이 비단 '가난'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문제를 '두껍게' 읽어내는 방식은 어디에나 필요하다.
우리는 조은 선생님 같은 선배 연구자들이 20년 넘게 노력한 덕분에 빈곤의 문제를 조금 더 두껍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고, 복잡한 문제의 뒤안을 살펴보는 방식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어떤 관찰자인 것일까.....
* 그들과 나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책을 읽으며 괴로웠던 것은 솔직하게도, 이들에 대한 연민이나 사회적 불의에 대한 통탄, 혹은 연구자로서의 반성이라기보다, 정말 습자지 한 장 밖에 차이나지 않는 그들과 나의 삶 - 너무도 위태로운 그 경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치, 헐리우드재난 영화에서 한끝 차이로 목숨을 건진 인물들이 그 순간 마냥 기뻐하지조차 못하면서 일종의 멘붕 상태에 빠지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아주 작은 차이 - 정말 우연하게도 우리 집에는 가정폭력이 없었다. 여태까지 이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환경에서 폭력이 없었던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었던 게다. (아마 가정폭력을 경험했다면 지금과 같은 resilience 를 갖지 못했을 것 같다 ㅡ.ㅡ) 그리고 나는 우연히 공부에 재능이 있었다. 무엇보다, 우연히 우리가 살던 동네에는 대규모 재개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소소한 재개발이 있어서 계속 근처 동네를 떠돌며 이사를 다니기는 했지만, 사당동이나 상계동, 행당동 같은 폭력적 상황들은 다행히도 벌어지지 않았었다.
부유한 가정, 혹은 중산층 가정이라면 이런 세 가지가 일상이고, 그닥 축복받은 우연도 아니겠지만,
우리같은 사람들에게는 이 세 가지가 같이 있었던 것이 그야말로 우연이고 축복이었다.
취약성 (vulnerability) 이란 이런 것이다.
삶의 경계에 위태롭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작은 변화와 우연에도 엄청난 변이가 일어나고 통상적이지 않은 파국으로 연결되는 것..... '매일매일 드라마를 찍는다'고 표현할 만큼 우여곡절 많은 삶이란 바로 그러한 잠재적 취약성이 현실화된 결과일 것이다.
"... '에이 쪼금만 들어갖고 되는 것이 아니여. 내가 살았던 것을 얘기할라고 하면은 한정 없어'라는 말로 경훈이 아빠 김씨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경훈 아빠의 가족사와 생애사를 듣는 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 때 김씨 나이 서른 넷이었다....."
나의 지나간 유년시절에 '찾아온' (내가 만든게 아니니까!) 이러한 소소한 우연과 축복이 일단 빈곤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점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뻐하기엔 그 진실이 너무나 씁쓸하다.
* 국가의 폭력
아무리 생각해봐도 국가 폭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막무가내로 철거를 하고 사람들 3천명을 트럭으로 실어다가 막무가내로 사당동 산 자락 (수도, 전기, 집, 도로,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진짜 그냥 산자락)에 내려놓질 않나, 항의하는 사람들은 한강 모래사장에 풀어놓지 않나.. 이건 뭐... 이건 추상적인 '국가폭력'이라는 단어로 도저히 담아내기 어려운 우격다짐이다.
백주대낮에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수단이라도 세련되게 바뀌었길 기대하지만, 오늘 본 [두개의 문]은 그러한 기대마저도 헛된 것임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 김일란 감독 [두개의 문]

이렇게 차분한 내러티브 속에서 울화가 치미는 경험도 참 오랜만이다.
정말 짜임새 있게 만들어진, 충실한 텍스트라는 생각이.......
보고 나면 분노와 허탈과 한숨이..... ㅜ.ㅜ
어쩌다보니 나는 이명박 정권이 뭘 해도 놀랍지가 않다.
그들은 뭘 해도 정치적 타격을 받지 않는 놀라운 반사 신공, 혹은 투과 신공을 갖춘 것 같다.
용산 참사, 쌍용차 폭력, 사찰, 측근 비리...
하나하나 만으로도 정권퇴진에 이를만한 대박 사건들이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니들이 그러는게 놀랍지도 않다...
이 정권의 가장 놀라운 업적은 관용과 체념의 수준을 극상으로 이끌어올렸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뭐라 해도 듣지 않으니, 이제 욕하기도 지쳤다며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그 근성이 그저 감탄스러울 따름....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도 찜찜한 것은
이렇게 기억투쟁에 동참하여 이사건을 잊지 않는 것, 그 너머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 도대체 답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 봤으니 나도 개념있는 시민이야 하면서 트위터에 인증샷 올리면 되는 거여?
반드시 정권 교체한다는 각오로 대선에 올인해야 하는겨?
속이 터져요.................. ㅠ.ㅠ
5월이 정말 어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물론 다음 주까지는 계속 일이 많지만, 그래도 폭풍같았던 5월만 하랴 싶다...
또 그러면 안 돼... ㅡ.ㅡ
그 와중에 부석사에 사과꽃 보러 다녀오고, 오대산 숲길도 걷고 왔다.
오가는 차 안에서는 완전한 유체이탈 상태였다.
하마터면, 목 꺾일 뻔했어... 여행용 목베개 하나 장만해야 할까봐... ㅡ.ㅡ
#. 부석사와 무섬마을
사람 많은 때 피하다보니, 부석사 사과꽃 노래를 부르면서도 정작 사과꽃이 만개한 적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더랬다. 지난 5월에는 큰맘먹고 피크 시즌에 다녀왔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지라 오가는 길이 별로 힘들지 않았다.
올 봄 꽃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제멋대로 피었던지라
내심 걱정도 했는데... '완전' 만개는 아니지만 소담스러운 사과꽃들을 실컷 보았다.
사실, 과수원 앞에서 사과꽃 근접촬영 좀 해볼까 했는데 송충이랑 눈마주쳐서 화들짝.. ㅜ.ㅜ
부석사는 뭐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아름다운 곳.....
출가하고 싶어....... 새벽 예불만 없다면...... ㅡ.ㅡ




이어서 찾아간 무섬마을은 낙안읍성보다는 훨씬 작은 규모의 민속 마을...
훨씬 고즈넉...
큰 다리를 건너 도달한 마을과 모래강변은 피안과 같은 인상....
말 그대로 외나무 다리는, 생각보다 훨씬 후덜덜...
다리가 높은 건 아닌데, 바로 발 아래 일렁이는 물 때문에 완전 어질어질...
오도가도 못해서 다리 위에 사람들 대 정체 현상이 발생하기도 함 ㅋㅋ
안내 해주신 분도 예전에 빠진 적이 있어서 이제 다시는 안 건넌다고...
나는 말고... 친구가 이런 데 집한채 있음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같이 간 도끼는 내 말에 콧방귀도 안 끼더라니.....




# 상원사와 월정사.. 그리고 오대산 숲길
예기치 않은 소나기 때문에 9km 에 이른다는 숲길 전체를 다 걷지 못하고 중도에 차를 타고 내려왔지만,
그 짧은 길만으로도 너무너무 좋았음.....
딱 좋은 오솔길....
아기자기한 나무들 사이로 한 사람 겨우 걸어서 지나고,
중간중간 개울들 건너고...
걷기 시작하자마자 도시락을 까먹는 바람에 나중에 빗속에서도 허기질 일은 없었다는 것이 또한 포인트 ㅋㅋ
바람처럼 흩날리는 유부초밥의 밥알들 주워 먹느라 사실 고생은 좀 했지 ㅎㅎ
나도 거의 밥 네 공기를 꾹꾹 눌러 초밥을 만들어갔는데,
도끼도 '이른바' 후식용 과일을 무슨 본행사만큼 싸왔어....
이제와 생각해보니 정말 둘다 정신나간 식탐녀들... ㅡ.ㅡ
상원사는 세조 관련 자질구레한 전설들이 많은데,
뭐 왕후장상에 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린아이를 죽음에 몰아넣은 거야 잘못이지만,
꼭 특정 핏줄만 왕 하라는 법있나???
월정사는 첨 가봤는데, 생각보다 절의 규모가 커서 완전 깜놀했음...
마침 초파일 전날이라 그런지, 각종 행사시설에 기와불사에 정신이 없더라니...
그래도 단기 출가 수행자들의 모습을 보니, 또 부러웠다네...
내년에 장기 휴가받으면 정말 출가를 해볼까???








한 달에 한번씩은 꼭 나들이 가야겠다는 올해 초 계획은 차근차근 지켜지고 있어!!!
기특해라....
이번 봄에는 유례없이 바쁘기도 하고 감기 때문에 나들이 다녀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막같이 황폐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1. Nell 앨범 발매 공연 - 2012.04.14 올림픽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음 ㅡ.ㅡ
그들의 음악을 들은지 어언 10년이 넘었지만 얼굴 첨봤는데,
같이 간 도끼가 보컬 김종완의 얼굴이 개그맨 최효종 닮았다고 지적 ㅋㅋ
나의 음악취향을 두고 흔히 친구들은 '온 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의 음악만 듣는다고 하는데
막상 공연장에서 들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구!!!!
공연의 구성이나 연주나 보컬이나 아우..... 담에 꼭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이 절절...
#2. 델리스파이스 2012.04.22 농협아트홀

이 분들...
아 공연 중 불안과 긴장을 초래하는 멘트 좀 안 하셨으면 ㅋㅋ
그냥 노래만 해요... 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네...
넬의 공연과는 또 다르게... 뭔가 같이 늙어간다는 친숙한 느낌?
하지만 꽉 찬 연주와 힘없는 (?) 보컬이 만들어내는 그 특유의 기묘한 조화와 박력은 역시!!!
아참, 게스트로 나온 옥상달빛의 4차원 만담과 아름다운 노래도 역시 일관된 부조화의 조화 ㅋㅋ
#3. 정재은 감독 [말하는 건축가] 2011

건축, 공간,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죽음이 예견된 자의 '마무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받는 감동은 슬픔도 회한도 환희도 아니다.
공공적 쓰임새와 심미적 아름다움의 조화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얻게 된 데서 얻는 깨달음의 감동과
죽음을 앞에둔 한 낭만주의자의 성공과 좌절, 고집과 철학에 대한 소박한 존경의 마음... 이런 것?
"문제도 이 땅에 있고, 그 해법도 이 땅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다" 는 이야기는 비단 건축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리라.
밀린 일 때문에 바쁘기도 하고 지독한 목감기 때문에 컨디션이 정말 메롱이다.
근데 꼭 기록해두고 싶은 게 있다.
얼마 전에 변영주 감독이 진보신당 지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나섰다.
전후 사정은 나도 잘 모른다.
허나, 누가 부탁한다고 마음에도 없는 일을 그녀가 억지로 했을 것 같지는 않고
또 평소의 행보에 비추어볼 때 그닥 예상못한 일도 아니기는 하다.
그런데, 그 전에 나는 그녀가 당적을 옮겼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예전에 연구소 모임에 특강 오셨을 때 뒷풀이 자리에서 그녀는 노와 심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표명한 바 있다.
이들의 생각에 동의할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이 사람들이 너무 좋다고 이야기했었다.
나는 그래서, 혹시나 그녀가 그들을 따라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권력에 대한 욕심입네 뭐네 사람들이 거품을 물고 욕을 해도,
그래도 나는 여전히 노/심/조에 대한 애정이 적지 않다.
그들의 행보가 아쉽기는 하지만, 그것이 정말 개인의 야욕 때문이었다고는 지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진심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고,
국회에 입성한다면 기여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우리 불쌍한 '조'... ㅜ.ㅜ)
아마, 예전에 노심조를 좋아하고 지지했던 사람이라면 이런 마음들이 다 남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러한 인간적인 애정 (?)과 정당 활동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당원'과 '빠'의 차이점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사회의 노동없는 민주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최장집 교수가
개인적 인연을 들어 손학규 후원회장으로 나섰을 때 세상이 좀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정실 정치, 정당없는 정치, 노동없는 정치를 비판하셨던 분이... 이게 뭔 일인가....
일개 필부도 아니고... 그것이 미치는 파장에 대해서 모르지도 않으실 분이....
이런 맥락에서
변영주 감독이 그 좋아하던 노/심이 아니라 진보신당의 당원으로 남아 있고 공개적 지지를 표명했다는 사실은 다소 상징적이다. 그리고 이건 변 감독 개인 뿐 아니라 노/심을 아직도 아끼고 지지하지만 진보신당 당원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정치학자도 하지 못한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
출퇴근 길이 가까워져서 한 가지 안 좋은 점은 책을 읽기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ㅡ.ㅡ
사실, 출퇴근 시간 절약된 분량을 차분히 앉아서 책읽는 시간에 써도 될텐데...
아무래도 자리에 앉으면 항상 어디에선가 적체되어 있는 일을 하게 되는지라...
저녁 독서시간 할당을 지키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듯... 이러다 바보되겠쓰... ㅜ.ㅜ
#1. SF 명예의 전당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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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명예의 전당 2 : 화성의 오디세이 로버트 A. 하인라인 외 오멜라스(웅진), 2010 |
이거 사실 첨 출판되었을 때 번역자 중 한 명인 네오한테 선물받은 건데
뭉기적거리고 있다가 최근에야 다 읽었다.
내가 번역에 참여했던 '명예의 전당' 시리즈 (?) 중 단편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역시나 느끼는 감정은... 놀랍다/대단하다/신기하다.......
*
아무런 맥락없이 읽는다면 빈번하게 등장하는 정형화된 클리세들이 눈에 거슬리고
공장에서 찍어내듯 고만고만하게 나오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될 법도 하지만,
여기 실린 이 글들이 현재의 그 클리셰, 혹은 스테레오타입의 원조였음을 생각하면 대단하다는 말로는 오히려 설명이 부족하다.
이를테면, 서글프고 애틋하면서도 약간 소름이 돋는 '헬렌 올로이' 같은게 대표적이다.
감정을 갖게 된 로봇, 로봇인 줄 모르는 로봇, 그 정체를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사람...
SF 업계에서 이 얼마나 상투적이고 흔해빠진 스토리인가 말이지.. ㅋㅋ
근데 이게 1938년 작이라는 사실이 완전 후덜덜......
스터전의 경우에도 그 명성만 익히 전해듣고 작품은 첨 보았는데, 역시 소인, 기계인간의 창조주, 우리 주변의 소우주, 사회성 빵점인 과학자.... 오늘날 흔해빠진 플롯들의 원조 ....
반인/반기계를 다룬 '스캐너의 허무한 삶'도 그렇고,
초능력을 갖게 된 누군가 (대개는 어린이 ㅋㅋ)의 축복받지 못한 삶을 다룬 '즐거운 인생',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과도 관련된 안전한 로봇 패러다임에 반하는 '즐거운 기온'도 이런 유형...
*
미래를 내다보는 혹은 사회문제를 예측하거나 뚫어보는 눈 또한 놀라운데,
이를테면 핵 노출에 의한 기형아 문제를 아주 짧고도 인상적으로 그려낸 '오로지 엄마만이',
도덕/차별/배제 문제의 복잡성을 빼어나게 그려낸 '친절한 이들의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앨저넌에게 꽃다발을'은 엄청난 수작....
정체성/능력주의/과학기술의 사회적 영향 같은 어려운 당대의 이슈를 어쩜 이렇게 짜임새 있으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려냈는지.... 읽는 내내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음.. ㅜ.ㅜ
*
근데... 하인라인의 노동자 적대성은 도대체....
누가 쓴 건지 확인하지도 않고 읽다가 '혹시?' 하면서 다시 앞쪽을 들춰보니 '역시' 그였어... ㅡ.ㅡ
글은 참 맛깔나게 쓰는데... 짜증이 화르륵..
#2.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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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 창조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16가지 이유 리처드 도킨스 외 바다출판사, 2012 |
당대의 일류 과학자들이 바쁜 시간을 내서 이렇게 책을 써야 하는 미국의 현실이 그저 안습....
나도 2004-05년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어처구니를 상실했던 공립학교 지적설계론 교육을 둘러싼 되도 않는 '논쟁'에 과학자들이 이건 정말 심각하구나 하면서 함께 팔을 걷어붙인 프로젝트라고나 할까?
뭐 미국 상황이 한심하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도 KAIST 에 '창조관'이 버젓이 존재하고, 미국의 복음주의 영향이 남유난히 강한 점을 생각한다면 남 욕할 처지는 아닌 듯...
담배회사나 석유회사들이 건강영향, 지구온난화 등 자신들에게 불리한 연구결과를 반박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수단은 의심을 창출하고 논란을 만들어서 시간끌기.... 사실 창조과학의 최근 버전인 지적설계론이 동원하고 있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보면 될 듯...
진화론이 완전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도 있고, 지적설계론이라는 대안적 설명도 있는데, 학문의 자유, 선택의 자유라는 미국 정신에 따라 과학 시간에 여러 가지 견해를 다 가르치는게 좋지 않겠냐... 이런 접근전략...
말만 들으면 그럴듯해보이지만, 일단 지적 설계론은 '검정'이 가능한 형태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실제로 전문가동료 심사 학술지에 증거가 제시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건 뭐 과학도 아닌데.... 어디 듣보잡이 나타나서 진화론과 자기가 동급이라고.....
워낙 지적설계론을 포함하여 종교 - 특히 기독교는 정파, 사파, 구교, 신교 가리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기에 책의 내용이 신기한 것은 없었으나,
'자연선택은 누가 더 생존율이 높을지 모르는 상태로 생겨나는 무작위적인 변이들을 재료로 삼는 무작위적이지 않은 과정'이라는 간단명료한 문장으로 진화론의 핵심을 설명한 것이 기억에 남고, 또 두 가지 인상적인 부분....
첫째는, 신학교에 다닐만큼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다윈이 자신의 믿음, 그리고 기존의 지식과 일치하지 않는 자신의 발견 때문에 몹시도 괴로워했다는 점....
만일 이 때 다윈이 '어 이게 아닐 거야, 내가 뭘 잘못 봤겠지, 이럴 리가 없잖아'라고 넘어갔으면 현대의 위대한 발견은 없었거나 아니면 한참이나 뒤늦게 다른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 코페르니쿠스의 위대한 발견도, 기존 지식으로부터 예측된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자신의 관찰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왜' 라는 끈질긴 질문으로 추구한데서 비롯된 것임을 떠올려보면, 과학적 태도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믿음'이 아닌 '이성'에 의해 질문하고,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리라...
이에 비하면, 내가 그동안 했던 연구들에서 이런 태도는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반성.... ㅡ.ㅡ
뭐 내가 다윈이나 코페르니쿠스 쫓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지겠지만,
기존 지식과 일치하지 않는 결과에 대한 경시, 혹은 안일한 해석은 돌아보면 민망할 지경............ㅜ.ㅜ
둘째는 과학이 도덕원리를 제공할 수 없는 것만큼이나 종교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 (스티븐 핑커)에 완전 공감!!! 종교가 일부 (!)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것도 사실이지만, 그 패악질을 두고 손익계산서를 비교해본다면 인류에게 손해가 더 클 것이라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인데다, 종교가 과연 윤리와 도덕 영역에서는 소중한 존재인가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가졌던 나에게 아주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의견....
종교, 특히 자기성찰로서의 도구가 아니라 어떤 절대자와의 관계를 상정하는 종교의 경우,
그러한 절대자의 존재가 사람을 과연 더욱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만들까???
역사적으로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 훌륭한 종교지도자들이 많았고 (많았나?)
또 일반인들 중에서도 해당 종교가 내세운 본연의 미덕을 실천하며 사는 이들이 적지는 않았으나, 그렇다면 counter-factual condition 을 가정했을 때 과연 이들이 해당 종교에 귀의하지 않았더라면 인간 말종이 되었을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ㅋㅋ
종교 없었어도 충분히 그들은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싶다는....
실제로는 버트런트 러셀도 누누이 지적했듯,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혹은 인가된 패악이 너무너무 많은데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도덕이 종교의 영역에 속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스티븐 핑커의 경고는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종교가 없다는 것이 물질만능주의 인간말종으로 살겠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잖나....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몇 주 전 한겨레 21에 실린 김인국 신부의 인터뷰를 읽다 약간 허거덕 했다. 이 분은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할 때 도와주고 힘이 되준 훌륭한 분이다. 인터뷰 중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뱀이 시키는 대로 놔두면 안 된다. 창세기에 나오는 원죄 이야기다. 아담과 이브가 금지된 과일을 따먹은 것보다 더 무거운 죄는 지각능력과 판단능력을 버리고 뱀이 시키는 대로 행동한 것이다. 운명의 결정권을 뱀에게 넘긴 것이 죄와 불행의 시작이었다. 세상의 불법과 폭력에 우리가 공범자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의 악에 우리도 어떤 모양으로든 일조하거나 간접으로 승인하거나 결과적으로 방조 또는 묵인한 측면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이 이럴 수는 없다." (한겨레 21 900호 김인국 신부 인터뷰)
글쎄다.. 나는 이 에덴동산 장면을, 창조주가 시키는 대로 무개념 상태로 살다가 뱀을 통해 처음으로 각성을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 상징적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운명의 결정권을 뱀에게 넘긴게 아니라, 뱀을 통해 돌아보게 된 것 아니여? 그 전에는 결정권이 오로지 그분에게 있다가??? 이런 걸 보면 정말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한다는 생각밖에.... 뒷부분 논지에는 완전 동의하는데, 이게 정말 적절한 사례인지는 도대체 납득이 안 됨...
하긴, 뭐 믿는다는데 어쩌겠나.... 과학적으로 입증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나는 절대자 믿는 종교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사족이지만, 이건 실존인물을 둘러싼 종교적 빠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ㅋㅋㅋ
하필이면! 이 영화를 용산 CGV에서 보았다.
경선, 혹은 선영이라 불리길 원했던 그녀가 정신줄을 놓고 용산역사를, 백화점을 지나 주차장으로 질주하던 중 당장이라도 극장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게 아닌가 하는 괜한 걱정마저... ㅡ.ㅡ;;
1. 영화는 무서웠다.
그건, 잔혹한 장면들이 있거나 혹은 '앗 깜딱야' 하는 놀래킴의 장면들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당대, 오늘 이곳 한국사회가 너무나 생생하게 드러나 있어서 무서웠던 것이다.
마치, 여고괴담이 무섭게 느껴졌던 게 귀신 때문이 아니라 그 익숙하고 공포스러운 공간으로서의 학교 때문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 사라지고 연락이 끊어져도 사람들은 무심하다.
대낮에 무법천지 폭력이 자행되도 공권력은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폭력과 소외의 피해자는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또다른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새로운 가해자로 거듭난다. 차라리 이 사회의 기득권을 향한 한방이라면 속이라도 시원하겠지만, 그건 허구에 존재하는 심리적 위안일 뿐, 현실은 대개 그렇지 않다.
나는 그녀가 말할 수 없이 가여웠지만, 내 옆에 다가올까 두려웠다.
"다 이해할 있어, 괜찮아" 라고 품어줄 수는 없었다.
누구도 처음부터 살인마고,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은 아니리라.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스스로에게 몸서리를 치는 사람과, 주도면밀하게 우편함을 털고 고무장갑과 여행가방을 준비하는 이는 슬프지만 같은 사람이었다. 그저... 행복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지금 또 어디에선가 이렇게 아름답고도 공포스러운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 사회가 사무치게 두려워졌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일지 모른다.
관객으로 하여금, 연민과 공포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2. 영화는 감독의 것...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김민희 의 연기가 참 좋았다.
과하지 않다는 것... 이게 참 어려울텐데 말이다.
이선균이나 조성하, 다른 조연들의 연기도 다들 과하지 않았다.
경선의 친한 언니, 전남편, 동물병원 간호사, 동료형사, 은행다니는 문호 친구까지...
나는 이것이 전적으로 감독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아주아주 현실적인 소소한 장면들도 좋았다.
이를테면 문호 아버지가 파혼을 두고 아들을 야단치는 장면 같은 경우,
대부분의 TV 드라마에서 호쾌하게 뺨을 한 대 날리거나 뒷목을 잡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비해
영화에서는 마구잡이로 아들의 등짝을 때려댄다.
헐리우드 영화에서처럼 퇴물 형사가 갑자기 능력자로 변신하는 일 따위도 없었다.
그리고 도대체 가라앉을 겨를이 없었던 문호의 충격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일단 약혼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자체가 충격인데
그녀에게는 과거 파산기록이 있고 파산신청서에는 술집에 나갔다는 기록이 있다.
일단 한방 먹었지만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으나.... 결정적으로 심지어 본인이 아니야... ㅡ.ㅡ
여기서 완전히 멘붕...
천신만고 끝에 신분을 확인하고 보니 이혼 경력...나중에는 심지어 아이까지....
(그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등장인물들과 똑같은 대사 "뭐? 애까지?"를 내뱉고 말았음)
이런 긴장의 매듭들을 관객들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끌고 갈 수 있는 게 바로 감독의 힘이 아니고 무엇일까?
이 영화에서 얻은 힘을 바탕으로 변영주 감독이 더 나은 작품들을 많이 들고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배우 김민희가 앞으로도 계속 '배우'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램....
* 사족이지만...
사람을 새로 뽑거나 만나게 될 때.... 레퍼런스 체크가 중요하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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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넘 멋있어요!!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의료연대 서울지부 시민건강증진연구소 분회 화이링!! 이런 모범은 따라 배워야할 듯...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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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연맹 조합원이군요... 반갑습니다..ㅋㅋ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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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민건강증진연구소....노조 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네요.
노동조합. 단순히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모인 집단 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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