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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독특한 무대셋팅과 구성...
사진의 그물잔상은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마법의 장치... ㅋㅋ
진정 음악'만' 있는 공연....
즐겁다, 혹은 행복하다, 멋지다 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이와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해준 순간들이랄까....



끓고 있지는 않으나,
이제 막 끓어오르려는.... 엄청난 갈등을 조용한 표면에 감추고 있는 글들....
표면의 평온, 그리고 극심한 갈등과 떨림.... 세심한 표현들.....이런 것들이 너무 좋았다.
#1. 프리모 레비 [주기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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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돌베개, 2007 |
이 책은 꽤나 오래전에 사두었는데, 영 진도가 나지 않았었다.
뭔 말이래?.... 이 장은 도대체 무슨 의도로 쓴거래........???
그래서 결국 책장을 덮어두었었는데.....
[이것이 인간인가] [휴전]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언제] 까지 읽고 나서 다시 펴든 이 책은 정말 어찌할바 모를 만큼 좋았다....
윤동주 시인이 별 하나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 등등을 담았다면,
프리모 레비는 원소기호 하나하나에 자신의 삶과 사랑과 고통, 그리고 관조와 지혜를 담아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어쩌면 그렇게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었을까???
바나듐 장에서, 뮐러 박사의 존재를 발견하고는 나도 손가락이 파르르 떨리는 듯했다. 그는 더했으리라.....
어찌 된 영문인지, 나는 프리모 레비의 마음을 내가 다 이해하는 것만 같고 (무슨 자뻑이람 ㅜ.ㅜ)
거기 (?) 에 좀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뭘 어쩌려구..........
내년까지 지구가 안 망하면 꼭 가봐야겠다.
내 눈으로, 그가 본 것을 보아야겠다....
#2. 창비세계문학 - 일본편, 중국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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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리 - 일본 나쓰메 소세키 외 창비(창작과비평사),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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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 중국 스져춘 외 창비(창작과비평사), 2010 |
완전 흥미진진....
전근대에서 근대로, 다시 아슬아슬하게 현대로 넘어오는 그 파란만장했던 시기의 대표적 중단편들이 선별되어 있음....
물론 이보다 훨씬 다양하고 많은 작품들이 있을테고, 여기 실린 글들만으로 당대의 사조가 어떻다고 평하는 건 참으로 무식하고도 용감한 일이겠으나
이 시기 일본의 단편들에서 한국 근대 단편소설들의 아우라를 강하게 느꼈다면 나의 편견일까나???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준 것인지는 말하기 어려우나, 룸펜 인텔리겐챠가 등장하거나 자의식 과잉의 혐의가 짙은 (이제 막 발견하던 시기겠지만) 글들일수록 묘한 기시감이.....
그리고 여기 실린 중국 소설들에서는 예전에 '미국편'과 마찬가지로 신선함과 역동성을 발견....
노신 선생의 아큐정전은 정말 오랜만에 다시 읽은 건데.... 대학생 시절 읽었을 때보다 훨씬 슬픈, 아니 그보다는 좀더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읽었고 (상황에 대한 몰입이 더 심화되어서?) 계급/젠더 문제를 '은근히' 형상화한 다른 작가의 작품들에서도 그들의 시대를 앞선 통찰력과 매서운 눈매에 감탄....
어찌나 서양 위주의 공부를 했는지, 이들이 중국과 일본 근대문학의 대표작가라는데 노신과 나쯔메 소세끼 빼면 단 한명도 이름을 모르겠어... 심지어 외워지지도 않음... ㅜ.ㅜ
생각같아서는, 창비나 역자들한테 편지 보내서 책좀 더 추천해달라 하고 싶네.....
올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사진들도, 어찌 보자면 차분한 가운데 심도가 느껴지고, 어떤 것들은 귀신 나올 것 같은 우중충.. ㅜ.ㅜ
#. 메이지 신궁
지난 7월 초 일본 출장 때 스케줄이 한 타임 비어서 시내에 위치한 메이지 신궁에 구경갔다...
흐리고 무더운 날이었고, 신궁에 대한 안내는 심기에 거슬렸다.
메이지 천황 부부의 죽음에 대한 온국민적 추모 열기에서 지어지게 되었다니.... .
이 때가 한창 제국주의적 침략이 노골화되던 시기....
도심 한 가운데 그토록 울창하게 수목들이 보존될 수 있다는게 부럽기도 하고,
연합군의 공습을 피해간 것에 알 수 없는 묘한 정서적 이물감....???
사진들이 좀 호러영화 스러운.... ㅡ.ㅡ



#. 소안도
서울역노숙인 진료소 학생들 섬활에 강의하러 다녀옴...
학생들은 더위와 노역, 마지막날 물놀이에 지쳐 내 강의 따위엔 관심도 없었어... ㅜ.ㅜ
익히 짐작이야 했지만 뭐.............
아침에 집 출발해서 거의 열시간 만에 섬에 도착...
매일 서울에서 비만 보다가 땡볕을 보니까 '잠시' 반갑기는 했는데 어찌나 뜨거운지 원...
가기전에 노가다 장에게 이 곳이 독립운동 유적지라는 이야기를 듣고 잉? 했었더랬다.
아니, 그 구석에 있는 작은 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게야, 도대체 상상이 안 갔었는데...
가보니 참... 찡하더라는....
정작 지배계급이 한양에서 나라 팔아먹고 식민지 지배가 천년만년 지속될 거라며 황당한 짓거리들 벌일 때, 이 곳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일본인 순찰조를 처단하기 위해 등대섬을 기어올라가는 불령선인들의 모형은, 그 조잡함 때문에 더 짠하더라는...
그리고 사진에서 민족교육을 위해 세운 소학교에서 여학생들이 나란히 교육받는 모습도 뭉클....
마을 분들이 어찌나 자부심이 높으신지 첨엔 뭔 일인가 했는데...
박물관에 나열된 이름들의 갯수가 정말 이 작은 섬마을에서 모두 비롯되었다고는 믿기지가 않을 지경....
항상, 나라는 엄한 놈들이 망쳐놓고, 이렇게 민중들이 땅에서 박박 기며 그 나라 찾아오거나 살려냈다는 우리네 슬픈 역사가 그대로 재현된 공간....




#., 비오는 전등사
약간 흐린 날씨에 정말 '눈이 부시게 푸르른' 숲과 논밭의 작물들을 보며
블루베리 한 상자 먹은 약효를 체험 ㅋㅋ
눈이 막 선명해지는 것 같은 느낌....



골치아픈 문제가 있어서 이리저리 잔머리 굴리다가 상관없는 글 한편...
예전에 동네 노점상 벽에 "서울형 데이케어센터" 써붙여 놓은거 보고
아주 지랄도 풍년이라 생각했다.
노인들 찾아올까봐 걱정되서 일부러 영어로 이름 붙였냐?
서울시청 내에 영어전용카페를 차렸다는 소리를 듣고는 어이가 가출해버렸다.
세상에 어떤 나라에서 수도 청사 안에 남의 나라말 전용 카페를 차려놓는다냐...???
알고 보니 내선일체가 수도서울의 정책 원칙이었던 겐가?
이 인간들 머리 속에는 뭐가 들어 있나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너네들 영어 얼마나 잘하냐?
사실, 한겨레 21의 "히든스폿" 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영어 모르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가서 물흐리는게 두려워 되도 않는 영어로 쓴 것일까?
하긴.... 요즘 영어 이름붙이기의 진정한 슈퍼갑은 아마도 "인 어 베러 월드" 일 것...
덴마크어 원제는 "복수 (Hævnen)"라는데, 그걸 굳이 영어발음 한국어로, 심지어 "베터 월드"도 아니고 "베러 월드"라고 표기한 수입사의 초감각에 그저 감탄할 밖에....
이자들, 다 나오라고 하고 싶다.
나랑 싸우자! 꼭 영어로!!!
영어 얼마나 잘하나 보자구!!!!
낮에 뻐꾸기 선배랑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하며 그녀의 요즘 고충을 들었다.
일, 일터, 동료.... 들에 대한 이야기들...
인간사 많은 공통점들이 있으니, 익숙한 이야기들이지만서도,
또 세부적인 차이점이나 구체적인 맥락 효과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다.
친구들 만나면 이야기의 거의 8할이 '회사' 이야기다. (나머지 2할은 무한도전 이야기 ㅋㅋ)
이자들이 첨 직장생활 시작할 적에는 누구네 상사가 더 일을 못하고 성격이 괴팍한가 배틀을 벌이더니,
한동안 서라운드 비난 시기를 지나, 이제 중간관리자에 이르러서는 하급자들에 대한 성토로 너무나 분주하다.
어쩌면 그렇게 개념없고 일 못하는 인간들이 내 친구 주변에만 몰려있단 말인가? ㅋㅋㅋ
네가지가 없다거나 성격이 이상하다는 건 주요 주제가 아니다.
대개 그런 건 바라지도 않고 그냥 일이나 말끔하게 잘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망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영 채워지지 않는다는 거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었더니, 뻐꾸기 선배가, 담에 내 친구들 만날 때 자기도 끼워달랜다.
자기가 1등할 수 있을 것 같다나? 천만의 말씀이다... 이자들이 얼마나 강력한데 ㅋㅋㅋ
대개 그런 자리에서 나는 거의 할 말이 없다.
뭐 쪼그만 연구소에 비슷한 지향을 가진사람이 모인데다 실적, 갑과 을... 뭐 이런 갈등관계의 여지가 적다보니 그렇게 고통을 받을만한 일이 여간해서는 없다. 그래서 주로 이야기를 들으며 '관찰'한다.....
그 때마다 도대체 한국의 이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다들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고, 행복과 불행의 근원이 다 일로부터 올 수 있는지...
정말 생활을 '압도'한다고나 할까...?
가정생활이나 기타 사회생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압도'라고 표현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
프로젝트, 마감, 실적... 그리고 인간관계에서의 갈등..... ㅡ.ㅡ
예전에 오빠 머리에 동전만한 땜빵 (원형탈모증)이 생긴 걸 보고 깜놀했다. 심지어 역류성 식도염도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고 있다. 그렇게나 자기 몸을 아끼고, 운동에 미처있는 사람이지만, 그자 역시 모든 정신은 회사 일에 집중되어 있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SSK 과제에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을 물었는데, 압도적으로 '일' '직장' '회사'가 꼽혔다. 구체적인 내용들을 들여다보면 주변의 '직장인'들이 하는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이러한 현상은 '일중독'과는 다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한편으로는 일로부터 좀 벗어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토록 중요한 삶의 가치인 일을 함부로 빼앗거나 혹은 더욱 열악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훌쩍 새 삶을 찾아 떠나거나, 아니면 개척자 정신으로 새로운 일들을 쓱싹쓱싹 시작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문화적/경제적/사회적 자본을 갖지 않은 자에게 이는 더더군다나 어려운 일...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일이 좀더 할만한 것이 되도록, 고통보다는 즐거움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게 필요할 것이다....
* 지난 4월에 노건연과 프레시안이 함께 기획기사를 낸 적이 있다. 그 때 썼던 글 한 편....
쌍용자동차 주변에서 벌어진 일련의 죽음들은 연민, 분노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철학적 주제를 생각해보게끔 만들었다. 흔히 한 사회의 실업률이 높아지면, 정신건강이 악화되고 자살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개인적인 수준에서도,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살이나 다른 건강 문제를 경험할 확률이 높다는 것도 거의 상식이다.
이것이 완전히 틀리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보편적이며 불가피한 현상인 것은 아니다. OECD 국가들을 비교해보면, 동구권 국가들을 제외할 때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포함하는 남부유럽 국가들의 실업률이 가장 높지만 정작 이들 국가의 자살률은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같은 맥락에서, 일국 내에서 실업률과 자살률의 시간적 변동이 모든 나라에서 일관되게 같은 방향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또 자살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사망률 측면에서도, 실업률이 상승하거나 경기가 악화된다고 반드시 그에 상응하여 사망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 사회가 겪는 실업의 고통은 다소 남다른 데가 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일은 어떤 의미를 가진 걸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물질적 보상,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일이다. 중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수억대의 주식부자로 신문에 이름을 올리든가, ‘별볼일 없는’ 상가 건물이라도 물려받지 않는 이상, 대다수 사람들에게 ‘일해서 벌어오는 돈’은 유일한 생계 수단이다. 또한 사회학자 Jahoda는 일이 주는 사회심리적 편익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상에 시간 구조를 만들어주고, 핵가족 바깥의 사람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접촉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며, 삶의 어떤 목표나 목적을 갖게 해줄 뿐 아니라, 개인의 지위와 정체성의 중요한 측면을 구성한다는 것이다.1 학술적으로 표현했다 뿐이지, 사실은 우리가 암묵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어쨌든 이러한 본성 때문에, 실업 혹은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만으로도 사람들의 건강과 안녕에는 부정적 영향이 발생한다.23
그러나 이런 보편적 설명에 덧붙여, 한국사회에서 일과 실업의 의미는 특별히 각별한 구석이 있다. 우선 이 사회에서 나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줄 이는 우리 자신밖에 없다. 2008년 현재 실업자들의 실업급여 수급률은 40% 남짓에 불과하다. 임금근로자의 고용보험 적용률이 60% 내외인데다 실업율이 과소추정된다는 비판까지 고려하면, 실제로 실업급여 혜택의 범위는 상당히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나마 실업급여를 받는다 해도 임금 대체율은 형편없다. 국제 비교가 가능한 2007년 시점에 실업 1년차의 임금대체율은 31%로 미국․영국과 더불어 OECD 국가들 중 최하위권이다.4 일자리를 잃으면, 그야말로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는 것이다.
돈 뿐인가? 한국 사람들의 근로의욕은 유난해 보인다. 2005-2008 세계가치조사에 참여한 OECD 19개 국가들 중 삶에서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응답한 비율이 51.8%인데 비해 한국은 61.9%로 최상위권에 포함되어 있다.5 강수돌 교수의 보고에 따르면, ‘이혼보다 실직이 더 고통스럽다’는 말에 미국인의 41%, 일본인의 36%가 동의한 반면, 한국인은 65%가 여기에 동의했다.6
하지만 한국인들이 태생적으로 ‘근로윤리’가 유별나다고 보기는 어렵다.
“망국의 운명에 처한 민족이지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자체를 서럽게 생각하며, 마땅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편하게 지내야 할 시간에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시간적인 손실이라고 여깁니다. 불필요한 노동은 건강을 해치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것 자체가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1904년 한 일본군 대위는 서방의 저널리스트에게 이렇게 조선인을 흉보았다.7 한국인이 원래부터 일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었던 게다. 그보다는, 앞서 살펴본 대로 일 아니면 살아갈 방도가 없기 때문에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도 있다. 2008년 시점 OECD 국가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이 1,764 시간인데 비해, 한국은 2,256 시간으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일중독이라고 알려진 일본조차 1,772 시간이니, 그에 비하면 500여 시간, 일일 8시간 근무를 가정하면 무려 60일, 두 달을 더 일하는 셈이다.8 생활의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내는 실정이니, 그것이 애정이든 애증이든, 한국인의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에 비해 클 수밖에 없다. 일이, 혹은 회사가 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때로는 지독하게 벗어나고 싶다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은, 한국사회에서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이 남다른 상처가 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표상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노동자들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는 세계의 여러 연구자들이 반복적으로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논문도 한국의 쌍용자동차 ‘사태’만큼 극적인 사례를 보여준 적이 없다.
노동자들은 그저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어느 날 외국 기업으로 주인이 바뀌었고, 또 어느 날 그 주인은 변심하여 회사를 팽개치고 사라져 버렸다. 마치 노동자들이 일을 안 해 회사가 어려워지기라도 한 듯, 해고가 시작되었고, 그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헬기가 상공을 날고, 투석전과 곤봉이 난무하는 전투가 벌어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다쳤다.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살아남은 자들, 또 그 가족들도 위태롭기는 매한가지다. 파업 참가 노동자들에게 청구된 손해배상 금액은 상상을 초월한다. 필자가 읽었던 논문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가져올 ‘잠재적’ 영향들을 경고했지, 이렇게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효과를 나타난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었다.
2000년대 중반 세계최대 유통업체 월마트는 의료보험 문제를 두고 진보진영은 물론 중도 우파에게서도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회사에서 보험을 안 들어주니까 많은 직원들이 무보험자, 혹은 메이케이드 (의료급여) 수급자가 되어 결국 납세자들의 부담을 증가시킨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였다. 이 문제를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아닌 납세자의 권리 침해 사안으로 바라보는 것이 다소 불편하기는 하지만, 기업이 이윤 창출에 드는 비용을 노동자나 다른 시민들에게 전가했다는 지적은 매우 타당하다.9 도쿄 전력, 그와 결탁된 소수의 관료들의 이해 추구가 현재 일본 시민들은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 어떤 부정적 결과를 미치고 있는지는, 이러한 비용 외부화의 또 다른 생생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해고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해고는 기업이 언제고 택할 수 있는 쉬운 옵션이어서는 안 된다. ‘이윤’을 목표로 하는 기업에게 ‘도덕’을 요구한다고 불평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불안>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 노동과 다른 요소(원료, 기계)들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노동자는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생산라인 가동비용이 엄청나게 비싸지면 가동을 중단하기도 하는데, 이때 기계는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한탄하지 않는다. 석탄 사용을 중단하고 천연가스를 사용해도 도태된 자원은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않는다...”
기업들이 절감한 비용, 증진시킨 효율성이라는 것이, 창의적인 혁신에서 추가적으로 창출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파괴시키고, 사회의 불특정 다수에게 비용을 전가시킴으로써 얻어진 것이라면 사회는 그것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이는 도덕성 이전에,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소위 ‘기업가 정신 (entrepreneurship)’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명문대 MBA를 자랑하는 경영인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게 고작 물량에 맞춰 노동자 숫자를 조정하는 것밖에 없다는 걸 믿기 어렵다.
해고를 사기업의 내부 문제로 생각하여 방치하거나, 고용유연화를 조장하는 정부의 행태 또한 비난받아 마땅하다. 자유시장 원칙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지만, 한편으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장바구니 물가를 챙기고, 한복 차림의 고객을 홀대했다는 호텔에게 국회의원이 호통치는 곳이 한국이다. 또한 이 나라는 정부가 직접 나서 파업 참가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곳이기도 하다. 해고와 비정규화가 구조조정의 전부인 것처럼 행동하는 기업들 앞에서, 국가는 적극적으로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노동자는 기업의 종복이 아니라 국가의 시민이다. 특히나 이번 쌍용자동차 사례에서처럼, 책임있는 경영진의 존재가 불분명한 곳에서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의 역할은 막중하다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은 착한 소비자가 되어 기업의 양심에 호소하기보다, 그 자신이 노동자로서 연대할 필요가 있다. 매일 당장 때려치우겠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맡은 일을 해내려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봄날 월차 내기를 꺼려하는 성실한 직장인, 당신들이 바로 노동자다. 생계를 위해서든,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든, 일이 우리에게 그토록 소중한 것이라면, 다른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사회에서 해고와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화는 기업이 너무도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되어버렸다. 반면 사회적 안전장치가 전무한 속에서,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 유례없는 상처와 고통이 되고 있다. 정부는 팔짱끼고 앉아서 사태를 ‘관람’하거나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세 가지 모두 ‘정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끝)
서경식 선생의 또다른 책이다.
도서관에 신간구매로 신청하면 책 반입시 우선 예약자로 등록된다. 그리하야 '새책'을 읽는 영광을 누렸다. 지난 번 [사치열병[도 마찬가지 ㅋㅋ
요즘에 주로 생활사보다는 책이나 영화 감상글을 남겨두는 편인데,
한편으로는 평소에 하고픈 이야기들을 여한 없이 하기 때문에 딱히 블로그에까지 남길 글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별로 할 말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말과 글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세상에 뭐 굳이 ㅋㅋ
은인자중, 암중모색이 필요한 시기..... 라고 하면 좀 오바질이지만 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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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감옥에서 -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서경식 돌베개, 2011 |
이 책은 선생의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어찌 보면 다소 불편할 수도 있을만큼 예민하고 까칠한 글들...
만일 그의 글이 불편하다고 느낀다면, 아마도 이런 것 때문이리라....
또 재일조선인, 민족, 국가, 화해 이야기냐?
그래도 우리 (?) 편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한테 너무 가혹하게 비판하는 거 아니냐?
그런데, 글쓴이가 서문에서 밝혔듯 상황은 그렇지 않다.
"나는 곧 만 60세를 맞이한다. 이전에는 60세가 되어서도 살아있는 자신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심지어 60세가 되어서도 이 책에서 하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젊었을 때 나는 그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머지않아 내 발언 따위는 쓸모 없어질 거라고 막연하게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이야기 "그래도 그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에요" 문제...
저자의 말대로 "구일본군 병사도 천황 히로이토도 개인적으로 보면 '좋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
어릴 적에 임철우의 단편 [붉은 방]을 읽고 다소 충격받았었다.
고문형사의 그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모습에... 세상에, 그도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화끈한 한화그룹 회장이나, 위장전입을 일삼는 고위공직자 나으리들도 다 알고 보면 자식사랑이 극진할 뿐인, 그저 평범하고 좋은 사람들일 것이다....ㅡ.ㅡ
이 두 가지,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고, "알고보면 좋은" 사람들, 특히나 '나름' 진보적인 일본의 리버럴 지식인들이 기묘한 방식으로 피해자에게 화해를 강제하는 현실 속에서 글쓴이는 자꾸만, 듣기싫어해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없는 것이다.
죄는 개인에게 귀속되지만 책임은 집단에게 귀속될 수 있다는 한나 아렌트의 논거로부터 선생은 일본'국민' 일반의 소극적인 전쟁책임 회피, 혹은 쿨하게 전향적으로 털어버리고 싶은데 피해자들의 지나친 (!) 민족주의적 반일정서 때문에 문제 해결이 지체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본의 '리버럴' 지식인들을 비판한다.
또한 "설령 피해자에게 가해성이 침투해있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그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운용한 자들의 가해책임을 상대화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면서 프리모 레비의 깊이 있는 성찰을 언급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전후세대이자 소위 국제주의자로서 (이런 말을 막 쓰다니 낯부끄러워라 ㅡ.ㅡ) '민족' '민족주의'라고 하면 일단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나이지만, 냉철한 민족주의/국가주의 비판과 동반된 선생의 민족적 지향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로 환원되지 않는 국민주의적 내셔널리즘의 문제"는 그것이 꼭 한/일 관계 문제가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 내에서 훨씬 많은 고민과 성찰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옮긴이는 서경식 교수를 통해서 널리 회자된 '디아스포라' 라는 용어가, 그 고민의 내용은 거세된 채, 해방의 '이미지'로서 낭만적으로 소비되는 현상을 지적했다. 나 또한 '나라없는 사람'을 꿈꾸며 아인쉬타인의 (내가 이해도 못할) 상대성이론보다는 그의 자발적인 국적포기를 더욱 높이 사는 형편이지만, 그것이 외부의 강제, 역사라는 개인이 감당못한 소용돌이에 의해 강제되었을 때 감내해야 하는 신산한 삶에 대해서는 너무나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크게 다를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지만, [난민과 국민사이]도 읽어봐야겠다...
* 뱀발1.
주말에 섬활에 다녀오면서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를 읽는 중에,
문득... 음... 아우슈비츠에 직접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장 아메리도 있었고, 프리모 레비도 있었지 않나.....
참, 프리모레비에 관한 다큐영화도 찾아서 봐야겠다는 생각....
* 뱀발2.
서경식 선생한테 편지를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당신의 책에 무척 공감했다.. 이런 낯간지러운 글 ㅋㅋ
그리고 일본인의 집단적 심리에 대한 질문도 겸사겸사....
이건 딱히 '일본인'이라는 특정 '국민'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인간의 집단적 행태/관계에 대한 궁금증.. ...
한국말도 이제 잘 하시는 것 같던데..... 흠.......
반도체 산업 종사노동자들의 행정소송 결과를 듣고, 좀 울컥했다.
반올림 활동가들이나 직접 소견서 작성하니라 고생한 산업의학 샘들에 비하면 뭐 그리 애쓴 것도 없지만, 웬지 손톱만큼 기여를 했다는 생각도 들고, 또 예상보다 우호적인 판결 결과에 약간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판결문을 살펴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호적인' 판결을 환영하기만 해도 되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또 어영부영 넘어가게 될 것 같아 메모를 간략히 남겨둔다.
#.
우선 '인과성'에 대한 판단이 학술적 논의가 아닌 법적 논의를 통해 확정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질판위라는 전문가 기구에서의 결정은 차치하더라도, 산보연의 역학조사 보고서는 작업과의 백혈병 사이의 인과성을 확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었다. 그런데, 바로 그 보고서를 근거자료로, 법정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물론, 통계적 검정력이 낮기 때문에 신뢰구간의 폭이 넓어 유의한 차이를 확정할 수 없다는 점이나, 건강근로자 효과 때문에 전반적으로 초과사망의 효과가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충분히 언급하지 않은 보고서에 대해 우리는 매우 비판적이었다. 또한 통계적으로 유의하지는 않지만 일관성 (consistency)있는 point estimate 의 상승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이 반론이었고, 이러한 논거가 이번 법정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다.
#.
과학적인 차원에서 인과성을 확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개는 광범위한 회색지대가 존재하기 마련이며 학술적인 논쟁과 재현 속에서 인과성은 최대 가능성으로 그저 추정될 뿐이다.
인과성 판단에 '자격'이 필요한 건 아닐 것이다.
최대한의 근거를 종합하여 그 사회가 수긍할 수 있을만큼의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리라. 과학의 역할은 informed decision 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공하는 것....
그러나, 하물며 '순수한 (?)' 것으로 여겨지는 학술적 판단도 정치적 이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할진대, 과연 법정에서 인과성을 판단하는 것은 과연 정당할까?
이러한 우려는 비단 학술적 판단 뿐 아니라, 대법관들이 우리사회의 중요한 가치와 인권의 기본을 확정하고 재단해버리는 것에도 해당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이 학술적으로 ( 혹은 철학적으로) 논의되거냐 확정되어야 할 주장들에 결론을 내버린는 것에 대해 우려하지 않아도 될까?
#.
이번의 우호적 판결은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릴 수 있다.
실제로, 이번 다섯 건 사례 중 두 건은 나름 전향적인 해석과 함께 원고승소의 결과를 낳았지만, 나머지 세 건의 사례들에서는 원고와 피고 (실제로는 진짜 피고말고 보조참고인!!!)의 팩트를 둘러싼 주장들이 대립하는 가운데 일방적으로 피고측의 주장이 '채택'됨으로써 인과성을 인정받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을 것이다. 드물지만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도 생길 것이고, 많은 경우 사법부의 "양심적이고 자유로운, 정보에 기반한" 판단에 따라 여태까지 그래왔듯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판결들이 내려지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호적 판결결과만을 두고, 사법부의 결정을 환영하게 되면, 그 결정에 권위를 부여하게 되면, 후자에 대해서도 동일한 논리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
이 문제에서 보다 본질적인 것은 산재인정을 개인 수준의 인과성과 연계시키고 그것을 특히 노동자 입증책임으로 정해놓은 제도, 그리고 학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인과성에 대한 판단을 법원이라는 정치적 기구,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게 맡기고 있는 현행 제도가 아닐까 싶다.
#. 사족이지만....
내가 산보연 역학조사팀의 일원이라면, 이번 판결을 두고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내가 쓴 보고서를 가지고, 소위 '비전문가'가, 나와는 다른 결론을 내리는 이 상황.....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역학조사가 '엉터리'라고 비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가용한 최선의 자료를 이용하여, 현재 가능한 최선의 분석을 했다.
이를테면 진보진영의 연구자가 들어간다고 해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리는 만무하다.
문제는 분석 그 자체라기보다 자료 특성과 한계를 고려한 세심한 해석과 고찰의 부족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자료 확보와 관련해서는 연구자들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을 거라 짐작은 된다. 압수수색 영장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없다고 안 내놓는 자료를 어디서 확인한다냐... ㅡ.ㅡ ( 역학조사 자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으니 따로 논문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 듯!)
어쨌든, 연구결과가 나왔을 때, 그것이 선별적으로 법원에 의해 인정되거나 부정되는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고, 이러한 맥락에서 연구자의 바람직한 역할은 무엇일지 고심이 필요하다.
#. 또다른 사족이라면...
기밀이라며 역학조사보고서를 여태 공개도 안 하더니만, 얼마 전에 학술지에 떡 하니 영문으로 실렸다.
도대체 이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영업기밀이라며 작업환경조사 보고서를 공개하지 못하게 하는 업체도 황당하지만 (그거 공개하도 그 보고서보고 우리 반도체 못 만든다... ㅜ.ㅜ), 꽁꽁 싸맨 역학조사 내용을 낼름 학술지에 내놓는 산보연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 자기네 논문 쓰려고 그 자료를 기밀로 했던 건 설마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예전에 프레시안에 실린 서평을 읽으니 재밌을 것 같았는데,
그냥 서평만 읽어도 될 뻔했쓰...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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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열병 - 과잉 시대의 돈과 행복 로버트 H. 프랭크 미지북스, 2011 |
거의 470페이지에 걸쳐 중언부언 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은데. 어쨌든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여한없이 다 풀어놓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요약하자면
첫째, 부자들의 사치재 소비가 단순히 주체할수 없이 돈이 넘쳐나는 사람들의 돈자랑질에 불과하다면 문제가 없을텐데, 이는 결국 전체사회의 소비기준을 '쓸데없이' 상향이동시키고 그럼으로써 인간복리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자원, 특히 공공서비스/프로그램들이 '돈이 없어' 축소되는 우스꽝스런 상황을 가져온다는 것
둘째, 안타깝게도 비싼 물건 산다고 행복해지지는 않으며, 아주 작은 능력의 차이나 우연에 의한 차이만으로도 엄청난 보상의 차이를 가져오는 승자독식 사회는 이러한 사치열병의 근원이자 또 사람들을 끊임없이 불행하게 만드는 원천이 된다는 것
셋째, 모든 사람이 시장에서 각자 현명한 선택을 한다는 고전주의 경제학의 기본가정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또한 개인의 현명한 선택 (사치재를 선택함으로써 남보다 두드러지고, 그로 인해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된다면 현명한 설택일 수도 있으니까) 이 반드시 사회전체에도 바람직한 결과를 미치는 것은 아님. 그렇기에 이 사치열병을 고치려면 개인적이 아닌 집단적 수단이 필요하고, 그것은 바로 세금...
넷째.... 그리하여 그 답은 누진소비세... 소득이 아니라 소비에 세금을... 그것도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총소득에서 저축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에 세금을 매기면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 10억원 벌어서 사치하느라 8억원 쓴 사람과 저축하며 검소하게 생활하느라 2억원밖에 안 쓴 사람이 있다면 전자에게 엄청난 세금 부담이 돌아가도록 하면 된다는....
근데...
결국 저자의 주장은 인간본성에 반하는 강제적 규제나 압력이 아니라, 선순환할수 있는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어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선택과 개인의 이득을 통일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건데...
이러한 논리 자체는 무척 공감하나 그렇다고 누진소비세로 몰빵하는게 정말 더 나은 것인지는 도대체 모르겠음. 저자는 열심히 설명을 했는데, 영 납득이 안 됨.... ㅡ.ㅡ
사람들이 상대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늘여 돈을 더 벌기보다, 가족/공동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늘이자는 주장에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나, 과연 한국이나 미국의 그 많은 중하위계급 노동자들이 수천불짜리 바베큐 그릴이나 뽀대나는 신형차를 사려고 그리 일하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이 되지 않음.
또한 환경세라는 인센티브 구조를 통해 자발적으로 기업들이 환경보호에 나서도록 만든 것을 좋은 사례로 언급하며 "중요한 것은 공해의 총량이지 누가 오염물질을 쏟아내느냐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효용극대화라는 경제학의 특성에 비추어 매우 합당하나, 가치지향의 보건학 전공자 입장에서는 영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그리고, 결국 저축을 빼고 총소비에 과세하는 것은, 저자의 다른 표현으로 '저축을 면세하는' 것인데, 중하위계층 미국인 가구의 실질 저축률이 제로인 것을 생각하면, 이걸 보고 효율성과 형평성의 조화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약간 혈압을 상승시키는 처사.... 특히나 미국사회에서 저축이라는 게 한국같은 정기적금이 아니라 대개 뮤추얼 펀드를 비롯하여 금융 '투자'의 개념이 강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저축할 여유가 있는 계층에게 다시 면세의 혜택이 과도하게 돌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게 됨. 물론, 저소득가구야 소비를 다 합쳐봐야 얼마 안 되니까 누진소비세의 절대 규모가 작겠지만, 이게 과연 효율만이 아닌 사회적으로 공정한 조처인가에 대해서는 실증자료와 함께 더욱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임...
저자는 승자독식사회의 폐해를 이야기하지만, 극단적 소비자본주의로의 이행과 노동시장/세계경제의 양극화를 가져온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조차 없으며,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대책없이 고수하는 시장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도 좌파는 규제를 선호한다고 비판한다. 도대체 미국 현실정치에 좌파가 얼마나 있다고 이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으나, "좌파가 독점권력을 탓하는 많은 병폐들은 독점의 문제가 아니라, 미숙련 노동자를 주로 고용하는 노동시장의 문제로 보인다... 미숙련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하지 못한 직장에서 일을 하는 이유는 시장권력을 가진 고용주들이 그들을 착취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필사적으로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이 양반은 '착취'를 악덕 자본가들의 행태를 지칭하는 도덕적 비판의 언어로 이해하고 있게 아닌가 싶다... 노동자들이 필사적으로 돈을 더 안 벌면 그렇게 아둥바둥 안해도 되는데.... 이런 거였어????
합리적인 리버럴이자 실용적 경제학자로서 미국사회에 던지는 제안의 진의는 참 아름다우나,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ㅡ.ㅡ
* 사족이지만, luxury good 을 사치품/사치재가 아니라 '명품'이라고 표현하는 괴이한 한국어 용법에 분통이 터지는데, 이 책은 '사치'라로 번역해주셔서 감사...ㅋㅋ
"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는 전업주부 열풍을 찬양하는 사회분위기와, 경제적 자립을 포기하는 위험성에 대해 침묵하는 언론과 일부 사회평론가들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했다"는 저자의 머리말이 사실, 이 책의 모든 것을 웅변한다고 할 수 있다.
베타 프리단의 <The feminine mystique 여성의 신비>를 읽고 자란 중산층 엘리트 페미니스트인 저자에게 작금 미국의 상황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지경이다. 실제로, 저자가 들고 있는 사례나 주장하는 바를 듣고 있으면, 이 책이 60-70년대에 쓰인게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이다. 여자도 바깥에 나가 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구구절절 하고 있어야 하다니...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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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 비즈니스 정글보다 더 위험한 스위트홈에 대하여 레슬리 베네츠 웅진윙스, 2011 |
저자도 밝히고 있듯, 이 책은 (아직 젊은) 중산층 엘리트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다. 대부분의 노동계급 여성들은 노동시장을 떠나 돌아갈 스위트 홈이란 있지도 않거니와, 노동시장이란 것이 자아성취나 안정적 기반마련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에게 노동시장과 가정은 선택가능한 참/거짓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다.
그리고 꼭 하층계급이 아니더라도, 일부 전문직을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여성들의 고용질과 노동환경은 열악한 편이다. 한국사회에서 나름 나쁘지 않은 (?) 정규직 일자리에서 일하는 나의 여자 친구들마저 (자신들은 죽지 못해 일하는데) "자아성취한다며 일하는 여자들이 제일 어이없다"고 울부짖는 마당이니 말이다... ㅡ.ㅡ 전업주부로 한번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전업주부는 뭐 집에서 빈둥빈둥 놀기만 하나???) 이야기가 완전히 농담만은 아니다.
이 책은 미국중산층 엘리트 여성들의 전업주부 열풍을 심도깊게 설명하지 않는다 (못한다?). 다만, (후배) 여성들이 막연한 스위트홈에 대한 환상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도 안타까운 일인지 사례를 통해 설명하며, 그러지 말라고 조언한다. 남편만 의지하고 살다가 이혼이나 사별한 뒤 다시 노동시장에 돌아가는 것이 (심지어 전문직/관리직에서조차) 얼마나 어려운지, 사회보장은 얼마나 취약한지, 자녀와 남편이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기껏해야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 말이다....
학식 높은 주부들이 정성껏 가꾸어놓은 스위트 홈이란 게 보기만큼 스위트하지도 않거니와, 자본주의 정글에서 경제적 자립없는 개인의 삶이란 너무도 위험하고 취약하다는 것이다. 육아/가사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지만, 그래도 그 시기는 길어야 10년이니 어떻게든 버텨보라는 건데, 글쎄,어떻게???? ㅡ.ㅡ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궁금증'을 해결하는 단서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좋은 조건 속에서 직장에 다니는데도, 그녀들은 왜 일을 포기하는 걸까요"와 비슷한 궁금증이다..
지금 하고 있는 알바 마감에 쫓겨서 길게 쓸 수는 없다만,
전업주부 찬양열풍과 회귀현상은 한국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중국이 최근 이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그 이면에는 전업주부를 감당할 수 있는 (일부계층의) 소득수준의 상승 (즉, 소득 양극화)과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시장적 교육체계와 강고한 학벌주의가 자리한다고 생각한다. 즉, 일단 두 사람이 벌지 않아도 될만큼의 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물적조건이 충족된 상태에서, 모든 것이 시장에 내맡겨진 교육체계에서 '자녀관리자'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기에, 전업주부(와 그 가족들)에게는 노동시장 직접 참여보다 자녀에 대한 투자가 가져오는 편익이 더 크다고도 할 수 있다. 미국, 중국, 한국의 공통점이라면 승자독식의 치열한 경쟁구조와 자녀 혼자 헤쳐나갈 수 없는 복잡한 교육시장에서의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오늘을 일단 여기까지......
책 반납기한이 닥쳐서 일단 체크만 해놓구, 조만간 몇 가지 고민의 지점들을 정리해봐야겠다.
요즘은 알바 때문에 완전히 눈알이 빠질 지경이다... ㅜ.ㅜ
#1. 엄기호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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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푸른숲, 2010 |
많이 팔렸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서평등으로 상당히 많이 알려진 책이다.
도서관에도 입고 이래 항상 대출 중이라 이제서야 빌릴 수 있게 된 만큼 아주 인기가 없지는 않은 듯...
짧은 소개글들로 미루어, 이 책이 [88만원 세대]보다 한층 진전된 논의를 담은 세대론이라고 짐작했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부제대로 "20대와 함께 쓴", 즉 20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20대들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면서 저자도, 20대들도, 또 '성장'을 바라보는 관점도 성장한, 그런 성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려운 일거리는 조금도 하지 않으려는 세상의 개망나니, 정치적 무뇌아들로 싸잡아 비난하던 시대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양, 이제는 주류건 비주류건 청춘이란 아파야 제맛이라며 그들의 성장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듯 이야기하는 자들이 너무 많다... ㅡ.ㅡ 갑자기 오늘날 가장 연민해야 할 대상이 마치 20대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그런가???
그 와중에 엄기호 선생의 글은, 누구의 인식론적 특권도 내세우지 않으며 세상을 바라보고, 또 '싸잡아묶지' 않으면서 이해를 구하려 한다는 점에서 특별해보인다.
" '요즘 학생들은 힘든 일을 싫어한다'는 말로 누가 누구의 삶을 무례하게도 삭제하는가...."
" 이렇게 부모의 철저한 관리를 받으면서 '행복'하게 성장이 지체 '당할'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러게나 말이다. 30대, 40대, 50대, 60대, 그 어느 세대도 단일한 하나의 범주로 묶일 수 없는데 비해, 왜 20대들은 한꺼번에 철없는 대학생, 아니면 정반대로 기성세대에게 착취당하는 불쌍한 세대로 한꺼번에 뭉뚱그려져야 하는가? 멋있는 '탈주'를 감행할 수 있는 바깥이 있는 20대도 있고, 착취당할 권리마저 빼앗긴 20대도 있는데 말이다.... 고려대의 김예슬씨처럼 희망없는 학교를 떠나는 이들도 있고, 중앙대의 노영수 씨처럼 학교에 남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다.
저자는 학교폭력을 다룬 장에서, '학교 폭력이 우정에 대한 도덕적 폭력이 아니라 경제/문화/육체 자본의 삼단합체 속에서 벌어지는 계급적 폭력'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학생들과의 논의를 진척시켜가면서, 학생들이 불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한국의 낙후한 교육'이 아니라 '교육 그 자체'라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이제 우리는, 그것이 대안적 교육이든, 민주주의적 교육이든, 교육 자체의 본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전승해야 할 것, 혹은 인간이 인간과 소통하는 문제의 본질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해답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질문을 공유한 공동체"라는 저자의 지적은 매우 공감할만하다.
저자가 학생들과 함께 한 '9학점같은 3학점 교양수업'에서 얻은 교훈은 의미심장하다.
"나는 교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들이 말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출발하여 그 언어가 도달하는 곳까지 그들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학생들의 사유방식이 반인권적이라고 비판하고 인권의 언어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인간을 사유하는 방식을 드러내주고 그런 사유방식의 종착지를 같이 유추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한 학생이 말한다. "인간이 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군요!"
" 나는 이것이 수업이 힘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됨이 쉽지 않음을 발견하는 것, 이보다 더 인문학적인 발견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리 맞지 않으며, 내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리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발견 (깨달음) 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판단과 심판의 언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찰의 언어이다. 그리고 나는 내 말이 가진 무게를 깨닫도록 해주는 것이 수업이라고 믿는다."
이건, 제도권이든 비제도권이든, 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리라....
#2. 허먼 멜빌 등 [필경사 바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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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 미국 허먼 멜빌 외 창비(창작과비평사), 2010 |
창비에서 나온 세계문학 시리즈 중 미국 편...
미국 근현대 단편문학의 '엑기스'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한결같이, 형식면에서 독창적이고 다루고 있는 주제와 내용 면에서 이렇게 선진적일 수가 없다...
문학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한편으로 시대를 앞서가는 '사고 실험'이기도 하다는 점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이미 읽어본 익숙한 이야기도 있지만, 아닌 것들이 다수인데... 읽고 있으면 당대의 생활상, 사회상, 그리고 사람들의 고민들, 앞으로 다가올 (다가왔을) 시대의 모습들이 머리속에 와글와글....
1. 너새니얼 호손 - 젊은 굿맨 브라운
2. 애드거 앨런 포우 - 검은 고양이
3. 허먼 멜빌 - 필경사 바틀비
4. 마크 트웨인 - 캘레바래스 군의 명물, 뜀뛰는 개구리
5. 헨리 제임스 - 진품
6. 샬롯 퍼킨스 길먼 - 누런 벽지
7. 찰스 W. 체스넛 - 그랜디썬의 위장
8. 스티븐 크레인 - 소형 보트
9. 셔우드 앤더슨 - 달걀
10. F. 스콜 피츠제럴드 - 겨울 꿈
어느 하나 빠지지가 않아!!!!!
이 시리즈의 다른 나라 편들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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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일본 편에 '설국'의 가와바다 야스나리 정도만 더 알겠네요. 그나저나 창비식 외국어 표기는 아무래도 적응이 안돼요. '나쯔메 소오세끼'와 '카와바따 야스나리'라뇨. ㅡㅡ;;;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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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의 독자 입니다.같이 데이고 싶습니다.(조지오웰 책은 보지 않았음 주기율표 읽어봐야 하겠네요)
8월 20일 쾅화문,알죠
99%는 장담 못해요
요즘 마음상태가 그래요(아침 저녘으로 "성학집요-율곡" 읽기,20일 쾅화문으로 나가볼려고 애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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